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7월 김일성 주석 장례를 치르던 김정일은 침통한 표정만 지었을 뿐 눈물은 자주 흘리지 않았다. 그러나 28일 김정은은 울면서 김정일의 운구차 옆을 걸어갔다.
1994년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 당시 52세의 김정일은 이미 북한이란 신정(神政)체제에선 신(神)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1974년 후계자에 내정된 이후 김일성과 20년째 북한을 공동 통치하던 김정일의 권위에 도전할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20대 후반인 김정은은 "2년 전까지만 해도 북한 주민들에게 거의 존재감이 없던 애송이"(한 고위 탈북자)다.
◇중대 결정 내릴 카리스마 부재
김정일 급사(急死) 이후 지난 열흘간 김정은은 일종의 비상계엄 매뉴얼에 따라 움직이기만 하면 됐다. 주변에서 모든 절차를 챙겨줬기에 별문제 없이 장례식을 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다르다. 김일성·김정일 시대 북한을 움직인 건 수령(首領)의 권위였고, 헌법보다 수령의 교시(지시)가 앞섰다. 당과 군은 수령의 입만 쳐다봤다. 수령이 모든 중요 결정을 내렸고 그 결과가 나빠도 그 누구도 감히 책임을 물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2년여 만에 속성으로 후계자에 오른 김정은에게 이런 절대적 권위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의 결정에 대해 원로와 군부 엘리트 등이 의심을 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고모부 장성택 등이 집단으로 김정은을 보좌하겠지만 "한계가 있을 것"(정보 당국자)이란 분석이다.
현재 북한은 김정은에게 '카리스마'를 만들어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위대한 영도자' '21세기 태양' 등 온갖 수식어를 갖다 붙이고 있다. 최고사령관·총비서 등의 직위도 사실상 부여했다. 이날 이을설 원수 등 북한의 대표적 원로들이 노동신문 지면을 통해 김정은에게 충성을 맹세한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외교 분야 미숙은 더 심각
더 큰 문제는 대외 관계에서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김정일은 고비마다 '벼랑 끝 전술(brinkmanship)'을 쓰며 미국과 중국을 괴롭혔다. 대남 전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김정은은 외교 경험이 전무하다. 외교 소식통은 "벼랑 끝 전술도 벼랑 끝이 어딘 줄 알아야 써먹을 수 있다"며 "김정은은 벼랑의 시작이 어딘지도 잘 모를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북한의 명줄을 쥐고 있는 대중(對中) 외교에서 김정일의 공백은 커 보인다. 중국의 대북 소식통은 "중국 지도부는 그동안 김정일의 '배 째라'식 전술에 애를 먹었다"고 했다. 반면 김정은이 자기보다 30~40년 연상인 중국 지도자를 상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경제난 타개도 쉽지 않아
북한 내부 소식통은 "주민들은 내년 4월 15일(김일성 출생 100주년) 당에서 뭘 줄지 기대가 크다"며 "특별 배급이 형편없을 경우 집단 불만이 터져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몇 년 전부터 '2012년 강성대국의 문을 활짝 열겠다'는 환상으로 주민들을 달래고 있다. 김정일이 사망 직전 우라늄 시설 가동 중단과 미국의 영양 지원 24만t을 맞바꾸려 한 것도 그만큼 식량 확보가 다급했다는 증거로 보인다. 대북 소식통은 "'절대 권력'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주민 불만은 찻잔 속의 바람으로 끝나겠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김정은은 내년 잔치를 위해 쌀부터 구하러 다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용현 기자 ahny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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