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04

[사설] 가난한 시대의 어머니 이소선

이소선씨가 엊그제 별세했다. 자신의 몸을 불살라 억압 없는 세상, 노동 해방을 외쳤던 고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그가 우리 곁을 떠났다. 부리는 자와 부림당하는 자가 서로를 존중하고 섬기는 세상, 자유와 평등과 민주주의가 꽃피는 세상을 위해 온몸을 바친 그가 홀연 사라졌다. 복받치는 슬픔 가누기 어렵다. 무책임한 자본의 공세 속에서 삶은 갈수록 팍팍하고, 목마르고, 힘겨운데, 그의 빈자리는 너무나 넓고, 채울 길 없다.

고인은 전태일의 어머니이자 살아있는 '전태일'이었다. 1500만 노동자의 어머니였고, 이 땅에서 고통받는 모든 이들의 어머니였다. 1970년 스물두살의 아들 전태일이 '노동자에게도 권리를 보장하라'며 온몸을 불사른 뒤 어머니는 40여년 세월을 '전태일'로 불꽃같은 삶을 살았다. 노동자의 생존권을 위한 투쟁은 물론 정치·사회적 민주화를 향한 투쟁에서 선봉에 섰다. 전태일은 어머니로 말미암아 영원히 '아름다운 청년'으로 우리 가슴속에 살아남았다.

한국 민주노조 운동의 상징인 청계피복노조 설립, 70년대 박정희 유신독재를 흔든 동일방직과 와이에이치(YH)무역 노동자 투쟁, 박종철 고문치사 진상규명 투쟁,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설립, '의문사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특별법' 제정,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투쟁 등 굵직한 역사의 현장에서 그는 중심을 지켰다. 그러는 동안 모두 4차례나 옥고를 치렀지만, 어떤 억압도 그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하지만 고인은 더없이 따뜻하고 겸손했다. 자신도 투옥과 가난, 병마 등으로 고통을 겪었지만 일상의 안온함을 구하지 않았다. 늘 힘들고 지친 노동자들과 민주화 투쟁 인사들을 위로하고 보듬었다. 인간을 존중하고 사랑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제 고인이 꿈꾸었던, 모두가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일은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 됐다. 그 싸움은 오늘도 경기 평택의 쌍용자동차에서, 충남 아산의 유성기업에서, 부산의 한진중공업에서, 그리고 제주의 강정마을에서 계속된다. 일자리가 불안한 8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치솟는 전셋값에 신음하는 무주택자들에게도, 연간 1000만원 가까운 등록금에 허리가 휘는 대학생들에게도 하루하루가 전쟁터다. 그 싸움을 위한 결의를 그의 영전 앞에서 새삼 다진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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