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의 최측근 인사인 블라디슬라프 수르코프(47) 대통령 행정실 부실장이 27일 경제현대화와 혁신을 담당하는 부총리에 임명됐다.
그는 광고업계에서 일하다가 1999년 대통령 행정실에 들어간 후 푸틴의 '책사'로 불려왔다. 그는 2001년 집권 통합러시아당 창당 작업을 맡아 푸틴의 정치적 기반을 만들었다. 또한 서방의 위협에 맞서 러시아를 지키기 위해서는 국민의 기본권을 일부 제한할 수도 있다는 '주권 민주주의' 아이디어를 푸틴에 제공했다. 그는 푸틴을 지지하는 청년단체 '나시(회원 25만명)'를 만들었다. '푸틴 연임→메드베데프에 4년간 권력 이양→푸틴 재집권'이란 시나리오도 그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크렘린(대통령궁) 부실장은 대외적으로 드러나지 않으면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리다. 푸틴의 심복인 수르코프는 지난 12년 동안 푸틴의 통치철학 정립에서부터 인사, 대통령 이미지 메이킹에 이르기까지 손대지 않은 분야가 없을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그의 별명이 막후에서 모든 결정을 한다는 의미의 '회색 추기경(gray cardinal)'인 것도 이 때문이다. 수르코프는 2008년 푸틴이 메드베데프에게 대통령 자리를 넘겨준 후에도 크렘린에 남아 푸틴과 메드베데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해왔다.
'푸틴의 남자' 수르코프는 크렘린을 떠나 내각 부총리로 이동하면서 일단 국내정치 문제에선 손을 떼게 된다. 이와 관련, 푸틴이 총선부정으로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최측근을 좌천시켰다는 분석과 앞으로 수르코프를 중용하기 위해 총선부정 논란으로 시끄러운 크렘린을 벗어나게 했다는 분석이 엇갈린다. 수르코프는 부정선거의 진원인 통합러시아당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수르코프 후임엔 뱌체슬라프 볼로딘(47) 부총리 겸 총리 비서실장이 내정됐다. 볼로딘은 푸틴이 내년 3월 대선을 위해 여야와 청년·시민단체 인사들을 망라해 설립한 '전러시아국민전선'의 대표다. 정치분석가 스타니슬라프 벨콥스키는 "전러시아국민전선은 통합러시아당을 대체할 조직이기 때문에 푸틴이 볼로딘을 새 부실장으로 임명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알렉세이 쿠드린 전 부총리 겸 재무장관은 "수르코프의 이동 결정은 푸틴이 한 것이며 푸틴이 정치 시스템을 바꾸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수르코프가 내각으로 이동하면서 그의 비중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앞으로 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푸틴이 내년 3월 대선을 거쳐 대통령이 되면 총리 역할은 지금보다 크게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부총리 수르코프가 허약해진 총리를 대신할 수도 있다. 푸틴은 이미 경제현대화를 대선 후 자신의 비전으로 공식화했다. 수르코프는 28일 "부총리 업무가 아주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권경복 기자 kkb@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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