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토요일 낮, 왜 국제부 기자들이 편집국에 남았는지 잘 기억은 안 난다. 중대방송 예고에 내근부서가 챙겨보라는 지시가 있었던 것 같긴 하다. 정확히 내가 첫 소식을 접한 게 자막이었는지 아나운서 멘트였는지도 가물댄다.
또렷한 건 소리뿐이다. 삐삐삐 긴급기사를 알리는 경고음과 지익지익 인쇄 소리. 등 4대 통신사의 프린터는 서울발·도쿄발로 '김일성 주석 사망' 소식을 쉬지 않고 토해냈다. 두루마리 용지에 한줄씩 인쇄되는 통신 기사들을 찢어보던 시절이었다. 국제부에 배치받은 지 몇달 안 되는 막내기자였던 나는 그날 선배들과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호외'를 만들었다. 1994년 7월10일치 15면엔 서울역에서 그 호외를 읽던 시민들의 사진이 실려 있다.
저 월요일 낮, 이번에도 국제부 기자들은 편집국에 남아 있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중대방송 내용만 확인하고 나가자던 참이었다. '김정일 위원장 사망.' 소리를 내지 않는 외신들의 전용사이트엔 긴급을 알리는 빨간 글씨들만 떴다. "호외 찍어야지"부터 외치는 나에게 주변에선 "뭔 소리냐"는 반응만 돌아왔다. 국제부 기자들은 이날 낮 온라인용 기사부터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상은 바뀌었다.
17년 전 신문 1면의 '김일성 주석 사망' 기사 둘째 문장은 "에 따르면…"으로 시작한다. 북한 매체 청취를 독점하는 안기부 계열의 내외통신이 제공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북한발 소식 통로이던 때였다. 북한 아나운서가 흐느끼며 발표하는 영상은 그날 오후 늦게야 안기부가 제공하면서 접할 수 있었다. 이번엔 리춘히 아나운서가 검은 상복을 입고 12시에 나온 순간, 전세계가 무슨 발표인지 알 수 있었다. 북한 방송 청취를 막기 위해 단파라디오 사용이 금지됐던 당시에 비하면, 지금은 마음만 먹는다면 등을 일반인도 볼 수 있는 방법이 널린 인터넷 시대다.
바뀐 것은 도구뿐 아니다. 김 주석 사망 소식 바로 전날인 94년 7월9일치 신문 1면엔 '제네바에서 역사적인 북-미 회담 시작'과 함께 '예멘 마침내 무력으로 남북통일'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남북예멘 통일 4년 만에 내전을 벌여 당시 남예멘을 총칼로 굴복시켰던 알리 압둘라 살레 북예멘 대통령은 올해 드디어 아랍의 봄에서 대규모 저항에 맞닥뜨려 물러났다.
도돌이표는 한반도뿐인가. '중국은 하루 전에 사망 통보 받았던 듯' '조문 파동' '미·중·일은 김정일 체제 인정' 등 17년 전 기사는 사실 김일성과 김정일, 김정은 같은 이름만 바꿔놓으면 지금의 기사와 헷갈릴 정도다.
조문을 제한하는 남한에 "반인륜적 행위" 운운하는 북한도 아쉽지만, 남북한이 한반도 정세를 주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조문 제한으로 날려버리고 있는 우리 정부의 태도엔 전략적 관점이 결여돼 있다. 극단적인 폐쇄사회라곤 하나, 휴대전화가 100만대 보급되고 남한 드라마의 디브이디가 유통되는 북한의 지금 상황은 분명 17년 전과 다르다. 변화는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지난 24일 270㎞를 걸으며 살레 대통령의 사면을 반대하던 예멘인 수만명의 시위는 보안군의 발포로 '죽음의 행진'이 됐다. 아랍세계가 혁명 뒤 겪고 있는 최근의 혼란을 같은 민족인 북한이 겪지 않길 바란다면, 지금 필요한 첫걸음은 북한 내부의 변화를 침소봉대하는 호들갑을 자제하고, 통크고 지긋하게 북한에 손을 내미는 것이다. 94년 김 주석 죽음에 조의를 표명한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을 공격하던 밥 돌 공화당 원내총무를 비판한 사설 제목은 그래서 여전히 곱씹을 만하다. "상원의원, 그게 외교라는 거요." 김영희 국제부장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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