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16

진보색 짙어진 통합야당 “종편·원전 재검토”

새로 출범하는 민주통합당이 이전 민주당보다 진보 색채가 훨씬 뚜렷해진 강령·정책을 내놓았다. 민주당과 시민통합당이 합당하고 한국노총이 결합해 출범한 민주통합당은 16일 조세정의 실현과 원전 전면 재검토, 종합편성채널 재검토 등의 내용을 담은 강령·정책을 확정했다.

새로운 제1야당인 민주통합당(약칭 민주당)이 이날 발표한 강령·정책엔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경제민주화 실현 △재벌과 대기업에 대한 근본적 개혁 △복지국가 건설 △종합편성채널 원점 재검토 등 이전 민주당에 견줘 한층 진보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3자 수임기관 합동회의에서 합의된 민주통합당 강령은 '당이 이어갈 가치'로 부마민주항쟁, 1987년 노동자대투쟁의 노동 존중과 연대, 2008년 촛불민심의 시민주권 의식 등을 추가했다. 기존 민주당 강령에 있던 항일독립운동과 임시정부의 건국정신, 4·19 혁명과 광주민주화운동, 6월 민주화항쟁의 반독재·민주화 운동 정신은 그대로 승계했다.

경제 관련 조항의 진보성도 눈에 띈다. 새 강령은 민주통합당의 정책 1~4항을 모두 '경제민주화 실현과 재벌 개혁', '조세정의 실현', '성장지상주의와 토건중심 불균형 성장 배격', '노동자의 권익 보장' 등 민생 관련 정책으로 채웠다. '민주주의 수호' 등 정치적 과제를 먼저 제시했던 이전 민주당 강령보다 경제적 측면의 진보성을 더욱 강화한 것으로 평가된다.

새 강령은 또한 무상급식과 무상보육, 무상의료, 반값 등록금, 주거복지, 일자리복지 등을 명문화해 보편적 복지국가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고등학교 의무교육 실시, 기회균등선발제 도입, 모든 종류의 학력차별 철폐와 원전 전면 재검토, 종합편성채널 재검토를 명기하는 등 교육과 환경, 문화 분야에서도 진보적 색채를 뚜렷이 했다. 새 강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포함한 모든 통상정책의 전면 재검토 방침도 담았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민주통합당의 진보적 기조 강화는 이후 한나라당과의 차별성을 드러내고 통합진보당과 선거연대의 기틀을 다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9년간의 전쟁…남은 건 가족의 죽음 뿐”

"여러분의 최고사령관으로서 국가를 대표해, 마침내 이 두 단어를 말하게 돼 자랑스럽다, 웰컴 홈. 웰컴 홈, 웰컴 홈, 웰컴 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4일 미국의 이라크전 참전 장병들에게 "귀환을 환영한다"는 말을 네 차례나 되풀이했다. "미군은 이라크에서 대단한 성취를 거뒀으며, 고개를 높이 들고 현지를 떠난다"고 치켜세웠다. 노스캐롤라이나주 포트브래그 공수부대 기지를 방문해 '이라크전 종료'를 선언하는 자리였다.

오바마 정부는 12월31일까지 이라크 미군 철수를 완료하고 전쟁을 매듭짓는다. 9·11 동시테러가 터진 지 1년반 뒤인 2003년 3월 이라크를 침공한 지 8년9개월 만이다. 2007년 한때 17만명에 이르렀던 이라크 미군은 현재 5500여명만 남아 있다. 이미 2009년 8월 이라크에 치안권을 넘겨준 미군은 접경국 쿠웨이트로 철수하고 있는 마지막 부대와 함께 이라크에서 완전히 빠져나오게 된다. 이라크엔 대사관 경비 등 최소한의 자위병력만 남는다.

상원의원 시절 이라크전에 반대했던 오바마는 이날 연설에서 "전쟁은 시작보다 끝내는 게 어렵다"며 "이제 곧 이라크전은 지나간 역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라크전에 최상의 의미를 부여하고, 참전 군인들에게도 최고의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당신들의 희생 덕분에 이라크 국민이 스스로 운명을 개척할 기회를 맞았다. 미국은 과거 제국들과 달리, 영토나 자원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옳기 때문에 이라크 전쟁을 치렀다."

오바마의 발언은 역사적 평가를 의식한 정치적 수사임을 고려하더라도,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오랜 전쟁은 미국과 이라크 양쪽 모두에 엄청난 피해와 깊은 상처를 남겼기 때문이다.

지금 이라크엔 미래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이 외국군 철수의 기쁨과 희망을 압도한다. 정파·종파 분쟁과 석유자원을 둘러싼 지역 갈등이 고착화했다. 유전지대가 밀집한 북부 쿠르드 자치지역은 중앙정부의 통제가 먹히지 않고, 망가진 경제는 복구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독재자 사담 후세인의 체포와 사형을 반긴 세력도 많지만, 그것도 5년 전의 일이다.

오바마가 '미국의 성취'를 역설하던 날, 이라크 바그다드에선 한 여성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호라 자심이란 주부는 통신에 "전쟁 9년 동안 내게 남은 유일한 이미지는 두 동생과 식구들의 죽음뿐"이라고 털어놨다. "아무것도 바뀌는 게 없을 거예요. 지금도 날마다 폭탄이 터지고 암살이 횡행하지만, 정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겁니다."

1980년대 이란과의 전쟁, 1990년대와 2000년대 미국의 침공을 받은 이라크엔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살길이 막막한 여성이 100만명에 이른다.

앞서 지난 12일 이라크의 누리 알말리키 총리는 미국을 방문해 오바마 대통령 등과 만나 이라크 재건과 지역안보 방안 등을 논의했다. 말리키 총리는 미국 기업들에 '기회'를, 오바마 대통령은 이라크에 '지속적인 양국 관계'를 약속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기세등등했던 ‘미국 패권’ 급속 몰락

이라크 전쟁은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함께 미국한테 베트남전쟁의 악몽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2001년 9·11 동시테러의 충격에 빠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과 '대량파괴무기(WMD) 제거'라는 구실로 두 나라를 잇따라 침공했다.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은 전세계를 "내 편 아니면 적의 편"으로 갈라놓았다. 부시 전 대통령은 이라크 침공 43일 만인 2003년 5월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에서 "(미군의) 임무가 완수됐다"는 승전 선언을 했다. 그해 12월엔 이라크의 한 토굴에 숨어 있던 사담 후세인을 생포했다. 그때만 해도 전쟁이 8년 넘게 지속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사태는 미국의 기대와는 전혀 딴판으로 흘러갔다. 이라크 반군은 게릴라 전술로 끈질기게 저항했다. 이라크 정국은 정파·종파·민족 갈등이 격화하면서 극심한 혼란으로 빠져들었다. 2004년 4월엔 이라크 주둔 미군이 현지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 저지른 모멸적인 포로학대 사진과 동영상들이 폭로되면서 이라크 침공은 일찌감치 '혐오스런 전쟁'의 상징이 됐다.

미국은 이라크 전쟁으로 4800여명의 군인이 목숨을 잃었고, 8000억달러(약 932조원)가 넘는 전쟁비용을 쏟아부었다. 막대한 사회적 비용은 수치로 환산할 수조차 없다. 참전 장병의 30%가 정신질환과 사회 부적응에 시달리고 가정 파탄을 겪었다. 자살한 참전 군인도 수백명에 이른다. 2009년 1월엔 이라크 파병을 앞둔 무슬림 군의관이 부대 안에서 총기를 난사해 13명이 숨지는 참사를 빚었다. 1990년대 초 냉전 종식 이후 절대적이던 미국의 패권은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치르면서 급속하게 퇴락하기 시작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쫄지 않는 풍자…‘1% 위한 개그는 개나 줘버려’

11월5일 (SBS)의 이 첫 전파를 탔다. 이 폐지된 뒤 근 1년 만에 출범한 공개코미디 프로그램이다. 절대강자 에 도전하는 의 차별성은 시사와 코미디의 결합이다. 박준형·강성범이 진행하는 '한줄 뉴스'와 '투나잇 브리핑'은 직접 시사를 언급한다. '투나잇 브리핑'은 에스엔에스(SNS·사회관계망서비스) 차단법이나 물대포 등 다소 센 주제를 말하기도 하고, '한줄 뉴스'에선 강도와 이를 응징해야 할 슈퍼맨과 배트맨이 '포항인맥'으로 얽히는 아찔한 촌극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의 진정한 풍자성은 시사에 대한 직접적 언급에 있지 않다. 코너 면면에 흐르는 도저한 '99%의 정서'가 더 본질적이다.

'더 레드'는 노골적이다. 농밀한 음악이 깔리는 가운데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한 여자가 있다"는 내레이션과 함께, 빨간 드레스를 입은 그녀(홍현희·사진)가 등장한다. 그녀는 뇌쇄적인 눈빛과 도도한 목소리로 관객들에게 자신의 '치명적인 매력'을 우겨댄다. 이때 핸섬한 남자가 등장한다. 교수, 변호사, 의사, 외교관, 시이오(CEO), 재벌2세 등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멘트가 끝나기 무섭게 그녀는 "잘난 척하지 마, 어디서 유세야 유세가?" 하며 남자를 힐난한다. 국비장학금을 받았다는 남자에게 "내가 낸 세금으로 너 공부시켰는데, 넌 나한테 뭘 해줬냐?"고 따지고, "학점이 4.3"이었다는 말에 "난 4.4였다, 학자금 대출 이자율이. 10년째 이자만 내. 비정규직은 답이 없어"라고 응수한다. 그녀는 엘리트 남성을 존경하기는커녕 "거만, 허례허식, 욕망, 개나 줘버려"라며 일갈한다. 남자는 1%의 삶을 대변한다. 레저스포츠를 즐기고, 맛집을 찾아 세계여행을 다닌다. 여자는 99%의 삶을 대변한다. 상급공무원 연봉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최저임금이 시급 4320원임은 명확히 알고 있다.

'한 사장'은 은근하다. 학교나 회사 등 지도편달이 행해지는 현장에 누군가 "한 사장!"을 외치며 등장한다. 그(김민제)는 "10년 전에 빌려준 내 돈 7970원을 갚으라"고 집요하게 요구한다. 그는 다른 이들과 덩달아 한 사장의 지시를 따르기도 하고, 혼자서 7970원에 대한 타협안을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그의 말이 안 들리는 듯 행동한다. 그는 유령인가? 자기 말이 들리는지 알기 위해 그는 다른 이들을 자극하며 한 사장에게 다가오지만, 정작 한 사장 앞에 이르면 한 사장이 그를 공격한다. "불리할 때만 보이나?" "끝까지 소통 안 돼" "안 듣는 건지 못 듣는 건지" 등의 멘트로 마무리되는 이 코너의 이름 '한 사장'은 돈을 달라고 요구하는 이의 이름이 아니다. 권력자의 이름이다. 많지도 않은 돈을 정당한 자기 몫으로 한사코 요구하는 존재는 이름이 없다. 그는 보이지 않고, 이름도 없으며, 셈해지지 않는 존재이다. 1500일이나 시청 앞에 텐트를 치고 외치는 재능교육 노조, 1000일 가까이 싸우고 있는 쌍용차해고노동자들. 안 보이는 듯 행동하다가 권력의 코앞까지 다가오면 잘 보이는 듯 밟아버리는 공권력의 모습이 겹친다. 11월19일 방영분에서 김민제는 콜트기타 노동자 지지 티셔츠를 입고 나왔다. 우연일까?

대중문화평론가, 사진 에스비에스 제공

[세상 읽기] 죽일 수도 없고, 살릴 수도 없네 / 이계삼

한 과목 시험이 끝난 쉬는 시간, 발 빠른 누군가가 담당 선생님으로부터 받아온 정답을 칠판에 적는다. 아이들은 증권사 객장에 들른 개미투자자처럼 똥그란 눈을 하고 칠판 앞에 늘어서서 점수를 매긴다. 이어 1등급 권역에 있는 '에이스'들의 성적이 화제에 오른다. 누구는 100점이고, 누구는 몇 개 틀렸다더라. 소식은 빠르게 전파된다. 내가 얻은 점수는 중요하지 않다. 핵심은 내가 받게 될 '등급'이니깐. 1등급이 어디서 끊길지가 열띤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된다. 이런 식으로 한 계단 두 계단 내려가다 4등급을 지나면서부터 소용돌이는 잦아든다. 7등급이든 8등급이든 나머지 아이들에게 달라질 건 없으니까.

이제 이런 모습은 몇년 뒤부터는 보기 힘들어질 것이다. 상대평가와 내신등급제가 사라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2005년, 이 제도가 도입되던 첫해 중간고사를 앞두고 11명의 아이가 목숨을 끊었던 것을 떠올리면 이번 조처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왜 이 난리들인가. 여기에는 한국에만 있을 것이 분명한, 교육과 입시를 둘러싼 복잡하고도 어이없는 역설이 엎드려 있기 때문이다. 상대평가와 내신등급제는 이처럼 반교육적 암종이지만, 내신 중심의 대입 전형은 교육을 둘러싼 지역간·계층간 격차를 완화시켜주는, 꽤 진보적인 구실을 했다. 2005년, 아이들이 연이어 자살하고 청소년들이 촛불을 들겠다며 문자메시지를 돌리던 그 시절, '교실에서 자는 아이들이 줄어들었고, 아이들의 수업 집중도가 높아졌다'며 내신등급제의 의의를 역설하던 곳은 다름 아닌 전교조와 였다.

너무나 상식적이고 교육적인 이번 조처를 '꼼수'로 해석해야 하는 내 마음은 편치 않다. 절대평가의 교육적 장점은 '서열화'의 압도적인 구심력에 흡수되어 내신 무력화로 귀결될 것이 자명하다. 그렇다고 내신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신 A등급은 상위권 대학 진학을 위해 '깔아야' 할 요건이 될 것이다. 거기에다 아이들은 수능과 온갖 종류의 대학별 고사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교육과학기술부 이주호 장관이 사랑해 마지않는 입학사정관제가 대세로 자리 잡을 것이다. 입학사정관제가 아이들의 잠재능력을 이끌어내게 될지, '스펙'으로 대표되는 신종 괴질의 창궐로 이어지게 될지는 한국 사회에 대한 평균적인 안목만 갖고 있어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아이들이 학교 안팎에서 벌인 다양한 활동은 일단 '에듀팟' 사이트에 미주알고주알 올리고, 담임교사의 인증을 받아야 한다. 증빙자료들은 '포트폴리오'로 정리해 두어야 한다. 이들은 끝내 '스펙'이라는 수치로 계량화될 것이다. 아이들은 이들을 입학사정관 앞에서 능란한 언변으로 혹은 쌈박한 에세이로 '프레젠테이션'해야 한다. '나, 이런 사람'이라고. 수많은 한비야, 수없는 테레사 수녀가 출현할 것이다. 아이들은 도전정신과 인류애로 분칠될 것이며, 내향적인 아이들은 성격에 대한 자책감으로 힘들어하게 될 것이다.

푸념은 그만, 이제 정리하자. 상대평가와 내신등급제라는 암종이 사라진 자리에 대학별 고사와 입학사정관제를 향한 '쩐의 전쟁'이 활짝 열렸다. 시들어가던 특목고와 자사고는 소생의 기회를 잡았고, 특목고-자사고-일반계고-전문계고로 이어지는 신종 카스트가 새로운 암종으로 부풀어 오를 것이다. 사교육은 경기 부양의 호재를 찾았다. 나는 이번 조처를 '사교육판 뉴딜정책'으로 표현하고 싶다.

이 나라의 교육 제도는 바뀔 때마다 나라를 들었다 놓았는데, 소용돌이가 가라앉고 나서 보면 아이들에게 지워지는 보따리만 무거워졌을 뿐이다. '죽일 수도 없고, 살릴 수도 없네.' 여기가 바로 지옥이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다음번 칼럼으로 미룬다.

이계삼 경남 밀양 밀성고 교사



[아침 햇발] 준국책사업 종편 미스터리 / 정영무

'안 돼, 안 돼'로 웃음을 선사하는 개그콘서트의 비상대책위원회와 달리, 실제로 비상대책회의가 연일 열리는 곳이 있다. 지난 1일 일제히 개국한 종합편성채널 4개사다. 섣불리 개국하느라 준비가 덜 된 탓도 있지만 생존의 기반인 광고 때문에 비상이 걸렸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주요 그룹 광고책임자들을 불러 "광고를 비용이 아닌 투자의 관점에서 보고 지출을 늘려달라"고 노골적으로 압박한 일이 다급함을 반증한다.

종편사들은 오래전부터 모기업인 신문사를 동원해 광고 유치에 힘을 쏟아왔다. 종편은 국책사업이라는 논리까지 들이댔다고 한다. 막상 뚜껑이 열리고 시청률이 바닥을 기자 후견인인 최 위원장에게 급전을 친 것이다. 방통위원장이 개별 종편사의 광고 문제에 개입한 것은 권한 밖의 일로, 매우 부적절하다.

광고는 종편의 젖줄이다. 그러나 종편이 필요로 하고 기대하는 금액과 광고시장의 현실은 복날과 엄동의 날씨만큼이나 차이가 크다. 종편이 본방률 50%로 하루 12시간 분량의 콘텐츠를 만든다고 가정할 때 연간 1500억원의 제작비가 든다. 여기에 인건비 등을 고려하면 1사당 운영비는 연간 2500억원에 이른다. 한 달에 200억원의 광고 수입을 올려야 하는데, 개국 첫 달은 가까스로 메웠지만 다음달부터 앞이 막막하다는 실정이다.

시청률 0.1%당 광고비는 126억원으로, 그만한 수입을 올리려면 시청률이 2% 수준 돼야 한다. 종편 시청률은 1%를 훨씬 밑돌고 있다. 한두 곳은 1%를 웃돌 수도 있지만 4곳이 다 그러기는 불가능하다. 결국 종편 우주선은 방통위가 추진체에 실어 대기권까지 쏘아 올리는 특혜를 베풀었지만, 자체 추진력이 약해 궤도 진입이 난망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뜻밖이 아니라 빤히 예견됐다는 데 있다. 시장에서는 종편 4개는 절대 무리이며 먹여살릴 여지가 없다고 단언했지만 방통위나 종편사들은 귀를 닫았다. '종편을 하면 빨리 죽고 신문을 하면 천천히 죽는다'면서도 뛰어든 신문사는 생존을 건 도박을 했다고 치자. 문제는 방통위다. 일자리 창출, 콘텐츠 수출로 포장한 최 위원장은 광고시장을 국내총생산의 0.7%에서 2015년 1%로 확대하겠다고 공언했다. 광고주들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잠꼬대 같은 소리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요컨대 장밋빛 전망의 주술에 걸려 성공가능성이 낮은 사업에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는 정책실패가 빚어졌다. 수요예측이 크게 빗나간 경인 아라뱃길 투자와 다르지 않다. 방통위도 처음에는 1~2개 종편만 허가하겠다는 방침이었으며, 노무현 정부 때도 유사한 검토가 있었다고 한다. 주술에 빠져 여봐란듯이 종편을 4곳씩이나 허가했다면 더없이 아둔하다. 오직 종편 허가를 내줄 요량으로 뜬구름 같은 수치를 읊조렸다면 교활하다. 정책결정자가 더없이 아둔하거나 교활하지 않다면 있을 수 없는 재앙이 현실화할 조짐이다.

텔레비전 광고시장은 시청률이란 시장원리에 충실한 곳이다. 종편사나 후견인인 최 위원장의 특별대우 요구를, 이외수씨는 "콩나물 보여주면서 산삼값 받아내면 사기행각 아닌가요"라고 꼬집었다. 주요 광고주들은 종편의 턱없는 요구에 부응할 여력도 없지만, 시청률과 무관하게 특혜를 주면 회사 이익에 반할 뿐 아니라 장차 종편 청문회가 열릴 경우 곤욕을 치를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방통위원장이 걱정해야 할 청문회를 광고주가 대신 머리 싸매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다.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사심 없이 헌신'하는 공인의 삶을 살았다. 그 정반대가 종편 세상이다. 종편사들의 무분별한 약탈 행위를 방조하고 있는 것도 청문회 항목에 추가해야 한다.

정영무 논설위원 young@hani.co.kr

[왜냐면] 안 돼~ 이러다 언제 수사해? / 배창영

최근 국무총리실의 검경 수사권 조정안으로 검찰과 경찰 간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이를 넘어서서 검찰과 경찰의 본분이 무엇인지를 묻고 싶다.

얼마 전 의 '비상대책위원회'를 보면서 필자가 크게 공감한 내용이 있었다. 경찰서에 도움을 요청하자 "이것은 우리 관할이 아닌데요? 서부경찰서로 가보세요." 서부경찰서에 가보니 "이건 남부경찰서 관할이에요. 남부경찰서로 가보세요." 남부경찰서로 가니 "이것은 북부 관할이지. 북부로 가봐." 결국 "이러다 언제 수사해. 안 돼!" 외치던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이 코너를 본 필자는 두달 전의 일이 생각났다. 필자의 지인은 얼마 전 학교에서 지갑을 잃어버렸다. 그것을 모른 채 필자와 함께 있던 지인의 휴대전화에 한 통의 문자메시지가 왔다. '현금 5200원이 결재되었습니다. 16시45분 ㅋ치킨 ○○지점.' 지인과 필자는 깜짝 놀랐다. 우리는 학교 안을 걷고 있었고 ○○지점은 학교와 최소 1시간의 거리 차이가 났다. 필자와 지인은 부리나케 근처 지구대를 찾아가 사고 접수를 했다.

지갑을 잃어버린 것보다 더욱 황당한 일은 그 뒤 경찰관들의 태도였다. 경찰서에서 나온 경찰관은 일단 우리보고 ○○지점으로 가서 그쪽 지구대에 연락을 하라고 했다. 자신들의 관할 지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는 사람일 수도 있으니 직접 가서 얼굴을 확인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1시간 가까이 버스를 타고 ○○지점으로 갔다. 그곳에서 우리는 용의자 얼굴을 확인했고 그쪽 지구대에 연락을 했다. 지구대에서 파견 나온 경찰은 범인의 얼굴을 확인했으니 우리보고 사진을 찍어서 사건이 접수된 지구대에 가져다주라고 했다. 지갑을 잃어버리고 사건을 접수한 곳이 자신들의 관할이 아니니 그쪽 담당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지역이 그곳이 아니니 사는 지역 관할이라는 말도 나왔다. 학교와 ○○지점은 1시간 차이가 나고 그곳에서 거주지까지는 약 두 시간의 거리 차이가 나는데 말이다. 마지막 결정타는 이런 사건은 범인 잡기가 힘들기 때문에 큰 기대는 하지 말라는 경찰관들의 설득이었다.

실로 어이가 없는 말들의 연속이었다. 비록 잃어버린 금액은 얼마 없었지만 우리가 직접 범인의 얼굴을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으로 확인했으며 국적이 한국이 분명했고 같은 학교 안에 있을 확률이 높고 카드 승인 문자로 분명한 증거를 찾아 용의자의 범위를 좁혀주었으면, 그 이후에는 자신들의 노력으로 범인을 찾아줄 것이라는 우리들의 기대는 산산조각 났다. 우리는 그 후에도 화난 마음을 추스르고 용의자 사진을 사건을 접수한 경찰관에게 문자로 보냈으나 수사를 열심히 하겠다는 문자 한통 이후로는 아무 연락이 없었다.

물론 책임감 있게 수사하고 자신들의 의무를 이행하는 검찰과 경찰도 많다. 하지만 당연한 의무조차 작은 사건이라고 무시하는 검경은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집단속이 먼저이다. 그들이 검찰이든 경찰이든 그들은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에 의무를 이행한 뒤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 배창영 부산시 영도구 동삼동

‘마니아’ 낳는 승부사, 직설화법은 ‘안티’ 부메랑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2008년 총선에서 대구에 출마했다가 2010년에는 경기지사로 출마한 것을 문제 삼았다. 또 한-미 FTA에 찬성했다가 입장을 바꾼 뒤 전농과 민주노총을 찾아다니며 사과한 일을 들었다.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는 최근 표정이 무척 밝아졌다. 정치적 재기의 기회를 잡은 때문일 것이다. 그는 15일 아침 통합진보당 대표단 회의에서 이런 말을 했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점차 높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당이 내부적인 통합, 총선 준비, 문화적 혁신 과정을 힘있게 밟아야 한다. 합쳐서 세력만 커진 것이 아니라 내용도 나날이 발전하는구나 하는 믿음을 국민께 드려야 한다."

지난해와 올해 유시민 대표는 수많은 정치적 좌절을 겪었다. 하지만 야권의 유력한 대선주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여전히 살아 남았다. 그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그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유시민 대표는 본래 눈물이 많은 사람이다. 어릴 때는 누나나 형보다 너무 작은 생선토막을 줬다고 울었다. 서울대 학생 시절 구로동에서 야학을 할 때는 나이 어린 여성 노동자들의 처지가 불쌍해서 울었다. 정치인이 된 뒤로는 좌절이 찾아올 때마다 울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도 펑펑 울었다.

그는 승부사다. 당구와 포커, 낚시를 좋아한다. 동시에 매우 감성적인 사람이다. 1985년 옥중에서 작성한 항소이유서는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러시아 시인 네크라소프의 시구로 끝난다. 오늘의 유시민이라는 정치인을 만든 것도 슬픔과 분노라고 보면 과히 틀리지 않는다.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한나라당 의원은 싫어하는 자기 당 여성 의원을 지칭하면서 "우리 당에도 여자 유시민이 있다"고 표현하곤 했다. 참여정부 시절 한나라당 사람들끼리 골프를 치면서 상대방의 실수를 유도하기 위해 "다음 대통령은 유시민"이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민주당 사람들도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김영춘 최고위원이 했던 "저렇게 옳은 소리를 저토록 싸가지 없이 하는 재주"라는 표현은 지금도 유시민 대표에게 굴레처럼 씌워져 있다.


왜 싫어할까? 정치인들에게 물어 보았다. 두 가지를 지적했다.

첫째, 예의가 없다고 했다. 예의를 속된 표현으로 바꾸면 '싸가지'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논쟁을 할 때 지나치게 직설적인 표현을 사용하거나 상대를 무시하는 듯한 말로 상처를 준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에서 의원총회를 할 때 나이 많은 의원이 앞으로 나가 발언했다. 그 발언에 동의하지 않았던 유시민 의원이 뒤에서 "밥먹고 합시다"라고 야유를 보냈다. 또 있다. 2003년 4·24 재보선으로 처음 국회의원에 당선돼 본회의장에 들어설 때 그는 '빽바지'를 입었다. 한나라당 의원 20~30명이 퇴장했다.

둘째, 일관성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교묘한 논리로 포장하는 데 능하다고 했다. 사례로는 100년 가는 정당을 만들겠다며 2002년 개혁국민정당(개혁당)을 창당해 놓고 바로 그 다음해에 당을 해산하고 열린우리당으로 들어간 일을 들었다. 2008년 총선에서 대구에 출마했다가 2010년에는 경기지사로 출마한 것도 문제를 삼았다. 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찬성했다가 입장을 바꾼 뒤 전농과 민주노총을 찾아다니며 사과한 일을 들었다. 과거 민주노동당 등 진보정당을 호되게 비판해놓고 지금은 통합진보당에 들어가 있는 것도 지적했다.

그러나 유시민 대표가 맞닥뜨리고 있는 가장 큰 장벽은 '호남'이다. 야권의 유력 정치인으로서 호남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치명적 한계일 수 있다. 호남 사람들의 유시민 대표에 대한 감정은 매우 복잡하다. 애증과 오해가 단단히 얽혀있는 모양새다.

영남 사람인 유시민 대표는 1987년 야권이 김영삼-김대중으로 갈려졌을 때, 김대중 편에 섰다. 그는 구로 지역 '서울지역 민주노동자회 준비위원회'라는 단체에 몸담고 있었다. 당시 김대중 후보는 그 단체가 낸 '비판적 지지 선언문'을 첫 방송 연설에 들고 가서 인용했다. 유시민 대표는 '보라매 집회'에 참석하고, 시청 앞까지 행진하는 대열의 선두에도 섰다.

그는 1997년 펴낸 책에서 호남에 대해 이렇게 적어 놓았다.

"나는 대구를 떠난 이후에는 경상도 출신치고는 전라도 사람들을 많이 겪어본 편이다. 대학 기숙사 식당 주방 아주머니들에서 봉천동 고개 꼭대기 달동네 자취방 주인 아주머니, 단골로 다니던 봉천 중앙시장 순대집 아저씨가 그랬고, 신산스러웠던 80년대를 헤쳐 나갔던 동지들 중에도 유난히 그 동네 출신이 많았다. 당원들이 거의 백 퍼센트 전라도 출신이었던 평민당에 들어가 관악을 지구당(신림동) 교육부장으로 일한 기간에 사귄 사람들도 많다. 나는 전라도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들은, 내가 겪은 바로는, 다른 지방 사람들에 비해 싹싹하고 정이 많으며, 기회가 생기면 적극적으로 재미있게 잘 논다."

"이렇게 보면 '전라도 혐오증'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특히 경상도 사람에게는 치료하기가 매우 어려운 정신적인 '질병'이다. 경상도 사람들은 (물론 다 그런 것은 절대로 아니다) 자기네가 30년 동안 대통령을 배출했다고 자랑하면서도, 그 대통령들의 잘못된 정책 때문에 피해를 본 전라도 사람들에 대해서 미안해 하기는 커녕 그들을 싫어하고 업신여긴다."

그랬던 유시민 대표가 호남 유권자들에게 거부당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한 배를 타고 정치에 몸을 담으면서부터다. 특히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을 앞두고 새천년민주당 안에서 이른바 '난닝구'-'빽바지' 논쟁이 벌어지면서 호남 사람들에게 유시민이란 이름은 '반호남'으로 각인됐다. 그는 지역을 팔아 사리사욕을 챙기는 '구태 정치인'을 싫어했다. 그가 만난 호남 출신 정치인들 중에 바로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 호남 출신 정치인들의 유시민 대표에 대한 혹평은 호남 사람들에게 확산됐다.

"마니아층을 가진 유일한 정치인이다. 아주 짧은 기간에 국회의원이 됐고 대선주자로 올라섰다. 그 또래 누구도 그런 정치 기획은 하지 못한다. 대선은 3개월~6개월 싸움이다. 기회는 있다고 본다."

그가 199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썼던 '97년 대선 게임의 법칙'도 뒤늦게 문제가 됐다. 그는 이 책에서 "디제이로는 안 된다"고 썼다. 그런데 '디제이'는 대통령이 됐다. 대선 승리감에 도취한 사람들은 당시에는 그냥 넘어갔다. 그러나 지역 문제가 나올 때마다 이 책은 두고두고 시빗거리가 됐다.

유시민 대표가 대선후보 지지율에서 한계를 보이는 것은 이렇게 정치인들과 유권자들에게 비호감 정서가 광범위하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경기지사에 출마했다가 낙선하고, 올 4·27 김해을 선거에서 국민참여당 이봉수 후보가 낙선하면서 기세가 꺾였다. 최근에는 대선후보 지지율이 3~4%에 머물고 있다.

유시민 대표 본인은 자신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그는 '나는 꼼수다'에 출연해 이렇게 말한 일이 있다.

"복합적 원인이 있습니다. 인격의 미성숙이죠. 지역 선정에도 미스가 있었습니다. 하필이면 왜 대구를 나가서. (중략) 별로 진지하게 정치를 안한거죠. 그게 제일 중요합니다. 삶을 걸고 책임성 있게,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서 안 한거죠. 그런 정치인을 사람들이 좋아하겠습니까?"

반성이 너무 처절하다. 유시민 대표는 자신이 대통령이 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전망한다. 그는 "이런 정도로 무슨 대통령이 되겠느냐. 후보도 못될 것 같다. 문재인 이사장에게 '형님이 하시라'고 말하고 있다"고 털어 놓은 적도 있다. 그를 추종하는 팬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참여정부에서 같이 일을 한 사람들의 생각은 좀 달랐다. 청와대 고위직에서 일했던 사람들에게 그에 대한 평가를 들어 보았다.

"마니아층을 가진 유일한 정치인이다. 아주 짧은 기간에 국회의원이 됐고 대선주자로 올라섰다. 그 또래 누구도 그런 정치 기획은 하지 못한다. 대선은 3개월~6개월 싸움이다. 기회는 있다고 본다."

"스토리가 있는 정치인이다. 머리가 너무 좋아서 문제지 재능은 뛰어난 사람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유시민 대표를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발탁할 때 한명숙 총리와 열린우리당의 반대를 무릅썼다. "장관직은 잘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게 이유였다. "나도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단서를 붙였다. 유시민 대표는 장관을 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보건복지부 고위 관계자의 회고다.

"처음엔 걱정을 했다. 너무 튀는 사람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그런데 장관으로서 철학과 정책 능력에서 손색이 없었다. 판단이 빠르고 방향을 정확히 제시했다. 정치적으로 해결할 부분은 자신이 나서서 정리했다. 직원들을 잘 다독이며 끌고 나갔다. 뛰어난 장관이었다."

유시민 대표는 대통령 꿈을 접은 것일까? 아닌 것 같다. 그와 가까운 인사는 "선거연대로 내년 총선에서 성적을 잘 내면 유시민 대표의 진로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며 "정치적 도전의 기회가 반드시 다시 올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진보정당 당원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던 '유시민에 대한 비호감' 정서는 통합 과정을 통해 많이 해소되었다. 유시민 대표가 그 나름의 진정성을 갖고 열심히 노력한 덕이다. 앞으로도 그가 이런 식의 '진정성 행보'를 계속할 수 있을까? 지켜 볼 일이다. shy99@hani.co.kr

"책으로 국민과 소통"…저서 15권 펴내

선거철이 다가오면 국회 기자실에는 정치인들이 쓴 새 책들이 산더미처럼 쌓인다. 대부분 자신의 인생역정을 정리한 에세이집으로, 출마를 위한 홍보 책자인 경우가 많다. 출판기념회를 열면 기업과 기관에서 '보험' 성격으로 책을 사주는 경우가 많아 '수익'을 내기도 하지만, 어지간히 영향력 있는 정치인이 아니면 '큰돈'은 못 번다. 정치인의 이런 일반적인 책 쓰기 패턴에서 벗어난 대표적인 이가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다. 현역 정치인 가운데 저서가 가장 많다. 프리랜서 시절뿐 아니라 정치인으로 변신한 뒤에도 꾸준히 책을 썼다. 선거에 맞춰 책을 급하게 쓴 게 아니라서 공짜로 뿌리지도 않는다.

유 대표는 '저서의 정확한 규모와 판매량'을 묻는 질문에 "글쎄요, 저도 제가 몇 권을 썼는지, 그 책들이 얼마나 팔렸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네요"라고 멋쩍게 답했다. 그러면서 "책을 많이 쓴 건 솔직히 생계에 보탬이 좀 되려 했던 동기가 많았다"고 말했다. 20만부 정도 팔린 는 유 대표가 재정적인 어려움에 처했을 때 출판사에서 선금을 받아 생활한 뒤 뒤늦게 원고를 전달한 경우다.

유 대표가 쓴 책을 찾아보니, 개인 저서가 등 모두 15권이었고, 공동 저자로 참여한 책이 등 4권, 편역본인 시리즈도 12권이었다.

그가 쓴 첫 책은 '서울대 프락치 사건'을 다룬 (1986년)이지만, 대중에게 자신의 이름을 처음 알린 책은 (1988년)다. 유 대표가 수배를 받을 때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쓴 이 책은 한때 대학 새내기의 필독서로 꼽혔고, 출간 뒤 지금껏 73만부가 팔렸다.

이밖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맞아 "가장 아픈 마음으로 정리했다"는 (2010년)는 20만부가 팔렸다. (2002년)가 13만부, 그가 쓴 책 중에 "가장 애정을 갖고 있다"는 (2009년)는 12만5천부가 팔렸다. 광주청문회 때 수집된 자료를 정리한 (1990년)는 2004년에 영문판(Memories of May 1980)으로 번역되기도 했다.

그가 가장 최근에 낸 책은 로, 지난 4월 출간됐다. 4월 재보선을 앞두고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시기였다. 그는 이 책의 말미에 자신이 책쓰기를 놓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정치인이 국민의 의지를 결집하고 대표하려면, 국민과 소통하고 교감해야 한다. 소통과 교감은 대중매체의 단편적 보도에 제한될 수 없으며, 제한되어서도 안 된다. 정치인의 글쓰기는 시민과 직접 소통하고 교감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유 대표의 지지자들은 대체로 '충성도'가 매우 높은 편인데, 이들 중엔 대중매체가 아니라 책을 통해 그를 '깊게 오래' 만난 이들이 꽤 많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2011-12-15

[김효순 칼럼] 박태준과 수요시위로 본 한-일 관계

'철강왕'으로 불리던 박태준씨가 세상을 떠났다. 포스코(포항제철)가 오늘날 세계 굴지의 철강회사로 자리잡은 역사는 그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애초 영일만의 허허벌판에 종합제철소를 세우려던 계획은 1960년대 후반 미국·영국·독일·이탈리아 철강회사들로 구성된 국제차관단을 통해 자본과 설비 도입을 하는 쪽으로 추진됐다. 하지만 채산성이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구미의 회사들이 투자를 망설이는 바람에 제철소 건설은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이 무렵 40대 초반의 박태준이 도움의 손길을 요청한 사람은 일본 정·재계의 정신적 지도자로 군림하고 있던 야스오카 마사히로였다. 양명학에 정통한 동양사상학자로 일제 때 우익운동이나 군부에 영향을 끼쳤던 야스오카는 일본의 패망 이후 한동안 공직 추방 조처를 당했지만, 바로 예전의 위상을 회복했다. 요즘 유행어로 하면 자민당 유력 정치가나 재계인들의 막후 '멘토'였다. 현재 아키히토 일왕의 연호인 헤이세이(평성)는 그가 생전에 고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이가 거의 30살 차이가 나는 박태준이 찾아와 고충을 토로하자 야스오카가 그 자리에서 전화를 걸어 연결해준 사람이 이나야마 요시히로다. 이나야마는 우리의 전경련에 해당하는 경단련의 회장을 지낸 재계의 거물인데, 당시는 야하타제철의 사장이었다. 그는 1970년에는 후지제철과 합병해 세계적 철강회사인 신닛테쓰(신일본제철)를 설립해 3년간 사장으로 재직했고 다시 회장으로 9년을 지냈다. 그가 일본의 다른 철강회사들을 모아 박태준의 구상을 지원해주었다.

야하타제철의 전신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해 식민지로 만드는 전초전이 되는 청일전쟁의 배상금으로 지은 것이다. 일본은 늙은 제국 청을 제압한 뒤 거액의 배상금을 뜯어냈는데 이자까지 합치면 총액이 당시 일본 연간 예산의 2배가 넘었다고 한다. 그 돈으로 육군과 해군의 상비군 규모를 대폭 늘리고 병기·군함의 자급조달을 위해 규슈 야하타에 관영 제철소를 지었다. 1901년부터 조업을 시작한 이 제철소는 일제의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을 지탱하는 원동력이 됐다. 군비확충이나 산업건설뿐만 아니다. 명문대학의 하나인 교토대학의 전신 교토제국대학도 청일전쟁의 배상금으로 지어졌다. 이러니 근대 일본은 조선을 전쟁터로 유린하고 무참하게 살해된 조선인들의 희생 위에 세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제 일본대사관 앞에서 군대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는 수요시위가 열렸다. 1992년 1월 미야자와 기이치 당시 총리의 방한을 앞두고 시작한 이래 무려 1000회째다. 단일 주제로 모이는 시민집회로는 오래전에 세계기록을 경신했다. 당시 미야자와 총리의 방한 결과에 대해서는 일본에서 불평이 많았다. 총리 취임 이후 첫 방문지로 한국을 선택해 새로운 한-일 관계를 열려고 했는데 위안부 문제가 돌출하는 바람에 곳곳에서 사죄발언을 하느라 망신만 당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는 평지 돌출한 것이 아니다. 식민지배의 악행에다 전시 강간, 여성차별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피해자들이 공개적으로 나서기가 대단히 어려웠던 사정이 있었다. 위안부 문제가 본격적으로 공론화된 데는 윤정옥 교수가 1990년 1월 에 연재한 답사기가 큰 구실을 했다. 이후 김학순 할머니가 이름을 밝히고 일본 법정에 제소를 하자 필리핀·대만·타이·네덜란드 등의 피해여성들이 증언에 나섰다. 이 문제는 유엔 등 국제무대로 번져 전시 성노예를 강요했던 만행으로 규탄됐고 2000년 12월에는 도쿄에서 일본군 성노예를 심판하는 여성국제법정이 열렸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진지하게 대응하기는커녕 우익들의 반발로 교과서 기술에서조차 지워버리는 뒷걸음질을 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기대는 전가의 보도는 1965년의 한-일 협정으로 식민지지배의 모든 문제가 완전히 영구히 해결됐다는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 일각에서 협정 재개정을 요구하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으나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한쪽에서는 뉴라이트가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의 벌거벗은 모습이다.

김효순 대기자 hyoskim@hani.co.kr

2011-12-13

“내 불출마는 영·호남 기득권 구도 깨고소통하는 정당과 국회 만들자는 호소”

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정장선(54·3선·사진) 민주당 사무총장의 얼굴은 평온했다. 내려놓으니 마음이 편안하다고 했다. 가족들도 19대 총선에 나가지 않겠다는 결심을 환영했다고 한다.

"군에 있는 큰아들이 방송을 보고 전화로 '잘하셨다. 화이팅'하고 성원하더라. 올해 대학 들어간 둘째 아들도 기뻐했다." 평택의 공립고등학교 교사로 재직중인 정 의원의 부인도 "앞으로 10년은 더 (교직을) 해야겠다"며 남편의 결정에 힘을 실었다고 한다.

정 의원은 지난해 겨울 칼바람에도 좌판을 열고 나물 파는 할머니들을 보면서 한국의 정치가 그들에게 과연 무엇을 해주고 있는지 거듭 고민했다고 했다.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어려운 삶을 보게 되면 스스로 절제하게 된다. 국회의원이 주말에 골프 치고 다니는 것이 정말 타당한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정부·여당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날치기를 보면서 한국 국회와 정치의 '불통'에 뭔가 파열구를 내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고 했다. 4대강 예산 날치기 처리 때부터 시작됐던 고민이었다고 한다.

"여당은 강행하고, 야당은 저지만 하면 양쪽의 선명함은 커질지 몰라도 한국 사회 갈등은 더 커진다. 대화가 해결이 아닌 핑계를 위한 수단이 되는 국회는 변해야 한다."

그는 지난 11일 민주당 전당대회 폭력사태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은 듯했다. "그런 구태들이 으레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관성이 문제다. 속으로는 분노하면서도 아무 말도 않는 관성을 깨고 단호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그는 당 사무총장으로서 이번 폭력사태에 대해 책임을 묻는 조처를 취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그러면 한국 정치를 어떻게 바꿔야 한다는 것인가. "이제는 사람을 바꾼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다. 판 자체를 바꿔야 한다. 대화가 되고, 소통이 되는 정당과 국회로 바꿔야 한다. 영남과 호남을 근거로 양당이 기득권을 유지하는 구도를 깨야 한다. 저의 불출마는 이런 구조를 만들자는 호소다."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대기업 임원으로 승진하면 달라지는 것들
[정석구 칼럼] '독재자의 딸'과 꽃가마
냉방서 자며 폐지 모아 "전재산 기부"…위안부 할머니의 '마지막 나눔'
반토막 난 '7·4·7 공약'…'MB물가'는 22% 올라
도요타 구원투수는 김태희·이민호?

‘연봉 천만원 야구단’ 고양 원더스 창단김성근 “해도 달도 안 보일 때까지 훈련”

12일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한국야구 최초 독립야구단인 고양 원더스 창단식. 허민 구단주가 구단기를 등번호 '38번'의 김성근(69) 초대 사령탑에게 넘겼다. 허 구단주는 "우리 팀 성격은 한번 실패한 선수들에게 프로 1군에 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기에 훌륭한 감독님이 꼭 필요했다. 구단기를 전해드린 것은 구단 운영 전권을 감독님께 드린다는 의미"라고 했다. 베테랑 감독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의 표시였다. 강직한 성격의 김 감독은 그동안 프런트와 갈등하면서 12차례나 경질된 바 있다.

김성근 감독은 취임사에서 "야구인으로 현장을 떠날 때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내 인생 마지막 행운이 아닌가 싶다"며 "선수들 얼굴을 처음 봤는데 앞으로 무에서 유를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애초 1월부터 선수들을 훈련시키려고 했으나 일정을 앞당겨 이번주 안으로 훈련장인 전주로 내려갈 계획.

김 감독은 "구본능 야구위원회(KBO) 총재께서 공 3600개를 주셨는데 연습을 많이 시키라는 뜻으로 알겠다"며 "해가 안 보일 때까지, 달이 안 보일 때까지 선수들을 훈련시키겠다"고 했다. 김광수 수석, 신경식 타격, 박상열 투수 코치 등이 보좌한다. 대부분 김 감독의 제자들이다.

올 시즌 뒤 롯데에서 고양 원더스에 둥지를 튼 포수 이승재(28)는 선수들을 대표해 "고양 원더스가 희망과 기회를 줘서 고맙다. 다시 일어서서 1군 무대로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현재 고양 원더스에는 45명의 선수들이 훈련중이다. 선수들의 연봉은 프로야구 신고선수 연봉(2000만원 안팎)보다 적은 1000만원(월 100만원). 그러나 일본 고치로 전지훈련을 가는 등 대우는 괜찮다. 2012년에는 퓨처스리그에서 교류경기 형식으로 총 48경기를 소화한다. 리그의 공식 팀이 아니기 때문에 기록은 따로 관리된다. 고양/김양희 기자

[편집국에서] 돈 없이 행복할 수 없는 이유 / 정남기

연말이 되니 여기저기서 송년모임이 잦다. 이런 자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대화 주제가 학생들의 입시, 취업 문제다. 입시난과 취업난의 실태를 새삼 거론할 필요는 없다. 한번 채용공고를 내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카이스트 출신만 모집 정원의 5~10배가 몰려든다는 것이 대기업 최고경영자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과거에는 입시 전쟁을 치르고 나면 대학에서 잠시 숨 돌릴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입시 전쟁이 끝나는 순간 취업 준비에 매진해야 한다. 10대부터 20대 후반까지 젊음을 사실상 반납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요즘 젊은이들은 한가하게 젊음을 누릴 처지가 못 된다. 그랬다가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백수'나 '백조' 신세를 면하지 못한다.

이렇게 해서 얻는 게 뭘까? 안정적인 직장, 사회적 지위, 돈? 어떤 것도 충분한 보상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연간 수천만원씩 들여 대학 보내도 다시 취업 준비를 위해 밤낮으로 공부하고 학원까지 다녀야 하니 수지타산이 맞는 일인지 의문이다. 그 돈을 복리 이자로만 굴려도 자식들에게 집 한 채는 마련해줄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진짜 매운맛은 사회에 나온 뒤부터다. 알량한 월급을 받는 대가로 삶의 일부를 저당잡히게 된다. 그뿐인가? 결혼해서 처자식이 생기면 고용주에게 꼼짝 못한다. 현대판 노예와 다를 것이 없다.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자유로운 삶의 일부를 반납하고 스스로 구속당하는 것이다. 미국 정치가 애들레이 스티븐슨이 "배고픈 사람은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방법은 두가지다. 세속적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유로운 영혼이 되는 길이 있고, 많은 돈을 벌어 스스로 자본가가 되는 길이다. 하지만 세상과 멀어져 자유로운 영혼이 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에 매달리고 집착한다. 첫째는 생계를 위해, 둘째는 자유를 위해서다.

그래서 나는 돈을 향한 사람들의 열망을 단순한 이기심이나 탐욕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빼앗긴 자유를 되찾기 위한 치열한 투쟁이라고 해야 맞을 듯하다.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속박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대다수 사람들에겐 꿈 같은 얘기다.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의 저자 애덤 스미스도 "한명의 큰 부호가 있으면 적어도 500명의 가난한 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소수의 풍요는 다수의 빈곤을 전제로 한다"고 했다.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사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없이 자유로울 수 없고, 자유 없이 행복할 수는 없다. 결국 돈 없이도 행복할 수 있다는 얘기는 실현될 수 없는 꿈 같은 얘기다.

다만 이런 현실을 완화시킬 수 있는 수단은 있다. 정부가 가진 힘이다. 정부는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삶의 질을 보장하게 함으로써 팍팍한 현실에서 숨통을 터줄 수 있다. 법으로 노동시간을 제한해 노동자들의 저당잡힌 삶을 일부 되돌려줄 수도 있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숱하게 많은 공약이 발표될 것이다. 입시난과 취업난 해소를 위한 대책도 여기저기서 쏟아질 게 분명하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은 그런 허황한 약속을 믿고 기다릴 만큼 한가하지 않다. 그들은 오늘도 입시 전선과 취업 전선에서 피를 흘리면서 싸우고 있다. 그렇게 그들의 젊음이 사라져가고 있다.

정남기 경제부장 jnamki@hani.co.kr


[정석구 칼럼] ‘독재자의 딸’과 꽃가마

박근혜 의원이 어제 한나라당 의총에서 비상대책위원장에 추대됐다. 최대 위기에 몰린 한나라당이 수습의 큰 가닥은 잡은 셈이다. 한나라당이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는 우리 정치사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파산한 정당 하나를 리모델링하는 차원을 넘어설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해방 이후 우리 사회의 주류를 자처해온 보수세력을 대변한다는 보수정당이다. 사실 말이 보수정당이지 수구·극우적인 성향이 짙다. 한나라당은 이번 위기를 적당히 추슬러 화장만 바꾼 채 목숨을 연명할지 아니면 진정한 의미의 보수정당으로 다시 태어날지 갈림길에 서 있다. 한나라당이 이번 위기를 계기로 진정한 보수적 가치를 지향하는 보수정당으로 거듭난다면 우리 사회의 정치·경제적 지형에 엄청난 회오리를 몰고 올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선 그럴 가능성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보는 가장 큰 이유는 '박근혜 구세주론'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막다른 골목에 이르자 결국 박근혜 의원을 불러냈다. 박 의원이 전면에 나서기만 하면 만사형통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당내에 그만한 지도력을 가진 인물이 없고, '천막당사'를 통해 위기에 처한 한나라당을 구해낸 경험도 있기 때문일 터이다.

하지만 지금의 위기는 천막당사 때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1 대 99의 사회로 상징되는 것처럼 우리의 사회·경제적 환경이 급변했고, 에스엔에스(SNS) 등 미디어 환경도 질적으로 바뀌었다. 문명사적인 대전환기에 들어섰다는 분석까지 나올 정도다. 그렇고 그런 과거 인물 몇몇으로 지도부를 바꾼다고 해결될 상황이 아니다.

더욱이 박근혜 의원이 누구인가.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다. 박 대통령에 대한 엇갈린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가 집권 18년 동안 민주주의를 짓밟고 독재정치를 자행했다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100개, 1000개의 형광등 아우라로 치장한다 해도 이런 역사적 사실이 감춰지진 않는다. 그런 독재자의 딸인 박 의원이 꽃가마를 타고 한나라당을 쇄신하겠다고 나선들 이에 감동할 국민이 얼마나 되겠는가.

한나라당 안에는 훌륭한 인재들이 적지 않다. 이명박 정부 초기부터 줄기차게 쇄신을 주장해온 정두언 의원을 비롯해 김성식, 유승민 의원 등은 자질과 능력, 그리고 이념적인 측면에서 진정한 보수적 가치의 대변자로 부족함이 없다. 한나라당이 내부의 안정을 넘어 진정한 보수정당으로 거듭나려면 차라리 그런 이들로 지도부를 구성하라. 그런 정도의 파격적인 변화가 아니라면 한나라당은 천막당사 아니라 풍찬노숙을 해도 진정한 보수정당으로 거듭나기 어렵다.

정책적인 변화는 더욱 절실하다. 그동안 자칭 보수라는 세력이나 정당은 실제로는 수구 기득권 세력과 공생해왔다. 친일·독재의 향수를 되살리려는 수구세력의 움직임에 눈감고, 미국 일변도의 사대외교를 폄으로써 국가 정체성과 주체성을 뒤흔드는 데 일조했다. 북한과 극한 군사적 대치를 계속하며 동족 간의 갈등과 불화를 심화시키고, 강남 땅부자와 재벌 위주의 경제정책을 펴도 그로 인한 반사이익 챙기기에 안주했다. 이는 보수가 가야 할 길이 아니다.

한나라당이 이번에 제대로 된 보수정당으로 거듭나려면 수구·극우 세력과 확실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수구세력과 절연하는 결단과 진통 없이, 화합과 통합이 살길이라며 이들과 어깨동무하고 가려 한다면 기다리는 건 파멸뿐이다. 비록 내년 선거에서 지더라도 진정한 의미의 보수정당으로 거듭나는 게 장기적으로 한나라당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정치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

쇄신파들의 향배도 관심거리다. 진정한 보수의 가치를 추구해온 쇄신파들의 충정은 높이 살 만하다. 하지만 그들은 수구·우익 성향의 한나라당 본색은 바꾸지 못한 채 한나라당도 쇄신을 하고 있다는 생색내기용 들러리에 머물렀다. 한나라당이 최대 위기에 빠진 지금이야말로 쇄신파가 그들의 목소리를 관철할 절호의 기회다. 부디 성공하여 한나라당을 진정한 보수적 가치를 실현하는 새로운 정당으로 변화시키기 바란다.

만약 이번에도 쇄신에 실패한다면 더 이상 미련 두지 말고 한나라당을 떠나라. 헛심만 쓰는 모습을 계속해 보는 것도 이제는 안쓰러울 것 같다.

정석구 논설위원실장 twin86@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