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04

[사설] 곽 교육감을 비판하는 이유 / 금태섭

나는 아이가 학교에서 맞지 않기를 바랐다. 애들을 한 번도 때리지 않고 키운 것은 내게는 나름 자랑거리였다. 어릴 때부터 "아빠가 너희를 때리지 않는 것처럼, 너희도 다른 사람을 때려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달랐다. 선생님 한 분은 스스로 지은 별명이 '마술피리'였다. 피리를 들고 다니면서 아이들을 때렸다. 혼란을 느꼈을 아이에게 미안했다. 몇 번을 학교에 찾아가려고 했다. "저에겐 무척 중요한 원칙의 문제이니 체벌은 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었다. 물론 실제로 가지는 못했다. 학교 교육에 부모가 간섭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짐짓 점잔을 떨었지만, 진짜 이유는 아이가 선생님으로부터 미움을 받을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단체기합을 줄 때 우리 애만 빼주고 "얘는 부모님이 때리지 말라고 하셔서 안 때린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부모는 아이 문제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곽노현 교육감이 당선되었을 때 진심으로 기뻤다. 체벌금지는 물론 무상급식에서 학생인권조례까지 정책 하나하나를 지지했다. 언젠가는 우리 아이들도 축 처진 어깨에 무거운 가방을 메고 밤늦게 학원버스에서 내리는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성적이 나쁘면 낙오자로 취급하는 우리 교육현장이 바뀌었으면 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곽 교육감이 한 일이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선의라고 한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자살까지 생각하는 교육계 동료를 도왔다고 한다. 그 말을 그대로 믿어도 이해가 안 간다. 부모들이 얼마나 절박한 마음으로 곽 교육감의 정책이 성공하기를 바라고 있는지 모른다는 말인가. 선거란 선거는 다 나가서 가산을 탕진한 교수를 돕는 일이,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중학교 수학을 선행학습 하는 아이들을 구해내는 일을 위태롭게 만들어도 좋을 정도로 중요하다는 말인가.

어떤 논객은 진보진영이 곽 교육감을 비판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라고 한다. 여론과 선거, 홍보를 30년간 연구하셨다는 분은 곽 교육감을 비판하는 것은 보수언론의 프레임에 빠져드는 것이며 '정치적 내공'이 부족해서 '된장과 똥도 구별할 줄 모르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방어할 수 없는 자기 진영의 잘못을 방어하려고 드는 것이야말로 상대방의 프레임에 그대로 걸려드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내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이분들이 무엇이 중요한지 놓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교육감의 처신을 얘기하면서 정작 교육의 주인공인 아이들의 입장은 생각조차 안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곽노현을 지지한 것은 그가 '우리 편'이기 때문이 아니다. 아이들을 위해서 옳은 정책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교육감이 할 일은 그 정책을 실현하는 것이다. '선의'로 동료를 돕다가 교육개혁을 위험에 빠뜨리면 비판을 받아야 한다. '진보 교육감'이라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나는 곽 교육감이 지금까지 한 일이 고맙다. 위법행위가 없었던 것으로 밝혀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혹시 일이 잘못되어 선거 비용을 반환하게 되면 내가 한 표를 던졌던 교육감을 위해 성금을 낼 용의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크게 내 머리를 채우고 있는 것은 그의 잘못으로 교육개혁이 후퇴할지 모른다는 걱정이다. '사랑의 매'로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교육감이 다시 나올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부모로서 정말 눈물이 난다. 거기다 대고 '진보가 같은 편에게 칼을 꽂는 것은 비겁하거나 공부가 부족해서 그렇다' 운운해봤자, 들리지도 않는다. 자신이 진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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