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27

가해 학생들은 우리 아이처럼 평범했다

'무인도에 갈 때 꼭 데리고 가고 싶은 친구는?'

같은 반 친구들의 괴롭힘을 못 견뎌 스스로 목숨을 끊은 대구의 중학생 김모(14)군과 가해 학생 중 1명인 서모(14)군은 지난 4월 학교에서 실시한 교우도 조사에서 서로의 이름을 적었다. 2학년이 되고 한 달쯤 뒤였으니, 함께 온라인게임을 시작한 때였다. 이후 2학기가 되면서 우모(14)군이 끼었고, 셋은 남들이 보기에 참 친한 친구 사이였다. 그러나 불과 3개월 뒤 김군은 친구들의 괴롭힘을 못 견뎌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고, 서군과 우군은 현재 학교로부터 '등교정지 10일' 처분을 받은 채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과정 내내 서군과 우군은 담담한 표정이었고 "그저 장난으로 그랬는데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진술했다. 대부분의 폭행과 가혹행위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물고문', '라디오 줄 목에 감아 끌기' 등 도가 지나친 부분에 대해서는 서로에게 잘못을 미루고 있다. 경찰은 "3∼4차례 조사했는데 아직까지 자신이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며 "중간 중간 눈물을 흘린 적은 있지만 이조차 경찰서 분위기가 무섭고 부모님 앞에서 부끄럽고 해서 우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김군이 남긴 유서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충격적 폭행·가혹행위 사실이 밝혀진 두 가해 중학생은 평소 너무나도 평범한 학생이었다는 게 주변 진술이다.

성적은 35명쯤 되는 학급에서 15∼20등가량 했다. 교복을 단정하게 입고 다녔고, 헤어스타일도 불량 학생들과는 달리 평범했다. 학교에서 벌을 받은 기록도 없다. 해당 학교 관계자는 "복도에서 무릎 꿇고 벌 받은 적 한번 없었고, 부모조차 '우리 애가 정말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며 믿지 못할 만큼 조용한 아이들이었다"며 "겉으로는 평범했기 때문에 학교와 가정에서 문제를 인식하지 못했고 제어하지 못해 일이 커졌던 것 같다"고 말했다.

생활기록부에 서군은 '활동적이지 않고 조용함', 우군은 '호기심이 많고 관찰력과 집중력이 있음'이라고 적혀 있다. 올 3월과 9월에 있은 교내 학교폭력 위험 진단 조사에서도 둘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대구교육청은 "두 학생의 출신 초등학교에도 확인해 봤는데 모두 문제를 일으킨 적 없는 평범한 학생들이었다"고 말했다. 둘 다 키는 170㎝가량으로 비슷하고 체격은 서군이 조금 야윈 편, 우군은 보통이었다. 숨진 김군은 키는 약 2㎝ 정도 작았지만 오히려 덩치는 제일 컸다.

가정 형편도 모두 중산층에 속했다. 서군은 폐기물처리업체 직원인 아버지와 간호조무사로 일하는 어머니, 초등학생인 남동생과 대구 수성구의 다세대주택에 살고 있다. 우군의 아버지는 직업군인이고 어머니는 방문교사로 일한다. 숨진 김군 집 인근 아파트에 살고 있으며 여동생(초등학생)이 1명 있다. 둘 모두 특별한 운동을 배우거나 학원을 다니지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평범한 아이들이 어른도 흉내내지 못할 범죄를 저지른 데 대해 교육 현장과 전문가들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경북 모 중학교 교사 김모(39)씨는 "현재 중학교는 아무리 잘못을 해도 정학·퇴학 등 강한 처벌을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학생들은 자기 잘못의 정도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고 교사들의 통제 범위를 넘어서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 모 중학교 교사 선모(34)씨는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애들이 욕설이나 거친 행동을 할 때면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 실제 교사에게 욕을 해도 못 들은 척 지나가야 하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영남대 사회학과 백승대 교수는 "형제 수가 적은 가족 환경, 컴퓨터·스마트폰 등 개인적인 놀이문화가 요즘 아이들을 자기중심적으로 만들고, 이 때문에 가정에서는 훈육이 불가능한 상태가 빚어지고 있다"며 "이에 따라 아이들은 일이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잠재된 폭력성이 나타나거나 자살 등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결국 이번 가해·피해 학생의 상황은 요즘 아이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인 셈"이라고 덧붙였다.

대구=최재훈 기자 acrobat@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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