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02

[사설] 아파트 경비원 스스로 “임금 더 안 받겠다”는 세상

서울 강북의 한 아파트에선 요즘 기이한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아파트 경비원이 직접 나서서 "경비원을 최저임금 적용 유예대상으로 지속시켜 달라"는 내용의 서명을 입주민들한테 받고 다닌다는 것이다. 현재 최저임금의 80%를 받고 있는 경비원에겐 2012년부터 100%가 적용될 예정인데, 이를 미뤄 달라는 것은 임금이 오르지 않아도 괜찮다는 얘기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경비원들의 태도 이면에는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 언제 닥칠지 모르는 해고의 이중고 속에서 고통받는 열악한 노동현실이 자리잡고 있다. 법률상 모든 노동자는 최저임금을 보장받아야 하지만, 경비원, 청원경찰, 주차관리원, 건물 전기기술직 등의 '감시·단속' 노동자는 유일하게 최저임금이 적용되지 않는 직종이다. 다른 일반 노동자와 달리 노동 강도가 세지 않거나 업무가 연속적이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대신 2007년에 최저임금의 70%가 처음 적용된 뒤 2008년 80%가 됐고, 2012년부터는 100%를 보장받게 돼 있다. 고용노동부 자료를 보면, 아파트 경비원들은 2010년 기준으로 월평균 288시간을 일하고 112만원가량을 받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내년의 100% 적용을 앞두고 아파트 관리비 상승을 우려한 일부 아파트들이 무인경비 시스템 도입 등의 방식으로 경비원 수를 크게 줄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법이 규정한 최저임금 20%포인트 상승의 대가가 해고라는 무시무시한 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실직을 염려한 경비원들이 전국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연합회가 벌이고 있는 최저임금 적용 유예 청원서명을 대신 받으러 다니는 안타까운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대부분 노년층인 아파트 경비원들은 일자리를 잃으면 더 기댈 곳이 없다. 많게는 월 몇만원의 관리비 증가를 이유로 우리의 아저씨·할아버지 같은 경비원들에게 하루아침에 경제적·정신적 충격을 주는 것은 인간적 도리가 아니다. 세상이 힘들고 각박할수록 어려운 이웃의 고통을 껴안으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정부도 아파트 경비원들이 최저임금 100%를 적용받으면서 고용불안에 시달리지 않도록 고용유지 지원금 등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이런 상생의 정신이 사라진 사회는 말 그대로 '피도 눈물도 없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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