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27

[사설] 사이코패스형 학교폭력과 고통 불감증

라디오 전깃줄로 목을 묶어 끌고 다니며 과자 부스러기를 주워 먹게 하고, 물이 담긴 세숫대야에 머리를 처박으려 하고, 문구용 칼로 팔목을 긋고, 라이터 불로 몸을 지지고, 목검으로 두들겨패고…. 나치 수용소에서나 있을 법한 일인데, 실은 우리 아이들이 급우에게 저지른 짓이다.

2~3개월간 시달리던 학생은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지금도 인간성을 짓밟고 평생 안고 살아갈 상처를 입히고, 끝내는 자살로 내모는 차별·따돌림·폭력이 학교에선 일어나고 있다. 피해학생의 80~90%가 보복이 무서워 침묵할 뿐이다. 상담자의 30%가 자살충동을 느꼈다고 하니, 그 끔찍함을 짐작할 만하다.

교육과학기술부와 시·도교육청은 잇따라 대책회의를 열고, 매년 두 차례씩 학교폭력 피해 조사를 실시하고, 상담활동을 대폭 강화하는 등의 대책을 내놨다. 문제가 터질 때마다 내놓은 것들과 다르지 않다. 그런 임기응변 속에서 피해학생이 구호 요청 신호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폭력은 악화됐고, 설사 신호를 해도 주위에서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주변의 무감각은 깊어졌다. 그저 우리 아이들이 걱정스럽고, 앞으로 이들이 끌어갈 우리 사회가 걱정스러울 따름이다.

여론의 화살만 피하고 보자는 식의 대책은 이제 그만둬야 한다. 극단으로 치닫는 학교폭력을 진실로 근절하려면 중등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사이코패스 하면 유영철·강호순 등을 떠올리지만,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하고,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지 못하고, 제 행위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사이코패스를 의심해야 한다. 이들의 특징은 타인의 고통 불감증에 사고의 마비다. 잔인하게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학교폭력의 특징도 다르지 않다.

학교가 이런 병증을 키운 것은 경쟁지상주의 교육과 무관하지 않다. 성적만이 지고지선으로 추앙되다 보니, 다른 친구의 삶과 고통을 느끼고 헤아리는 감수성과 공감 능력은 무시당한다. 탈락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은 일상화되고 정당화된다. 경쟁지상주의 교육이 사이코패스형 학교폭력의 온상이 되는 셈이다. 아우슈비츠의 기획자 아돌프 아이히만의 가장 큰 죄는 이웃의 고통에 대한 무관심, 반성하지 않는 사유, 사고의 무능력이라고 했던 한나 아렌트의 지적을 깊이 새겨야 한다. 우리 학교는 뜻하지 않게도 아이들을 그렇게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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