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1-21

대선주자들 4·11총선이 가를 운명…승천길이냐, 낭떠러지냐

20년 전인 1992년 3·24 국회의원 선거에서 집권 민주자유당은 149석으로 과반의석 획득에 실패했다. 선거 전 민자당은 200석이 훨씬 넘었으니 명백한 패배였다. 그래도 민자당은 압도적인 원내 1당이었다. 김영삼 민자당 대표는 9개월 뒤인 12월18일 제14대 대통령에 무난히 당선됐다.

10년 전인 2002년 6·13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은 광역단체장 16개 가운데 11개를 차지하는 대승을 거뒀다. 그러나 6개월 뒤 12월19일 제 16대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는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에게 패배했다. 6개월 간격의 큰 선거에서 승자와 패자가 뒤바뀐 것이다.

올 4·11 국회의원 선거와 12월19일 대통령 선거는 8개월의 시차가 있다. 총선에서 이기는 정당이 대선에서도 이길 수 있을까? 앞에서 예시한 두 번의 사례를 보면 지금으로서는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각 정당은 확실히 4·11 총선을 12·19 대선의 전초전으로 생각한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총선에서 이기는 쪽이 아무래도 대선 승부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다고 보는 게 상식적이다. 둘째, 대선에서 이겨 정권을 잡더라도 국회에서 다수당이 되지 않으면 정권을 제대로 이끌어가기 힘들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연말 대통령 선거에 나서려는 대선주자들에게는 4·11 총선이 일종의 예비고사다. 예비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본고사에서 유리하다. 반대로 성적이 부진하면 본고사에서 고전하게 된다. 예비고사에서 아예 탈락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대선주자들은 어떤 총선 전략을 세우고 있는 것일까? 본인이 총선에 출마한다면 지역구일까, 비례대표일까? 총선 결과는 대선주자의 앞날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런 여러가지 의문에 대해 일목요연한 답변을 시도해 보았다. 정치 경험이 많은 당직자 및 관측통들의 도움을 받았다.

박근혜-자칫하면 천길 나락
120석 넘길까 관심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에게 4·11은 깊이를 알 수 없는 계곡이다. 자칫하면 천길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진다. 비상대책위원회의 김종인 위원과 당내 쇄신파 의원들은 좀더 과감한 개혁과 정책 전환을 주문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나 그 측근들과의 결별도 불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 위원장은 손에 피를 묻히는 스타일의 정치인이 아니다. 2004년 대표 시절, 2007년 후보 시절에도 특별히 누구를 내친 적이 없다. 떠나는 사람을 붙잡지 않았을 뿐이다. 게다가 지금은 친이명박계 의원들의 집단반발이나 탈당 위협이 두려운 것이 사실이다.

박근혜 위원장이 내세울 수 있는 카드는 인물과 정책 두 가지다. 한나라당 안에서는 박 위원장이 새로운 인물과 정책을 내놓을 수 있다고 보는 시각과, 없다고 보는 시각이 엇갈린다.

"이명박 대통령과의 차별화는 새로운 인물을 내세우는 방식으로 할 것이다. 앞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정책도 준비된 것이 있지만 돈봉투 사건 때문에 발표를 미루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 누가 한나라당 공천을 받으려고 하겠나. 인재 영입은 불가능하다. 박근혜 위원장은 이한구·최경환 의원 등 경제 참모들에게 귀를 붙잡혀 재벌개혁 정책을 거부하고 있다. 가망이 없다."

박근혜 위원장은 2004년 탄핵정국에서 당대표를 맡아 121석을 건진 일이 있다. 이번 4·11 총선의 목표는 몇석일까? 현장에 가까운 사람일수록 비관적이다. 한 고참 보좌관은 "80~100석이라는 전망이 많다. 120석이 기대할 수 있는 최대치"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치적 셈법은 다를 수밖에 없다. 120석 미만으로 떨어져 의회 권력이 야당으로 넘어가면 박 위원장이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박 위원장 자신의 출마도 관심거리이다. 현 지역구인 대구 달성군에 출마하면 당선은 되겠지만 곧바로 사퇴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또 전체 선거판을 이끌어야 한다는 막중한 의무가 있다. 따라서 '비례대표 1번'을 해야 한다는 김종인 비대위원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안철수-직접출마 않겠지만
개입은 할 가능성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4·11 총선에서 어떻게 하려는 것일까? 안 원장은 미국 방문 일정을 마치고 21일 귀국한다. 1월 말이나 2월 초 기부재단 설명회가 예정되어 있는데, 이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정치, 특히 총선에 대한 그의 좀더 정리된 생각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안 원장은 지난해 12월1일 '신당 창당'과 '강남 출마' 가능성을 강하게 부인한 일이 있다. 그 때문에 강북 또는 부산 출마, '안철수 무소속 연대' 후보 지원 등 여러 설이 나돌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다만 '만약 출마한다면'이라는 가정 아래, 한때 서울 종로나 부산 지역구를 생각해본 일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총선에 대한 생각은 지난 1월8일 출국 때의 발언에서 일부 드러났다. "국민들의 의사가 정말 정직하고 확실하게 반영될 수 있는 (중략) 이번부터 굉장히 많은 것들이 바뀌고 좋은 쪽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직접 정치를 할 가능성에 대해 "고민중"이라고 대답했는데, 기존 정치인들이 이렇게 말하면 정치를 하겠다는 의사표시지만, 안철수 원장의 말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정확할 수 있다.

어쨌든 안철수 원장과 가까운 사람들의 말을 종합하면, 그가 총선에 직접 뛰어들지는 않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개입'은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의 주변에는 총선 이후는 물론 대선 국면까지 '안풍'을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연말 대선에서 한나라당 집권을 막으려면 안 원장이 대선에 직접 출마하든지 아니면 야당 후보를 지원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안 원장이 밝힌 '굉장히 많은 것들이 바뀌고'라는 표현은 그런 맥락에서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문재인-부산서 절반 목표
낙선땐 대선길 막혀

부산 사상구에 출마하는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야말로 4·11 총선이 대선 예비고사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을 비롯해 문성근, 김정길, 김영춘 등 부산·경남 지역구에 나서는 민주통합당 후보들의 성적에 따라 12·19 대선에 나설 수 있는 자격이 결정된다.

문재인 이사장과 민주통합당은 부산·경남에서 3분의 1 의석을 목표로 하고 있다. 부산이 18석, 경남이 17석이므로 12석을 건지면 목표를 달성하는 셈이다. 부산에서 절반인 9석 정도 당선돼야 가능한 수치다. 하지만 이 지역은 그동안 한나라당의 '텃밭'이었다. 따라서 결코 쉽지 않은 목표다.

실제로 민주통합당이 12석을 차지한다면 부산·경남은 민주통합당의 새로운 지역기반이 될 수 있다. 문재인 이사장은 '안철수를 능가하는 대선후보'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게 된다.

반대로 문재인 이사장이 총선에서 낙선하거나 민주통합당 후보들이 줄줄이 나가떨어지면, 문 이사장의 길도 사라지고, 야권 전체의 대선 승리 가능성도 그만큼 낮아진다. 단순히 문재인 개인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문재인 이사장이 이번 선거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손학규-민주당이 1당 되면
대선 문 넓어져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4·11 총선과의 관련성이 다른 대선주자들에 비해 좀 약하다.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목표치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민주통합당이 1당이 된다면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인 그에게도 대선의 문이 좀더 넓어지는 것으로 봐야 한다.

현재 지역구인 성남 분당을에는 출마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당선이 되더라도 곧바로 의원직을 그만둘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같은 논리로 다른 지역에 출마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비례대표로 나서는 것도 어렵다. 정동영 의원 등 당내 다른 대선주자들이 어려운 지역구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한 뒤 민주통합당 지역구 후보들에 대한 지원유세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정동영-당선 연연하기보다
'발돋움' 주력

서울 강남지역에 출마하는 정동영 의원은 당선에 연연하기보다는 다시 대선주자로 발돋움하기 위한 명분 쌓기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천정배 의원은 지역구를 안산에서 서울 동작을로 옮겨 출마하기로 했다.

정몽준-동작을 지역구서
천정배 도전 넘어야

한나라당 안에서는 박근혜 위원장이 총선에서 크게 실패할 경우 정몽준 전 대표와 김문수 경기지사의 지지율이 움직일 수 있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동작을에 출마하는 정 의원은 천정배 의원의 도전을 넘어야 한다.

유시민-당 전체 성적표에
정치적 장래 걸려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는 자신의 의원직보다는 통합진보당 전체 성적표에 정치적 장래가 걸려 있다. 통합진보당이 원내교섭단체(20석) 구성에 성공하지 못하면 진보 통합의 명분도 퇴색할 수밖에 없다. 유시민 대표는 이정희·심상정·노회찬 등 지역구 출마자들을 돕고 정당 득표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비례대표로 나서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중이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비싼' 호텔 결혼식의 스테이크가 맛 없는 이유

'비싼' 호텔 결혼식의 스테이크가 맛 없는 이유

news.chosun.com | Nov 30th -0001 "우리 텐트 옆에 어떤 가족이 미니밴을 타고 왔어요. 아이들과 부모, 모두 네명이었는데 텐트가 좀 과장하면 군대 막사만 하더라고요. 아버지가 낑낑대며 그 텐트를 치는 모습이 무슨 건설 현장 같았다니까요. 텐트를 다 치더니 이번엔 텐트 주위에 담을 쌓더군요. 일종의 병풍 같은 건데 그런 캠핑장비가 있는 건 처음 알았어요. 그 사이에 어머니는 가스레인지를 꺼내서 음식을 만드는데, 뭔가 하고 슬쩍 보니까 삼계탕을 끓이더라고요. 한쪽에는 전기밥솥에서 쌀이 익어가고요. 요즘엔 오토캠핑장에서 전기도 쓸 수 있거든요. 이건 캠핑이 아니고 무슨 잔치 같았어요. 밥을 먹은 후엔 텐트 앞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고는 휴대용 프로젝터로 영화를 보더군요. 아이들은 노트북으로 인터넷을 하고요. 아침에 일어나니 그 모든 장비를 해체하느라고 또 난리가 났어요. 가히 이삿짐에 견줄 만한 그 물건들이 미니밴 한 대에 모두 들어간다는 사실이 놀라울 지경이었죠. 짐 정리가 모두 끝나자마자, 그 가족은 흐뭇한 표정으로 차를 몰고 캠핑장을 떠났어요."

캠핑을 좋아하는 후배가 지난 여름에 한 오토캠핑장에서 본 풍경이라며 들려준 이야기다. 그 후배가 덧붙였다. "도대체 그 사람들은 왜 캠핑을 나왔을까요? 거의 모든 조건이 집과 똑같은데."

캠핑 앞에 '오토'가 붙었기에 좀 더 편한 캠핑, 가족 단위 캠핑이라고 하지만 이 정도면 왜 굳이 야외에 텐트를 치고 잠을 자는지 의문이다. 여름엔 에어컨, 겨울엔 난로를 들고 다니고 심지어 노래방 기계까지 싣고 캠핑 다니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캠핑의 요체인 자연(自然) 빼고는 다 있는 셈이다. 이런 호화 캠핑에 반발해 최근엔 '최소한의 캠핑'이라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한다. '미니멀 캠핑(minimal camping)'이라고도 부르는 이 캠핑은 배낭 하나를 채울 만큼의 장비만 갖고 떠나는 것이다. 식사도 레토르트 음식 위주로 간단히 하고 1인용 텐트에서 잔다. 모든 취미에는 장비를 갖추는 즐거움(혹은 고통)이 뒤따르지만 '최소한의 캠핑'은 이런 흐름을 역행하면서 즐거움을 찾으려는 트렌드다.

생각해 보면 20여년 전 대학 시절에 여름·겨울마다 한 번씩 어떻게 지리산 종주를 했는지 신기할 지경이다. 당시에는 고어텍스는커녕 쿨맥스도 없었다. 여름엔 반바지, 겨울엔 청바지를 입었고 군화를 신고 눈 쌓인 천왕봉에 오르기도 했다. 어느 여름엔 20㎏ 가까운 텐트를 등에 지고 간신히 천왕봉 정상에 올라 양복에 단화 차림으로 올라온 한 무리의 아저씨들이 비닐봉지에 담아온 캔맥주를 마시는 걸 보고 허탈해한 적도 있다. 요즘엔 고어텍스와 중(重)등산화를 갖추고 양손에 스틱을 쥐어야 해발 293m 대모산 정상공격에 나서는 시대이니, 사람이 산에 가는 게 아니라 장비가 등산하는 격이라고나 할까.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어디 캠핑과 등산뿐이랴. 유난히 겉치레에 신경을 쓰는 우리 사회 곳곳에 '과잉 장비'투성이다. 흔히 보게 되는 과잉이 호텔에서 하는 결혼식이다. 원탁에 밥상을 차려놓고 혼례를 보는 것도 우리 예(禮)에 맞지 않는 것 같지만, 무엇보다 그렇게 비싸다는 호텔 결혼식 밥을 맛있게 먹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몇백인분의 스테이크를 미리 구웠다가 일제히 날라주니 그 고기가 맛있을 리 없다. 게다가 좁은 원탁에 다닥다닥 식기를 차려놓아 내 것 네 것 구분이 쉽지 않다. 서양식 상차림에선 '좌빵우물'이라고 해서 왼쪽에 빵 오른쪽에 물을 놓는 데, 익숙지 않은 사람들이 물과 빵을 구분없이 먹어버려 나는 물도 빵도 없는 신세가 된 적도 있다. 그렇다고 남의 잔치에서 "그건 내 빵이오" 하기도 머쓱하다. 게다가 키 큰 와인 잔 다루는 데 서툰 어르신들이 여기저기서 와인을 쏟고 민망해하는 모습도 여러 번 봤다. 이래저래 호텔 결혼식에 다녀오면 별로 잔칫집에 갔다 온 느낌이 없다. 이쯤 되면 '최소한의 결혼식' 같은 문화도 생겨날 법한데 아직 그런 움직임이 있다는 소식은 들은 적이 없다.

새벽종이 울리고 새아침이 밝았으니 잘 살아보세 했던 덕분에 우리나라는 전쟁의 폐허에서 반세기 만에 선진국 턱밑까지 달려왔다. 불과 두 세대도 안 돼 경제적으로 잘살게 된 것은 좋으나, 초가지붕 헐고 기와만 올렸지 구들장은 냉골인 문화는 여전히 개발도상국 수준에 머물고 있다.

문화는 오(伍)와 열(列)을 맞춰 행군하지 않는다. 대나무처럼 직선주행하지 않고 넝쿨처럼 오르내린다. 그러나 결국 녹음(綠陰)을 우거지게 하는 것이 문화다. 남이 하는 대로 우르르 몰려가는 것은 문화가 아니라 유행이다. '최소한의 캠핑' 같은 문화가 돋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Original Page: http://t.co/iz8IUf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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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조선일보의 해명

가 어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의 천안함 관련 발언 보도에 대해 2면에 조그맣게 정정보도를 냈다. 고미 요지 편집위원이 펴낸 책에는 천안함 관련 부분이 없다고 오보를 시인하면서도, 그 대목은 쪽이 김정남 주변의 정통한 소식통으로부터 별도 취재한 내용이라고 했다. 김정남이 그렇게 말한 건 사실이라는 주장은 굽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 측면에서 볼 때 이런 해명 자체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바로잡습니다' 정도로 대충 넘길 사안이 아니다.

최병묵 월간조선 편집장은 와의 통화에서 "김정남의 워딩을 취재할 수 있는 데가 있다"며 "이전에 해놓았던 것들 중에 그게 한 줄 들어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언론계 상식으로 김정남이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을 별도 취재했다면 엄청난 특종이다. 다른 언론인이 펴낸 책 내용을 인용하는 기사에 한 토막 욱여넣고 말면 특종 기사가 날아간다. 기자 생활을 몇 달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이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해명인지는 쉽게 알 수 있다.

이런 억지 주장이 손톱만큼이라도 근거를 가지려면 김정남의 말을 별도 취재했다는 설명을 믿을 수 있게 최소한의 정황이라도 밝혀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기사를 날조했다는 혐의를 벗기 어렵다.

월간조선과 조선일보의 보도를 자세히 읽어보면 날조 혐의는 더 짙어진다. 김정남이 연평도 포격에 대해 쓴 내용이 천안함에 대해 언급한 것처럼 교묘하게 둔갑해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북조선은'이라는 말만 '북조선 입장에서는'이라고 바꿔놓았을 뿐 두 문장이 똑같다. 의도를 가지고 그랬다고 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조선일보나 월간조선이 과거 최장집 교수 사건에서처럼 일부 표현을 꼬투리 잡아 색깔론을 펴는 등 안보 문제를 돈벌이에 이용한다는 안보상업주의란 비판을 받아온 것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그래서 더욱 의심이 가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하니까 아무리 부수가 많다고 자랑해도 독자와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1등 신문을 자처하려면 좀더 솔직하고 정정당당해지기 바란다. 최소한 어떤 경위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자체 조사를 벌이고 날조한 것이 사실로 드러나면 책임자를 엄중 문책하는 것이 국민과 독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세상 읽기] 돈 빌려서 전쟁하는 나라 / 김종대

얼마 전 한 주한미군 간부가 미국에 출장을 다녀오면서 직항을 이용하지 못하고 아랍에미리트를 경유해 지구를 반 바퀴 돌아서 왔다. 출장 경비가 부족해서 값싼 환승 노선을 선택하다 보니 하루면 도착할 거리를 이틀 걸려 왔다. 미군은 지금 돈이 없다.

이명박 정부는 당장 국방과 외교, 경제 분야의 최고 인재를 모아 '한-미 동맹 긴급점검반(TF)'을 만들어야 한다. 지난해 10월 말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에서 리언 파네타 미 국방장관은 2시간30분간의 장관 회담 중 1시간30분 동안 돈타령을 했다. 한국이 빨리 국방예산을 증액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뭔가 분위기가 이상한 걸 눈치챘다면 정부는 미국의 슈퍼위원회가 재정삭감 규모 합의에 실패한 지난해 11월에는 한-미 동맹에 대한 긴급대책을 수립했어야 했다. 미국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자주국방을 하든지, 아니면 평화공존 정책으로 전환하든지 어떤 대책이라도 나왔어야 한다. 이런 마당에 청와대 관계자는 "미국의 국방력 감축이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는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한다. "역사상 한-미 동맹이 가장 좋다"는 자기최면에 빠져서 미국의 상황 변화를 애써 외면하는 것이다.

돈과 전쟁의 상관관계는 너무나 뚜렷하다. 미국은 200년 전에 네덜란드와 프랑스로부터 돈을 빌려 독립전쟁을 했다. 이를 두고 미국의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은 "현명하게 조달된 국가의 부채는 국가적인 축복"이라고 했다. 1차 대전과 2차 대전에서 미국은 외국에서 차입 없이 국내에서 국채를 발행해 전쟁을 수행했다. 유독 한국전쟁만 빚 없이 재정으로만 전비를 충당했으나 재정능력이 고갈될 즈음에 트루먼 대통령은 서둘러 휴전협정을 추진했다. 골드만삭스 임원인 로버트 호매츠는 저서 에서 20세기 미국의 군사적 성공 요인으로 막대한 세수, 대규모 국채 발행, 가공할 무기제조능력을 꼽았다. 그러나 재정능력을 넘어서는 전쟁을 수행하면 미국의 정부는 파산 위기로 간다.

바로 그런 위기가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에서 나타났다. 최초 예상한 전비보다 20배가 넘는 1조달러를 지출한 데서 시작되었다. 여기에 금융위기까지 겹치자 이제는 끔찍한 진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독립전쟁 당시와 같이 앞으로 미국은 외국에서 돈을 빌려 전비를 조달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세금을 늘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재정능력을 지탱하는 것은 국가채무이고, 그 덕분에 국방력이 유지된다. 미 재무부가 발행한 9조달러 증권의 절반을 외국 투자가와 정부가 매입하였고 그중에서도 중국이 1조1000억달러로 가장 큰 비율을 점하고 있다. 즉 미국은 중국으로부터 돈을 빌려 중국을 견제하는 군사력을 유지한다는 역설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21세기 초에 미국은 독립전쟁 이래 처음으로 외국의 자본에 의존하는 전비조달체계로 회귀했다. 이런 미국은 전쟁을 수행할 자신감과 배짱을 모두 잃어버리게 된다. 중국 견제? 웃기는 얘기다.

게다가 재정긴축 프로그램이 강제 시행된다면 2013년부터 국방비에서 6000억달러를 추가 삭감하는데, 이에 대해 미 의회예산국은 "국가안보에 치명적 영향이 우려된다"고 말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테러와의 전쟁이 얼마나 많은 비용을 필요로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데 있다. 현대의 전쟁 양상의 가장 큰 특징은 천문학적 비용이다. 미국과 같은 초강대국의 재정도 파산으로 인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전쟁이다. 물론 가장 간편한 해결방안이 있다. 전쟁을 포기하고 평화공존과 협력으로 가는 것이다. 바로 이런 재정상의 문제가 한반도 평화를 앞당기는 가장 확실한 이유가 될 것이다. 2013년에 한국의 대통령이 맞이할 시대상이다.

김종대 편집장

2012-01-20

"증세, 증세" 하면서 한국은 왜 소득세만 건드리나

유럽 재정위기를 계기로 각국이 재정 확충 차원에서 부가가치세(부가세)를 잇달아 인상하고 있다.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은 물론 상대적으로 상황이 양호한 영국스위스도 2010년 이후 부가세율을 올렸고, 작년 12월 30일 일본이 동참했다. 일본은 우리의 부가세에 해당하는 소비세율을 2015년까지 5%에서 10%로 올리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우리도 부가세율 인상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학계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최근 분출하고 있는 복지 수요를 맞추려면 세원을 확보해야 하는데, 부가세처럼 확실한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최기호 서울시립대 교수는 최근 한 세미나에서 "부가세법의 전반적인 체계를 점검하면서 부가세율 인상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고, 안성호 충북대 교수도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인 17%에 크게 못 미치는 부가세율(10%) 인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장 간편한 재정 확충 수단

국제기구들도 한국에 비슷한 조언을 하고 있다. OECD는 지난해 "한국 정부가 복지지출을 늘리려 한다면 상대적으로 낮은 부가세율을 인상해 세수의 원천으로 삼아야 한다"고 권고했고, 마이클 킨 국제통화기금(IMF) 자문역은 최근 방한해 "소득세율 인상은 정책 효과가 떨어진다"며 "부가세율 인상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의견이 나오는 것은 부가세율 인상이 가장 간편한 재정 확충 수단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부가세는 소비를 할 때마다 가격의 10%가 자동 징수된다. 2010년 부가세 징수액은 49조 1212억원이었는데, 세율을 10%에서 11%로 올릴 경우 다른 조건에 큰 변화가 없다면 5조원 가까운 세입을 추가로 올릴 수 있다.

이같은 편리함으로 인해 부가세율을 수시로 조절하는 나라들이 많다. 박춘호 기획재정부 부가가치세 과장은 "유럽 나라들은 경제 사정에 따라 수시로 세율을 조정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부가세는 일반적으로 대표적인 '역진세(逆進稅)'로 알려져 있다. 불공평한 세금이란 뜻이다. 같은 물건을 사면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누구나 같은 금액의 부가세를 내야 해 저소득층에 상대적으로 불리하다는 것이다. 10만원짜리 물건을 구입해 1만원의 부가세를 낼 경우, 그 부담은 월급 1000만원인 사람에겐 0.1%에 불과하지만, 월급 100만원의 사람에겐 1%로 부담이 커진다.

그러나 이런 설명이 오해라는 주장도 있다. 조세연구원은 '한국의 조세·재정정책 평가모형' 보고서에서 "고소득자들은 저소득자들보다 훨씬 많은 소비를 해 납부하는 절대 세액이 클 뿐만 아니라, 고가(高價) 상품의 경우 개별 소비세가 추가로 붙는 경우가 많아 부가세는 형평성을 거의 저해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많은 고소득자들이 각종 탈세를 저지르는 상황에서, 부가세를 올리면 고소득층의 실질적인 세 부담을 늘릴 수 있다는 논리도 있다. 소비는 탈세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부가세 못 올리는 5가지 이유

하지만 한국 정부는 부가세 인상에 소극적이고, 가까운 장래에 추진할 계획도 없다. 그 이유는 크게 5가지다.

첫째, 정치적으로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부가세 인상이 형평성을 저해하지 않는다고 해도 어쨌든 모든 사람이 부담한다.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데 반길 사람은 없다. 최근 교도통신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본의 심각한 재정적자에도 불구하고 응답자의 79.5%가 소비세 인상에 반대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올해 선거를 앞두고 있어 연내 논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둘째, 부가세를 내는 사람은 소비자이지만, 이것을 걷어 국세청에 내는 사람은 공급자다. 자영업자 등 공급자들은 부가세를 판매 가격에 덧붙여 받으면서도 자신의 부담으로 여긴다. 따라서 부가세 인상을 제안할 경우 자영업자 등의 큰 반발에 시달릴 수 있다.

셋째, 부가세를 올리면 물가에 바로 충격을 준다. 부가세를 올리면 공급자들이 이를 제품 가격에 전가시키는 경우가 많아 가격이 바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물가가 문제되는 상황에서 부가세 인상은 어렵다.

넷째, 우리 재정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 재정이 나쁜 다른 나라들에 비해 부가세 인상 필요성이 덜하다.

다섯째, 부가세 인상은 통일 이후를 대비하는 최후의 보루 성격을 갖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지금의 낮은 부가세율은 통일 후 재정지출을 대비하는 측면이 있다"며 "통일이 임박하면 부가세율 인상 논의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점들로 인해 정부는 부가세 인상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세율엔 손대지 않으면서 세원을 넓히는 방안은 강구하고 있다. 정부는 작년 7월부터 성형수술과 애견진료 서비스에 대해 부가세를 새로 부과하기 시작했다. 남아 있는 면세 사업자는 병ㆍ의원, 농축산물 판매, 주택임대업 등에 종사하는 59만명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되도록 세율을 건드리지 않고 세원을 넓히자는 게 우리 조세 행정의 기본 입장"이라며 "부가세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이밖에 주로 부유층이 소비하는 일부 고가 품목에 개별 소비세(예전의 특별소비세)를 새로 부과하는 방안이 있다. 다만 개별 소비세는 품목별로 세율이 다르게 부과되고 있어 조세 체계를 흐트러뜨리는 단점이 있다.

박유연 기자 py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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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콘’ 닮아가는 박근혜 비대위 “야 안돼~” : 정치일반 : 정치 : 뉴스 : 한겨레

'개콘' 닮아가는 박근혜 비대위 "야 안돼~"

hani.co.kr <개그 콘서트>에 비상대책위원회라는 코너가 있다. 폭탄이 곧 터지는 위급한 순간에 경찰 간부와 장군이 앉아서 말도 안되는 수다를 떠는 내용이다. 상황 브리핑이 끝나면, 경찰 간부는 "야 안돼~!"라며 안되는 이유를 장황하게 늘어 놓는다. 몸집이 큰 장군의 대사는 "안되겠다. 사람 불러!"로 끝난다. 그리고 대통령까지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은 언제나 "시간이 없습니다"로 정리된다.

한나라당은 10·26 재보궐선거 패배와 디도스 파문으로 존망의 위기에 처하자, 지난해 12월19일 비상대책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박근혜 위원장은 국민들에게 "재창당을 뛰어넘는 쇄신과 개혁"을 약속했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지금까지 변한 것이 없다. 당의 얼굴이 홍준표에서 박근혜로 바뀌었을 뿐이다.

정강·정책에서 보수라는 단어를 삭제하자는 의견, 재창당을 해야 한다는 의견, 이명박 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뒤엎는 재벌개혁 의견이 나왔지만, 박근혜 위원장은 "안돼~!"만 외치고 있다. 집단탈당 사태나 편가르기라는 비판을 걱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설연휴를 앞두고 열린 19일 아침 비상대책위원회도 매우 평온하게 진행됐다. '비상' 분위기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박근혜 위원장의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는 서민 전세자금 이자 경감과 카드 수수료 인하를 언급하며, "국민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드리는 것이 정책쇄신의 본질"이라고 했다. 그런가?

정책 대안 제시는 정당의 일상적 활동이다. 공천기준안 확정도 총선을 앞두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내용도 별로 파격적이지 않다. 박근혜 위원장이 이날 새로 내놓은 '출자총액제한제 보완'도 무슨 얘긴지 선명하지 않다. 도대체 비상대책위원회는 왜 만들었을까? 한나라당 내부 인사는 이런 말을 했다.

"한나라당이 왜 선거에서 패배했는지, 시대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채 정치공학적 필요에 의해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든 것 같다. 이대로 가면 박근혜 위원장은 반드시 실패한다. 그건 한나라당의 비극이 아니라, 나라 전체의 비극이다."

박근혜 위원장은 비대위를 구성할 때 외부인사들을 불렀다. 홍보본부장에 광고회사 출신 인사를 앉혔다. '사람'을 부른 셈이다.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의 다음 장면은 "시간이 없다"며 흐지부지 꼬리를 감추는 일인지도 모른다.

Original Page: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1554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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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거울에 비친 진보의 일그러진 초상

'곽노현' 거울에 비친 진보의 일그러진 초상

ohmynews.com | Nov 30th -0001

'정의'를 대체한 것은 몇 가지 새로운 가치들이다. 하나는 '의리'. 어떤 이에 따르면 곽노현 교육감을 내치는 이들은 "장세동만도 못하다." 마침내 장세동이 진보의 롤모델이 됐다. 둘째는 '우정'. "친구를 내치는 게 진보라면 그런 진보는 하지 않겠다." 진보는 이제 동창회가 될 모양이다. 셋째는 '인간애'. 이제 너희들 중에 죄 없는 자가 강용석 의원을 치라는 김형오는 졸지에 숭고한 휴머니스트가 된다. 넷째는 '용기'란다. 세상에 집단의 분위기에 편승하는 데에 그렇게 많은 용기가 필요한가?

곽노현 사건 초만 해도 진보매체들은 올바른 스탠스를 유지했다. 하지만 '나꼼수'의 선동 방송 한 방에 대중의 분위기가 바뀌자 태도를 180도로 바꾸었다. 더 한심한 것은 진보적 학자들마저 이 분위기에 편승해 곡학아세를 한다는 것. "도덕은 보수에게 줘 버리라"는 윤리적 자살 테제(관련글 보기), "상식에 맞지 않는 진실도 있다"는 논리적 자살 테제(관련글 보기), 심지어 "진중권은 <조선일보>에 세뇌됐다"는 '박헌영 미제간첩 테제'(관련글 보기)까지. 읽지도 않는 신문에 세뇌까지 당한다는 이 심오한 이치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근데 <조선일보>는 아직도 나오나?).

한상희 교수의 반론

그 허접함 속에서 그나마 읽어줄 만한 것은 <미디어오늘>에 기고한 한상희 교수의 글(기사 보기)이다. 거기서 논점으로 삼은 만한 것은 크게 세 가지로 보인다. 하나는 행위의 도덕성에 관한 논란이다. 한상희 교수는 내가 곽 교육감의 사퇴를 말하며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어떤 경우에 그리고 왜 '돈을 줘서는 안 되는' 것인지 그 판단의 기준은 전혀 제시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이미 돈을 건넨 이상 곽 교육감은 마땅히 도덕적 책임을 져야 했다"라는 명제도 공허한 말장난 내지는 동어반복에 불과하다. 돈을 건넸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도덕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이유는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 내가 제시한 이유를 미처 못 들어보신 모양이다. 따라서 "도덕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이유"를 "전혀 알 수 없는" 한상희 교수를 위해 그 이유를 반복해 제시할까 한다. 또 하나는 도덕과 법률의 관계에 관한 문제다. 위의 글에서 한상희 교수는 나의 견해를 이렇게 요약한다.

그(진중권)의 주장은 '법률(혹은 검찰이 말하는 법률 또는 지레짐작되는 가상의 법률)에 위반되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로 압축된다.

물론 잘못된 압축이다. 나는 곽 교육감의 유무죄에 대해 판단을 내린 적 없다. 다만 '법률과 도덕은 규제하는 범위가 다르기에, 유무죄의 법률적 판단 이전에 곽 교육감이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뿐, 미래의 법률적 판단에서 도덕적 판단을 이끌어낸 적은 없다. 법률과 도덕을 동일시하는 것은 외려 곽 교육감을 옹호하는 측이다. 그들이야말로 판결 전까지 사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지 않았던가.

한상희 교수가 제기한 마지막 논점은 법률('사후매수죄')의 적합성에 관한 문제다. 한 마디로 곽 교육감을 처벌하는 법 자체가 뭔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한상희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물론 후보자에게 금전이나 어떤 직책을 내 걸며 후보를 사퇴하게 만드는 행위는 선거에서 유권자의 의사를 왜곡할 수도 있기 때문에 법으로 규제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를 검찰의 주장처럼 후보사퇴와 금전·직책의 제공이 서로 시간적으로 연속되었다는 이유만으로 획일적인 처벌에 나서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

인상적인 것은 "후보사퇴와 금전-직책의 제공이 서로 시간적으로 연속되었다"는 표현. 한 마디로 후보사퇴와 금전제공은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격으로 그저 시간적으로 연속된 우연한 결합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반박은 잠깐 미루어 두고, 일단 이것이 '선결문제 전제의 오류'임을 지적해 둔다. 이제 세 가지 논점으로 들어가 보자. 어차피 언론도 못 믿고, 검찰도 못 믿고, 법원도 못 믿고, 오직 곽 교육감의 '선의'만 믿겠다니, 곽 교육감도 인정하는 사실에서 출발하기로 하자.

사건의 재구성

사실은 다음과 같다. 지난 교육감 선거과정에서 곽노현 캠프와 박명기 캠프의 두 관계자가 구두로 후보 사퇴의 대가로 선거비를 보전해주기로 약속했다. 그 후 박 교수는 사퇴했고, 덕분에 곽 교육감은 근소한 차이로 선거에 승리했다. 그 후 박 교수는 약속의 이행을 요구했다. 그 후 강경선 교수를 통해 2억의 돈이 박 교수 측에 전달됐고, 그 과정에서 강 교수는 자신과 박 교수(혹은 동생)의 명의로 작성된 차용증을 주고받았다. 그 차용증은 채권과 채무의 관계를 서로 바꾸어가며 이중으로 작성됐다.

이 사태에 대한 곽 교육감의 생각은 어떤가? '최후진술문'(글 보기)에서 곽 교육감은 단일화 과정에 있었던 약속을 이렇게 규정한다. "동서지간인 실무자들 사이의 약속 같지 않은 구두약속", "위임한 적도, 보고 받은 적도, 승인한 적도 없는 동서지간의 독단적인 충정에 입각한 해프닝", "권한 없는 사람들의 비진의 의사표시의 편의적 결합." 곽 교육감은 이를 10월 말에야 인지했으며, "자체 조사과정을 통해 인지하고 나서는 법적 도덕적 의무가 없음을 명백히 하고 추인한 적이 없"다.

2억의 돈을 건네준 데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강경선 교수의 지혜로운 노력으로 박 교수의 오해와 원망이 풀리고 화해와 일치가 찾아왔을 때, 다시 말해서 박 교수의 자세가 해프닝에 기초한 권리모드에서 형제애에 기초한 구제모드로 바뀌었을 때, 비로소 이 원칙이 충족되었다고 판단하였고, 그러면서 긴급부조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마디로 '그냥 도와줄 수는 있을지언정("구제모드) 후보사퇴의 대가로는("권리모드") 돈을 줄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후에 돈을 건넸다는 얘기다.

한편, '최후진술'에 차용증에 관한 언급은 빠져 있다. 하지만 차용증이 오갔다는 사실은 당시 상황이 이른바 "구제모드"가 아니라 여전히 "권리모드"였음을 함축한다. "구제모드"였다면 돈을 주며 굳이 차용증을 받을 필요는 없었을 테니까. 게다가 그 차용증은 이중으로 작성됐다. 물론 곽 교육감측에서 차후에 문제의 차용증을 근거로 돈을 되돌려 달라고 할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기 위한 장치다. 이 모든 정황은 곽 교육감의 주관적 믿음과 상관없이 당시의 상황은 여전히 "권리모드"였음을 말해준다.

상황과 해석

곽 교육감은 얼마 전 다시 한 번 '3무 원칙'을 강조했다. "사퇴 대가를 지시한 바 없고 보고받은 바 없고 추인한 바 없다." 객관적 상황은 어떤가? 먼저 두 캠프의 관계자들 사이에 후보사퇴의 대가로 선거비를 보전해주기로 한 구두약속이 존재했다. 그 약속을 믿고 박 교수는 단일화협상결렬 이틀 만에 사퇴했고, 곽 후보 당선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곽 교수 측은 그 약속을 술자리 만담으로 치부하나, 적어도 박 교수는 ("권리모드"를 취할 정도로) 그 약속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곽 교육감은 그것을 "동서지간의 독단적인 충정에 입각한 해프닝"이라 부르나, 그가 "지시한 바 없고 보고 받은 바 없고 추인한 바도 없다"는 그 약속은 실제로 후보사퇴가 이루어지고 그 후에 권리요구가 따를 만큼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었다. 곽 교육감이 이를 당시에 인지했다는 직접적 증거는 없다. 따라서 곽 교육감의 해명을 믿는다면, 결국 곽 교육감 캠프의 한 관계자가 결과적으로 후보사퇴를 유도하기 위해 곽 교육감의 이름을 팔아 박 교수를 기만한 셈이 된다.

차용증은 어떤가? 그에 대해서도 곽 교육감은 역시 그것의 작성을 "지시한 바 없고 보고 받은 바 없고 추인한 바도 없다"고 할 것이다. '최후진술문'을 보면 곽 교육감이 당시의 상황을 권리모드에서 구제모드로 전환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결국 강 교수가 곽 교육감에게 상황에 대해 거짓말을 한 셈이다. 다시 말해 강 교수가 곽 교육감의 허락도 받지 않고 차용증을 주고받음으로써 사실상 후보단일화에 관련한 거래를 성립시켜 버린 것이다.

곽 교육감이 모르는 사이에 캠프의 관계자에 의해 후보사퇴를 대가로 한 금전 제공의 약속이 이루어졌고, 곽 교육감이 모르는 사이에 그 대가의 지불이 실행되었다. 이것이 존재하는 객관적 상황이고, 남은 것은 이에 대한 곽 교육감의 '주관적 해석'뿐이다. "지시한 바 없고 보고받은 바 없고 추인한 바 없다." 곽 교육감의 선의를 믿는다면, 이제 곽 캠프와 측근의 행태가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남는다. 그들은 왜 남의 돈을 자기가 약속하고, 왜 남의 돈을 자기가 꿔주었을까?

박탈당한 유권자의 권리

선거비 보전의 구두약속이 있었고, 단일화를 위한 후보사퇴가 있었고, 차용증과 더불어 2억의 돈이 전달됐다. 이로써 거래는 사실상 이루어진 것이다(이것이 어떤 상황에서도 돈을 절대로 줘서는 안 되는 이유다). 다만 정직하지 못한 측근들을 둔 탓에 곽 교육감은 이 중요한 사실들을 인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때조차도 그 일을 저지른 것은 그의 캠프에 속한 사람이며, 그가 직접 일을 위탁한 사람이다. 그런데도 그가 이 모든 사태에 아무런 도의적 책임도 없다고 해야 할까?

박 교수의 사퇴는 곽 후보의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선거비를 보전해주기로 약속이 없었다면, 박명기 교수는 사퇴를 하지 않았을 테고, 선거의 결과 역시 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 진보성향의 유권자들은 그게 결과적으로 잘된 일이라 느낄 게다. 하지만 보수성향이나 중도성향의 유권자들도 그럴까? 그들은 자신들이 귀한 시간을 쪼개서 참여한 투표의 결과가 부당하게 왜곡됐다고 느낄 게다. 한마디로 그들은 권리를 침해당한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누가 책임을 져야 하나?

곽 교육감이 모르는 사이에 진행된 그 일은 유권자의 권리를 침해하고 민주주의의 원칙을 훼손하는 심각한 반칙이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곽 교육감의 옹호자들은 이에 대한 인식 자체가 아예 없어 보인다. 사태가 이러한데도, '나는 몰랐기에 결백하다. 따라서 내가 저야 할 도의적 책임이라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설사 자신은 몰랐다 하더라도, 자기 캠프에서 저지른 일 때문에 정정당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당선됐다면, 당연히 당선을 반납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긴급부조'에 대하여

곽 교육감에게 선택의 기회는 있었다. 가령 작년 10월 말 선거비 보전의 약속이 있었음을 인지했을 때, 그는 그 사실을 정직하게 밝혀야 했다. '나 모르게 단일화 과정에서 약속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그 약속은 인정할 수 없고, 따라서 박 교수의 요구에 응할 수 없다. 하지만 내 캠프의 실수에 대해 책임을 회피할 의사는 없다. 다만 유권자들의 판단을 바라며, 그에 따라 사퇴 여부도 결정하겠다.' 정직은 최선의 방책이다. 이렇게 솔직하게 밝혔다면, 그는 외려 여론의 지지를 받았을 게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는 박교수에게 몰래 2억의 돈을 건네는 방법을 택했다. 곽 교육감의 옹호자들은 그게 무슨 숭고한 휴머니즘의 발로나 되는 것처럼 얘기한다. 가령 한상희 교수의 말을 들어 보자.

공직자로서 동료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못한 온정주의를 비판할 수는 있지만, 냉혈한이 아니어서 부도덕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곽 교육감이 박 교수를 냉대함으로써 박 교수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면 그는 부도덕하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진보가 공사 구별했다가는 졸지에 '냉혈한'으로 몰릴 판이다. 과연 그럴까? 곽 교육감이 정말로 친구를 돕고 싶었다면 선관위에 문의하여 합법적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그는 친구를 돕는 데에 도덕적으로 지극히 의심스러운 방법을 택했고, 위탁을 받은 강경선 교수는 돈을 건네며 이중차용증까지 주고받았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이는 뇌물사범들의 전형적 수법이다. 왜 그래야 했을까? 이화여대 조기숙 교수(관련글 보기)는 그것을 이렇게 정당화한다.

그가 어떤 사회적 비용을 초래했다 한들 나는 감히 그를 비난하지 못하겠다. 박명기 교수의 사생활을 보호하고 싶어 했을 그의 배려심, 금품 모금이 엄격하게 제한된 우리의 제도를 고려하면 더 좋은 방법이 나오기 어려웠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돈을 몰래 건넨 것은 친구의 곤궁을 밖으로 알리지 않기 위한 섬세한 배려였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논리는 곽 교육감 자신이 반박한다. '최후진술문'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오해할 만한 해프닝이 없었더라면, 즉, 정말로 조건 없는 단일화가 성사되었다면 (줄임) 보다 일찍 공개적인 방식으로 박 교수에게 긴급부조를 행해서 급한 불을 꺼줬을 겁니다.

친구를 도울 "공개적인 방식"이 존재함은 곽 교육감도 인정한다. 그 역시 특정한 조건("정말로 조건 없는 단일화가 성사되었다면")에서라면 "공개적인 방식으로 박 교수에게 긴급부조"를 행했을 것이라 말한다. 한마디로 그가 비밀리에 돈을 건넨 것은, 단일화에 "조건"이 달렸기 때문이다. 이 경우 '주관적으로' 선의를 주장하더라도 '객관적으로는' 단일화를 위한 거래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한 마디로, 그는 친구를 배려해서가 아니라 세간을 의식해서 비밀리에 돈을 건넸다. 잘한 선택일까?

'무죄추정의 원칙'

최대한 호의적 해석을 통해 곽 교육감의 '선의'를 그대로 믿어주자. 그때조차도 그의 캠프와 그의 측근이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는 점, 그로 인해 결과적으로 유권자의 권리가 침해당했다는 점, 이른바 '긴급구제'에 도덕적으로 의심스러운 방법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곽 교육감은 도의적 책임을 면할 수 없다. 하지만 곽 교육감 측은 사안을 정치 문제화하는 가운데 도의적 책임의 문제를 법률적 유무죄로 환원시켜 버렸다. 이 환원을 통해 사라진 것은 윤리적 책임의 영역이다.

앞에서 한상희 교수는 나의 주장을 "'법률에 위반되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로 압축"했다. 물론 이는 내 주장의 왜곡이다. 하지만 그 왜곡의 바탕에는 곽 교육감 옹호론자들의 뒤틀린 논리가 그대로 깔려 있다. 가령 한상희 교수의 말을 뒤집어 보자. 그럼 '법률에 위반되지 않는 한 도덕적으로 책임질 일이 없다'는 명제가 얻어진다. 그것이 바로 곽 교육감을 옹호하는 측의 논리다. 그들이 '유죄판결 전까지 절대로 사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판결 이전에 윤리적 문제제기를 틀어막는 데에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된 것이 이른바 '무죄추정의 원칙'. 원래 이 원칙은 '기소 전까지 곽 교육감의 피의사실을 흘리지 않는 것'이나, '곽 교육감의 보석이 허용될 경우 당연히 그가 직무에 복귀하도록 보장하는 것' 따위를 의미한다. 하지만 곽 교육감의 옹호자들은 이를 '판결 전까지는 어떤 도덕적 비판도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으로 왜곡했다. 판사만이 사회적 사건에 대해 윤리적 판단을 내릴 자격이 있단 말인가? 이 역시 도덕을 법으로 환원시킨 데서 비롯된 궤변이다.

이와 연관된 또 하나의 궤변이 있다. '사퇴는 판결이 내려진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이 역시 문법적 오류다. 할 수 있을 때 하는 것이 '사퇴'다. 유죄판결이 내려지면, 곽 교육감은 자동적으로 면직되기 때문이다. 유죄판결을 받고 나서야 '아, 이제 사퇴하겠습니다'라고 말할 것인가? 대부분의 경우 법은 도덕의 극단적 경우만을 규제한다. 법이 규제하는 그 좁은 영역 밖으로 넓디넓은 윤리의 영역이 존재한다. 자칭 '진보'라는 이들이 내다버린 것은 그 넓은 영역에서 책임의 윤리적 주체가 되려는 자세다.

법 실증주의자?

한상희 교수의 마지막 논점은, 곽 교육감에게 적용된 법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그 확신에 입각하여 그는 나를 "악법도 법이니 지키라"고 우기는 "법 실증주의자"로 규정한다. 한상희 교수의 말을 다시 인용해 보자.

물론 후보자에게 금전이나 어떤 직책을 내걸며 후보를 사퇴하게 만드는 행위는 선거에서 유권자의 의사를 왜곡할 수도 있기 때문에 법으로 규제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를 검찰의 주장처럼 후보사퇴와 금전·직책의 제공이 서로 시간적으로 연속되었다는 이유만으로 획일적인 처벌에 나서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

분명한 것은, 한 교수가 "검찰의 주장"을 잘못 압축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후보사퇴와 금전-직책의 제공이 "시간적으로 연속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기소한 게 아니다. 그들은 두 사건 사이의 '인과관계'를 주장하고 있다. 정말 현행법이 "그저 시간적으로 연속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선의를 처벌할까? 만약 그렇다면, 대가성 여부에 관한 다툼은 애초에 벌일 필요가 없을 게다. 두 사건이 시간적으로 연속되어 있음을 누가 부정하는가? 결국 한 교수의 말이 맞는다면, 곽 교육감은 재판 기다릴 것 없이 이미 유죄일 것이다.

한상희 교수의 논리를 재구성해 보자. '① 후보사퇴와 금품제공 사이에는 시간적 연속만 존재할 뿐이다. ② 그런데도 법률은 곽 교육감을 처벌하려 한다. ③ 그렇다면 법률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④ 잘못된 법률로 곽 교육감을 단죄하는 진중권은 법 실증주의자다.' 이 논증에서 대체 뭐가 잘못됐을까? 당연히 ①이다. 즉 한상희 교수는 곽 교육감의 "선의"를 너무 굳게 믿은 나머지, 입증되어야 할 명제를 미리 전제한 채 논리를 전개한 것이다(그래서 앞에서 '선결문제 전제의 오류'라 했던 것이다).

앞으로 법정에서 두 사건의 관계가 그저 "시간적 연속"으로 드러날 경우 (즉 두 사건 사이에 인과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날 경우), 곽 교육감은 무죄판결을 받을 게다. 이는 법률 자체에는 문제가 없음을 말해 준다. 그 법이 어디 사형제나, 양심적 병역거부나, 국가보안법처럼 인권을 침해하는 악법이던가? 아마도 그는 '후보단일화를 쉽게 하도록 선거비 정도는 보전해주도록 법을 고쳐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 같다. 하지만 단일화는 보수도 하고, 진보도 하는 것. 단일화를 쉽게 하는 게 왜 공익에 부합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한 교수는 '친구를 도와주려는 선의마저도 처벌하는 법은 문제가 있다'고 얘기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곽 교육감이 가진 지극히 특수한 개인적 교우관계를 배려하기 위해 법 자체를 바꿀 수는 없잖은가. 게다가 정말 법 자체가 문제라고 보았다면, 돈을 건네기 전에 '정말로 선의에서 친구를 돕고 싶은데 현행법에 저촉된다'며, 사전에 그 문제를 공론화 했어야 한다. 일단 돈부터 건네고 나중에 걸리고 나서 '법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따지는 것처럼 우스운 일이 또 있을까?

'선의를 처벌하는 법은 나쁘다'는 주장에는 어떤 판단이 깔려 있다. 즉 이미 단일화에 조건이 붙은 이상 곽 교육감이 박 교수를 도울 합법적 방법은 없었다는 판단. 그래서 그는 '고로 법이 잘못된 것'이라는 결론으로 비약한 걸 게다. 하지만 그 말을 뒤집으면, 당시 상황에서 곽 교육감은 자신의 주관적 선의가 객관적 범법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래서 돈도 몰래 건넨 게 아니겠는가? 게다가 진보진영의 대표로서 공사의 구별도 제대로 못 한 것도 결코 잘한 일이라 할 수 없다.

세 번의 기회

판결은 법원이 내릴 것이다. 벌써 시효가 쟁점이 되는 모양이다. 곽 교육감은 옥중 메모에서 "시효가 지난 후에"라는 표현을 썼고, 그의 변호인들 역시 사건의 시효가 지났다고 주장한다. 시효가 지났다면 기소 자체가 기각될 것이다. 반면, 아직 시효가 지나지 않은 것이라면, 단일화를 위한 약속이나 이중차용증의 존재를 곽 교육감이 인지하고 있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될 것이다. 하지만 법률적 판단은 법원의 일이고, 도덕적 판단은 사회의 몫이다. 후자를 전자에 맡겨 놓을 필요는 없다.

곽 교육감에게는 세 번의 기회가 있었다. 첫째는 단일화에 조건이 있었음을 인지했을 때. 그때 그는 사실을 털어놨어야 한다. 둘째는 박 교수에게 돈을 건넬 때. 그 돈은 절대로 줘서는 안 됐다. 단일화에 조건이 붙어 있고, 그 사실을 인지한 이상, 그의 의도와 관계없이 그 돈은 객관적으로 대가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판사보고 궁예처럼 관심법을 하란 말인가?). 셋째는 사건이 세간에 알려졌을 때. 그때 그는 사퇴했어야 한다. 그래야 윤리적 책임의 '주체'가 될 수 있었다. 판결 후에는 그저 법률적 처분의 '대상'일 뿐이다.

이는 미래를 위한 약속의 문제다. 당신이 곽 교육감의 참모라면, 앞으로 이와 같은 일, 혹은 비슷한 일이 벌어질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두 갈래 길이 있다. 하나는 도덕성을 시험하는 계기마다 곽 교육감에게 '정도를 걸으라'고 권고하는 것. 다른 하나는 이번에 곽 교육감과 그의 캠프에서 했던 것과 똑같이 행동하는 것. 어느 쪽이 옳은가? 과거를 판단하는 것은 그것을 심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약속을 하는 것이다. 과연 진보의 길은 무엇인가?

윤리에서 선동으로

혹자는 검찰을 탓한다. 우리는 검찰의 피의사실 유포를 비판할 수 있고, 이번 수사의 정치적 배경을 의심할 수 있다. 하지만 검찰의 잘못에서 논리적으로 곽 교육감의 결백이 추론되는 것은 아니다. 둘은 논리적으로 독립된 사안이다. 그러므로 검찰을 비판하기 위해 곽 교육감의 행위를 정당화해줄 필요는 없다. 미국 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가르친다고 들었다. "Two wrongs doesn't make a right(두 개의 잘못된 것이 하나의 올바른 것을 만들지는 못한다)." 검찰의 잘못은 잘못대로 따지면 될 일. 곽 교육감의 잘못까지 덮어줄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대중들이 양자를 혼동하는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한명숙 전 총리의 기억이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리라. 이 혼동을 바로 잡아야 하나, 그 일을 해야 할 지식인들이 외려 그 혼동을 부추기고 있다. 가령 이화여대 조기숙 교수의 말을 들어 보자.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한명숙 전 총리, 정연주 전 <한국방송>(KBS) 사장에게 가해진 검찰의 편파수사, 기획수사, 그리고 우리가 치른 희생으로부터 배운 것이 별로 없어 보인다.

이 주장은 '곽 교육감 사건의 성격이 노 전 대통령이나 한 전 총리의 사건과 동일하다'는 부당전제 위에 서 있다. 실제로 그런가? 앞으로 곽노현 교육감이 유죄판결을 받으면, 그때는 뭐라고 할 건가? 노 대통령도 살아계셨다면 곽 교육감처럼 유죄판결을 받았을 것이다? 아무리 정치적 선전선동이 급하다 해도, 돌아가신 분 모셔다가 주책없이 아무 맥락에나 마구 집어넣으면 안 된다. 그것이야말로 그분을 욕되게 하는 짓이다.

정치인들이 하는 짓과 뭐가 다른가? 정치인들은 자신의 비리가 들통 나면, 일단은 '결백하다'고 주장한다. 이어서 그것이 '권력의 탄압'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그들이 이렇게 윤리적, 법률적 사안을 툭하면 정치 문제화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정치에는 늘 두 개의 파당이 있어, 그렇게 하면 인구의 절반이 제 편을 들어주기 때문이다. 심지어 속으로 그의 유죄를 믿는 이들까지도 정치적 담론의 장에서는 그가 가련한 권력의 희생양라고 우겨준다. 진보가 이런 것까지 닮아야 하나?

평소에 황우석, 심형래에 이어 그런 사태가 한 번쯤 더 일어날 거라고 말하고 다녔지만, 그 일이 '진보진영'에서 반복될 것이라고는 생각 못 했다. 어차피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면, '논'객이 할 일은 없는 셈. 진보가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요구가 "개 풀 뜯어먹는 소리"(정희준)가 되는 곳에서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선동은 몇 마디로 되지만, 그것을 논박하는 데에는 몇 페이지가 필요하다. 이 긴 글의 스크롤 압박을 인내할 대중이 얼마나 될까? 친애하는 대중이 선동가를 원한다면, 그들은 그것을 가질 권리가 있다.

다만, 아무리 비루하고 허접해도 내 영혼은 최소한 그런 짓에 동참하지 않을 정도만큼은 고결하다.

Original Page: http://t.co/VEre4UX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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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9

[야! 한국사회] 수출 늘면 잘살게 될까 / 선대인

흔히 한국을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라고 표현한다. 그만큼 수출을 통해 한국 경제가 성장한 측면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수출대기업들에 대한 지원을 합리화하기 위한 수사로 포장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 이래로 추진된 동시다발적 자유무역협정(FTA)의 명분도 여기에서 나왔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이니 다른 나라와 무역을 확대해 성장하도록 마치 운명지어진 나라처럼 묘사됐다. 정부가 각종 에프티에이를 추진하면서 '경제영토 극대화, 개방이익 선점' 등을 홍보용 구호로 내건 것도 연장선상에 있다.

실제로 한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수출입 규모를 나타내는 무역의존도는 2010년 기준 102%로 매우 높다. 일본과 미국의 무역의존도가 20% 전후,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가 35~40% 전후, 중국이 45%, 독일이 60% 정도인 것과 비교하면 매우 높은 것이다. 물론 홍콩, 싱가포르, 룩셈부르크 등 국제적인 상품 및 서비스 중개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들보다는 낮다. 하지만 이들 나라는 인구 300만~600만 정도의 도시국가들로 내수만으로는 먹고살기 어려운 나라들이다. 한국처럼 웬만한 경제규모를 갖춘 나라 가운데 무역의존도가 이 정도로 높은 나라는 매우 드물다. 그런데 한국은 지금도 높은 무역의존도를 막무가내로 더 높이자는 것이다.

그러면 정부 말대로 수출을 늘리면, 즉 무역의존도를 높이면 더 잘살게 될까. 무역의존도 추이를 보면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된다. 물론 경제개발 초기에 이른바 수출드라이브를 통해 경제성장을 시작했고, 1970년대 초반까지는 경제성장과 함께 무역의존도가 함께 높아졌다. 하지만 1970년대 초반 이후로는 다른 양상이 나타났다. 수출로 벌어들인 외화를 바탕으로 소득이 늘자 내수도 성장하기 시작해 수출입 규모가 계속 늘었음에도 무역의존도는 60% 수준에서 거의 늘지 않았다. 오히려 1980년대 후반 3저 호황과 민주화가 맞물리던 시절에는 무역의존도가 50%대까지 떨어졌다. 이때가 어쩌면 성장과 분배 양 측면에서 한국 경제의 황금기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재벌대기업의 수출을 중심으로 무역의존도가 50%대에서 102%까지 급상승했지만 경제성장은 둔화되고 내수는 위축됐으며 가계는 늘 불경기에 시달렸다.

오히려 국민소득 가운데 가계가 급여 등으로 챙기는 몫을 나타내는 노동소득분배율은 외환위기 이후 무역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오히려 악화돼왔다. 수출이 늘어나고 경상수지 흑자 폭이 커져도 일반 가계의 소득으로는 거의 돌아오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반면 무역의존도가 낮아졌던 1987~96년 10년 동안 노동소득분배율은 오히려 더 가파르게 올랐다. 크게 보면 수출을 늘리면 늘릴수록 일반 가계의 몫은 더욱 줄어드는 상황이다. 인위적인 고환율 등으로 일반국민의 부를 수출대기업에 이전해주면서까지 수출을 비대화하고 내수를 극도로 위축시킨 탓이다. 그렇게 해서 국내총생산에서 내수, 즉 민간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미국 70%, 일본과 유럽국가들은 60%대에 이르는데 한국은 50%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처럼 경제규모에 걸맞지 않게 수출만 극도로 비대해진 경제는 안정적으로 성장하기 어렵다. 비유하자면 한국 경제는 내수와 수출이라는 쌍발 엔진 가운데 수출이라는 엔진 하나만 주로 사용해 경제성장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해서는 질적 성장은 고사하고 양적 성장조차 제대로 이루기 어렵다. 이제는 내수를 키우는 전략으로 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과 더불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및 저임금 근로자 중심의 임금 상승을 유도해가야 한다. 한국 경제는 쌍발 엔진으로 날 때 훨씬 더 안정적이고 멀리 날 수 있다.

선대인 선대인경제전략 연구소 소장 트위터 @kennedian3

곽노현 1심 벌금 3천만원 선고, 교육감 업무 복귀

서울시교육감 선거 때 후보자를 매수한 혐의로 기소된 곽노현(58) 서울시교육감이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업무에는 복귀하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형두 부장판사)는 19일 곽 교육감에게 벌금 3천만원을 선고했다. 이에 따라 곽 교육감은 즉시 구속이 풀려나 업무를 볼수 있게 됐다.

재판부는 이날 선고공판에서 곽 교육감이 박명기(54) 서울교대 교수에게 건넨 2억원에 대가성이 있다며 유죄를 인정했으나 곽 교육감이 금전 지급을 합의한 사실을 알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곽 피고인은 단일화 과정에서 일관되게 금품제공을 거절했다. 박 피고인이 상황이 어려워 경제적 부조를 한다는 주관적 동기가 있었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양형 사유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돈을 받은 박명기 교수에게는 징역 3년과 추징금 2억원을 선고했으며, 중간에서 돈을 전달한 강경선 한국방송통신대 교수에게는 벌금 2천만원을 선고했다.

한편, 곽 교육감의 업무복귀로 서울시 교육에는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먼저 최근 서울시의회에서 통과됐으나 교육감 권한대행인 이대영 부교육감이 재의를 요청해 향방이 불투명해진 서울학생인권조례 시행이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곽 교육감의 핵심 정책인 고교선택제 수정, 혁신학교 확대 등도 활기를 띨 전망이다.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교육정책 공조 움직임도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곽 교육감의 업무복귀는 지난해 9월 구속 기소되면서 직무집행이 정지된 후 4개월만이다.

디지털뉴스부 digitalnews@hani.co.kr





2012-01-17

[성한용 칼럼] 민주통합당 경제민주화 어떻게 할까

"누가 뭐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가수 안치환씨의 목소리가 킨텍스 행사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사회를 보던 김유정 의원이 몸을 좌우로 흔들며 춤을 췄다. 대의원석에서는 기차놀이가 시작됐다. 한바탕 축제였다.

민주통합당 지도부 선출대회는 흥행에 성공했다. 대선 주자를 뽑는 선거가 아니었는데도 모두 52만6000명 가까이 투표를 했다. 모바일 투표를 한 47만8000명 덕분에 가능했다. 투표 방식의 진화 이외에도, 이명박 정권에 대한 반감, 통합의 효과가 사람들을 끌어모았을 것이다.

16일 국회 민주통합당 대표실에서 열린 첫 최고위원회에서, 한명숙 대표는 "우리들은 정당 역사상 최초의 국민참여 지도부라는 자부심을 가지면서도, 정권교체의 승리를 위해 무한한 책임감을 갖고 출발한다"고 선언했다.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은 목소리였다.

그럼 이제 민주통합당의 앞날은 밝기만 한 것일까? 아니다. 축제는 끝났다. 정치는 냉혹한 현실이다. 한명숙 대표를 비롯한 민주통합당의 새 지도부는 앞으로 반쯤 죽을 고생을 하게 되어 있다. 박근혜 위원장의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와 무한경쟁을 해야 한다.

민주통합당 강령 1조의 제목은 '경제활동의 성과가 국민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는 경제 민주화 실현'이다. 옳다. 경제 민주화는 이 시대 정치의 핵심이다. 한나라당 강령에도 '일자리', '사회 양극화 해소'가 과제로 포함되어 있다. 비대위는 더 진전된 수정안을 내놓을 것이다.

문제는 실현이다. 개혁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하는 것이다. 두 가지다.

첫째, 사람이다. 정권의 중심은 대통령이지만 실제 권력은 국회에 많이 넘어왔다. 한명숙 대표가 밝힌 '공천혁명'은 단순히 물갈이 효과 때문에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경제 민주화를 추진할 의지와 정책 대안을 가진 새로운 사람들이 국회에 많이 들어와야 한다.

그런데 한 대표는 "전략공천을 최소화하고 완전국민경선으로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겠다"고 했다. "국민들은 정치의식이 높기 때문에 시대적 흐름에 맞는 경쟁력 있는 후보를 뽑아 올릴 것"이라고 했다. 그럴까? 그게 해답일까?

완전국민경선제는 장점도 있지만 인지도가 떨어지는 신인들이 전·현직 의원들의 벽을 넘어서기 어렵다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따라서 당 지도부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기존 정치인들의 기득권을 지켜주려는 '꼼수'라고 비판받을 수 있다. 국민들에게 권한과 동시에 결과에 대한 책임까지 떠넘기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는 16일 현역 의원 25%를 물갈이하겠다는 공천 방침을 발표했다. 한나라당과 민주통합당 어느 쪽이 더 개혁적인 공천을 할 수 있을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다만 민주통합당 쪽에 좀더 치열한 고민과 치밀한 기획이 필요해 보인다.

둘째, 구체적인 실현 방안이다. 경제 민주화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표현을 빌리면, '서생적 문제의식'만으로 안 된다. '상인적 현실감각'이 반드시 필요하다.

사회디자인연구소 김대호 소장이 이라는 책을 냈다. 김 소장은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이라는 비전을 '타도해야 할 앙시앵 레짐'으로 규정했다. '정리해고가 돼도, 비정규직이 돼도 괜찮은 세상'이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자본과 노동 간 분배구조 개선도 필요하지만, 자본 간 재분배, 노동 간 분배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긴 그렇다. 민주통합당 사람들의 최근 주장에는 의심스런 대목이 너무 많다. 민주통합당이 집권하면 정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폐기할 수 있을까? 기업은 정리해고를 못 하게 되는 것일까? 정치적 구호를 실제 정책으로 만들었을 때 나타나는 엄청난 부작용은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일까? 의문이 끊이지 않는다.

민주통합당은 지금부터 구체적인 숫자가 포함된 법안과 정책을 줄줄이 내놓아야 한다. 그걸 보고 재집권의 자격을 국민들이 판단하게 될 것이다. '신자유주의 반대', '이명박 반대'라는 정치적 구호만으로 집권을 시도해선 안 된다. 심하게 얘기하면 그건 사기다.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세상 읽기] ‘왕언니’들의 살림정치 / 윤정숙

여성운동계에는 '왕언니' 세 명이 있다. 그들은 대표나 이사장보다 왕언니라 불러줄 때 더 행복하다. 수십년간 여성운동 안에서 각기 환경·평화·문화의 영역을 개척하고 이끌면서 큰 발자국을 남긴 언니들은 최근에 셋이 되어 등장했다. 혼자일 때보다 셋으로 움직일 때 왕언니들의 행보는 더욱 유쾌하고 당당하다. 지장·덕장·용장의 환상 조합이라 자칭하는 그들이 앉으면 몇 시간씩 풀어내는 수다와 박장대소는 천장을 뚫을 것 같다.

끊임없이 새로운 일을 구상해 쏟아내는 박영숙 큰언니, 두서없이 얽혀버린 왕수다를 조각보 꿰매듯이 조리있게 정리해주는 이현숙 중간언니, 뭐든 일단 해보자고 바람잡는 막내언니 박옥희 등 다른 색깔을 가진 그들의 손발은 척척 맞는다. 무대든 밥상이든 어디서나 언니들의 이야기는 놀라운 에너지와 아이디어를 뿜어낸다.

수다 메뉴는 여성정치, 가난한 아시아 여성들과 연대하기, 일하는 딸 대신 손녀딸 키우는 '앵그리 그랜맘'(화난 할머니)에 대한 정책, 여성운동의 진로까지 무궁무진하다. 그들의 싱싱한 '현역정신'에 상상력과 낙천성이 버무려지면서 상 위에 올라온 모든 수다는 놀랄 만한 프로젝트로 환생한다.

팔순의 큰언니는 두달 전 네팔 10대 싱글맘을 돕는 단체 '두런두런'을 창립해 후배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중간언니는 책을 쓰고 있다. 그들은 어떤 일에서도 근엄하거나 심각하지 않으며, 경쾌하지만 가볍지 않다.

2010년 말 여성계 송년회를 주관한 그들은 가득 모인 후배들에게 직접 만든 음식을 풍성하게 대접했다. 모두들 넉넉히 배불러갈 즈음, 다가오는 정치의 해를 맞아 함께 정치의 새판짜기에 나서자고, 자신들은 거름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주저하며 한발 빼고 싶은 후배들을 불러 모아 다독이고 재촉한 지 몇 달 만에 '살림정치 여성행동'이 조직되었다. 왕언니들의 내공 찬 경험과 열정적인 풍구질 덕에 '돌보는 정치, 나누는 정치, 살리는 정치'의 꿈은 첫 발걸음을 시작하였다.

'돌봄·나눔·살림'의 가치는 현실정치를 잘 몰라서 그런 거라고 숙덕대는 사람들도 있다. 그럴 것이다. 그동안 정치가 그런 가치를 고민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사실, 살림정치는 처음부터 구태정치에 맞장구치기를 거부하며 탄생했다. 오래된 주류정치의 언어와 관습을 뛰어넘으려 했으니, 당연히 계파나 줄서기는 없다. 막무가내식 비난과 음모는 절대 사절이다. 여성 몇 명을 더 국회에 보내는 것에 큰 초점을 두었던 이전의 전략에서 새로운 가치로 정치의 문법과 문화를 바꾸는 것이 목표다. 현실을 넘어서려는 의지는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며, 새로운 언어는 낯설고, 때론 고단하지만 의미있는 것을 만들어내는 힘의 원천이 아닌가.

19세기에 본격화된 서구의 여성참정권 운동은 한 세기 동안 각국에서 많은 여성들이 손가락질당하고 고초를 당한 끝에 제도화되었다. 1991년 지방자치제가 부활하고 겨우 0.9%이던 여성 지방의원은 20년이 지난 지금 20%에 다가섰다. 멈추거나 포기하지 않는다면, 당장은 아니어도 살림정치의 가치는 현실정치의 중심으로 조금씩 스며들 것이다.

그녀들은 말한다. 자신들은 앞에 나서는 것보다 뒤에서 기운을 북돋아 주겠다고, 필요하면 음식도 만들고 자리도 마련하며 누구든 만날 것이라고 한다. 살림의 정치문화가 연착륙하려면 그것을 만드는 과정도 사람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그들처럼 내가 먼저 빛나겠다는 마음을 접는다면, 내가 뿌린 씨가 맺은 열매를 내가 따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이 된다면 새로운 정치는 가능하지 않을까. 왕언니들에게 기립박수를 보낸다.

윤정숙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편중인사에 편중비리’…한눈에 보는 ‘MB 측근의 비리’

☞ 한겨레 인포그래픽-MB 친인척 13명이 비리연루·의혹
☞ 기획연재-한겨레 기사로 보는 'MB 가문의 비리' 바로가기

측근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람을 그 곁에서 모시는 사람. 또는 어떤 사람과 매우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을 뜻한다. 정치에서 측근은 늘 권력을 창출하는 일등 공신이면서 정권 말기로 접어들면 온갖 비리와 추문을 일으키며 정권을 레임덕의 궁지로 몰아넣었다.

전두환 시절, 최측근인 정호용 국방장관이 기업으로부터 200억원대 불법 정치자금을 받아 주군에게 심각한 정치적 타격을 안겼다. 노태우 시절엔 절친인 이원조 은행감독원장이 재벌들로부터 막대한 '6공 비자금'을 뜯어내 관리한 것이 검찰수사에서 드러났다.

※이 자료는 클릭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한 '인터랙티브 인포그래픽'입니다.

문민정부 시절에도 군사정권 때보다 규모와 비자금 액수 등은 줄었지만, 측근 비리 사건은 끊이지 않았다. 김영삼 정부 시절엔 홍인걸(한보 사건), 장학로(이권청탁), 김우석(한보 사건) 등 측근 발 비리 사건이 잇따라 터졌다. 김대중 정부 시절엔 동교동계의 좌장격인 권노갑씨가 한보비리와 16대 총선 직전 현대그룹으로부터 200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었다. 노무현 정부도 재임기간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에스케이로부터 11억원을 받아 구속되었고, 측근인 이광재 의원이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돼 도덕성에 타격을 받았다.

측근 비리는 이명박 정부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임기를 1년여 남겨 둔 현 시점에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 가운데 각종 비리에 연루되거나 의혹을 받고 있는 이는 16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신재민, 은진수, 김두우 등 7명이 구속되고, 장수만 등 3명이 불구속, 박영준 등 6명이 각종 의혹을 받고 있다. 정권 말기로 가면 더 많은 측근 비리가 터져 나온다는 점에서 MB 측근 비리는 현재진행형이다.

측근 비리 연루자들을 특징별로 분류해 보면 지역별로 영포라인(경북 영일·포항)과 대구·경북(TK) 출신이 4명, 학교별로는 고려대 출신이 6명으로 가장 많았는데, 이는 이명박 정부의 인사가 TK와 고려대 인맥에 편중된 탓으로 보인다. '편중인사'에서 '편중비리'가 나오는 역설을 증명하는 셈이다.

비리 연루자들을 그룹별로 묶었을 때 또 다른 특징은 MB 대통령 만들기의 산파 구실을 한 안국포럼과 대통령 인수위원회 인맥이 6명으로 다수가 분포한다는 점이다. 안국포럼 출신과 인수위원들은 이 대통령과 인간적인 관계는 비교적 느슨하였지만 권력을 매개로 한 관계 맺기를 통해 새롭게 등장한 MB 정권의 '신주류'다. 이들은 권력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목적은 더 뚜렷하였지만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은 상대적으로 덜할 것으로 보여 비리에 대한 경계가 더 느슨했을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사건별로는 MB 정권의 대표적인 권력형 비리 사건인 '부산저축은행 구명 로비 사건'(김두우, 김해수, 은진수)과 '함바비리 사건' 연루자가 각각 3명으로 가장 많다. 에스엘에스(SLS)그룹 로비 사건으로는 최측근인 신재민, 박영준씨가 연루 의혹에 휩싸여 있다. 에스엘에스 사건의 경우는 사건 수사가 진행 중이어서 비리 연루자가 더 나올 수도 있다. 이외에도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박희태 국회의장 등 이 대통령 측근들의 측근이 뇌물 수뢰 등의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어 측근 비리는 더 확대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MB의 측근 비리와 각종 의혹을 기사를 중심으로 묶었다. 이 그래픽은 앞으로 측근들의 비리나 의혹이 확인되거나 추가되면 내용을 반영해 갱신할 계획이다.

인포그래픽=조승현 shcho@hani.co.kr 글=박종찬 기자 pjc@hani.co.kr

※이 자료는 클릭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한 '인터랙티브 인포그래픽'입니다.

정동영 ‘전주 불출마’ 전격선언 부산영도 출마 비치자 ‘진정성 논란’

정동영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17일 오는 4월 총선에서 자신의 지역구인 전북 전주덕진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정 상임고문은 이곳 대신 김진숙씨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맞서 크레인 농성을 벌였던 부산 영도 출마 뜻을 내비쳤지만 당 안팎에서 이를 둘러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정 상임고문은 이날 오전 전주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전주가 기득권이라면 포기하겠다"며 "1%만 행복하고 99%가 불행한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제 모든 것을 던지고 싶다"고 말했다. 정 고문은 "민주통합당이 출발하면서 (덕진구 불출마) 고민을 시작했다"며 "새 지도부에 힘을 실어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전주 덕진은 정 고문이 1996년 정치에 입문해 재선에 성공한 뒤 대선주자로 부상한 곳이다. 2008년 총선에선 지역구를 서울 동작을로 옮겼다가 낙선한 뒤 미국에 머물던 중 2009년 4월 보궐선거가 치러지자 민주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그를 받아준 곳이기도 하다.

그의 전주 덕진 불출마 결정은 당내 다른 대선주자나 호남 중진들의 취약지 출마 또는 불출마 결단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은 김형오 전 국회의장, 홍정욱 의원 등 8명이 이미 불출마를 선언했고 한나라당 지지세가 강한 영남 지역에서 대폭적인 현역 의원 교체가 예상된다. 반면 민주당에선 불출마 선언 의원이 정장선 의원(경기 평택을)과 장세환 의원(전주 완산을) 등 2명에 그친 상태다. 여기에 '올드보이들의 귀환' 움직임까지 일자, 1·15 전당대회에 출마한 후보들이 중진들의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기도 했다. 정 고문과 가까운 이재경 전략기획위원장은 "정 고문의 기본 생각은 몸을 던져 '사지'로 간다는 것"이라며 "민주당 지도부의 과감한 공천혁명을 가능하게 하는 기폭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정 고문이 염두에 둔 새 지역구다. 정 고문은 지난 16일 한명숙 대표에게 "부산 영도 출마 생각도 있지만 지도부 협의 결과에 따르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영도구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에 맞서 300일 넘게 고공 크레인 농성을 벌였고 전국에서 희망버스가 왔던 곳이다. 담대한 진보와 경제 민주화를 깃발로 세우고 최근 2년 동안 각종 노동 집회 현장을 누빈 정 고문으로선 다른 '사지'들에 비해 의지를 보일만하다.

그런데 그런 점 때문에 정 고문의 진정성이 의심받고 있다. 부산 출마를 선언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나 문성근 최고위원 쪽도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다. 한 출마자는 "영도에서 나고 자란 문 이사장도 야권연대를 염두에 두고 다른 지역을 선택했다"며 "정동영 고문이 영도 출마를 결심할 경우 진정성을 인정받기보다는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심상정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는 "통합진보당에서도 전략 지역으로 설정하고 있는 곳으로 민주당과의 선거연합 과정에서 상당히 중요하게 논의되어야 할 지역"이라고 말했다. 진보신당은 "서울 강남이나 대구·경북 등 한나라당 초강세 지역에서 의연하게 싸워달라"고 논평했다.

김보협 기자, 전주/박임근 기자

bhkim@hani.co.kr

“1분만 늦어도 배송날짜 못맞춘다” 비상걸린 우체국

영광굴비·나주배·충주사과·횡성한우·참치세트…. 보낸 주소와 받는 주소는 천차만별이다. 약 1만5000㎡(4500여평) 넓이의 공간에는 다음 행선지를 재촉하는 택배상자들이 차곡차곡 쌓인다. 머리 위로 컨베이어 벨트와 유사한 모습의 '소포자동구분기'가 쉴새없이 택배상자를 옮기며 지역 이름이 쓰인 팻말 앞에 떨어뜨린다. 서울 강남지역 쪽 팻말 밑에는 '급'이 다른 고가 선물 상자들이 쌓이는 것도 눈길을 끈다.

"지난주 수요일부터 물량이 늘기 시작했어요. 보통 어제(월요일) 선물을 부치시는 분들이 많아 오늘이 최대 피크가 될 겁니다." 주양규 동서울우편집중국 소포팀장은 "여기서 1분이라도 지체하면 배송은 몇배로 늦어진다"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17일 새벽 5시쯤, 서울 광진구 동서울우편집중국은 설 명절을 앞두고 최대치에 이른 택배 물량을 처리하느라 하얗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직원들의 얼굴에는 피곤함보다 긴장감이 엿보였다. 전국에서 광화문·동대문·용산·강남 등 서울 중심부로 배달될 택배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앞서 새벽 1~2시에는 서울에서 지방으로 갈 선물상자들이 트럭에 실려 행선지로 향했다. 명절을 앞두고 하루 평균 200여대의 트럭이 이곳을 들락거린다.

우체국에 접수된 택배는 보통 우편집중국→다른 지역 우편집중국 →총괄우체국→집배원의 4단계를 거쳐 받는 사람의 손에 전달된다. 오후 6시 우체국이 문을 닫은 뒤 그날 접수된 택배는 먼저 우편집중국으로 이동한다. 우편집중국은 각 우체국에서 보내온 택배를 지역별로 구분해 전달하는 '허브' 구실을 한다. 소포자동구분기가 택배에 붙어 있는 무선인식 전자태그(RFID)를 인식해 지역별, 행선지별로 분류한다. 예전에는 사람 손으로 일일이 구분해야 했으나, 1990년 자동분류 설비가 도입돼 요즘은 시간당 1만4000여개씩 분류한다.

명절이 다가오면 이곳엔 '비상'이 걸린다. 가뜩이나 설 명절 때는 배송 기간이 늘어나는데, 밀려드는 물량을 제때에 처리하지 못하면 연쇄적으로 배송이 지연되고 고객 불만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날 동서울우편집중국에서 처리한 택배 물량은 28만여개다. 이날 전국 23개 우편집중국에서 처리된 택배를 합치면 150만여개에 이른다. 우정사업본부는 '비상 근무 기간'으로 선포한 지난 9일부터 21일까지 지난해보다 20% 늘어난 1160만개의 택배가 처리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위해 동서울우편집중국에는 기존 575명의 인력에 230명이 추가로 배치됐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명절 때는 배송과 상관없는 부서 직원들도 모두 지원 근무에 나선다"고 설명했다.

작업은 기계에 무리가 갈 것을 고려해 1시간30분 작업하고 20분 쉬는 방식을 반복하며, 24시간 맞교대 근무로 운영된다. 하지만 직원들은 짧은 휴식 시간마저 아까워했다. 10여년간 이곳에서 배송업무를 해온 주양규 팀장은 "며칠간은 집에 가서 씻고 바로 나온다"며 "지난해보다 물량이 늘어 더 쉴 틈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 전역으로 배송되는 택배가 한 곳에 모이다 보니 강남과 다른 지역으로 가는 선물의 '양극화' 모습도 나타난다. 다른 지역이 생활용품 등 비교적 저렴한 택배들이 모이는 데 견줘, 강남 지역은 횡성한우세트와 건강식품 등 고가 선물 상자의 비율이 높다. 게다가 다른 지역 택배들의 행선지는 용산, 동대문 등 구별로 묶이는데, 강남은 대치동, 도곡동 등 동별로 나눠지고 있었다. 보통은 총괄우체국에서 동별로 나누지만 강남은 배송량이 많기 때문에 집중국에서 미리 나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전날 오전 9시~저녁 8시 처리 현황을 보면, 강남은 2만9000개, 용산은 7400개로 큰 차이를 보였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아무래도 명절 때가 되면 강남 쪽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물량이 많고 고급 선물 상자 물량도 많다"고 말했다.

우정사업본부는 16~19일에 전체 물량의 43%가 집중될 것으로 예상해, 원활한 배송을 위해 전국에 3000여명의 인력을 추가로 배치하고 하루 평균 3200대의 차량을 투입하고 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아침 햇발] 문성근이 할 일 / 김이택

민주통합당이 새 지도부를 뽑았다. 6명의 지도부 면면을 보면 민주당 지지층의 '집단지성'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지역안배에 세대교체를 가미한데다 성비까지 구색을 맞췄다. 출신지로 보면 부산·경남(박영선), 대구·경북(김부겸), 호남(박지원), 충청(이인영), 수도권(문성근)의 황금비율을 이뤘다. 민주당 역사에 대구·경북 출마 예정자가 투표로 지도부에 뽑힌 게 처음이라니 호남세 약화 운운하는 일부 걱정은 한 귀로 흘려도 될 듯하다. 박영선, 이인영, 김부겸 등 소장파가 대거 등장해 세대교체의 모양새도 이뤘다.

그중에서도 주목할 것은 '문성근 쇼크'다. 선거운동 캠프에선 2위 성적에 실망하는 분위기도 있다지만 정치 초년병의 데뷔 무대로서는 놀라운 성과다.

그는 전당대회 선거운동 기간 줄곧 '김대중의 아들, 노무현의 동생'을 자임했다. 현실정치에 뛰어든 계기 역시 두 사람의 죽음 때문이었다. "담벼락에 대고 욕이라도 하라"는 김 전 대통령의 말을 듣고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했다. 2010년 가을께부터 야권 대통합을 외치며 '유쾌한 100만 민란,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 운동을 시작해, 전국을 돌면서 지금까지 18만5730명의 회원을 모았다. 이것이 이번 전당대회에서 그가 선전하는 데 원동력이 됐다. 친구인 이창동 전 문화부 장관은 "모두가 냉소적일 때 (그는) 혼자 거리에 나가 야권통합 운동을 시작했다"며 그래서 "늘 문성근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나 정치인 문성근의 길은 이제부터다. 지도부 유일의 시민사회 출신인 그를 주목하는 시선만큼이나 부담도 클 수밖에 없다. 18만여 회원의 기대는 언제든지 실망과 분노로 바뀔 수 있다.

먼저 민주당을 바꿔야 한다. 야권연대는 당장 풀어야 할 과제다. 그러나 과반 의석을 얻어놓고도 지리멸렬했던 열린우리당의 실패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 당의 강령과 정책에 좋은 말은 다 모아 놓았다. 재벌과 대기업 근본적 개혁, 조세정의,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지원 강화로 좋은 일자리 창출, 비정규직과 정규직 차별 철폐, 보편적 복지, 청년실업 해소, 무상의료 달성, 종합편성채널 원점 재검토…. 그런데 총론만 있고 다듬어진 각론은 아직 없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 공약을 급조하고 선거 뒤엔 의견이 갈려 우왕좌왕하다 지지층을 실망시키는 일이 또 생기면 망하는 길이다. 유일한 시민통합당 출신으로서 민주당의 이런 구태를 깨는 데 그의 책임이 크다.

좋은 정책을 만드는 것 못지않게 국민들에게 잘 설명하고 설득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래서 노무현은 진보의 가치를 쉽게 전달하려고 중고생 수준으로 책을 써보자고 했다. 그런 문제의식이 민주당에 필요하다. 언론 문제도 마찬가지다. 에스엔에스가 국민과 소통하는 유효한 수단이지만 그렇다고 종편 출범 이후 악화하는 언론 지형을 그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는 일이다. '친노 독주'라느니 '한-미 동맹에 위기가 올 수 있다'느니 보수언론의 흔들기는 벌써 시작됐다. '캐시앤위스키'에서 세무조사까지 오락가락한 김대중식이나, 기자실 폐쇄 방식의 노무현식을 뛰어넘는 지혜가 절실하다. 조중동과 제대로 맞설 사람조차 찾기 힘든 게 민주당의 '불편한 진실'이다. 이 역시 문성근이 할 일이다.

노무현이 바라던 대로 시민들이 이제 깨어나기 시작했다. 공은 민주당으로 넘어갔다. 막스 베버가 말했다는, 정치인이 갖춰야 할 3가지 덕목 가운데 열정과 책임의식은 그에게 넘쳐난다. 이제 '균형 잡힌 판단력'과 지혜로 현실정치를 바꿔야 할 과제가 그의 앞에 놓여 있다.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한겨레 프리즘] 안철수, 정치를 하려면… / 임석규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이번주 미국에서 가족과 휴가를 보내고 있다. 모처럼 홀가분한 시간이 정치 참여 여부를 결단하는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는 선택의 갈림길에 설 때마다 대체로 공적 가치를 중시하는 쪽으로 움직였다. 정치는 공적 가치를 최대치로 구현할 수 있는 영역이다. 정치의 이런 치명적 유혹을 그가 끝내 뿌리칠 수 있을 것인가.

안철수는 이미 현실 정치의 중심부에 진입해 있다. 박근혜 대세론을 단숨에 제압한 그 힘을 허비하지 말라는 게 지지자들의 요구다. 이젠 하기 싫다고, 정치가 체질에 안 맞는다고 함부로 처신할 수 없는 처지다. 국민은 이미 그를 유력 대선주자로 등에 태워 질주하고 있다.

안철수는 자신을 대체할 다른 대안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그는 "현 집권세력이 정치적 확장성을 갖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 되는 건 못 봐주겠다는 얘기다. 안철수가 나서지 않으려면 박근혜를 꺾을 다른 야권 주자가 나타나야 한다. 그게 현재로선 무망하다.

안철수의 위력은 지지율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한 여론조사에서 가장 진보적으로 꼽힌 대선주자는 안철수였다. 61%가 그를 진보적 인물로 인식했다. 17대 대선을 1년쯤 앞둔 2006년 11월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여론조사에서 가장 진보적으로 꼽힌 대선주자는 이명박이었다. 당시 이명박이 진보에 가깝다는 응답이 54.7%로 김근태(42.1%)보다도 많았다. 이명박과 안철수에 투영된 진보 이미지는 이념이 아니라 '바꿈'일 것이다. 어떤 사람이 세상을 바꿔줄 것이란 대중적 믿음만큼 강력한 정치적 파워는 없다. 이명박도 그 힘을 바탕으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국민은 다시 안철수를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안철수는 정치 초보다. 준비되지 않은 대선주자다. 그가 대선판에 뛰어드는 건 수영 초보자가 장비도 갖추지 않은 채 심해 속으로 다이빙하는 것처럼 무모한 것일 수 있다. 느닷없이 1위로 솟구치더니 꺼질 줄 모르는 지지율은 이 정치 초보자에게 오히려 부담스러울 것이다.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들쑤실 것이다. 그러니 그가 몸이 으스러지도록 고민하는 게 맞다.

그가 각 분야 학자들을 만나 공부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정치를 다 갖춰서 할 수는 없다. 분야별 지식의 정도가 좋은 대통령의 척도는 아니다. 정치 9단이 정치 초보자보다 정치를 더 잘한다고 볼 수 없다는 증거가 바로 '안철수 현상' 아닌가. 그는 기업을 경영하며 '핵심 가치와 비전'을 고민했던 사람이다. 정치도 가치와 비전으로 승부해야 힘이 있다는 걸 그가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그의 진짜 고민은 실존적 영역에 있는 것 같다. 그는 지난 8일 미국으로 출국하면서 인천공항에서 만난 기자들에게 "열정을 갖고 균형을 잡으면서 계속 (정치를) 해나갈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마 막스 베버의 를 읽었나 보다. 이 책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정치란 열정과 균형적 판단 둘 다를 가지고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구멍 뚫는 작업이다."

영혼의 맑음을 지키려는 이들에게 정치는 모질고 고통스러운 '불인'(不仁)의 영역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뒤 쓴 글에서 "얻을 수 있는 것에 비하여 잃어야 하는 것이 너무 크다"며 "정치, 하지 마라"고 말렸다. 안철수가 현실 정치에 발디디는 순간 온갖 모멸적 공격이 휘몰아칠 것이다. 정치하려면 시대의 요구와 자신의 소명을 일치시키면서도 정치의 비열함에 흔들리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 세상을 바꿔달라는 기대에 부응하려면 그 자신이 정치적으로 진화해야 하지 않을까.

임석규 정치팀장 sky@hani.co.kr

2012-01-16

한명숙, 시민·당원·대의원 고루 득표…이변은 없었다

 80만이나 되는 선거인단이 투표했지만 양적 증가에 따른 질적 이변은 없었다. 15일 마무리된 민주통합당 당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대회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결과대로 한명숙-문성근-박영선 순서로 귀결됐다.

24.5%의 표를 얻은 한명숙 대표는 대의원과 시민·당원 선거인단에서 고르게 20~30%대의 압도적 지지율을 기록했다. 한 대표 이외에 20%를 넘긴 경우는 39살 이하 모바일투표에서 각각 21.8%와 20.7%를 기록한 박영선 최고위원과 문성근 최고위원뿐이었다. 이번 선거가 각 단계 모두 1인2표로 실시된 만큼, 대의원·선거인단의 절반가량이 한 대표에게 1표를 던진 셈이다. 한 대표는 모바일투표에서도 2위 후보를 3~8%포인트의 큰 표차로 따돌리며 다른 후보들을 가볍게 앞섰다.

모바일투표의 최대 수혜자, 한 대표의 가장 유력한 '대항마'로까지 평가되던 문성근 최고위원은 모바일투표에서도 2, 3위를 기록했을 뿐, 한 대표의 '대세론'을 꺾지 못했다. 모바일투표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러온 흥행의 도구가 되긴 했지만 '이변'을 초래할 결정적 변수가 되지는 못했다. 모바일투표가 여론조사 흐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란 예측이 현실화한 셈이다. 문 최고위원은 기대에 못 미친 모바일투표 성적으로 최종 2위에 그쳤고, 그나마 전체 대의원 득표(4위) 덕에 최종 순위에서 박영선 후보를 가까스로 제쳤다.

경선 막바지에 뛰어들어 '다크호스'로 평가된 박영선 최고위원은 모바일투표에서의 높은 득표율을 바탕으로 최고위원직에 올랐다. 방송인 출신 정치인으로 참신성을 인정받은데다, 지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 시장과 후보단일화 경선을 치르며 인지도를 크게 높였고, 당 정책위 의장을 맡으면서 쌓은 정책적 내공이 호평을 얻은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6위에 그친 대의원 투표 결과에서 보듯, 당내 기반에선 한계를 보였다.

통합 이전에는 가장 유력한 당대표 후보로 거론되다가 통합 및 경선 과정에서 지지율 추락을 겪은 박지원 최고위원은 대의원 투표에서 3위를 기록하며 탄탄한 조직력을 뽐내는 한편, 모바일투표에서 4위, 지역 현장투표에서 2위를 기록하며 나름의 선전을 펼쳤다. 박 최고위원은 그동안 호남을 중심으로 한 전통 민주당 표밭에서 우세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인영 최고위원은 대의원 투표 2위를 기록해 지도부 진입의 발판을 다졌다. 대의원의 1표는 시민·당원 선거인단의 15.7배에 이르기 때문에, 시민·당원 선거인단에서 뒤져도 역전이 가능한 '황금표'로 불렸다. 그러나 모바일투표에서 이 최고위원은 5~6위를 기록하는 등 대중적 기반의 한계도 뚜렷해졌다. 마지막 순위의 김부겸 최고위원은 대의원 선거에서 5위를 하며 턱걸이로 지도부에 입성했다. 대구 출마 선언이 그나마 호응을 얻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경선에선 40살 이상 모바일투표 선거인단의 득표율 순위가 최종 득표율 순위와 일치해 눈길을 끈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한명숙, 시민·당원·대의원 고루 득표…이변은 없었다
학교폭력 가해사실 학생부 남는다
강남 '수입식품' 강북은 '굴비' 설 선물도 다르네
이건희 "일본은 힘 빠졌고 중국은 아직 멀어"
타이타닉처럼…초호화 크루즈 좌초 '미스터리'

‘시민정치’ 제1야당 입성…정당개혁 시동걸다

참여와 분노가 만든 결과였다. 그들은 외치지 않았다. 거리로 나오지도 않았다. 다만, 인터넷으로, 전화로 국민선거인단이 되겠다고 참여했다. 그리고 선택했다. 문성근이란 배우를, 통일 일꾼을, 정치인을. 민주통합당 전당대회에서 문성근 최고위원이 돌풍을 일으키며 2위로 당선된 의미다.

한때 '1위설'이 강하게 돌 때가 있었다. 그가 당대표가 된다면 정말 큰 변화가 이뤄진다는 기류가 시민선거인단을 감쌀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전당대회 당일(15일) 각 포털 검색어에서 '문성근'은 수위를 달렸다. '한명숙'은 키워드에 없었다. 전당대회장에서도 그는 탁월한 선동가 기질을 선보였다. 진행자처럼 차분히 가다가, 대선 광고 '노무현의 눈물'을 낭독할 때처럼 울리다가, 마지막에는 '같이 가자'고 포효했다. 그러나 그는 모바일에서도, 현장투표에서도, 전당대회장에서도 1위를 하지 못했다. 민주통합당에 새로 결합한 시민사회 세력을 상징한 그의 정치적 능력에 대의원은 물론 시민들도 아직은 온전한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회의원은 물론 공직도 한번 맡지 않았던 그가 단숨에 제1야당 지도부 2위에 오른 것은 대이변이다. 문 최고위원은 자신이 상징하는 새로운 지지층과 전통적 지지층과의 '통합'을 이끌어 낸다면 차세대 주자로 우뚝 서게 된다.

우선은 4월 총선 부산 돌파가 과제다. 문성근 최고위원은 전당대회장에서 "저의 부산 북·강서을 출마를 계기로 부산을 반드시 돌파해 내겠다"고 외쳤다. 무엇보다 본인이 당선돼야 한다. '문·성·길'(문재인 노무현재단 상임이사장, 문성근 최고위원, 김정길 전 행정자치부 장관) 바람이 거세다고 해도 아직 부산은 한나라당 땅이다. 그에게는 '부산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없다. 부산의 한 민주통합당 예비후보는 "문 최고위원이 출마하는 북·강서을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향력이 남아 있는 곳으로, 민주당에서도 중량급이 출마하면 기대해볼 만한 곳"이라고 평했다.

배우로 널리 알려진 문 최고위원은 제도 정치권에 들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일찌감치 '절반의 정치인'이었다. 늦봄 문익환 목사와 박용길 장로의 셋째아들이자 야당 대표를 했던 문동환 목사의 조카로서 현실 정치를 가까이서 접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날 현장연설에서도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때 김대중 전 대통령과 문 목사의 재판에 방청객으로 들어가 공판 내용이 해외에 보도되게 하는 역할을 했던 경험을 얘기했다. 그는 2002년 대선 때도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의 주축으로 활약했다.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논쟁] 정치인의 예능프로 출연, 어떻게 봐야 하나?

선거철을 앞두고 정치인들의 예능프로 출연이 잦아지고 있다. 박근혜의 '비키니', 문재인의 '격파', '고소남' 강용석 등 최근 예능프로에 출연한 정치인들은 '인기검색어'를 만들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뉴스·시사프로에서나 얼굴을 볼 수 있었던 과거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대중은 정치인의 '정치'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그들의 인간적인 모습에 더 열광한다. 이성적 메시지보다는 감성적 호소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두고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긍정론과, 지나친 희화화로 정치 발전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부정론이 맞서고 있다. 양쪽의 의견을 들어본다.

소통과 공감의 '첫걸음'이기를

그들이 방송에서 나눈 대화는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성적…
국가 지도자의 철학과 비전을
예능프로에서 확인할 순 없다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과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연이어 예능프로에 출연해서 화제다. 출연 후 누구의 시청률이 높았느니, 왜 그런 것 같다느니 말도 많았다고 한다. 박근혜와 문재인 두 사람은 2012년 양대 선거를 앞두고 많은 관심을 받는 사람들이다. 이런 두 사람이 한 주 간격으로 예능프로에 출연했으니 전국 시청률이 10%대를 기록하고 수도권 시청률이 1위를 차지한 것은 당연하다. 주변의 반응도 호의적인 경우가 많다. 두 사람 모두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일, 가슴 아파 눈물 흘렸던 경험 그리고 앞으로의 꿈 등에 대해 진솔하게 말해 많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물론 긴장감도 있었다. 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하기도 했고 여러 현안에 대해 계속 진보적인 입장을 취한 것으로 잘 알려진 한 진행자와 박근혜 위원장의 만남이기에 시작 전부터 "누구와 누구의 대결"이라는 말도 있었다. 현 정부와 주요 정치인을 직설적으로 비판한 문재인 이사장의 언급도 사람들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어쨌든 두 사람이 '야근혜', '문제일'이라는 별명도 각각 얻은 것을 보면 두 사람의 사상 첫 예능프로 출연은 성공적이었다.

두 사람이 '신비주의 장막'을 걷어내고 사람들에게 한발짝 더 다가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들의 말과 행동에 웃고 울었던 시청자들도 그들이 우리와 같은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소통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들이 '그들만의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세상에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들과 우리 사이에 공감이 이루어진 것이다.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공감은 기성정치에서 국민들이 보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안철수 현상'이 대변하는 '새 정치'의 중요 구성요소 중 하나가 바로 공감이다. 기성정치가 불통의 정치였다면 새 정치는 '소통과 공감의 정치'여야 한다. 이때 공감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이 소통이다. 소통과 공감은 일방적인 의사소통이 아니라 '쌍방향 의사소통'을 통해서 가능하다. 이렇게 보면 여야의 유력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두 사람이 예능프로를 통해 유권자와 공감하고 소통하려는 것은 잘한 일이다.

하지만 한계도 분명하다. 소통과 공감을 뛰어넘는 그 어떤 메시지를 발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동일 시간대에 방송되는 여러 예능프로 중에서 어떤 하나를 선택하는 기준은 다양하다. 재미도 있어야 하고, 출연자도 관심을 끄는 사람이어야 한다. 박근혜와 문재인, 두 사람의 예능 출연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박근혜와 문재인이라는 사람에 대한 인간적 이해와 재미도 주었다. 예능프로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면 그들은 성공했다. 그럼에도 예능프로에서 그들이 주고받은 대화의 상당 부분은 이성적이기보다 대체로 감성적이었다. 이런 방식을 통해서는 재미와 감성을 뛰어넘은 그 무엇이 부족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 사람들의 '가벼운 선택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재미와 감성을 뛰어넘는 그 무엇은 그들이 그리는 '대한민국의 미래 비전과 국가운영 철학'의 메시지다. 우리는 국가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들의 비전과 철학을 예능프로를 통해서 알 수 없다. 비전과 철학을 전하는 것이 예능프로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도 안 된다. 박근혜와 문재인이 희망하는 대한민국의 모습이 어떤 것이며 이를 어떻게 이룰 수 있을지 우리는 궁금하다. 그들이 생각하는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고 싶다. 이는 그들 중 한 사람이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더욱 중요한 일이다. 나랏일이 감성과 재미, 웃음으로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능프로 출연보다 더 많이 언론과 만나고 전문가 그룹과 만나고 잠재적 경쟁자들과 만나 토론하며 자신의 철학과 비전을 설명하여 국민적 공감을 얻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새 정치가 요구하는 소통과 공감을 뛰어넘는 정치의 공공성 회복이 가능하다. 그들의 예능프로 출연이 '소통과 공감 그리고 공공성의 정치'를 위한 2012년 대장정의 첫 시작이기 바란다. 박명호 동국대 교수·정치학

비키니와 격파가 뭐 어때서!

예능프로 아니면 소통 불가능한
한국 정치가 만들어낸 '현상'…
대중문화를 '쓰레기' 취급 말라
국민은 정치인보다 합리적이다

정치인들의 예능프로 출연에 대해 다양한 비판이 있다. 정치를 희화화한다, 이성의 영역이어야 할 정치가 이미지 정치로 흐른다, 정치와 방송이 서로를 선전의 도구, 시청률의 도구로 이용한다 등의 지적 말이다. 일리가 있다. 그러나 그런 비판도 정치인들의 예능프로 출연을 부적절한 것으로 몰아갈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정치인이 개그맨보다 더 웃긴다는 것은 이미 증명이 된 사안이다. 한국 정치가 이성의 영역이었던 적도 없고 이미지 정치는 조선시대에도 있었다. 그리고 정치의 '격'과 '기준'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이야말로 정치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다.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제외하면 전지구적으로 합의된 정치적 제도나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민주주의조차 20세기 들어 합의한 시대적 현상일 뿐이다. 특정 시기, 특정 지역의 정치행태는 그 시대 그 사회를 살아가는 대중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보고 있는 정치인들의 예능프로 출연은 분석의 대상은 될지언정 옳고 그름이라는 가치판단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이러한 뜬구름 잡는 식의 논박보다는 내용에 대한 분석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먼저 박근혜의 비키니 수영복 사진과 문재인의 격파 시범. 왜 하필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성차별적 장면이 연출되고 부각됐을까. 또 자신이 저지른 담대한 성희롱을 덮기 위해 사방으로 똥물을 뿌리고 다니다가 최근 한 토크쇼에 출연해서는 "고소가 충만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며 개그정치를 넘어 엽기정치를 구사하는 강용석 의원에게 미디어는 과연 무엇일까.

더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 예능프로에 출연하는 정치인들은 (강용석을 제외하면) 하나같이 대권주자나 당대표급이다. 혹시 방송사의 '접대성 초청'은 아닐까. 한 대권주자의 출연에서 보듯 진행자의 예측가능한 질문과 두루뭉술한 회피성 답변은 그러한 혐의를 제공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시청률의 노예'로 전락한 방송사들이 유명 정치인만 부르다 보니 실력 있고 소신 있는 정치(신)인들이 배제되어 버린다는 점이다. 이들 예능프로가 정치 영역의 부익부 빈익빈을 조장하는 것이다.

이런 내용상의 한계나 구조적 문제에 대한 비판은 가능하겠지만 이들의 출연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이는 저잣거리의 대중문화를 '쓰레기' '아편'이라며 한편으로 무시하고 다른 한편 두려워했던 양반·귀족의 사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아니라면 적어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급격한 확산과 젊은 세대의 결집에 놀라 내심 불편해하고 있는 어른들의 또다른 모습일 뿐이다.

중요한 점은 이런 예능프로의 인기가 사실은 지리멸렬한 기존 체제로부터 촉발된 반작용이라는 점이다. 위선과 부패로 가득한 정치, 왜곡과 야합의 온상이 된 언론, 무엇보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국민과의 소통보다는 불통을 즐길 뿐 아니라 국가를 사익 추구의 방편으로 삼은 현 정권의 천박함은 국민을 분노와 환멸에 빠뜨렸다. 이로 인해 등장한 인물이 바로 한국 정치의 기린아 정봉주와 혁명적 언론인 김어준이고, 이들이 탄생시킨 것이 한국 정치언론의 새로운 프로토타입(원형) '나는 꼼수다'이다.

'나는 꼼수다'와 에스엔에스의 돌풍, 그리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등장은 기존 언론과 정당에 대한 심판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직접소통'이고 정치 예능프로의 출현은 이런 환경변화가 만들어낸 현상일 뿐이다. 다른 한편 이는 정치인과 시청자의 욕구가 딱 맞아떨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리 개성 있는 정치인도 당론에 갇혀 자신을 죽여야 했고 소신을 말할 수 없었다. 방송도 이들을 편가르기 해서 싸움 붙이는 데에만 골몰해왔다. 결국 그들이 대중을 직접 만나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안전한 통로는 바로 예능프로였던 것이다. 우리도 정당이라는 패거리 집단에서 벗어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이들의 모습에 편안함과 신선함을 느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정치인과 예능프로의 조합은 시대가 만들어낸 작품이다. 그리고 걱정들 마시라. '우매한 대중'이지만 정치인보다는 더 합리적인 판단을 한다. 정희준 동아대 교수 문화평론가

[삶의 창] 폭력에 대한 관심 / 황현산

동네 편의점으로 아직도 못 끊은 담배를 사러 들어가는데, 나보다 먼저 가게에 들어간 중년 부인이 큰 목소리로 다급하게 전화를 한다. 너는 그 애들 이름만 문자로 보내주면 된다. 변호사하고도 상의를 했다. 지금 바로 고발해야 한다. 같은 말을 한 번 더 되풀이한다. 부인의 자녀가 학교에서 집단폭력에 시달리고 있음이 분명하다. 학교폭력에 사회의 관심이 갑자기 높아졌으니 어머니는 이 기회에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하는데, 아이가 주저하고 있는 것 같다. 학교에서 싸움 잘하는 순서가 첫째부터 꼴찌까지 정해져 있던 시기에, 늘 꼴찌를 면하지 못하고 중고등학교를 다닌 내가 익히 알고 있던 것, 그러니까 자신의 불행이 어른들의 개입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저 아이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이 높은 관심이 수그러들고 나면 아이가 당하게 될 고통은 두 배 세 배가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고등학교 때의 일이다. 외부의 조폭과도 연결되어 있던 몇몇 학생이 교무실에서 난동을 부렸다. 책상을 뒤엎고 유리창을 깨뜨렸다. 그 장면을 보고 한 교사가 기절을 했다. 그 교사는 후에 자기 형인 김용운 선생과 함께 를 쓴 김용국 선생이다. 선생은 우리 학교에 독일어 교사로 부임했지만, 수학과 영어와 세계사를 두루 가르친, 별명 그대로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이었다. 선생은 그 사건이 일어난 며칠 후 교실을 돌아다니며 학생들에게 특별 강연을 했다. 이제는 기억 저편의 일이 되었지만, 폭력에 의지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라고도 했던 것 같고, 학교에는 학교의 권위가 있으니 그 권위를 인정해야 싸움 잘하는 사람들의 세계에도 권위가 성립한다고도 했던 것 같다. 사태의 긴급함과 심각함에 비추어 보면 좀 맥없는 말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 이후 이상하게 학교폭력이 고개를 숙였다. 그 폭력 학생들이 선생의 말을 이해하고 설득이 되었기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보다는 교내에서 널리 존경받는 한 선생이 자기들의 행동에 관심을 갖고 어떤 연구 같은 것을 했다는 사실에 일종의 감동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교폭력에 대해 부쩍 높아진 관심이 부질없는 것일 수는 없다. 이 역시 맥없는 말이 되겠지만, 사회의 관심은 적어도 그 가해 학생들에게 자기들이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생각해볼 기회를 준다. 문제는 이 관심을 지속시키는 일이다. 한때 들끓던 여론이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닫게 되면, 그때 모든 학교는 누구도 손댈 수 없는 지옥이 된다.

이 관심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학교폭력에 대한 관심을 폭력 일반에 대한 관심으로 넓혀야 할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폭력 속에 살고 있고, 그 폭력에 의지하여 살기까지 한다. 긴급한 이유도 없이 강의 물줄기를 바꿔 시멘트를 처바르고, 수수만년 세월이 만든 바닷가의 아름다운 바위를 한 시절의 이득을 위해 깨부수는 것이 폭력인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고속도로를 시속 160㎞의 속도로 달리는 것도 폭력이고, 복잡한 거리에서 꼬리물기를 하는 것도 폭력이다. 저 높은 크레인 위에 한 인간을 일년이 다 되도록 세워둔 것이나, 그 일에 항의하는 사람을 감옥에 가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아이들을 성적순으로 줄 세우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면서도 너는 앞자리에 서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폭력이다. 의심스러운 것을 믿으라고 말하는 것도 폭력이며, 세상에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살아가는 것도 따지고 보면 폭력이다.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폭력이 폭력인 것을 깨닫고, 깨닫게 하는 것이 학교폭력에 대한 지속적인 처방이다.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당의 표상으로 ‘녹색가치의 깃발을 든 전태일’ 지향”

생태주의-사회주의 적극연대 꿈꿔
자유주의 한계때 대안 역할 할것

민주노동당과의 합당을 거부한 진보신당은 지난해 11월25일 홍세화(65)씨를 당 대표로 선출했다. 의석 하나 없이 '사회주의적 이념'을 지향하는 마이너 정당의 대표가 현실 정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저명한 언론인 홍세화의 '등판'만큼은 뜻밖이었다. 진보진영의 대표적 논객이었지만 직접적인 정치활동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어왔던 그였다. 지인들조차 "괜한 상처만 받을 것"이라며 만류한 길을 굳이 선택한 데는 그 나름의 절박함이 있었다. "제대로 된 진보정당 건설이라는 꿈이 물거품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당원들에게 호소했다. "노동하는 사람들이 주체가 되고, 그들의 목소리를 담고 꿈을 실현하는 정당, 오늘과는 다른 미래를 선취하는 정당을 건설하는 데 진보신당이 한 알의 밀알이 되자"고. 진보신당은 당원이 고작해야 1만4000여명에 지나지 않는다. 보수정당 등이 보기에 '한줌 거리'도 되지 않을 이 숫자는 그와 그의 당이 가야 할 길이 얼마나 멀고 험난한 길인가를 말없이 웅변한다.

-당 대표를 맡아보니 어떤가?

"여전히 초현실적인 상황에 놓인 느낌이고, 누가 대표님 하고 불러도 고개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 당의 영향력도, 재정 상황도 열악하다. 에 있을 때도 느꼈지만 가서 보니 진보정당에 대한 언론의 홀대를 더욱 절감한다. 때로 진한 외로움이 다가오기도 한다."

홍 대표는 프랑스 망명기에 쓴 로 대중적인 명성을 얻었다. 귀국(2002년)해서는 지난해까지 한겨레신문의 인기 칼럼니스트이자 대중운동가였다. 그의 칼럼은 한국 사회에서 사회주의적 가치 또는 이념의 실천을 추구하는 가장 명확한 글 중 하나였다. 그는 정당 가입을 사실상 불허하는 언론 풍토 속에서 진보정당 당원의 신분을 끝까지 고집했고, 은퇴하는 순간까지 노동조합의 평조합원임을 자랑했던 사람이다. 그런 그를 어떤 이들은 낭만적 이데올로그로, 또 어떤 이들은 근본주의자로 분류하기도 했다.

-직접 진보정당의 전면에 설 줄은 몰랐다. 그럴 만한 이유라도 있었나?

"나는 그저 글 쓰는 사람으로서 뒷자리에서 당을 지원하는 평당원의 역할을 하려 했다. 그런데 당을 이끌던 분들이 모두 당을 떠나는 사태가 일어났다. 내게 진보신당은, 그리고 당원들은 무척 소중한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 당의 부름에 응답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거기엔 나 자신의 자존감에서 비롯된 반응도 들어 있다."

-민주노동당과의 합당안이 당대회에서 부결되는 바람에 합당을 추진했던 노회찬·심상정 전 대표 등이 탈당해 통합진보당에 합류했다. 합당파와의 견해차는 무엇이었나?

"진보정당의 정체성, 즉 자신이 누구이고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무엇과 싸워야 하고 어떤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지, 이 물음의 실종 혹은 실패의 결과였다고 본다. 합당을 주장한 분들은 처음 민노당이 국민참여당과 합쳐지면 진보정치 전체가 우경화될 위험이 있으니 진보정당끼리 뭉쳐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지난해 9월4일 당대회에서 통합안이 부결되자 당을 나가 참여당을 포함한 3자 원샷통합을 했다. 여기에 어떤 논리적 일관성이 있는가? 진보정치의 가치를 모두 선거에 국한된 정치공학적 셈법 속에 구겨넣은 것 아니었나. 진보의 미덕 중 하나는 기다림이라 배웠다. 전망의 상실은 기다림의 포기로 이어진다. 가던 길을 돌아서기 전에 성실한 자기고백이 뒤따라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정치공학적인 측면도 부정할 수 없겠지만, 현 단계에서는 반한나라당 전선으로의 결집이 최우선 과제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진보정당의 통합이 1년도 안 되어 사라질 엠비나 한나라당에 맞서는 전선 형성의 전제조건일 수는 없지 않은가. 반한나라당 전선은 정책을 중심으로 한 선거연대나 연합전선 구축으로 가능하다. 오히려 정체성이 다른 정당을 '묻지마 통합'으로 몰고 가는 것이야말로 정당정치의 책임윤리를 방기하는 것이다. 한 예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통과를 무효화시키기 전에는 등원을 거부하겠다던 민주통합당이 말을 뒤집자 일주일도 안 되어 통합진보당이 등원했다. 에프티에이 폐지라는 중심고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버려지는 상황에서 연대가 흔들리는 책임이 진보신당에 있는지 되묻고 싶다."

-이전 칼럼들은 물론이고 지금 이야기를 들으면 과거 국민참여당 쪽 사람들에게 유감이 많은 것 같다.

"유감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참여당은 몇 년 전만 해도 진보정당에 표를 주면 사표가 된다고 했던 사람들이다. 이 정당과 합친 당을 진보정당으로 분립시키고 민주통합당과의 차별성을 주장하는 것은 매우 어색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 '한지붕 세가족'을 묶는 끈이라고 말하는 복지가 좌클릭된 민주당의 복지와 무엇이 다른지도 알 수 없다. 금융자본주의가 전면 위기를 맞은 시대에 진보정치의 정책은 보수나 자유주의 정당과 다른 것이어야 한다."

-어쨌든 반엠비 전선의 결집이란 측면에서 보면 진보신당은 고립의 길을 선택한 것일 수도 있다.

"혹자는 3자 통합을 마치 진보신당 내 독자파 탓으로 돌리는데, 나는 이에 분노한다. 독자파라는 것이 있다면, 이들은 어떤 통합이냐고 물었던 사람일 뿐이다. 자본이 인간을 모멸하는 시대에 자본주의 극복의 대안을 중심으로 진보정당이 통합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했을 뿐이다. 노동자의 절반이 이미 비정규화되어 있고, '1 대 99' 사회가 현실이 되는 상황에서 더 왼쪽으로, 더 낮은 곳으로 가야 하는데 오른쪽과 타협하지 않는다고 고립되어야 한다면 우리는 고립을 감수할 것이다. 나는 평소 톨레랑스(관용)를 주장해온 사람이다. 진보신당은 고립을 원한 것이 아니라 강요당한 것이다. 진보정치의 꿈을 포기한 사람들에 의해서."

-백낙청 교수 같은 분은 '2013년 체제'를 이야기하면서 야권이 연합정치로 총선에서 승리하고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한 후 새로운 정치시스템 구축에 나서야 한다고 했는데?

"2013년 체제는 보수도 진보도 모두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 야권으로의 정권교체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처지에서 보면 그 자체만으론 근본적인 변화가 아니다. 좋은 시절에는 시혜적 복지의 대상으로, 위험 시기에는 위기관리의 대상으로 존재할 뿐이라면, 노동자 처지에서 달라지는 건 없다. 오히려 어설픈 당근과 가혹한 채찍 사이에서 삶의 불안이 가중되는 시대가 될 가능성도 있다. 예컨대 세계적 차원의 경제위기가 다시 밀려올 때 수구적 보수세력인 한나라당만이 야당인 상황이 우리 사회에 유리할까?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 자유주의 주도의 위기관리가 한계에 부딪혔을 때 파쇼적 상황이 도래할 가능성도 있다. 그런 시대를 대비하는 것이 진보정치의 역할이어야 한다."

-21세기 글로벌 경제 차원에서 볼 때 일국 단위의 노동 대 자본의 계급적 이분법이 여전히 유효한가 하는 비판이 있다.

"한편으로 맞고 한편으론 틀린 지적이다. 자본이 값싼 노동력을 찾아 이동하므로 정리해고의 불가피성을 주장하거나 국내자본을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에 일말의 현실성이 있다 치자. 그러나 아이엠에프 체제 이래 위기와 고통은 고스란히 노동에 집중되었고 재벌국가 체제는 강화되었다. 자본 대 노동의 긴장관계가 완화된 것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이 있지만 이는 대기업 중심의 노동조합운동이 일정 시간 타협주의로 흘러온 데 기인한다. 하지만 대기업 사업장 밖으로 시선을 돌리면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가? 한-미 에프티에이 체제 이후의 노동운동은 전면적인 방향전환이 요구된다. 대기업 노조 중심의 조직이 비정규직을 포함하는 수평적 형태로 재편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올바른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측면에서도 '배타적 지지' 등 노동자들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관행은 극복돼야 한다."

'제3노총' 등 노조조직 분화 상황서
구조변혁 못하면 노동운동 큰 위기

-민주노총이 아닌 별도의 새로운 노동자 조직의 필요성을 말하는 것인가?

"당장 민주노총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제3노총이 가시화되고 있고 노조 조직들이 분화되는 상황에서 과거와 같은 구조를 변화시키고 민주노조 진영의 독자적인 요구를 제대로 마련하지 않으면 노동운동 자체가 거대한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는 면에서 그렇다. '고용 없는 사회'로 급속히 변해가는 현실에서 노동영역에 문제를 국한시키지 않는 광범한 사회적 연대가 구축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현재 진보신당은 계급 정당인가?

"사회주의를 강령으로 채택하고 있지는 않은데, 굳이 말하자면 '사회주의 이후'의 정당을 지향한다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홍 대표 개인의 지향은?

"개인적으로 나는 생태주의와 사회주의의 적극적 연대의 실현으로서 생태사회주의를 지향한다. 다르게 비유하자면 '녹색 가치의 깃발을 든 전태일'이 내가 그리는 당의 표상이다."

진보신당은 총선에 대비해 2월쯤 공약 등 당의 정책을 정리해 내놓을 계획이다. 현재 진보신당의 핵심 주장은 노동자 경영권, 기본소득제(모든 사회구성원에게 균등하게 지급되는 소득) 실시, 서울대 폐지 및 대학 평준화, 탈핵(원전 폐지), 한-미 에프티에이 폐기 등이다.

지역 1~2곳·비례대표 3% 득표 목표
의회정치-직접 민주주의 결합 노력

-진보신당은 노동자의 경영권 참여를 주장하는데 현실성이 있는가?

"오늘날 노동자들보다 기업의 운명에 따라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 사람이 누구인가? 쌍용자동차의 경우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반면 삼성은 이건희씨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경영권을 행사하는데 그것은 아무 문제가 없나? 재벌의 기업소유권 역시 피터 드러커의 연기금 자본주의론에 의해서 이미 근거 없는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지 않은가. 노동자 경영권의 비현실성을 말하기에 앞서 먼저 이런 질문에 답해야 한다. 노동자 경영권은 과거 사회주의체제의 국유화론에 가려 잘못 이해된 측면이 있지만, 독일 등 유럽에서는 성공적인 사례도 많이 있다. 삼성과 같이 책임지지 않는 소유·경영 구조도 아니고, 국유화 구조도 아닌 새로운 모델을 만들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4월이 총선이다. 주요 정당들이 점점 선거 대형으로 옮겨가는 중이다. 선거 목표는 설정했는가?

"목표는 의석을 획득해 원내에 진입하는 것이다. 지역 선거에서 1~2곳, 비례대표에서 총 유효득표 3%가 목표다."

-홍 대표도 출마하는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고심중이다. 더불어 이것 하나는 꼭 이야기해 두고 싶다. 진보정치의 가치는 선거로만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진보신당은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을 펼쳐가려 한다. 그것은 의회정치와 직접민주주의를 결합해 중앙과 지역, 삶의 현장을 연결하고, 그 속에서 당원이, 민중이 주인이 되는 정당운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지금 지역에 마련되고 있는 '민중의 집' 모델을 참고하려는 것인데, 머지않아 이는 중앙당을 '전태일의 집'으로 만드는 것으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홍 대표는 어느 책의 자서에서 자신의 꿈을 "시어질 때까지 수염 풀풀 날리는 척탄병이고 싶다"고 했다. 백발의 노전사가 총탄이 빗발치는 최전위에서 적진을 향해 수류탄을 투척하는 모습.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의 이데올로기 전장에서나 포착될 법한 이 장렬함 속에는 변방을 유랑했던 이름없는 혁명가의 이상과 열정이 포연처럼 스며 있다.

얼마간의 나르시시즘을 내포한 그의 바람은 2012년을 기점으로 현실적 투쟁성을 획득했다. '영원한 사병'에서 사령관의 계급장을 달고 전선으로 나서는 그의 출사표 제목은 '오르고 싶지 않은 무대에 오르며'였다. 사회주의자 홍세화의 전쟁이 시작됐다.



홍세화는

자본주의 모순 향해 "개똥!" 외치는 '백발의 척탄병'

옛날 서당 선생이 삼형제를 가르치면서 장래 희망을 물었다. 맏형이 정승이 되겠다고 하자 훈장은 아주 흡족해했다. 둘째 형이 장군이 되겠다고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내는 모름지기 포부가 커야지. 막내 차례가 되었을 때, 막내는 잠깐 생각을 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개똥 세 개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훈장이 의아해하며 이유를 묻자, 나보다 글 읽기를 싫어하는 큰형이 정승이 되겠다고 하니 한 개를 먹이고 싶고, 겁쟁이인 둘째 형이 장군이 되겠다 큰소리치니 또 한 개를 먹이고 싶고… 그러고 나서 말을 주저하자 훈장이 버럭 화를 냈다. 그럼 마지막 한 개는? 여기까지 말씀하신 할아버지가 물으셨다. 세화야, 막내가 뭐라고 말했겠니? 나는 대답했다. 그거야 서당 선생 먹으라고 했겠지요. 왜 그러냐? 형들의 엉터리 같은 말을 듣고 좋아했으니까요. 네 말이 옳다. 그런데 만약 네가 그 막내였다면 그 말을 서당 선생에게 할 수 있었겠느냐? 어린 나는 그렇다고 큰소리쳤다. 그러자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세화야, 앞으로 그 말을 못하게 되면 세 개째의 개똥은 네 차지라는 것을 잊지 마라.

자본주의의 모순을 향해 서슴없이 '개똥!'이라고 외치는 언론인 홍세화, '백발의 척탄병'을 꿈꾸는 홍세화는 이 이야기 속에서 태어났는지 모르겠다.

△1947년 서울 △경기중·고, 서울대 외교학과 △남민전 사건으로 프랑스 망명 △2002년 귀국 후 기획위원, 칼럼니스트, 한국판 편집인 △저서 등.


“밀리면 끝”…야구천재 고행 나서다

"편하게 치다보면 허점 생겨 스윙속도 올리려 짧게 잡아 수십만번 휘둘러야 내것 돼"

올해 연봉 3000만원 삭감 스무번째 스프링캠프 떠나 "40대 희망 전해주고 싶다"

차 안에서 얼마를 기다렸을까. 어둠이 깔린 무등중학교 앞을 흘긋흘긋 쳐다보기를 20여분 째. 먼지 묻은 야구복을 입은 아들, 정후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얼굴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감독한테 혼났구나." 올해 2학년이 되는 정후는 뾰로통해 앉아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아들 마중도 이날(13일)이 마지막이었다. 프로 스무번 째 스프링캠프가 다가오고 있었다. '50일 다녀오면 이 녀석 또 커 있겠네….'

이종범(42)은 15일 미국 애리조나로 전지훈련을 떠난다. 배가 고파서, 프로야구선수가 되면 가족들이 배를 곪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시작한 야구가 벌써 34년째. 한국나이로 마흔 셋인 그는 올 시즌 그라운드에 서면 프로야구 최고령 타자가 된다. "처음 프로 입단했을 때는 이렇게 오래 할지 몰랐다. 그동안 좋은 일도 있었고, 나쁜 일도 있었지만 중요한 사실은 아직도 내가 현역에 있다는 것이다."

프로 입단 전부터 스프링캠프에 대한 중요성은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서른 중반을 넘으면서부터 더 실감하고 있다. 이종범은 "실제로 경기에 뛰냐 안 뛰냐는 일단 배제하고 체력단련하고 몸을 충분히 만들어서 경기에 뛸 수 있는 몸을 만들어야만 한다"며 "실력이나 체력적인 면에서 100% 마쳐놔야 새로운 다짐이나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몇년 동안 절실히 느끼고 있다"고 했다.

이종범은 지난 시즌 6월부터 방망이를 아주 짧게 잡기 시작했다. 원래 밑으로 손가락 1~2개 공간을 남겨놨고 방망이를 잡았는데, 2개반~3개까지 위로 올렸다. 느려진 방망이 스피드를 보완해 빠른 공과 변화구에 대처하기 위해서였다. 방망이를 짧게 잡으면 홈런 등 장타가 줄어들지만 안타 생산 능력은 올라간다. 실제로, 이종범은 4~5월 타율이 0.212(66타수 14안타)에 불과했으나 6월부터 시즌 종료 때까지 타율은 0.302(169타수 51안타)였다. 시즌 타율은 0.277. 때문에 '좀 더 빨리 변화를 줄 걸' 하는 후회도 생긴다.

"사람이 편하게만 치면 나쁜 버릇이 생기고, 나쁜 버릇은 금방 몸안에 파고든다. 그러다가 투수들한테 허점이 보이고, 밀리기 시작한다. 때문에 '35살 때부터 좀 더 짧게 잡을 걸' 하는 후회도 있다. 타격을 바꾸면 근육 쓰임이 달라져 수십만 번은 방망이를 휘둘러야 비로소 내 것이 되기 때문이다. 작년에도 연습 때는 잘 됐는데, 실전에서는 자꾸 나쁜 버릇이 나왔다." 이종범은 이번 스프링캠프 동안 몸에 완전히 익숙해질 때까지 방망이를 짧게 잡고 치는 연습을 할 계획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훈련 외에는 답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프로야구 현역 최고참이라는 부담감은 물론 있다. 후배들과의 경쟁 때문은 아니다. 이종범은 "가끔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최고참으로서 나약하거나 쓰러지지 않는 모습을 후배들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게 제일 부담이 된다"고 했다. 선수생활을 함께 했던 선동열 신임 감독은 그에게 "고참으로서 솔선수범을 보여달라"고 주문한 터. 이종범은 "고참으로서 할 일만 다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닌 팀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돌이켜보면, 요즘 젊은 선수들은 조금 나약한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어린 선수들 마음을 다잡아서 팀이 잘 나갈 수 있게 하는 것도 내 몫인 것 같다. 팀이 이길 수 있는 야구를 하는데 돕고 싶다."

이종범이 현재 가장 경계하는 것은 부상이다. 다치면 더 이상 그라운드에서 뛸 기회가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종범은 "개인목표는 특별히 잡은 게 없다. 다만 정말 나이 먹어도 할 수 있다는 것만 보여주자는 생각"이라며 "40대에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싶다"고 했다. 짧게 곧추 잡은 방망이로 올 시즌 희망의 노래를 부르고픈 '바람의 아들'이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2012-01-15

지하철 출근 1000억원대 청년갑부 알고보니

지하철 출근 1000억원대 청년갑부 알고보니

by MSN, joongang.joinsmsn.com 출퇴근은 지하철로 한다. 점심은 회사 건물 지하 식당에서 동료들과 먹는다. 매일 새벽 여섯 시 전에 일어나 집 근처 수영장으로 향한다. 1000억원대 청년 갑부, 하지만 일반 직장인과 다를 바 없는 일상을 고수하는 사람. 국내 최대 모바일게임업체 게임빌의 송병준(36) 대표다.

 송 대표는 게임빌의 주식 1286억원어치(지분율 34.08%·지난해 말 기준)를 가졌다. 재벌닷컴이 꼽은 만 45세 미만의 젊은 부호 중 40위다. 2007년에는 미국 비즈니스위크지가 선정한 '아시아 최고의 젊은 사업가 25인'에도 뽑혔다. 이런 그의 '발'은 기사 딸린 중형차가 아니라 대중교통이다. 아침이면 지각이라도 할까, 지하철 구로디지털단지역에서부터 회사로 달려가는 송 대표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주변의 직원들도 덩달아 걸음이 빨라진다고 한다.

 그는 과시성 소비를 철저히 피한다. 별명이 '청교도'일 정도다. 골프 대신 탁구와 수영, 스쿼시로 체력을 다진다. 친구들과 만나면 삼겹살이 단골 메뉴다. 해외 출장 때에는 비행기 일반석을 이용한다. 송 대표는 "2000년 사무실도 없이 학교 전산실에서 게임빌을 시작했다. 친구 열 명과 고생을 많이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서울대 전기공학부를 졸업했다. 1996년 서울대 최초의 벤처창업동아리를 만든 주인공이다. 그는 "어려울 때의 초심을 잃지 말자는 뜻도 있으나, 기본적으로 게임 사용자와 동일한 경험을 쌓지 않고는 소비자의 마음을 읽을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송 대표가 지하철을 애용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시장 동향과 소비자 욕구를 파악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그는 "사람들이 게임을 가장 많이 하는 공간이 바로 지하철"이라고 했다. 게임에 몰두하는 사람들 모습을 보며 새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이다. 국내에서 출시되는 대부분의 모바일게임을 직접 해보는 것도 같은 이유다. '보통 사람'의 눈높이, 경쟁사 개발자들의 생각을 읽은 뒤 그보다 딱 반보 앞선 컨셉트의 게임을 내놓는다.

그렇게 대성공을 거둔 것이 2003년 출시한 '놈' 시리즈다. 휴대전화기는 PC와 달리 이리저리 돌려 쥘 수 있다. 이에 착안해, 게임 주인공의 진행 방향에 따라 화면을 180°, 90°단위로 돌리며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송 대표는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전, 휴대전화 화면과 키패드를 문지르며 즐기는 게임 '문질러'를 내놓은 것도 터치폰 트렌드를 앞서 구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2007년 시장 흐름을 잘못 읽어 위기를 겪기도 했다. 다행히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면서 애플 앱스토어나 구글 안드로이드 마켓을 통해 세계 시장의 문을 두드릴 수 있게 됐다. 덕분에 지난해 54%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그가 스마트폰 맹신자인 것은 아니다. 외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느라 책 보는 시간이 줄어든 것을 매우 안타까워한다. 송 대표는 "어느 새 모바일 게임업계의 맏형이 됐다. 후배들에게 힘이 되고 싶다"고 했다. 외부 개발사에서 만든 게임 30여 개를 해외 시장에 직접 퍼블리싱하려는 것도 그 때문이다.

Original Page: http://t.co/WrPCPNK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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