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구진이 지난 1940년대 말 과테말라에서 진행한 매독 의학실험의 실상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독일 나치나 일본군이 제2차대전 시기에 진행한 인체실험 못잖은 잔혹한 이 실험은, 미국 의학사의 어두운 과거를 또한번 들춰내고 있다. 이 실험의 뒤에도 어김없이 '죽음의 천사' 존 커틀러(1915~2003·사진) 박사가 있었다.
지난해 10월 과테말라 실험에 관한 증거가 나오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즉각 조사위원회 구성을 명령했다. 조사위가 지난달 29일 발표한 중간보고서는 충격적인 실험의 수법과 연구진의 도덕 불감증을 드러냈다.
1946년부터 2년 동안 미국 공중위생국 소속 의사 커틀러의 주도 아래 연구진은 과테말라에서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비용을 댄 인체 실험을 실행했다. 매독 등 성병에 걸린 사람들이 다른 사람과 성관계를 갖도록 하는 방법을 주로 사용했다. 매독이 간질을 고치는 데 도움이 되는지 알기 위해, 정신병원에 입원 중인 여성 간질환자들에게 매독균을 주사하기까지 했다.
조사위원장 에이미 거트먼이 "소름끼치게 지독하다"고 표현한 가장 잔혹한 실험은, 매독에 걸린 한 여성에게 눈 등을 통해 임질을 감염시킨 것이다. 연구진은 추가감염의 효과를 알아보려고 이런 실험을 저질렀다. 이 여성은 결국 6개월 뒤 사망했다.
당시 모두 5500여명이 실험에 이용됐으며, 이 중 1300여명이 매독, 임질 등 성병에 실제 감염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제대로 치료를 받은 사람은 700여명에 불과하고 사망자는 83명에 이른다. 과테말라 현지에서는 9살짜리 아이까지 실험에 동원됐다는 증언이 나왔다고 영국 은 전했다.
이 실험은 '싱싱 교도소 실험', '터스키기 실험' 등과 함께 미국의 비윤리적 인체실험 역사의 하이라이트다. '싱싱 교도소 실험'은 1943년 교도소 재소자를 상대로 임질 감염을 연구한 실험이고, 터스키기 실험은 1932년부터 1972년까지 40년 동안 터스키기 지역 흑인들을 대상으로 치료하지 않은 매독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관찰하기 위해 이뤄졌다.
이 모든 실험에 등장하는 이름이 바로 커틀러다. 의대 졸업뒤 1942년 공중위생국에 들어간 그는 인체실험을 거듭하며 요직을 차지하다, 1967년 피츠버그대학 교수로 임용된 뒤 편한 말년을 보냈다. 죽은 뒤 피츠버그대학에서 그의 이름을 딴 강의가 개설될 정도로 존경받는 학자로 통했으나 지난 2008년 터스키기 실험 주도 사실이 폭로되며 '두얼굴'이 드러났다. 미국 언론들은 그를 아우슈비츠에서 의무관으로 근무한 나치의 요세프 멩겔레, 악명높은 일본 731부대장 이시이 시로와 함께 '죽음의 천사'로 부른다.
과테말라 실험 조사위원회에 소속된 하버드 의대 라주 쿠체를라파티는 "커틀러는 실험이 비윤리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강행했으며, 이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에 말했다. 거트먼 위원장은 "그들은 철저하게 의학발전을 최우선으로, 인명의 소중함은 두번째로 놓았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과테말라 대통령에게 직접 사과의 뜻을 표명했고, 과테말라도 관련 조사를 벌이고 있다. 실험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현재 미국 정부를 고소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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