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만화의 전설'이다. 손오공이 용신을 불러내기 위해 7개의 구슬을 찾아가는 모험을 그린 이 일본 만화는 손오공처럼 마술을 부렸다. 1984년부터 1995년까지 만화잡지에 연재되는 동안 일주일에 653만부까지 팔려나갔다. 단행본으로 나와선 최초로 판매부수 1억권을 돌파했다. 24개국에서 팔린 것을 더하면 2억권이 넘는다. 그 무렵 한국에선 해적판이 난무했다. 어쩌면 대학생 시절 자취방에서 본 것도 그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틀리거나 빠진 글자가 없는 말풍선이 드물었으니….
전설이 다시 깨어날 줄이야! 라는 책으로 유명한 김난도 서울대 교수가 얼마 전 2012년의 소비 트렌드를 읽는 열쇳말로 '드래곤 볼'을 제시했다. 십이간지에 해당하는 동물로 그해의 소비 트렌드를 설명해온 김 교수가 내년 임진년이 용의 해라는 데 착안해 내놓은 말이다. 진정성, 순수함, 주목, 인격화, 세대공감, 마이너, 여백, 자생, 차선책, 위기관리를 뜻하는 영어 단어의 첫 글자를 연결했단다. 설명서에는 "역동의 2012년 누가 흑룡의 여의주를 가질 것인가"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그러고 보니 흑룡의 도래를 알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임진년의 '임'은 흑을 의미하고, '진'은 용을 가리키는데, 이런 조합은 60년을 기다려야 찾아온다는 것이다. 유통업계에선 손님을 끄는 기회로 삼는 듯한데, 몇몇 호사가들은 경고음을 날리는 모양이다. 흑룡의 해였던 1592년엔 왜란이 있었고, 1952년엔 한국전쟁이 한창이었으니 내년에도 나라를 뒤흔들 변고가 생길 것이라나. 어느 때건 미래의 불길함을 경고하지 않는 이가 없었겠느냐만, 경제위기 속에서 새해를 맞는 현실이 겹치니 심상찮다.
공교롭게도 학자들의 예측 또한 비슷하다. 나라 안팎의 내로라하는 연구소들의 새해 전망을 보면 위기, 저성장, 불황 같은 불길한 단어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국제적으론 선진국과 신흥국의 분쟁, 달러와 유로의 위기, 금융자본 규제를 둘러싼 갈등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적으론 수출 둔화, 내수 부진, 재정 악화, 물가 불안 등 악재란 악재가 모두 고개를 내민다. 게다가 한국을 비롯해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 지구촌 곳곳에서 권력구조가 바뀐다.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셈이다.
북한은 그런 불확실성의 모든 요소를 안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이후 북한의 진로는 인간의 예측력을 시험하고 있다. 김정은 체제의 안정성을 둘러싼 논란은 한동안 지속될 것이고, 불안정의 기미가 보일 때마다 격렬한 논란을 일으킬 것이다.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들의 움직임도 북한의 좌표를 바꿀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김정은 체제의 북한이야말로 불확실성으로 상징되는 흑룡의 해, 용신을 불러내는 드래곤 볼인 셈이다.
김정일 시대는 북한을 다루려는 이들에겐 좌절의 연속이었다. 조지 부시 행정부에서 대북외교를 지휘한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은 최근 펴낸 회고록에서 부시 집권 8년 내내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정책이 분열돼 있었다고 고백했다. 대화를 통한 외교적 접근이냐, 대결을 통한 정권교체냐의 대립이 끝없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둘러싼 갈등도 그런 구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김정은 체제 인정을 둘러싼 논란 역시 같은 배경에서 출발한다.
북한이란 드래곤 볼을 찾아가는 모험에 김 교수의 조언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살아남으려면 설득과 공감 능력이 필요하다. 설득과 공감을 얻는 바탕은 진정성이다. 이것이 '진정성을 전하라'를 새해 트렌드의 첫번째로 꼽는 이유다." 북한을 움직이려면 먼저 진심을 전하라는 얘기다. 트렌디하게!
유강문 경제·국제 에디터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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