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나 도쿄전력의 발표는 못 믿겠다. 원자력자료정보실을 보라."
지난 3월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방사능 대량 유출 사고가 일어난 뒤, 인터넷에는 이런 글이 쏟아졌다.
정부의 방사능 측정치에 의문이 제기되는 가운데, 자료실은 3월14일부터 독자적으로 도쿄 신주쿠의 대기 중 방사선량을 측정해 인터넷에 실시간 공개했다. 자료실이 공개한 믿을 만한 측정치는 도쿄에서 패닉이 일어나는 것을 막는 데 큰 구실을 했다. 자료실은 거의 날마다 전문가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와 도쿄전력, 주류 언론은 전하지 않는 원전 정보를 전했다. 인터넷으로 생중계된 이 회견은 수천명이 실시간으로 접속해 지켜봤고, 동영상 사이트에도 계속 올려졌다.
일본에서 원전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온 이들의 '두뇌'라고 부를 만한 이 원자력자료정보실은 '시민과학자' 다카기 진자부로(1938~2000·사진)의 생애를 건 노력의 산물이다. 1961년 도쿄대 이학부 화학과를 졸업한 뒤, 일본원자력사업 주식회사를 거쳐 도쿄도립대 조교수로 일하던 그는 자연계에서 인공방사능 물질이 끝없이 검출되는 데 놀란다. 나리타공항 건설에 반대하던 농민들과의 만남을 계기로 그는 '아무 말도 못 하게 하는' 체제로부터 독립한 과학을 추구하기로 마음먹고, 1973년 대학교수직을 그만뒀다.
그는 원전 전문가로서 연구에 그치지 않고, 운동가로도 적극 나섰다. 1975년 9월 지역단체들이 각지의 반원전 운동을 전국적으로 연계하기 위해 공동의 자료실 구실을 하는 기구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원자력자료정보실이다. 다카기는 유일한 무급 상근자로 일하며 자료실을 키웠다.
그는 1988년 '원전을 정지시키기 위한 1만인 시민행동'과 1990~1991년의 탈원자력발전법 제정을 위한 330만명 청원운동의 중심에 섰다. 국제연대 연구와 운동에도 앞장섰다. 온몸을 불태운 그의 활동이 건강을 해쳐 그는 대장암으로 62살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병상에서 생애를 회고하며 쓴 라는 책을 보면, 시민과학자란 말은 다카기의 친구이며 군축·환경 문제 전문가였던 프랭크 폰 히펄 전 프린스턴대 교수가 처음 쓴 것이라고 한다.
다카기는 1997년 대안노벨상으로 불리는 '바른 생활상'(독일계 스웨덴인 우표수집가 야코프 폰 윅스쿨이 제정한 인권과 환경보호 및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한 공로자들에게 주는 상)을 받았다. 다카기가 남긴 4000만엔의 유산은 '다카기 진자부로 시민과학기금'의 종잣돈이 되어, 지금도 '가시와자키가리와 원전 폐쇄를 호소하는 과학·기술자회'의 운영 등 여러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다.
도쿄/정남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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