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자신감? 여유? 신체조건? 세계 극강의 선수들에겐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 국내에선 명함깨나 내미는 선수들도 세계 무대에 서면 한없이 초라해지는 게 한국 육상의 현실. 안방에서 열린 대회라고 예외는 아니다. 한국의 일인자들이 본 세계 일인자들은 대체 무엇이 달랐을까.
"공중기술 차원 달라요"
■ 장대높이뛰기-최윤희와 무레르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장대높이뛰기 결승전이 열린 지난 30일. 한국의 여자 장대높이뛰기 일인자 최윤희(24·SH공사)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아르카디 코치와 함께 관중석에 앉아 있었다. "어휴!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여기가 아니고 저기인데…." 최윤희는 탄식하면서도 동영상 카메라로 선수들의 모습을 담기에 바빴다. 금메달을 딴 파비아나 무레르(30·브라질)가 4m85에 성공하자 "와!" 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공중으로 솟구친 이후 상체 힘으로 몸을 밀어올리는 게 다른 선수들하고 차원이 다르잖아요. 저 기술은 원래 이신바예바가 가장 뛰어났는데…." 금메달을 확정지은 무레르의 4m92 도전 마지막 시기. 3만2000 관중이 '짝, 짝, 짝, 짝' 박자에 맞춰 박수를 치자 최윤희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정말이지 저 자리에서 박수 소리를 들으면 심장 박동수가 저절로 빨라져요. 나야 그런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되레 부담이 되지만, 무레르는 이 분위기를 즐기는 게 눈에 보이네요."
"내려오며 허들 넘는다"
■ 110m 허들-박태경과 류샹 "류샹이 허들을 넘기 위해 도약하는 지점과 착지하는 지점을 잘 보세요. 전성기 때 모습과 똑같아요." 한국 남자 110m 허들 일인자 박태경(31·광주시청)은 류샹(28·중국)의 강점을 여기에서 찾았다. 박태경은 "일반 선수들은 허들을 기준으로 했을 때 도약지점과 착지지점의 비율이 5 대 5로 같지만, 류샹은 6 대 4 정도"라며 "정점에서 넘지 않고 내려오면서 넘기 때문에 착지와 함께 앞으로 치고 나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태경은 "이런 방법으로 류샹이 허들 1개를 넘는 시간은 한국 선수보다 평균 0.04~0.05초 정도 빠르다"며 "10개의 허들을 넘으며 시간 단축이 이뤄지면 차이는 엄청나게 벌어진다"고 말했다.
박태경은 결승전을 후배들과 함께 현장에서 지켜봤다. "후배들에게 자신에 찬 류샹의 표정을 잘 살펴보라고 했어요. 물론 그런 자신감도 실력에서 비롯되는 것이겠지만, 주눅이 들어선 될 것도 안 되니까요." 그는 "우리 선수들이 체격면에서 류샹(1m89, 85㎏)에게 크게 뒤질 것이 없다"며 "류샹이 가능하다면 우리에게도 분명 희망은 있다"고 강조했다.
"10종목 압박에도 여유 넘쳐"
■ 10종 경기-김건우와 하디 "큰물에서 노는 법을 알았으니 30명 중 17등을 했어도 후회스럽지는 않아요." 한국 10종 경기의 일인자 김건우(31·문경시청)는 "빨리 다음 대회에 나가고 싶다"고 했다. 10종목을 주파하고 나면 3~5㎏ 정도 살이 빠지고, 회복하는 데만 한 달이 걸리는 가장 힘든 경기다. 그런데 이번 대회를 계기로 큰 자신감을 얻었다. 깨달은 것이 많기 때문이다. "세계적 선수들과 뛰면서 그들이 경기에 임하는 자세를 많이 배웠죠. 특히 우승을 차지한 트레이 하디(27·미국)는 경기 운영을 너무 잘해요. 옆에서 지켜보니까 배울 게 한둘이 아니더라고요."
김건우는 하디의 가장 큰 장점으로 "어느 경기에 나서더라도 항상 여유로워 보였다"는 것을 꼽았다. "보통 한 종목이 끝난 뒤 대기 시간이 짧아 시간적 압박감을 크게 느껴요. 그러나 하디는 허둥대는 모습이 없어요. 꼭 남과의 싸움이 아니라 자기와의 승부를 펼치는 것 같았죠. 그러다 보니 10개 종목 가운데 1위는 하나도 없지만 최고에 오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대구/김연기 기자 yk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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