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14

[문화 칼럼] 일본의 본질을 모르는 MB정권 / 김상수

축구 국가대표팀이 일본에 졌다. 그것도 3점 차로.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서 역사교과서, 독도, 동해 표기 등 한국을 대하는 일본의 보수우익과 정부 태도가 공격적인 양태로 변했다. 일본 자민당 의원 셋이 나라 대문인 공항까지 치고 들어와 독도는 '다케시마'라고 행패를 부린 모습이란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동해를 일본해로 역사를 날조해 꾸준하고 엄청난 돈으로 각 나라와 기구를 설득함으로써 외국 지도 70% 이상이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고 미국·영국까지 동해는 일본해라고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자민당이나 민주당이나 정권이 바뀌어도 독도를 국제 분쟁지역으로 끌고 들어가겠다는 건 일관된 태도였고, 독도가 떠 있는 바다는 일본 바다고 역사는 날조해 교과서에 실어야 한다는 의지도 단 한걸음 비키지 않는다. 때마다 전략과 전술이 달랐을 뿐이다. 과거 정권에서는 일본이 이런 식으로까지 거칠게 대들진 않았다.

정부는 독도를 실효지배하고 있으니 일본의 계속되는 주장에도 묵살로 대응하는 게 책략이라 했다. 결과는? 일본의 도발과 침탈은 거세졌고 독도를 국제 분쟁지역화 하려는 일본의 의도를 적극 조장한 현실로 드러났다. 국토에 대한 도전, 도발, 이의 제기는 그때그때 분명하게 반격해야 한다. 이게 국제법상 영유권 다툼의 기본이다. 침묵이나 회피나 외면이면 바로 '묵인'(acquiescence)이 된다. 국제법상 '묵인의 누적'은 영토의 실효지배는커녕 주권 자체가 부정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1951년 어업권 문제로 노르웨이의 주장에 계속 침묵한 영국은 국제사법재판소에서 패했다.

자국 영토에 다른 국가의 간섭이란 절대 허용하지 않겠다는 배타성이 영토주권의 속성이다. 그래서 과 에 보도됐던 이명박의 "지금은 때가 아니다. 기다려달라고 했다"는 독도발언 사실 시비야말로 독도의 실효지배가 흔들린 결정타였다.

2년 전 베를린에 체재하고 있을 때다. 독일연방공화국의 수도 베를린 시내 베를린 장벽이 쳐져 있던 곳에 '공포의 지형'(Topography of Terror)이라 명명한 야외 전시관 겸 박물관을 조성하고 있는 장소를 가 본 적이 있다. 1933년부터 1945년까지 히틀러의 비밀경찰 게슈타포와 친위대 에스에스(SS) 사령부가 있던 그곳에서 나치 비판자들을 고문하고 처형했던 게슈타포 본부 지하실이 통일 이후 발견되면서 독일 정부는 나치 치하에서 인간을 고문하고 억압한 역사를 자세히 증언하고 기록하는 영구적인 박물관 조성 사업을 했다. 전범국 일본과 비교하자면 독일은 자신들이 범한 과거 히틀러 시대의 과오에 대해서 분명히 인정하고 인식하면서, 어둡고 잔인했던 과거 역사를 숨기고 감추려 하지 않고 제대로 드러내어 후손들에게 그리고 인류에게 그와 같은 비극이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시사하고 있다.

이처럼 오늘 독일인들은 그들 자신의 수도 한복판에 과거에 저질렀던 만행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그곳을 방문하는 모든 이에게 그 사실을 주지시킴으로써 자신들 스스로를 단죄하고 있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 본토와 중국 만주 등에서 세균과 독극물 인체실험을 한 관동군 731부대를 지휘한 일본 육군군의학교 방역연구실과 도쿄의대 연구실이 있던 도쿄 시내 인근 장소에 초현대식 빌딩으로 '신국립현대미술관'을 지었다. 독일과 일본, 역사 기억의 방식에서 너무나 극명한 대조와 비교가 된다.

결국 독도 위기 등에 대한 해결책은 일본의 변화에서 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명박 정권은 일본을 잘 모를뿐더러 외교에서도 무능한 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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