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의약품안전청이 지난 20일 인공감미료 사카린을 내년부터는 식품에 쓸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는 행정예고를 했다. 발암성(發癌性) 논란으로 사용이 제한됐던 사카린에 해금(解禁) 조치가 내려진 것이다. 미국 환경보호청은 1년 전 사카린을 '유해물질 리스트'에서 삭제했다. 사카린은 몸에 영양분으로 작용하지 않으면서 단맛은 설탕의 300배나 돼 1960~70년대 식품첨가물로 각광을 받았다. 그러다 동물실험에서 방광암을 일으켰다는 캐나다의 연구결과가 나온 후 각국에서 규제가 시행됐다.
동물실험을 할 때 바람직하기는 낮은 농도로 장기간 섭취했을 때의 변화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굉장히 많은 숫자의 실험동물을 써야 하는데 돈이 너무 많이 든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실험 대상물질을 아주 높은 농도로 동물에 주입하는 방법을 택한다. 그래야 적은 숫자의 실험동물을 사용하고도 빠른 반응을 볼 수 있다. 그런 다음 해당 물질이 위험하다, 또는 안전하다는 판정을 내린다.
이 방식엔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 예를 들어 1000잔 분량의 커피에 들어 있는 카페인을 한꺼번에 들이켰을 때 사망한다고 하자. 그렇다고 1000명이 각자 1잔씩 커피를 마셨을 때 (1000분의 1만큼 마셨으므로 사망률도 1000분의 1로 줄어든다는 논리로) 그 1000명 가운데 1명이 사망한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다. 캐나다의 동물실험은 사람으로 치면 매일 사카린 캔 음료 800개에 든 사카린을 먹인 후 암이 생기는지를 관찰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캔 음료를 하루 800개나 먹는 사람은 없다. 비타민을 먹어도 그 정도 양이면 암이 생길 것이다. 그래서 사카린 규제의 타당성을 놓고 수십년간 논쟁이 벌어졌다.
사카린 뉴스를 보면서 DDT가 생각났다. DDT는 해충(害蟲)을 없애는 기적의 방역 약재로 각광을 받아왔다. 그러다가 1962년 미국 생물학자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silent spring)'이란 책이 나온 후 생태계를 파괴하는 대표 유해물질로 꼽혀 각국에서 사용이 금지됐다. 그 결과가 충격적이었다. 스리랑카는 1948년만 해도 말라리아 환자가 연간 280만명 생겼지만 DDT의 대규모 살포 후 1962~64년 환자 수가 31~150명에 그쳤다. 그러나 1964년 DDT를 금지시켰더니 1968년 100만, 1969년 250만명이 말라리아에 걸렸다. 남아프리카공화국도 1996년 DDT를 금지시킨 후 연(年) 5000건이던 말라리아가 1999년 5만건으로 늘자 2000년부터 다시 DDT를 살포했다. 결국 세계보건기구는 2006년 9월 DDT를 실내 벽면이나 건물 지붕, 축사 등에 뿌리는 것을 권장한다고 발표했다. DDT 역시 복권(復權)된 것이다.
인공 화학물질이 몸 안에 들어가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는 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모든 식품첨가제나 농약을 추방해버린다는 것은 옳은 정책이 아니다. 사카린의 경우 극미(極微)의 발암 리스크가 있다고 해도 비만이나 당뇨병을 막아주는 편익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어떤 선택이든 편익(benefit)과 비용(cost)을 다 따져 판단해야 한다. 원자력 발전에 반대하는 사람도 건강진단을 받으면서 X레이는 찍는다. X레이를 찍을 때 감수해야 하는 방사선 위험이 그 검사를 통해 질병을 발견하는 이득에 비하면 훨씬 작기 때문이다. 다만 임산부가 X레이를 찍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질병의 조기발견이라는 이득보다 아기에게 해가 갈 수도 있는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다.
한삼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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