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04

‘2무3다’였지만…즐거웠다! 대구

"남자 4×100m에서 우사인 볼트를 앞세운 자메이카가 세계기록으로 우승해… 세계신기록이 없는 4번째 대회가 될 뻔한 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했다."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는 '2무(無)·3다(多)' 대회였다.

개최국이 메달을 한개도 따내지 못했고, 단거리 선수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뒷바람이 결정적일 때 불지 않았다.(2무) 또한 사고와 이변, 오보도 많았다.(3다)

대회 전 47개 종목 가운데 3종목에서 세계신기록이 가능할 것으로 분석됐다. 남자 800m와 여자 높이뛰기, 남자 3000m 장애물에 강자가 포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 800m에서 케냐의 데이비드 레쿠타 루디샤는 24연승째를 올리며 우승했지만 자신의 세계기록(1분41초01)에 못 미쳤다. 여자 높이뛰기의 '지존' 블란카 블라시치(크로아티아) 역시 은메달로 자신의 최고기록(2m08)을 넘지 못했다. 지난 7월 모나코 다이아몬드리그에서 7분53초64의 기록으로 남자 3000m 장애물 우승을 차지해, 세계기록에 0.01초 차로 다가선 케냐의 브리민 키프로프 키프루토도 은메달에 그쳤다.

그러나 대회 마지막 경기였던 남자 4×100m에서 우사인 볼트를 앞세운 자메이카가 세계기록으로 우승함으로써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이로써 대구는 2001년 에드먼턴, 2003년 파리, 2007년 오사카에 이어 세계신기록이 없는 4번째 대회가 될 뻔했던 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했다. 1983년 1회 헬싱키 대회부터 2009년 베를린 대회까지 12번의 대회에서 평균 한 대회 2개인 25개의 세계신기록이 나왔다.

세계기록이 흉작에 그친 이유로는 결승전이 벌어지는 저녁에 대구스타디움에 앞바람이 불어서 단거리와 도약 선수들에게 매우 불리했던 것도 무시할 수 없다. 대구의 높은 온도보다는 연일 80%를 웃도는 습도가 선수들의 컨디션 조절에 악영향을 끼쳤다.

육상은 공정하고 순수하고 엄격하다. 그리고 너무 정확하다. 홈그라운드의 이점도 허락하지 않는다. 생물이라면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나오지 않을 것이다. 100분의 1초까지 따지는, 너무나 정교하면서도 그야말로 비인간적인 스포츠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바람에 관해서만은 관대하다.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은 1936년부터 초속 2m까지의 뒷바람은 받아들이겠다고 결정했다. 엄격하게 100분의 1초까지 따지지만 어쩔 수 없는 바람이 불 때는 자연의 뜻에 결과를 맡기겠다는 깊은 뜻이 숨어 있다.

최고 이벤트인 남자 100m에서 뜻하지 않은 부정출발 사고로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우사인 볼트의 질주를 보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아쉽다. 남자 장대높이뛰기에서 선수 2명의 장대가 부러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대구스타디움의 빈 트랙에 시민들이 몰래 들어와 인라인스케이트와 자전거를 타는 모습은 기네스북에 오를 사고였다.

남자 1만m 세계기록(26분17초53) 보유자이며, 대회 5연패를 노렸던 케냐의 케네니사 베켈레가 달리던 도중 기권한 것은 최대의 이변이다. 남자 400m를 제패한 중남미 소국 그레나다의 19살 청년 키라니 제임스, 남자 400m 허들 왕좌에 오른 영국의 데이비드 그린의 질주는 인상적이었다. 각 매스컴에서는 육상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아서인지 경보, 마라톤, 장대높이뛰기, 혼성종목 등의 규칙, 기록 등을 잘못 전달하는 등 오보가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대구 육상은 큰 선물이 됐다. 지방이 완전 연소된 가장 아름다운 형태의 몸을 무기로 선의의 경쟁을 벌인 선수들을 통해 가장 단순한 경기가 가장 재미있다는 진리를 일깨웠다. 인간 승리를 보여준 '블레이드 러너' 오스카 피스토리우스의 참가로 대구는 육상 역사상 최초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등하게 승부를 겨룬 역사적인 도시가 됐다.

기영노 스포츠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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