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한 해도 대중문화계는 뜨거웠다.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으며 스타로 우뚝 선 인물이 있는 반면 불미스러운 사건·사고의 주인공이 된 이들도 있다. 본지 대중문화부가 좋은 일·나쁜 일 두루 아울러 14개의 가상 '패러디상'을 만들어 방송·가요·영화계의 화제가 된 인물(혹은 작품)을 선정했다. 수상자 여러분, 레드카펫·트로피·상금은 없음을 양해해주시길. ◇최우수 연기상: 서태지·이지아
대한민국 연예사(史)에 이들처럼 '발칙하고 경이로운' 연기력을 선보인 이가 또 있을까. 무려 14년간 결혼·이혼을 감쪽같이 속인 서태지·이지아가 단연 '최우수연기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1990년대 '문화대통령'이 평범한 10대 소녀팬을 만나 결국 결혼에 골인했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는, 결국 진흙탕 같은 이혼 소송이 알려지면서 '블랙 코미디'로 끝났다.
◇납세의무 홍보상: 강호동
'예능 천하장사'에게 '국민의 의무를 위반했다'는 분노는 밭다리로도 들배지기로도 메칠 수 없는 상대였다. 지난 9월 세금 수억여원을 납부하지 않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자 강호동은 사과 기자회견을 열고 잠정 은퇴했다. 역설적으로 납세 의무에 대한 국민 정서가 얼마나 민감한지 알려준 사건.
◇작은 고추가 맵다상: 김병만
키 158.7㎝. 다들 그를 '작다'고 하지만 김병만은 올해 누구보다 크게 활약했다. 아무 맛도 못 느끼는 '설태 선생', 한 자세로만 살아온 '죽돌 선생' 등. KBS '개그콘서트' 달인에선 260여개 에피소드를 선보이며 시청자의 배꼽을 훔쳤고, 다른 방송사의 예능 프로에서도 종횡무진 활약했다. '노력'으로 사람을 웃기고 '연습'으로 사람을 울리는 독보적인 개그 장르 창시자.
◇나 홀로 연기상: '7광구'의 괴물
100억여원을 들여 만든 국내 최초 3D블록버스터 '7광구'. 정작 관객 반응은 싸늘했다. 안성기, 하지원, 오지호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 연기가 워낙 어색해 웃음도 긴장감도 주지 못했던 것. 112분 러닝타임 동안 홀로 영화에 녹아든 것은 100% CG로 만든 '괴물'뿐이었다. 촉수를 휘두르고 불에 타고 물에 빠지며 고군분투 영화를 이끌어간 괴물을 '나홀로 연기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비행(飛行)소녀상: 한예슬
톱탤런트 한예슬은 8월 KBS 드라마 '스파이 명월'의 촬영을 이틀 연속 펑크낸 뒤 돌연 LA로 떠났다. 방송사와 제작사측에서 '소송' 얘기까지 나온 뒤한예슬은 LA 도착 24시간도 안 돼 서울로 돌아와 방송사에 사과하고 드라마에 복귀했다. 한예슬은 "열악한 드라마 제작 환경" 탓을 했지만 여론은 그의 무책임하고 경솔한 행동을 문제 삼았다.
◇노익장상: 그대를 사랑합니다 주연배우들
'그대를 사랑합니다'('그대사')의 주연 이순재(76) 윤소정(67) 송재호(72) 김수미(60) 등과 최근 자서전 '청춘은 맨발이다'를 낸 신성일(74) 사이의 경합이 치열했다. '그대사'는 청춘 톱스타 한 명 없이 163만명 관객을 동원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신성일은 과거 불륜 상대의 낙태 사실까지 밝혀 화제의 중심에 섰다. 결국 '아름다운 노년'을 보여준 '그대사' 출연진에게 상이 돌아가게 됐다.
◇'이 빌어먹을' 연기력상: 한석규
1990년대 인기 정점에 서 있었던 배우. '이중간첩' '주홍글씨' 등 영화 흥행 실패 이후 긴 슬럼프를 겪었지만 SBS '뿌리 깊은 나무'에서 수시로 "빌어먹을" "지랄"을 외치는, 날카롭고 불안한 '인간 세종대왕'을 완벽하게 그려내 호평받았다.
◇신(新)경영인상: 심형래 감독
정부가 '신(新)지식인'으로 선정했던 심형래 감독의 독창적인(?) 경영방식이 드러났다. 자신의 영화사 직원 43명의 임금·퇴직금을 체불했는가 하면 회삿돈을 횡령해 도박을 하고 성(性)로비를 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신지식인보다 신경영인감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만하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상: 임재범·박정현·김범수
가수 임재범·박정현·김범수는 올해 MBC '나는 가수다'를 만나면서 뒤늦게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이 됐다. 오랜 기간 은둔자로 지냈던 임재범은 폭발적인 열창으로, 박정현은 빼어난 기교와 귀여운 무대매너로, '외모'가 문제였다는 김범수는 그만의 가창력으로 '새옹지마(塞翁之馬)'의 산 예가 됐다.
◇타인의 취향상: 장근석
'아시아 프린스' 장근석이 못 이룬 게 있다. 다름 아닌 '코리아 프린스'! 한류의 대세가 된 뒤 주연한 '너는 펫'이 관객 54만명을 모은 채 싱겁게 막을 내렸다. '한국 누님'들의 남다른 취향 탓일까? '근짱(일본에서의 애칭)'은 아직은 한국에선 통하지 않는, '타인의 취향'인 모양이다.
◇말폭탄상: 최효종
입만 뻥긋해도 '빵빵' 터졌던 남자. KBS '개그콘서트―애매한 것 정해주는 남자'에서 "결혼 축의금 적정금액은 봄·가을 결혼성수기 땐 3만원, 비수기 땐 5만원"과 같은 어록으로 주목받던 그는 '사마귀 유치원'에선 한 발 더 나간다. "국회의원이 되려면 집권당 수뇌부와 친해져 공천을 받고 여당 텃밭에서 출마하면 돼요." 이 때문에 무소속 강용석 의원에게 '명예훼손죄'로 고소당하기까지 했다.
◇명의(名醫)상: 임성한
임성한 작가는 SBS '신기생뎐'을 통해 '신개념 서스펜스 메디컬 드라마'를 선보였다. 극적 맥락과 관계없이 아수라(임혁)가 갑자기 귀신에 씌어 눈에서 레이저를 쏠 때 시청자들은 '원래 SF였느냐'고 갸우뚱했고, 아수라가 투시력으로 가사 도우미 몸에서 간암을 발견하고 '당장 수술하라'고 외칠 땐 '의학 드라마까지?'라고 했다.
◇외강내유(外强內柔)상: '무산일기'
박정범 감독의 '무산일기'는 국내에서 관객 1만명을 겨우 동원했지만 해외영화제만 갔다 하면 상을 받아왔다. 마라케시국제영화제 대상, 로테르담국제영화제 타이거상 등 상 받은 영화제만 16개나 된다. 국내에선 다소 미약했지만 해외에서 창대한 성과를 거뒀으니 '외강내유상'을 준다.
◇외국어영역 만점상: '최종병기 활'의 류승룡
745만명 관객을 동원한 올해 한국 영화 중 최고 흥행작 '최종병기 활'. 청나라 장군 역의 배우 류승룡에게 어려웠던 것은 말 타는 일도 산 타는 일도 아닌 만주어(滿洲語) 대사였다. "시니 기순 아달리 주군 어무 이누(너의 말대로 길은 한 곳이다)" 등의 대사를 하기 위해 만주어 전문가에게 과외까지 받았다. 청룡영화제는 그에게 남우조연상을 안겼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