2011-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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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 전쟁'은 혁신 기술 낳을까 [2011.08.30. 제876호]
이정훈
[이슈추적] 특허 싸움은 애플에 삼성이 위협적인 존재라는 방증… 화해 어려울 것이란 전망 뒤 '혁신 제품'의 중요성 부상
8월15일 광복절에도 삼성전자 수원공장의 스마트폰 연구소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최신 스마트폰을 개발하려고 휴일임에도 연구원들이 출근한 것이다. 이에 앞선 13일과 14일에도 상당수 연구원들이 출근했다. 3일 연휴에도 많은 사람들이 쉬지 않고 일했다. 이런 모습 때문에 삼성전자가 '재빠른 추격자'(Fast-follwer)의 위상을 세울 수 있었다.

9개국 12개 법원에서 19건 소송 진행중

하지만 추격자는 우선 선두주자의 모진 공격을 막아내야 하는 처지다. 삼성전자는 최근 애플의 특허침해 소송에 맞소송을 제기하며 응전하고 있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메모리, 액정디스플레이(LCD) 등 주요 부품의 최대 고객인 애플이 '카피캣'(Copycat·모방꾼)이라고 비난해도 대응을 자제해왔다. 하지만 지난 4월 애플이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갤럭시S' 등이 특허를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하자 적극 대응으로 태도를 바꿨다. 애플이 소송을 제기한 지 며칠 안 돼 삼성전자는 애플이 특허를 침해했다며 한국·일본·독일 등의 법원에 맞소송으로 대응했다.

» 삼성전자와 애플이 스마트폰 시장을 두고 특허를 앞세워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애플을 추격 중인 삼성전자가 지난해 6월 서울 서초동 사옥에서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 체제(OS)를 탑재한 스마트폰 '갤럭시S'를 선보이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4월에 시작한 특허 싸움은 '전쟁'으로 치닫고 있다. 두 회사가 정확한 정보를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8월21일 현재 9개국 12개 법원에서 19건의 소송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쟁을 방불케 하는 치열한 싸움은 삼성전자의 현재 위치를 말해준다. 애플은 2000년대 들어 아이팟을 시작으로 아이폰, 아이패드 등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 해마다 고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그런 애플이 삼성전자를 특허를 무기로 견제하는 건 삼성전자가 위협적인 존재임을 사실상 인정하는 것이라는 견해가 나온다. 애플의 전 수석부사장인 제이 엘리엇도 저서 <아이리더십>에서 "저는 개인적으로 삼성이 있어 기쁘다. 애플의 가장 큰 경쟁사이자 애플을 위협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유일한 곳"이라고 평가했다.

삼성전자가 세계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과거에는 일본 회사들을 뒤쫓는 신세였다. 하지만 2006년 3분기 삼성전자가 소니를 LCD TV 부문에서 제친 이후 계속 우위를 점하는 등 점점 세계 1위 품목이 늘어나고 있다. 2010년 말 현재 TV를 비롯해 반도체, LCD 등 11개 부문에서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삼성전자의 모델이던 소니와 파나소닉 등 일본 회사와는 해가 갈수록 격차가 커지고 있다. 소니의 요시오카 히로시 부사장이 지난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가전전시회(CES)에서 "지난해에는 환율의 영향으로 LG에 밀렸는데 올해는 LG를 따라잡고 2위가 되겠다"고 다짐한 것은 역설적으로 삼성전자의 위상을 드러낸다. 반면 이건희 삼성 회장은 같은 가전쇼에서 "기초에서, 디자인에서 우리가 (일본 회사보다) 앞섰으니까. 한번 앞선 것은 뒤쫓아오려면 참 힘들다"며 자신감을 숨기지 않았다.

이처럼 삼성전자가 '퀀텀점프'(대약진)를 할 수 있는 비결로 전문가들은 디지털 제조 방식과 정확한 품질, 현지화 등을 꼽는다. 일본이 아날로그 제조 방식인 아이디어에서부터 시작해 설계, 도면, 부품 발주, 조립까지 순차적으로 진행했다면, 삼성전자는 이를 뛰어넘어 약간의 시차만을 두고 동시에 진행하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삼성전자 상무 출신인 요시카와 료죠는 이를 순차적으로 진행하는 '꼬치구이 방식'에서 좋은 것을 우선 골라먹을 수 있는 '사시미 방식'으로 바뀐 것이라고 비유했다. 여기에 일본이 원재료·부품·성능 등 소비자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부분까지 고품질을 유지하는 과잉 품질을 고집한 것과 달리, 삼성전자는 현지화 전략에 따라 지역별로 적합한 기능을 추가하며 품질에 큰 차이가 나지 않는 부분은 과감하게 허용하는 방식을 썼다. 그 결과 삼성전자는 해마다 고성장을 거듭하며 다른 회사와 격차를 벌려나갔다.

애플은 디자인, 삼성은 기술로 공격

» 자료: 블로그 fosspatents.blogspot.com
휴대전화 시장에서도 삼성전자의 1위 등극은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2009년 삼성전자는 2억2700만 개의 휴대전화를 팔아치우며 시장점유율 20%를 넘어섰다. 당시 삼성전자 임원들은 "이제 노키아의 등이 보일 정도로 따라잡았다"며 자신감을 내보였다. 하지만 자신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6개월 앞을 내다보기 힘든 정보기술(IT)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애플이라는 새로운 강적을 만난 것이다.

애플은 기존 휴대전화 시장에 파천황적 변화를 불러왔다. 애플은 아이폰 출시와 함께 아이튠즈, 앱스토어 등을 통해 수많은 콘텐츠와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할 수 있는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었다. 또 생태계에 개발자와 사용자 모두 참여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삼성이 주도하는 생태계를 구축하지는 못했다. 아이폰에 맞서 '옴니아'를 시작으로 '갤럭시' 시리즈 등을 내놓았지만, 여전히 생태계는 구글의 '안드로이드'에 의존하고 있다. 그럼에도 기존의 실력을 발휘해 다른 휴대전화 제조업체보다 훨씬 더 발빠르게 애플을 뒤쫓고 있다. 지난 2분기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을 살펴보면, 애플은 18.5%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5% 성장하며 1위를 유지했다. 반면 2위인 삼성전자는 5%에서 17.5%로 뛰어올라 1위와의 격차를 크게 줄였다. 스마트폰 시장은 급성장 중이어서 그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지난해 휴대전화는 전세계적으로 약 13억6천만 대가 팔렸는데 그중 스마트폰이 3억 대로 22%를 차지한다. 금액 기준으로는 1830억달러 중 절반을 넘어선 990억달러(54%)가 스마트폰이었다. 올해는 스마트폰으로의 시장 집중 현상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상황에서 애플이 칼을 빼들었다. 삼성전자를 상대로 특허 침해를 이유로 소송을 거푸 제기하고 있다. 애플은 기술 특허는 물론 디자인, 외장 등의 문제까지 걸고넘어졌다. 삼성전자의 맞소송으로 특허 전쟁은 갈수록 확전 중이다. IT 업체들이 소송을 벌이다 대개 합의로 끝낸 과거와 달리, 애플은 꾸준하게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애플과 삼성이 타협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의견이 많은 까닭이다. 대한변리사회 정동준 공보이사는 "애플은 디자인을, 삼성전자는 기술을 가지고 소송에 임하는 모양새"라며 "소송이 곳곳에서 진행되는 것을 보면 끝을 보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삼성은 애플이 주요 고객이라 대항하지 않았는데 최근 응전하는 모습을 보면 두 회사 간 화해가 쉽지 않을 듯하다"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에서 소송의 결과가 하나둘 나오고 있다. 알려진 19건의 소송 가운데 일단 애플이 삼성전자 제품의 판매와 마케팅을 막아달라며 낸 가처분소송 결과가 최근 나왔다.

'소송 전쟁'은 이제 시작일뿐

네덜란드 법원은 8월24일 애플이 삼성전자의 태블릿PC '갤럭시탭'과 스마트폰 '갤럭시S' 등에 제기한 특허 침해 소송 10건 가운데 1건만 인정했다. 이 판결로 삼성전자는 네덜란드에서 10월14일 이후 갤럭시S를 출시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오히려 '승리'라고 해석했다. 판결에서 애플의 권리로 유일하게 인정된 것은 사진을 손으로 밀어넘기는 '포토플리킹'(Photo Flicking)이며, 이는 관련 소프트웨어의 업데이트로 큰 어려움 없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애플이 강조한 디자인과 관련한 권한은 인정받지 못해 삼성이 유리한 위치에 섰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하지만 다음날 독일 법원에서는 다른 결과가 나왔다. 갤럭시탭의 저작권 침해 여부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독일 법원 판사는 "애플의 유럽연합(EU) 안 디자인 권리가 광범위하지는 않더라도 중간 범위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애플의 디자인 권한이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국내에서는 많은 해석이 나온다. 예를 들어 독일 법원이 지난 8월9일 갤럭시탭의 유럽 전체 판매 금지 처분을 내렸다가, 8월16일 다시 독일의 주권이 미치는 영역만으로 한정한 것을 두고 삼성전자가 우위를 점했다고 해석했다. 그 이유로 국내 일각에선 애플이 법원에 제출한 자료에서 갤럭시탭 자료가 '조작'된 사실이 들통나 판매 제한이 풀렸다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특허 전문 블로그 '포스페이턴트'(FOSS Patents)는 "독일 법원이 유럽 전체 지역에 판매·마케팅 금지를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어 독일로만 제한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삼성전자는 이런 엇갈리는 다양한 해석 가운데 어느 쪽이 사실에 부합하는지에 대해 아무런 공식 견해를 밝히지 않고 있다. IT 업계 관계자는 "한국 사람으로서 삼성전자가 승소하기를 바란다"면서도 "사실을 왜곡하는 경우는 삼성전자에도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진실이 어느 쪽이든 네덜란드·독일 법원의 판단은 가처분소송 단계에 불과해 그 결과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는 견해도 상당하다. 서울지식재산센터 송정부 변리사는 "기승전결로 따지면 아직 '기'도 시작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어찌됐든 애플과 삼성의 소송 전쟁은 삼성 등 국내 업체들이 디자인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계기는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변리사 겸 변호사는 "애플과의 싸움은 사용자의 편의성을 늘리는 사용자환경(UI), 외관 등 디자인이 중요한 권리가 되고 이 때문에 큰 이득 혹은 손해를 볼 수 있음을 알려주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혁신 제품'(Game-changer)의 중요성도 새삼 부각됐다. 삼성전자는 최근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애플을 따라잡고, 태블릿PC 판매량은 지난해보다 5배 늘려 '재빠른 추격자'에서 '시장 선도자'(First-mover)가 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 기술력만 강조하는 분위기에서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삼성이 어려워지는 것은 소프트웨어 파워를 키우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하드웨어 위주로 성장한 대기업들이 부메랑을 맞고 있다"고 꼬집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혁신제품과 생태계 이끌 역량 갖춰야

삼성전자도 소프트파워를 키우려고 노력에 나섰다. 이건희 회장은 최근 "소프트웨어 인력을 대거 확충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대해 한 IT 업계 전문가는 "삼성전자는 부품을 비롯해 완제품까지 갖추고 있어 규모의 경제를 이뤄 급성장할 수 있었다"면서도 "하지만 애플처럼 판도를 뒤바꿔놓는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지 못한 한계가 있었고, 이번 소송은 디자인과 함께 혁신 제품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은퇴해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에 기회가 될 것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그보다는 기술력과 함께 생태계를 이끌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라고 조언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참고 문헌
<아이리더십>(윌리엄 사이먼·제이 엘리엇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위기의 경영 삼성을 공부하다>(하타무라 요타로 지음, 스펙트럼북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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