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14

[사설] 한나라당은 한진중공업 국정조사에 나서라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결국 35m 높이의 크레인에서 이번 한가위를 보냈다. 그는 지난 설날을 크레인 위에서 보낼 때만 하더라도 추석까지 여기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응원하는 시민들이 많아 외롭지 않다고 하지만, 민족의 명절인 추석마저 크레인에서 보내게 한 우리 사회의 책임이 크다.

한진중공업 사태는 추석 전에 실낱같은 타결의 기대를 갖게 했으나 회사 쪽의 무성의로 결렬됐다. 노조는 해고자 실업급여 지급 만료 기간이 내년 3월이란 점에 착안해 '정리해고는 인정하되 6개월 후 복직안'을 내놓고 물밑 협상을 벌였다.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해온 노조로서는 사태 해결을 위해 내부의 반발을 무릅쓰고 크게 양보한 안을 제시한 것이다. 아쉽게도 사쪽은 이마저 거부해 노사 협상은 중단되고 말았다.

사쪽은 지난달 국회 청문회를 계기로 정리해고 후 3년 내 복직이라는 안을 제시했다가 복직 시점을 2년으로 줄인 수정안을 내놨다. 사쪽은 정상화 근거를 연 매출 1조5000억원, 수주 15만t 등으로 제시했지만 막연한 복직 시점 외에는 정리해고자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 노조 쪽에서 회사 쪽이 문제를 풀 의지는 없고 버티기만 하고 있다고 항변할 만한 이유가 충분하다.

한진중공업 노사에만 맡겨둘 일이 아니며 정치권이 나서야 한다. 청문회에서 한진중공업은 정리해고를 할 만큼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없었으며, 회사 쪽이 주장한 어려움은 경영진 탓이 큰데도 정리해고를 통해 그 책임이 일방적으로 노동자에게 전가됐다는 점이 확인됐다. 야당은 물론 한나라당 의원들도 한목소리로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에게 정리해고 철회를 위한 결단을 촉구한 바 있다.

그런 만큼 한나라당이 국정조사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야4당이 국정조사를 추진하기로 한 만큼 한나라당은 국정조사에 동참해 사태 해결에 나서야 한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부산지역 한나라당 부산시당 및 지역구 국회의원들에게 국정조사를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전달한 데 이어 상경 농성을 계획하고 있다는데 그러한 절박한 외침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사설] ‘졸속 협상’ 파헤친 피디수첩 제작진을 징계하다니

문화방송이 '광우병 편'을 문제삼아 사과방송과 사과광고를 낸 데 이어 이번에는 제작진을 인사위에 회부하고 징계절차를 밟고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다. 무죄를 받고도 사과문을 내는 황당한 조처를 한 데 대해 직원들에게 사죄를 해도 시원찮을 김재철 사장이 오히려 "징계가 불가피하다"고 했다니 문화방송 시계는 거꾸로 도는 모양이다.

대법원이 지난 2일 내린 최종판결은 형사는 무죄, 민사에서는 정부 협상 태도 등에 대한 비판은 의견표명에 해당돼 정정보도할 사항이 아니라는 이유로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낸 것이 전부다. 대법에서 인정된 피디수첩의 허위보도는 한국인 유전자형 관련 보도뿐이다. 2심에서 허위사실이라고 판단했던 다우너소의 광우병 위험, 아레사 빈슨의 인간광우병으로 인한 사망 보도에 대해선 문화방송 제작진이 형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민사에서도 승소해 상고할 수 없었고, 따라서 대법에선 아예 다뤄지지도 않았다.

내용적으로 따져봐도 아레사 빈슨은 보도 이후에야 인간광우병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고, 다우너소는 광우병 위험 때문에 미국에서 2009년 전면적인 도축 금지 조처가 내려진 점 등에 비춰 보면, 대법에서 본격 심리가 이뤄졌다면 어떤 판단이 내려졌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정정보도가 확정된 한국인 유전자형 관련 보도 역시 "한국인의 94%가 광우병에 취약한 유전자형을 갖고 있으니 광우병 걸린 쇠고기를 먹으면 발병할 확률이 94%"라고 표현한 것으로 '착오'나 '과장' 수준의 잘못으로 보여진다.

이처럼 표현상의 오류 등 일부 잘못은 있으나 법률적으로는 사실상 문화방송 쪽의 승리라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경영진이 '대법원이 3가지 주요 내용을 허위로 결론내렸다'는 등의 허위사실을 실은 사과광고에 이어 징계까지 하려는 것은 정권에 대한 코드 맞추기라고 볼 수밖에 없다. 정치적 꿍꿍이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최근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국무부 외교전문 내용은 이명박 당선자와 현 정권 실세들이 미국과 협상도 하기 전인 2008년 1월 미국산 쇠고기 개방을 미국 쪽 인사들에게 약속해준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피디수첩은 당시 이런 약속에 맞추려 졸속으로 진행한 쇠고기 협상을 앞장서 파헤친 선구적인 심층보도였음이 다시 확인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정부와 검찰, 수구언론이 장단을 맞춘 마녀사냥의 치부가 속속 드러나고 있는데도 문화방송 경영진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뜨는 ‘장외 기대주’ 알고보니 ‘동향’

최근 정치권 안팎 화제의 중심에 선 이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부산·경남(PK) 출신이다. 당적이 없는 정치권 바깥 인사지만 정치적 장래가 열려 있는 '장외 기대주'라는 점도 공통점이다. 두명은 교수, 두명은 변호사로 전문성을 지닌 40~50대 인사들이다. 피케이 지역에 느닷없이 '인물 복'이 터진 셈이다.

최근 여론조사 지지율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어금버금한 안철수(49)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고를 나왔다. 아직도 아버지가 부산에서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혜성처럼 등장해 야권의 서울시장 통합후보로 유력해진 박원순(55) 변호사는 경남 창녕 출신이다. 민주당이 지지부진하자 대안 카드로 떠오른 문재인(58)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거제도가 고향이며 부산 경남고를 나왔다. 야권의 '영입 1순위'로 거론된 지 오래인 조국(46) 서울법대 교수도 부산 혜광고를 나온 부산 토박이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은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이 지역 출신 인사들이 부각되면서 피케이 민심의 '영남 한나라당 벨트' 이탈 현상이 뚜렷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새로운 인물 나서서 야권 변화 보여줘야”한명숙 전격 불출마…손 대표 “안타깝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서울시장 보궐선거 불출마 선언은 본인의 결심에 의해 13일 오전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민주당 상임고문이지만 당 지도부와 사전 조율은 없었다. 한 전 총리 불출마를 이날 아침에야 알게 된 손학규 대표는 "안타깝다"고 딱 한마디를 했다.

불출마 선언 배경은 백원우 의원이 대신 읽은 선언문에 잘 드러나 있다. "국민들이 지금 가장 절실하게 원하는 것은 정치권의 '변화'와 2012년 정권교체"라는 것이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는 자신이 아니라 '새로운 인물'이 나섬으로써, 정치권, 특히 야권이 변화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고, 그럼으로써 2012년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다.

한명숙 전 총리는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오세훈 전 시장에게 0.6%포인트(2만6천여표)의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다.

황창화 전 총리실 정무수석비서관은 "한 전 총리는 처음부터 출마를 원하지 않았는데 당 중진들이 강하게 출마를 요청해 추석 이후로 결정을 미루고 고민했던 것"이라며 "'전보다 좋은 환경이고 승리할 수 있는 좋은 분들이 있다'는 것이 한 전 총리의 말씀"이라고 전했다.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다른 사람들'이 있으니 자신은 나서지 않겠다는 얘기다.

이르면 10월 중순께 선고가 예상되는 재판 일정도 불출마 결심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한 전 총리와 가까운 민주당 관계자는 "2년 동안 재판을 받느라고 매우 지쳐 있는 상태"라며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 전 총리가) 후보로 나서는 것이 당을 위해 최선인가 하는 고민이 있었다"며 "당에 혹시 피해가 가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 전 총리 자신은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일까? 그는 "민주당의 혁신, 야권과 시민사회의 통합, 그리고 2012년 총선 승리와 정권교체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지인은 "모든 길을 열어 놓았다"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 백의종군부터 당 대표 출마까지 모든 선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박원순, 민주당 입당 ‘고사’…통합후보된 뒤엔 미지수

범야권의 서울시장 후보로 박원순 변호사가 사실상 독주 체제를 갖췄다. 민주당의 유력한 후보였던 한명숙 전 총리가 13일 불출마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범야권의 서울시장 후보 구도는 간명해졌지만, 민주당은 제대로 된 당내 경선을 치르지 못할 위기를 맞았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이날 국회로 찾아온 박 변호사에게 "민주당의 문은 활짝 열려 있다"고 말했다. 입당 권유였다. 박 변호사의 대답은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중의적인 것이었다. 손 대표와 만나고 나오는 길에 기자들과 만난 박 변호사는 "같은 시각을 가진 정파와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입당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야권도 혁신하고 시민사회도 폭넓게 참여하는 큰 틀의 정당으로 재편되면 그 과정에서 일원으로 참여하는 데는 주저하지 않겠다. 이런 이유로 지금으로서 입당은 적절치 않다고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금으로서는'이란 표현에 주목하고 있다. 이용섭 대변인은 별도 브리핑에서 "박 변호사는 민주당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얘기한 적이 전혀 없다. 박 변호사가 범야권의 통합후보가 되면 민주당 입당도 고민해 볼 것 같다는 것이 제 생각"이라고 해석했다. 박 변호사는 손 대표와의 비공개 회동에서는 '범야권의 통합후보가 된 이후에는 민주당 입당을 고려해 보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손 대표도 박 변호사에게 '민주당의 당심을 얻지 않고서는 선거에서 이기기 어렵다. 어느 후보로 단일화되든 제1야당인 민주당의 당심을 얻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시민사회가 모두 참여하는 단일화 경선에서 박원순 변호사가 통합후보로 선정된 뒤 민주당에 입당하는 과정이 순조로울지는 미지수다. 박 변호사로선 민주당에 입당하면 '기호 2번' 프리미엄을 얻을 수 있지만 '안철수 현상'에서 확인된 '정치권 외부인사'라는 참신성을 잃을 수 있다는 부담이 있다. 박 변호사 진영 안에서도 민주당 입당의 장단점을 둘러싼 논쟁이 아직 진행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박 변호사가 서울시장에 당선된 이후 입당하는 카드도 있다. 민주당의 고위 당직자도 "서울시장 선거 전이냐 후냐의 문제이지 박 변호사가 민주당 입당을 하지 않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고민은 어느 경우에도 박 변호사가 통합경선 이전의 민주당 내부 경선에 참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데 있다. 한 중진 의원은 한 전 총리 불출마 선언 이후의 민주당 경선 상황에 대해 "유치원생들 축구대회에 학부모 말고 누가 구경을 오겠느냐. 민주당 경선이 베이비 경선으로 전락했다"고 자조 섞인 반응을 보였다. 이 경우 제1야당으로서의 자존심에 상처를 받고, 또다른 당내 분란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

현재까지 민주당 경선에 출마하려는 인물은 천정배 최고위원과 신계륜 전 의원뿐이다. 두 사람은 14~15일 이틀 동안 진행되는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등록일에 후보로 등록할 뜻을 밝혔다. 자천타천 후보 출마 뜻을 밝혔던 다른 이들은 이미 뜻을 접었다. 당 일부에서는 박영선 정책위의장과 원혜영 의원이 출마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원혜영 의원은 지난 8일 한 전 총리의 출마를 권유하는 중진모임에 참석하며 사실상 불참 선언을 했기에 지금 와서 태도를 바꾸기 힘든 상황이다. 박영선 의원도 아직까지는 '불출마'라는 태도를 명확히 하고 있다.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박근혜 46%-안철수 44% ‘오차범위’내 혼전

추석 연휴에도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지지율이 여전히 고공행진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 여의도리서치가 추석날인 12일 전국 2029명을 대상으로 벌인 여론조사에서, 안 원장은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와 비슷한 지지율을 유지했다. 박 전 대표와 야권 유력 대선후보들 사이의 양자 대결 결과를 보면, 박 전 대표와 안 원장의 지지율은 각각 46.1%와 44.3%로 나타났다. 오차범위 이내인 1.8%p 차이의 혼전이다.

박 전 대표와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대결에서는 박 전 대표가 52.9%로 35.5%를 얻은 문 이사장을 17.4%p 앞섰다. 박 전 대표와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대결에서는 박 전 대표가 57.7%로 28.3%를 기록한 손 대표를 29.4%p 앞선 것으로 조사됐다.

전화자동응답(ARS) 방식으로 진행된 이번 조사의 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서 ±2.18%p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PK도 ‘안풍’…“당만 보고 찍지 않겠다는 사람 많더라”

"추석 때 만난 사람 대부분이 안철수, 박근혜 이야기더라고요."(한 부산 출신 한나라당 초선 의원)

부산·경남(PK) 민심이 들썩이고 있다. 동남권 신공항 무산과 저축은행, 한진 중공업 사태 등으로 집권여당에 격앙한 민심이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 지역출신 인물들의 급부상을 매개로 대안 쪽에 눈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지역 여야 정치인들이 전하는 '추석 민심' 속에서도 '안철수 돌풍'은 단연 화젯거리였다. 내년 총선에서 부산진갑 출마를 준비 중인 김영춘 민주당 최고위원은 13일 "만나는 사람 대부분은 안철수가 대단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김 최고위원은 "재래시장과 번화가를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들었는데 안철수 원장이 부산 출신이란 사실은 최근에 알게 된 사람들이 많고,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안철수 현상'이 두드러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현재 야당들뿐만 아니라 새롭게 등장하는 세력까지 합쳐서 대안을 만들어 달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부산시민들 중엔 기성 정치권이 아닌 새로운 인물을 바라는 기대가 적지 않다. 약사 김정훈(46)씨는 "민주당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의 지지부진한 통합 논의를 보면 신물이 난다"며 "기성 정치에 실망한 사람들이 당리당략을 쫓지 않는 순수함에 사람들에게 열광하고 있다. 안풍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업을 하는 김아무개씨(43)는 "시민들은 한나라당이 하나, 민주당이 하나 결과는 같다고 본다"며 "안 원장은 이쪽도 저쪽도 아닌 사람이고 컴퓨터 분야에서 새로운 개척을 한 도전자 이미지가 강해 기존 틀을 벗어난 사고를 할 것이란 기대감이 안풍의 원인"이라고 나름대로 분석했다.

안 원장이 박근혜 전 대표와 한나라당에 위협구를 던졌다는 점에서 관심을 갖는 이들도 적지 않은 듯했다. 지난 6~7일 -코리아리서치 여론조사에서 안 원장은 부산·경남 지역에서 42.5%의 지지를 얻어 37.7%를 얻은 박 전 대표를 따돌렸다. 부산의 한 정치권 인사는 "부산·경남은 대구·경북과 달리 박 전 대표를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분위기가 아니다"라며 "안철수 돌풍을 계기로 박 전 대표가 계속 팔짱을 끼고 소극적으로 행동해온 데 대한 반감이 커졌다. 이는 맞으면 맞고 아니면 아닌 걸 선호하는 지역 정서와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 부산지역 초선 의원은 "한나라당 공천을 받았다고 안주하다간 큰 코 다칠 것이라면서 이젠 당보다는 얼마나 지역구에서 제대로 일했는지를 보고 찍겠다는 충고가 많았다"고 전했다. 이진복 의원은 "안철수 바람 한 번에 여당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지 않더라는 여론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문성현 전 민주노동당 대표(창원시 지역위원회 위원장)는 "창원 등 경남 지역에서도 이젠 당만 보고 찍지 않겠다는 변화의 조짐이 뚜렷하다"며 "추석 때 만난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제발 단일화해서 제대로 된, 똑똑한 사람 내보내라, 그러면 망설이지 않는다'라는 말을 많이들 하더라"고 전했다.

안철수 돌풍이 어디까지 이어질지를 두고는 부산 민심도 엇갈렸다. 내년 4월 총선 전 마지막 추석을 맞아 지역을 돈 한나라당 의원들은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박민식 의원은 "만나본 사람이 한정적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확실히 50대 이상은 안 원장을 잘 모르더라"며 "지금껏 안 원장이 쌓아온 컴퓨터 전문가라는 이미지와 정치인 안철수와는 연결이 잘 안 되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부산에서 택시기사를 하는 김아무개씨(56)는 "한나라당의 인기가 많이 떨어지고 욕을 먹는 것은 사실이지만 야당도 잘하는 게 없다"며 "여전히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안철수, 문재인씨가 나와도 한나라당을 찍을 사람이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철수 바람도 언젠가는 그칠 것이고, 결국 강고한 지역 구도와 여당의 조직력이 선거에서 위력을 떨칠 것이란 전망도 있었다. 한 한나라당 의원은 "맨날 부산 시민들이 프로야구에서 롯데가 못한다고 욕해도 결국 야구장에선 '부산갈매기'를 외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안풍이 외려 부산 경남지역 여권 지지자를 결속시켰다는 분석도 있다. 장제원 한나라당 의원은 "안풍이 한나라당 지지자들에겐 '이러다간 한나라당과 박 전 대표가 모두 다 무너진다'는 위기감을 불러일으킨 것 같더라"며 "외려 박 전 대표의 지지가 견고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김영춘 민주당 최고위원은 "안철수 현상은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거부에서 표출되는 것인데, 지금 부산·경남은 한나라당에 대한 거부정서는 강하고, 다른 야당에 대해서는 지지로 돌아서기에는 조금 부족한 상황"이라며 "이제는 당보다는 사람을 보겠다"는 여론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다음달 26일 치러지는 부산 동구청장 재선거가 안풍과 내년 4월 총선에서의 승패를 가늠해 보는 시험대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나라당 후보인 정영석 전 부산시 환경공단 이사장과 야권 단일후보인 이해성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맞붙는 이 선거 결과가 지역 유권자들의 '변화'의 강도를 측정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부산/김광수 기자, 성연철 이태희 기자

sychee@hani.co.kr

국공립대 등록금도 세계 두번째로 비싼 한국

우리나라 국공립대 등록금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등 42개국 가운데 둘째로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고등교육 단계에 투입하는 공교육비 규모는 이 기구 가입국 평균의 60% 수준에 그쳤다.

교육과학기술부는 13일 이런 내용을 담은 '2011년 경제협력개발기구 교육지표'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번 조사는 이 기구가 2009년 통계자료(재정 통계는 2008년 결산)를 활용해 42개국(회원국 34곳, 비회원국 8곳)의 교육여건과 성과 등을 평가한 결과다.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의 고등교육 여건은 세계 최하위 수준이었다. 국공립대 및 대학원(석사과정)의 연평균 등록금은 5315달러로 미국(6312달러)에 이어 조사 대상 국가 가운데 2위에 올랐다. 각각 3위와 4위에 오른 영국(4840달러), 일본(4602달러)보다도 50만~80만원가량 비쌌다.

반면 고등교육 단계에서 정부의 공교육비 부담률은 꼴찌에서 둘째였다. 고등교육 단계에 투입되는 공교육비 가운데 정부재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22.3%로 2000년 23.3%보다 오히려 줄었다. 민간재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77.7%로, 이 기구 가입국 평균의 2.5배나 됐다.

한국 정부가 고등교육단계에 투입하는 공교육비는 국내총생산(GDP)의 0.6%로 이 기구 평균(1.0%)의 60%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민간이 부담하는 공교육비는 국내총생산의 1.9%로 이 기구 평균(0.5%)보다 4배 가까이 많았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강남아줌마들도 안철수 교수 찍겠다더라"
박원순 변호사, 14일 출마 선언
강호동 아웃 '1박2일' 당분간 5인체제
돈이 주렁주렁 열리는 나무?
나홀로족 '변소밥' 늘어

교과부 퇴직 관료 5명중 1명, 대학 총장·교수자리 얻었다

교육과학기술부 고위 공무원들이 퇴직 뒤 전국 곳곳의 대학에 재취업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이들 중 다수는 대학정책 담당 부서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어, 일종의 '교육계 전관예우'라는 비판이 나온다.

 가 안민석 의원(민주당)과 공동으로 2002년부터 최근까지 10년간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에서 퇴직한 1~3급(관리관·이사관·부이사관) 142명, 1996년 이후 현재까지 교과부 차관을 역임한 교육 관료 10명 등 교과부 고위 퇴직자 152명의 행적을 전수조사한 결과, 22%에 이르는 33명이 퇴직 뒤 대학에 재취업한 것으로 확인됐다.

 교과부 고위직 출신 퇴직자들은 주로 사립대학, 그 가운데서도 2·3년제 전문대학에 많이 취업했다. 취재 결과, 이들이 총장·교수·행정간부 등의 직위를 얻어 현재 몸담고 있거나 거쳐간 대학은 모두 39곳이었다. 이 가운데 사립 전문대학이 17곳, 사립 4년제 대학이 15곳, 국립 4년제 대학이 7곳이었다.

 교과부 고위 관료들이 취업한 39개 대학 가운데 서울 소재 대학은 3곳뿐이었다. 나머지 36곳은 경기(11곳), 인천·부산·광주·경북·충북·충남(이상 3곳), 강원·경남(이상 2곳) 등 지방에 있는 대학이었다. 지방 사립대 및 전문대는 대학 부실운영을 살피는 교과부의 주된 감시·감독 대상이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대학을 대표하는 총장 또는 이사장이 됐다. 대학 재취업 고위 관료 33명 가운데 19명이 대학 총장 및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들이 총장 등을 맡은 23개 대학 가운데 14곳은 전문대학이었다. 총장을 맡지 못한 나머지 14명 가운데 11명은 교육 관련 학과의 교수로 임용됐고, 3명은 대학 사무처장 등 행정간부로 취업했다.

 퇴직 뒤 대학에 취업한 고위 관료의 상당수는 교과부 재직 시절 대학 관련 정책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일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취재 결과, 퇴직 뒤 대학에 취업한 1~3급 출신 28명 가운데 18명이 대학지원과·전문대학지원과·대학구조개혁추진본부 등 대학과 직접 관련된 업무를 다루는 부서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었다.

 익명을 요청한 교과부 현직 고위 공무원은 "재직 시절 대학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해두면 퇴직 뒤 취업이 쉽기 때문에 대학을 쥐락펴락하는 대학지원국 등에 근무하는 것을 교과부 공무원들이 선호한다"고 말했다. 그는 "재직 때 후배로 거느렸던 공무원들이 나중에 (대학 관련 업무의) 간부로 승진하기 때문에 퇴직 공무원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대학 입장에선 교과부에 대한 (퇴직 관료의) 영향력을 감안해 총장·교수 자리를 줘가며 굳이 모셔가려 한다"고 말했다.

유신재 이재훈 기자 ohora@hani.co.kr, 민보영 곽영신 인턴기자(세명대 저널리즘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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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크 '대구 다녀와 인생 바뀐 사나이'

크루그먼 “9·11 악용 수치스럽다” 네오콘 맹비난

9·11 테러 10년을 맞은 당일,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미국 칼럼니스트인 폴 크루그먼(사진)이 "9·11 기념일은 미국에 수치스러운 날"이라고 말한 것을 두고 미국 내 논란이 뜨겁다.

크루그먼은 11일(현지시각)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수치스러운 세월'이라는 짧은 글에서 "9·11 이후 벌어진 일들은 깊이 수치스러운 것"이라며 "대참사를 통합의 계기로 삼아야 했건만, (보수파들은) 이를 분열의 요소로 삼고 말았다"고 말했다. 그는 9·11 테러 당시 영웅으로 떠올랐던 조지 부시 전 대통령과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이 '가짜 영웅들'이라며 9·11 테러로 인한 사람들의 공포를 이용해 자신들의 개인적·정치적 이익을 채웠다고 비난했다. 이어 그는 "네오콘들이 (애초) 싸우려 했던, (9·11 테러와) 상관없는 (이라크) 전쟁 정당화에 9·11 테러가 이용됐다"고 못박았다. 또 그는 "무엇이 일어나는지 잘 알고 있었을 전문가들은 부패에 눈감고 잔학행위에 지지를 보냈다"고 당시 지식인들까지 비판했다. 크루그먼은 논란을 예상한 듯 이 글에 댓글을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보수파들은 에 그의 칼럼니스트 해촉을 요구하는 등 맹비난을 퍼부었다. 도널드 럼스펠드 전 국방장관은 12일 트위터를 통해 "크루그먼의 불쾌한 글을 읽은 뒤 오늘 뉴욕타임스 구독 중단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보수논객인 메긴 켈리는 에 "겁쟁이 크루그먼이 (사람들을) 난도질하고, 9·11 당시 놀랍도록 훌륭했던 부시 전 대통령과 줄리아니 전 시장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언론의 자유가 있다지만, 9·11에 대해선 그래선 안 된다"고 말했다.

진보논객들은 변호에 나섰다. 진보 블로거 니콜 벨은 "지금까지 이라크 전쟁에서 4752명의 미군과 10만명의 이라크 민간인이 숨졌다"며 "어떻게 9·11의 유산이 수치가 아닐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크루그먼은 단지 진실을 말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논쟁이 뜨거워지자, 크루그먼은 12일 다시 글을 올려 "내가 9·11 이후 2년간 말하지 않던 것을 이번 글에서 말한 건 하나도 없다"며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또 "9·11 대참사가 어떻게 오용됐는지 되새기는 것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잊어서도, 용서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워싱턴/권태호 특파원 ho@hani.co.kr

2011-09-13

[논쟁] 세계경제 풍랑 속, 한국경제 전망은?

세계 경제가 '더블 딥' 공포에 빠졌다. 그리스의 국가부도 위기 상황이 스페인, 이탈리아 등 전 유럽으로 퍼져가면서 이른바 '유로존' 위기를 불러왔다. 세계 경제의 심장인 미국은 사상 최악의 정부 재정적자와 고용한파 등 바닥을 모르는 경기침체 상황에 빠져 있다. 이러한 대외적 위기 상황 속에 놓인 한국 경제의 앞날은 어떨까? '위기는 기회다'라는 낙관론과, '대내외 여건 모두 좋지 않다'는 비관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두 전문가의 하반기 경제 전망을 들어본다.

위기는 국가간 결속력을 높인다

80년대 일본처럼 중국·아시아가
소비의 중심지로 더욱 부각되고,
한국은 내수의 역할이 더 커지며
아시아 내 교역이 더 중요해질 것

세계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미국에서 시작된 이중침체에 대한 우려, 그리고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 여기에 유럽 재정위기는 더욱 확산되는 일로에 있다. 세계 경제를 주도해온 선진국 경제에 일제히 빨간불이 들어오면서 미래가 불확실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급박한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주요 국가들은 경제 살리기에 나서고 있다.

현재 세계 경제가 직면한 환경은 큰 틀에서 본다면 불균형 성장이 초래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마치 1980년대 미국과 일본 및 신흥 공업국가들과의 수지 불균형이 초래했던 것과 유사하다. 당시에는 이해당사국들이 플라자 합의와 루브르 협약 등 정책적 합의를 도출함으로써 불균형 해소에 힘을 모은 바 있다. 현재의 상황을 보면 아직은 그때처럼 적극적인 정책적 합의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이제까지는 단지 재정적자에 허덕이는 나라들이 자구책을 마련하기 위해 애쓰는 단계였다고 할 수 있다.

세계 경제에 불안을 초래한 선진국의 대규모 부채 문제는 하루이틀에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기 힘들다. 항상 모든 위기가 그렇듯이 문제는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해 확산되곤 한다. 그리스 문제가 그렇다. 이제 그리스는 다른 나라들의 지원으로도 자생적인 해결을 기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리스 1년만기 국채 금리가 90%를 넘어선 것은 그리스가 빚을 갚을 능력이 없다는 것을 시장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임을 의미한다. 이제 문제는 그리스 그 이상으로 확산되어 버렸다.

그리스가 빚을 못 갚으면 일차적으로 채권자(주로 유럽계 은행)들이 그 손실을 떠안게 된다. 은행들이 가지고 있는 그리스 채권은 약 2000억달러 정도이다. 이 정도 규모라면 자체적인 상각과 해당국 정부의 지원으로 큰 충격 없이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리스 이외에 포르투갈과 아일랜드처럼 이미 구제금융으로 버티고 있는 국가들로 문제가 확산되면 1조달러가 넘는 채권이 부실화된다. 그리스의 악화는 이탈리아 역시 이를 따라갈 것이라는 불안감을 키우기 마련이다. 이탈리아까지 가세하면 3조달러의 은행 채권이 부실자산으로 전락할 수 있다. 누군가의 지원으로 해결할 수 있는 규모를 넘어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유럽 차원에서의 대응도 그리스에 집중하기보다는 이탈리아까지 문제가 확산되지 않도록 진화하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이탈리아가 위험해지면 그다음은 프랑스, 그리고 또 부채가 많은 다른 선진국으로 연쇄적으로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이탈리아는 세계 경제 불황을 막기 위한 최전선이고, 여기에서 문제가 진화되는지가 중요하다.

이미 선진국 부채 문제를 극복할 대안들이 준비되고 있다. 은행에 대한 유동성 공급 확대, 필요시 정부의 우선주 형태의 출자, 시장에서의 국채금리 안정을 위한 국채 매입 프로그램과 같은 정책들이다. 미국이 2008년에 금융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시행했던 정책들이 다시 유럽에서 가동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보다 궁극적인 것은 중국의 움직임이다. 현재 문제가 본질적으로 세계의 불균형에서부터 초래된 것이기 때문에 중국이 나서는 것은 불균형 해소에 가장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중국의 이탈리아 국채 매입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소식에 희망이 생겨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의 위기와 여기에 대응하는 정책이 얼마나 빨리 효과를 낼 수 있을지 단언하기 힘들다.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위기는 주요 국가들 사이에 결속력을 높여 결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생겨날 것이다. 문제가 악화될수록 결속하지 않았을 때 불이익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제 이탈리아 부채 문제는 이탈리아가 아닌 세계 경제의 문제이다. 얼마나 빨리 합의에 도달하는지에 따라 해결의 시점과 비용이 달라질 것이다.

긴 관점에서 보면 아시아처럼 국가부채 문제에서 벗어나 있는 나라들은 부양을 통해 세계 경제 성장을 견인하고, 선진국은 긴축을 통해 건전성을 확보하기에 주력할 것이다. 80년대 일본과 유사하게 중국 및 아시아 지역이 소비의 중심지로 더욱 부각될 것이고, 아시아 통화는 빠르게 절상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 경제 입장에서는 무역보다는 내수의 역할이 더 커지고, 아시아 역내 교역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김승현 토러스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지지부진한 상황 이어질 것

세계 경제의 흐름은 우리 경제에
수출·부채 문제로 부정적 영향…
하반기 경제는 급격한 침체보다
부진한 상황 지속되는 모습 예상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우리나라 경제는 세계 경제와 동조화되는 경향이 더욱 뚜렷해졌다. 소비, 투자 등 내수 경기는 계속 부진한 가운데 수출이 세계 경기 변동에 따라 움직이면서 우리나라 경기 흐름을 주도해왔기 때문이다. 하반기에도 세계 경기의 움직임에 따라 우리 경기의 진로가 결정되는 현상이 이어질 것이다. 이를 고려할 때 최근 미국에서 비롯된 세계 주가폭락 사태는 향후 국내 경제의 향방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최근의 주가 급락은 세계 경제가 빠른 성장을 할 수 있는 동력을 상실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 경제가 2008년 글로벌 금융충격에서 빠르게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정부가 민간부문의 부채를 흡수하여 건전성을 높이고, 또 경기부양을 통해 부족한 수요를 늘려줌으로써 경제의 안전판 구실을 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실제 이러한 기대를 바탕으로 미국 등 선진국의 소비가 회복되고 이에 기반해 세계 교역과 투자가 살아나면서 위기로부터의 빠른 회복이 가능했다. 그러나 유럽 재정위기에 이어 미국마저도 국가부채 문제로 신용등급이 하락하면서 이러한 흐름이 더는 지속되기 어려워졌다.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선진국의 소비자들은 소비하기보다는 저축을 늘릴 것이고 기업들도 투자를 최대한 자제할 것이다. 적자를 줄여야 하는 정부는 지출을 줄이고 세수를 늘림으로써 경기를 오히려 더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결국 하반기부터 세계 경기는 활력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내년까지도 지속될 것이다. 이와 같은 세계 경제의 흐름은 우리 경제에 두 가지 측면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선 그동안 성장을 주도해왔던 수출이 타격을 입을 것이다. 세계 경기, 특히 선진국의 경기 부진 때 가장 크게 줄어드는 소비부문은 가전제품, 자동차 등 내구재이고 또 이를 생산하기 위한 각종 전자부품도 수요가 둔화된다. 우리나라는 수출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을 뿐 아니라 수출상품 구성도 내구재와 정보기술(IT) 부품이 주종을 이루고 있어 세계 경기 둔화에 따른 영향을 크게 받는다. 과거 리먼쇼크 시기에는 원화가 급등하면서 상대적인 수출경쟁력이라도 높아졌지만, 지금은 선진국 통화의 전반적 약세로 이러한 효과를 기대하기도 힘들다. 이미 우리나라 정보기술 부문은 세계적 공급과잉으로 수출가격이 하락하고 있는데, 향후 수요가 둔화되고 원화 절상으로 가격경쟁력이 약화되면서 주력 수출품목으로서의 위상이 흔들리게 될 것이다. 자동차 등을 중심으로 나타났던 일본 대지진의 반사효과도 일본의 조업이 정상화되면서 점차 사라질 전망이다.

다음으로 우리나라도 부채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부채 급증은 선진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금융위기 이후에도 빠른 증가가 지속됐던 가계부채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면서 이를 축소시키려는 정책 당국의 의지가 강하다. 균형재정 기조 달성도 예정보다 1년 앞당길 것으로 계획하는 등 경제 전반적으로 지출을 줄여 부채를 축소시키려는 노력이 커질 전망이다. 장기적으로는 경제의 건전성을 높이는 효과가 예상되지만 당장 수요가 줄어들어 경기에는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물론 경제가 과거 리먼쇼크 시기처럼 단기간 내 급격하게 침체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리먼쇼크 시기에는 민간 금융기관들이 연쇄파산하면서 세계적으로 극심한 신용경색 현상이 발생했지만 지금 문제가 되는 국가, 특히 선진국의 경우에는 충격이 너무 크기 때문에 부도에까지 이르게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물가상승 압력이 낮아질 것이라는 점도 긍정적 측면이다. 현재 물가가 5% 이상의 높은 상승률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이상 강우 등으로 식료품 가격이 급등한 데 따른 것이다. 유가의 오름세가 진정되고 작황 개선으로 농산물 가격도 점차 안정되면서 물가 부담은 조금씩 낮아질 전망이다. 그동안 고물가 부담이 가계가 소비를 늘리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으나 이러한 충격은 점차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볼 때 하반기 국내 경제는 급격한 침체보다는 부진한 상황이 지속되는 모습이 예상된다. 특히 수출이 위축되는 가운데 내수경기도 뚜렷하게 회복되지 못하는 지지부진한 상황이 이어질 것이다. 경제성장률 수치로 비교해 본다면 지난해 6%에서 올해는 4% 정도로 성장률이 낮아질 전망이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아침 햇발] 안철수 현상의 뿌리는 경제민주화 / 정영무

안철수 현상의 실체는 무엇인가, 내년 대선에 과연 출마할 것인가?

명절 이후 높아질 것으로 예고된 경제고통지수가 안철수를 추석 상머리의 화제에 올렸다. 대선 얘기에 본인은 손사래 쳤지만 짐작은 간다. 그는 일을 선택할 때 의미, 열정과 함께 다른 사람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지를 기준 삼고, 현 집권세력이 정치적 확장성을 갖는 데 반대한다고 밝혔다.

안철수 현상에 대해선 해석이 다양하다. 삶의 이력이 말해주듯 신실하고 헌신적인 모습을 많은 이들이 평가한다. 다만 정치권에 폭탄 투하하듯 큰 충격을 준 것은 분명하지만 정치적 실체에 대한 평가는 갈리거나 유보적이다. 반짝 거품이니 정치 쇼라는 가벼운 언사는 논외로 하더라도 인물과 정당, 신념과 현실 사이엔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력정치의 프레임으로 들여다보려는 시도는 한계가 있다. 미국의 티파티처럼 강력한 소셜네트워크가 뒷받침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의 말대로 리더십은 대중이 리더에게 주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성공한 경영자라고 해서, 언행일치의 좋은 덕성을 가졌다고 해서 정치적 지지로 직결되란 법은 없다. 안철수가 시대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것은 그가 누구보다도 경제민주화의 열망을 체화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의사 출신 경영자로서 그는 산업 생태계의 공생과 공멸에 대해 엄정한 진단과 처방을 내리고 있다. 이는 곧 우리 사회의 미래뿐 아니라 개개인의 삶과도 직결되는 절박한 문제다. 거기에 안철수의 융합적 실행력과 확장성에 대한 믿음이 정치적 지지로 이어진 바탕으로 보인다.

안철수는 시장에서 자유경쟁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여긴다. 동시에 공정한 경쟁이 이뤄져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나라는 기득권이 과보호되고 룰이 무시되는게 큰 문제라고 한다. 그는 우리 기업구조를 곧잘 삼성동물원, 엘지동물원, 에스케이동물원에 비유한다. 대기업과 거래하는 중소기업은 불공정 계약을 감수할 수밖에 없고, 결국 몸담았던 동물원에서 죽어나가는 구조라는 것이다. 대기업의 약탈적 행위를 막아 중소기업·벤처기업이 공존하는 생태계를 가꿔야 미래가 있다는 게 그의 핵심 메시지다. 불공정 행위와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해서는 징벌적 배상제도를 도입하자고 한다.

일자리도 사업기회도 빼곡해진 현실에서 안철수의 진단은 그 어떤 정치인이나 학자보다도 호소력이 있다. 대기업의 경쟁력도 중요하지만 정부 정책이 대기업 위주로 흐르면 중견·중소기업이 고사해 대기업 리스크가 되레 짐이 된다. 승자가 독식하고 재기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사회는 활력을 가질 수 없다. 그러한 위기감에 공감하고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정부 위원회 등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했으나 반영되지 않았다. 이것이 그를 정치 영역으로 내몬 요인이다.

기회의 균등, 분배의 균등, 참여의 균등이라는 경제민주화의 세 차원에서 안철수는 첫 번째인 기회의 균등에 방점을 찍고 있다. 분배의 균등과 참여의 균등은 기업경영에서 실천하고 있다. 누구나 구애받지 않고 시장에 참여해 자유롭게 경쟁하는 것은 시장경제의 출발점이자 효율성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그런데 기회의 균등은 분배의 균등이 뒷받침될 때 실질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경제민주화는 복지와 혁신적이고 지속가능한 산업 생태계라는 두 축이 필요조건이다. 우리 경제는 양적 성장 단계는 이미 지났다. 혁신과 효율을 위해서도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다. '747 공약'의 경험에서 나온 상식이다. 안철수가 정치를 할 건가 하는 것보다 그를 통해 확인된 경제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주목해야 할 핵심이다. young@hani.co.kr



[싱크탱크 광장] “이익 내고 살아남으면 사회책임 다하는 것”

스티브 잡스의 애플사는 아이폰·아이패드 같은 혁신적 제품으로 우리의 생활을 바꾸고 소비자의 사랑을 받는 기업이다. 하지만 아이폰을 하청 생산하는 중국 폭스콘 공장의 어린 '농민공'들은 기계와 같은 처우를 견디다 못해 최근 잇따라 자살을 했다. 기업은 이처럼 다양한 이해 관계자와 관계를 맺으며 활동하고 이런저런 사회적인 결과를 만들어낸다. 최근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란 말이 화두가 되고 있다. 시장방임과 국가개입 사이에서 기업가의 선의와 자율로 공공선을 높일 수 있는 제3의 영역을 찾자는 것이다. 실제로 사회책임원리를 홍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업경영에 녹여내, 이윤도 많이 내고 소비자의 사랑을 받는 기업도 많다. 기업은 어떤 사회적 책임을 지고 있고, 사회책임경영의 성과와 한계는 무엇인지 점검해 본다. 다음은 지난 8일 진행된 토론을 몇 개의 주제 영역별로 요약해 재구성한 것이다.

전체 토론내용은 누리집(www.hani.co.kr)에서 동영상으로 볼 수 있다.

사회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강조한 것과 같이 요즘 곳곳에서 기업의 책임, 윤리경영, 상생번영을 얘기한다. 이처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는 이유가 뭐라고 보는가?

사용자도 노력 해야 하지만 노조도 사회책임 생각해야 -조동근

조동근(이하 조) 2008년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고환율, 저금리 등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줬는데 대기업만 혜택을 보고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에게는 도움이 안 됐다는 인식이 퍼졌다. 여기에 (부응해) 정치인들이 손가락질할 대상을 찾다 보니 이런 얘기(사회적 책임)가 나온 것으로 본다.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성찰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좋은데, 정부가 이걸 갖고 개입해서 질서를 잡겠다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이봉현(이하 이) 멀리 봐서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기업 하기 좋은 나라'의 정책기조가 계속됐다. 기업 경영 여건은 좋아졌지만 노동의 유연화로 비정규직이 급증하는 등 상대적으로 억눌린 부문도 많았다. 이렇게 기업을 밀어줬지만, 기업인들이 국민의 기대에 맞게 행동하고 우리 모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느냐에 대한 회의감이 확산됐다. 기업지배구조만 해도 지난 10여년 내내 삼성, 현대자동차 같은 대표적인 재벌그룹 총수들이 편법상속 등으로 줄줄이 기소돼 유죄판결을 받았다. 정치권이 나서는 것도 국민들의 이런 정서를 반영한 것이라고 본다.

사회 대통령의 8·15 연설을 전후해 여러 대기업이 공익재단을 설립하는 등 상당히 큰 액수를 기부했다. 정권이 사회적 책임을 얘기하니까 기부로 화답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이벤트성 기부 바람직 안해 어차피 하고도 욕먹을 것 -권혁철

권혁철(이하 권)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이나 기부가 적지 않지만 국민들이 그걸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어떤 일이 있을 때 이벤트성으로 기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어차피 하고도 욕먹을 것을 왜 하는지 이해도 되지 않는다. 명백한 부정을 저지른 기업인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지 않았는데도 정치권의 이벤트와 맞물려 들어가 정치인이나 시민단체의 압력이 높아질 때, 기업이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기부를 하는 현상들이 계속되는 것이 문제다.

잘못된 관행이다. 타성화돼서 돈을 내도 별로 반가워하거나 고마워하지도 않는 것 같다. 자동차회사가 관련 기술인력을 키우기 위해 돈을 내는 것같이 독자적인 목표를 가진 기부나 사재 출연이라면 뭐라 할 사람이 없겠지만, 정치권이 쳐다 보니까 "알겠습니다" 하는 식이라면 그런 관행은 이제 버려야 한다.

사회 좀더 근본적인 질문을 해 보자. 사람들은 대부분 기업의 주인이든 직원이든 둘 중 하나로 살아간다. 사회적 책임을 말하기 위해 우선 기업이란 무엇이며, 무엇을 하는 곳인가를 생각해 보자.

기업은 사회에 유용한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되, 알려지지 않은 기회를 발견해 이윤을 창출하는 게 목적이다. 여기서 강조할 점은 이윤창출을 위해 만들어진 인위적인 조직이란 것이다. 기업의 이런 특성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 기업이 '이런 역할도 해야 하고, 저런 역할도 해야 한다'는 쪽으로 나아갈 위험이 있다.

의대를 가는 것은 의사가 되기 위한 것일 수 있지만, '의사가 돼서 질병 없는 사회를 만들어 보겠다'는 등 좀더 본질적인 목표가 있는 것이다. 기업이 이익을 내고 존속하는 것만 해도 인정해줘야 하지만 그 너머에 있는 목적, 즉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기업이 어떤 일을 하려는지를 계속 성찰해야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 또 사랑 받는 기업이 될 수 있다.

사회 이윤추구를 넘어 사회책임경영이 강조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것을 두고 사회적 책임이라고 하는가?

상대의 욕구 배려하는 것이 사회전체 부를 확대시킨다 -김주일

김주일(이하 김) 기업이 하는 사회공헌활동까지 갈 것도 없이 기업이 이윤추구란 본령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부적절한 행위를 하지는 않는지, 도덕적 해이는 없는지를 점검하고 견제할 필요성에서 사회책임 요구가 나오는 것 같다. 애덤 스미스는 각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면 (모두의 이익을 높이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된다고 봤지만, 나중에 나온 경제이론은 상대방의 욕구를 배려하면서 행동하는 것이 사회 전체의 부와 가치를 확대시킨다고 본다. 즉, 사회책임경영이란 다른 사람의 이해관계와 요구를 반영해 의사결정을 하는 것을 말한다.

상대를 배려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만 내가 보기에 시장이 이미 그 역할을 하고 있다. 기업은 시장과 소비자가 윤리적 소비, 윤리적 경영을 원하면 그리로 간다. 소비자가 풍력발전이 비싸도 그 전기를 쓰겠다고 하면 기업은 이를 하게 돼 있다. 이를 넘어 환경에 좋은 것은 모두 바꿔야 한다고 강요하거나 제도나 규제를 통해 한꺼번에 바꾸려 하면 문제가 된다.

사회 사회책임의 평가기준으로 지난해 '아이에스오(ISO) 26000'이 만들어졌는데, 그 의미는 무엇인가?

시장의 실패를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 이를 정부개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이해관계자들이 자율적·역동적으로 균형을 맞춰 해결해 가자는 의미에서 나왔다고 본다. 환경, 공정거래, 인권 등 일곱 가지 핵심영역이 있는데, 이를 조직의 가치에 반영하고 흡수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일곱 가지 핵심가치를 내재화하면 기업에 도움이 되고 그런 기업이 시장에서 살아남는다. 하지만 언론에서 대학을 평가하듯 어떤 잣대를 대서 모든 기업을 평가하는 하나의 비즈니스 모델이 되어 버리면 문제가 있다.

학생들 봉사활동을 증명서 떼서 입시에 반영하는 순간 진정한 봉사는 사라진다. 마찬가지로 사회적 책임은 아름다운 가치이지만 법이나 어떤 규제를 통해 몰아가려는 것은 잘못된 방향이다.

책임은 강요할 성질 아니다 기업의 미래전략이어야 -이봉현

ISO 26000이 법은 아니지만 이런 것들이 사회적·국제적 관행이 되면 법 못지않은 강한 힘을 발휘한다. 그렇지만 사회책임은 강요할 성질은 아니며 기업이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고민한 끝에 나온 미래전략이어야 한다. 실제로 이런 가치를 내재화한 기업이 많고 성공한 국내외 기업도 많다.

사회 ISO 26000은 사회책임을 기업의 일로만 제한하지 않았는데 다른 부문의 사회책임에 대해서도 말해 보자.

노동조합이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생각해야 한다. 비정규직-정규직은 사실 노-노의 문제이다. '자체적으로 해결하라. 우리는 빠진다'는 얘기는 아니고, 조직을 통해서 얇은 보호를 받는 사람을 밀어내는 것이 현재 노동조합의 현실이다. 사용자도 노력을 해야 하지만 노조도 깊이 성찰해야 한다.

한겨레경제연구소에서 미디어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보고서를 낸 적이 있다. 언론의 사회책임은 공정성, 불편부당성 등 언론인의 전문직 윤리에 의존해 왔으나, 광고 등 언론기업의 생존논리와 갈수록 많은 충돌이 발생했다. 따라서 언론의 사회책임을 언론기업의 책임으로 범위와 가치를 넓힐 필요가 있다.

사회 생각보다 양쪽의 접점이 많았던 토론이었다. 우리 사회에 좋은 기업이 많아지는 것은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이를 위한 성찰과 개선 노력이 있어야 하겠다. 정리/홍일표 한겨레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iphong@hani.co.kr



봉사활동이나 사재 출연? 사회책임 활동과는 거리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그간 우리 대기업은 이윤의 일부로 봉사활동을 하거나, 사법적 심판을 받을 일이 생겼을 때 총수가 사재를 출연하곤 했다. 그러나 사회공헌이나 사재 출연은 진정한 의미의 사회책임활동과는 거리가 있다. 지난해 11월 사회책임활동 인증을 위한 국제표준으로 출범한 '아이에스오(ISO) 26000'은 "기업과 같은 사회조직들이 투명하고 윤리적인 행동을 하며, 자신의 결정과 활동이 사회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사회책임을 정의한다. 이는 기업이 이윤을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정당해야 한다는 의미이며, 구체적으로는 환경, 인권, 노동, 지배구조, 공정거래, 소비자, 지역사회 등 7가지 영역에서 올바른 경영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기업이 아무리 많은 매출과 이익을 올려도, 그 과정에서 거래 중소기업의 납품단가를 후려치거나, 노동자의 권리를 경시하거나, 영세자영업자의 생계까지 위협한다면 사회적 책임을 제대로 이행했다고 할 수 없다.

기업이 경영에서 좀더 적극적으로 사회적 책임을 고려하도록 하려면 제도와 관습을 사회책임을 충실히 이행하는 기업에 유리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기업이 금융시장에 회계보고서를 내놓듯, 사회책임보고서를 발간해 소비자와 투자자에게 책임경영의 성과를 알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사회책임 너무 강조되면주객전도 일어날수 있어

조동근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이사장

기업의 사회책임이 강조되고 있는데, 기업이 본령에 충실한다면 그 자체로 사회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기업의 본령은 이익을 내고 '계속기업'(going concern)으로 살아남는 것이다. 그래야 월급도 주고 세금도 낼 수 있다. 또 변하는 환경에서 무엇을 만들어 팔까를 고민하는 기업가 정신이 기업의 핵심이다. 이런 것보다 사회책임이 너무 많이 강조되면 주객이 전도되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중요하다면,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요구한 여타 주체의 사회적 책임은 무엇인가'를 물어야 마땅하다. 'ISO 26000'의 원래 취지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넘어야 한다'(beyond CSR)는 것이다. 경제 및 사회 발전을 위해서는 기업, 소비자, 노조, 정부, 시민단체 등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주체 간의 책임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조의 사회책임은 거의 묻는 사람이 없었다. 기업뿐 아니라 노조, 언론, 사법부의 사회책임 역시 물어야 우리가 모든 주체에 대해 균형 잡힌 시각을 갖게 될 것이다.

이런 것들에 유념한다면 기업은 사회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하고, 다소 따가운 시선이 있더라도 이를 수용하면서 '기업시민'이 되는 것이 맞다. 이는 기업이 신뢰라는 자본을 구축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한겨레 프리즘] 언제까지 ‘슈퍼갑’일 텐가 / 김은형

2주 전 루이비통코리아로부터 인천공항 면세점 개장 관련 기자간담회 연락을 받았을 때 담당 기자 대부분의 반응은 "뭐하자는 시추에이션?"이었다. 엄청난 자연재해가 발생하거나 원자력 발전소라도 터지지 않는 이상 달력의 빨간 날에 기자간담회가 열리는 경우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게다가 이날은 1년 중 50번 있는 그냥 빨간 날이 아니라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휴일이었다.

주최 쪽인 루이비통코리아나 루이비통이 입점한 신라면세점의 운영자인 호텔신라는 "10일이 개장일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이럴 경우 간담회는 보통 개장 전날 이뤄진다. 말 많고 탈 많았던 인천공항 면세점( 1월21일치 15면 참조)인지라 언론에 공개를 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프랑스에서 날아오는 루이비통 대표와 본사 스태프들이 한국에서 하루나 이틀 더 시간을 낼 만큼 한가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게 주최 쪽의 말하지 못한 속내였을 게다.

고향 가는 열차표까지 취소하게 만든 루이비통의 일방적인 간담회 일정을 받으면서 "초대받은 게 굴욕" "진정한 슈퍼갑의 태도다" 농반 진반으로 가시돋친 반응이 오갔지만 어느 정도는 수긍이 갔다. 특혜 수준의 낮은 수수료 혜택을 주면서도 '입점만 해주신다면' 하고 두 손 모으는 백화점들이 수두룩하고 아무리 가격을 올려도 사겠다는 소비자들이 줄을 서는데 한국 시장에서 뭐가 아쉬워 조금의 불편을 감수하면서 행사를 준비하겠는가 말이다.

지난 7월 런던 출장을 갔을 때 고급 백화점의 대명사로 꼽히는 해러즈백화점을 잠시 들렀다. 아동복 코너만 해도 베이비 디오르, 베이비 펜디, 베이비 구치 등 명품 브랜드가 빼곡한 이 백화점의 명품 매장을 가 보니 너무 소박해서 놀랄 정도였다. 한국에서는 명품 브랜드 입점의 기본에 속하는 대형 단독매장도 드물뿐더러 '명품 가방'을 일개 '가방'으로 다루는 종업원이나 손님들의 태도도 한국 매장과 달랐다. 누구나 쉽게 들어보거나 만져볼 수 있고 내키지 않으면 전시대에 살짝 던져놓더라도 도드라지지 않는 풍경이었다.

반면 한국은 어떤가. 명품 매장에 들어가 제품 하나 구경할라치면 흰 장갑을 낀 종업원이 신줏단지 모시듯 제품을 '모셔와' 보여주면서 사실상 손님들의 접근을 은근히 차단한다. 그 앞에서 제품에 핀잔이라도 줬다가는 불경죄에 해당할 것만 같다. 해묵은 문제임에도 결코 해결되지 않는 애프터서비스는 또 어떤가. 얼마 전 한 친구는 명품 브랜드에서 산 구두의 밑창이 닳아 해당 매장에 가져갔더니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수선이 되지 않는다는 대답만 들었다. 어이없는 대답에 친구는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느냐고 다시 물었다. 대답은 이랬다고 한다. "그냥 버리세요. 저희 브랜드 신는 분들은 원래 그렇게 하세요."

구두창 좀 갈아달라고 했다가 지지리 궁상맞은 소비자로 찍힌 내 친구는 그 브랜드에 발을 끊었지만 그 브랜드의 한국 매출은 해마다 승승장구하기만 한다. 못 만지게 하고 고쳐주지 않고, 이런 '무시' 전략이 한국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희소성 가치' 전략으로 바뀌어 소비자들을 점점 더 열광시킨다.

명품 소비가 이제 차별화를 넘어서 동조화 시대에 이르렀다고 한다. 남과 다르게 보이고 싶어서 명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도 가지고 있으니까 나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명품 소비의 대중화를 가속한다는 것이다. 명품이 일상화된다는 현상 자체는 우려할 것도 자랑할 것도 못 된다. 다만 명품 소비가 흔해진다면 명품의 권위도 '갑'에서 소비자가 우위인 '을'로 바뀌는 게 정상인데 한국의 명품 브랜드들은 점점 더 '슈퍼갑'이 되간다. 누구를 탓할까. dmsgud@hani.co.kr



박근혜 비장의 카드는 은지원?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연구원장의 돌풍에 밀려 지지율 2위로 주저앉은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추석인 12일 본인의 트위터(@GH_PARK)를 통해 한국방송 2텔레비전의 '1박2일' 고정출연자이자 가수인 조카 은지원씨와 찍은 사진을 공개하며 젊은층과의 소통강화에 나섰다.

박 전 대표는 이날 오후 "조카 지원이와 함께 한 컷…"이라는 글과 함께 친척관계인 은씨와 찍은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

은씨는 고 박정희 전 대통령 누나의 손자로 박 전 대표는 5촌 당고모가 된다. 앞서 지난 10일 박 전 대표는 자신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글을 올려 "지금은 힘들고 어려워도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정이 가득한 명절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해마다 한가위가 되면 마음이 푸근해지고 정겨운 마음이 들곤 한다"며 "사람들마다 보름달을 바라보며 기원하는 소망들이 있다. 각자의 가슴 속에 품고 있는 그 간절한 소망들이 바로 우리 삶의 목표"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트위터에서는 "드디어 박근혜 비장의 카드 꺼내는군요"라며 관심을 보이는 의견도 있으나 대부분 뜨악한 반응이 많았다.

"은지원이 박근혜 친인척이라고 먹고살았는데 이제 박근혜가 은지원 친인척을 광고해야 하는 단계까지 왔나 싶어서 기뻐" "급하긴 급했구나. 안티 좀 생기겠군" "은지원한테 허락받고 올렸을라나. 은지원한테 좋지 않을듯한데"

디지털뉴스팀

"강남아줌마들도 안철수 교수 찍겠다더라"
박원순 변호사, 14일 출마 선언
강호동 아웃 '1박2일' 당분간 5인체제
돈이 주렁주렁 열리는 나무?
나홀로족 '변소밥' 늘어

“강남아줌마들도 안철수 찍겠다더라”

"빨간 불이 들어와서 앰뷸런스가 지나가듯 비상 경고등이 웽웽 울리고 있죠."

 원희룡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13일 안철수 돌풍 이후 10·26 서울시장 보선과 내년 총선ㆍ대선을 맞이해야 하는 한나라당의 처지를 빨간불이 들어온 비상상황으로 묘사했다.

 원 최고위원은 이날 불교방송 라디오 에 출연해 서울시장 보선 전망에 대해 "한나라당 안에서 위기감을 느끼는 온도 차이가 있지만 저는 가장 심각하게 보고 있는 편"이라며 "가장 큰 이유는 국민들이 살기가 너무 팍팍해서 그 심판은 결국 집권여당을 향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안철수 현상에 대해 "정치에 대한 불신, 기성 정당에 대한 환멸, 새로운 인물에 대한 갈망이 겹치면서 안철수 교수의 태풍현상이 있지 않았느냐"고 진단하고 "이런 것을 봤을 때 한나라당으로서는 어려운 선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안철수 현상의 근본적 배경으로 "50%의 지지율이 넘는 인물이 5%의 인물에게 흔쾌히 양보하는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은 감동을 받는 것같다"고 풀이했다.

 "기존의 정치권에서의 기득권, 그리고 어쩌면 달린 식솔이 없으니까 그렇게 흔쾌히 홀가분하게 던질 수 있겠지만 그런 과정을 보면서 국민들은 바이러스 백신 무료배포, 대기업 독식 비판과 분노 등 안철수 교수의 공적 헌신을 했던 모습의 연장선에서 감동을 받는 것 같다. 기존에 자기 계산적인, 자기 이익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계산적으로 쇼한다고 했을텐데 안철수 교수는 매우 정치적인 행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탈정치와 감동의 시각으로 보고 있다. 그만큼 국민들이 제대로 된 인물에 대해 얼마나 갈증이 있었는가에 대해 기성 정치인들이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기성정치의 문법으로 안철수 현상을 보고 있다고 원 최고위원은 한탄했다.

 "안철수 교수가 움직이는 문법은 기성의 정당 정치와 다르다. 계산법도 다르다. 안철수식의 탈정치를 하고 있기 때문에 신상에 문제가 드러나서, 기업경영의 문제가 드러나서 (거품이)꺼질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네티즌들이 한심하다고, 바이러스와 백신을 검증하겠다는 거냐는 비난이 나오는 것 아니냐"

 그는 특히 한나라당 지도부에 대해 "(안철수 현상이) 거품이고,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있겠냐는 흠집내기 식의 대처를 해가고 있는데 이는 태풍이 다가오고 있는데 스스로 눈 감고 귀 막는 상황"이라고 비판하고 "이것은 현실에 대한 역사인식이 너무 없기 때문에 심하게 말하면 자기 시야가 가려져 있는 사람이 단체를 이끌고 위협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무대 위에서 박수를 받고 있는 배우를 볼 게 아니라 어둠 속에서 무대를 향한 열망과 분노와 감동을 봐야한다"면서 "그 에너지는 국민들이 만든 것이지 안철수 개인이 만든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안철수 현상의 구체적인 예를 들면서 "제가 놀랐던 것은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도 안철수가 최고 화제라는 것"이라며 "몇몇 아는 강남 아주머니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안철수가 우리 자녀 교육의 롤모델인데 자녀 교육을 위해서라도 안철수를 찍겠다는 것을 보고 이거 간단치 않구나, 인터넷에서는 태풍이 다 불었는데 한나라당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잘 모른다"고 위기감을 드러냈다.

 그는 안철수 교수의 대권주자 가능성에 대해서도 "나무는 가만이 있으려고 하나 바람이 놔두지 않는다"는 속담을 인용하며 "충분히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그는 "안철수 교수 자신도 국민들이 보여준 열망적인 지지와 자신의 몸무게에 대해 어리둥절해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하고 "앞으로 1년은 충분히 긴 시간이기 때문에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미니시리즈 5부작중 1부작만 본 상태로 아역배우 안철수를 봤다면 3부, 4부에서 어떤 배역을 할지는 두고 볼 일"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박원순 희망제작 상임이사에 대해서도 "진보 보수를 떠나서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정책 콘텐츠를 가지고 있는 준비된 서울시장 후보"라고 상당히 높게 평가했다.

 "참여연대, 아름다운 가게, 희망제작소라는 시민정책 제안운동을 주도하면서 실제로 박원순 변호사의 주도로 국회에서 입법을 맺은 정책들도 많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의 조례, 단체장과 의원들을 배출하기 위한 시장학교, 이런 것들을 직접 주도하고 운용해왔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는 이어 "한나라당에서는 오히려 박원순 변호사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면서 "좌파들과 손을 잡고 일했다는 점에서는 진보인사임에는 틀림없지만 박원순이라는 인물 자체는 실무 위주의 실용적이고 온건한 사람으로 구체적인 정책내용으로 시민에게 다가가는 생활정치를 펼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한나라당 일각에서 나오고 있는 김황식 총리 차출론에 대해서도 "정권심판론을 부추길 것"이라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나경원 최고위원 출마문제에 대해서는 "인기있는 충분히 매력적인 후보"라고 전제하면서도 "오세훈 전 시장이 시장직을 걸고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할 때 '거룩한 성전이다', '오세훈을 계백장군 만들면 안된다'고 가장 강경한 입장에서 싸웠고, 그 입장에 변함이 없기 때문에 한나라당 안에서는 신중론과 회의론이 있다"면서 부정적 생각을 내비쳤다.

 박근혜 전 대표의 서울시장 보선 선거운동 문제에 대해서는 "안철수 태풍은 박근혜 대세론이 붕괴됐다는 위기의 시작"이라며 "그동안의 소극적인 방관적 태도가 아니라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보여줘야 할 슈퍼스타 케이로 보면 자신에게 마이크가 돌아온 것이며 그렇게 보면 새로운 기회"라고 말했다.

 그는 복지문제에 대해서도 복지가 확대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안철수 현상에는 복지확대가 담겨있다. 복지 이전에 공정사회에 대한 실질적인 후속 조처가 나와야 하는 것 아니냐, 대기업 이익이 600조 정도 쌓여 있는데 중소기업이 내수사업, 청년 실업자들에게 이런 것이 돌지 않는다. 이 부분에 시장경제의 1차적인 분배가 공정하게 나와야 한다. 국가에게 받는 복지에 의존할 게 아니라 일자리, 노동을 통해서 공정한 시장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동시에 취약계층에 대해 복지를 확대해야 한다."

 그는 복지 재원 문제에 대해서는 "국민들의 합의, 여기에 따른 보수와 진보의 타협, 어떻게 만들어낼지 현실적으로 가능한 복지정책의 공감대를 찾아서 합의점을 찾아 대화하고 타협하는 진정한 공존의 타협정치가 국민들이 바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도형 선임기자/트위터 @aip209

박원순 “국민은 현재 정당이 아닌 새로운 변화 요구”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준비중인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13일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입당제의에 정중하게 거절의 뜻을 피력하면서도 민주당 후보와의 진보진영 통합에는 적극적인 찬성의 뜻을 나타냈다.

손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 당 대표실에서 박 상임이사와 만나 "우리 민주당은 문이 활짝 열려 있다"며 민주당 입당을 권유했지만 박 상임이사는 "안철수 교수나 저를 통해 드러난 국민의 생각은 현재의 정당 질서가 아닌 새로운 변화를 요구한다"며 완곡히 이를 거절했다.

손 대표는 이날 면담 자리에서 박 상임이사의 출마결심에 대해 "잘 결단했다. 특히 지난번 안철수 원장과 아름다운 양보와 결단을 한 것은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면서 운을 뗀 뒤 "결국은 야권-민주진보 진영의 단일화 과정을 거치면서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끄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입당이야기를 꺼냈다.

손 대표는 이번 선거가 야권통합의 출발점이고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우리는 통합된 단일 후보를 내서 승리하는 것이 목표인 만큼 민주당에서도 경선을 통해서 좋은 후보를 낼 것이고 그것이 전체적으로 이기는 단일후보를 만드는 데 좋은 계기가 되고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 상임이사는 "저는 이명박 정부의 실정이나 새로운 정부를 바라는 국민의 요구가 너무나 깊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래서 당연히 민주당을 포함한 야권의 시민사회와의 통합후보로 생각했기 때문에 당연히 그길로 갈 것"이라고 민주당 후보와 통합에 적극적인 찬성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이어 "민주당도 새로운 차원의 통합을 내세우고 있으니 그런 것들이 조금 더 물살을 타고 그래서 혁신과 통합이 이뤄지고 그런 과정에도 저도 역할을 하고 그 일원이 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디지털뉴스팀

"강남아줌마들도 안철수 교수 찍겠다더라"
박원순 변호사, 14일 출마 선언
강호동 아웃 '1박2일' 당분간 5인체제
돈이 주렁주렁 열리는 나무?
나홀로족 '변소밥' 늘어

한명숙 '서울시장 불출마' 선언

민주당의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였던 한명숙 전 총리가 서울시장 불출마를 선언했다. 민주당의 서울시장 후보 구도가 출렁일 전망이다.

 백원우 민주당 의원은 13일 국회 정론관에서 "한명숙 전 총리가 서울시장에 출마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백 의원은 한 전 총리의 대리인 자격으로 이런 뜻을 전했다. 한 전 총리는 백 의원을 통해 전한 메시지에서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권의 변화와 정권교체"라며 "저는 앞으로 민주당의 혁신, 야권과 시민사회 통합을 통한 총선 승리와 정권 교체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 전 총리는 그간 서울시장에 나갈 지 여부를 오랜 시간 고심해 왔으나, 민주당 안팎에서는 추석 연휴 직후 출마 선언을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한 전 총리의 불출마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경선 구도는 새로운 상황을 맞게 됐다. 후보들은 14~15일 이틀간 진행되는 서울시장 경선 예비후보 등록 기간에 등록을 마쳐야 한다. 민주당에서는 한때 10명이 넘는 후보들이 자천타천으로 거론됐으나,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의사를 밝힌 것은 천정배 최고위원 1명 뿐이다. 유력한 주자로 거론됐던 박영선 정책위의장과 원혜영 의원은 한명숙 전 총리의 출마설이 확정적으로 나오던 지난 11일 '한 전 총리를 돕겠다'는 쪽으로 태도를 정한 바 있다.  

 한편, 서울시장 출마를 준비중인 박원순 변호사는 이날 오전 11시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국회 민주당 대표실에서 만난다. 손 대표는 이 자리에서 박 변호사의 민주당 입당을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전 총리가 불출마를 선언한 상황에서 두 사람의 만남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 지 주목된다. 손학규 대표쪽 관계자는 "이날 만남은 박원순 변호사의 요청으로 이뤄진 것"이라며 "우리로서는 민주당 입당을 강하게 요청할 수 밖에 없게 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빌 게이츠가 만든 생각 주간

"your_rights: 빌 게이츠는 지난 15년 동안 외부와의 접촉을 일절 두절한 채 은둔 생활을 즐기기 위해 1년에 두 차례씩 해변에 있는 별장으로 혼자 훌쩍 떠나곤 했다. 게이츠가 만든 '생각 주간' (리처드 왓슨, <퓨처 마인드>)"
--http://twitter.com/your_rights/status/113476769440477184

로버트 달

"지난 19세기에는 부의 복음이라는 논리가, 20세기에는 '적하 효과' 이론과 같은 논리가 미국에서 경제적 불평등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옹호해 왔다." Robert A. Dahl 저, 배관표 역 <경제 민주주의에 관하여> 후마니타스, 2011 p. 113"

2011-09-11

곽노현 교육감 영장심사 최후진술 전문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 9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 밝힌 최후진술 전문을 서울시교육청이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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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입장을 간략하게나마 밝힐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사실과 달리 진실은 인격적이고 규범적인 것입니다.

뒤늦은 충격고백그래서 진실은 고해의 대상이지 공방의 대상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진실을 말하는 건 때로는 불편하고 위태롭고 두렵기조차 합니다.

정황에 따라서는 너무나 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상 살면서 이런 일 저런 일 겪다보니 결국은 때로는 불편하더라도 진실이 오래간다는 걸, 결국은 승리한다는 걸 배웠습니다.

진실에 대한 고해성사만이 나를 살리고 사회를 살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하여 사건이 불거진 이후 지금까지 기자회견을 통해, 그리고 검찰조사를 통해 실체적 진실을 숨김없이 말하기로 마음먹고 실천했습니다.

설령 여론의 법정에서 잠시 동안 오해와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국가의 법정에서 법적으로 자기부죄의 위험성이 있을지언정 진실에만 충성하고자 했습니다.

개인의 방어권을 아랑곳하지 않고, 법정공방의 기법에 연연하지 않고, 공인으로서 설명 책임을 다하고자 했습니다.

1억3천까지 나온 상황에서 2억원을 건넸다고 더 큰 액수를 시인한 게 좋은 예입니다.

저는 중범죄의 피의자로서는 이례적으로 검찰조사에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임했습니다.

거침없이 제 입장을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재판과정에서 검찰의 녹취록이나 영상녹화CD를 보시면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검찰의 수사목표와 질문의도를 잘 알고 있지만, 오해를 혹시 심화시킬 수 있는 상황에서도 진실의 정화력을 믿고 모든 사실을 말했습니다. 잡아떼거나 왜곡하지 않았습니다.

몇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나는 후보직을 매수하려 한 적이 없습니다.

동서지간인 실무자들 사이의 약속 같지 않은 구두약속에 대해서는 10월말까지 전혀 몰랐습니다.

제가 위임한 적도, 보고 받은 적도, 승인한 적도 없는 동서지간의 독단적인 충정에 입각한 해프닝이었습니다.

권원 없는 사람들의 비진의 의사표시의 편의적 결합이었습니다.

자체 조사과정을 통해 인지하고 나서는 법적 도덕적 의무가 없음을 명백히 하고추인한 적이 없습니다.

둘째, 해프닝 때문에 박명기 교수한테 저에 대한 오해와 불신, 원망이 쌓였고, 이것 때문에 저도 불쾌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당연히 정책연대의 파트너로서 친밀한 협력관계로 나아가야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사이가 멀어지고 벌어지기만 했습니다.

해프닝과 그로 말미암은 오해의 벽 때문입니다.

만약 이런 오해할만한 해프닝이 없었더라면, 즉, 정말로 조건 없는 단일화가 성사되었다면, 그리하여 박 교수와 제가 형님 아우로서, 교육개혁의 든든한 동반자로 원만한 관계가 설정되었더라면 보다 일찍 공개적인 방식으로 박 교수에게 긴급부조를 행해서 급한 불을 꺼줬을 겁니다.

교육개혁의 동지이자 동반자가 길거리에 나앉는 걸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는 아닐 겁니다.

무릇 긴급부조는 친밀한 사이에서 최후의 수단으로 최소한 행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저는 강경선 교수의 지혜로운 노력으로 박 교수의 오해와 원망이 풀리고 화해와일치가 찾아왔을 때, 다시 말해서 박 교수의 자세가 해프닝에 기초한 권리모드에서 형제애에 기초한 구제모드로 바뀌었을 때 비로소 이 원칙이 충족되었다고 판단하였고, 그러면서 긴급부조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11월 하순께입니다. 첫눈이 탐스럽게 내리던 11월28일자 따뜻했던 저녁회동은 형제애의 확인 자리였다고 보시면 됩니다.

아무리 선의라 할지라도 드러나면 요즘의 사태전개에서 드러나듯이, 사회적으로큰 물의가 빚어지고 교육감 직에 누를 끼칠 일이기에 평생 처음, 조심스런 마음으로남 몰래 현금으로 진행한 일이었습니다.

금액에 대해서도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불법의 관점에서 보면 2억은 몹시 큰돈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빚더미에 내몰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을 살린다는 선의의 관점에서 보면 적을 수도 있는 금액입니다.

하지만 마음은 떳떳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늘 마음 한켠에서 미안한 마음을 가졌던 박명기 교수를 극도의 곤궁에서 벗어나게 해 살리는 일이었고, 제 40년 친구의 잘못된 판단에도 불구하고 우정을 살리는 길이었으며, 단일화를 바랐던 민주진보진영의 도덕성을 살리는 길이었습니다.

교육감직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서 몹시 힘들지만 홀로 짊어질 수밖에 없었던 저의 멍에, 저의 십자가였습니다.

아무리 제가 저 자신의 무죄를 확신해도 제 일로 사회적 물의가 빚어지고 제 사건을 놓고 사회적 이견과 갈등이 심합니다.

교육행정 및 교육정책 혁신동력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사회적 비용이 몹시 큽니다.

만약 이번 사건에서 사회적 비용을 능가하는 사회적 가치와 교훈이 도출되지 않는다면 저는 사회적 죄인에 다름 아닙니다.

나는 이런 인식 아래 사법절차에 임하면서 사자굴에 들어가는 심정으로 높은 정직과 진실에의 충성의무를 실천하고자 했습니다.

경위야 어떻든 많은 분들에게 걱정을 끼쳐드려 송구스러운 마음입니다.

수도 서울의 교육수장으로서 좀 더 슬기로운 방법은 없었는지 되묻기도 합니다.

제가 이 시점에서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제게 부여된 교육혁신의 소임을 수행하는 데 차질이 빚어지지 않는 것뿐입니다.

판사님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합니다.

[이사람] “조선학교 차별은 일본 헌법 위배”

2010년 3월18일 일본 교토조선중고등학교로 올라가는 작은 언덕길을 올라가는 한 일본 중년여성이 있었다.

 시의 '아쿠다가와상'이라고 불리는 '에이치(H)씨상'(2003년)을 수상하는 등 수많은 상을 휩쓴 일본의 대표적인 시인중 한명인 가와즈 기요에(50)였다.

 일주일 전 일본 정부가 조선학교에 대해서는 고교무상화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방침이 언론에 보도된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가와쓰는 "세상의 터무니없음에 분노를 느끼면서" 학교길 언덕을 올라갔다. 그 다음날 조선학교의 풍경과 아이들의 모습을 눈과 마음에 담은 그는 한편의 시를 썼다. .

 "또한명의 당신은/생각치도 못하게 손바닥을 내밀어/꽃잎을 받아 아직 보이지 않는 당신을 만나려고/까치발로 선다"로 끝나는 이 시에는 어머니, 동무, 우리말, 우리학교, 선생님, 아버지, 오빠 등 우리말이 한국어 발음그대로 일본어 시어로 수록돼 있다.

 시를 읽어보면 "언론을 중심으로 한 (조선학교에 대한)거짓에 가득찬 세상에 대항해 그들의 진실을 시로서 증언하려고 했다"는 그의 마음이 한폭의 수채화처럼 전달되는듯하다.

 가와즈는 일본 정부의 조선학교무상화 배제 방침이 정해진 2010년 이후 자이니치로 불리는 재일동포 문인과 일본 문인들과 함께 반대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조선학교 무상화반대 앤솔로지(선집)'을 출판하고 그 뒤에 도쿄, 교토, 히로시마, 나라, 도호쿠 지방 등지에서 낭독회를 열기도 했다. 또한 문부과학성과 오사카부를 방문해서 무상화배제 반대문건을 전달했다.

 2002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일본인 납치 인정 이후 일본에서는 반북여론이 워낙 강해 무상화 배제 반대운동을 펼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일본의 유명시인이 여론의 역풍을 온몸에 맞서 싸우는 까닭은 무엇인가? 경남 창원 김달진 문학제(3~4일)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가와쓰는 5일 와 만나 "무상화 배제는 차별일뿐아니라 교육의 자유와 평등성을 담은 일본헌법에도 위배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조선학교의 실제 교육내용을 보면 우익들의 주장은 터무니없다고 강조했다.

 "조선학교는 스파이를 양성한다거나 사람을 쇄뇌시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조선학교를 가보니까 사회교과서는 다소 일본에 심하게 반발하는 내용도 있고, 납치문제는 쓰여져 있지 않지만 전체의 교육내용은 역시 민족교육, 잃어버린 조선어를 되찾고 지키려는 것이었다. "

 그는 조선학교를 없애고 일본학교에 다니게 하면 되지 않겠냐는 일본 우익들의 주장에 대해서도 "일본학교에 다니는 자이니치(재일동포)조차도 한국이름을 밝힐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조선학교에서 왔다고 하면 어린이가 어떤 이지메(집단괴롭힘)을 당할지 상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일본학생들이 조선학교에 더 많이 다녀서 교류의 장을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재일동포 문제에 눈을 뜨게 된 것은 5년전 윤동주 시와의 만남이 큰 계기가 됐다. 재일동포 시인인 김시종씨가 번역한 윤동주의 시를 읽고 "애절하면서도 아름다운 그의 시어에 가슴에 바늘이 찔린 것 같았다"고 한다. 그 이후 윤동주 시 낭송 모임에 참가한 그는 2009년 윤동주를 테마로 한 짧은 시 '프로메테우스-윤동주에'를 에 발표했다. 그 시를 재일동포 문학가가 신문에 소개하면서 재일동포들과의 교류가 더욱 깊어졌다고 한다. "그전까지는 자이니치 문제에 대해 전혀 몰랐는데 그들의 성장과정과 마음을 알게 되면서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고 할까. 그들의 새로운 발상이라든지 일본에 관한 견해가 새롭게 다가왔다."

 개인적으로 2004년 유방암 수술을 받은 그에게 윤동주 시는 큰 마음의 위안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수술 뒤 때때로 마음의 불안이 일곤했는데 그의 시를 필사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되찾곤 했다."

 고1년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한 그는 마음의 흔들림이나 고독감, 시에의 미의식 같은 것을 테마로 한 초현실주의풍의 시를 썼으나 '자이니치'와의 만남은 타인과 자신과의 관계로 테마가 옮겨가는 하나의 계기가 됐다고 한다.

 체르노빌 사고를 넘어서는 참사로 부각되고 있는 후쿠시마 원전사고도 그에게 시작의 큰 테마로 다가오고 있다.

 "대지진 재난현장을 직접 방문해 그에 관한 시를 썼으나 원전에 대해서는 아직 쓰지 못하고 있다. 일본이나 문명, 문화 등에 대해 전체적으로 다시바라보기를 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힘을 비축하고 있다. 단순히 반대가 아니라 임팩트있는 시를 쓰고 싶다."

글 김도형 선임기자 aip209@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웬디 셔먼 “당근과 채찍 두 갈래 대북정책 계속”

웬디 셔먼(사진)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 후보자는 7일(현지시각) 대북정책과 관련해 '협상'과 '제재'라는 두 갈래 접근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대북정책조정관을 지내며 대북 협상을 주도했던 셔먼 후보자는 이날 워싱턴에서 열린 상원 외교위 인준 청문회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6자회담의 지속과 함께 두 갈래(협상과 제재) 접근을 계속해왔다"고 말했다. 이는 대북정책조정관 시절, 자신의 대북정책이 지나치게 유화적이었던 게 아니냐는 공화당 의원들의 비판을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실제로 셔먼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전반적으로 조심스런 모습을 보였다. 그는 "북한이 되돌릴 수 없는 방향으로 핵무기 및 장거리 미사일 프로그램을 없애고, 주민들의 인권을 개선하고, 국제사회와 관계를 정상화하는 길을 걸을 것인지, 아니면 파탄 국가로서 고립의 길을 걸으며 국제사회의 분노를 살 것인지는 북한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또 북한이 2005년 9·19 공동성명 및 비핵화 약속을 먼저 이행해야 한다며 "북한이 이러한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행동으로 보인다면 대화는 다소간 의미를 지닐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빌 클린턴 행정부 때보다 북한에 좀더 강경한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머리발언에서도 그는 "외교정책을 구사할 때는 모든 수단을 다 활용해야 한다"며 "이는 설득의 기술에서부터 강력한 군사력을 포괄하며 당근과 채찍의 범주를 넘나든다"고 말했다.

셔먼 후보자는 대북 업무에 오래 종사해온 소회를 솔직하게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북한과 상대하는 것은 매우 좌절감을 느끼는 일이며, 엄청나게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북한은 파악하기 힘들고 약속을 지키지 않으며 곧잘 호전적 행동을 하고 주민들을 억압하는 정권"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해법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렵고 막대한 인내를 필요로 하며, 좋은 해법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셔먼 후보자는 "당시 (북한과) 의미있는 대화를 시작했고 다소간의 작은 성과를 얻기도 했지만, 그것도 허사가 돼 버렸다"며 이후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6자회담이 개시되면서 한·미·일 3각 공조 강화를 기반으로 한 대북제재가 추진되는 과정을 언급했다.

워싱턴/권태호 특파원 ho@hani.co.kr

‘그날’ 이후…식지 않는 음모론 그리고 진실

2001년 9월11일 아침, 미국 뉴욕의 가을 하늘은 청명했다.

시민들이 출근길에 있거나 커피잔을 기울일 시간인 오전 8시46분, 아메리칸항공 소속 보잉 767 여객기가 초고층 쌍둥이 빌딩인 세계무역센터의 북쪽 타워로 돌진했다. 9시3분에는 유나이티드항공 소속의 또다른 보잉 767기가 남쪽 타워마저 들이박았다. 9·11 동시테러의 시작이었다.

9시37분에는 워싱턴의 국방부 청사(펜타곤)에 민항기가 떨어졌고, 10시3분에는 또다른 민항기가 워싱턴으로 향하던 도중 추락했다. 1시간 17분에 걸친 4건의 연쇄테러로 모두 2996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중 41%는 아직도 주검이 발견되지 않았거나 주검의 신원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전세계는 경악했다. 기나긴 '테러와의 전쟁'도 막이 올랐다. 미국은 그해 10월 알카에다 박멸을 이유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데 이어, 2003년에는 이라크를 침공했다.

두 전쟁으로 미군을 포함한 다국적군 사망자만 9월 현재 7494명에 이른다. 민간인 희생자는 이라크에서만 10만여명, 아프간에서도 집계가 시작된 2006년 이후로만 1만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 미 의회조사국은 미국이 10년간 쓴 전쟁 비용이 1조2833억달러(1378조원)라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 시사주간 는 최근 미국 군부와 정보기관, 보안 관련 당국이 쏟아부은 비용을 모두 합치면 3조2280억달러(3466조원)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9·11테러의 또다른 희생자는 '진실'이다. 테러를 둘러싼 여러 의혹과 테러가 '미국의 자작극'이라는 음모론은 1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이 속수무책으로 소수의 테러리스트들에게 본토를 공격당하고 막대한 피해를 입은 사실 자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충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아랍세계뿐 아니라 상당수 미국인조차 백악관의 공식 발표와 이를 뒷받침할 증거들을 믿지 않을 만큼 역대 미국 정부에 대한 불신이 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의혹과 이에 대한 해명을 간추린다.

■ 미 공군기들이 피랍 여객기들을 요격 또는 제지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

= 미 공군은 뜻밖의 항공기 동시테러에 대응할 준비가 돼있지 않은데다, 북미방공사령부(NORAD)가 항공관제당국과 충분한 정보를 교환하지 못했다.

■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은 원격조종장치로 폭파됐다.

= 항공기 충돌의 충격과 대량의 항공유 연소에 따른 고열로 건물을 지탱하는 뼈대가 약해진 상태에서, 무너진 상층부의 하중을 아래층이 견디지 못하고 통째로 주저앉았다.

■ 펜타곤은 아메리카항공 77편의 충돌이 아닌 미국의 미사일에 피격됐다.

= 미국민간엔지니어협회(ASCE)의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국방부 건물의 5면 중 한쪽 면에만 작은 구멍이 뚫리는 가벼운 피해를 입었는데, 이는 피랍 항공기가 건물을 타격하기에 앞서 양쪽 날개가 각각 지상과 펜타곤 청사의 내력기둥(load bearing column)에 부딪쳐 부러지면서 충격이 줄었기 때문이다. 현장의 파손 부위와 비행기의 날개 길이도 일치한다.

■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에 충돌한 비행기 중 하나는 미국 군용기다.

= 쌍둥이빌딩 중 남쪽 빌딩에 충돌한 비행기를 촬영한 화면에는 민항기와 달리 동체에 창문이 보이지 않는다는 주장에 따른 것인데, 사진의 해상도가 낮은데다 미국 연방재난관리청(FEMA)이 현장에서 유나이티드항공 175편의 동체 조각을 회수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그라운드 제로’ 신축공사 한창

9·11 테러 10주년을 앞둔 요즘, 무너진 옛 세계무역센터(WTC) 자리인 '그라운드 제로'는 마치 유명 관광지처럼 북적인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뉴요커들은 그라운드 제로를 굳이 찾지 않았고, 호기심에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도 카메라를 꺼내들기 조심스러워하던 것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이젠 신축건물이 올라가는 그라운드 제로를 배경으로 미소를 띄고 가족사진을 찍는 풍경이 흔해졌다. 신축공사가 한창인 그라운드 제로와 미 연방우체국 건물 사이의 좁다란 인도는 인파로 가득 찼다.

폐허로 변했던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선 건물의 층수는 계속 올라가고 있다. 쌍둥이 무역센터 빌딩 부지에는 모두 6개의 건물과 추모공원, 공연장, 전시장 등이 들어선다. 현재 완성된 건물은 2006년 완공돼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입주해 있는 '7(세븐) 월드트레이드센터' 뿐이다. 여섯번째 빌딩이지만, 미국인들이 악마의 숫자로 여기는 '6' 대신 행운의 숫자인 '7'을 붙였다. 1~5번 센터는 2012년 말 완공될 104층 높이의 '1(원) 월드트레이드센터'를 시작으로 2015년까지 하나씩 완공된다. 원 월드트레이드센터는 78층까지 올라갔다. 이 건물은 미국이 독립한 해인 1776년을 상징해 높이를 1776피트(541m)로 맞췄다. 원 월드트레이드센터 벽면에는 성조기와 함께 "절대 잊지 말라"고 쓴 현수막이 걸려있다.

쌍둥이 빌딩이 있던 자리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인공폭포 두 개가 들어선다. 물이 벽면을 따라 비스듬하게 추모 연못으로 떨어지고, 연못 벽 위에 2983명의 희생자 이름이 새겨진 동판이 붙여진다. 알파벳순이 아닌, 희생자 중 친한 사람들을 가까운 곳에 모아놓은 배열이다. 두 개의 연못을 중심으로 기념관 및 박물관이 들어서 전체적으로 추모 공원이 조성된다. 추모공원은 9·11 테러 10주년 기념식에 맞춰 개장된다.

그라운드 제로가 있는 로어 맨해튼은 그동안 9·11 테러와 금융위기로 인근 월스트리트까지 침체에 빠져 오랫동안 침울한 분위기에 빠져 있었으나, 최근 다시 활기를 띄는 분위기다. 뉴요커들은 새 월드트레이드센터가 '테러의 상징'이 아닌, '뉴욕의 부활'을 알리는 건물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뉴욕/권태호 특파원 ho@hani.co.kr

힘과 돈으로 지탱하던 ‘유일 슈퍼파워’ 무너졌다

2001년 9·11 테러의 표적은 미국 경제·군사 패권의 상징인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의 국방부 청사 펜타곤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와서 보면 9·11 테러는 미국 패권의 상징만을 '상징적으로' 무너뜨린 것만이 아니라 패권 자체를 무너뜨리는 신호탄이었다.

9·11 직전 미국은 1970~80년대의 재정적자를 털고 재정흑자를 내고 있었고, 경제 역시 '닷컴버블'의 붕괴에도 불구하고 정보통신 분야의 신기술과 금융력을 바탕으로 신경제를 이끌고 있었다. 소련 붕괴 이후 압도적 군사력까지 더해 미국은 '단일 슈퍼파워 시대'를 구가하고 있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미국은 한해 재정적자 1조5800억달러에, 국내총생산보다 많은 15조5000억달러의 국가 총부채에 허덕이며, 신용평가사로부터 최우량 신용등급에서 강등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경제는 2008년 금융위기에서 아직 허우적거리며, 실업률은 9~10%로 고공행진하고 있다.

미국은 동쪽의 아프가니스탄에서부터 서쪽의 리비아까지 펼쳐진 전장에서 군사력을 과도하게 전개하며 천문학적인 군사비를 탕진하고 있다. 9·11에 대한 응징으로 미국이 기획한 이라크와 아프간 침공 비용과 대테러 비용은 인플레를 고려하면 베트남전 전비의 갑절인 3조달러 이상이 된다. 베트남전이 60~70년대 미국의 국력을 소진해 전후 현대 경제체제였던 브레턴우즈 체제 붕괴의 원인이 됐던 것을 고려하면, 미국은 9·11 이후 그 두 배의 후폭풍을 맞고 있는 셈이다.

2003년 5월1일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은 태평양을 항해하던 에이브러햄 링컨 항모에 전투기를 타고 착륙해 이라크전 종전을 선언하는 이벤트를 벌였다. 9·11 테러에 대한 보복 군사작전의 종료를 선언한 이벤트였지만, 9·11의 후폭풍은 사실 그때부터 시작됐다.

바그다드 함락과 함께 사담 후세인 정권은 타도됐지만, 시아·수니·쿠르드로 나뉜 이라크 내전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아프간전은 파키스탄으로까지 번져 아프팍(아프간-파키스탄)전으로 확전되는 등 미 군사력은 이슬람권 전역으로 펼쳐지면서 수렁에 빠져들었다.

경제 분야에서 9·11의 저주 또한 이미 잉태하고 있었다. 그해 3분기 미국 경제는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7%에 가까웠고 미국 경제는 다시 활황을 구가했다. 하지만 이는 9·11로 인한 경기침체를 막으려는 미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인위적 개입에 의한 '거품'이었음이 5년 뒤 드러난다.

연준은 2000년 닷컴버블 붕괴로 인한 경기침체를 막으려고 수차례 금리인하를 단행해 6% 이자율을 2% 초반대까지 낮춰온 상태였다. 9·11 직전에는 금리를 정상화할 시점이었지만 9·11이 터지자 오히려 이자율을 2.0%로 낮췄고 2004년 중반에는 사실상 제로금리인 1.0%로 접근시킨다. 미국인들은 싼 돈을 빌려 흥청망청하며 주택 거품을 키웠고, 이는 2008년 금융위기의 폭탄이 됐다.

9·11 이후 미국의 '파티'는 중국의 싼 수출품과 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중국은 저임노동력으로 만든 제품들을 미국에 수출해 돈을 벌고, 이 돈으로 미국 국채를 매입해 미국의 수지를 메워줬다.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구매력은 1980년 8%에서 지난해 24%로 늘었고, 증시 비중은 31%로 유럽의 25%를 추월해 미국의 32% 바로 밑으로 추격했다. 2008년 금융위기 수습의 역할도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 대규모 경기부양을 통해 맡았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지도력은 급전직하했다. 우격다짐식 이라크전 개전 등 일방주의적 외교정책으로 인한 나토 동맹국들과의 불화와 도덕성 추락, 미국 거대은행의 도덕적 해이로 빚어진 금융위기 등은 미국을 세계 위기의 공적으로 만들었다.

물론 테러와의 전쟁 10년 만에 9·11 기획자 오사마 빈라덴은 사살됐고, 알카에다도 위축됐다. 미국이 애초 이라크전 개전 때 지향했던 '중동민주화 변형'도 올해 초부터 촉발된 아랍의 봄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아랍의 봄이 중동에서 미국의 입지를 넓힌다는 보장은 없는 상태에서 미국은 '상처뿐인 영광', 아니 '상처뿐인 위기'만 거머쥐고 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저 방금 해고됐어요” 캐럴 바츠 ‘퇴진 일성’ 야후 침몰 징후?

"저 방금 해고됐어요."(I've just been fired.)

지난 6일 야후의 최고 경영자에서 물러난 캐럴 바츠(사진)가 1만3400명의 야후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쓴 이 문장 하나가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가 7일 보도했다.

보통 미국의 최고의 경영자들은 회사를 떠날 때 '새로운 모험' 또는 '오랫 동안 소홀했던 가족들과의 더 많은 시간'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러나 바츠는 자신이 '잘렸다'며 진실을 말했다. 조직 행동 전문가인 제프리 페퍼 스탠포드대학 교수는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진실은 사람이 발전하는 것을 돕는데, 일자리를 잃은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것을 통해 배울 가능성도 잃게 된다"며 "바츠는 당황하지 않았고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론도 있다.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교수인 제니퍼 챗먼은 바츠의 화난 표현이 위기에 빠진 야후를 침몰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챗먼 교수는 "여성 경영자들에게 감정 통제 능력이 없다는 낙인을 쉽게 찍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버클리대 호마 바라미 교수는 "이런 솔직한 태도가 하나의 트렌드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편 바츠의 해고 뒤 미국의 정보기술 업계에서는 내리막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야후가 인터넷 서비스 회사 에이오엘(AOL)이나 미디어그룹 뉴스코프, 마이크로소프트(MS) 등에 의해 인수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카다피 “리비아 안 떠난다”

리비아의 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아직 리비아 안의 어딘가에 은신하고 있다는 정황이 잇따르고 있다.

카다피는 8일 시리아의 텔레비전 방송으로 내보낸 육성 메시지에서 "내가 니제르로 피신했다는 최근 보도는 적들의 심리전이자 거짓말"이라며 "나는 결코 조상의 땅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건재를 과시했다. 앞서 5일 250여대의 카다피군 장갑차 행렬이 리비아의 남서쪽 인접국인 니제르 국경을 넘었는데, 서방의 일부 외신과 소식통들은 카다피가 이 행렬에 포함돼 있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카다피는 "그들은 우리의 사기를 꺾으려 하지만, 우리는 트리폴리와 리비아 도처에서 쥐떼(반군)와 용병(나토군)들에 대한 공격을 강화할 준비가 돼있다"고 큰소리를 쳤다.

방송은 이라크의 전 수니파 의원으로 시리아에 망명중인 미샨 주부리가 운영하는 매체다. 카다피는 지난 1일에도 이 방송을 통한 음성 메시지에서 "절대 항복하지 않겠다"며 추종세력들에게 게릴라 항전을 촉구한 바 있다.

현재 카다피와 연락이 닿는 거의 유일한 외부인물로 알려진 주부리는 8일 (AFP) 통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카다피는 현재 리비아에 있다"며 "그는 두려워하지 않으며, 정복자들에 맞서 싸우다 기꺼이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리비아 과도국가평의회와 나토는 리비아의 인접국들에게 카다피 세력에 대한 국경 폐쇄를 촉구하고 있다. 진 크레츠 주리비아 미국 대사는 7일 "카다피의 가족이 리비아 안팎에서 자유롭게 지내도록 놔두는 것은 리비아의 새 정부에 위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인접국 니제르의 모하메드 바줌 외무장관은 이날 영국 (BBC) 방송에 "우리는 너무나 넓은 국경 지대를 봉쇄할 방법이 없다"며 리비아 반군과 서방의 '협조' 요청을 사실상 거부했다. 바줌 외무장관은 또 "니제르로 넘어오는 카다피 추종자들은 '인도주의' 차원에서 니제르에 자유롭게 머물거나 이동할 수 있다"고 말해, 카다피 쪽에 망명처나 경유지를 제공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러시아, 동북아 ‘G2 양강체제’ 견제 나서나

동아시아 지역에서 러시아의 군사적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그동안 서유럽과의 군사적 대결 해소와 협력에 치중하고, 동아시아 지역에선 중국의 최대 지분을 인정해주던 것과는 달리 '동방 진출' 전략을 가시화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은 8일 러시아가 최신형 핵잠수함인 '유리 돌고루키'를 올해 안에 태평양함대에 배치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가 지난 6일 집권 여당인 통합러시아당의 집회에서 "(유리 돌고루키의) 시운전이 원활히 이뤄지고 있어 연말까지는 태평양함대에 인도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유리 돌고루키는 러시아가 1990년대 들어 개발을 시작해 소련 해체 이후 처음으로 건조된 전략 핵잠수함으로, 노후한 델타 3, 4급 핵잠수함을 대체하고자 만든 '보레이'(북풍)급이다. 톤수나 전장 등이 미국의 주력 핵잠수함인 오하이오급과 맞먹으며, 향후 태평양함대에 추가로 3척이 더 배치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가압수형 원자로 2기로 기동되는 이 잠수함은 발사 뒤에도 수심과 방향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고, 사실상 전세계를 공격권에 둘 수 있는 사정거리 8000~1만㎞급인 탄도미사일 '불라바'(철퇴)를 탑재할 수 있다. 태평양을 군사적으로 독점했던 미국이나, 아시아에서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하는 중국으로선 상당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도 러시아가 최신 핵잠수함을 태평양에 배치하는 것은 "노후 잠수함을 교체해 미국에 대한 핵 억지력을 유지·향상시키는 한편, 중국의 군사력 확대에 대항하는 포석이란 시각도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가 태평양 쪽에 최신형 전략 핵잠수함을 배치한 것은, 그간 군사·외교적으로 유럽 안정화 정책에 치중했던 것에서 벗어나 동아시아에서 발빠른 행보를 보이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는 미국이 동아시아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데다, 경제성장에 힘입은 중국이 군사 확장에 나서면서 이 지역의 세력 판도가 양강(G2) 체제로 굳어지고 있다는 위기감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지난해 1월 연해주 콤소몰스크 공군기지에서 스텔스 전투기 수호이 T-50의 처녀비행을 실시하고, 새 우주기지 건설에 착수하기도 했다. 한편으로 동북아시아에서 한-미, 미-일 연합훈련에 맞서 중국과 군사협력을 하는 한편, 이달 초엔 동해와 괌 등에서 미국, 일본과 연합훈련을 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북한과도 소련이 해체된 1991년 이후 중단된 해상 합동군사연습을 재개하기로 했다.

이 지역의 이해 당사자들과 골고루 관계를 맺어, 북-중 밀착과 한-미-일 동맹 강화로 동북아 '신냉전' 구도가 고착화되는 것을 막고 일종의 균형추 구실을 하겠다는 포석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정애 기자, 도쿄/정남구 특파원 hongbyul@hani.co.kr

오바마 “일자리 창출에 4770억달러”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중산층 세금감면과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4470억달러(약 500조원)의 대규모 경기부양 대책을 발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미 의회 합동연설을 통해 "국가적 위기에 당면해 우리가 정치적 서커스를 중단하고 경제를 살리기 위해 실질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며 의회에 '미국 일자리 법안'을 제안하고 이를 즉시 통과시켜줄 것을 촉구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이 법안의 주요 내용으로 노동자의 급여세를 절반으로 감면하는 방안을 앞세웠다. 중산층 감세를 통한 경기회복 외에도 내년 대선을 앞두고 중산층의 지지를 얻는 한편, '감세'를 주장해온 공화당에 대한 정치적 역공의 의미도 담긴 것으로 보인다. 감면 규모는 2450억달러로, 4470억달러의 부양안 지출액의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또 중소기업 세율 인하, 도로·교량 등 인프라 건설(1050억달러), 실업수당 연장(490억달러), 학교시설 현대화(300억달러) 등에 대해 재정이 투입된다. 오바마 대통령은 "더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게 이 법안의 목표"라며 "미국 일자리 법안은 기업들에 투자와 고용에 자신감을 갖게 할 것이며, 이는 소비지출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존 베이너 하원의장(공화)은 연설 직후 성명을 통해 이 법안에 대해 "고려해볼 만하다"며 다소 긍정적인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미국 가정과 소기업들이 직면하고 있는 불확실성을 끝내고 경기회복과 더 나은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함께 협조할 수 있다는 게 나의 희망"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재정지출 확대를 반대하는 공화당 내 보수세력들이 이에 동조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한편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 파나마, 콜롬비아와의 자유무역협정(FTA) 이행법안 통과의 필요성도 재차 강조했다. 그는 "미국 기업들이 파나마와 콜롬비아, 한국 등에서 더 많은 상품을 더 수월하게 팔기 위해 무역법안을 처리할 길을 열 때가 됐다"고 말했다. 워싱턴/권태호 특파원 ho@hani.co.kr



테러혐의로 11만9044명 체포 ‘미국 편’ 아니면 ‘적’ 세계 갈라

2001년 9·11테러는 이후 10년간 지구촌 전체를 바꿔놓았다.

'테러와의 전쟁'은 전세계를 "미국 편이 아니면 적"(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라는 이분법으로 갈라놓았다. 창설 이후 처음으로 집단자위권 규정(동맹조약 제5조)을 발동한 나토 회원국과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 40여개국이 미국의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동참해야 했다.

테러는 사람들의 일상과 의식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 알카에다가 테러를 저질렀다는 이유만으로 전 세계 무슬림들은 위축됐고, 이슬람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적대감이 기승을 부렸다. 인권과 자유는 한순간에 테러방지법의 볼모가 됐다.

지난 10년간 '테러' 혐의로 체포된 사람만 11만9044명, 이 중 3만5117명이 유죄 판결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AP) 통신이 최근 보도했다. 전세계 66개국을 대상으로 정보공개 청구 등 탐사취재로 집계한 것으로, 9·11테러 이전보다 10배나 급증한 수치다. 정보공개를 거부한 나라들까지 합치면 실제 수치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에선 2934명이 체포돼 2568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9·11 이후 대다수 나라들은 대테러 법규를 신설하거나 크게 강화했다. 미국과 서방은 재정지원까지 해가며 각국에 테러 대응책 강화를 촉구했다. 일부 국가에선 집권세력이 대테러 법규를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탄압 수단으로 악용하는 부작용까지 나타났다. 중국에서만 7000여명이 테러리즘 혐의로 구금됐고, 터키에선 쿠르드족 분리독립운동가들이 테러 혐의로 대거 기소됐다. 아랍 지역에선 대다수 독재정권들이 반테러법을 근거로 국민의 민주화 열망을 짓밟다가 '아랍의 봄'이라는 거센 역풍을 자초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서구 시민사회와 이슬람권 일부에선 관용과 공존의 가치를 강조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뉴욕이슬람문화센터의 이맘(무슬림 공동체 지도자)인 샴시 알리는 "무슬림 사회가 지금도 가끔 '이슬라모포비아'(이슬람 혐오 감정)에 맞닥뜨리긴 하지만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는 최근 뉴욕 지방신문 에"우리(무슬림)는 도전을 받을수록 우리 몫을 다하고 사회에 긍정적 기여를 할 필요가 있다는 걸 깨닫는다"고 말했다. 뉴욕시민 모하마드 만수르(47)도 "9·11테러 이후 한동안 우리 무슬림들은 말과 태도를 무척 조심해야 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은 그런 근심이 대부분 사라졌다"고 했다.

'테러와의 전쟁' 10년에 대한 미국 정부의 공식 평가는 긍정적이다. 미군은 지난 5월 알카에다 창설자인 오사마 빈라덴을 찾아내 사살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달에는 알카에다 2인자인 아티야 아브드 라흐만이 피살됐다. 이라크와 아프간을 침공했던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물론이고, 전쟁터에서 발을 빼려 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이제 세계는 더 안전해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이슬람권을 중심으로 세계인의 미국에 대한 반감과 불신은 더욱 깊어졌다. 최근 대학을 졸업한 중국 젊은이 뤄 루시(24)는 지난 7일 에 "미국이 국내 위기에 대한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리기 위해 (이라크와 아프간 ) 전쟁을 시작했다고 본다"며 "(미국에 대한) 우리의 분노는 10년 전보다 더 강해졌다"고 말했다.

무슬림을 향한 의심의 눈길도 여전하다. 미국의 여성언론인 쥬니브 압도는 최근 뉴욕의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전 세계의 상황이 바뀌지 않는 한, 미국 무슬림들은 불행하게도 나라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도 항상 책임을 뒤집어쓰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9·11테러와 그 후폭풍이 인류에 남긴 깊은 상처와 균열을 치유하기까지는 아직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보인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안보’ 앞 숨죽인 인권과 자유…미국인 47% “지난 10년은 최악”

지난달 23일 미국 워싱턴에서 지진이 일어났을 때, 시민들은 건물 바깥으로 뛰쳐나와 "또 테러"라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우왕좌왕했다. 9·11 테러가 끝난 지 10년이 지났지만 미국인들이 일상적인 테러 위협 속에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9·11이 바꿔놓은 미국의 풍경 가운데 하나는 자신들의 '안전, 즉 '안보'를 위해 '자유'를 포기한 일이다. 이제 공항에서 허리띠를 풀고 신발을 벗는 일에 익숙하다. 검색대 앞에서 지문을 찍을 때 '인권' '프라이버시' 등을 주장하는 이도 없다. 과거 5년이던 운전면허증 갱신기간은 1년으로 줄었다.

안전을 위해서라면 인권 침해도 받아들인다. 테러 직후, 조지 부시 행정부가 테러 혐의를 받는 외국인을 영장 없이 체포하고, 수사기관의 감청 권한을 확대하는 등의 이른바 '애국법'을 채택할 때도 미국인들은 예전처럼 저항하지 않았다. 9·11 직후, 부시 대통령의 지지율은 역대 최고인 88%였고, 월드시리즈 등 큰 행사 전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군가였던 '갓 블레스 아메리카'가 불려졌다. 9·11 테러에 충격을 받은 사람들은 교회를 찾았고, 성조기를 보며 눈물을 흘릴 정도로 애국심이 고취됐다. 이는 사회적 보수화로 이어졌다. 부시 행정부가 뚜렷한 증거도 없이 이라크 전쟁을 감행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분위기가 뒷받침됐다.

1960년대 베트남 전쟁 당시에는 젊은이들의 '반전운동'이 거대한 바람처럼 휘몰아쳤지만, 뉴욕 한복판에서 세계무역센터(WTC)가 무너지는 장면을 목도한 미국인들에게서 이라크 전쟁 반대 분위기는 미미했다. 오히려 청소년기에 9·11 테러를 목격한 이들은 '인권보다 안전' '국제 사회보다 미국'을 우선시하는 '9·11 세대'로 성장하고 있다. 무슬림에 대한 사회적 반감도 그 연장선이다. 퓨리서치센터의 설문조사를 보면, 미국 내 무슬림 40%가 '조롱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경기침체와 맞물려 무슬림을 넘어 전 사회적인 반이민 분위기도 확산됐다. '자유, 인권, 희망' 등으로 상징되던 미국의 가치는 더이상 기대하기 힘든 사회가 됐다.

9·11 이후 10년간 미국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과 늘 '전쟁중'이었다. 는 지난 5일 "9·11 테러 10주년이 지났지만, 미국인들은 여전히 끝없는 전쟁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보도했다. 9·11 테러에서 3000여명이 숨졌는데, 이라크·아프간 전쟁에선 그 2배인 6000여명의 미군이 숨졌다. 이라크·아프가니스탄 등 민간인들의 희생은 어린이를 포함해 15만명에 이른다. 지난 6월 여론조사에서 미국인 47%가 '최근 10년이 지난 100년 역사에서 최악의 기간'이라고 답했고, 52%는 '아이들이 겪을 미래의 미국은 더 나빠질 것'이라고 답했다.

미국인들은 이제 '테러와의 전쟁'에 '피로증'을 호소한다. 최근 브루킹스연구소의 여론조사를 보면, 73%가 아프간의 미군 감축을 지지했고, 55%는 이라크전에 미국이 너무 많은 것을 쏟아부었다고 평가했다. 또 8년 전, 전 사회적인 지지를 받은 이라크 전쟁에 대해 이번 조사에선 49%가 '이라크 전쟁은 잘못'이라는 답변이 나왔다. 온라인 뉴스매체인 는 "9·11이 만든 이념인 '네오콘'(극우 신보수주의)이 9·11 테러 10년을 맞은 지금, 스스로 몰락했다"고 분석했다.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로 테러 세력을 압박한다는 네오콘의 주장은 이제 재정지출 반대와 감세를 주장하는 공화당 지지층으로부터도 외면받고 있다. '테러 근절을 위해선 시민권의 일부를 포기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10년 전 63%였던 '그렇다'라는 답은 올 9월 33%로 대폭 줄었다.

이런 기운이 미국 자유와 인권의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까? 아직 답은 불투명하다. 워싱턴/권태호 특파원 ho@hani.co.kr

일본, 무기수출 본격 나서나

마에하라 세이지(사진) 일본 민주당 정책조정회장이 7일(현지시각) 미국에서 한 연설을 통해 '자위대 파병 5원칙'과 '무기수출 3원칙'을 수정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을 놓고 일본 정가가 시끄럽다. 특히 무기수출 3원칙의 수정에 대해 야당뿐 아니라 민주당 안에서도 반대론과 신중론이 흘러나오고 있다.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내각 이래 일본은 무기를 외국과 공동으로 개발 또는 생산하거나, 무기를 외국에 수출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해왔다.

이치카와 야스오 방위상은 8일 일본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나는 마에하라 정조회장에게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며 불쾌감을 내비쳤다. 그는 "(마에하라가) 정치가로서 자기 생각을 갖는 것은 좋지만 (그런 생각을) 당론으로 정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치카와 방위상은 오자와 이치로 전 대표 그룹에 속한다.

후지무라 오사무 관방장관은 8일 오전에만 해도 "내각 차원에서 검토하겠다"고 했다가 오후 들어서는 "마에하라 개인의 지론을 말한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은 옛 사회당계 한 의원의 말을 인용해 "당내에서 격론이 벌어질 것"이라고 9일 전했다.

야마구치 나쓰오 공명당 대표도 "분쟁을 조장 확대하지 않겠다는 무기수출 3원칙의 본래 취지를 어떻게 견지해서, 일본에 대한 국제사회의 이미지를 살려나갈 것인지 의논이 불충분하다"고 마에하라 정조회장의 발언에 부정적인 뜻을 내비쳤다.

일본 정부는 간 나오토 내각 시절인 지난해 12월 방위대강계획을 수정하면서 무기수출 3원칙 수정을 시도한 바 있다. 당시 방위성 전문가위원회는 '평화 구축, 인도적 목적에만 사용되는 장비나 기술은 수출을 허용하고, 엄격한 수출관리제도를 도입하고 각국과의 비밀보호협정을 맺는 것을 전제로 무기의 공동개발·생산에 참가하며, 특허기술을 제공한 국가에는 생산한 무기의 수출을 허용한다'는 구체적인 수정안까지 제시한 바 있다.

은 "외무·방위성 관리들 사이에는 '간 총리 시절에는 무기수출 3원칙을 고치는 게 무리라고 생각했지만, 노다 총리라면 정치적 결단을 할지 모른다'라는 기대가 있다"며 "그러나 이번 발언이 정부와 조율을 해서 나온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평화헌법 개정을 논의할 '헌법심사회' 구성의 구체화(2일치 8면)에 이은 이번 소식으로 노다 내각에 대한 주변국들의 우려는 커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 도쿄/정남구 특파원 jeje@hani.co.kr

오바마, 마지막 경제 카드로 ‘재선 승부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8일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발표한 '미국 일자리법'은 경기회복을 위해 쓸 수 있는 사실상의 마지막 종합대책이다. 떨어지는 지지율 속에서 2012년 재선을 겨냥한 경제 승부수이기도 하다.

이날 발표는 근로계층의 세금 부담 경감과 사회간접시설(SOC) 건설을 뼈대로, 중·하층 노동자의 일자리를 확충하는 것을 겨냥했다. 증세와 정부 지출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공화당의 반발을 피하면서, 노동자 대중의 표심을 겨냥한 조처라 할 수 있다.

공화당으로서는 반대할 경우, 경제 '발목잡기'를 한다는 책임을 뒤집어쓸 수도 있는 제안들이다. 이 때문에 는 "정치적으로 중도적 제안들을 섞어 놓은 효과적인 안", 은 "의회가 거부할 경우 오바마에게 의회에 대항하는 선거 운동을 할 공간을 제공할 정치적 전략"이라고 평했다.

모두 4470억달러 상당의 돈을 푸는 효과가 있는 이 대책은 △노동자와 고용주가 각각 부담하는 급여세 인하 등 세금 감면(2450억달러) △사회간접시설 확충(1400억달러) △실업 프로그램 확충(620억달러) 등으로 구성된다. 경제 전문가들은 금융위기 이후 발표된 경기대책에 비해서는 소규모인 이 대책의 효과가 제한적이며 일시적일 것이라고 진단하면서도, 근로계층 등은 직접적인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은 무디스의 수석 경제분석가 마크 잰디의 말을 인용해, 이 대책이 2%포인트의 실질 국내총생산 성장률 효과와 190만명의 급여 노동자 증대 효과를 내면서 실업률은 1%포인트 정도 떨어뜨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제적 효과와 별도로 국가부채 상한선 인상 논란으로 만신창이가 된 오바마와 의회의 정치력이 복원될 것이라는 기대는 크다. 공화당은 거부하기 힘든 제안 앞에서 오랜만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공화당 소속의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고려할 만한 가치"가 있다며 "가계와 소기업들이 직면한 불확실성을 끝내기 위해 함께 일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오바마도 공화당의 딜레마를 의식한 듯, 의회 연설에서 단호한 어조로 공화당을 압박했다. 그는 연설 내내 공화당의 기존 계획과 아이디어를 언급하며 이번 대책이 이를 담았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이후다. 금융위기 이후 이번 대책보다 3~4배 규모의 극약 처방 식의 경제대책이 발표됐으나, 별다른 효과를 못 본 상태에서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이번 대책의 약발이 어느 정도 먹힐지 의문이다. 특히 이후 대책이 바닥이 난 상태다. 연방준비제도가 이달 말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현재 0.25%인 기준금리를 아예 0%로 내리거나 △단기국채를 매각하는 대신 장기국채를 매입해 장기금리를 단기금리보다 낮게 유도하는 정책 등을 내놓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지만, 이미 '제로 금리'인 상태에서 2차례의 대규모 양적완화를 통해 돈을 푼 상태라 정책 수단이 많지는 않다.

이번 연말연시를 기점으로 경제가 나아질 조짐이 보이지 않으면, 오바마로서는 별다른 대책 없이 재선 운동이라는 '폭풍' 속으로 나서야 한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휴대폰 여론조사 안철수 59-박근혜 32%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서울시장 출마 포기 이후 대선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와의 가상 대결 여론조사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SBS가 9일 보도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다자간 대권후보 조사에서 박근혜 전 대표가 34.7%, 안철수 원장이 17.2%를 각각 나타났고, 문재인, 손학규, 정몽준이 그 뒤를 이었다.

한나라당 후보 박근혜, 야권 후보 안철수 중 누구에게 투표하겠다느냐는 질문의 가상 대결에서는 박근혜 45.9%, 안철수 38.8%로 박 전 대표가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근혜 전 대표와 민주당 손학규 대표간의 1 대 1 대결은 박근혜 57.1% 손학규 27.0%로 조사됐고, 박근혜 대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대결에서는 55.4% 대 25.6%로 집계됐다.

휴대전화를 이용한 MBC의 여론조사에서는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29.8%, 안철수 교수는 28.4%로 오차범위 내에서 1, 2위를 기록했다.

뒤를 이어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11.8%, 손학규 민주당 대표 5.5%를 각각 차지했다.

범야권 후보로는 안철수 원장이 40.4%를 얻어, 16.1%인 문재인 이사장을 비롯해, 손학규 대표 등을 야권 후보들을 앞지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MBC 조사 양자 대결에서는 박근혜 전 대표 32.6%, 안철수 교수 59.0%로 안 교수가 높았고, 박근혜 문재인, 박근혜 손학규 구도에서는 박 전 대표가 우위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SBS 대선관련 여론조사는 지난 8일 전국 19세이상 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전화 조사를 통해 실시됐으며 95% 신뢰수준에 오차 한계는 ± 3.1%포인트다.

MBC 여론조사는 엠비존 씨엔씨에 의뢰해 전국 19살 이상 성인남녀 1537명을 대상으로 같은날 휴대전화 조사를 통해 실시됐했으며, 95% 신뢰수준에 오차범위는 ± 2.5%포인트다.










[왜냐면] ‘진이례 퇴이의’ -안철수 그를 존경할 수밖에 없는 이유

9월6일 오후 4시께,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하 안 원장)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안 원장은 이번 출마설로 정치계의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었다. 닷새간 '출마냐 불출마냐'를 놓고 고심했지만 박원순 변호사와 6일 회동하자마자 불과 20분 만에 불출마 선언을 하고 '박원순 변호사 지지'를 선택했다. 이번 일을 보며 한 문장이 떠올랐다.

전한 말 양웅이 지은 의 '군자편'에 보면 '진이례 퇴이의 난려야'(進以禮 退以義 難儷也)라는 구절이 나온다. 해석해보자면 '나아갈 때는 예에 따르고, 물러날 때에 의에 따르는 것은 나란히 하기 어렵다'라고 할 수 있다. 높은 지위를 탐내거나 많은 월급을 받기 위해 나아가고 물러가는 것은 쉬우나, 자신의 예와 의에 입각해서 일에 나아가고 물러나는 것은 어렵다는 뜻이다.

'예'(禮)라는 글자는 공손함, 사양, 겸손 등의 '삼가하는 정신'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진이례'라는 말은 '나아가는 데 있어서 어렵게 생각하고 조심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또한 '의'(義)라는 글자는 옳음, 의로움 등의 '마땅한 정신'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퇴이의'라는 말은 '물러나는 데 있어서 결단력 있고 쉽게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양웅은 어떠한 경우에도 나아가는 것이나 물러나는 것은 흉내내기 쉽다고 말한다. 다만 공자와 같이 나아갈 때는 예에 따르고, 물러날 때는 의에 따르는 일은 누구나 흉내낼 수 없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오늘 안 원장의 행보를 보면 나란히 하기 어렵다는 '진이례 퇴이의'를 아주 쉽게 했다는 생각이 든다. 출마 선언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미 36.7%라는 기록적인 지지율을 얻은 안 원장은 욕심을 내서 출마 선언을 했을 법도 한데, 예에 따라서 말을 아끼며 침착한 모습을 보였다. 높은 지지율에 대해서 "우리 사회 리더십에 대한 변화의 열망이 저를 통해 표현된 것이라 여긴다"며 자신을 굽힌 안 원장은 지지율이 7배 차이 나는 박원순 변호사에게 선뜻 서울시장 출마 자리를 양보했다. 우리가 흔히 보았던 정치인들의 행보와 사뭇 다른 것이었기에 그 놀라움은 더 컸다. 더군다나 안 원장은 "박 변호사는 우리 사회를 위해 헌신하면서 시민사회운동의 새로운 꽃을 피운 아름답고 훌륭한 분으로 서울시장직을 누구보다 잘 수행할 거라고 생각한다"며 아무런 조건 없이 쉽사리 시장 출마를 양보했다. 안 원장의 박원순 변호사에 대한 인간적인 존중과 신뢰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는 진정 자신의 의에 입각하여 물러난 것이다.

야권통합을 위해 쉽사리 불출마를 선언한 안 원장의 '물러남'은 쉽게 물러난 듯하면서도 오히려 앞으로 더 나아간 것이다. 그래서 그가 존경스럽다.

홍영화 전북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3가

[사설] 한나라당은 언제까지 ‘수구 정당’으로 머물려는가

어제 국회에서 처리할 예정이던 양승태 대법원장 후보자와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표결이 무산됐다. 조 후보자에 대한 한나라당 일부 강경파의 반대가 영향을 미쳤다. 한나라당 비공개 의총에서 한 의원은 "조용환 선출안이 통과되면 한나라당은 문을 닫아야 한다"고 했고, 다른 인사는 "보수층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이들이 거짓 주장을 동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두 차례나 분명하게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부 발표를 "신뢰한다"고 답변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확신'이란 표현은 적절치 않다는 조 후보자의 말을 꼬투리 잡아 마치 정부 발표를 믿지 못하겠다고 한 것처럼 왜곡·과장하고 있다. 수구언론들이 이런 왜곡보도를 시작했고 여기에 한나라당의 극단적 수구 정치인들이 부화뇌동하면서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 일부 인사들의 이런 태도는 반헌법적일 뿐 아니라 의회민주주의의 기초를 뒤흔드는 위험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헌법 제111조 3항이 헌법재판관 9명 가운데 3명을 국회에서 선출하도록 해, 여야의 추천 몫을 인정한 것은 구성의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헌재 초기 극우 성향의 공안검사 출신 인사가 재판관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헌법정신을 존중한 야당의 양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를 무시한 채 한나라당이 결정적 하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법률적 역량도 탁월하다는 법조인을 시대착오적 색깔론을 동원해 반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짓이다. 양보와 타협을 기반으로 움직여온 의회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을 허무는 일이기 때문이다. 만일 현 정부의 인권상황 후퇴에 대해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도 많다"는 청문회 발언을 문제 삼아 야당이 양승태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처리해줄 수 없다고 한다면 어떻게 할 텐가.

한나라당 일부 인사들이 조 후보자에게 "왜 확신하지 못하냐"고 윽박지르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에 반하는 행위란 점에서도 문제가 많다.

한나라당이 합리적 보수와 건전한 중도층의 지지를 받으려 한다면 이런 수구적 주장에 휘둘리면 안 된다. 당내의 자칭 개혁파 소장파들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침묵한다면 비겁한 일이다. '안철수 현상'을 보고도 이렇게 정신 차리지 못한다면 수구 정당으로 남는 수밖에 없다.

[사설] 이 대통령의 아전인수식 ‘안철수 현상’ 해석

이명박 대통령은 이른바 '안철수 현상'에 대해 "우리 정치권에 올 것이 왔다"며 "정치권에 대한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젯밤 '추석맞이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한 발언이다. 매사를 자기 편리할 대로 해석하고 엉뚱하게 갖다 붙이는 게 이 대통령의 특기라지만 이번은 정도가 더욱 심하다.

우선 이 대통령이 정치권을 탓할 자격이 있는지부터 의심스럽다. 안철수 현상의 원인 중 하나가 사생결단식 대결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환멸이라면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바로 이 대통령이다. 오기와 독선의 정치, 일방통행식 정치, 좌우 편가르기야말로 우리 정치를 이 지경으로 만든 일등공신이다. 안 교수가 서울시장 출마를 검토한 결정적 계기가 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무상급식 주민투표 문제만 해도 이 대통령은 입이 열 개라도 말할 형편이 못 된다. '청와대 배후설'은 그만두고라도 기회 있을 때마다 '보편적 복지 망국론'을 펼치며 여론몰이를 한 게 이 대통령이다. 그런데도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시대에 뒤떨어진 정치 탓'을 하니 듣는 사람이 오히려 당혹스럽다.

이 대통령은 제 논에 물대기식 해석을 하기에 앞서 현 정권에 대한 안 교수의 통렬한 지적부터 귀담아들어야 한다.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는 것은 현재의 집권세력이며 현 집권세력이 한국 사회에서 그 어떤 정치적 확장성을 가지는 것에도 반대한다"는 말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이런 뼈아픈 지적은 외면한 채 이날 대담에서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기 바빴다. 보편적 복지 주장에 대해서는 여전히 "표를 얻기 위해서 하는 소리"라고 폄하했고, 차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해서도 "행정이나 일을 해본 사람이 (서울시장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로 선거 개입 의도를 내비쳤다. 모두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는 행위다.

안철수 돌풍의 원인을 놓고 많은 사람이 안 교수의 소통하는 자세, 헌신성, 진정성 등을 말한다. 이런 진실한 삶의 향기가 있기에 똑같은 이야기라도 안 교수가 하는 말에는 국민이 환호한다고 해석한다. 이 대통령이 아무리 '친서민'이니 '공생발전'이니 하는 듣기 좋은 이야기를 해도 국민이 시큰둥한 것은 이 대통령에게는 그런 미덕이 결여돼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의 추석맞이 대담은 안철수 현상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가장 생생히 보여주었다.

[사설] 알맹이 없고 실효성 미흡한 비정규직 대책

정부와 한나라당이 어제 영세사업장 저소득 노동자의 고용보험과 국민연금 보험료 일부를 지원해주는 것을 뼈대로 한 '비정규직 보호대책'을 내놨다. 전체 1700만 노동자 가운데 800만명이 넘는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은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번 대책은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인 낮은 임금과 고용차별을 해소하는 데 큰 보탬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여, '알맹이가 없고 실효성이 미흡하다'는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

이번 대책 가운데 비정규직 노동자의 열악한 처지 개선에 도움 되는 방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최저임금 120% 이하의 급여를 받는 노동자가 고용보험과 국민연금 보험료의 3분의 1을 정부한테서 지원받게 된 것이 대표적이다. 사업주 역시 동일한 지원을 받게 되니, 60만~70만명에 이르는 저임금 노동자의 사회안전망이 좀더 촘촘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불법파견에 대해 사용 기간에 관계없이 직접 고용을 의무화한 것 등도 진일보한 노동조건 보호 조처다.

하지만 이번 대책에선 정규직의 50%에 불과한 비정규직의 임금 수준을 어떻게 높일 것인지, 사내 하도급이나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구상이 보이지 않는다. 임금의 경우 '정규직의 80%로 늘려 간다'는 명시적인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는 방안이 논의됐으나 실현되지 못했다. 대신 '임금 및 근로조건 차별개선 가이드라인'의 제정을 추진한다는 발표에 그쳤다. 이 정도로는 실효성이 담보되기 어렵다. 또 사내 하도급의 남용을 막기 위해 비정규직보호법을 손질한다거나, 공공부문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계획 등도 나오지 않았다.

이번 대책은 눈앞의 추석 민심 등을 우려해 급조됐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게다가 이 정부가 추구하는 고용정책의 핵심인 노동시장 유연화, 파견직 확대 등은 비정규직 해소와 충돌하는 방향이어서 진정성마저 의심된다. 당장 현대자동차에선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불법파견이 시정되지 않고 있지만, 정부·여당은 그저 모른 체하고 있을 뿐이다. 정부·여당은 비정규직보호법 개정 등 더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비정규직 차별의 상징인 현대자동차에 단호한 시정조처를 내려 비정규직 보호 의지를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세계의창] 데이비드 캐머런의 큰 꿈 / 나오미 울프

영국에서 들려오는 폭동 소식을 듣고, 로버트 더글러스페어허스트의 흥미진진한 찰스 디킨스 전기 를 읽고 보니, 삶과 예술은 서로 공명하는 것 같다.

폭동 사태를 겪은 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아동법원의 부활과 폭동을 저지른 이들에 대한 엄혹한 판결을 비롯한 증오에 찬 아이디어들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폭도들에게 길거리 청소를 명령해 대중의 증오에 노출되도록 한다든지,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은 폭도의 가족을 공공주택에서 쫓아낸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캐머런은 또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 사람을 체포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중단하고, 경찰에 더욱 강력한 권력을 주는 것도 시도하고 있다.

디킨스가 살던 빅토리아 시대(1837~1901년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통치한 시대) 초기의 영국에서 사법부는 독립되지 않았고, 신문은 정부의 검열을 받았다. 비교적 가벼운 범죄를 저지른 가난한 사람들은 오스트레일리아로 보내지거나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는 처벌을 받았다. 경찰은 가난한 이들에 대해 견제받지 않는 폭력적인 권한을 가졌다.

나는 약탈자와 폭력배들에 대한 관용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캐머런이 주장한 일련의 벌칙이 나라를 어디로 이끄는지 잘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사회안전망이 없어 가난한 자들이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영국이 어떤가도 익히 알고 있다. 150년 전 영국에선 가난한 아이들은 전혀 교육을 받을 수 없었고, 대학은 그들에게 환상 속에 있는 존재였다. 캐머런의 통치 아래 세 곱절이나 뛴 등록금은 이런 시절을 다시 되풀이하게 만들 수 있다.

영국이나 미국 등 서구 자본주의 사회는 요즘 빅토리아 시대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노동자와 중산층을 쏙 빼놓은 채, 극소수 엘리트들의 이익을 위해서 말이다.

더글러스페어허스트가 책 속에서 감동적으로 묘사한 1830년대에는 경제적으로 취약한 가정의 어린이들이 12살의 디킨스처럼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하루에 18시간씩 어두컴컴한 공장에서 일을 했다. 꾼 돈을 갚지 못한 사람들은 가족과 함께 채권자들이 세운 감옥에 보내졌다. 디킨스의 아버지 존도 40파운드를 빌리고 똑같은 꼴을 당했다. 아무런 복지혜택이나 고용보장을 받지 못한 중하층 가족은 언제나 질병이나 해고의 공포 속에 살았다. 질병이나 해고는 그들에게 곧 길거리로 내몰리는 파멸을 뜻했다. 1830년대 런던에서, 여성의 3분의 1은 하녀였고, 또 다른 3분의 1은 성매매 여성이었다. 이것이 바로 사회복지 없는 영국의 모습이다.

반대로, 후기 빅토리아 시대(1850~1880년대)에는 공공진료소나 의무 초등교육을 포함한 많은 사회복지 장치가 마련됐다. 소년원 제도와 극빈층에 대한 기초적인 구제, 공공 상하수도, 경찰력의 지자체 귀속 등등. 지금도 우리 곁에 있는 템스강 둑이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 등 공공투자도 모두 이 시기에 시작된 것이다.

캐머런과 다른 서구 보수주의자들이 과거로 돌아가려는 노력을 강화하고 있지만, 우리는 복지의 약화와 기본적인 서비스의 민영화가 새롭거나 혁신적인 게 아니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그런 상황을 겪은 적이 있다. 현재 영국 정부가 없애려는 많은 것들이, 바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름끼치는 상태에서 살고 있었던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 빅토리아 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만약 오늘날의 보수 정치인들이 계속 정권을 잡게 된다면, 어둡고 위험하고 무지했던 과거는 다시 되돌아올 것이다.

나오미 울프 미국 사회비평가

[삶의창] 잘 계시나요? / 황선미 동화작가

특별히 살 게 없어도 나는 자주 시장엘 간다. 시장도 백화점처럼 공간이며 품목에 나름의 질서가 있고, 그 속의 사람들 역시 비슷한 패턴을 보이건만 지루함을 모르겠으니 시장을 찾는 건 일종의 습관이 아닌가 싶다.

무심한 듯 지나치면서도 양말 더미에 기대 곯아떨어진 아줌마, 무표정하게 다리 뻗고 앉아서 날마다 밤을 까는 할머니, 사모님 소리가 입에 붙어버린 정육점 총각, 물 건너온 덕에 비싼 가격표를 붙이고 배배 말라가는 체리 따위를 눈여겨본다. 그러면서 걱정도 한다. 붙박이 상인 누군가 나를 익숙한 사람으로 바라볼까봐. 뭘 그다지 사지도 않으면서 자주 나타나는 여자라고.

올여름 지겨웠던 비 때문에 어느 상점이고 물건이 시원치 않다. 부실한 채소나마 양이 부족하고 값도 만만찮으니 명절대목의 흥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어 씁쓸하다. 이맘때만 보이는 애호박이 있어 냉큼 사들고 가다가 시장 끄트머리 횡단보도 앞에서 문득 발이 멎었다. "한 바구니에 만원!"을 외치는 젊은 여자 목소리. 온종일 외쳤는지 허스키한 목소리의 그녀는 잘해야 삼십대 중반으로밖에 안 보였고 시장 나들이가 익숙한 내게 낯선 사람이었다.

한 바구니에 만원이라는 물건. 푸른 사과다. 길바닥에 늘어놓은 탓인가 낙과처럼만 보이는 사과 더미 속에서도 여자 목소리에는 단호한 무엇이 있었다. 바구니마다 대여섯개씩 담아놓고 목 언저리가 붉어지도록 외치는 그녀에게 끌려 사람들이 푸른 사과에 눈길을 주곤 했으니. 어서어서 팔아치우고 돌아가야 한다는 듯 그녀는 재빠른 손놀림과 남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는 꿋꿋함으로 손님을 불러 세우곤 했다. 어떤 아이의 엄마일 것만 같은 사람. 그러지 않고서야 저리 용감할 수 있겠나. 그런데 별안간 "한 바구니에 만원!"을 외치는 그녀에게 "떨이요, 떨이!"를 외치던 엄마가 겹쳐졌다. 나도 모르게 찡그리며 돌아섰으나 횡단보도의 신호가 끝나도록 나는 발목이 잡힌 채 서 있었다.

곁눈질조차 안 하는 그녀를 나는 한참 바라보았다. 그저 구경이나 하려던 손님을 기어이 붙잡아 덤까지 얹어주며 팔고 재빨리 다른 손님을 향해 손 까부르는 여자. 저기에 엄마가 겹쳐질 게 뭐람. 어쩌자고.

나는 내 가슴에 깊고 커다란 구멍이 있다는 걸 안다. 그건 평소에 바늘이 찍은 점처럼 희미하지만 너무나 외로울 때면 내 등 쪽을 시커멓게 뚫어버리고 감당할 수 없게 시린 바람을 일으키는 구멍이다. 그 구멍에 내 엄마가 살고 있다. 5일장을 따라다니며 생선과 꽃게를 팔았던 엄마한테서는 늘 비린내가 났고 지문이 닳고 자주 피가 터져서 손가락에는 반창고가 친친 감겨 있었다. 떨이도 못하고 막차마저 놓치고 나면 하염없이 먼 밤길을 걸어오던 엄마. 그런 엄마를 기다리며 정류장에 나가 서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왜 안 자고 나와 있느냐는 살가운 말 한마디 건넬 줄 모르는 엄마를 나는 정말 싫어했고, 공부 작파하고 일찌감치 돈 벌러 나가라는 성화를 들은 척도 않는 나는 엄마가 징글징글하게 여기는 딸이었다. 우리가 엄마와 딸이 아니었다면 영원히 비껴나갔을 텐데, 인연은 때로 너무 가혹한 것이라서 끝내 속을 파 먹히는 아픔을 남기고야 만다. 병든 몸은 마비되어 가는데 정신은 너무나 말짱해서 괴로워했던, 내가 벌을 받는 거라면 죽은 꽃게를 섞어 팔았던 게 죄였다고 말하던 엄마. 내 깊은 구멍이 엄마로부터 비롯되었음을 나는 잘 안다.

미안하다는 말조차 못하고 보낸 엄마를 오늘 시장 귀퉁이에서 만났다. 엄마, 잘 계시나요. 그래야만 해, 꼭. 거기가 어디든지.

황선미 동화작가

[논쟁] 새로운 명절문화를 생각한다

추석이다. 한해 농사를 끝내고 오곡을 수확해 조상에게 바치고 가족이 나누어 먹는다는 풍요로운 명절의 의미는 갈수록 퇴색하고, 대신 길고 긴 귀향길, 가부장적인 노동 분배 등 각종 '명절 스트레스'만 부각된 지도 오래다. 시가에 도착한 며느리들이 '노동의 새벽'을 맞으며 절규하면 그 소리에 남편 역시 전전긍긍한다. 이를 겨냥해 기업들은 '명절 스트레스 해소' 상품을 앞다투어 내놓는다. 추석 문화, 어찌할 것인가. 모두가 행복하고 풍요롭게 이 시기를 보낼 순 없을까. 남성과 여성, 양쪽에 물었다.

멋진 아비 되기, 거창하지 않다

이 땅의 모든 아버지들이여
명절에 '밥 차려라' '술상 내와라'
이런 식의 '하드 파워' 탈피하고
조용히 숯불을 피워보심이 어떨지

아마 중추절이 지나면 '연휴 직후, 이혼소송이 크게 늘었다' '음식 차리고 치우느라 또 고부간에 갈등이 불거지는 바람에 기혼여성 상당수가 명절 증후군에 시달렸다'는 전혀 새롭지 않을 팩트가 '뉴스'라는 이름으로 쏟아질 것이다. 기실 사람을 만나 즐겁고 행복해야 할 자리에 가서 도리어 사람 때문에 마음 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명절에 여성, 특히 며느리는 약자다.

그러나 한가위는 본래 여성의 잔칫날이었다. "여성들을 양편으로 나누어 한 달 동안 길쌈, 즉 일종의 경연 대결 비슷한 것을 하게 한 뒤 추석에 이르러 지는 편이 이긴 편에게 음식과 술을 대접했다." 고대 이 땅의 한가위 풍속을 는 이렇게 전한다. 그렇다. '축제'였다.

축제로 말하자면 유럽 기독교의 카니발(Carnival)을 빼놓을 수 없는데 우리네 풍습과 흡사해 보인다. 이때만 되면 여흥을 즐기라며 여성은 물론 모든 사회적 약자에게 술과 고기를 잔뜩 안겼다고 한다. 참고로 카니발은 고기(Caro)와 잔뜩 배불린다(Valens)를 합한 말이다. 곧바로 사순절 40일이 시작돼 금욕을 감내해야 하니 미리 회포를 풀라는 뜻이었다.

이 무렵 도시 전체는 사회적 약자의 해방구가 된다. 질펀한 유희는 물론, 가면 쓰고 권력자와 종교 지도자를 실컷 조롱해도 뭐라 타박하는 이가 없었다. 이름의 영문 약자가 'MB'라 상당히 '친숙'한 러시아 비평가 미하일 바흐친은 카니발을 일컬어 '소통'이라고 단언했고, 현대철학의 상징 니체는 축제를 '구원과 치료의 수단'이라 평가했다.

추석이면 우리 집에서도 작은 축제가 펼쳐졌다. 나의 아버지 김 태자 복자 목사가 집 문을 열어놓고 숯불을 피워 고기를 구운 것이다. 이것이 사실상 명절 식단의 전부였다. 평소에는 설거지하는 모습 한 번 보이지 않던 부친, 이날만은 팔을 걷고 어머니와 누나를 대신해 가사 노동 전면에 나섰다. 우리 가족이 놀란 부분은, 그런데 따로 있었다.

무림의 고수가 묵언수행을 마치고 일격필살이나 흑산포를 구사한다고나 할까. 접시 위에 오른 구운 고기의 맛은 별 몇 개 따위로 형언할 수 없었다. (굳이 별 숫자로 표시하라면,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의 '무상급식 주민투표율 25.7%면 승리한 것'이라는 언사를 빌려 최소 25.7개는 헌정하고 싶다고 말하겠다.) 애초 그것은 하나의 생고기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김 목사가 그 살점을 석쇠에 올리고 몇 번의 뒤집음 끝에 그 고기는 우리 가족에게로 와서 감동이 되고 말았다. 절묘하게 남긴 육즙과 감질 날 정도의 숯불의 향내, 게다가 후추 등 천연 양념의 적절한 투입, 김태복표 숯불구이는 식품영양학에서 물리, 화학, 나아가 예술의 경지로 승화됐다.

사람만의 즐거움이 아니다. 지금은 고견(故犬)이 된 바둑이도 생전 아버지의 고기를 기다리느라 불판 주변에서 꼬리를 쌍방향으로 흔들며 혀를 날름거렸다. 인수(人獸)의 차이를 무의미하게 만든 신비의 맛이었다.

나와 식구들은 교회에 가서 기도하고 설교한다는 아버지가 실은 만날 옥상에서 고기 굽기 연습을 한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의 시선을 갖게 됐다. 아버지의 실력 발휘에 우리 집의 추석 먹거리는 단출하지만 풍성했다.

이후 삼남매는 결혼으로 분가로 독립하고, 또 아버지와 어머니는 4년 전 퇴임 후 불판 펴기가 여의치 않은 아파트에 입주했다. 그 '신공'은 아쉽게도 추억의 한 페이지 저편에 머물고 있다.

이런 작은 섬김으로 표출된 아버지의 '소프트 파워', 즉 따뜻한 권위는 우리 가족 모두에게 지금껏 사랑으로 기억된다. 이 땅의 모든 아버지여, 연휴에 '밥 차려라', '전이나 송편 없느냐', '술상 내와라'는 식의 '하드 파워'를 탈피하고, 조용히 마당에 앉아 숯불을 피워보심이 어떨지. 아내, 여동생, 딸, 조카의 '귀요미 인증'은 이걸로 충분하다. 설혹 맛까지 담보된다면 '훈남 등극'도 가능하다. 아비로 사는 멋, 그거 생각 외로 거창하지 않다. 김용민 시사평론가

일만 힘든 것이 아니랍니다

'평등명절 만들기' 공감한다지만
여성은 여전히 밖에 세워져 있는,
외롭고 낯선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자리가 명절이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지난 10여년 동안 '명절·제사상의 성차별'을 없애기 위해 거리 캠페인에 나서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 덕일까? 요즘에는 중고령층 남성들조차 여성들의 고충에 공감하며 적극적으로 '평등명절 만들기' 서명에 동참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우리 집의 경우도 영향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남편의 솔선수범으로 명절 설거지는 남자들의 몫이 되었다. 음식상 앞에 길게 앉아 밀린 수다판을 벌이는 것이 가능한 우리 집안 여자들의 여유는 내 남편의 솔선수범과 적극 동참해 준 시동생, 신나게 시시덕거리며 심부름을 하는 조카들 덕분이다. 시숙도 마지못한 듯 쓰레기봉투를 들고 집 밖으로 향하곤 한다.

어쩌다 촌사람과 결혼을 하고 보니, 명절이면 고난에 찬 귀성 행렬에 합류하게 되었다. 물론 주범은 교통정체다. 하지만 결국 시가로 향하는 발걸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시댁 식구를 만나는 반가움으로도 넘어설 수 없는 명절노동에 대한 심리적 불편함이다. 이 불편함의 정체는 무엇일까?

지인의 어머님 얘기이다. 아버님이 돌아가시자 "이제 이 집안에 제사는 없다. 제사 안 지내도 되는 교회에 다닐란다"라고 선언하셨단다. 그리고 명절이면 "여기 예약해라" "이번엔 저기 예약하자"며 가족 나들이를 기획하신단다. 듣는 것만으로도 통쾌한 반란이다. 이런 결정이 어찌 명절의 부엌일 때문만이었을까? 명절과 제사에서 끊임없이 확인되는 여성 역할, 남성을 가계의 중심에 두고 여성을 그의 씨받이로 고정시키고 있는 구도가 우리를 답답하게 옭매는 것이 아닌가.

최근에는 명절과 관련한 또 다른 이야기도 접하게 된다. 한 친구의 경우, 얼마 전 윗동서와 시숙이 부부갈등으로 결국 이혼을 선택하게 되었단다. 그 결과로 집안 명절 준비의 책임이 몽땅 둘째 며느리인 친구에게 돌아오게 됐다고 한다. 아내를 내치고 그 노동을 또 다른 여성에게 전가하고 있는 시숙에게 화가 치밀더란다. 이 친구가 시숙에게 할 수 있는 말은 무엇일 수 있을까? 재혼을 권해야 하는 것일까? 제사를 치워버리자 해야 하는 것일까? 시숙이 직접 해결하라 요구해야 하는 것일까? 가족의 이혼으로 인해 자기 손에 넘겨진 명절노동의 부당함에 대해 이젠 남(?)이 된 윗동서를 향해 비난의 화살을 돌리지 않은 친구가 고마울 뿐이다.

내겐 싱글들의 모임이 있다. 돌싱(돌아온 싱글, 이혼녀)과 모태싱글(비혼), 그리고 나 같은 영혼만 싱글인 친구들로 구성되어 있다. 돌싱이건, 모태싱글이건 모두 명절이면 나만큼이나 곤혹스런 시간들을 보내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이혼한 그녀는 몇년 동안은 아이를 남편에게 딸려 보내고 자기만의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아이가 크니 이마저도 가능치 않아 아이와 명절을 보내야 하는 처지가 되니 난감해졌다. 텔레비전과 라디오, 온갖 매체들이 즐거운 나의 집, 나의 고향을 외치니 그녀는 스스로 어디에도 갈 수 없는 외로운 존재임을 확인할 뿐이다.

모태싱글인 또 한 친구. "결혼해라, 아이는 언제 낳니?" 일가친척의 성화에 괴롭다. 이젠 남편도 자식도 없는 그녀의 노후 문제를 앞서 걱정하시는 부모님 뵙기가 고역이란다. 시집가 아이 낳고 잘사는 옆집 딸과 비교될라치면 명절이 더욱 곤혹스러워진다. 자식 뒷바라지하느라 자신의 노후를 준비하지 못한 부모님이 자신의 노후를 걱정한다니 되레 안타깝단다.

이렇게 저렇게 여성은 여전히 밖에 세워져 있는, 외롭고 낯선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자리가 바로 명절인 셈이다. 누구에게는 실패한 이혼녀라는 낙인을 확인하게 되는 자리, 그리고 누군가에겐 비혼이 사회낙오자가 되는 지름길이란 주장을 들어야 하는, 그야말로 가족주의, 혈연주의, 결혼중심주의, 성별분업 이데올로기가 집약적으로 작동되는 공간인 것이다. 이미 1인 가구, 한부모 가구가 급속히 늘고 있는 이 다양한 시대에 환경의 변화를 담을 수 있는 명절문화가 몹시 아쉬운 때이다. 우리는,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하는 새로운 고민을 하게 된다.

김인숙 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

[문화 칼럼] 우리는 볼 수 있어야 한다 / 김상수

국가공동체가 위난에 빠져 있다. 요망하고 간사한 삿된 기운이 나라 전체를 좀먹고 있다. 자기들만의 욕망을 위해 자기들 좋을 대로만 세상을 해석하는 사견(邪見)에 찬 '권력집단'은 거짓과 은폐와 속임수로 기만적인 언어인 사어(邪語)로 일관하고 있다. 4대강을 죽이면서도 '살린다'고, 누가 봐도 필연적으로는 옳지 못한 일을 사명(邪命)으로, 바르지 못한 사업(邪業)을 정책이니 국책이니 하면서 국가를 일대 위기로 몰아넣는다. 툭하면 국가의 합법적인 폭력수단인 공권력을 동원해, 시민의 의사를 노골적으로 강제·억압하고 일련의 거짓을 숨기기 위해 엄청난 홍보비 등 직간접 국고 낭비를 일삼는다. 이명박 자신이 나쁜 기운으로 꽉 찬 지경인 오늘 현실이다. 서울시장 하다가 사퇴한 오세훈도 정도 차이지 바로 이 형국이었다. 사퇴의 형식이지만, 내용적으로는 권력욕의 수작과 꼼수에 시민들이 그를 시장 자리에서 내친 것이다.

차기 서울시장에게 충심으로 권고한다. 그 자리는 사사로운 자리가 아니다. 국가 수도 서울의 훼손을 이제 정지시켜야 한다. 시장은 시정 원칙을 바르게 세우고 공공성에 헌신해야 한다. 전시행정을 걷어내고, 우리 사회에 없는 창의성이라는 자원을 크게 일깨울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위조된 문화가 아닌 창조적 문화를 일으키는 도시로 전환시켜야 한다.

차기 시장 업무의 일의(一義)는 한강을 되살리는 것이다. 전두환이 치적이라고 콘크리트로 양안을 처바른 한강은 산소가 부족해 자연정화 작용은 멈춘 지 오래고 오염물이 퇴적되어 물은 썩었다. 한강의 자연 침식과 퇴적 지형을 되돌리는 급선무가 잠실수중보와 김포 신곡수중보를 철거하는 일이다. 나는 노무현 집권 2년차 시절 잠시 국무조정실에 있을 때 광복 60주년 사업 일환으로 한강 생태복원사업을 제안한 일이 있다. 8·15 기념식 때 독재시대 대표적인 개발 실패 사례인 한강 수중보와 양안 콘크리트를 폭파시켜 강을 해방시키고 국토를 해방시키는 것에서 광복 60년을 실천하자는 제안이었지만 당시 집권세력은 이해가 부족했다. 급기야 이명박의 등장으로 더 거꾸로 강물을 죽이는 22개 보 설치와 무리한 준설로 전국의 강을 한강처럼 만들자며 4대강 파괴를 강행하기에 이르렀다. 콘크리트에 갇혀 물이 고여 썩는 비정상적인 한강을 자연 복원시키는 노력은 펌프로 물을 퍼 올리는 강제 물순환 방식의 거대 인공어항인 청계천을 자연하천으로 되살리는 일과 이어진다. 이명박의 청계천 복원사업이란 그 실상은 가짜 생태복원임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답답한 고가도로를 확 걷어내고 도심에 물이 흐르는 껍데기 현상만 보고도 환호를 보냈고 가짜 생태복원 청계천 조경공사는 이명박의 치적 공사로 분칠 회자됐고 이명박 신화는 부풀려 가공됐다.

그리고 광화문 세종로다. 이 정권 들어서서 갑자기 광화문에 대왕 세종을 모욕하는 황금색 덩어리 동상이 들어서고 수령 100년 된 나무들이 사라졌다. 광화문 광장과 인근 도로와 인도는 죄다 보도블록 밑에까지 시멘트로 마감해 물이 흘러들 여지조차 없앴다. 광화문에 툭하면 홍수난리가 나 침수를 걱정한다. 내리는 빗물과 흐르는 물을 강제하겠다는 저 무지는 하수구를 자꾸 더 크게 늘려서 물의 하수처리로 홍수에 맞서겠다는 어리석음이다. 다시 나무를 심어야 한다. 도시 여기저기에 물을 담아낼 수 있게 해야 하고 땅속으로 물길을 만들어야 한다.

쿠데타 권력 이래로 무지와 영악함의 혼합체인 기괴한 권력의 등장으로 인한 폐해는 끝이 없다. 분수에 맞지 않는 직위를 가지고 있으면 재앙이다. 다가오는 10월26일, 우리는 볼 수 있어야 한다. 과연 누가 제대로 된 시장으로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아날로그 정치’ 발언에 여야 “대통령부터 성찰하라”

이명박 대통령이 '안철수 현상'과 서울시장 자격을 두고 했던 발언이 정치권에서 분분한 해석을 낳고 있다. 이 대통령은 8일 밤 대담에서 안철수 현상과 관련해 "올 것이 왔다"고 말했고, 서울시장에 대해선 "일을 해본 사람이 좋다"며 '자격론'을 피력했다.

특히, 이 대통령이 "이제 스마트 시대가 왔는데 정치는 아날로그 시대에 머물러 있다"며 기존 정치권을 비판한 대목에 대해선 여야 모두 "이 대통령부터 성찰하라"고 비판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9일 확대간부회의에서 "(이 대통령이) 자기 성찰이나 반성 없이 물가와 민생 문제를 남의 탓, 세계 경제 탓으로만 돌리는 데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정세균 최고위원도 "안철수 현상에 대한 정치권의 성찰이 필요하지만, 이 대통령은 그렇게 말할 자격이 없다"며 "엠비노믹스를 포기해야 할 정도로 완전히 국정에 실패했는데, 이 대통령은 사돈 남 말하듯 하지 말고 대통령 먼저 국민과 소통하는 법부터 배우라"고 반격했다.

여당에서도 비슷한 지적이 나왔다. 한 친 박 성향 의원은 "국민이 청와대 정책에 대해 많은 불신과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데 청와대가 안철수 바람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청와대 스스로 돌아보고 자성하는 자세를 가지면서 동시에 정치권에 주문했다면 더 설득력이 있었을 텐데 아쉽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안철수 현상'을 두고 "올 것이 왔다"며 마치 반색하는 듯한 발언을 한 데 대해선 박근혜 전 대표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이른바 '안풍'으로 '박근혜 대세론'이 뿌리 채 흔들리는 것을 보고 2007년 대선 후보 당시부터 쌓인 박 전 대표에 대한 앙금이 무의식중에 표출된 것 아니냐는 것이다. 대통령의 발언이 '좌파의 정치쇼'라는 여당의 공식 논평과 정반대라는 점도 눈에 띈다.

이 대통령의 서울시장 관련 발언에 대해서는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는 나경원 최고위원을 배제하는 발언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의 기준에서 '일을 해본 사람'은 기업인, 대학총장, 행정관료 등의 범주여서 정치인은 빠지기 때문이다. 한 서울지역 한나라당 의원은 "당내에서 누가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는지 잘 아는 마당에 행정 경험이 필요하다는 말을 한 것은 뻔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나 최고위원은 9일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서며 "(대통령이) 원칙적인 말씀을 하신 것 아니겠느냐"며 말을 아꼈다.

민주당은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사실상 선거 개입이라고 지적했다. 이용섭 대변인은 "대통령이 서울시장 후보에 대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은 사전 선거운동"이라며 "공정한 선거관리에 전념해줄 것을 엄중 촉구한다"고 말했다.

송채경화 이지은 기자 khsong@hani.co.kr

남북러 가스관 사업 북한도 적극 협조할까

남-북-러 가스관 사업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긍정적 언급으로 이후 이 사업의 추진에 속도가 붙게 될지 주목된다.

이 대통령은 8일 방송된 '추석맞이 특별기획, 이명박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가스관 연결 구상과 관련해 "북한과 러시아는 하고 있고 우리와 러시아도 진행하고 있고, 이렇게 되면 3자가 합의되는 시점이 있는데 어느 정도 생각보다는 빠르게 진전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가스관 봉쇄 가능성 등을 내세우는 반대론에 대해서도 "중간에 끊어지면 러시아가 보상을 해줘야 한다"며 "(끊어질 경우 가스관 공급과) 동일한 가격으로 액화천연가스(LNG)를 배로 보내는 것을 러시아와 얘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스관 사업이 빠르게 진전될 것이라는 이 대통령의 전망과 관련해선, 곧 이뤄질 한국가스공사와 러시아 가스프롬 사이의 실무 협의 및 11월께 예정된 다자 정상회의 계기의 한-러 양자 정상회담을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한-러 실무협의와 관련해 일부에선 9월15일께 가스프롬 관계자가 방한해 가스공사 쪽과 실무협의를 벌일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9일 "현재 실무 협의와 관련한 추가적인 움직임은 없다"고 말했다. "10월 중에 서울에서 열리는 한-러 자원협력위원회에서 추가적 논의가 이뤄질 것"(이성규 에너지경제연구원 박사)이라는 전망도 있다.

한-러 실무협의에 이어 11월에 열리는 3개의 다자정상회의에선 한-러 정상 사이 이 문제에 대한 큰 틀의 합의가 이뤄질 수 있다는 예상이 많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3~4일 프랑스 칸),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12~13일 미국 하와이), 동아시아정상회의(18~19일 인도네시아 발리) 등 한-러 정상이 함께 참석하는 다자회의를 계기로 한-러 양자 정상회담이 열리고, 여기서 남·북·러 3자 위원회 발족 등 본격적인 삼각 협의에 대한 합의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언급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나 경제성 문제가 가스관 사업 추진을 가로막는 변수로 돌출할 수 있다는 회의론은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대통령 말씀은 북한이 긍정적인 사인을 보냈다는 러시아 쪽의 얘기를 듣고서 기대가 돼서 그렇게 한 것일 것"이라며 "그러나 우리가 직접 북쪽한테 들은 게 아무 것도 없는 만큼 실질적 진전을 확신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손원제 류이근 기자 wonje@hani.co.kr

안철수 ‘마지막 콘서트’…“청춘들에 용기 주고 싶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9일 대구 강연을 끝으로 2년 가까이 진행해온 '청춘콘서트'를 끝마쳤다. 안 원장은 당분간 대중들과 접촉하지 않은 채 학교 일에 집중할 뜻을 비쳤다.

그는 이날 강연 시작에 앞서 기자들에게 "대학원뿐만 아니라 연구소 일도 하고 있고 벌여놓은 일들이 많다"며 "학교 일에 전념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어금버금하게 나오는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선 "여론조사에 관심 없다. 추석 지나면 (여론조사가) 또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가 이날 보도한 여론조사에서 그는 38.8%의 지지율로 박근혜 전 대표의 45.9%를 바짝 추격했다.

그는 국민의 지지와 성원에 대한 소감을 묻자 "당혹스러운 느낌"이라며 "혼자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데 뒤에서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려서 뒤를 돌아보니 많은 사람이 제가 공부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경북대에서 진행된 이날 '마지막 청춘콘서트'엔 2500명의 청중이 몰려 대강당을 빼곡히 채웠다. 대부분 20대였다. 2000명은 사전에 인터넷으로 예약을 받았고 나머지는 1시간 가까이 400m 남짓 줄을 선 뒤에야 입장할 수 있었다. 촛불집회 때도 꿈쩍하지 않던 이 지역 20대가 이렇게 많이 몰린 건 매우 이례적이다.

대담식 강연 형태로 진행돼 온 '청춘콘서트'는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안철수 원장이 미국 유학 시절 눈여겨봤던 한 강연 형태를 '수입'한 것으로, 박경철 원장은 안 원장이 점찍어 영입한 파트너다. 이날 마지막 강연에서 그는 "젊은이들이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에 짓눌려 어깨를 펴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며 "젊은이들을 돕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싶었다. 그렇게 용기를 불어넣는 게 그동안 '청춘콘서트'를 해온 이유"라고 말했다.

애초 안 원장은 한 번으로 끝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2009년 10월 이화여대 첫 강연에서 박경철 원장이 매달 전국의 지방대 위주로 개최할 것을 제안하면서 규모가 커졌다. 그 뒤 법륜 스님, 조국 서울대 교수, 윤여준 전 장관, 연예인 김제동, 김여진씨 등 초대손님과 함께 여는 형식으로 자리잡았다.

올여름엔 여름방학을 맞아 횟수를 특별히 늘리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횟수를 늘려도 인터넷으로만 받는 예약은 시작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마감됐고, 매번 좌석은 물론 복도와 바닥까지 메울 정도로 2000~5000명의 청중이 몰려들었다.

전문가들은 '청춘콘서트'의 폭발적 인기가 젊은층의 감수성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란 분석을 내놓는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젊은층이 바라는 새로운 리더십은, 권위보다 자유, 일방보다는 쌍방 소통, 논리보다는 감성"이라며 "자유롭고 서로 소통을 중시하며 감성적인 측면이 '청춘콘서트'에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청춘콘서트'가 "사회적 소외감 때문에 위로가 필요한 젊은이들에게 다가와 소통하고 이야기하고 있다"며 "정치권이 정말 뼈아프게 반성해야 하고, 지식인들도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외현 기자, 대구/박주희 기자 oscar@hani.co.kr

“안철수 바람은 아날로그 정치 때문”

이명박 대통령은 8일 밤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최근의 '안철수 현상'에 대해 "이제 스마트 시대가 왔는데 정치는 아날로그 시대에 머물러 있다"며 "정치권이 이를 발전적인 변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번에 안철수 교수를 보면서 '아, 우리 정치권에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며 "국민이 정치권에 많은 변화를 요구하고 있고 앞서가고 있다. 변화 욕구가 안 교수를 통해 나온 게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이 대통령은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변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한번 되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이 이른바 '안풍'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안철수 현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여의도 정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거듭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패널의 질문은 '(이 대통령이) 격주 라디오 연설 등으로 소통을 자주 하면서도 청춘콘서트 몇 차례 한 안철수 교수보다 국민과 소통이 안 되는 이유는 뭐라고 보느냐'는 것이었으나, 이 대통령은 "그렇게 비교하는 건 적합하지 않고 경우가 다르다"고 일축했다.

이 대통령은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와 관련해 "서울시장을 해보니까 정치와 별로 관련이 없더라"며 "일을 해본 사람이 (시장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시장의 역할과 중앙 정치의 역할은 많이 다른 것 같다"며 "시장은 시민 편안하게 해주고, 서울이라는 세계 일류도시의 수준에 맞는 인물이 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최근 정부·여당이 법인세·소득세 추가 감세를 철회한 것과 관련해서는 "감세는 세계 모든 나라의 추세이고 감세가 맞다"면서도 "하지만 감세, 경제 정책은 헌법이 아니라 적시에 유연하게 조정하는 게 중요하다. 현시점에서 유예하도록 당정이 합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대담엔 물가난과 전세난 등을 반영한 듯 경제 분야 질문이 이어졌다. 이 대통령은 물가 대책에 대한 질문에서는 "가장 걱정되는 건 금년에 흉작이고 계절도 지난 고춧값"이라며 "김장철이 되면 수입하는 수밖에 없다. 관세를 줄여서 싸게 들여오도록 농협과 얘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하도 배추 파동이 나서 배추 가격을 매일 체크한다. 열흘 전 한 포기 4300원이었는데 어제는 3300원이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고추를 싸게 팔면 농민들은 이중 고충 아니냐'는 질문에 "우선 급한 것은 소비자 쪽이고, 농가는 보상 체계가 잘돼 있다"고 말했다.

또 가계대출, 전세대란 해법과 관련해 "지금 2%의 낮은 이율로 어려운 사람에게 대출하게 하고 있다"며 "집은 투자 개념에서 주거 목적으로 가는 것이 틀림없는 만큼, 소형아파트를 많이 지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대담에서 '딱딱한 질문'이 이어지자 "추석이라 좀 푸근한 질문을 할 줄 알았더니…"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이 현대건설에 취업했을 때 박정희 대통령이 정주영 회장에게 "이 사람 잘 지켜보라"고 한 것을 정 회장이 "잘해주라"는 뜻으로 오해해 이 대통령이 초고속 승진했다는 최근 '위키리크스' 내용도 화제에 올랐다. 이 대통령은 "나중에 알고 보니 입사 뒤 5년 동안 매달 회사에서 동태 보고를 중앙정보부에 했더라"며 "정주영 회장이 재벌 총수인데 제대로 알아들었겠죠. 누가 재밌는 얘기를 한 모양"이라고 웃었다.

이날 대담은 오종남 서울대 교수, 홍성걸 국민대 교수 등 패널 4명이 나서 청와대 상춘재 앞뜰에서 밤 10시부터 80분 동안 진행됐다.

황준범 안창현 기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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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서울시장 후보 내지 않는 것도 방법”

"한나라당이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자초한 것이니 후보를 내지 않고 가는 것도 방법이다. 그렇게 하면 국민들이 한나라당이 반성할 줄 안다고 받아들일 것이다."

"미래의 청와대라고 할 박근혜 전 대표에게 문제제기와 비판을 하려면 용기가 필요한 상황이 되고 있다. 다양성과 역동성이 없는 정치는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끌어낼 동력이 없다. 한나라당이 위험한 길로 가고 있다. 걱정된다."

원희룡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지난 6일 '박창식의 정치IN'에 출연해 이렇게 주장했다. 그는 대담에서 서울시장 보궐선거, 복지 확대와 부자 증세 필요성, 한나라당의 당내 민주주의, 남북관계 등 여러 현안에 걸쳐 견해를 밝혔다.

-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대한 한나라당의 준비 상황은? 

= (안철수 바람이 일어나면서) 안철수 교수와의 가상 대결을 생각해보고 하는데 이런 것은 무망한 일이다. 대신에 안철수 교수가 이런 말을 한 걸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번 보궐선거는 한나라당이 자초한 선거이고 그에 따른 댓가를 (한나라당이) 치러야 한다. 가령 한나라당이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추진하지 말든지, 했는데 (투표가 무산되었으면) 민주당이 장악한 서울시의회와 타협해 초등학교부터라도 무상급식을 실시하든지 해야 한다고. 그것도 아니고 시장이 사퇴했으면 (한나라당은) 후보를 내지 않고 가는 것도 방법이다. 그렇게 하면 한나라당이 반성할 줄 안다고 국민들이 받아들여줄 것이다.

- 보궐선거를 자초한 책임을 인정하고 후보를 공천하지 않는 방안을 원 최고위원이 한나라당 안에서 적극적으로 주장해보시라. 

= 이야기 꺼내봤다. 그런데 사소한 것에 목숨 걸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웃음)

- 비유적인 표현으로 이해하겠다. 이게 절대 사소한 문제는 아니고, 그걸 사소한 문제로 치부하려는 한나라당의 풍토가 문제다.

= 말로 될 문제는 아닌 듯하다. (한나라당이 민심이 무섭다는 것을) 몸으로 당해야 비로소 깨우칠 것같다.

- 한나라당이 서울시장 선거에 앞서 복지 정책에 관한 태도를 정해야 한다. 

= 복지 정책의 최우선 순위는 절대 빈곤을 없애는 것이다.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결식아동 없애는 과제에는 보수가 앞장서야 한다. 교육과 보육, 일자리 창출과 연결되는 부분은 보편적 복지 개념으로 가야 한다. 대신에 의료, 연금 등은 수익자 부담 원칙으로 가는 게 옳다. 전체 복지를 늘리려면 세금을 늘려야 한다. 예산 절감만으로 쉽지 않다. 이 점에선 민주당도 정직하지 않다. 증세를 하되 조세 저항이 없는 방향으로 국민의 동의를 얻으면서 점진적으로 가야 한다. 우리나라는 현재 저부담 저복지이고 유럽은 고부담 고복지다. 대한민국이 저부담 저복지로 계속 가서는 국민들의 불안을 잠재울 수 없다. 중부담 중복지로 가는 것에 대해 보수가 받아들이는 대타협이 필요하다. 증세는 담세 능력이 있는 사람이 더 내야 한다.

- 부자 증세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형성하는데 앞장설 생각은 없나? 

= 있다. 대신에 부자들과 돈은 굉장히 겁이 많아서 공포를 앞세우면 다 숨어버린다. 이번 주민투표에서도 보편적 복지로 가면 나한테 세금 올 것같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철저하게 계급투표를 한거다. 그러니 세율을 높이는 것보다 세원을 넓게 가져가는 게 좋겠다. 아울러 상속 등 (부자들이 해결하고 싶어 하는) 문제도 들어주면서 세금을 더 내도록 해야 한다.

- 한나라당 대선후보 구도는 박근혜 의원의 단독 질주가 그냥 이어지는 건가. 

= 한국정치에서 1년은 긴 시간이다. 단정할 필요는 없다. 30회 드라마로 칠 때 처음 등장한 주연배우와 나중 등장하는 주연배우가 동일한 1인 모노 드라마라면 시청률이 나오겠는가. 1인 모노 드라마는 국민들이 식상할 수 있다.

- 한나라당이 청와대 눈치를 보는 시대가 가고 대신에 박근혜 의원의 한마디가 새로운 법이 되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 그렇다. 지금 청와대 눈치를 보는 사람은 당 대표 정도랄까, 거의 사라졌다. 대신에 미래의 청와대라고 할 박근혜 대표에 대해 문제제기와 비판을 하려면 용기가 필요한 상황이 되고 있다. (이런 식으로 해서) 다양성과 역동성이 없는 정치는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끌어낼 동력이 없다. 한나라당이 위험한 길로 가고 있다. 걱정된다.

- 보수 정당을 개혁하는 대표적인 젊은 피의 한 사람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그런데 언제부터 친이명박계가 된 건가? 권력정치에 안주하고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인상이 있다. 

= 단적으로 말하면 그건 오해다. 다만 상황이 오해를 불러들인 면이 있다. 저는 친이도 친박도 아니다. 저는 대한민국 보수정당의 미래를 외치고 헤쳐나가는 주역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한나라당에 들어와 개혁파 활동을 했다. 그동안 비주류였다가 최근 1년여 동안 사무총장을 맡고 책임의 일부를 떠맡았다. 그렇게 책임에 충실한다는 연장선에서 (얼마 전) 전당대회까지 오다 보니 개혁파로서의 짠맛을 잃은 느낌은 있다. 그러나 그게 권력에 동화되서는 아니고 상황에서 비롯된 거다. 20대 젊음을 불태웠던 진정성을 다시 어떻게 불태울 것인가를 고민하며 자기 반성의 시간을 갖고 있다. 치열한 자숙과 성찰의 과정을 통해 가급적 빠른 시간안에 치열함과 진정성을 갖춘 원희룡의 모습으로 국민 대중 앞에 다시 서겠다.

박창식 논설위원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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