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을 읽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아마도 포스코가 인도에서 큰 사업을 벌인다는 사실을 익히 알 것이다. 포스코가 지난 2005년 오리사 주정부와 1200만t 규모의 제철소를 짓기로 계약을 체결했다는 이야기를 매체들이 반복적으로 전해왔기 때문이다. 매체에서는 이와 같은 사실을 전할 때에 보통 '개선가'를 부르곤 했다. "포스코, 인도 사상 최대의 직접 외국투자" "포스코, 인도 시장 공략"…. 진보적 매체라 해도 이런 보도 태도를 큰 틀에서 공유한다. "국익에 이바지하는 해외 자원개발 사업"에 딴지를 건다는 것은, 국내를 지배하는 애국주의적 분위기에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대한민국 선남선녀의 절대다수는 인도에서의 포스코 사업을 알아도 딩키아(Dhinkia)라는 이름의 마을은 잘 모른다. 지금 이 마을에서는, 포스코 제철소 부지를 조성하기 위해 주민들의 땅을 빼앗으려는 경찰들과 조상의 땅을 지키겠다는 상당수의 주민들이 대치하는 중이다. 어른들만이 아니고 약 400명의 아이들까지도 한국 자본에 의한 조상 땅 침탈을 몸으로 막으려고 한다. 인도의 한 신문은 두달 전에 열살짜리 여자아이 상가미트라의 말을 전해주었다. "너무 피곤하고 지쳤지만, 경찰이 오면 나도 꼭 싸우겠다"는 말이었다. 주민들에게는 몇년이면 바닥이 날 '보상'이 아니라 조상 대대로 가꾸어온 땅이 필요한 것이고, 한국 자본의 탐욕을 채워주기 위해 이 땅을 내놓을 생각은 없다. 세계 각국에서 많은 환경·인권운동가들이 그 싸움에 연대운동을 벌였고, 그 유명한 국제사면기구(앰네스티 인터내셔널)까지도 지난 2월28일 성명에서 "인도 농민 약 2000명의 생계를 파괴할 수도 있는 포스코 프로젝트"와 그 반대자에 대한 유혈탄압 등에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대한민국 국민은 세계의 양심이 한국 자본에 분노하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 '기업 애국주의', 즉 전세계를 무분별한 돈벌이의 무대로 삼으려는 국내 기업들의 권익에 대한 무조건적 옹호를 당연지사로 아는 언론들이 이런 무지를 조장하고, 국내 피해 대중과 국외 피해 대중 사이의 연대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근대 한반도에서 애국심이란 원래 피해자들이 공유하는 정서였다. 미국인이 조선 금 생산량의 4분의 1을 담당했던 평북 운산 금광의 개발권을 따내고 나서 거기에서 강제로 쫓겨난 조선인 농민·광부들이나, 일본인이 건설했던 철도들의 부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그 땅에서 쫓겨난 조선 주민, 공장에서 일본인 동료 월급의 절반도 못 받았던 조선 노동자들이 공유했던 감정은 바로 피억압 민족의 애국심이었다.
그러나 운산에서 미국인이 했던 일을 한국 자원개발 업체들이 외국에 나가서 밥 먹듯이 하는 지금 이 시대에, '중진국가'로서 세계적 야수의 대열에 합류한 대한민국에서 자본이 전유한 애국주의는 이제 피억압 민족의 억울함과 그 어떤 관계도 없다. 영원무역 등 한국 업체들의 살인적으로 낮은 임금 수준이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의 격렬한 시위를 유발했을 때, 유혈탄압을 받은 방글라데시 노동자들보다, 임시로 공장 문을 닫아야 했던 영원무역의 실적을 더 걱정했던 국내 일부 언론들의 태도야말로 이 '기업 애국주의'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 '기업 애국주의'라는 정서 속에서는 예컨대 지금 초인적 투쟁을 벌이는 한진중공업 해고자 등 '기업의 이윤을 해치는 불순분자'들에 대해서는 '비록 같은 한국인이라 해도' 추호의 동감도 없다. '국익'을 오로지 기업 이윤으로 해석하는 그 정서 속에서는 가진 자의 무한한 오만과 탐욕밖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국내 노동자들이 앞으로 나아갈 길은 '기업 애국주의'의 벽을 뚫고 전세계에서의 한국 자본의 모든 피해자들과 연대해서 같이 싸우는 일이다. 딩키아 마을의 저항 속에서 우리가 우리의 진정한 얼굴을 볼 줄 알아야 다 함께 모든 노동자·빈민들의 해방을 향해 힘차게 갈 수 있을 것이다.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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