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만약 하루에도 30번씩 화장실을 다니며 혈변을 쏟는데 치료방법이 없어서 평생 질병을 달고 살아야 한다면, 병명도 모르는 질병으로 시름시름 아픈 아이를 부둥켜안고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해야 한다면, 고작해야 서른을 넘기기 어렵다는 의사의 말 때문에 어찌할 바를 모르면서 매월 수백만원의 치료비를 쓰고 가정이 파탄지경이라면 어떻겠는가. 아마 상상하기조차 싫은 악몽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악몽이 현실인 사람들이 있다. 바로 희귀 난치성 질환자들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집계한 현재 환자 수는 65만여명이지만, 전문가들은 100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 이러한 희귀 난치성 질환자들에 대한 의료 이용 지원은 먼저 기준을 충족한 질환에 대하여 건강보험공단에서 등록제를 시행하고 있으며, 등록된 질환자에 대하여 본인부담금의 10%만 내는 산정특례, 수입이 최저생계비의 300% 미만인 가정에 대한 의료비 지원 등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우리나라 의료보장체계의 취약성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첫째, 희귀 난치성 질환에는 대부분 합병증이 동반되는데 합병증 치료는 의료비 지원대상에서 제외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궤양성 대장염의 출혈로 인한 합병증, 다운증후군의 마비, 루푸스 신염에 따른 신장이식 수술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질환별 합병증 치료비가 전액 본인부담이다.
다음은 진단과 관련된 문제다. 희귀 난치성 질환의 경우 대부분 초기 증상이 나타나고부터 진단을 받기까지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확진까지 무려 3~4년이 걸리는 경우까지 있다. 암모니아 수치가 급등해 뇌손상을 입는 멘케스병의 경우처럼 확진 전에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이르기도 한다. 문제는 이렇게 확진까지 반복되는 검사와 치료 비용은 전혀 지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셋째, 확진이 되어도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는 비급여 진료비로 인한 부담이 과중하다는 것이다. 실제 산정특례 등 의료비 지원제도의 대상이라 하여도 불가피하게 이용하게 되는 자기공명촬영(MRI), 컴퓨터 단층촬영(CT), 상급 병실료, 선택진료비와 산소공급 마스크 등 필수적인 재료대, 매번 35만원이나 드는 감마글로불린 주사 등 합병증 관련 약제, 공황장애 등 정신과 진료비, 재활·운동·작업치료 등 물리적 요법에 드는 비용은 몽땅 비급여다.
경제적 부담을 해소하려면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미용 목적을 제외하면 원칙적으로 모든 진료항목이 급여화되어야 하고, 본인부담 상한액을 단계적으로 낮추어야 할 뿐만 아니라, 산재보험의 상병보상연금급여처럼 상병수당을 신설해서 생활안정을 도모하여야 한다. 그러나 공공의료기관이 8%밖에 안 되며 행위별 수가제도를 근간으로 상업화된 의료시장 환경에서는 위와 같은 요구를 실현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한국 사회의 고령화가 지속됨에 따른 의료비 증가 등을 고려할 때 재정면에서 현재의 의료보장체계로는 더이상 감당이 안 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의료비 100만원 상한제'로 대변되는 무상의료 정책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무상의료는 '공짜 의료'가 아니라 의료를 이용하는 시점에서 본인의 경제적 부담을 최소화한다는 개념이다. 그러려면 가입자의 보험료 부담액을 다소 인상하고 정부의 예산지원을 늘리되, 현재의 행위별 수가제도를 질병군별 포괄수가제도나 총액예산제로 개편하는 지불구조의 합리적 개편과 공공의료기관의 증설이 전제되어야 한다. 의료보장제도의 획기적 개혁은 이념과는 무관하다. 단 한순간만이라도 희귀 난치성 질환자들의 고통을 체험할 수 있다면 그 어떤 정치인도 '포퓰리즘' 같은 이야기는 안 할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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