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25

[강천석 칼럼] '김일성 以後'의 불안, '김정일 以後'의 희망

주문한 식사가 채 나오기도 전이었다. 그때 휴대폰 벨이 울렸다. "어… 어 …어…" 하는 외마디가 몇 번 이어지더니 상대가 "김일성이 죽었대"라는 한마디를 토했다. 더 물을 것, 더 들을 것이 없었다. 남북 정상회담의 우리 쪽 준비를 두드려보려는 만남이었으니 말이다. 기사(記事) 마감은 여섯 시간도 더 남아 있었다. 그런데 뭐가 다급하다고 걷다 뛰다, 뛰다 걷다 하며 회사로 내달았을까. 돌이켜 보면, 등을 떠민 건 불안이었다. 두려움을 빼다박은 불안이었다. 북한 주민을 50년 동안 짐승 우리에 가둬온 세계 최장기 독재자, 6·25를 일으켜 수백만 동족을 살상한 전쟁 주모자, '김일성교(敎)'라는 유사 종교의 창시자가 사라졌다는데 뭐가 불안하고 두려웠던 것일까. 김일성 사망이 발표된 1994년 7월 9일 하루는 그런 불안과 두려움에 쫓기며 흘러갔다.

'공포의 대왕(大王)'의 아들이 아비와 똑같은 증세로 사망했다는 뉴스를 접한 것도 점심 무렵이었다. 그러나 17년 전과는 달랐다. 점심 메뉴를 뚝딱 해치울 수 있는 칼국수로 바꿨을 따름이다. 불안하지 않았다. 두렵지도 않았다. 그 대신 '이 변화의 계기가 희망으로 커갈 수도 있겠거니'라는 느낌이 번져 왔다. 탈북(脫北)한 전 북한 외교관 고영환씨는 1987~88년 김정일 옆 자리에서 몇 시간 동안 그가 뿜어내던 공포에 휘감겼던 기억을 이렇게 되살렸다. "인간이 어떻게 다른 인간을 이토록 두려움에 떨게 만들 수 있는가."

김정일은 후계자 자리에 오르기까지, 또 아비의 자리를 물려받고서 인구 2400만명 나라의 권력 무대와 인민의 생활 터전을 피범벅으로 만들었다. 어제의 최측근을 다음날 아침 출근길에 붙잡아 총살하는 냉혹함은 아비보다 급수(級數)가 위면 위였지 아래가 아니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의 돌연한 퇴장에서 아비의 퇴장 때처럼 정체 모를 불안과 두려움의 그림자에 쫓기기는커녕 안도와 희망을 만지게 되는 것일까.

그 이유는 김정일의 죽음이 갑작스럽다 해도 오래전부터 '예고(豫告)된 돌연(突然)'이란 데서 먼저 찾아야 할 듯하다. 김정일이 2008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그의 여명이 길면 5년, 짧으면 3년이란 건 상식이 됐다. 김정일 사망은 우리의 허(虛)를 찌르는 심리적 기습은 못 됐다.

그러나 보다 근원적인 이유는 아비와 아들이 자아내는 공포의 종류가 달랐다는 데 있다. 김일성이 사망하기까지 우리가 그에 관해 아는 것이라곤 부풀려진 혁명 신화와 북한 매체(媒體)들이 전해주는 판에 박은 호탕한 웃음소리뿐이었다. 자진 월북자를 제외하곤 김일성을 직접 장시간 만나본 대한민국 사람은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에 불과했다. 이 무지(無知)가 공포를 증폭(增幅)시켰다.

김정일은 아비와 다르다. 대한민국의 정·재계 인사 수백명이 김정일과 코를 맞대다시피 이야기를 나눴고, 등 뒤로 감춘 피칠한 손은 보지 못했다 해도 수천만명 대한민국 국민이 수백 시간 동안 TV 생중계를 통해 거리낌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그의 모습을 지켜봤다. 그래도 김정일이란 인간을 아주 모르는 건 아니라는 이 느낌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두려움의 가장 깊은 근원이라고 불렀던 '뭐라 이름짓기 어렵고(nameless)' '딱히 까닭을 대기 힘든(unreasoning)' 공포감을 어느 정도 경감(輕減)시킨 게 사실이다.

이 시각에도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일 이후'에 관해 수많은 시나리오를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들의 신용등급은 이미 30년 전에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예측의 정확성 여부로 일자리를 얻고 잃는다면 북한 전문가의 상당수는 벌써 오래전 실직자(失職者)가 됐을지 모른다. 지금은 예측할 수 없는 사태를 예측한다며 시간과 노력을 낭비할 때가 아니다. 그보다는 어떤 예측하지 못했던 사태가 닥치더라도 냉철하게 대처할 우리의 자세를 가다듬는 게 우선이다.

우리 대북 정책 목표는 북한이 핵무기를 손에서 놓도록 하는 것이고, 북한 동포가 반인륜적(反人倫的) 통치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숨을 쉴 수 있게 돕는 것이다. 통일도, 중국의 영향력 팽창 억제도 그다음의 일이다. 북한의 손을 비틀어야 핵을 놓고, 손아귀를 풀게 해야 북한 동포가 가쁜 숨이라도 돌릴 수 있다. 그러려면 미닫이를 밀치고 안으로 들어가 북한의 팔을 붙들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남과 북을 갈라 놓은 우리 쪽 미닫이에는 손잡이조차 없다. 손잡이 없는 미닫이는 힘만 쓴다고 밀쳐지지 않는다. 양독(兩獨) 분단 시대를 통일시대로 잇는 가교(架橋) 구실을 했다는 슈미트 서독 총리는 '강대국 틈바구니에 갇힌 독일엔 오로지 실현 가능한 정책만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우리가 오늘 단물이 나오도록 씹고 또 씹어야 할 것은 '고정관념의 구름 위에서 땅으로 내려온 현실적 정책만이 한반도 문제에 손잡이를 달 수 있다'는 명제(命題) 하나다.

/강천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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