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자 매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사퇴하지 않겠다는 뜻을 공식석상에서 다시 한 번 밝혔다. 곽 교육감의 '버티기 행보'를 보는 진보 진영 내부의 시선은 엇갈린다. 곽 교육감보다 검찰 수사를 비판하는 기류가 강하지만, 단일화에 합의해준 후보에게 거액의 돈을 건넸다는 사실만으로도 도덕적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사퇴 불가피론'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곽 교육감은 1일 열린 서울시교육청 월례 직원조회에 참석해 "저는 이미 총체적인 진실을 이야기했다"며 "교육감 직을 수행함에 있어 더욱 막중한 책임감과 신중함으로 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올해 마무리지어야 할 굵직한 사업이 남아 있다. 서울교육 혁신은 각 부서에서 수립한 계획대로 진행돼야 한다"며 "각 정책과 사업들이 잘 추진되도록 힘써달라"고 당부했다. 앞으로도 계속 교육감으로서 업무를 수행하겠다는 뜻을 분명히한 것이다.
곽 교육감이 검찰과 법원에서 진실을 규명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히면서, 진보 성향 시민사회단체들도 점차 곽 교육감을 두둔하는 쪽으로 선회하는 분위기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지난 28일 곽 교육감의 기자회견 직후에는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을 강하게 밝혔던 시민사회 인사가 곽 교육감을 만난 뒤 설득당했다"며 "법정에서 진실을 밝혀보겠다는 본인의 의지가 강하다"고 말했다.
사건 초기 곽 교육감과 '거리두기'를 하던 진보 성향의 시민사회단체들이 검찰 수사를 비판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데에는 검찰이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 건네진 2억원의 출처를 캐면서 진보 진영 전체를 겨냥하고 있다는 판단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또다른 시민단체 관계자는 "대가성 부분은 박 교수의 진술밖에 없고 아직 의혹 수준인 것 같다"며 "그런데도 검찰은 곽 교육감은 후보를 매수하고 돈 떼먹은 사람이고 박 교수는 피해자라는 식으로 언론에 흘리고, 시민사회 전체를 공범으로 몰아 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검찰의 목적은 곽 교육감뿐만 아니라 진보 진영 전체를 도덕적으로 매도하려는 데 있다고 본다"며 "이런 상황에서 곽 교육감의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스스로 방어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이 단체를 비롯한 일부 시민단체들은 곽 교육감의 기자회견이 있은 직후엔 내부적으로 사퇴를 요구하는 내용의 성명서 초안을 작성했다가 철회하기도 했다.
트위터 등을 통해 퍼지고 있는 곽 교육감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도 사퇴를 요구하는 단체들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 지난 29일 좋은교사운동, 경실련 등과 함께 곽 교육감의 사퇴를 촉구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낸 바 있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일부 회원들이 누리집 게시판에 비판 글을 올리는 등 홍역을 치르고 있다.
그러나 2억원이라는 거액을 건넨 것 자체가 부도덕하고 부적절한 행동이므로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 때문에 진보적인 성향의 일부 시민들이 곽 교육감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듯하지만, 대다수 일반 시민들을 설득하기는 어렵다"며 "사퇴를 통해 도덕적 책임을 지지 않을 경우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진보 진영에 짐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른 시민단체 관계자도 "진보는 도덕성이 생명인데, 나중에라도 보수적인 후보가 곽 교육감과 똑같은 행동을 했을 때 우리가 어떤 태도를 보일 수 있겠느냐"며 "사퇴하는 게 옳다"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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