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13

[사설]친일 정당화한 백선엽씨가 국가유공자라니

경향신문 :
[사설]친일 정당화한 백선엽씨가 국가유공자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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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 후…]너무 열어젖힌 금융시장의 고통

경향신문 :
[마감 후…]너무 열어젖힌 금융시장의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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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모칼럼]자기 노래가 없다

경향신문 :
[임진모칼럼]자기 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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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오세훈 대선출마 여부는 관심사항도 아니었다”

경향신문 :
민주당 "오세훈 대선출마 여부는 관심사항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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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내 정치적 욕망이 아니란 걸 보여주고 싶었다”

경향신문 :
오세훈 "내 정치적 욕망이 아니란 걸 보여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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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 버리고 시장직 살린’ 오세훈의 노림수는?

경향신문 :
'대권 버리고 시장직 살린' 오세훈의 노림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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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2

[사설] 대선 불출마로 주민투표 정당성 얻어지나

오세훈 서울시장이 어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무상급식 주민투표 결과와 상관없이 내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오 시장이 이런 선언을 하고 나선 이유는 자명하다. 주민투표에 대한 서울시민들의 관심을 어떻게든 끌어보겠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서울시가 온갖 무리수를 동원해 주민투표 참가를 독려하고 있는데도 유권자들의 관심은 매우 시들한 편이다. 주민투표의 정당성부터 논란거리인데다 수해와 금융위기 등이 겹치면서 주민투표는 시민들의 관심권 밖으로 더욱 멀어지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투표율 미달 사태가 올지 모른다고 우려한 오 시장이 유권자 관심끌기용으로 내놓은 고육지책이 바로 대선 불출마 선언이다. 이번 선언은 또한 자신의 정치적 행보에 탐탁지 않은 눈초리를 보내온 한나라당 친박계의 도움을 받으려는 포석이기도 하다.

오 시장으로서는 자신의 이런 선택을 대단한 결단으로 여길지 모르지만 유권자들의 눈에서 보면 아주 뜬금없어 보인다. 우선 그의 대선 출마 여부는 유권자들의 큰 관심사가 아니다. 오 시장의 대선 후보 지지도는 한나라당 안에서도 박근혜 의원 등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데다 그나마 최근에는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 내년 대선에 출마해봤자 별로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정치권의 일반적 평가인데 대선 포기를 큰 결단인 양하고 있으니 쓴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오 시장의 주민투표 강행을 정치적 노림수로 여겨온 쪽도 내년 대선이 아니라 차차기를 겨냥한 정치적 입지 굳히기로 보는 쪽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정치적 디딤돌로 삼으려는 오 시장의 야심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대선 불출마 선언이 정당성을 결여한 주민투표의 본질적 문제점을 전혀 해소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발의 단계에서부터 주민 서명, 투표 문안에 이르기까지 온통 불법과 부정으로 얼룩져 있다. 특히 주민투표 대상이 처음에는 무상급식 '찬반' 투표였다가 뒤에는 무상급식의 '방안'에 대한 선택으로, 나중에는 '지원 범위'로 바뀐 것은 주민투표 자체가 원천적으로 성립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런 엉터리 주민투표를 그대로 실시했다가는 우리 민주주의 역사에 큰 오점을 남길 상황이다. 오 시장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대선 불출마 선언이 아니라 주민투표 포기 선언이다.

감정절제된 수직 리더십, 불만땐 ‘레이저 광선’

쿠데타로 집권했던 군 출신 대통령의 딸이 이 시대에 대통령을 할 수 있을까? 그의 리더십은 권위적일까, 민주적일까?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 대한 세간의 평가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사실은 그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것이다. 그는 22살이던 1974년 어머니가 숨진 뒤 5년 동안 청와대에서 아버지를 보좌하며 '퍼스트레이디' 구실을 했다. 1997년 45살의 나이로 정치에 입문할 때도 '박정희의 딸'이라는 덕을 봤다.

그러나 정계 입문 이후 14년 동안 그는 '신뢰의 정치인' '원칙의 정치인'으로 거듭났다. 자신만의 정치 스타일과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차기 대선후보 여론조사에서 30%대의 안정적인 지지율을 확보한 것이 그 증거다. 박근혜 전 대표는 도대체 누구일까? 어떤 정치인일까?

먼저 공인 의식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박근혜 전 대표에게는 보통 정치인들과 확실히 다른 면모가 몇 가지 있다. 무엇보다 사고방식이 다르다. 그의 머릿속에는 '개인'이나 '욕망'은 없고, '국가'와 '원칙'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지나쳐서 무서울 정도다.

보통 정치인들은 "이렇게 하면 당신에게 유리하다"거나 "저렇게 하면 우리에게 몇 표가 온다"는 말을 좋아한다. 유권자의 표를 받아야 생존할 수 있는 정치인의 속성상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박근혜 전 대표에게 그런 말을 했다가는 반드시 면박을 당한다. 2007년 대선후보 경선규칙을 정할 때 협상에 나갔던 측근이 "이 안을 받아들이면 불리하고, 이렇게 해야 유리하다"고 보고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유리하다 불리하다고 말하지 말라. 어떤 게 당헌 당규에 맞는 것이냐, 무엇이 옳은 것이냐"고 따졌다. 그의 측근들은 "지금도 박 전 대표를 설득하려면 '이렇게 하는 게 유리하다'는 표현보다, '이렇게 하는 게 옳다'고 말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개인이나 욕망보다 국가와 원칙을 중시한다.
'전략'이란 단어는 '속임수'와 비슷하게 생각한다.
정치는 '쇼'가 아니라는 것이다.
차갑다는 평가엔 "허무개그를 하고 깔깔 웃는다"며
인간적 측면을 강조하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전략'이라는 단어를 싫어한다. 전략을 '속임수'와 비슷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국민들의 심판을 받으면 그만이지 무슨 전략이 필요하냐"는 말을 자주 했다. 가식이나 포장을 싫어하는 것은 물론이다. 언젠가 주변에서 정치인은 '18번'(즐겨 부르는 노래)이 있어야 한다며 노래를 하나 정해서 팬카페에 올리자고 건의했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특별히 좋아하는 노래가 없다"고 거절했다. '쇼'는 안 하겠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이해나 욕망, 욕심을 혐오하는 박근혜 전 대표의 특징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의 한 측근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선천적인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일본에서 사관학교를 다녔다. 그때는 개인주의가 억제되고 국가주의가 최고조에 이른 시기였다. 미노베 다쓰키치라는 도쿄대 법학자가 천황기관설을 주장했다가 국가주의자들의 압력으로 귀족원 의원직을 사임한 일이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만든 국민교육헌장을 읽어보아라.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것 아니냐."

박정희 정권의 국가주의는 그 시대의 통치철학이었다. 박근혜 전 대표는 그 정권의 퍼스트레이디였다. 그의 발언이나 행동에서 개인적이거나 인간적인 것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국가주의 그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표의 정치적 리더십이 독선적이라는 비판은 의미심장하다. 그를 보좌한 경험이 있는 한나라당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개인으로서는 그만큼 수련된 사람이 없다. 헌신성, 공인 의식, 감정 통제, 언어 절제는 놀랍다. 그러나 그의 리더십은 지나치게 수직적이다. 지금은 국가 지도자가 톱다운 방식으로 의사를 결정하는 시대가 아니다. 수평적 리더십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대통령이 되기도 어렵고, 되고 나서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폐쇄성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측근들도 박 전 대표의 진의를 잘 모른다. 보스의 말 한마디에 좌우되고 보스의 표정을 지나치게 살핀다는 점에서 동교동(김대중 전 대통령) 문화와 비슷한 데가 있다."

아랫사람에게 너무 차갑다는 증언도 있다.

"당 대표로 모실 때 결재판을 들고 사무실에 들어갔다. 서류를 몇 장 넘겨보다가 갑자기 의자를 창 쪽으로 돌려 외면한 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식은땀이 나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어 결재판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독선적 리더십과 관련해서는 적극적인 반론도 존재한다. 사실은 박근혜 전 대표의 문제가 아니라 측근들이나 대화 상대방의 문제라는 것이다.

박 전 대표를 가끔 만나는 정책 전문가는 "내용에 대해 충분히 숙지하고 대하면 박 전 대표는 얼마든지 알아듣고 받아들인다"며 "훌륭한 학생"이라고 평가했다. 또 "나는 박 전 대표를 사석에서 가끔 '누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격의없이 대화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다른 주변 인사는 "그를 여자라고 우습게 생각하는 사람은 반드시 당하게 되어 있다. 그는 경륜이 있는 정치 지도자다. 나이가 벌써 60이다"라고 말했다. 쌀쌀맞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인간적으로 차가운 사람이 결코 아니다. '허무개그'를 하고 깔깔대는 모습을 기자들도 자주 보지 않았느냐"는 반박이 있다. 비판만큼이나 반박도 일리가 있다.

박근혜 전 대표의 다른 문제점 중 하나는 호가호위형 인물들이 주변에 많다는 것이다. 2007년 경선을 도왔던 인물 중에 돈 문제에 얽혀 수사를 받았던 사람이 있었다. 지금도 박근혜를 팔며 자기 정치를 하는 다수의 사람이 존재한다.

호가호위형 측근이 많지만 그들은 비리로 구속되면
"박 전대표가 살려줄 것"이라고 자신 못한다.
직설법과 반말은 안한다.
사이비 교주 의혹을 받은 최태민 목사와의 관계,
형제들과의 갈등은 어두운 개인사다

박 전 대표와 가까운 한 인사는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는 친박 인사들에 대해 박근혜 전 대표에게 물어본 일이 있는데, '저도 들어서 알고 있어요'라고 말하더라"며 "그런 사람들을 중용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측근 인사는 "언젠가 친박 정치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당신들 비리로 구속되면 박 대표가 살려줄 것 같으냐'고 물어봤더니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고 조용해진 일이 있었다"며 "친박 인사들도 박 전 대표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재원 전 의원은 "박근혜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되면 박근혜 정권이 되는 것이지, 친박정권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수첩공주'라는 별명은 박근혜 전 대표의 지식과 경륜이 짧다는 비판을 할 때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다. 이 별명을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까? 한 측근 인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박근혜 전 대표가 수첩에 뭔가를 적을 때는 나중에 반드시 챙긴다는 의미다. 기자들의 취재수첩과 마찬가지다. 수첩만 보고 읽는 정치인으로 비판하는 것은 부당하다. 박 전 대표에게 해명하자고 건의했다. '그냥 두세요. 아니면 됐지요'라고 대답하더라."

박근혜 전 대표의 화법은 어떨까? 그는 좀처럼 직설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누가 사람에 대해 보고를 했을 때, 박 전 대표가 "그 사람 잘 아시잖아요?"라고 말하면 긍정이다. 반대로 "그 사람 잘 모르시잖아요?"라고 말하면 부정이다. 박 전 대표는 측근들에게 "이렇게 하라"고 지시하는 경우가 없다. 대신 "이렇게 하면 어떠냐"고 의견을 내는 게 고작이다.

반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와 조카에게만 반말을 한다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다. 언어에서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매우 발달해 있는 셈이다. 동시에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특유의 '레이저 광선'을 쏘는 것도 사실이다.

박근혜 전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공인이었다. 아버지가 대통령이 된 뒤 '큰 영애'로 불렸다. 그리고 20대부터 국정에 개입했다. 어느 정치인도 이런 이력을 갖고 있지 않다.

그의 과거에 대한 증언을 확보하기 위해 정치권에 떠도는 이야기를 추적해 보았다. 그의 대학 시절 동기, 청와대 담당 비서관 등 몇 사람을 만났다. 이들은 적극적인 증언을 거부했다. 박근혜 전 대표에게 혹시라도 누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기자가 알고 물어보는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 관계를 바로잡고 보충해 주었다.

박근혜 전 대표가 1979년 10·26 직전 부마항쟁(당시는 부마사태) 공수특전단 철수에 개입했다는 얘기는 사실이었다. 이 이야기는 박근혜 전 대표가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미래연합을 창당했을 때 운영위원들의 입을 통해 처음 흘러나왔다.

1979년 부마항쟁때 공수특전단 철수를
아버지에 건의했다는 얘기도 있지만, 국가주의정권의
퍼스트레이디 경험 탓에 독선적이란 비판을 받는다.
"수평적 리더십을 갖추지 못한 국가지도자는 문제가 될 수 있다"

1970년대 말 청와대 출입기자단은 1주일에 한두 차례 박근혜 전 대표와 테니스를 쳤다. 테니스를 친 뒤에는 저녁식사를 하곤 했다. 이 자리에는 박정희 당시 대통령도 한 달에 한 번꼴로 참석했다. 기자들로서는 매우 중요한 취재 현장이었다. '큰 영애 보좌'를 주임무로 하던 최필립 공보비서관(현 정수장학회 이사장)도 참석했다.

1979년 10월15일 부산대를 시작으로 시위가 터져 온통 나라가 어수선했다. 에 군인들이 시위대의 귀를 잘랐다는 보도가 나왔다. 박근혜 전 대표는 테니스를 치는 대신 기자들에게 '부마사태'에 대한 민심을 들었다. 민심이 뒤집혀 '혁명'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말이 나왔고, 보도는 사실이라는 말도 나왔다. 하필이면 특전단을 투입해 대학생들과 충돌이 커졌다는 얘기도 나왔다. 당시 간담회에 기자로 참석했던 성병욱 인터넷신문 심의위원장은 "학생데모에 시민들이 호응하고 있는데, 부가가치세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이 나왔다"고 회고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최필립 비서관에게 기자들의 얘기를 타자로 치라고 한 뒤, 아버지(박정희 대통령)에게 공수특전단 철수를 건의했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불쾌한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박근혜 전 대표가 최필립 비서관에게 "비서관님, 경호실장(차지철)에게 지시하세요. 특전단 당장 철수시키라고 하세요"라고 말했다. 그래도 박정희 대통령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최필립 비서관은 박근혜 전 대표의 입에서 나온 공수특전단 철수 지시를 차지철 경호실장에게 전달했고, 차지철 실장은 정병주 특전단 사령관에게 철수를 지시했다.

박근혜 전 대표는 당시 정부에서 하는 일 가운데 잘못된 것을 주로 아버지에게 건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 부가가치세 도입에 대한 부정적 여론, 김영삼 신민당 총재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및 의원직 제명이 잘못된 것이라는 의견도 아버지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그의 이런 '임무'는 어머니(육영수)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는 게 당시 청와대 관계자의 증언이다. 청와대 안의 '야당'이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표는 언론인들의 견해를 꽤 존중했다고 한다. 구국여성봉사단 명칭을 한마음봉사단으로 바꾼 것도 언론인들의 건의에 따른 것이었다.

대학 시절에도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몇 가지 일화가 있다. 박 전 대표는 서강대 전자공학과 70학번이다. 그의 입학 동기들은 청와대에 가서 다과회를 했던 추억이 있다. 누군가 박 전 대표의 어머니에게 "친구끼리 야자해도 괜찮으냐"고 묻자, 육영수씨는 "서로 존댓말을 썼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뒤로 지금까지 박 전 대표와 그의 전자공학과 동기들은 서로 존댓말을 쓴다.

박근혜 전 대표는 등교할 때 반드시 신촌로터리에서 차에서 내려 학교를 걸어서 들어갔다. 학생들은 그에게 말을 쉽게 붙이지 못했는데, 대통령 딸이어서가 아니라 워낙 단정한 모범생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개구쟁이 남학생 후배가 그에게 "누나 빵 사줘"라고 자주 조른 일이 있는데, 경호원이 이 남학생을 빵집으로 데려가 큰 봉지에 한가득 빵을 사주고 "다시는 큰 영애님에게 빵 사달라고 하지 말라"고 경고한 일이 있었다. 박 전 대표는 다음날 그 남학생에게 "그건 내 뜻이 아니다"라고 사과했다.

일탈도 있었다. 어느 날 박 전 대표가 사라져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수녀들 숙소 뒤편 쪽문을 통해 학교를 몰래 빠져나가 명동 중앙극장까지 가서 영화 을 보고 온 것이었다. 박 전 대표는 동기 남학생이 박정희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다가 제적되자 어머니에게 얘기해서 그 학생을 취업시켜 준 일도 있다.

물론 박근혜 전 대표에게는 어두운 과거가 있다. 최태민 목사와의 관계가 대표적이다. 그의 주변 인사들은 "젊은 시절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영적인 위안을 받은 것 같다"고 한다. 그러나 최태민 목사는 사이비종교 교주 출신이라는 의혹을 비롯해 여러가지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다.

1975~1979년 신문을 보면 박근혜 전 대표와 최태민 목사가 행사에 함께 참여한 사진과 기사가 실려 있다. 지금 인터넷에서도 관련 의혹을 제기한 블로그나 기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2007년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의혹이 잠시 제기된 적이 있지만, 내년 대선을 앞두고 본격적인 검증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또 한 가지. 가족과의 관계도 박근혜 전 대표의 약점이다. 그는 부모가 다 돌아가신 뒤에 동생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다. 여동생 박근령씨와는 육영재단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었다. 지금도 관련 소송이 진행중이다. 박근혜 전 대표 앞에서 근령씨 얘기를 꺼내면 목소리 톤이 달라진다고 한다. 한때 마약의 구렁텅이에 빠졌던 남동생 지만씨도 박근혜 전 대표의 취약점이다. 그와 관련된 몇 가지 잡음도 역시 내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전 대표 본인이 설명해야 할 대목이다.

shy99@hani.co.kr



박근혜 연표

1952 대구 출생

1970 서강대 전자공학과 입학

1974 모친(육영수) 사망

1979 부친(박정희) 사망

1997 한나라당 입당

1998 대구 달성 재보선 당선

2004 한나라당 대표 취임

2007 한나라당 대선 경선 패배










성한용 선임기자의 대선주자 탐구

정치인은 만인의 술안주다. 동시에 만인의 친구다. 사람들은 정치인을 싫어하지만 바로 그 정치인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표출한다. 대부분의 정치인은 흐릿한 이미지에 둘러싸여 있다. 사람들은 유명 정치인의 외모, 출신 지역, 학력, 경력 정도로 그 정치인에 대한 호불호를 결정한다. 그러다 보면 정치인의 실체는 좀처럼 알기가 어렵다. 2012년이 다가오면서 대선주자급 정치인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다. 그들은 과연 누구일까?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은 갖춘 것일까? 또 하나의 이미지를 덧씌울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무릅쓰고 유력한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몇몇 정치인에 대한 관찰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2011-08-10

[조한욱의 서양사람] 독일과 일본

독일과 일본은 세계대전에서 같이 패배를 경험한 뒤 눈부시게 발전하여 경제대국이 됐다. 하나 그 두 나라에 대한 국제적 평가는 상반된다. 과거를 대하는 태도의 차이 탓이다. 일본이 비난받는 것은 반성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의 동반자로 공존하려면 최소한 과거의 잘못에 대해 시인하고 사과해야 한다. 어린 나이에 성노리개로 징발되어 씻기지 않을 상처를 입은 분들에게 그들은 돈 벌려고 스스로 갔다는 망언을 늘어놓는다. 잊힐 때쯤 되면 신사참배와 독도 영유권에 대해 도를 넘는 주장을 펼친다.

그에 비해 독일의 자세는 바람직하다. 유대인을 비롯한 인종 학살은 독일인의 양심에 그늘을 드리웠다. 그에 대한 최초의 설명은 히틀러 같은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점차 독일의 역사가들은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했다. 에카르트 케어는 독일 기업가들의 이윤 추구와 군부 정책이 밀접하게 얽혀 있음을 보여, 나치의 등장이 우발적이 아님을 밝혔다. 한스 울리히 벨러는 군국주의의 성장이 독일사에 자리할 수밖에 없던 구조적 정황을 설명했다. 오늘날 독일의 '일상생활의 역사가'들은 히틀러의 등장에 대해 독일 국민 대다수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독일인들이 3S 정책에 파묻혀 나치의 등장을 방조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책임을 의연히 감당하는 자세는 빌리 브란트 이후 독일 총리들마다 취임하면서 유대인에게 진심으로 사죄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피해국들도 그 진정성을 받아들여 용서했고, 협력 관계가 이루어진다. 일본은 교과서로 역사 왜곡을 계속하며,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는 양심적 역사서술을 '자학사관'이라고 비하한다. 하긴 우리의 정치계·학계·언론계·연예계에도 그들의 논조에 찬동하는 이들이 소리를 높이니, 그들에겐 자국의 양심적 역사서술이 자학일 것이다. 그런데 식민지였던 나라에서 이렇게 제국주의 국가를 옹호해주는 일이 있을까? 참으로 이상한 사람들이 사는 이상한 나라다.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세상 읽기] 간단한 셈법 / 장귀연

며칠 전 한 경제신문의 기자 칼럼을 봤다. 내용인즉 한나라당에서 당직자나 기자들에게 제공하는 김밥이 맛없다고 하자 더 좋은 김밥으로 바꾸었는데, 예산은 그대로이고 김밥 값이 비싸져 수량을 줄이는 바람에 김밥을 먹지 못하는 이들이 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 당직자의 말을 빌려, 한나라당에까지 불고 있는 정치권의 복지 바람이 이 김밥 사태 꼴이 날까 걱정이란다. "결국 무상급식과 반값 등록금 등 각종 복지수요를 충족하려면 누군가는 세금을 더 내야 하는데 그게 바로 샐러리맨이 될 거"라고 지적하면서 끝을 맺었다. 포털사이트에 올리는 메인기사로 선택한 것을 보니 이 신문사에서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글인 모양이다.

그런데 나는 이 칼럼을 읽다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논리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복지 수준을 크게 높이려면 세수도 더 많아져야 할 것이다. 기존 세금 낭비를 줄이고 전용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터. 그러므로 "누군가는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말에 수긍이 간다. 그런데 여기서 왜 갑자기 "그게 바로 샐러리맨"으로 비약하는 것인지? 이 사이에 아무런 설명이 없는 걸 보니 필자에게는 뭔가 자명한 듯한데,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샐러리맨, 즉 임금노동자도 세금을 더 낼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바로"라는 말로 지칭하듯 가장 우선적인 대상이 되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노동자는 이미 사회적 생산과 발전을 위해 육체와 정신을 소모하고 있다. 그러니 세금으로 기여하는 데에는 그렇게 스스로를 소모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 우선대상이 되는 게 더 타당하지 않을까? 말하자면 법인세와 자산소득세 같은 게 일차적일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그동안 이명박 정부는 법인세와 더불어 종부세와 양도세 등 자산소득에 대한 세금을 크게 내렸을 뿐 아니라 또 최고세율을 더 감축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즉 가장 돈을 많이 버는 대기업과 부자들의 세금을 더 낮추자는 거다. 요즘은 시민사회와 여야 정치권의 반대에 부닥쳐 주춤한 모양새이니, 8월 말 발표될 세제개편안을 기다려볼 일이다. 하지만 사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부자 감세가 아니라 부자 증세다.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부자 증세와 복지 확충이 경제발전을 저해한다고 한다. 정말 그러한지에 대해서는 서로 상반되는 증거가 매우 많다. 이에 대한 논쟁은 제쳐두더라도 더 근본적으로 '경제발전'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대기업과 부자들의 이익만 늘어나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가난해지더라도 순수 경제지표는 좋아질 수가 있다. 하지만 이처럼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한 곳이 결코 '좋은 나라'라 할 수는 없다. 결국 우리가 경제발전을 이야기하는 이유도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임이 아닌가. 적어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경제발전을 위해 불평등을 방치하고 복지를 포기하자고 말하지는 말자. 게다가 한국에서 세금과 복지 이전에 의한 지니계수(불평등지수) 감소 효과는 겨우 9% 정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평균인 31%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아직 멀었다.

얼마 전 오세훈 서울시장이 마침내 무상급식에 대한 찬반투표를 실시하기로 결행하였다. 소득수준 하위 50% 가정의 아이들에게만 무상급식을 제공하자는 것이다. 시민의 권리로서의 보편복지냐 시혜적인 선별복지냐라는 논쟁은 제쳐두자. 차별받고 상처받을 아이들 생각도 일단 하지 말자. 살림살이 빠듯한 우리가 삼성 이건희 회장 손자의 점심값까지 내야 하냐는 말, 설득력 있다. 그러니 그에게 더 많은 세금을 내게 하면 된다. 손자와 더 많은 아이들의 밥값을 내도록. 참으로 간단한 셈법 아닌가.



[한겨레 프리즘] 검찰인사 전야 / 여현호

사실을 알고 나면 '괜히 헛다리만 짚었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인사 문제가 대표적이다. 이제 인사청문회까지 다 마친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후보자 발표를 앞두고선 온갖 논란과 하마평이 무성했다. 검찰총장을 두고는, 대통령이 자신의 고려대 후배 대신 그래도 다른 사람을 지명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있었고, 실제 그쪽으로 기울었다는 말까지 한때 파다했다. 선거를 앞둔 법무장관에 청와대 민정수석을 기용하는 데 대해선 여당 안에서도 반대론이 무성했다. 하지만 웬걸, 나중에 전해지기로 한상대 검찰총장과 권재진 법무장관을 기용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뜻은 오래전부터 확고했고 흔들리지도 않았다고 한다. 물색 모르는 사람들만 요란을 떤 꼴이다.

달리 말하면, 이는 대통령이 인사를 할 때 누구의 눈치도 안 본다는 말이다. 이번 청문회 뒤에도 청와대는 국회의 청문보고서 채택 여부에 구애되지 않고 서둘러 총장과 장관 임명을 강행할 것이라고 한다. 검찰 주변에선 이를 전제로, 이르면 다음 주말께 검찰 간부 인사, 그다음 주엔 평검사 인사가 있을 것이라는 시간표까지 나돈다. 이미 법무장관 후보자와 검찰총장 후보자가 시내 호텔에 방을 잡아두고 인사 협의에 착수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진행될 검찰 인사에서도 많은 이들이 헛다리를 짚거나 헛물을 켤 수 있다. 대통령이 눈 딱 감고 자기 사람을 챙기는데, 총장이나 장관이 고향 사람이나 대학 후배를 요직에 기용하는 데 주저할 이유는 딱히 없을 것이다. 실제로 그런 조짐이 있다. 검찰의 대표적 요직으로 직접 수사의 칼을 쥔 서울중앙지검장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에는 장관과 같은 대구·경북 출신이고 총장의 고려대 후배이기도 한 이들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다른 크고 작은 요직에도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느냐는 전망도 있지만, 왜 안 되느냐는 반박도 이번엔 사뭇 당당하다. 실제 그런 '독식'은 몇년 전에도 있었다.

검찰 인사에 왜 이렇게까지 관심을 두는지는 긴 설명이 필요치 않다. 어느 조직이건 인사는 지난 성과에 대한 평가이고,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하는 일이다. 수사와 기소를 통해 국민 개개인과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검찰의 인사는 그 의미가 더하다. 검찰 인사의 왜곡은 그 영향이 더 크고 깊다.

예컨대, 무리라는 비판을 무릅쓰고 정치권력의 뜻에 부합하는 수사와 기소를 감행한 이를 요직에 기용한다면, 이는 검찰 조직의 권력 순응과 검찰권 왜곡을 재촉하는 메시지가 된다. 권력의 주인은 달라질지라도 때맞춰 그 뜻을 따르는 풍토가 당연시된다. 그런 위험을 초래할 인사를 하면서 능력이니 선두주자니 따위 핑계를 대선 안 된다.

당장 수사가 비틀어질 수도 있다. 거액의 탈세 의혹을 받았던 한 사업가는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 사정 관련 고위직에 대거 진출할 것으로 기대하고 검찰 수사를 최대한 지연시키려 한다고 한다. 인사청문회에서 에스케이 그룹과의 밀착 의혹을 추궁받은 한상대 총장의 취임을 앞두고선, 이 그룹 관련 수사가 제대로 되겠느냐는 걱정이 벌써 나온다. 검찰 인사 하나하나를 의미 있게 바라보는 이들은 의외로 많다.

승진과 보직은 당근이면서 채찍이다. 경쟁이 치열한 검찰에서 인사는 다른 어느 조직보다 민감한 문제다. 그 때문에 인사는 오랫동안 검찰 조직을 통제하는 수단이었다. 이제는 대놓고 자기 사람을 챙긴다는 눈총까지 받게 됐다. 검찰 인사가 준사법기관으로서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방책이 됐으면 하는 기대는 아직도 섣부를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여론의 눈치라도 좀 봤으면 좋겠다는 주문은 가능하지 않겠는가. 너무 뻔뻔해지지 말기 바란다. yeopo@hani.co.kr



[싱크탱크 광장] 공정사회 만들기인가, 대기업 때리기인가

한겨레경제연구소-자유기업원 공동기획직선토론: 자유와 책임 ④
공정사회 만들기인가, 대기업 때리기인가

현 정부가 지난해 여름 '공정사회'를 국정지표로 내세운 이래 대기업을 누르고 중소기업을 북돋우는 '억강부약' 정책이 줄을 잇고 있다. 수출 대기업에 전폭적인 지원을 했건만 돌아온 것은 대기업의 '나홀로 성장', '고용 없는 성장'이란 게 확인되면서 중소기업을 살려 고용을 늘리고 국민의 체감경제에 온기를 돌게 하는 쪽으로 정부가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과정에서 대기업의 화려한 실적에 가려진 중소기업들의 어려움이 부각되면서, 대기업에 대한 반감이 높아지고 구조적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번 '직선토론'에서는 최근 쏟아져 나오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정책들을 주제로 잡았다. 토론에서는 이런 정책들이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개선해 좀더 공정하고 공평한 경제환경을 만드는 데 이바지할 것이란 견해와, 내년 양대 선거를 의식해 '보여주기식' 규제를 양산함으로써 효율성과 경쟁력을 갉아먹고 우리 경제의 앞날을 어둡게 할 것이란 의견으로 확연히 나뉘었다. 토론은 지난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자유기업원 스튜디오에서 열렸다.

우리시장 철저한 독과점구조
신규업체 진입·생존 어려워-곽정수

곽정수 기자

양극화 심화로 경제 불안 동반성장·대기업 규제를

대기업 규제 강화는 '양극화 심화'의 결과이다. 무엇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영세 자영업의 양극화가 심각하다. 이는 첫째 납품단가 후려치기, 기술 탈취로 대변되는 불공정 하도급 거래가 원인이다. 둘째는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확장인데, 이제는 문어발을 넘어 지네발식 확장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셋째는 '적하효과'(Trickle-down Effect)의 약화다. 재벌 대기업의 이익이 늘어도 고용·투자·세금 면에서 국민경제 기여도는 비례해서 커지지 않고 있다.

지금 같은 양극화가 개선되지 않으면 한국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발전하기 어렵고 사회안정과 공정사회 구현도 불가능하다. 장기적으로는 대기업의 경쟁력에도 부정적이다.

규제완화, 저금리, 고환율, 감세 등 친대기업 정책을 유지할수록 서민과 중소기업의 삶이 어려워지는데 어느 정치인이 이를 고수할 수 있겠는가? 재계는 '포퓰리즘'이라 비난하지만, 선거에서 드러난 민심을 정책에 반영하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대기업 규제 강화와 동반성장 정책이 시장경제 원리를 훼손한다지만 시장 실패가 발생할 때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당연하다. 국민들이 왜 매를 들었는지 스스로 돌아보지 않고 '대기업 때리기'라는 수사적 방어에만 골몰하면, 재벌 대기업에 대한 규제의 강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한-중FTA땐 중소기업 우려
예방주사 미리 맞는 게 좋아-이병기

이병기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반시장 동반성장정책 반대 중기 경쟁력부터 강화해야

동반성장 하자는 데는 공감한다. 자동차, 반도체, 조선 등 조립산업 위주로 성장한 우리 경제는 대기업과 중소 하도급업체의 협력이 잘돼야 효율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동반성장의 방식이 문제다.

정부의 동반성장지수 산출 및 발표는 대기업에 상당한 규제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는 진입을 규제하는 점에서 2006년에 폐지된 고유업종제도와 다를 게 없다. 이 두 제도가 시행되면 자원배분에 상당한 왜곡을 부를 수 있다. 초과이익공유제는 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들 수 있어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초과이익은 주주의 몫인데 이를 나눠갖자는 것은 문제다. 동반성장도 좋지만 이렇게 반시장적으로 보이는 제도를 통해 이끌어 낼 수 있는지 의문이다.

최근의 지표를 보면 우리 중소기업부문에 상당한 부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대기업의 수익성이 좋다고 탓할 게 아니라 중소기업의 수익성이 좋지 않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쪽으로 하면 대기업에도 유익하고 경쟁력도 향상된다.

사회 '동반성장'에 누구도 반대하기 어렵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의견이 다른 것 같다. 소모성자재 구매대행(MRO) 사업 얘기로 토론을 시작하자. 일감 몰아주기, 무분별한 사업 확장이란 비판이 일자 삼성이 최근 손을 떼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대기업 MRO사업 규제한 건
정치논리로 경제논리 엎은것-최승노

최승노(이하 최) 일괄 구매해 비용을 절약하려는 것은 대기업뿐 아니라 공기업이나 정부도 하는 것이다. 기업의 자연스런 행위를 지나치게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문제로 몬다. 삼성이 먼저 사업 포기를 선언했는데, 이는 소비자와 주주에게 손해를 끼치는 결과를 낳는다. 사회와 정부가 압력을 가해 기업의 비용을 높이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는 정치논리로 경제논리를 뒤엎은 것이다.

곽정수(이하 곽) 전국에는 엠아르오 관련 영세업자가 수만명인데 이들은 대기업의 진출로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생계가 걸린 문제다. (대기업한테 엠아르오를 못하게 해) '누구에게 도움 되느냐'고 했는데 이 문제로 고통 받는 영세업자를 외면한 발언이다.

박지성 선수의 연봉은 우리나라 리그에서 뛰는 선수와 큰 차이가 있다. 그렇다고 박지성 때문에 다른 사람이 힘들어하고 고통 받는가? 양극화가 대기업 때문인 것처럼 얘기하는데, 양극화는 박지성같이 우수한 선수나 뛰어난 대기업이 나오며 격차가 벌어지는 현상이다. 이를 두고 '큰 게 있어서 참 문제다', '잘나가는 게 있어 문제다'라고 하면 너무 감정적인 것이다. 어느 선수가 잘한다고 모래주머니 차고 뛰라고 하는 것은 심판이 할 일이 아니다.

김세종(이하 김) 대기업이 박지성 선수처럼 세계무대에서 경쟁하는 것을 막을 사람은 없다. 하지만 만약 박지성 선수가 고등학생과 공을 차겠다면 모두들 비난할 것이다. 엠아르오는 비즈니스 플랫폼 사업이다. 전화기 하나 갖고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간 (대기업 엠아르오의) 성장과정을 보면 등록 수수료 많이 받고 양쪽에서 거래 수수료 받고, 앉아서 땅 짚고 헤엄치는 식의 영업을 해 왔다. 그마저 오너의 친인척이 주인인 비상장 계열사 형태이고, 이를 통해 부의 축적이 일어나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이다.

국민들은 대기업이 많은 이윤을 내는 것을 시샘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양극화가 대기업과 직접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납품단가 후려치기, 무분별 확장으로 인한 골목상권의 붕괴를 고려하지 않고 단지 높은 실적을 시샘하는 것으로 말하면 왜곡이다.

이병기(이하 이) 엠아르오는 '규모의 경제'가 발생하는 사업이다. 이렇게 엠아르오가 하나의 산업으로 발달하지 않았으면 유통부문의 생산성이 상당히 낮았을 것이다. 기업형 슈퍼마켓(SSM)과도 관련된 것인데, 우리나라 유통구조가 상당히 복잡하고 생산성이 낮다. 그럼에도 생각이 여전히 재래시장 쪽에 머물고 있다면 개선의 여지가 없다.

대기업 MRO '땅짚고 헤엄치기'
중기 설 땅 없어 경쟁력 약화-김세종

우리 서비스업의 경쟁력이 높아지지 않는 것은 그룹 물량만 받아도 되기 때문이다. (재벌 계열의) 시스템통합(SI)업체, 광고대행사, 유통회사 모두 내부거래 비중이 높다. 우리의 정보기술(IT) 수준이 세계 최고라고 하지만 중소기업은 변변한 아이티 업체 하나 없다. 경쟁력을 높이려면 시장경쟁에 노출시키고 이렇게 큰 기업은 세계로 나가야 한다.

엠아르오도 시스템통합도 대·중소기업 문제라기보다 누가 고품질의 제품을 더 싼 가격으로 시장에서 파느냐의 문제다. 시스템통합업체에 일감 몰아주기를 하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규모나 연구개발(R&D) 인력구성에서 대·중소기업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자기 계열사에) 줘 보니까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고, 제대로 된 가격에 주더라는 것이다.

그런 생각은 위험해 보인다. 외환위기 전후 벤처붐이 불 때 실력 있는 시스템통합업체가 많았는데 다 죽었다. (재벌 계열) 대형업체가 정부 발주 등을 덤핑 수주한 뒤, 낮은 가격에 하도급을 주는 것이 구조화됐다. 중소형 시스템통합업체가 설 땅이 없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임시직·계약직이 많고, 이들이 자꾸 떠나고, 연구개발도 못하게 됐다. 이래 놓고 중소기업이 기술력 떨어진다고 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사회 또다른 논란거리인 중소기업 적합업종 얘기를 해보자.

유연한 제도 운영 면에서 과거 고유업종보다 나아진 것이다. 하지만 이 제도가 가진 근본적 한계 때문에 가급적 하지 않는 게 낫다. 대기업이 할 일인지 아닌지는 소비자와 시장이 결정하는 것이다. 중소기업이 적합하냐는 걸 학자나 정치인, 관료가 결정하는 것은 거래를 제한하는 것이다. 기업을 보호한다지만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냐에는 회의적이다.

이 시점에서 효율만을 강조하는 게 능사인가? 대기업이 모든 것을 잘한다고 해서 건전한 기업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적어도 국민들 눈높이로 봤을 때 이런 업종은 대기업이 하면 창피한 것 아닌가 하는 것이 분명 있다. 그런 업종이 자체 경쟁력을 높이도록 시간을 줄 정도로는 우리 경제가 성숙한 것 아닌가?

사실 대기업이 할 거냐 아니냐는 시장이 잘 조정해 가고 있다. 예컨대 맥주 제조업체가 만든 맥주가 있고 서울 강남에 가면 하우스맥주도 있다. 대기업·중소기업을 (인위적으로) 갈라놓으면 장기적으로 전체 경제의 생산성에서 문제가 있다.

시장의 선택과 효율을 자꾸 얘기하는데 시장의 기본은 공정한 경쟁이다. 중소기업은 혼자 싸우지만 대기업은 선단식 지원을 받는다. 이는 공정한 경쟁이 아니다. 또 기업 단위의 효율과 국가의 효율은 다를 수 있다. 기업이 효율을 위해 구조조정을 하면 그 기업은 살 수 있으나 사회적으로는 떨려난 노동자들을 어찌할 것이냐는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헌법 119조 2항에서 밝히듯 균형발전을 위해 국가가 개입할 논거가 있다.

사회 한국 경제는 재벌구조의 특수성이 있어 한층 복잡한 것 같다. 이런 구조에서 중소기업을 왜, 어디까지 보호해야 하는지 얘기해 보자.

보호란 개념을 기업에 적용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기업보다는 경쟁을 보호하는 것이 소비자와 국민을 위한 것이다. 기업은 소비자에게 평가받아야지 제3자가 평가해서는 안 된다. 소비자의 선택이 기업의 생사를 결정하고 시장의 발전을 가져온다.

대기업은 국내시장에서는 거의 독과점 상태다. 그래서 대기업을 경쟁에 노출시켜야 가격도 떨어지고 서비스가 나아질 것이다. 세계 경제의 경쟁관계가 네트워크 경제로 바뀌고 있다. 대기업 하나만 잘해서 되는 시대는 지났다. 대기업과 거래하는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게 지금 같은 거래관행과 불공정을 놔두고 가능할지 성찰이 필요하다.

이미 대기업은 세계적 경쟁에 노출되어 있다. 중소기업도 경쟁하지만, 중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이라도 체결이 되면 과연 경쟁력 없는 중소기업은 어떻게 될까를 생각해 본다. 예방주사는 천천히 맞아두는 게 좋다.

동반성장은 약자를 무조건 보호하라는 게 아니라 거래조건을 공정하게 하라는 것이다. 이익이 난다고 (납품단가를) 후려치거나, 기술 탈취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국가 경제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중소기업 육성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중소기업은 전체 고용의 88%를 맡고 있다.

기존 대기업이 투자를 늘려 고용을 창출하기보다, 새로운 대기업이 나와야 한다. 대기업이 새롭게 나오지 않는 것은 대기업에 대한 지나친 반감이나 비우호적인 제도 여건에 기인한다고 본다.

대기업 수가 늘어나지 않는 것을 반기업 정서와 규제 탓으로 돌렸으나, 가장 큰 요인은 우리 시장이 철저한 독과점 구조란 점이다. 진입장벽이 높아 신규 업체가 살아남을 수가 없다. 우리 같은 대기업 위주의 독과점 구조를 가진 곳은 드물다.

우리의 독과점 구조는 상당히 성숙한 시장의 특징을 반영하는 것이다. 조선이나 전자에 새로운 업체가 나오기 쉽지 않다. 농업이나 서비스 등 대기업이 나올 수 있는 부분이 많은데 그곳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 문제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분야는 규제를 풀어줌으로써 작은 기업들 중에 대기업이 나올 수 있다.

풀무원이 두부 만들어서 식품전문 대기업이 되었다. 역설적이게도, 고유업종이라는 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금 같은 환경이었다면 절대 클 수 없었을 것이다. 동반성장에 대해서는 그간 백가쟁명으로 많이 논의했고 약속도 많이 했다. 이제는 실천할 수 있는 조처가 나와야 한다. 작은 것부터 관행을 깨고, 거래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리·사진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bhlee@hani.co.kr

[사설] 영국 시위사태, 복지 무너뜨린 재정정책이 부른 재난

영국 시위사태가 심상찮다. 지난 4일 런던 북부 토트넘에서 시작된 폭력시위가 삽시간에 수도권 전체로 확산된 데 이어 제2도시 버밍엄을 비롯해 리버풀, 맨체스터 등 영국 전역으로 번졌다. '루퍼트 머독 스캔들'로 흔들린 캐머런의 보수연립정권으로선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복지비 삭감 중심의 긴축정책이 촉발한 이번 사태를 복지논쟁이 한창인 우리 사회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토트넘의 29살 흑인 가장이 경찰 검문 과정에서 사살당한 사건으로 촉발된 소규모 지역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번 시위의 중심세력은 10대와 젊은이들이다. "우리는 일자리도 없고 돈도 없다"는 이들은 "다른 사람들은 공짜로 물건을 얻고 있는데, 왜 우리는 안 되나"라며 자동차와 건물을 무차별 불태우고 가게를 습격·약탈했다. 이들의 난폭행위는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그것을 통해 자신들의 처지와 저항의지를 세상에 알리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도 불안하고 미래도 불확실한 젊은이들이 길거리로 몰려나온 것이다.

이번 사태는 지난겨울 3배나 오른 등록금에 항의하는 학생시위와 올해 봄 노동자 시위에서 이미 그 조짐이 보였다. 이는 지난해 5월 집권한 캐머런 정권이 공공부문을 최대 30%까지 줄이는 긴축정책을 편 결과다. 올해 국가부채가 처음으로 1조파운드를 넘어 국내총생산의 76.5%에 이른 상황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지만 사회복지비 대폭 삭감이 부를 파국적 상황은 이미 오래전에 예고됐다.

빈곤율 14%(2006년)인 영국의 지난해 실업률은 7.9%였고 청년층 실업률은 20%가 넘었다. 이런 상황에서 취해진 긴축정책은 가난한 청년들을 '분노의 세대'로 바꿔놨다. 토트넘에선 지난해 실업수당 청구자가 10% 이상 늘었지만, 올해 청소년 프로그램 예산은 최고 75%나 깎였다. 부자 감세는 유지한 채 복지비 삭감을 기조로 긴축정책을 취함에 따라 가진 자들은 갈수록 부를 늘리는 대신 약자들은 더욱 고통스러워지는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이 때문에 마거릿 대처의 신자유주의 이래 시들해졌던 영국 사회·노동운동을 캐머런이 되살려주고 있다는 얘기마저 나온다. 이번 시위사태는 고통분담 없는 무차별적인 복지비용 삭감 정책이 공동체 분열 등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영국의 교훈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권태선 칼럼] 패권 교체기의 한반도 미래전략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 이후, 중국 언론은 연일 미국 비난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는 "미국과 유럽의 문제들은 서구 민주주의의 정치적 기능장애에서 비롯됐다"고 질타했고, 은 "미국이 달러를 찍어내는 데 국제적 감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는 더 나아가 중국 보유 미국 국채를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를 저지하기 위한 '금융무기'로 사용하자고 주창했습니다.

중국 관영 언론의 이러한 미국 때리기는 물론 넘쳐나는 외환을 미국 국채에 '몰빵'한 중국 정부에 대한 중국인의 비난을 미국 쪽으로 돌려놓으려는 뜻이 큽니다. 하지만 동북아의 지정학적 측면에서 보면, 세계 유일의 초강국이었던 미국이 중국 언론의 훈계를 받는 처지로 전락한 것은 미국 패권 시대가 저물고 또 한 차례의 세력교체기가 시작됐음을 의미합니다.

새겨 읽을 것은 한반도가 전란에 휩싸이는 등 큰 고통을 겪은 때는 바로 이런 지정학적 세력재편기였다는 사실입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20만 대군을 끌고 7년간 한반도를 유린했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그리고 뒤이은 병자호란은 조선의 집권세력이 주변 지역질서 재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데서 비롯했습니다. 일본이 소총 등 당시의 첨단무기로 무장하고 군사력을 키우는 동안 조선은 그에 대한 대비는 않고 오로지 명나라만 바라보았습니다. 만주족이 명을 무너뜨리고 청을 세운 뒤에도 조선은 그들을 야만족이라 무시하고 '소중화'(小中華)를 자임하며 턱없는 북벌론은 주장하다 병자호란을 초래하고 삼전도의 굴욕을 겪었습니다. 한반도를 식민지로 전락시킨 19세기 말 20세기 초도 메이지유신으로 일본이 새롭게 지역 강국으로 부상하고 청의 세력이 급속히 약화되는 세력교체기였습니다.

이렇게 역사는 우리가 변화하는 지역질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않고 낡은 질서에 매달릴 때 어떤 결과가 빚어지는지 보여주지만, 한반도 남북의 두 정권은 역사의 교훈과는 딴판인 길을 걷고 있습니다. 남쪽은 근거가 약한 북한자멸론에 기대 남북관계를 단절한 채 한-미 동맹을 지고지선의 가치로 삼고 미국 추종에 여념이 없습니다. 북쪽은 핵으로 체제를 연명하며 필사적으로 중국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민족 전체의 안녕과 동북아 평화를 위한 긴 전망을 갖고 우리가 숨쉴 수 있는 틈새를 찾으려는 노력은 부족하기 짝이 없습니다.

지금은 16세기 말 17세기 초나 구한말의 상황과는 다릅니다. 당시보다 우리의 역량이 훨씬 커져,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는 상당한 운신의 폭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이고, 동북아 평화를 위해 한몫을 할 수도 있습니다. 지난주 러시아 이르쿠츠크에서 열린 '남북러 협력포럼'은 그 가능성을 확인해볼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포럼에 참석한 러시아 학자들은 극동지역 개발에 대한 한국의 역할에 기대를 표명했습니다. 러시아는 내년 블라디보스토크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아펙) 정상회의를 동시베리아 개발의 전기로 삼고자 하는데 그 협력 상대로 중국이나 일본보다는 한국을 선호한다는 것입니다. 1억여명의 만주지역 인구를 배경으로 이 지역에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중국은 두렵고, 러일전쟁에서 패배한 상처와 영토문제를 안고 있는 일본은 불편한 까닭입니다.

이런 틈새를 잘만 활용하면 우리는 시베리아 지역 개발에 참여해 경제적 이득을 얻는 것은 물론이고, 미국과 중국을 상대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지렛대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사실 한국과 러시아는 일찍이 2001년 정상회담에서 시베리아횡단철도와 우리 철도의 연결 및 시베리아 가스관 연장에 합의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런 진척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북한과의 관계가 틀어져 버린 탓입니다.

결국 세력교체기의 한반도의 미래전략은 남북관계의 복원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미국이나 중국 또는 러시아 등 어느 일방에 매달리지 않고, 나름대로 그들의 세력관계를 활용하면서 동북아에서 우리의 보폭을 넓힐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더 이상 낭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역사의 시계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편집인 kwonts@hani.co.kr

[성한용 칼럼] 민주당을 위기로 보는 다섯 가지 이유

스톱워치는 무용지물이었다. 발언 시간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앞에서 누군가 말한 소재를 가지고 조금씩 다른 내용을 반복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 사람씩 카메라를 쳐다보고 말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서류를 뒤적이거나 가끔 옆 사람과 귓속말을 했다.

아침 9시에 시작한 공개회의는 대개 50분을 넘겼다. 휴가철이라 한두 사람이 빠졌는데도 회의시간은 줄지 않았다. 집단지도체제라지만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주당 최고위원회는 이틀에 한 번씩 이렇게 사실상의 '집단 기자회견'을 한다. 회견 뒤에 열리는 비공개 회의에서는 대개 당무보고를 한다. 공개회의보다 훨씬 짧다. 토론은 별로 없다. 중요한 현안이 생기면 일요일 밤에 따로 최고위원 간담회를 연다.

제1 야당 민주당이 고장 났다. 4·27 재보선 뒤 한나라당과 맞먹었던 지지율은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다. 야권통합이나 당 개혁도 지지부진하다.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의 실정에 의한 반사이익이 민주당이 유지되는 유일한 동력이다.

임채정 전 국회의장이 박순성 민주정책연구원장과 인터뷰를 했다.

"상황 대처 능력이 떨어지고 역사인식도 무뎌지고, 일부 방만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치열성이 좀 부족하다고 할까. (중략) 현 정국에 대한 안이한 생각은 민주당에 위기를 불러올 것입니다."

당의 원로가 점잖게 표현한 게 이 정도다. 민주당에는 지금 중요한 몇 가지가 없다.

첫째, 손학규 대표의 리더십이 없다. 손 대표는 민주당의 대표다. 그런데 자꾸 겉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총재를 하던 시절 '사당화'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이번에는 반대로 대표가 당에 대해 관심이 너무 없다. 왜 그럴까? 측근들은 "시스템을 존중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리가 있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합리주의의 뒤에 숨겠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정당은 아직 사람이 끌고 가는 조직이다.

둘째, 손 대표 참모들에게는 전략이 없다. 당대표로서 국면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교한 계획이 있어야 하는데, 막연한 낙관론만 있다. 충성심도 좀 부족한 것 같다. 1992년 총선 당시 김대중 총재를 위해 의원직을 포기했던 조승형 비서실장 같은 인물을 손 대표 주변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셋째, 민주당 의원들에게는 정권교체의 열망이 없다. 의원들의 관심사는 대선이 아니라 총선이다. 의원직을 내놓고 여당을 하는 것과, 그냥 야당 의원을 계속하는 것 중에 선택하라면, 아마 거의 모두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야당 지지자들은 생각이 다르다. 공천개혁과 야권통합으로 총선에서 정치지형을 변화시키고, 그 힘으로 연말 대선에서의 권력교체를 희망하고 있다. 의원들과 지지자들의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넷째, 일부 중하위 당직자들도 열의가 없다. 믿기 어렵지만, 이런 말을 하는 당직자가 있다고 한다.

"대선에서 이겨봐야 청와대 갈 사람들은 정해져 있다. 총선에서 이기는 게 더 중요하다. 그래야 국고보조금이 늘어나고 월급이 오른다."

이런 당직자들이 많다면 집권이 불가능하다.

다섯째, 민주당은 구체적인 정책을 내놓는 게 별로 없다. 야당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는 하지만, 정책을 끊임없이 내놓지 못하면 정당이 아니다. 한나라당이 훨씬 더 정부에 대해 공격적이고 과감한 정책을 잘 내놓는다. 임채정 전 의장도 "보다 과학적이고 공격적으로 공세를 펴야 한다"고 제안했다. 민주당의 한 고참 보좌관은 이런 말을 했다.

"맹자가 항산 항심을 설명할 때도 '다섯 이랑의 택지에 뽕나무를 심으면 쉰 살 된 자도 비단옷을 입을 수 있다'고 구체적으로 말했다.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만들어, 지금 당장 관철시킬 것은 관철시키고, 공약화할 것은 공약화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국민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야 하는데, 민주당은 그걸 못하고 있다. 도대체 뭘 하겠다는 정당인지 알아야 지지할 것 아니냐."

당사자들은 이런 비판에 좀 억울할 수 있겠다. 어려움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제1 야당에 거는 국민들의 기대는 크다. 각성을 촉구한다.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야! 한국사회] 냉철함의 경제학과 고용조정 / 김진호

1998년 정부 당국자가 구조조정안을 발표하고 있었다. 그의 마음까지 들여다볼 안목은 없지만, 내 눈엔 그가 냉철함을 연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전세계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수없이 번쩍이는 자리에서, 오로지 맡은 과제만을 생각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그의 마음에는 자기의 이미지도 고려되고 있었겠다.

고위 경제관료로서 자기가 얼마나 합리적인 선택을 했는지를, 그는 과시하고 싶었을까. 너무도 담담한 말투로 냉정하게 그는 국민에게 구조조정안을 설득하고 있었다.

단지 그렇게 보였을 뿐이다. 진실은 모른다. 그럼에도, 작은 것에도 예민함을 감추지 못하던 시절, 그의 목소리가 그렇게도 야박하게 들렸다. 그의 몸짓과 태도가 그렇게도 눈에 거슬렀다.

괜한 부아에 옆에 있던 경제학자인 후배에게 따져 물었다. 저것밖에 방법이 없느냐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저런 말을 하면서 뭐가 저렇게 당당하냐고. 한데 그 후배 역시 냉철했다. 지금은 빠른 결정이 최선이고 구조조정안은 불가피한 것이며 인정에 휘둘려 갈팡질팡해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다른 방법을 고려할 수 없었는지, 왜 고용조정안이 가장 빠르게 결정해야 하는 것인지, 그런 말을 하는 이는 침통함을 연기해야 하는 건 아닌지, 그리고 그 순간 유능한 관료의 모습이 왜 냉철함인지 말이다. 하여 나는 아직까지도 그것이 우리를 너무나 불편하게 하는 못된 경제관료의 아비투스(습성·성향)가 아닌가 하는 불평을 마음속에서 지우지 못하고 있다.

그가 울면서 발표를 했다면 아마도 나는 이런 괜한 상상 혹은 생트집을 오래도록 간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랬다면 자살률 1위에, 출산율 꼴찌, 최장의 노동시간과 최고 수준의 비정규직 비율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살기 나쁜 사회의 요건을 고루 갖춘 우리 사회의 지난 10여년 동안의 변화와 최상위 재벌의 부가 수직 상승하는 것을 연관시켜 음모론을 연상하는 습관을 키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날 관료의 발표에서 엿보이는 경제관료들의 아비투스가 재벌 친화적인 경제학의 한 증거라는 음모론을 몸에 품고 산다.

얘기가 길었다. 실은 한진중공업 쟁의 얘기를 들으면서 다시 도진 독기로 숨쉬며 떠올린 그때의 회상이다. 경제관료의 그따위 아비투스가 재벌 기업 하나하나의 영혼 속에 불어넣어 준 혹은 그들끼리 서로 교감한 당위적인 상상력이 인적 구조조정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기업가라면 앞날을 예측하며 전향적인 발전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하여 숙련된 노동자들보다 값싼 노동력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 아래 타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는 기획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 그것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하자. 그러자면 본국의 노동자들을 고용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할 수도 있겠다. 문제는 이런 시나리오가 정당하고 필요하다는 것을, 직장을 잃게 됨으로써 살길이 막막해질 노동자에게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침통한 표정과 눈물이 필요한 거 아닌가. 그리고 그 침통함을 어떻게 표시해야 설득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닌가. 최소한 업종을 개발해서 실직자들을 최대한 수용한다든가 하는….

재벌 계열사끼리 행하는 일감 몰아주기는 그들이 결코 냉철함의 효율성의 경제학에 항상 의존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데 국가와 재벌 기업은 유독 고용조정에서만은 냉철하다. 그 정부가, 그 기업이 국민을, 노동자를 단지 도구로만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겠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들의 이익을 위해 희생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뭘 해야 할까. 서로 막나가자는 것인가?


2008년 ‘시장위기’ 정부가 구원투수 2011년 ‘정부위기’ 해결은 험난할 듯

미국 국가신용등급 강등 이후, 8일(현지시각) 주가폭락으로 불어닥친 미국 금융시장의 패닉은 지난 2008년 9월 3대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촉발된 금융위기를 연상시키는 데자뷔(기시감)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이번 위기는 2008년 당시와는 구조도 다르고, 이에 따른 해결책 마련은 더 어려운 상황이다.

은 9일(현지시각) 2008년과 2011년 위기를 비교하며 2008년은 '밑으로부터의 위기'였지만 현재는 '위에서부터의 위기'라고 지적했다.

2008년 금융위기는 신용등급이 낮은 대출자들에게도 돈을 빌려 집을 사도록 한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뇌관이었다. 과도하게 낙관적인 주택 구입자, 월스트리트 금융가 등 '바닥'에서부터 위기가 올라온 것이다. 이번에는 경기를 부양시키고 부채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부가 점차적으로 기업과 금융 부문에서 믿음을 잃어간 것이 출발점이어서 위기가 '위'에서 내려오는 식이다. 따라서 시장과 금융회사는 2008년에는 위기의 '주범'이었으나, 지금은 최대 '피해자'로 처지가 바뀌었다. 3년 전에는 '시장의 위기'였다면, 이번에는 '국가의 위기'다. 통신도 "3년 전이 신용경색과 금융위기라면 지금은 여기에 재정위기가 하나 더 더해졌다"고 지적했다.

위기의 진행경로도 다르다. 3년 전에는 값싼 자금으로 금융회사와 가계가 모두 자기 능력 이상의 과소비를 하는 등 신용거품에 취해 있었다. 이번에는 거품 붕괴 이후 긴축과 부채 축소에 집중한 것이 소비·투자 부진을 낳았고 이는 경기침체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와 통화당국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뒤를 돌아보지 않고 막대한 자금을 시장에 퍼부었다. 그런데 경제는 기대만큼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자 정부는 엄청난 재정적자를 떠안았다. 유럽 재정위기나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강등도 이와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결국 이번 국가부채 위기는 2008년 금융위기를 막는 과정에서 파생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2008년과 달리 "은행권이 상대적으로 건실하고 기업들 실적도 나쁘지 않은 것"(노무라 증권)은 그나마 희망적인 측면이지만, 이도 지금의 위기가 경제주체들을 심각히 위축시킬 경우 또 달라질 수 있다.

이러니 해법도 다를 수밖에 없다. 2008년에는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저금리, 은행 구제금융, 재정지출 확대 등으로 대규모 유동성을 공급하면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됐다. 통신은 "통화정책은 분명히 어느 누구도 동의하지 않는다. 재정투입에서도 모든 국가가 지금 막혀 있다"고 지적했다. 금리도 제로금리 수준을 유지한 지가 오래돼 추가적인 금리인하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추가적인 재정지출을 통한 경기부양은 애당초 미국과 유럽 선진국들의 국가부채가 이미 국내총생산(GDP)의 100%를 웃도는 상황이라 여력이 없다.

2008년 '시장'의 위기에서 나선 구원투수가 '정부'였다면, 2011년 '정부'의 위기에서는 '시장'을 구원투수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민간부문의 소비·투자 회복은 정부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이는 현재로선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할 것으로 보인다.

은 결국 해결책으로 자산 가격이 계속 떨어져 투자자와 기업들이 다시 시장으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거나, 미국과 유럽이 수요와 투자 증가를 촉발하기 위한 재정과 노동개혁을 실시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둘 다 상당한 고통이 따른다. 워싱턴/권태호 특파원 ho@hani.co.kr

"동해 병기" 외쳐온 한국 외교 '비상' 걸렸다
"안현태 현충원 안장 철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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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의 직장인들, 야근·술자리에 찌들어…점심값엔 '벌벌' 보약엔 '펑펑'
갱단·살인미수…강남 어학원장 '무서운 스펙'

“미국에 돈 빌려주려고 허리띠 조르나” 도마에 오른 중국의 미국채

"미국의 신용등급이 강등됐는데 왜 중국이 최대 피해자가 되었는가?"

미국 신용등급 강등 후폭풍으로 전세계 금융시장이 출렁이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최대 채권국인 중국에선 정부를 향한 누리꾼들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중국 정부가 3조2천억달러에 이르는 천문학적 외환보유액을 미국 국채에 집중 투자해 막대한 손실을 자초했다는 분노다. 지난주부터 중국 인터넷 사이트에는 중국 당국의 외환보유고 관리를 비난하는 글들이 잇따르고 있다.

중국이 수출로 벌어들인 막대한 외환보유고로 미국 국채를 사들이는 '공생관계'는 좌파 경제학자들의 비판을 받아왔지만, 일반인들까지 일제히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며 정부를 압박하고 나선 것은 처음이다. 중국은 3조2천억달러의 외환보유액 중 1조2천억달러를 미국 국채에 투자하는 등 달러 보유 자산 비중이 약 75% 에 이른다. 한 누리꾼은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중국의 전략적 의사결정권자들은 돼지 같다"며 "중국의 재산을 남의 나라 국민들이 쓰도록 해왔다"고 비난했다. "미국은 값싸게 중국 제품을 사고, 중국은 미국 달러를 사고, 결국 중국인들은 가치 없는 자산만 갖게 됐다"는 의견도 올라왔다.

이런 분노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계속 미국 국채를 사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려 있다. 중국이 미국 국채를 팔면 달러 시스템은 붕괴하겠지만, 중국이 쌓아놓은 3조2천억달러의 외환보유고도 막대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로선 미국 경제의 운명을 손에 쥔 동시에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달러에 대한 위안화의 급격한 절상은 수출경쟁력을 악화시키게 된다. 베이징대 황이핑 교수는 경제사이트 에 "미국 국채 이상의 대안이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썼다.

중국은 금, 유로 채권, 일본 등 아시아 국채를 사들여 외환보유고의 다양화를 시도해 왔지만 달러를 대체하는 데는 역부족이다. 중국의 금 보유량은 외환보유고의 2%에도 미치지 못한다.

인민은행을 비롯한 중국 정부 기관들은 이런 비난에 침묵을 지키고 있다. 관영 언론들만이 연일 '미국의 빚 중독'을 비난하며 여론의 분노를 미국으로 돌리려 애쓰는 모습이다.

베이징/박민희 특파원 minggu@hani.co.kr



버냉키의 처방은…“2년간 제로금리”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하락 이후 공황(패닉) 상태에 빠진 전세계 금융시장은 9일(현지시각)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의장의 입만 지켜봤다. 버냉키 의장은 이날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끝난 뒤 "'최소한 2013년 중반까지' 0~0.25%의 초저금리를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중앙은행이 2년간 자신의 금리정책을 포기하겠다는 이례적인 조처다.

경기회복을 위해 강한 자극을 바라는 시장에선 '3차 양적완화'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연준의 '인플레이션 매파'들에 둘러싸인데다 인플레이션 우려를 벗지 못한, 게다가 추가 양적완화의 효과에 의문을 지닌 버냉키가 3차 양적완화 조처를 발표할 것이라는 예상은 크지 않았다. 대신 버냉키는 연준에서 20년 만에 벌어진, 3명의 위원이 반대하는 상황을 뚫고 '향후 2년'이란 시간을 못박았다.

'시한개입'이라 불리는 이 조처는 경기침체와 인플레라는 양날의 칼 위에 선 버냉키의 고민 끝 선택이었다. 대공황 연구자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헬리콥터에서 달러를 뿌리듯 시장에 유동성을 대량공급해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버냉키이지만 2011년 위기 앞에서 또 한번 헬리콥터에 올라타기란 애초 어려웠다. 유동성을 퍼부었지만 미국 경제는 회복되지 않았고,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세계적 인플레이션만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을 뻔히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동안 몇차례나 반복해왔듯 "상당한 기간 동안 제로금리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식의 상투적 언어로 현 상황을 맞을 순 없었다.

그러나 연준이 투자 권유를 위한 고육책으로 내놓은 '2년 저금리'는 그만큼 향후 경기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것을 연준 스스로 시인한 꼴이 됐다. 장기침체 우려 논란이 재연될 밑자락을 깐 셈이다. 거꾸로 버냉키가 손쉬운 금리에만 의존한다는 지적도 있다. 전임 앨런 그린스펀의 실패에서 보듯, 장기간에 걸친 저금리는 부동산 등 자산가치 거품을 일으켜 장기적으로 위기를 키울 수 있다.

이날 버냉키의 발언은 '쓸만한 실탄은 다 썼고 이제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별로 없다'는 고백처럼 들린다. 그럼에도 세계 금융시장은 오는 26일 미국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리는 연준의 연례 경제정책 심포지엄에 참석할 버냉키의 '입'을 또다시 지켜볼 것이다. 워싱턴/권태호 특파원 ho@hani.co.kr

“미해결 94명 정리해고 철회가 기본적인 조건”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철회를 촉구하며 지난달 13일부터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단식농성을 진행중인 심상정, 노회찬 진보신당 상임고문이 11일로 단식 한달(30일)째를 맞았다. 심각한 신체기능 상실 위기에 몰려 있는 두 고문은 이날 와의 인터뷰에서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이 내놓은 대책에는 사태의 핵심인 부당한 정리해고를 바로잡을 의지가 전혀 포함돼 있지 않다"며 "최소한 아직 남아 있는 94명에 대한 정리해고를 철회한 뒤 구체적인 이들의 복직프로그램을 제시해야 문제가 풀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노회찬 고문은 "조 회장이 내놓은 자녀 학자금 지원이나 지역발전 기금 등은 결국 이번 정리해고가 '긴박한 경영상의 사정'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며 "결국 조 회장이 정부와 짜고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한 정리해고 고수'라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노선을 유지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노 고문은 "지역발전 기금은 삼성 등 과거 재벌들이 사회적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내놓았던 생색내기용 꼼수"라고 꼬집었다. 심상정 고문도 "반드시 조 회장을 청문회장에 세워 잘못된 정리해고의 문제와 한진중공업을 둘러싼 의혹들을 규명해야 하며, 책임있는 당사자들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리고 한진중공업 사태에 대한 해결방안 등이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두 고문은 한목소리로 "생활이 어려워 희망퇴직 등을 선택한 이들 외에 여전히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94명에 대한 정리해고 철회는 이번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라며 "정리해고가 철회된다면 이후 법적으로 책임있는 당사자인 금속노조와 회사가 협상을 통해 복귀의 시점과 방식 등을 협의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단식 한달을 맞는 두 고문은 현재 의료진은 물론 소속 진보신당 당원들의 강력한 단식 중단 요청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두 고문은 "조 회장의 귀국이나, 청문회 개최 합의 등 일정 부분 성과도 있었고, 또 조직의 결정이나 권고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면서도 일단 11일 저녁까지는 상황 변화를 지켜본 뒤 단식농성 중단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특히 이들은 11일 열리는 금속노조와 회사 쪽의 협상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조남호 “정리해고 불가피”-김진숙 “철회해야 내려가”

"3년안 경영정상화 위해 최대한 노력…성장 발판이 마련되면 다시 모셔올것"

출국 50여일 만에 귀국한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은 10일 부산시청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호소문을 발표해 정리해고 철회 요구에 "기업과 임직원들이 다 같이 생존을 포기하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며 일축했다. 김진숙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고공농성과 '희망버스' 방문을 두고는 "불법적 압력"이라고 비난했다.

조 회장은 "법원의 결정을 무시한 채 크레인을 불법 점거하고 있는 행위는 사태 해결에 그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하는 위험하고도 불법적인 행위로 즉시 중단되어야 한다"며 강경한 태도를 거듭 드러냈다.

그는 '김 지도위원이 크레인에서 내려오게 할 대책'을 묻자 "장기간 올라가 계신 분에 대해 개인적으로 건강이 우려된다. 올라가 계신 것이 한진중공업과 협력업체를 위해 도움이 되느냐고 묻고 싶다. 내려온 뒤 한진 정상화 후에 뜻을 펼쳐도 되는 일이 아니냐. 조속히 내려오기 바란다"고 말했다.

재계 압력으로 정리해고 철회를 못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에는 "영도조선소의 생존이 가장 시급하다"고 즉답을 피했다.

그러면서 "경영상 구조조정에 대한 원인과 법적 정당성을 근거로 아무 책임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경영자로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다시 한번 사죄드리면서 그동안 각계와 소통하고 이해를 구하지 못한 점 또한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청문회 출석은 국회의 결정을 존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 회장은 "3년 이내에 경영정상화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해 회사를 떠나야 했던 가족을 다시 모셔올 것"이라며 희망 퇴직자 자녀 2명에게 대학 졸업 때까지 학자금 전액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경영정상화와 관련해선 "영도조선소는 8만평이라는 작은 부지여서, 특수선박 건조로 특성화하겠다"고 답했다. 그는 '필리핀 수비크조선소로 수주 물량 몰아주기' 의혹에 대해 "경쟁력을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었다"며 "영도조선소를 포기하거나 부산 영도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의 행적을 묻는 질문에는 "선주가 있으면 전세계 어디든 간다. 영업상 비밀이다"라고만 답했다.

부산/이수윤 기자 syy@hani.co.kr

크레인 농성 김진숙씨 전화통화
"적당히 무마하고 넘어가려 해…정리해고 철회해야 내려갈 것"
"53일만에 돌아와서 불법농성·시위탓에…경영활동 힘들다고 하는 건 국민 모독"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안 선박크레인에서 217일째 농성중인 김진숙(51)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10일 와의 통화에서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의 기자회견은 정리해고 문제를 둘러싼 국민적 관심을 희석시키고 갈등을 적당히 무마하려는 것"이라며 "정리해고가 즉시 철회되지 않으면 내려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2월 노조와 구조조정 중단을 합의한 뒤 직원들을 무더기 희망퇴직시키고 정리해고를 했고, 지난 3년 동안 고의로 수주를 회피한 의혹이 제기된 상황에서 '3년 뒤 정리해고자들을 재입사시킨다'는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김 지도위원은 "공장을 정상화하려면 정리해고자를 먼저 복귀시켜야 한다"며 "조 회장은 적당히 넘어가려 할 것이 아니라 내가 내려갈 수 있는 실질적인 조처를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조 회장이 '외부세력이 불법 고공농성과 시위를 벌여 합법적인 경영활동이 힘들어지고 있다'고 말한 것을 두고는 "교섭도 제대로 하지 않고 국회 청문회를 피해서 외국으로 나갔다가 53일 만에 돌아와서 그렇게 말하는 것은 국민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되받았다. 또 '회사가 정상화된 뒤 (김 지도위원이) 자신의 주장을 펼쳐도 된다'는 조 회장의 발언에는, "회사가 정상화되면 내가 주장할 것이 없다"며 "정리해고를 철회하는 것이 회사를 정상화시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조 회장이 오는 17일 국회 청문회에 나갈 뜻을 밝힌 것에는 "국회에 가서 정정당당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평했다.

김 지도위원은 한나라당이 "김 지도위원도 조 회장과 함께 국회 청문회에 출석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나는 (전국금속노동조합) 조합원일 뿐이며 청문회에는 조직의 대표가 가는 것이 맞다"고 거부 뜻을 밝혔다.

이어 "(한나라당과 회사 쪽은) 내가 내려가면 정리해고 문제가 무마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며 "정리해고 중단이라는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2011-08-09

[한겨레 기사돌려보기][아침 햇발] 오세훈표 무상급식의 살풍경 / 박순빈

[아침 햇발] 오세훈표 무상급식의 살풍경 / 박순빈
소득순으로 줄을 세워
절반만 무상급식을 하려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더 나아
한겨레
» 박순빈 논설위원
가난은 죄가 아니라고 배운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그렇게 가르친다. 아이들 교실엔 가난의 부끄러움조차도 얼씬거리지 못하기를 대부분의 부모들은 바란다. 그래야 아이들이 학교에서 꿈을 키우며, 작은 것에도 감사하며, 모자란 것을 서로 나눴을 때의 기쁨을 누릴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다. 그런데 서울시민들은 초·중학교에서 가난한 아이와 부자 아이를 나눌지 선택하는 황당한 투표를 하게 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초·중학생 무상급식에 대한 주민투표를 기어이 못박았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공약한 '전면적 무상급식'이냐, 소득 하위 50%를 대상으로 한 '단계적 무상급식'이냐를 놓고 서울시민의 판단을 직접 묻겠다는 것이다. 오 시장은 이번 주민투표에서 승리하면 '무상복지 포퓰리즘'에 마침표를 찍을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아이들 밥 먹이는 정책에 대한 논란을 이런 경지로 끌어올린 그의 정치력이 놀랍기만 하다.

오 시장이 내세운 무상급식 실시안은 사실 '소득 하위 50%'에 더 방점을 둬야 한다. 서울시에서 초·중학생 자녀를 둔 가정의 소득 수준을 파악해 50% 이하의 가정에만 급식비를 지원하자는 안이다. '반쪽 무상급식'이 더 적절한 표현이다. 서울시는 이 안의 장점으로 재정운용의 효율성을 꼽았다. 오 시장은 전면 무상급식에 견줘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복지"라고 자랑했다. 하지만 '어떻게'라는 질문으로 들어가 보면, 반쪽 무상급식은 너무나 비효율적이며 지속가능하지도 않다는 게 금방 드러난다.

가구소득 기준으로 지원 대상을 선별하는 데서부터 막힌다. 50%를 선별하려면 모든 가구의 소득을 제대로 파악해 딱 중간선을 정해야 하는데, 현재 행정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얘기다. 통계청이 월별로 가구소득을 파악하고 있지만, 전국 7000가구 남짓의 표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일 뿐이다. 그나마 시도별로는 표본오차가 너무 커 수치를 내지도 않는다. 가장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는 국세청도 세금을 면제받는 가구의 소득은 모른다. 자영업자 소득 파악률은 60%도 안 된다. 정확하게 전체 가구의 소득을 파악해서 50%를 선별하려면 그에 따른 행정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든다. 세계 최고의 복지선진국에서도 그런 복지전달체계를 갖춘 데는 없다.

급식비를 아이들 모르게 지원할 수 있는 방법도 간단치 않다. 한나라당은 학생들이 직접 학교에 급식비를 신청하지 않고 사회복지통합관리망을 통해 주민자치센터에서 처리하자고 한다. 그러나 사회복지통합전산망 도입 목적은 중복과 사각지대 해소일 뿐이다. 찾아가는 맞춤형 복지서비스를 하기에는 아직 멀었다.

억지로 50% 선을 정해 지원 신청을 받는다 해도 문제가 남는다. 통계청이 파악한 올해 1분기 도시가구의 중위소득은 월평균 339만원이다. 소득이 이보다 밑이지만 그래도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가정에서 급식비 지원을 신청할 수 있을까? 웬만한 부모라면 혹시 아이가 받을 상처를 우려해 머뭇거릴 게 뻔하다. 그러면 실제 지원 대상의 언저리가 점차 낮아져, 결국에는 정말 가정형편이 어려워 굶주리는 아이들만 구석으로 내몰리게 된다.

선별적 복지서비스는 부작용 없이 합리적으로 적용되기 어렵다.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처럼 수혜자가 사전에 기여한 몫이 있거나 실제 한계상황에 몰려 스스로 구제를 호소하는 경우에 적합한 복지서비스 방식이다. 선별적 무상급식도 아이들이 "우리집 가난해요"라고 손들지 않으면 제대로 시행되기 어렵다.

가난은 분명 죄가 아니다. 가진 것 없다는 게 죄가 되는 현실은 어른들의 잘못이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 아이들을 공짜밥을 미끼로 낙인찍어 주눅들게 하고 상대적 박탈감에 빠지게 한다면 그야말로 중대 범죄다. sbpark@hani.co.kr




기사등록 : 2011-08-04 오후 07: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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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지자체장 성적 따라 대권 행보 결정”- 송영길// 최영진, 주간경향 936호, 2011-08-02

[정치]“지자체장 성적 따라 대권 행보 결정”
2011 08/02주간경향 936호
ㆍ야권 유일의 수도권 지자체장 송영길 인천시장의 1년

7조4000억원의 부채를 떠안고 취임했던 불운의(?) 지자체장, 야권 유일의 수도권 지자체장, 송영길 인천시장을 설명하는 문구다. 사람들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을 제대로 치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했다.


송 시장 취임 1년, 인천이 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 재정은 여전히 열악하지만, 복지혜택은 오히려 늘어났다. 안상수 전 인천시장처럼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이지도 않는다. 시민사회단체의 요구를 받아들여 계양산 골프장 건설을 백지화했고, 인천만 조력발전소 건설도 반대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를 향해 대북문제의 전향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서해5도 종합발전계획을 시행하면서 언제 터질지 몰라 불안하기만 한 서해를 평화의 지역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하지만 송 시장의 든든한 우군인 시민사회단체와의 불협화음도 생겨나고 있다. 숭의구장에 대형마트를 입점한 것이나 송도 영리병원 추진, 인사 문제 등을 두고 갈등이 불거졌다. 송 시장이 야권연대 약속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취임 후부터 송 시장은 매일 30~40분 단위로 짜여 있는 일정표를 소화하느라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7월 11일 ‘민선5기 인천지방자치 1년 평가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시민사회단체에서 송 시장에 대해 쓴소리를 많이 했다.
“(시민사회단체와) 잘 지내고 있다.(웃음)”

시민사회단체는 ‘소통의 부재’라는 이야기까지 했다. 송 시장의 인사에 대해 ‘낙하산 인사’라고 비판하는 쪽도 있다.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인사에 대해 비판할 수는 있지만, 비약이 많고 과장됐다. 인천을 위해 모셔온 허정무(인천유나이티드 감독), 금난새(인천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씨까지 낙하산 인사에 집어넣으면 되느냐. 비서실 여직원까지 낙하산 인사 명단에 들어 있다. 문제가 있는 조직을 바로잡으려면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보내야 하는 것 아니냐. (사업이 무산된) 영종도 밀라노 프로젝트에 수백억원을 사용한 것을 보면 분노가 치밀 정도다. 당장 TP(송도테크노파크를 말함)부터 고발할 것이다. 신진 전 원장이 재정을 엉터리로 집행하지 않았느냐. 일을 바로잡기 위해서 이윤 인천대 교수(무역학부)를 원장으로 뽑았고, 권세헌 변호사를 감사로 임명했다. 내가 바꾼 사람들을 모두 낙하산이라고 하면 되느냐. 내가 임명한 이들에게 문제가 있으면 해고할 것이다. 정무직은 내 임기가 끝나면 같이 나갈 것이다. 인천시가 (마구잡이) 사업으로 부도날 때까지 시민사회단체는 무엇을 했나.”

송 시장은 ‘일방적으로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인천 경제자유구역 송도국제도시에 유치하려고 하는 영리병원에 대해서 우려하는 이들이 많다.
“시민사회단체는 송도에 영리병원이 생기면 전국적으로 파급된다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 나도 절대 반대다. 다만 사람마다 분석에 차이가 있다. 병원 관계자들을 만나면 송도 외에는 투자할 곳이 없다고 말한다. BC분석(편익비용분석)을 해서 이익이 될 곳은 송도밖에 없다고 한다. 제주도에서 영리병원을 시도했지만, 안 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 아닌가. 송도 영리병원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전국적으로 확산이 안 되면 송도에 설치되는 것은 괜찮다는 것 아니냐. 실험을 해보자는 것이다. 테스트 베드(test bed·가늠터)로 송도와 제주도만 해보자. 향후 10년간 운영해보고 의료보험을 교란하면 폐쇄하면 된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를 만났을 때도 송도 영리병원을 시범사업으로 해보자고 했다. 가정을 가지고 싸우면 종교지, 과학이 아니다.”

시민사회단체의 비판에 대해 섭섭한 게 있는 것 같다.
“섭섭함은 없다. 시민사회단체가 나에게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 대신 경중을 구분해야 할 것이다. 참여정부의 정책에 대한 과도한 비판으로 일의 경중이 구분되지 않았다. MB 정부가 들어섰고, 그 이후에는 뼈저리게 반성을 한 것 아니냐. 반성의 결과로 태어난 것이 야권연대다. 야권연대로 지방권력이라도 얻어낼 수 있었다. 오히려 민주노동당 출신의 배진교 남동구청장, 조택상 동구청장은 나를 좋게 평가한다. 계양산 골프장 백지화, GM대우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한 것을 보고 같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의 비판과 지적은 좋지만, 전체적으로 힘을 합할 때는 같이 가야 한다. 어려울 때 도와주지 않고 계속 나를 공격하는 것이 아쉽다.”

지난 6월 28일 인천 서구에서 열린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주경기장 기공식에서 송영길 인천시장 등 내 빈들이 시삽하고 있다. 주경기장은 고정 관람석 3만석과 가변 관람석 3만석을 합쳐 총 6만석 규모로 건립 되며 아시안게임 개ㆍ폐회식과 육상경기를 치르게 된다. / 연합뉴스


취임 1년을 맞이해 송 시장은 많은 인터뷰를 했다. 인천시청 대변인실 측은 “인터뷰 중에 목소리를 높인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말했지만,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에서 ‘소통 부재’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였다. 시민사회단체의 비판을 무시하지 않고, 민감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송 시장이 임기 동안 풀어내야 할 중요한 숙제가 많지만, 그 중의 하나가 야권연대를 위해 약속했던 정책연합 및 그들과의 ‘소통’임을 알 수 있다. 송 시장은 취임 이후 정책결정자문기구인 ‘시정참여정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야권연대 당시 약속했던 정책연합에 대해 점검하고 있다. 신동근 정무부시장과 박종렬 남북평화재단 경인본부 공동대표가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박종렬 공동위원장은 “송 시장을 일 잘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취임 후 1년 동안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뭐였나.
“인천시 부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단기간에 재정적자를 해결할 수 없다. 재정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아껴 쓰고(예산 절감), 많이 빌려오고(국고지원, 저리 장기상환 전환), 벌어 쓴다(수익사업과 민자유치)는 세 가지 원칙을 추진하고 있다. 당분간은 부채가 증가할 수밖에 없지만, 대기업 투자 등을 통해 인천시의 동력을 만들 예정이다. 정부의 지원도 요구하고 있다. 인천시의 재정이 열악하기 때문에 대규모 토목공사는 하지 않고 있다. 1년 동안 100억원 이상의 공사는 하나도 하지 않았다.”

2014년 아시안게임 준비에 어려움은 없나. 재원이 상당히 부족한 것으로 알고 있다.
“아시안게임 준비는 어렵긴 하지만 보람있는 일이다. 취임 전부터 어떻게 아시안게임을 치러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사업비가 원래 2조5000억원이었는데, 이것을 1조9000억원으로 조정하면서 한숨 돌렸다. 규모를 줄이고, 인근 경기장을 빌려 쓰는 식으로 6000억원의 예산을 절약했다. 원래대로 진행했으면 낭비 요소가 많았을 것이다. 대회 준비에 비용을 적게 들이고, 적자가 나지 않도록 철저하게 준비할 것이다.”

인천공항 민영화에 반대하는 이유가 있나.
“2008년 민영화 발표 때부터 반대했다. 인천공항은 2005년부터 6년 연속 세계 최고의 공항이고, 2010년 32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낸 알짜 공기업이다. 이런 시설을 외국계 투자기관에 넘기는 것은 잘못이다. 맥쿼리 등 외국자본에게 투자를 바라는 것도 무리라고 본다.”

인천공항 매각에 대해 여러 가지 소문이 있는데, 확인된 것은 있나.
“국회를 떠나서 그런지 인천공항 매각 이유에 대한 정보는 잘 모른다.(웃음)”

취임 당시 부채가 7조4000억원이었다. 루원시티, 월미은하레일, 검단신도시, 송도랜드마크시티 등의 사업이 부진하거나 중단되기도 했다. 전임 시장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해법이 있나.
“책임자가 누구인지를 찾아내고, 책임을 물을 것이다. 사업을 재조정해서 정리할 것은 정리해야 한다. 잘못된 정책에 대해 시정조치를 하는 방법밖에 없다.”

2011년 예산을 지난해 대비 7.7% 줄였다. 5439억원이 줄었는데, 복지분야 투자는 더 늘었다.
“취임할 때 미래와 사람에 대한 투자를 약속했다. 출산율이 1.2명이라는 것은 전국의 여성들이 총파업을 하는 것이다. 이런 상태라면 10년 후에 대한민국이 성장할 수 있겠느냐. 국민연금을 받지도 못할 수 있다. 정부가 이런 절실함을 모른다. 나는 보육, 출산, 청년 일자리 만들기에 집중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우리의 모든 전력을 여기에 투여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에 재앙이 될 것이다. 복지분야 투자를 늘린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개발보다는 사람 중심의 시정을 하고 싶다.”

인천시장 임기 내에 해결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인천시의 교육이 너무 뒤떨어져 있다. 인천에 활력을 주기 위해서는 교육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내 아들이 이제 고1이다. 내 아이를 키운다는 생각으로 인천시의 교육수준을 끌어올리고 싶다.”

인천시는 올 하반기부터 초등학교 전면 무상급식을 시행한다. 공교육 내실화를 위해 학력 향상 선도학교(10개교), 잠재성장학교(15개교)를 선정해서 지원하고 있다. 자율형 사립고를 확대하고, 산업수요 맞춤형 기술자 양성을 위해 마이스터고를 추가 지정했다. 115억원의 예산을 들여 원어민 보조교사를 배치했고, 영어마을과 옹진섬 외국어교실을 지원하고 있다.

수도권 유일의 야권 지자체장이다. 이런 점 때문에 정부와 소통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
“대통령이랑 소통이 안 되는 부분이 있다. 만남을 요청해도 만나기가 어렵다.”

2012년 총선에 대비하기 위해 민주당 내에서 ‘물갈이론’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이 대폭적인 물갈이를 해야 한다. 개혁적 공천이 중요하다. 국민참여당과 민노당의 통합은 쉽지 않다. 민주당 지도부가 마음을 비우고, 문재인·이해찬·한명숙 등과 공동선대위장을 맡아야 한다. 민주당 전당대회를 식구들의 잔치로 만들면 안 된다.”

2012년 대선에 오세훈 서울시장, 김문수 경기지사 출마설이 나오고 있다. 지자체장의 대선 출마는 어떻게 생각하나.
“그럴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자기 개인의 정치 프로그램에 맞춰 대선 출마와 지자체장 자리를 양손에 저울질하는 구조는 적절치 않다. 투명하고 솔직해야 한다. 국민이나 당의 요구가 있으면 자기를 (대선에) 투입해야 한다. 두 지자체장이 대선에 꼭 나와야 하는 상황이 객관적으로 요구된다면 괜찮다. 하지만 자신들이 그런 상황을 만드는 것은 옳지 않다. 두 지자체장의 출마설은 옹색하게 보인다.”

대권에 직접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나.
“인천시장이라는 자리는 소중하다. 시민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나를 뽑아준 것이다. 내 능력이 부족하지만, 임기 동안 집중적으로 노력해서 유능한 진보라고 인정받고 싶다. 지방자치가 어려운 환경에서 성과를 어떻게 내느냐가 중요하다. 인천시장 4년 임기는 예고편이다. 예고편 성적을 가지고 향후 정치적 행보를 결정할 것이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표지인물]안철수 원장 “나는 욕망에 충실할 뿐이다”- 신동호// 주간경향 937호, 2011-08-09.

[표지인물]안철수 원장 “나는 욕망에 충실할 뿐이다”
2011 08/09주간경향 937호
ㆍ안철수 원장의 인간형, 우리 시대 윤리적 인간의 전형

지혜와 신뢰로 인생을 이끌어주는 멘토, 본받고 싶은 롤모델, 존경하는 인물, 대화를 나누고 싶은 상대, 함께 일하고 싶은 상사…. 한 인간형이 이 모든 조건을 동시에 충족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말고는.

연합뉴스

한 포털 사이트에 안 원장의 단점에 대한 질문이 올라왔다. 그를 멘토로 삼고 역량을 평가하는 과제를 수행하면서 공개적으로 SOS를 보낸 것이다. 답변은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거의 단점이 없다’였다. 굳이 말한다면 휴식을 즐기지 못하고 운동에 소질이 없는 정도라나. 그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나는 기본적으로 수평적 리더십에 편중되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수평적 리더십의 단점을 다 가지고 있다. 나 개인의 단점보다 수평적 리더십의 단점을 찾으면 엄청나게 많이 보일 것이다. 예를 들면 속도가 느리고 체력 소모가 많을 수밖에 없다. 요즘 젊은이들이 워낙 수직적 리더십에 식상해서 수평적 리더십을 갈구하지만 그 어느 것도 절대 우위에 있지 않다. 전쟁이 나면 수직적 리더십밖에 없다. 상황에 따라서 정답이 다르고 서로가 상호보완적 관계다.”

안 원장은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다. 골프도 배우지 않았다. 저녁 약속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취미가 독서, 영화감상이다. 일과 자기 계발, 사회 공헌에 대한 책임, 그래서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것 외에 다른 공간이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언론의 지적처럼 ‘우리 시대 윤리적 인간의 전형’이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존경할 수는 있지만 롤모델로 하기에는 욕망의 허락을 얻어내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욕심만 버리면 세상이 편하다”
“그게 또 나의 사적인 욕망이기도 하다. 나는 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았다. 23년 동안 한국 언론에 나의 행적이 전부 나와 있다. 발언도 많다. 한 번도 말을 뒤집거나 하지 않았다. 참고 살거나 주위 시선을 의식하거나 꾸미면서 무슨 일을 했으면 이렇게 오랫동안 못 버텼을 것이다. 예를 들면 정부 자문위원 하면서 하고 싶은 말 다 한다. 자리 욕심만 버리면 그 다음부터는 세상 사는 게 너무 편하다.”

사람은 욕망을 조절하면서 산다. 그는 그럴 필요가 없다. 세상이 나은 방향으로 가는 데 보탬이 되는 게 그의 욕망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선의의 욕망’ ‘긍정적 욕망’이라고 할 수 있다.

어렸을 때 안 원장은 내성적인 성격이 불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바꿀 수 없는 것은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그 자체를 받아들이고부터 마음이 편해졌다. 지금도 그는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아예 고민조차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는 끊임없이 도전한다. 의사,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개발, 벤처기업 창업경영학, 어느 것도 평생을 투자해야 성공할 수 있는 분야다. 그는 또 무엇에 도전할 것인가.

“나는 미래 계획이 없다. 그냥 현재를 열심히 살면 그 다음 선택이 나한테 주어진다. 카이스트 교수 시절 기업에 대해 이야기하니까 어떤 분이 ‘학교에만 있어서 현실을 모른다’고 비판했다. 한국에서 10년 동안 사장 하면서 만날 은행 가서 어음 깡하고 다닌 사람한테 말이다. 평생 학교에 있었던 사람으로 다른 분이 착각할 정도로 교수로서 인정받은 것 아닌가. 그런 게 현재를 충실하게 산 결과이자 보람이다.”

<신동호 선임기자 hud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