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니까 못하는 겁니다"라는 말이 한반도를 관통했던 역사가 있다. 듣기에 참 좋은 말이다. 이런 말 되새기면서 같은 거 읽으면 감흥이 두배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거지. 글로벌 한민족! 그런데 정작 문제는 해봤자 잘할 수 없는 걸 왜 정말 잘할 수 있는 것들에게 돌아갈 자원까지 낭비해가며 억지로 해야 하냐는 거다. 누구 좋으라고. 이 경우 이익을 보는 주체는 지원을 따먹고 신지식인 영웅이 되는 단 한 명뿐이다. 심형래. 그는 정말 시대의 인물로 기억될 만하다.
최근 심형래 감독이 새삼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직원 임금 체불로 노동청 조사를 받고 있으며 회삿돈을 유용해 카지노에 드나들었다는 의혹이 그의 영화사에서 일하던 직원들에 의해 제기됐다. 일부 직원들은 정관계 로비설까지 주장하고 나섰다. 하긴 정관계와의 친분 없이 그만한 돈을 끌어다 나 를 만들 수도 없다.
심형래 감독은 언제나 스스로 충무로의 약자처럼 굴었다. 희생양인 양 우는소리로 처신했다. 그러나 언젠가 이 지면에서 이야기했듯 충무로에서 제일 힘센 사람은 충무로에서 제일 비싼 영화 찍어 거대 배급사를 통해 유통할 수 있는 감독이다. 그런 맥락에서 심형래는 전무후무한 충무로 최강자였다.
새삼 심형래에 대해 왈가왈부하려는 게 아니다. 심형래가 대역죄인도 아니고, 그냥 다음에 좋은 작품 만들면 된다. 심형래라는 화두를 가지고 지금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심형래 개인의 송사가 아니라, 심형래라는 이름에 우리가 투영했던 허황된 욕망 그 자체다. 심형래라는 아이콘에 투사된 욕망은 무엇인가. 글로벌이다. 세계에서 통할 수 있는 콘텐츠 개발. 대통령께서 갈망하시는 한국의 스티브 잡스, 한국의 닌텐도, 한국의 아무개, 결국 모두 같은 맥락의 욕망이다. 우리는 세계에서 통하고 싶다! 하물며 외계인을 만난 일본인의 첫 질문은 "그 별에서는 어떤 화폐를 사용합니까"이고 한국인의 첫 질문은 "그 별에서는 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데.
현재 한국콘텐츠진흥원을 비롯한 지원사업 주체들에서 수년째 가장 트렌디한 아이템은 '글로벌 프로젝트'다. 세계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작품에, 기술에 지원한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문제는 대체 어느 누가 세계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작품을 식별할 수 있느냐는 데 있다. 지원사업 심사위원들도 해외 배급사와의 느슨한 양해각서(MOU) 체결 문건이나 '원 소스 멀티 유징'이 가능할 것 같은 캐릭터 디자인 이외에는 딱히 명확한 잣대를 들이대지 못한다.
세계에서 통할 수 있는 아이템? 아무도 모른다. 김기덕 영화가 세계에서 통할 수 있는 아이템이었나? 가 세계에서 통하리라 예상되는 영화였나? 정작 그간 세계에서 통한 한국 콘텐츠는 '글로벌'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들이었다. 천억원짜리 영화나 일억원짜리 영화나 해외시장에선 별반 다를 게 없는 '한국영화'다. 그냥 작품 자체를 잘 만들면 된다. 내수 시장에서 통하면 해외 시장에서도 어느 정도 통한다. 그런데 자꾸 성공 사례만을 뒤쫓는다. 단기간에 성과를 보고 싶어한다. 그러다 보니 엄한 국민 세금만 꾸역꾸역 낭비된다. '글로벌 지원사업'이라는 이름으로 허비되고 있는 눈먼 돈을 확인하면 누구든 한국사람 안 하고 싶어질 거다.
최근에는 5분짜리 기술시연 트레일러만 확인하고 '글로벌 프로젝트 기술개발사업'이라는 이름으로 30억원이 지원되었다. 지금이라도 '글로벌'이라는 이름의 헛된 망상을 거두어야 한다. 그 돈을 잘게 쪼개어 내수시장을 가꿀 수 있는 저예산 프로젝트에 돌려야 한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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