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것에 대한 향수일까. 새것에 대한 거부감일까. 최근 클래식 음반 시장에 옛 음반의 재발매 열풍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클래식 음반 차트에서 판매순위 상위의 음반들을 살펴보면, 상당수가 엘피(LP) 시절 나온 음반을 시디(CD)로 복각한 것들이다. 소니뮤직의 경우 1962년 발매된 지노 프란체스카티의 앨범, 1992년 당시 11살 꼬마소녀 사라 장이 출연했던 실황 앨범, 1955년 헨리크 셰링이 녹음한 앨범 등 최근 높은 매출을 기록한 음반 대부분이 재발매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음반사는 10월 초 '플루트계의 파바로티'로 불리는 제임스 골웨이의 내한을 앞두고 30여년 전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함께 녹음했던 앨범을 재발매할 예정이다.
그런가 하면 워너뮤직은 '안동림의 이 한장의 역사적 명반', '안동림의 불멸의 지휘자' 등 유명 음악평론가를 내세운 재발매 시리즈로 톡톡한 재미를 봤다. 신규음반에 주력해온 유니버설뮤직도 최근 마니아들의 요청으로 장막스 클레망의 을 재발매해 시장에서 호응을 얻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배경으로 가장 유력한 것은 클래식 음반 시장의 고질적 부진이다. 이상민 워너뮤직코리아 클래식 마케팅팀 부장은 "이미 인지도를 갖춘 옛 음반을 재발매할 경우 신인 앨범보다 평균 3~5배가량 매출이 높은 편"이라며 "음반사 재정이 안 좋다 보니 신인을 발굴해 제작, 마케팅, 홍보 비용까지 지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분석은 디지털 시대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다. 실제로 대부분의 재발매 음반은 엘피 시절의 재킷 표지를 시디 크기로 똑같이 재현하고 있다. 프란체스카티 앨범은, 재킷 표지는 물론 알판(CD)까지 엘피를 본떠 표면에 나선형 홈을 새겼다. 소니뮤직 마케팅부 클래식 담당 류보리씨는 "마치 성형하듯 디지털 장비로 보정한 오늘날 음원에 불만을 느끼고 옛 음반을 찾는 경우가 많다"며 "재발매된 옛 음반을 들어보면 연주자들의 개성이 뚜렷하고 아날로그 레코딩 특유의 자연스러움이 살아있다"고 했다.
이밖에 최근 클래식 음악 소비층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고음반 마니아와 수집가들이 늘어난데서 원인을 찾는 분석도 있다. 엘피 명반들은 이제 더는 생산되지 않아 소장용 희귀품이 되면서 가격이 폭등했다. 최근 재발매된 클래식 음반 원본 엘피 중 상당수가 이런 희귀본으로, 장당 100만~150만원을 호가한다. 경제적 여건이 여의치 않을 경우 엘피 시절 음원을 듣고 싶다면 시디 재발매를 학수고대해야 하는 셈이다.
재발매 음반 제작의 핵심 원칙은 원본과 똑같이 재현해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한 노력도 눈물겹다. 소니의 프란체스카티 복각 앨범의 경우 절판된 오리지널 음원이 본사 자료실에도 남아 있지 않아, 이베이(e-Bay) 등 해외 경매사이트를 뒤진 끝에 간신히 엘피를 찾았다고 한다. 음원을 추출한 것은 물론, 낡은 엘피 재킷을 고화질 스캔한 뒤 일일이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보정해서 결국 시디 재킷까지 원본 축소판으로 만들었다.
9월 중순 발매될 골웨이와 정경화의 앨범은 네덜란드에서만 한정발매된 음반에 삽입됐던 골웨이와 정경화의 사진을 찾기 위해 인터넷 경매사이트를 한참 동안 헤집어야 했다.
한 음반업계 관계자는 "엘피 시절 음반을 복각해 재조명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지만, 재발매반 위주의 시장 구조가 장기화되면 새로운 콘텐츠의 생산이 멈추게 돼 예술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김소민 객원기자 sompari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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