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27

[2030 잠금해제] 청년은 ‘박수부대’가 아니다 / 홍명교

올해는 전세계 민중들의 저항으로 얼룩진 한해였다. 북아프리카 민중봉기로 시작된 혁명의 기운은 유럽 남부에선 긴축재정에 맞선 총파업으로 이어졌고, 영국에선 가난한 청년들의 봉기와 공공노동자 총파업이 뉴스를 장식했다.

또한 지난가을 뉴욕 월가 점거시위는 세계적 이슈가 되어 미국 전역의 대학가와 도심을 휩쓸었다. 심지어 은 '시위자'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기까지 했으니, 2011년이 얼마나 격동적인 저항의 한해였는지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지난여름 우리는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위에 오른 김진숙씨의 싸움과 '희망버스'를 통해 정리해고에 맞선 노동자-시민 연대의 현장을 목격할 수 있었다. 아직도 시인 송경동을 비롯해 비정규직 노동자와의 연대를 실천해온 많은 노동자들은 철창 안에 갇혀 있고, 유성기업을 비롯해 많은 현장에서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은 계속되었다.

이 와중에 민중들의 삶이 위급해질 것이 빤히 보임에도 여당은 날치기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통과시켰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경제영토를 가지게 되었다"는 정권의 수사가 오직 저 1%의 재벌들한테만 적용되는 것임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의 불법자금 의혹부터 시작해 선관위 디도스 해킹까지 엠비(MB) 정권은 그간 여느 정권이 보인 레임덕 시기의 도덕적 해이와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에 '통합'이라는 열쇳말로 합종연횡을 거듭하고 있는 야권의 정치세력들, 그리고 현 정권에 대해 감성적 불만을 안고 있는 중산층과 386세대는 '반엠비'를 시대의 '상식'으로 내세우고 있다. 오늘날 우리를 위태롭게 하는 문제들 모두가 '엠비 때문'이므로, "상식으로 뭉쳐,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상식은 "착하게 살자"라는 한마디로 요약된다. 당장 자유무역협정만 해도 '착한 에프티에이'와 '나쁜 에프티에이'가 있다고 믿는다면, 자본에 의한 착취나 정권의 탄압에도 선악이 나뉘어 있다고 믿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오래된 상식'이 바로 오늘날 위기의 세계를 위태롭게 지탱하고 있는 가장 강력한 믿음이다. 한 사회가 도덕적 입장에 따라 좌지우지된다고 믿기 때문에 상황을 분석하고 비판하는 데 많은 고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이 체제 자체의 모순을 의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념의 종언이 선포된 소련 붕괴 후부터 이상을 포기하고 '빨리 늙기'를 선택한 세대이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나는 이 오래된 믿음에 물음표를 던지고 싶다. 지금 거론되고 있는 유력 대권주자 가운데 누가 대통령을 하든 우리의 삶은 조금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그 흔한 회의와 냉소가 아니다. 냉정하게 말해 보수든 진보든, 1 대 99로 양극화되는 지금의 잔인한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칠 수 있는 실력을 가진 정치인은 보이지 않는다. 유력 정치인들이 현 시스템의 근본적 모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는 사실은 결국 이들이 '말잔치 정치'를 되풀이할 것임을 방증하는 것이 아닐까.

오히려 이 시스템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은 바로 가장 많이 빼앗기며 혹한에 떨고 있는 노동자와 청년 자신이다. 여전히 공론장에서 회자되는 '청년'이라는 주어는 청년들 자신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정치인들은 서민들이나 청년들이 자신의 박수부대가 되어주기만을 바라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투표 기계'가 아니지 않은가? 이제는 저 낡고 반지성적인 상식을 털어내고, 현실 자체를 바꾸기 위한 발본적인 비판과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홍명교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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