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vs 유시민, '삼성과 재벌 문제'
m.sisainlive.com | Nov 30th -0001
쟁점 2:삼성과 재벌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대기업과 재벌에 휘둘리면서 결국 양극화가 심화되고 경제적 약자의 인권이 유린됐다고 진보 진영은 비판해왔다. 참여정부는 특히 삼성과의 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이러한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는 유시민 대표는 재벌의 일탈적 행위에 대해 좀 더 강한 규율이 필요하다는 이정희 대표의 지적에 100% 동의했다. 단 방법론에서 두 사람은 약간의 차이를 보였다.
유시민:'참여정부가 삼성이랑 친하다.' 그런 이야기를 저도 많이 들었습니다. 구체적인 사건은 모르지만, 총체적으로 보면 재벌들이 헌법 위에 있는 것은 맞아요. 제가 보궐선거 때 울산에 민주노동당 구청장 후보 지원 유세를 갔습니다. 한 번은 현대중공업 문 앞에서 했어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아무 반응이 없어요. 보통 웃고 손 흔들고 하는데 아무도 안 그래요. 그래서 주위 분들에게 이상하다고 했더니 관리자들이 보고 있을까봐 손을 못 흔든다는 겁니다. 노동자들이 주권자인데, 어떻게 관리 직원들을 동원해 공장 앞에서 정치적 표현을 못하게 합니까? 이게 왕국이지 뭐가 왕국이에요? 국가의 일반 의지가, 돈 많은 재벌이 사유물로 하고 있는 공장 안에도 적용되어야 공화국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공화국이라는 말이 부끄럽지요. 그런 면에서 참여정부는 비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랬을까? 우선 삼성 돈을 받으면 안 됩니다. 삼성뿐만 아니라 어떤 재벌 그룹으로부터도 돈을 받으면 안 돼요. 국가 권력을 장악해서 정의·자유·평등을 실현하려는 의지를 가졌다면 유착해선 안 돼요. 재벌들이 장래성이 보이는 법조인·정치인들에게 '스폰서'를 한다고 하지요. 유망주라도 자신의 스폰서 위에 올라설 수는 없거든요. 그런 면에서 보면 진보와 보수를 불문하고 정치적 자위, 그러니까 자기 보호 차원에서 공화국의 정신을 지켜야 합니다.
ⓒ삼성그룹 제공
사회:그런데 두 분은 모두 유망한 정치인이거나 변호사셨는데 (재벌이) 왜 접근을 안 했을까요?
이정희:둘 다 별로 유망하지 않았나보죠.(웃음)
사회:노무현 대통령은 "이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유시민:노 대통령의 말은 좌절감의 산물입니다. 그 당시의 텍스트를 보면 다르게 해보려고 애를 쓰는데 되지는 않고, 국민은 원망하고, 그럼 고용이라도 늘려야겠다, 그래서 재벌에 머리를 숙이고 도와달라고 한 것이거든요. 그런데 도와주지는 않고. 좌절을 느꼈을 겁니다.
이정희:그럴 때 쓰라고 헌법 119조 2항(일명 경제민주화 조항)이 있긴 한데요, 한편으로는 만약 개헌이 된다면 가장 위태로운 조항이 119조 2항이라고 생각해요. 그 동안 헌법재판소는 사유재산권을 대단히 옹호하는 방식으로, 흘러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정부에 충분히 경제를 규제하고 조정할 권한이 있는데도, 경제 주체들로서는 사유재산권 문제를 절대로 양보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해졌습니다. 참여정부 시절을 포함해서 민주 정부 10년을 보면, 초법적으로 할 수는 없으니까 헌법과 법률의 테두리에서 해야 하는데, 사법부에 의해 번번이 가로막힌 거지요. 유시민:말씀하시는 걸 듣다보니 역시 이 대표님은 법률가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저는 꼭 그렇게만 생각지 않습니다. 헌법과 법률에 따라야 하고, 초법적인 건 안 되는 게 맞습니다. 그러나 법률에 다른 건 하지 말라고 되어 있는 건 아니거든요. 예를 들어 삼성전자에서 백혈병 사망자가 나왔다고 하면요, 정상 국가라면 국립보건원이나 노동부에서 조사가 들어가야 맞습니다. 조사해서 사용자 책임이 있으면 행정 조처도 하고 피해자들이 소송해서 보상을 받고 할 수 있습니다. 그걸 국가가 안 하면서 약자들에게 알아서 소송해라, 소송에서 이겨도 소송 낸 사람에게만 적용이 되는 게 정상이 아니거든요. 그동안 국가 권력의 사용에서 리버럴(자유주의자)들이 너무 소극적이었다는 반성을 합니다. 합법적 절차에 따른 개입에 너무 집중하지 않았나. 숨이 넘어가는데 언제 그런 것들을 기다리겠습니까?
사회:유 대표께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자유주의자인데, 지금 말씀은 다소 과격하게 들립니다.
유시민:저는 자유주의 정치제도의 기본 틀을 지지합니다. 그러나 경제적인 면에서의 무제한의 자유라는 것은 결국 경제적 강자의 약자에 대한 수탈로 이어집니다. 경제적 강자가 약자를 수탈하면 결국 약자의 자유가 유린됩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볼 때 자유주의적 정치 제도를 채택한 모든 나라는 정치적 자유주의가 성숙함에 따라서 경제적 자유를 제약하는 쪽으로 움직여왔습니다. 물론 경제적 자유를 어떤 방식으로, 어디까지 제약하는 것이 정당한가에 대해 진보와 보수 사이에 차이가 있지요. 이 점에 관해서는 저는 우리 헌법에 이미 일정한 합의가 있다고 봅니다.
이정희:진보적 대기업 정책이 경제성장을 둔화시킨다는 것도 미신입니다. 이게 사실이려면 반대의 논리, 즉 대기업을 밀어주면 경제성장이 잘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재벌 대기업들은 약탈적인 경제구조 속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보다 더 많은 과실을 챙겨왔습니다. 재벌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는 건 시급한 현안이 됐지요. 이명박 정부조차 초과이익 공유제나 동반 성장, 이런 말을 하고 있으니까요. 지금 단계에서 재벌 대기업의 약탈적 경제구조를 바꾸지 않고는 우리 경제가 조화는 물론 더 이상의 성장도 어렵다는 것을 이미 그들도 깨닫고 있습니다.
사회:진보 세력이 집권할 경우 재벌 정책이 어떤 모습으로 바뀌게 될지 말씀해주십시오.
유시민:돈을 버는 과정에서 법과 윤리를 잘 지켰고, 돈을 번 만큼 세금을 내면 국가가 개입할 문제가 전혀 없습니다. 다만 재벌이 법 위에 있는 것만은 안 된다는 것이죠. 그 다음에 '재벌을 해체할 거냐?' 하는 질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해체하고 싶어도 해체할 합법적 수단이 정부에는 없습니다. 다만 재벌 총수도 자식이 여럿이고, 경영권을 상속하는 과정에서 합당한 상속세를 납부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이 재벌 총수 일가의 소유 지분은 줄어들게 됩니다. 그러면 현대그룹처럼 자식이 너무 많아서 계열 분리가 저절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문제는 불법 상속, 편법 상속, 탈법 상속을 통해서 대물림을 하는 경우입니다. 경영 능력은 유전된다는 증거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2세, 3세에게 회사를 물려줌으로써 그 회사도 멍들고 국민경제도 멍이 듭니다. 그런 점에서 우회 상속이라든가 편법·불법 증여라든가 이런 것을 막을 수 있게 법 제도를 정비하고, 세법을 엄격하게 적용해야 합니다.
이정희:재벌 대기업들에 대해서 해야 할 중요한 일은 첫 번째로 세금을 제대로 걷는 것입니다. 전체 법인세 감면 혜택에서 50% 이상을 이른바 재벌 대기업이 받고 있거든요. 두 번째는 중소기업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이고요, 세 번째는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저는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절 정리해고의 요건이 굉장히 완화됐다는 것에 주목합니다. 재벌 대기업은 많은 조세 감면과 국가의 정책적인 직접 지원, 그리고 환율과 금리 정책에 따른 간접 지원을 받은 결과로 성장해왔습니다. 따라서 설사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하더라도 헤쳐나갈 수 있는 위기라면, 자기 책임에 맞게 일자리를 만들고 유지해야 합니다. 그런 만큼 정리해고의 요건은 매우 까다로워야 정상입니다. 그동안 완화되어왔던 해고의 요건은 다시 엄격했던 때로 돌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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