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03

[특파원 칼럼] FTA, 멋진 신세계 / 권태호

미국 민주당은 여당임에도
왜 FTA에 무더기반대표를 던졌나

3주마다 돌아오는 칼럼이 회전칼날 같을 때가 많다. 주제 찾기가 가장 힘들지만, 가급적 '에프티에이'(FTA)는 애써 피하려 했다. 복잡한 에프티에이 조항을 시시콜콜하게 꿰지 못하며, 또 '에프티에이 세상'이 어떻게 펼쳐질지, 미래의 일을 지금 알지 못하기에 자신이 없어서다. 그러나 최소한 이것만은 알 것 같다. 우리 경제가 더 발전할진 모르겠으나,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며, 강한 자는 더 강하게, 약한 자는 더 약하게 될 것이며, 강한 자에게도 세상은 점점 더 팍팍해질 것이라는 것을.

올해 미국 추수감사절 쇼핑시즌에 한국에서의 인터넷 직접주문이 급증했다. 공산품 가격은 미국이 훨씬 싼데다, 추수감사절 세일로 배송료를 포함해도 30~50% 싸기 때문이다. 한 국내신문의 가격비교를 보니, 한국에서 23만원 하는 폴로 패딩점퍼의 미 추수감사절 세일가격은 9만5000원이다. 나도 추수감사절 다음날 바지와 오리털점퍼를 샀다. 바지는 25달러, 점퍼는 100달러, 메이커 제품이었다. 한국 할인점에서 3만원 하던 와인이 미국 슈퍼에서 7~8달러에 팔리는 걸 보면서 배신감(?)을 느낀 적도 많다. 에프티에이가 이행되면 우편서비스가 민간에 개방된다. 배송료가 낮아지면, 미국 업체와의 가격경쟁을 이겨낼 국내 유통업체가 얼마나 있을까? 이기려면 미국처럼 해야 한다. 미국 판매 의류 중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는 거의 없다. 인건비를 줄이려 계산대 외에는 매장 판매원을 거의 두지 않는다.

농축산업? 워싱턴과 맞붙은 버지니아주는 남한보다 더 넓다. 버지니아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리뻗는 81번 고속도로를 타면 7시간 내내 도로 양옆으로 넓은 목장이 끝없이 펼쳐진다. 점점이 박힌 소떼들이 염소 새끼 같다. 버지니아는 목축업이 특화된 곳도 아니다. 남한 면적의 4배가 넘는 캘리포니아주를 종단하면 오렌지 농장 지평선이 계속 이어진다. 한국과 미국이 농업으로 경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값싸고 질 좋은 소고기' 싸게 먹으니 멋진 신세계인가? 한-미 에프티에이가 한국이 100% 손해 보는 장사는 분명 아니다. 미국보다 경쟁력 있는 자동차는 더 많이 팔릴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자동차산업은 지금도 잘나가고 있고, 한국의 농축산업은 지금도 어렵다.

미국도 '무역'에 대해선 안 좋은 기억이 많다. 미국에서 무역이란 덜 교육받은 노동력을 희생해, 최고의 교육을 받은 노동력에 소득을 더 몰아주는 것으로 인식된다. 에프티에이 미 의회 비준 의결에서 서민을 대변하는 민주당이 여당임에도 무더기 반대표를, 부유층을 대변하는 공화당이 야당임에도 무더기 찬성표를 던진 이유다. 에프티에이가 이행되면, 뉴욕 법률회사 변호사의 휴일근로수당은 늘어나고, 디트로이트 자동차공장 노동자의 의료보험 지원수당은 더 줄어들지 모른다.

그리고 또다시 '새벽종이 울렸네'를 합창해야 하는 시대가 재현될지 모르겠다. 추수감사절 다음날 폭탄세일을 하는 '블랙 프라이데이'의 올해 풍경은 조금 달랐다.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시간을 앞당겨 월마트는 추수감사절 당일인 밤 10시, 베스트바이는 밤 12시에 문을 열었다. 미 언론들은 "1년에 한 번 온 가족이 모이는 저녁식사를 망쳤다", "칠면조가 식기도 전에 매장 앞에 줄서야 한다"며 비판했다. 그러나 월마트는 추수감사절 매출에서 아마존, 애플에 이은 3위를 기록했고, 베스트바이는 주가도 3.4% 올랐다. '남과 같아선 이길 수 없는' 세상이 1980년대에 시작됐는데, 이젠 그 무한경쟁이 미국까지 확대됐다. 미국은 한국보다 인구는 6배, 국내총생산(GDP)은 15배, 면적은 100배다. 그래서 우리 모두 '장인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 올 것 같다. '설렁설렁 살아도' 되는 봄날은 갔다. 권태호 워싱턴 특파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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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1

야권·진보 통합정당 이름짓기 쉽지않네

야권이 이른바 '민주통합정당'과 '통합진보정당' 두 세력으로 재편되면서, 새로 출범할 두 정당의 당 이름도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정당의 이미지뿐 아니라 정당이 추구하는 가치를 담아낸다는 점에서 통합에 참여하는 주체들에겐 매우 예민한 대목이다.

민주당과 '혁신과 통합', 한국노총 등이 참여하는 당은 '민주', '통합', '혁신', '진보' 등의 단어가 우선 고려 대상이다. 민주당의 세력과 정통성을 인정해 약칭을 '민주당'으로 부를 수 있는 당 이름을 정하자는 데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정식 이름으로는 '민주통합당', '민주통합혁신당', '민주진보통합당' 등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통합민주당'은 2007년 존재했던 '대통합민주신당' 때문에 다시 쓰긴 어려워 보인다.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출신의 '통합연대'가 참여하는 새로운 당 이름은 이들 3자가 각각 1개씩 당 이름을 추천한 뒤 당원 전수조사(50%) 및 여론조사(50%)로 결정한다.

민노당은 통합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 민주진보당, 진보노동당 등을 놓고 자체 여론조사를 하는 중이다. 당원이 가장 많은 민노당 내부에선 '통합민주노동당'을 제시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통합연대는 '진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통합진보당 등을 선호하고 있고, 국민참여당도 '참여'라는 단어에 애착이 있어 당이름 조합이 복잡해질 가능성이 있다.

양쪽 모두 약칭이 '민주당', '민노당'이 될 경우, 익숙하긴 해도 '변화와 통합'에 걸맞은 새로운 느낌을 줄 수 없다는 약점이 있다. '진보당'이라는 약칭은 진보신당이 있기 때문에 사용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또다른 관전 포인트는 '통합'이라는 단어의 사용 여부이다. 지금껏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통합'이라는 단어가 들어갈 때 지지율이 높게 나와 양쪽 모두 통합이라는 단어를 포기하기 쉽지 않다. 반면, 통합되지 않은 두 야당이 '통합'이라는 단어를 쓰는 걸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곤혹스러운 대목이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위기의 찌아찌아 한글교육

[세계] 표기문자로 한글을 도입한 지자체장 임기는 끝나가고 중앙정부는 "언어정책 거스른다" 비판… 한국의 경제적 지원 바라지만, 외교 문제 때문에 돕기도 힘들어

햇볕이 내리쬐는 지난 10월30일 오후 2시께. 한글을 문자로 도입해 관심을 모은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주 남부 부톤섬의 바우바우시 찌아찌아족 마을 소라월리오는 평화로웠다. "안녕하세요!" 동네 어귀에 들어선 한국인을 알아보고 찌아찌아족 아이들이 인사를 건넸다. 악수를 청하자, 수줍게 미소짓던 라스나양사(11)는 손 대신 공책을 내밀었다. 연필로 그린 커다란 하트 안에 뜻 모를 한글이 공책 한 면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어제 친구한테 배웠어요." 라스나양사와 친구들의 이름이었다.

그만둘까 고민하는 유일한 한글 선생님

올해 카르야바루 국립초등학교 4학년 라스나양사의 한글 선생님은 한 학년 선배인 에비(12)다. 지난밤,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에 모여 놀던 라스나양사와 친구들은 그렇게 처음 한글을 접했다. 생경한 문자인 한글로 낙서를 하고 가르쳐주기도 하는 일상은 2009년 7월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표기문자로 도입하자 생긴 변화다. 찌아찌아족은 500여 년간 문자 없이 입말로 그들의 언어를 유지해왔다. 현재 소라월리오를 중심으로 술라웨시주 남부에서 6만 명가량이 쓰는 찌아찌아어는 한글을 도입해 기록으로 보존할 계기가 마련됐다.

그러나 라스나양사와 에비가 손꼽아 기다리는 한글 수업은 2주째 취소됐다. 찌아찌아족의 유일한 한글 선생님인 아비딘(34)이 몹시 바빴기 때문이다. 아비딘은 2009년 서울대에서 6개월간 한국어를 배운 뒤 돌아왔다. 그는 한글로 된 첫 찌아찌아 책이 발간된 2009년 7월부터 현재까지 혼자서 한글을 가르쳐왔다. "아이들이 기다리는 걸 아는데, 도저히 짬을 낼 수 없었어요. 어휴, 이번 학기에만 혼자서 일주일에 3개 학교의 14학급 380명에게 한글을 가르쳐야 하는데 정말 벅차네요. 제 원래 과목인 영어 수업도 해야 하고…." 10월29일 카르야바루 국립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만난 아비딘의 얼굴에는 미안함과 피곤함이 동시에 묻어났다.

아비딘을 기다리는 것은 카르야바루 초등학교 학생만이 아니다. 고등학교 2학년 주마르니(18)는 고1이던 지난해에는 바우바우 제6고등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웠다. 올해 초 새로 개교한 농업고로 전학한 뒤론 한국어를 다 잊어버렸다. 한국어 수업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와 '감사합니다'밖에 기억이 안 나요." 칠판에 한글로 이름을 겨우 써낸 주마르니는 "처음 배울 때는 더 잘 썼다"며 삐뚤빼뚤한 손글씨를 머쓱해했다. 한국의 농촌진흥청 지원으로 한글로 표기된 농업 교과서도 발간됐지만, 이 학교 교사 피트리아(23)는 "내년부터 새 농업 교과서를 교재로 쓸 예정이지만, 나도 학생들도 아직 한글을 읽고 쓸 수 없다"고 말했다.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활용하려는 시도가 늘지만 문자가 정착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교육 환경과 제반 여건이 열악한 탓이다. 교사는 지난 2년간 단 1명이고, 교재는 2009년 8월 발간된 과 아비딘이 한국에서 가져온 한국어 교재 2권뿐이다. 아비딘은 "찌아찌아말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에 가르치는 일은 즐겁지만, 지금처럼 혼자서 해나가야 한다면 그만둘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

일자리 기대하고 도입했으나

찌아찌아족의 한글 교육이 어려움을 겪는 현실은 충분한 준비 없이 지방자치단체장의 의지만으로 시작된 탓이 크다. 찌아찌아족과 한글의 인연은 2005년 바우바우시에서 열린 국제고문헌학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국외국어대 전태현 교수(마인어 통번역학)가 현 바우바우시 아미룰 시장에게서 찌아찌아족의 사정을 처음 접했다. 찌아찌아족이 바우바우시의 여섯 종족 중 경제적으로 가장 낙후한데다 이들의 언어가 소멸될 위기에 놓였다는 것이다. 이후 전 교수는 한글 세계화 사업을 구상하던 훈민정음학회에 찌아찌아족을 소개했고, 바우바우시와 훈민정음학회의 제안에 따라 찌아찌아족은 부족장 회의를 거쳐 한글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찌아찌아족과 한글의 공식적 만남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인도네시아 교육부 산하 언어개발기구의 수기요노 박사는 지난 11월11일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공식 문자로 도입한 것은 중앙정부의 언어정책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도네시아 헌법에 따라 제정된 법률 24호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인도네시아어를 공식 언어로 사용해야 한다. 공식 문자인 로만라틴이 있는데 또 다른 문자체계를 채택하는 것은 위법이다." 수기요노 박사의 말은 단호했다. 이에 대해 찌아찌아족 한글표기법을 연구한 서울대 이호영 교수(언어학)는 10월24일 전화 인터뷰에서 "찌아찌아의 한글 보급은 잘못하면 외교 갈등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 한국 정부, 학계, 민간단체에서 돕겠다고 나서기엔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이렇듯 치밀한 정책적 협의 없이 추진된 터라 찌아찌아족의 한글보급사업은 불안정한 상태다.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던 바우바우시장은 임기가 2012년 12월에 끝나고, 3선이 금지돼 재출마할 수 없다는 사실도 불확실성을 키운다. "술라웨시섬에는 2000년대 초반부터 많은 한국 기업들이 들어왔다. 가스 등 지하자원 개발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낙후한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배워두면 한국 기업에서 일자리를 찾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판단했다." 지난 10월31일 바우바우시청에서 만난 아미룰 시장은 '왜 찌아찌아족에게 한글 도입을 권했느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지만, 자신의 구실은 거기까지라고 잘라 말했다. 사실상 찌아찌아족의 한글 정착을 위한 재정은 전적으로 외부에 기대고 있다.

든든하던 외부 지원이 흔들리는 것도 한글 교육을 중단시키는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바우바우시와 훈민정음학회의 관계가 소원해졌기 때문이다. 지난 3월 바우바우시장은 훈민정음학회가 초기에 약속한 경제지원 등을 성실히 이행하지 않는다며 협력관계 결렬을 선언했다. 훈민정음학회 이기남 이사장은 지난 11월12일 전자우편을 통해 "훈민정음학회는 찌아찌아어 교과서 출판과 교사 아비딘 한국어 연수 비용을 전적으로 부담했다"며 "그외의 경제적 지원은 약속한 바가 없다"고 밝혔다. 바우바우시는 서울시와 2009년 12월, 농촌진흥청과는 2010년 10월 각각 문화와 농업기술 교류협력 의향서를 체결했지만 이 기관들은 한국어 교육 등 본격적 재정지원은 꺼리는 상태다.

"찌아찌아어 위해 지키고 싶어"

한글 교육이 교착상태에 놓였지만 찌아찌아족은 여전히 기대하는 바가 크다. 지난해부터 제6고등학교에서 아비딘에게 한글 수업을 받는 삼실(18)에게는 작은 바람이 생겼다. "찌아찌아말은 우리의 상징이에요. 한글을 통해 찌아찌아어가 기록된다면, 고유의 문화와 역사를 지켜나갈 수 있다고 믿어요." 와수디(54)도 한글을 배우고 싶어 한다. "한글로 표기된 찌아찌아 이야기책을 손주들 잠자리에서 읽어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한글이 찌아찌아어를 지키고 경제적으로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하는 희망이라고 생각해요." 한글교사 아비딘은 찌아찌아어가 가정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라지는 찌아찌아어와 역사를 지켜나가야겠다고 이제 막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한글을 통해 보존 가능성을 확인했고, 찌아찌아어를 위해서 한글을 지키고 싶어요."

바우바우(인도네시아)=글·사진 이슬기 통신원 skidolma@gmail.com

[세상 읽기] 카페인 공화국 / 정재승

요즘 커피하우스의 인기가 하늘을 뚫겠다. 커피전문점들이 도시의 거리를 메우고 좁은 골목들까지도 빼곡히 채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 많은 커피를 누가 다 마실까?

구글에 쳐보니, 매년 한 사람이 마시는 커피의 양은 평균 400잔 정도. 5000만 인구가 200억잔을 마셨다는 얘기다. 국내 커피시장 규모도 연간 3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2010년 말 우리나라에 프랜차이즈 커피하우스가 약 9400개 있었다고 하니, 1년이 지난 지금 족히 1만개는 넘었으리라.

한때 커피하우스는 한가로운 기운이 넘쳐나는 평화롭고 여유있는 공간이었다. 원기를 되살리고, 슬픔을 위로하며, 천재들을 한결 명민케 해준다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사람들은 커피하우스를 찾았고 그곳에서 사색을 즐겼다. 커피하우스는 커피에 담긴 카페인이 피곤한 뇌에 축적된 아데노신과 싸워 맑은 두뇌를 만들어내는 각성의 격전장이었다.

수많은 천재들이 이곳에서 커피를 즐겼고 창조적인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지나치게 커피를 즐겼던 작곡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를 작곡할 정도였고, 오노레 드 발자크도, 이마누엘 칸트와 장 자크 루소도, 볼테르도 커피가 없었다면 그들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지 못했을 정도로 커피광이었다. 스타벅스가 인류에 미친 가장 큰 기여는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현대 소설가들은 커피하우스에서 대부분의 작품을 쏟아낸다. 커피가 정말 창조성의 원천인지는 여전히 미지수지만, 이른바 '두뇌 음료'(싱크 드링크)라고 불릴 만한 음료이긴 한 모양이다.

과학자도 예외는 아니다. 초전도체 연구로 노벨상을 받은 리언 닐 쿠퍼 미국 브라운대 교수가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다. 아침마다 와 커피로 하루를 시작한다며, 그가 낸 모든 기발한 과학적인 아이디어는 모두 한 잔의 커피에서 쏟아져 나온 것임을 학회에서 발표할 정도이니, 그의 노벨상 수상 비밀이 아마도 커피인 모양이다.

한때 창조성과 여유로움의 원천이었던 커피가 현대사회에선 수면부족으로 인한 피로를 몰아내고 근무시간을 연장하는 각성제로 활용되고 있다. 하루 6시간도 채 자지 못하는 현대인들이 아침에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데 커피는 필수품이며, 나른한 오후를 견디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활력제 구실을 하고 있다.

아침 일찍 '조찬모임'이라는 이름으로 강연을 듣고 회의를 하는 나라, 노동시간이 긴 데 비해 효율은 떨어지는 나라, 야근이 당연시되는 나라, 퇴근하는 사람들을 술자리로 잡아끄는 나라, 그래도 내일 아침엔 원기충전이길 기대하는 나라. 우리는 지금 그런 곳에 살고 있다.

접대를 위해 하루에도 몇잔씩 커피를 마셔야 하는 사람들에게 커피는 숙제이며, 카페에서 회의를 하고 원고를 넘겨야 하는 이들에게 커피는 공간 대여료이자 무료 인터넷 사용 쿠폰이다. 홍차나 녹차로 가끔 옮겨보려 하지만, 그래도 결국 우리는 카페인으로 유지되는 삶에서 벗어나진 못한다.

'커피가 현대문명을 움직이는 데 얼마나 중요한 몫을 하는지 아는가? 커피에서 얻은 정신적 활력은 그 어떤 물질적 편익보다도 새로운 문명과 세계 평화를 건설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커피 애호가이자 푸에르토리코대 커피연구팀 리더 프레더릭 웰먼은 말한 바 있다.

과연 그럴까? 술, 커피, 방부제, 항생제, 그리고 프로작까지, 현대 문명은 화학물질들을 입속에 털어 넣어야만 겨우 돌아가는 심각한 '중독사회'다. 대한민국의 밤은 알코올이 만들어내는 활력으로 유지되는 우울공화국이요, 대한민국의 낮은 커피가 만들어내는 활력으로 지탱되는 피로공화국이다.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황금채널…광고직거래…전국 의무전송…‘무한 특혜’

정부·한나라 언론노조·야당 반대에도 '조중동 방송' 날치기
방통위 SO에 의무전송 강제…MBC보다 좋은 환경
4개 종편 미디어렙법 지연 틈타 광고영업…제재 못해
종편·방통위 SO 압박해 14~20번대 '황금채널' 받아내

'조중동 특혜 방송'.

언론계와 시민사회 단체에서 종합편성채널을 가리켜 부르는 별칭이다. 지상파처럼 뉴스보도를 할 수 있고 케이블 의무송신 혜택을 누리면서도, 광고 영업은 다른 케이블방송처럼 직접 영업을 하도록 했다. 광고 수주와 시청률 경쟁에서 결정적 변수가 될 케이블 채널 번호 확보에서도 큰 특혜를 누렸다. 지상파에 인접한 10번대 '황금채널'을 꿰찬 것이다. 광고와 편성·심의 관련 규제도 지상파에 견주면 크게 느슨하다. 지상파와 케이블방송의 이점을 골고루 합쳐 누리는 특혜방송이 4곳이나 탄생한 셈이다.

■ 태동까지 특혜 종편의 산파 노릇은 이명박 정부가 자임했다. 현 정부는 예상을 뛰어넘는 속전속결로 조중동 방송 탄생을 위한 입법 절차를 마무리했다. "한나라당은 (종편 탄생을 가능하게 하는) 언론관계법을 발의한 지 20일 만에 국회 상임위에 직권상정했고, 7개월 만에 날치기로 본회의를 통과시켰다." 최상재 전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의 회고다. 1999년 통과된 통합방송법은 법안 발의에서 국회 통과까지 5년의 세월이 걸렸다. 사회적 합의를 이끌기 위해 폭넓은 의견 수렴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최상재 전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가 2008년 말 신문법과 방송법을 바꾼 언론관계법을 무리하게 밀어붙인 이유를 그해 촛불시위에서 찾았다. 정부 정책에 손뼉을 쳐줄 친정부·보수 방송이 절실했다는 것이다.

조선·중앙·동아·매일경제 4곳을 사업자로 선정한 방송통신위원회 '결단' 역시 현 정부의 특혜 제공이라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다. 방송광고 시장 형편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지상파급 방송사 4곳을 무더기로 방송시장에 풀어놓은 것이다. 종편이 방송정책 차원이 아닌, '보수신문 보은용' 혹은 '정권 재창출용'이라는 의심을 더욱 짙게 하는 대목이다.

■ 의무송신 종편이 누리는 가장 대표적인 특혜다. 현행 방송법은 에스오(SO·종합유선방송사업자)들이 종편 채널을 전국 권역으로 의무송신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의무송신은 문화 다양성과 공익성 등을 고려한 시청권 보장을 위해 에스오들에 반드시 채널을 꽂으라고 강제하는 것이다. 지상파 방송 가운데서도 (KBS1)과 (EBS)만이 의무송신 대상이다. 지상파 방송이지만 (KBS2)와 (MBC), (SBS)는 제외돼 있다. 에스오들이 마음만 먹으면 이들 지상파 3개 채널을 내보내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반면 에스오들은 유료 케이블방송인 종편 4사 채널은 전국에 의무적으로 송신해야 한다. 지상파에 못지않거나, 뛰어넘는 시청 범위를 갖게 되는 것이다. 도준호 숙명여대 교수는 "종편이 한국방송 2티브이나 문화방송과 견줘 공익성이 강할지 의문"이라며 "앞으로 방송법 의무송신 규정을 전반적으로 손질해야 한다"고 말했다.

■ 광고·프로그램 광고 및 프로그램 편성 규제도 지상파에 견주면 특혜에 가깝게 헐겁다. 종편은 광고 주목도가 높은 중간광고를 할 수 있다. 국내제작 프로그램 의무편성 비율도 지상파가 분기별로 전체 방송시간의 60~80%까지 내보내야 하는 데 반해 종편은 20~50%만 내보내면 된다. 주목도 높은 외국 프로그램을 무차별적으로 끌어와 손쉽게 돈벌이를 할 수 있는 구조이다.

뉴스 보도를 포함한 콘텐츠 심의에서도 종편은 지상파보다 훨씬 자유롭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매체별 특성을 고려하여 차별적 심의를 한다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김경환 상지대 교수는 "(방통심의위는) 보도 심의에서 보듯 정권에 불리한 것은 샅샅이 파헤쳤다. (종편의) 보도 내용이 정권에 유리할 경우에도 동일한 잣대를 들이댈지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 직접영업 허용 종편들은 미디어렙법 입법 지연에 따른 법 공백 상태에서 직접 광고 영업에 나서고 있다. 민주당 등 야권과 언론·시민단체들은 보도와 영업 사이에 칸막이를 치기 위해 종편의 광고 영업도 지상파처럼 미디어렙에 위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한나라당은 '신생매체 보호' 논리를 펴면서 수용하지 않고 있다. 방통위도 종편은 케이블방송이므로 광고 직거래를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수범 인천대 교수는 "종편들은 대주주인 신문의 여론 영향력을 광고 영업에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방정배 방송독립포럼 공동대표는 "종편들이 '우리는 케이블채널이니까 광고 직접 영업을 하겠다'는 것은 종합편성 지상파를 지향하면서 정작 유리할 때만 케이블방송임을 내세우는 모순적 태도"라고 지적했다.

■ 황금채널 배정 전국 단일의 연번제를 요구하며 에스오를 끊임없이 압박하던 종편들은 결국 10번대의 황금채널을 꿰찼다. 는 지역에 따라 14번과 15·17번을, 는 15번과 14번, 은 16번과 18번, 은 19번으로 정해졌다.

채널 편성권은 에스오의 고유 권한이어서 방통위가 강제할 수가 없다. 그러나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종편 채널 배치와 관련해 "행정지도를 통해서라도 종편들에 낮은 번호의 채널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며 노골적으로 종편 지원 의사를 드러냈다. 지난 10월 국감에선 종편 채널을 경쟁력 있는 벨트로 배정해야 한다는 한나라당의 주문에 "방통위의 협조가 필요하다면 좀더 적극적으로 일하겠다"며 본격 개입 뜻을 밝혔다. 강혜란 여성민우회미디어운동본부 정책위원은 "종편한테 준 10번대 채널번호는 군소 피피(PP·방송채널사용사업자)들은 꿈도 꾸지 못하는 대단한 특혜"라고 말했다.

■ '종편위원회' 현 정부가 내세운 종편 도입의 명분은 글로벌시대에 경쟁력 있는 미디어 기업의 육성과 방송산업 발전이다. 방송정책을 관장하는 방송통신위원회는 이 정부 내내 미디어의 균형발전보다는 종편 만들기, 종편 밀어주기에 힘을 쏟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종편위원회'라는 오명이 따라다니는 이유다. 학계와 언론단체들은 규제기관인 방통위가 되레 불공정한 방송환경을 조성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케이블방송이면서 '종합편성'을 하는 채널은 한국에만 유일하게 존재한다. 보도와 교양·오락을 아우르는 종합편성은 본래 지상파 방송의 특성이다. 방정배 방송독립포럼 공동대표는 "보편적 방송 서비스를 하는 지상파와 달리 케이블방송은 전문 장르를 편성하고자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케이블 종편채널'은 존재할 수 없는 무법 채널"이라고 꼬집었다.

문현숙 선임기자 hyuns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