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책임자 떠나고…
총리실장 내정 임종룡 차관
"물가 올라 서민호흡 가빠져
더 열심히 했어야했는데…"
"배 1개에 1만5000원이라는 굵은 신문활자가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그때 더 열심히 했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도 함께합니다."
국무총리실 실장에 내정된 임종룡(52·사진) 기획재정부 제1차관이 정부의 물가 정책에 대한 진솔한 소회를 남겼다. 그는 올해 들어 매주 차관급 물가대책 회의를 주재하며 정부의 물가 정책을 총괄해 온 책임자다.
임 전 차관은 지난 2일 '기획재정부 가족 여러분께'라는 제목의 이임사 첫머리에서 "아직도 책상 위에 무 값이 적힌 '물가표'가 있고, 출근하면 가장 먼저 읽었던 '일일경제지표'가 너저분하게 펼쳐져 있다"며 "옆자리 이삿짐을 담을 빈 상자가 더욱 허전해 보인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정부의 전방위 대책에도 소비자물가 5%대까지 급등한 데 대한 답답함과 아쉬움을 표현한 것이다. 그는 전날 언론 브리핑에서도 "물가 여건이 어렵고 상승세에 있다는 것을 정부가 부인하지 않는다. 4% 목표가 쉽지 않지만 (정부의 의지를) 귀담아 주면 좋겠다"고 읍소했다.
이임사 말미에는 물가정책에 대한 평소 소신을 피력했다. 그는 "우리가 수조원대의 복지대책을 만든다 한들 아이들을 위해 사는 사과 두 개를 한 개로 줄여야하는 서민들의 아픔을 메워줄 수 없다"면서 "물가 안정은 서민들에게 '호흡'이며, 결코 숨이 가빠지지 않게 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어느 과제보다 우선하는 소명"이라고 강조했다. 재정부 관계자는 "임 전 차관이 떠나는 날까지 물가 대책에 매달리다 오후 늦게 황급히 이임사를 작성한 것으로 안다"면서 "1년 이상 물가 정책의 주무 관료였기에 물가 급등에 대한 책임감을 떨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회승 기자 honesty@hani.co.kr
한은은 보이지 않고…
통화정책 '성장'에 초점
물가주도권 정부에 내줘
물가 급등 탓에 가계의 고통이 커지고 있지만 물가관리의 주무기관인 한국은행의 역할을 찾아보기 힘들다. 한은 통화정책의 무게중심은 이미 성장으로 기운데다, 물가관리의 주도권마저 정부에 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한은이 금리인상을 통해 거시적 차원에서 물가 안정 기조를 만들어 주고 정부가 미시대책으로 그 빈틈을 메꾸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한은은 대외 불확실성 등을 이유로 금리정상화 시기를 자꾸 뒤로 미뤄왔고 하반기엔 선진국 경기둔화 우려에 발목이 잡혀 있다. 대신 정부가 나서 행정력을 동원한 물가통제를 실시하고 있을 뿐이다. 한은과 정부의 역할이 전도돼 '물가는 정부, 성장은 한은'이 주도하는 모양새다. 박미정 국회 입법조사관은 "정부 개입을 통한 물가관리는 특정 품목의 가격상승 압력이 전체 물가에 영향을 줄 경우에 유효한 정책일 수 있다"면서도 "최근 우리 경제 전반이 과잉유동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압력에 노출돼 있는 상황에서는 시장의 교란만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우려는 한은 내부에서도 나온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의 한 위원은 "앞으로는 수요압력 요인이 공급요인보다 물가에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여 금리인상의 속도와 폭이 더욱 빠르고 커져야 할 것"이라며 "금리정상화 기조를 더 강력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중수 한은 총재의 행보에서는 물가안정과 관련한 적극적 의지를 찾아보기 어렵다. 금융당국 고위인사는 "김 총재가 금융안정이라는 역할에 치중해 많은 시간을 들여 국외 출장을 다녀오고 한은법을 개정했지만 정작 한은의 존립근거인 물가안정에 어떤 '투자'를 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국내외 물가동향 등을 점검하기 위해 열리는 거시정책협의회를 두고서도 한은 내부에선 "재정부의 필요에 의해 한은이 끌려가는 꼴"이라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사실상 재정부가 주도하는 회의에 한은이 자료와 보고서를 제공해주는 들러리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재명 기자 miso@hani.co.kr
전셋값에 공공요금까지 '들썩' 물가 비명 계속된다
8월 소비자물가가 5%대로 급등한 가운데, 물가 비중이 큰 전셋값과 공공요금이 하반기 물가의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4일 국민은행의 주택가격 조사를 보면, 8월 전국의 평균 전셋값 상승률은 1.1%로 4월(1.2%) 이후 다시 1%를 넘어섰다. 특히 가격전이 효과가 큰 서울의 전셋값이 7월보다 1.3% 올라 3월(1.4%) 이후 가장 변동폭이 컸다. 전셋값이 물가에 끼치는 영향도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달 전셋값은 지난해 같은달 보다 5.1% 올라 2003년 이후 최고 상승률을 나타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요즘 이사철이 연중 분산되어 있긴 하지만 가을 전셋값은 수요 요인으로 상승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요금 역시 꿈틀대고 있다. 공공요금(공공서비스)은 지난해와 견줘 7월(1.5%)에 가장 크게 오른 데 이어 8월에도 1.4%의 높은 상승률을 나타냈다. 시내버스요금은 7월 이후 두달째 5%대, 도시가스는 지난 5월 요금인상 이후 넉달째 두자릿수 상승률을 나타내고 있다. 올 하반기에는 도시가스 도매요금, 도로 통행료, 수도권의 대중교통 요금 등의 인상 논의가 줄줄이 대기중이다.
전셋값과 공공요금은 물가 비중이 높아 전체 소비자 물가에 끼치는 영향이 그만큼 크다. 소비자물가지수(기준 1000)에서 전세(66.4), 전기(19.0), 도시가스(16.1), 시내버스 요금(11.4) 등은 모두 가중치 상위 20위권 품목들이다. 강중구 엘지(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전셋값은 한번 오르면 계약기간(2년) 동안 유지되는 특성이 있고 공공요금은 그동안 정부가 인상을 억제해 상승요인이 큰 상태"라며 "9월 이후 농산물값 상승은 주춤하겠지만 전셋값과 공공요금이 물가 불안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회승 기자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