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에서 서울시장을 하겠다고 너도나도 나서는 모양이 참 우습다. 두달 남짓 남은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벌써 다 먹은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정치라는 게 다 먹었다고 생각하면 어느새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리는 것인데도 말이다.
오세훈을 잃은 한나라당과 지지자들은 절치부심하고 있다. 어떻게든 서울시장 자리를 되찾아 권토중래해야 한다. 여권이 10월 보선에서 다시 '오세훈표' 서울시장 후보를 내놓을 것 같지는 않다. 오세훈은 용감했지만, 중도가 이탈했다. 중도보수 성향의 중량감 있는 인물을 내세워 중도를 견인하려 할 것이다. 당내 '오세훈표' 정치인들의 입지가 좁아지는 형국이다.
보수는 결집하는데 민주당 한편에선 샴페인 터뜨리기에 바쁘다. 야권 연대나 통합은 뒷전이다. 일단 고지를 선점하고 보자는 식이다.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흐름상 으레 이길 것 같은 선거, 당연히 이겨야 하는 선거라는 점이 오히려 민주당의 발목을 잡고 있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사건으로 판세 자체도 불투명해졌다.
민주당은 헝클어진 첫 단추부터 다시 끼워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 이번 서울시장 보선을 야권 연대와 통합의 기초로 삼겠다는 자세로 새출발해야 한다. 총선·대선용 야권 통합이나 연대가 따로 있고, 서울시장 선거용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서울시장은 우리가 먹는 것이니까 하면서 섣불리 움직이는 순간 총선·대선의 통합, 연대도 물건너갈 수 있다. 야권 연대와 통합은 바로 지금 서울시장 선거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다가오는 서울시장 보선에서 민주당은 경우에 따라 후보 자리도 내놓을 수 있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통합의 정신이란 게 뭔가. 가진 자는 더 많이 내놓고, 덜 가진 자는 가진 만큼 최대한 헌신하는 것이다. 한명숙, 천정배, 원혜영, 박영선, 추미애, 김한길, 이계안…. 이제 봐도 새삼스러울 정도로 민주당에는 서울시장 자격을 갖춘 정치인들이 넘쳐난다. 큰 집안일수록 진퇴에 신중해야 한다. 시민사회 진영의 박원순, 조국 같은 이들도 야권의 서울시장 후보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 진보정당 쪽의 노회찬, 이정희가 자격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누가 되는 건 중요하지 않다. 후보를 뽑는 과정이 그야말로 용광로가 돼야 한다. 야권 전체의 인물과 에너지가 분출하면서 선의의 경쟁이 이뤄져야 한다.
야권 단일후보 선출 방식도 창조적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 각자 경선 뒤 막판 여론조사로 줄다리기하는 전통적 방식은 4·27 김해 보궐선거를 기점으로 상당부분 생명력을 잃었다. 곽노현 교육감 파동은 기존의 후보 단일화 방식에 대한 회의를 확산시키고 있다. 야권 연대의 뉴버전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책의 문제도 소홀히 다룰 수 없다. 서울시장 선거에서조차 제대로 된 정책연대를 못하면 총선·대선은 말할 것도 없다.
현실정치가 당위나 이상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선거에선 이기는 것이 최고선이다. 또 지명도와 조직, 정책능력 등 주·객관적 조건을 무시할 수 없다. 서울시장 후보가 누가 되든 야권은 민주당 중심으로 선거를 치를 수밖에 없다. 서울시장 자리는 내년 총선은 물론 차기, 나아가 차차기 대선의 향방과도 직결되는 너무도 중요한 길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4·27 재보선에서 순천을 양보했던 것 이상의 통큰 양보를 각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 길이 내년 양대 선거를 앞두고 야권 모두가 통큰 양보의 정치를 펼칠 수 있는 지름길이다.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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