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18

한예슬, 남자 때문에 먹튀? 언론의 이상한 마녀사냥 [비평] 하루만 촬영 못해도 드라마 결방되는 제작 구조, 한 씨에게 책임 전가하는 언론- 임수정// 미디어오늘, 2011-08-16


한예슬, 남자 때문에 먹튀? 언론의 이상한 마녀사냥
[비평] 하루만 촬영 못해도 드라마 결방되는 제작 구조, 한 씨에게 책임 전가하는 언론
[0호] 2011년 08월 16일 (화)임수정 기자  imaudry@mediatoday.co.kr
KBS 드라마 ‘스파이 명월’에 출연 중이던 연기자 한예슬 씨가 드라마 촬영을 펑크내고 미국으로 출국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로 인해 월요일 방영예정이던 드라마 ‘스파이 명월’은 방송 분량을 확보하지 못하여 긴급히 스페셜 방송을 내보내는 등의 차질을 빚었다. 제작사는 남은 방영분에 대해 ‘주연배우 교체’라는 전무후무한 상황까지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져 그 실행 여부와는 상관없이 공영방송 KBS의 드라마엔 씻지 못할 오점이 남게 됐다.
다수의 언론은 한예슬 씨가 시청자와의 약속을 저버린 무책임한 행동을 했다며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주연 배우가 시청자와의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아예 한국을 떠나버린 것에 대한 언론의 비판은 타당한 면이 있다. 하지만 일부 언론의 보도는 타당한 비판을 넘어선 인신공격의 수준으로 눈쌀을 찌푸리게 했다.

  
스포츠 조선의 16일자 보도
 
대표적인 예가 한예슬 씨의 행동을 사생활과 연관시킨 보도이다. 다수의 언론은 한예슬 씨가 미국으로 ‘달아났다’라는 과도한 표현까지 쓰며 이 사건을 한예슬 씨의 사생활과 연관시켜 보도했다. 한예슬 씨에겐 촬영장으로 찾아오는 ‘사업가’ 남자친구가 있었으며 한예슬 씨가 ‘결혼 계획이 있다’는 식의 발언을 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또 한예슬 씨가 남자친구에게 고액의 자동차 선물을 받은 적도 있다는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이기도 했다.
한예슬 씨에게 설령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는 식의 보도는 ‘끼워맞추기’ 식 보도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또 한 씨가 그 남자친구에게 고액의 선물을 받았다 한들 어디까지나 사생활 문제다. 언론은 한 씨가 성공한 사업가 남자친구를 ‘믿고’ '한국에서의 모든 커리어를 포기하고 미국으로 날랐다'는 식의 공식으로 비슷한 보도를 쏟아냈다.
더구나 그런 정보의 출처가 대부분 한예슬 씨를 곱게 볼 리 없는 드라마 ‘스파이 명월’의 제작진과 관계자들이었다는 사실은 그 의도를 의심해 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 씨의 소속사는 16일 저녁 ‘남자친구는 없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한예슬 씨의 이번 행보가 직업윤리 측면에서 비판받을 일이라고 할지라도 그 원인과 책임을 한 씨 개인의 문제로만 볼 수도 없다. 거의 생방송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한국 드라마의 제작과 촬영 행태는 여러번 도마에 오른 바 있다. 다수의 언론 또한 이번 사안이 한 씨 개인의 돌출행동이 아닌, 그동안 곪아왔던 한국 드라마 제작 여건 상의 문제가 터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최근 한 달 동안 촬영 현장으로 이동하다 교통사고를 당한 배우만 해도 KBS ‘공주의 남자’의 홍수현 씨, MBC ‘넌 네게 반했어’ 의 박신혜 씨 등 여럿이다. 두 드라마 모두 주연 배우의 부상으로 정상 방송을 할 수 없어 ‘땜빵’으로 스페셜 방송을 검토하는 등 곤욕을 겪었고 실제로 ‘넌 네게 반했어’의 경우 지난 7월21일 스페셜 방송을 내보냈다. 주연 배우가 어떤 사정으로 하루 촬영을 하지 못하면 바로 다음 방송이 불가능 한 것은 분명 정상적인 제작 환경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볼 수 없다. 또 이들 배우들의 잦은 교통사고가 빠듯한 촬영 시간을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속도를 내다가 빚어졌다는 관계자들의 증언도 이어졌다.
언론도 이 같은 상황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연합뉴스는 16일 <'폭탄 돌리기' 여전한 한국 드라마>라는 기사를 통해 한국 드라마의 제작 현실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연합뉴스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 제작해야할 드라마가 생방송 뉴스처럼 제작되고 있다보니 언제든 사고가 터질 위험이 있다” 고 분석했다.

또 제작사나 방송사가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반 사전 제작’이라는 대안을 내놓고 있지만 말 뿐인 이유에 대해 ‘시청자의 반응에 의해 드라마의 방향이 바뀌는 한국식 제작구조’가 그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한 MBC 드라마 ‘최고의 사랑’의 주연 배우 공효진 씨는 ‘무릎팍 도사’에 나와 당일 방송분을 자신은 당일 오후 1시까지 찍고 또 다른 주연 배우 차승원은 4시 반까지 찍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런 파행적인 드라마 제작 구조가 일상화돼 있다는 것을 보여준 단적인 사례 보고였다.
드라마 제작 환경이 이런데도 이번 사태의 원인이 단지 한예슬 씨 개인의 ‘인성’과 ‘돌출행동’이 문제라는 식의 언론 보도는 과도한 측면이 있다. 한예슬 씨의 행동은 분명 비판받을 여지가 있지만 그 비판은 그의 행동 자체에 국한될 필요가 있다. 드라마 제작 환경에 대한 문제는 도외시하고 한 씨 개인의 잘못으로 모든 것을 덮어버린다면 이런 파행은 어느 때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또 드라마 제작환경의 문제를 제대로 짚어보기 위해서라도 이번 사안의 경우 과연 한예슬 씨만의 책임이었는지, 제작진이나 소속사의 책임은 없었는지 하는 점 등도 구체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한 씨는 16일 오후 소속사 ‘싸이더스 HQ’를 통해 최대한 촬영장에 빨리 복귀할 것이라는 공식 입장을 전달했다. 드라마 역사에 기이한 사건으로 남을 뻔한 ‘주인공 교체’는 면할 전망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 불씨는 남아있다. 이것이 이번 사태를 한 씨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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