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26

시대 담은 문제적 장편 기다린다

'한국 소설, 장편으로 진화하라'는 제목의 칼럼을 쓴 것이 2007년 1월1일치였다. 그 얼마 뒤 평론가 남진우가 에 비슷한 취지의 칼럼을 실었고, 그해 여름호는 장편소설 대망론을 특집으로 다루기도 했다.

그로부터 만 5년. 문학담당 기자의 실감으로 보건대 확실히 장편소설이 많아졌다. 5년 전 칼럼을 쓸 당시만 해도 일주일 단위 기사로 다룰 만한 장편이 한 편이라도 있으면 반갑고, 없을 때가 더 많았다. 그러나 올해의 경우 이름 있는 작가들의 장편이 한 주에도 몇 편씩 쏟아져서 즐거운 비명을 질러야 했다.

그런데 여기서 '즐거운 비명'이란 다분히 의례적인 수사일 뿐, 그 비명의 내용과 취지가 반드시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다. 말 그대로의 비명도 자주 내질러야 했다는 뜻이다. 양은 많아졌는데 질적인 도약은 이루지 못했다는 판단에서다. 작가들이 장편을 완성하느라 들인 오랜 시간과 고된 공력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로되, 묵직한 주제의식이나 참신한 형식적 시도로 독자의 눈을 끌 만한 작품은 그리 많지 않았다. 시대의 큰 그림을 그리고 사유의 깊이를 보여주는 문제적 장편을 우리는 기다리고 있다.

물론 정유정의 과 김애란의 처럼 이야기의 힘으로 독자에게 다가간 작품들이 없지 않았다. 장편의 핵심이 이야기인 만큼 두 소설의 선전은 반갑고 소중한 것이라 해야 할 것이다. 반면, 공선옥의 이나 한창훈의 , 최인석의 처럼 이야기와 메시지가 조화롭게 결합된 소설들이 기대만큼 읽히지 않은 것은 아쉬웠다.

최제훈의 과 조현의 처럼 새로운 발상과 어법을 시도한 소설집들, 그리고 역시 독자적인 형식 실험을 선보인 전석순의 장편 같은 젊은 소설들은 우리 소설의 미래에 기대를 갖게 했다. 그런가 하면 김경욱 소설집 와 편혜영 소설집 , 윤성희 소설집 은 어느덧 우리 문단의 중심을 이루게 된 이 세 작가의 안정된 기량을 확인시켜 주어 든든했다.

오랫동안 역사장편소설로 '외유'했던 중진 작가 최인호가 전작 장편 로 돌아온 것은 반가웠다. 자신의 초기 대표 단편 을 장편으로 '업그레이드'하겠다는 의도가 충분히 산 것 같지는 않지만, 둘로 분열되었던 주인공 케이(K)가 실존의 고투를 겪으며 하나로 재통합되는 장면에서는 작가 자신의 모습이 겹쳐 보여 가슴 뭉클했다.

용산참사 이후 문학과 정치에 관한 담론이 문예지 지면을 통해 활발히 전개되었고, 문인들은 한진중공업 희망버스와 4대강, 두리반 철거 등의 현안에 적극 참여하는 한편 그 과정을 시와 소설로 형상화했다. 그런 가운데 한국작가회의 소속 문인 90여명이 26일부터 내년 1월20일까지의 일정으로 1번 국도를 따라 임진각에서 제주 강정마을까지 '글발글발 평화 릴레이' 걷기 행동을 펼치기로 했다는 소식이 반갑다. 강정마을에 건설중인 해군기지의 반평화·반환경적 속성을 고발하고 건설을 백지화함으로써 주민의 생존권을 지키겠다는 취지에서다. 현기영, 도종환, 노경실, 안도현, 공지영, 김소연, 김연수, 문태준, 전성태 등 90여명의 작가들이 이미 참가하기로 확정되었다. 해가 바뀌어도 싸움은 계속된다. 한국 문학의 전진 역시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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