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27

남한사람 처음 만난 김정은… 北의 2가지 계산은 '햇볕'과 '교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은 26일 방북한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일행을 10분도 채 만나지 않았다. 하지만 북한은 이를 통해 남한 사회에 크게 보면 두 가지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분석된다.

대북지원해 달라는 메시지

우리측 인사가 김정은을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여사는 6·15 남북공동선언을 이끌어낸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영부인 자격으로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다. 현 회장은 김정일 위원장과 세 차례 만나 금강산관광 등 대북사업을 논의했다. 두 사람은 정치·경제 분야에서 남북한 협력을 상징하는 대표적 인물인 셈이다. 김정은은 두 사람에게 예우를 해줌으로써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을 위해 '쌀(포용정책)'과 '달러(금강산 관광 재개)'를 달라는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보낸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김성한 고려대 교수는 "김정은이 남북관계를 햇볕정책으로 되돌려 놓기를 바란다는 희망 섞인 메시지를 보냈다고 할 수 있다"며 "우리 정부의 대북 정책이 변화하기를 희망한 것"이라고 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김정일 위원장의 유훈 사업으로서 6·15공동선언과 남북협력사업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간접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남한 사회 교란하겠다는 뜻도

북한의 대남선전용 웹사이트인 '우리민족끼리'는 이날도 '도덕적 한계와 진정성을 가늠하는 척도'라는 제목의 글에서 "남조선 당국은 우리의 대(大)국상에 대한 태도가 자기들의 인륜적 한계와 북남관계 개선에 대한 진정성을 최종적으로 검토하는 척도가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했다.

성신여대 김흥규 교수는 "김정은은 남측의 정치계와 경제계에서 명망 있는 두 사람을 아버지의 빈소에서 만남으로써 자신의 정통성을 높일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며 "이날 만남은 남·남 갈등을 야기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가 김정일에 대한 조문을 두 사람으로 한정한 상황에서 북한이 남한 내에서 조문을 둘러싼 갈등이 증폭되기를 바라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김정은이 이들과의 만남을 북한 내에서 자신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로 활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김정은 체제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데 남한의 조문단을 만나는 것은 매우 효과가 있다"며 "김정은이 어리고 경험이 짧다는 주변의 선입견을 불식시키고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대내외에 과시할 기회였다"고 말했다.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이 이들에게 "깊은 사의(謝意)를 표하였다"고 전했을 뿐, 김정은의 구체적인 발언을 보도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김정은이 짧은 시간 내에 우리 정부를 향한 모종의 메시지를 언급했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이희호 "남북관계 개선 도움되길"

북측은 이 여사와 현 회장 일행의 숙소를 영빈관인 백화원초대소에 마련했다고 통일부는 전했다. 2002년 9월에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당시 일본 총리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이곳에서 정상회담을 갖기도 했다. 김대중평화센터 최경환 공보실장은 "북측이 이 여사 일행을 백화원초대소에 모신 것은 최고의 예우를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이 여사와 현 회장 일행은 개성에서 리종혁(75) 아시아태평양평화위 부위원장의 영접을 받았다. 통일전선부 부부장이기도 한 리종혁은 월북 작가 리기영(1984년 사망)의 아들로 김정일과는 김일성종합대학 동기 동창이다.

이희호 여사는 이날 오전 8시 홍업·홍걸씨, 큰며느리, 장손 등 일가족 5명과 주치의와 경호원 등 수행원 8명을 대동하고 도라산 출입사무소에 도착했다. 검은색 외투에 스카프를 두른 채 차에서 내린 이 여사는 양쪽에서 부축을 받으며 계단을 올랐다. 귀빈실에서 현 회장과 함께 출·입경 수속 절차를 설명받은 이 여사는 8시 17분 포토라인 앞에 섰다. 김대중평화센터 윤철구 사무총장은 "2009년 8월 남편이 서거했을 때 김 위원장이 조문 특사단을 서울에 보내주신 만큼 조문을 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 저희 방북이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는 이 여사의 방북 소감문을 대독했다.

이용수 기자 hejsue@chosun.com
조백건 기자 loogun@chosun.com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