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25

[Why] 타계 보름前 '내 집 마련' 기뻐하더니… 정작 그는 단 하루도 머물지 못했다

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타계하기 보름 전 '내 집 마련'을 이뤘다고 한다. 며느리가 친정 할아버지에게서 상속받은 돈으로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 집을 지으면서 한쪽에 박 회장 내외를 위한 별채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하사한 북아현동 자택을 11년 전에 팔아 한 재단에 기부하고 난 뒤부터는 딸들 집에 얹혀살아 왔다. '철강왕' 역시 집이 생기니 기분이 좋았던 모양이다. "늙어서 딸 집에 사는 내 꼴이 말이 아니야. 내 집에서 살다 죽고 싶다"며 지인에게 '속내'를 털어놓았던 박 회장은 청운동 집으로 이삿짐을 옮긴다는 부인 말을 듣고 병상에서도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새집에서 단 하루도 머물지 못하고 지난 13일 유명을 달리했다. '일본통'으로 알려진 그가 도쿄에 갈 때마다 묵었던 숙소도 13평짜리 허름한 오피스텔이었을 정도로 철강왕은 소박했다.

그런 그가 생애 마지막엔 포스코의 장래를 염려해 잠 못 이룬 날이 많았다고 한다. "포스코가 국가 경제 동력이 되어 만족스럽다. 더 크게 성장해 세계 최고가 되길 바란다"는 게 그의 공식 유언이었지만, 그는 유족이나 가까운 지인에게는 "외형 확장에 애쓰지 말고 최고 철강 제품을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그의 공개된 유언 중에 "애국심을 갖고 일해달라"는 포스코 임직원에 대한 당부는 가볍게 넘겨선 안 되는 '뼈 있는 말'이라는 게 유족 반응이었다.
박 회장은 자기가 물러난 뒤 포스코가 2001년 도입한 스톡옵션 제도에 대해 2008년 한 인터뷰에서 "제철보국(製鐵報國)이라는 창업 정신을 배반하고 정면 도전한 사건"이라고 불같이 화를 낸 적이 있다. 1988년 포스코 직원 1만9000명이 총 발행주의 10%를 배당받을 때 본인은 단 한 주도 받지 않았던 박 회장에겐 포스트-박태준의 경영방식이 포항제철을 세우고 이끈 자신의 뜻과 다르다고 보았던 것이다.

철강왕은 석 달 전 포항에서 제철소 옛 직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끝내 눈물을 흘렸다. 노후 생활이 어려운 창업 공신이 많다는 얘기를 듣고 "죽어라 일만 했고 일만 시켰던 내가 미안하다. 우린 챙길 줄도 몰랐고 챙겨줄 줄도 몰랐다"며 안타까워했다고 유족은 전했다.

포스텍(포항공대)은 박 회장 타계 12일 전인 이달 2일 교내 노벨동산에 박 회장의 동상을 세웠다. 중절모를 쓰고 환하게 웃고 있는 동상 발아래엔 '강철거인 교육위인 박태준 선생'(鋼鐵巨人 敎育偉人 朴泰俊 先生)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개교 25주년을 맞은 포스텍이 설립자의 업적을 기려 만든 이 동상에 대해서도 박 회장은 "쓸데없는 짓"이라고 역정을 냈다. 포스코 설립의 틀을 만들어준 고 박정희 대통령의 동상이 아직 없는 데다 10억원이 넘는 거액을 들여 자기 동상을 건립하는 것 자체가 분에 넘치는 사치라는 것이다. 그래서 동상 제막식에도 불참하겠다고 했던 그였다.

지난 14일 빈소에서 만난 포스코의 한 원로는 "명예회장님은 19년 전 포스코를 떠났어도, 바람 세차게 부는 날 빨랫줄에 앉은 참새의 심정으로 늘 포스코의 앞날을 걱정하셨다"며 "후배들은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세계 최고 철강회사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훈 기자 nuku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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