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02

수준 높은 육상 해설 듣고 싶다

육상에서 장대높이뛰기 선수는 돈이 가장 많이 든다. 한 개에 100만원 가까이 하는 장대를 대회 때마다 4~6개씩 가지고 다녀야 한다. 운반비도 보통이 아니다. 고가의 장비로 높이뛰기를 시도하다가 장대가 부러지는 경우도 있다. 지난 29일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체코의 얀 쿠들리카, 러시아의 드미트리 스타로두브세프의 장대가 부러졌다. 이런 경우 무효다. 그런데 심판이 실패를 상징하는 붉은기를 들었고, 매스컴에서도 실패로 보도했다. 허술한 판정이고 잘못이다. "이런 일 처음본다"는 방송해설은 문제가 있다.

이번 대회 여자 100m 금메달은 미국의 카멜리타 지터가 10초90의 기록으로 차지했다. 지터는 여자 100m 역대 2위인 10초64의 현역 최고기록을 갖고 있다. 그런데 역대 최고기록(10초49)을 소개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일부 언론은 플로런스 그리피스 조이너가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세계신기록을 세웠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조이너의 세계기록은 서울올림픽에 출전 하기 앞서 열린 미국 선발전에서 나왔다. 조이너는 88서울올림픽 100m에서는 10초54로 금메달을 땄지만 세계기록은 아니었다.

이런 방송해설도 나왔다. "아, 저 선수 부정출발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얼굴이 하얗게 질렸잖아요" 남자 10종 경기 가운데 한 종목인 100m 에 출전하기 위해 서 있는 선수를 보고 아는 척을 했다. 그러나 혼성 종목 즉 남자 10종, 여자 7종에 출전하는 철인들은 스타트에 큰 부담을 갖지 않는다. 부정출발을 해도 단박에 실격을 당하는 게 아니라 최대 세 번까지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 트랙종목 부정출발로 나머지 종목에서 힘들게 쌓아온 점수를 무효화한다는 것은 너무 야박하기 때문이다.

용어에서도 헷갈리는 경우가 있다. 가령 'A 12분37초33'라는 기록이 있다. "아시안게임 기록이야" "아냐 아시아신기록이라는 뜻이야" "그게 아니라 오전에 세워진 기록이라는 거야" 등등 다양한 해석들을 한다. 다 틀렸다. 국제육상경기연맹(IAAF)는 표고 1000m 이상의 고지에서 벌어지는 경기 기록에 영문자 A(Altitude)를 붙인다. 일본 육상연맹의 기록담당관이었던 노구치의 연구에 의하면 100m를 10초에 달릴 경우, 2000m 고지에서는 무려 0.106초가 단축된다고 한다. 대구 대회는 평지에서 열려 기록에 A자가 붙을 일은 없지만, 각종 영문 약어를 알고 볼 때 시야는 넓어진다.

개막 첫날 여자 마라톤 우승자인 케냐의 에드나 키플라갓은 35㎞ 지점에서 급수 대에 놓인 물병을 집으려다 뒤에서 달리던 동료 체로프의 다리에 걸렸다. 키플라갓은 곧바로 일어나려 했지만 무릎을 다쳐서 고통스러워 했다. 몇 발짝 앞서 나갔던 팀 동료 체롭이 다시 돌아보며 도와주려 했고, 바로 뒤에서 3위로 급수대에 도착한 케냐의 제프투도 속도를 줄였다. 동료들의 배려에 힘입어 키플라갓은 일어나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만약 팀 동료들이 쓰러져 있는 키플라갓을 적극적으로 일으켰다면 어떻게 됐을까. 바로 실격이다. 마라톤은 어떠한 경우라도 혼자서 완주를 해야 한다. 남의 부축을 받거나 넘어진 뒤 남의 도움을 받아 일어나면 안된다.

대구 대회를 통해 1급수 종목 육상을 보면 달리고, 넘고, 던지는 선수들의 단순한 동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각 종목에 대한 공부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대구 육상을 계기로 관전의 눈높이도 도약했으면 좋겠다. 기영노 스포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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