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26

천안함·연평도 뒤에 김정은 그림자… 정부의 딜레마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을 계기로 정부가 천안함·연평도 도발에 대해 북한에 '선(先)사과'를 요구했던 종전 입장에서 전술적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23일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해 북한의 사과를 요구하는 기본 입장은 변화가 없지만 지금 당장 북한에 대해 사과하라고 압박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일단 북한에 기회를 주자는 게 정부 입장"이란 것이다. 다른 정부 고위 관계자도 "우리에게는 비핵화라는 더 큰 원칙이 중요하다"고 했다.

"김정일 사망은 딜레마 해결 기회"

김정일 사망 전까지 정부는 북한의 '사과'가 먼저 있어야 남북 관계 개선이 가능하다는 원칙을 여러 차례 공언했다. 그러나 북한이 이런 요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 정부의 고민이었다. 이산가족 상봉, 인도적 대북 지원 등을 통해 남북 관계 개선의 '우회로'를 찾아왔지만 천안함·연평도 도발이란 산을 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정부가 이런 딜레마에 빠져 있을 때 천안함·연평도 도발의 책임자이자, 사과 주체인 김정일이 급사(急死)했다. 정부는 이 상황을 '천안함·연평도 딜레마'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천안함·연평도 사건은 김 위원장에게 궁극적인 책임이 있다"며 북한과 '새판 짜기'를 시도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는 천안함·연평도 도발에 대한 선(先)사과 요구를 김정일 사망을 계기로 잠시 접어두자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김정은 후계체제 과정서 터져"

하지만 천안함·연평도 도발은 김정은 후계 구축 과정에서 터져 나온 사건이다. 이 때문에 도발 책임을 사망한 김정일에게만 떠넘길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정은도 결코 천안함·연평도 도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이조원 중앙대 교수)는 지적도 적지 않다.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작년 3월 천안함 사건 직후 북한 내부에선 "청년 대장이 '한 건' 했다"는 식의 소문이 떠돌았다. 북한 당국은 공식적으로는 천안함과 무관하다고 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김정은 업적으로 슬쩍 끼워 넣으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작년 7월 연례 보고서에서 "북한 후계자로 떠오르는 김정은이 천안함 공격의 배후일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작년 11월 연평도 포격 도발도 마찬가지다. 정보 소식통은 "당시 북한은 후계자로 공식 등장한 김정은이 '포술(砲術·포격 기술)'의 천재인 것처럼 내부 선전했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연평도 도발 두 달 전인 작년 9월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오르며 '세자' 책봉식을 치렀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작년 12월 "북한이 김정은 명의의 지시문을 통해 11월 초에 이미 포격 준비 명령을 하달했다"며 "강력한 지도자라는 이미지 확립을 위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도발 책임자가 김정은의 핵심 실세

천안함·연평도 도발을 집행한 군부 강경파가 김정은 시대 '신(新)군부'의 핵심으로 떠오른 것도 문제다. 북한군을 지휘하는 리영호 총참모장은 작년 9월 당 대표자회 때 김정은과 함께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됐다. 천안함 공격을 실행한 김영철 정찰총국장도 작년 9월 중앙군사위원에 이름을 올리며 김정은 최측근으로 자리 잡았다. 연평도에 포탄 공격을 했던 김격식 북한군 4군단장은 최근 평양으로 돌아가 부참모장에 기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대 김성한 교수는 "정부가 천안함·연평도 사건 책임을 김정일 위원장에게만 돌리면 이 문제를 덮으려 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안보 부서 관계자는 "일의 순서와 강약에 일부 변화는 있더라도 반드시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한 북의 책임은 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용현 기자 ahnyh@chosun.com
최현묵 기자 seanc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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