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27

① 피해 학생이 전학가는 이상한 현실… 가해 학생을 격리해야

경기도 용인의 N중학교를 휴학 중인 중2 A(14)양은 자주 손을 씻는 버릇이 생겼다. 너무 씻어 손이 부르트는데도 손 씻기를 멈추지 않는다.

이런 증세는 작년 같은 반 학생 14명이 A양에게 "너는 더럽다"고 괴롭힌 이후에 생겼다. 친구들에게 '씨XX' '재수 없어' '죽어버려'라는 말을 듣거나, 손이나 슬리퍼로 맞기도 했다. 급우들은 A양이 먹는 밥에 침을 뱉었다.

이런 집단 따돌림과 폭력이 지난해 3월부터 8개월간 계속되자, A양은 점점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일이 잦았다. 급기야 지난해 11월 A양은 화장실에서 집단 구타를 당한 뒤부터는 학교에 못 가고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외상 후(後)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A양에게 못할 짓을 한 가해자들에게 학교에서 내린 처벌이라곤 화장실 청소 같은 '교내 봉사' 수준에 그쳤다. A양 어머니는 "내 자식은 가해 학생들한테 보복당할까 봐 학교에도 못 가고 정신병원에 다니고 있는데, 내 애를 괴롭힌 학생들은 버젓이 학교에 다니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가해 학생은 학교에 남고, 피해 학생은 전학 가고

왕따(집단 괴롭힘) 피해 학생들이 극심한 고통 속에서 정신병을 앓거나 자살까지 선택하는 반면, 가해 학생들에 대한 처벌은 솜방망이가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가해 학생들은 자기들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를 깨닫지도 못한다.

현재 왕따를 포함해 학교 폭력을 저지른 학생들에겐 전학, 10일 이내 출석 정지, 학급 교체, 특별 교육, 사회봉사 등의 처벌을 내릴 수 있다. 고등학생은 법적으로는 퇴학도 가능하지만, 퇴학은 거의 사문화(死文化)된 상태이며, 의무교육 대상인 중학생은 제도적으로 퇴학이 불가능하다.

가해 학생을 다른 학교로 강제 전학 보내는 경우도 드물다. 이 때문에 오히려 피해 학생이 보복이 두려워 전학을 가는 일이 많다. 학교폭력예방센터 박경숙 실장은 "보통 왕따 사건 피해자는 1명이지만 가해자는 여러 명일 때가 많기 때문에, 학교에서도 가해자보다 피해자 1명이 전학 가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가해 학생 과감히 퇴학·전학시켜야

왕따 사건은 가해 학생 처벌은커녕 진실 조사 자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학교 측이 학교 명예 등을 고려해 사건을 조용히 덮고 넘어가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왕따 현상을 예방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려면 가해 학생 처벌을 엄격히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컨대 지금까지는 가해 학생을 전학시키려면 가해 학생 부모 동의를 얻어야 했지만, 부모 의사와 상관없이 학교가 판단해 문제 학생은 강제 전학을 시키자는 제안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가해 학생들이 사고를 치고도 학교에 남아 제2, 제3의 왕따 희생자를 만들고 있다"며 "피해자가 원하면 가해 학생을 무조건 전학 보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연주 기자 carol@chosun.com
감혜림 기자 ka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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