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이명박 대통령은 "통일은 도둑처럼 찾아올 것"이라고 했다. 지난 19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도 '도둑처럼' 날아들었다. '포스트 김정일 북한'을 두고 한반도 안팎에서 가설과 전망들이 쏟아진다. 마침 국내 중도와 진보 계열의 80년대 학번 정치학자 둘이 나란히 책을 냈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통일을 겨냥한 정치제도 설계를,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대북 정책을 문제 삼지만 관통하는 질문은 같다. "우리는 별안간 닥칠 통일에 대비돼 있는가?"
대북포용정책의 진화를 위하여
김근식 지음|한울아카데미|328쪽|2만7000원
독일 통일의 과정은 돌이켜보면 거대한 쓰나미였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통독이 선포되기까지 채 1년이 안 걸렸다. 장벽 붕괴 직후에만 해도 동서독 정부는 통일 문제에 신중했었다. 크렌츠 동독 공산당 서기장은 '사회주의 유지'를 다짐했고, 서독 콜 총리도 통일은 언급을 자제했다. 11월 28일에 나온 통일 방안도 '협력 강화→국가연합→연방국가' 수순에 따른 점진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거리는 딴판이었다. 라이프치히를 비롯한 동독 곳곳이 통일을 재촉하는 목소리로 뒤덮였다. 시위대의 구호는 '동독 민주화'를 뜻하던 '우리는 국민(das Volk)'에서, '통일'을 요구하는 '우리는 한 민족(ein Volk)'으로 급변했다. 이미 동독 민심은 서독 편입 쪽으로 한껏 기울어 있었다. 1990년 3월 18일 동독의 첫 자유선거는 서독 기본법 23조에 따른 동독 5개 주의 편입을 결정지었다.
누구도 예상 못한 급격한 일방적 흡수 통일이었다. 공존의 과도기를 거쳐 통일로 가야 한다는 신중론은 한번 시동이 걸린 통일의 열차 앞에서 여지없이 밀려났다.
비슷한 시기, 아라비아반도에서는 또 다른 분단국인 남북 예멘이 통일의 진통을 겪었다. 1990년 4월 양측이 통일에 합의할 때만 해도 흐름은 순조로웠다. 단일정부 형태로 30개월 과도기를 지낸 후 총선을 거쳐 통일정부를 세운다는 약속이었다. 하지만 과도기는 상호불신에 따른 정쟁으로 얼룩졌다. 총선도 3년이 지나서야 실시됐다. 결과는 영토·인구·경제력에서 월등히 앞선 북예멘의 압승이었지만 남예멘은 승복하지 않았다. 결국 내전 끝에 7월 북예멘의 무력 통일로 일단락됐다. 저자는 비슷했지만 달랐던 두 통일의 궤적을 꼼꼼히 되짚는다. 결론은 냉혹하다. "실제 통일 과정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설계와 구상만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일단 통일과정이 시작되면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과도적 공존은 현실에서 불가능함을 보여준다. (…) 현실의 통일은 쌍방이 대등하게 합의에 의해 통일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힘의 역관계를 반영한 급격한 흡수방식이 본질이다."
한반도도 그럴까. 저자는 "점진적 평화통일이 진행된다 하더라도 결국 체제통합은 일방의 근본적 변화와 타방으로의 흡수라는 방식을 거칠 가능성이 높다"고 쓴다. '똑같이 사는 통일'의 완성 단계는 불가불 한쪽의 체제전환과 이를 통한 흡수통일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결국 북한의 연착륙을 목표로 점진적 평화통일을 추진하되 어느 시점에서 붕괴에 의한 급격한 흡수통일을 준비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경로"라며 "예멘의 참담한 결과를 피하고 독일의 평화적 방식을 따를 수 있으려면 많은 노력과 장치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 독일의 비결은 무엇이었나. 저자는 "독일 통일은 흡수방식이었지만 20여 년에 걸친 교류접촉과 화해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진단한다. "결국 역동적인 통일과정의 정치 동학(political dynamics)에 휩싸이기 전에 남북이 서로 인정하고 이해하는 훈련 과정을 경험하고 축적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저자는 일찍부터 대북 포용정책을 주창해온 진보 학자다. 책의 대부분도 '왜 대북 봉쇄가 아니라 포용 정책이어야 하는가'에 할애된다. 하지만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그간 보수 진영의 전유물로 비친 '흡수 통일'의 가능성을 제기하고 대책을 논한 대목이다. 그것은 보수·진보 모두에게 묵직한 질문으로 떨어진다. 통일이라는 호랑이 등에 우리는 올라탈 준비가 돼 있는가. 통일 이후의 한국 민주주의
강원택 지음|나남|192쪽|1만4000원
6·25가 끝난 직후인 1954년 4월 스위스 제네바 회담장. 남북은 다시 충돌했다. 한반도 통일 방안도 의제 중의 하나였다. 남한은 '남북 인구비례에 따른 선거'를 내세웠고 북한은 '남북의 대등한 대표 비율'을 고집했다. 변영태 외무장관은 "전체 인구 7분의 1을 대표하는 북한의 입법기관과 7분의 6을 대표하는 남한의 입법기관을 같은 비율로 연립하자는 것은 민주주의에 반한다"고 했다. 북한 외상 남일은 미국 예를 들며 맞받았다. "미 상원에서는 주별로 인구 차이가 있지만 각 주가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 남북한도 같은 비율이어야 한다."
남북은 9년 전에도 같은 문제로 싸웠다. 해방 직후 남한은 '유엔 감시 아래 남북 인구비례에 의한 총선거'를 주장했고 북한은 반발했다.
만일 지금 남북이 통일 협상 테이블에 앉는다면? 남과 북의 인구는 2009년 기준으로 각각 약 4875만명과 2406만명이다. 인구 비례로 뽑는다면 남한 의원 수는 북한의 두 배. 남북은 다시 묵은 설전을 벌여야 할 것인가. 저자는 자문한다. "남북이 어느 날 갑자기 합쳐 살게 된다면 어떤 정치제도를 설계해야 원만한 통합을 이뤄낼 수 있을까." 그리고 다짐한다. 이젠 좀 냉정해지자고. "남북 통일은 당위적 차원에서 '원래 상태로의 복귀'가 아니라 60여년간 달리 살아온 이질적 사회의 통합이라는 현실적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저자는 "설사 남한 주도로 통일을 맞더라도, 북한 주민들이 소외감을 갖거나 수적 열세로 인한 피해의식을 갖지 않게 정치체계를 설계해야 한다"고 쓴다.
제시되는 '통일 한국'의 기본 골격은 연방제, 양원제, 내각제이다. 연방제는 북한의 '적화통일 술책'이 아니던가? 하지만 저자는 최근엔 남한 정부의 통일관도 점차 남북연합이나 연방제같이 하위 단위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고 소개한다. 오랜 분단으로 인한 남북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큰 단위에서의 통합을 추구할 수 있어서다. 다만 북한의 고려연방제는 1국가 2체제이지만 저자는 남북 모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기본이어야 한다고 본다. 양원제는 남북에 동등한 정치적 대표성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이다. 하원은 인구 비례로, 상원은 남북 동수로 의원을 선출하는 식이다. 인구에서 열세인 북한이 영원한 소수파로 몰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내각제는 제왕적 대통령보다 이질적인 사회를 포용하는 데 유리한 권력구조로 소개된다. 학계의 후속 논의가 예상되는 대목이다.
저자가 통일과정에서 무엇보다 주목하는 것은 정당이다. "북한이 정당 정치를 겪어보지 못한 상황에서 통일 이후 정치 통합 과정은 남한 정당이 주도할 수밖에 없다"는 것. 정당은 다양한 사회 갈등을 체제 안으로 흡수하고, 경쟁을 통해 안정된 권력을 만들어내는 드라마의 주역이다. 독일 통일만 봐도 동독 주민의 자유 투표로 결정됐지만 서독 정당의 개입이 결정적이었다. 덕분에 동독의 정치는 '서독화'되었고 동서의 정당 정치가 연동될 수 있었다. 통일의 혼란을 겪을 북한 주민들을 보듬고 이들에게 민주적 가치와 제도를 교육하는 것도 남한 정당들 몫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문제는 지금 정당들이 그런 역량과 의지를 갖추고 있느냐는 것. 요즘 정당들은 인터넷에 기반한 장외 정치에도 휘둘린다. 저자는 경고한다. "정당이 지금처럼 지역당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면 통일 후엔 북한 지역당이 생겨나는 등 오히려 더 심각한 갈등에 직면할 수 있다." 제목은 '통일 이후 민주주의'이지만 '통일 이전 민주주의의 현주소'까지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전병근 기자 bkje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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