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준비생 김모(29)씨는 지난달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급하게 돈을 구해야 했다. 은행권 대출은 꿈도 꿀 수 없고, 대부업체를 찾자니 높은 이자에 감당 못할 빚을 지게 될까 두려움이 앞섰다. 이렇다 할 담보도 없는 그의 '재산목록 1호'는 100만원을 호가하는 DSLR(Digital Single-Lens Reflex) 카메라와 렌즈. 김씨는 인터넷을 통해 카메라를 팔 방법을 찾다가 우연히 전자제품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전당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카메라를 이 전당포에 맡기고 50여만원을 손에 쥐었다. 전당포 하면 흔히 쇠창살 너머로 매서운 눈빛의 주인이 귀금속이나 고급시계를 감정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전당포관리자는 고용노동부 '한국직업사전'에 사라져가는 직업으로 분류돼 있다. 하지만 서울 용산전자상가에서 전당포는 새롭게 뜨는 사업이다. 노트북·DSLR카메라·아이패드·스마트폰 등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는 전자제품을 담보로 받고 돈을 빌려주는 'IT(정보통신기술)전당포'가 2010년을 전후해 문을 열기 시작했다. 현재 전자상가에만 10여개 업체가 성업 중이다.
시계·귀금속이 정밀감정을 해 가격을 정하는 것과는 달리 전자제품은 모델명과 구입시기, 정품 여부와 포장 상태 등만 파악하면 쉽게 가격 산출을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IT전당포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온라인이나 전화로도 대출상담을 할 수 있다. 대출금액은 보통 담보물 시세의 절반 수준이다. 80만원 정도의 넷북(소형 노트북)을 저당 잡히면 40여만원의 대출금을 받을 수 있는 셈이다. IT전당포 대부분은 연 36%의 이자를 받고, 상환기간까지 돈을 갚지 못한 경우 맡긴 전자제품을 처분한다.
신제품이 쏟아지는 전자제품의 경우 물건의 가치가 빨리 떨어지기 때문에 대출기간은 보통 1~2달 정도다. 일부 아이티전당포는 중고장터와 연계하거나 직접 유질물(流質物)을 판매한다. IT전당포업계 관계자는 "신품의 경우 10~20% 정도만 싸게 물건을 내놓아도 쉽게 팔리고, 중고품이라고 해도 저렴한 물건을 찾는 외국인 노동자 등이 사간다"고 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신종 전당포가 인기를 끄는 이유를 청년실업 등 경제 불황에서 찾았다. 노트북·스마트폰·카메라를 구입했다가 급전이 필요해 처분을 하게 된다는 것. 아이티전당포가 불황에 신용등급이 낮은 젊은층이 급전을 구하는 창구가 된 셈이다. A IT전당포의 대표 J씨는 "돈을 빌리는 고객 대부분이 20~30대 젊은층"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전당포에서 돈을 빌려가는 사람만 하루에도 20명이 넘는다고 했다.
아이티전당포의 경우 대부분 100만원 이하의 소액대출이고 대출기간도 짧아 대출자들이 쉽게 갚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대학생 박모(21)씨도 아이티전당포에 최근 구매한 아이패드를 맡겼다. 그는 "오랫동안 돈을 모아 어렵게 산 물건을 헐값에 팔기 아까워 전당포에 맡겼지만, 결국 기한 내에 돈을 갚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올해 IT전당포를 열기 위해 전당포영업교육을 받았던 M씨는 "대출을 받는 사람들은 소액이라 기한 내에 쉽게 돈을 갚을 수 있을 것이라 믿지만, 실제로는 기한 내에 갚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했다. 그는 "아이티전당포업자는 전자제품 시세의 절반 정도로 돈을 빌려줬기 때문에 이자를 받는 것보다 유질물을 팔아 얻는 이익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M씨는 "최근 전자상가의 상인들 중 IT전당포에 관심을 가지고 영업교육을 받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IT전당포가 인기를 끌면서 대부업 등록도 하지 않은 불법 전당포도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대부분의 IT전당포가 온라인을 통해서도 대출상담을 한다는 점을 이용해 인터넷을 통해 음성적으로 영업을 한다. 인터넷을 통해 IT전당포를 찾는 사람들 입장에선 불법 전당포를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은 법정이율을 초과해 이자를 받거나, 고객이 맡긴 물건을 빼돌려 잠적하기도 한다. 이동통신사 와이브로 상품 가입시 노트북을 할부로 판매하는데, 이 노트북을 팔아 현금으로 바꾸는 속칭 '와이브로깡' 등을 조장하는 불법 전당포도 있다. A전당포 대표 J씨는 "일부 불법 전당포가 마치 정식 허가를 받은 업체인 것처럼 홈페이지를 개설해 영업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들은 물건만 챙겨 사라지거나, 법정이율을 초과해 이자를 받아 고객에게 피해를 입히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그는 "매장을 갖추지 않고 택배로 물건을 보내라고 하거나 직접 와서 물건을 받아가겠다고 하는 IT전당포는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충령 기자 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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