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26

[세상 읽기] 송경동을 석방하자 / 금태섭

올해 가장 기쁜 뉴스를 꼽는다면 어떤 것을 들 수 있을까. 역시 김진숙씨가 309일 만에 무사히 85호 크레인에서 내려온 일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마지막까지 가슴 졸이던 줄다리기가 끝나고 지상에 선 그의 모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벅찬 감격을 안겨주었다.

정리해고 철폐를 외치며 까마득한 높이에서 농성을 벌이던 김진숙의 존재는 사람들의 가슴을 찌르는 못과 같은 것이었다. 8년 전 똑같은 이유로 크레인에 올라갔던 김주익씨의 죽음을 생각할 때 비극적인 결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만일 똑같은 일이 다시 일어났다면 우리는 지울 수 없는 아픔을 안고 살아가야 했을 것이다.

다행히 이번에는 행복한 결말을 맞을 수 있었다. 희망버스가 생겨났던 것이다. 전국에서 스스로 지갑을 털어서 비용을 내고 모인 사람들이 크레인 아래 서서 응원을 보냈다. 더이상 외면당한 채 외롭게 목숨을 끊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19대로 시작한 1차 희망버스는 2차, 3차로 이어졌고 결국 기적을 이루어냈다. 이름 그대로 우리에게 아직 희망의 불씨가 남아있다는 것을 일깨워준 소중한 경험이었다.

희망버스를 만든 것은 한 사람의 힘이 아니다. 그러나 어려운 고비마다 사람들을 격려하고 무모한 꿈을 현실로 만든 한 시인의 공이 잊혀서도 안 될 것이다. 바로 송경동이다. 그러면 우리는 올해 가장 기쁜 소식을 가져다준 그를 어떻게 대접하고 있는가. 지금 이 순간에도 그는 구치소에 갇혀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과연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김진숙은 내려왔지만 한진중공업 사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양극화, 정리해고, 비정규직 문제는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과제다. 선거의 해를 눈앞에 두고 있지만, 어떤 정당이나 인물도 분명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문제에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는 사람은 내년 대선에 후보로 나설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일자리는 바로 생존과 직결된 것이기 때문이다.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구호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시스템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 무력하기 짝이 없었다. 정치를 보자. 최근 몇년간 주요 선거에서 투표율은 50%에 미치지 못했다. 절망에 빠져 거리로 나오는 사람이 넘쳐나는데도 과반수에 이르는 유권자는 믿을만한 정치세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법은 더하다. 사회의 실제 상황은 들여다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법조문 해석에만 매달려 있다. 정부의 실정을 공격하면 명예훼손으로 기소당하고 거리로 나서면 집시법이 앞을 가로막는다. 최근 판례가 약간 변했지만, 오랜 동안 우리 사회에서 파업은 그 자체로 업무방해죄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누가 우리 사회에서 법이 국민들을 옥죄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지켜주는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노사자율'이라는 기만적 구호를 내세워 희망버스를 절망버스라고 불렀던 주류 언론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우리에게 시인의 상상력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기존의 논리와 고집에 얽매여서는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다. 이제 경쟁과 다툼으로 사회를 유지하는 것은 한계에 부딪혔다. 송경동이 희망버스를 통해서 말하려 한 것은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상상력을 발휘하자는 제안이었을 것이다. 그런 제안을 기존의 법조문으로 재단해서 감옥에 보내서는 안 된다. 이번에 나온 그의 책 제목은 이다. 우리 사회가 함께 행복하게 살자고 노래하는 시인을 잡아가둔 채 이 해를 보내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금태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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