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 김근태 상임고문이 30일 오전 5시31분께 별세했다. 향년 64세.
김 고문은 유족과 민주당 이인영 전 최고위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빈소는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다. 발인 시간과 장지는 이날 오전 중 결정될 예정이다.
김 고문은 지난 11월 말 서울대병원에 뇌정맥혈전증으로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다. 이틀전부터 폐와 신장, 간 등 장기의 기능이 동시에 떨어지면서 중태에 빠졌다. 중환자실에 입원했던 김 고문은 전날 밤 의사들이 기계장치를 이용해 강제로 호흡을 유지시키고 있을 정도로 위중했었다.
'민주화 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김 고문은 1947년 2월14일 경기 부천에서 태어났다. 1965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한 김 고문은 학생운동에 뛰어든 뒤 1971년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으로 2년간 수배를 받는 등 20여년간 시국사건의 중심에서 활동하며 수배와 투옥을 반복해왔다.
김 고문은 지난 1985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을 결성했다는 이유로 구속돼 고문기술자 이근안으로부터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전기고문을 받았다. 전기고문을 받은 사실이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그는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을 받았다. 전기고문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2006년께부터 파킨슨병을 앓아왔으나 이를 숨기고 치료를 받아왔다. 정치인에게 건강 악화는 치명적 약점이기 때문이다.
김 이사장은 최근 다시 건강이 악화돼 한반도재단이 지난 8일 이례적으로 짤막한 보도자료를 내기도 했다. 지난달 25일 정밀진단 결과 뇌정맥에서 혈전이 발견됐고 입원 치료 중 갑자기 출혈이 발생해 위급한 고비를 넘겼다. 당시 김 이사장은 누구보다 사랑하는 딸 병민(29)씨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1995년 정계에 입문한 김 고문은 1996년 서울 도봉갑에서 제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이후 17대까지 내리 3선을 지냈다. 노무현 정부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2006년 열린우리당 의장을 지내기도 했다. 2008년 18대 선거에서는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과 겨뤘으나 낙선했고, 그동안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으면서 야권통합을 도왔다.
디지털뉴스부 digitalne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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