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06

[펌] 스티브 잡스의 스탠포드 졸업식 연설- 번역: 한국경제신문 김광현 기자님

스티브 잡스의 스탠포드 졸업식 연설

작성: 광파리 2011년 2월 21일 월요일 오전 6:56

누구한테도 말하기 어려운 사연이란 게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사연을 가슴에 품고 삽니다.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남들보다 사연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잡스는 2005년 6월12일 스탠포드대학교에서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연설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명연설이죠. 15분짜리 이 연설에는 잡스가 가슴 속에 품고 살아야 했던 사연과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잡스의 이 연설을 볼 때마다 언젠가 한글로 옮겨봐야지 생각했는데, 어제 밤 시도했습니다. 영어도 못하는 놈이 겁도 없이 덤볐습니다. 본인한테 누가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스티브 잡스에 대해 관심 있는 분들과 공유하고 싶어 어줍잖은 짓을 했습니다. 너그러이 봐 주시고 잘못 옮긴 부분이 있으면 바로잡아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길지 않으니 한 번쯤 보시길 바랍니다.

 

 

저는 오늘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대학 중 하나를 졸업하는 여러분과 함께 이 자리에 선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저는 대학을 나온 적이 없습니다.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저로서는 이 자리가 대학 졸업에 가장 가깝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께 제 인생의 세 가지 이야기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별 것 아닙니다. 그냥 세 가지 이야기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점의 연결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리드 칼리지를 6개월 다니고는 그만뒀습니다. 바로 그만둔 것은 아닙니다. 18개월 가량 청강생으로 주변을 맴돌았습니다. 제가 왜 중퇴했을까요?

 

얘기하자면 제가 태어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저의 생모는 젊은 미혼의 대학원생이었는데, 저를 입양 보내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대졸자 가정에 보내고 싶은 마음이 매우 강했던 것 같습니다. 변호사와 그의 부인이 제가 태어나면 바로 입양하려고 모든 준비를 끝냈습니다. 그런데 제가 태어나는 순간 이들이 딸을 갖고 싶다며 마음을 바꿨습니다. 그래서 대기자명단에 이름을 올려놓은 저의 부모님한테 한밤중에 전화가 갔습니다. “예상과 달리 아들이라서 그런데요, 입양하실래요?” 그들은 “물론이죠”라고 대답했습니다. 생모는 저의 어머니가 대학을 나오지 않았고 저의 아버지는 고등학교조차 졸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그래서 막판에 입양동의서에 서명하길 거부했습니다. 생모는 수개월 후 저의 부모님이 애가 크면 대학에 보내겠다고 약속한 뒤에야 마음이 누그러졌습니다. 제 인생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17년 후 저는 정말로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바보 같이 스탠포드 만큼이나 학비가 비싼 대학을 선택했습니다. 이 바람에 근로자 신분인 저의 부모님은 저축해둔 돈을 탈탈 털어 제 학비를 대야 했습니다. 6개월 다녀보니 저는 그럴 만한 가치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나중에 무엇을 하고 살지, 대학을 나오면 그게 무슨 도움이 될지 알 수 없었습니다. 저는 부모님이 평생 모은 돈을 몽땅 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중퇴하기로 결심했고 아무 문제 없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상당히 불안했지만 되돌아보면 제가 내린 최고의 결정 중 하나입니다. 중퇴한 순간부터는 재미 없는 필수과목을 듣지 않아도 됐고, 훨씬 더 흥미 있는 과목들을 청강하기 시작했습니다.

 

낭만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저한테는 잘 곳이 없없습니다. 저는 친구들 방 바닥에서 잤습니다. 먹을 것을 사기 위해 콜라병을 모아 한 병에 5센트씩 받고 팔았습니다. 그 당시 헤어 크리쉬나 템플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괜찮은 식사를 제공했는데 그걸 얻어먹으려고 일요일 밤마다 시내를 가로질러 7마일이나 걸어가곤 했습니다. 저는 그게 좋았습니다. 제가 호기심과 직관대로 하는 바람에 고생도 했지만 대부분 나중에 소중한 자산이 됐습니다.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그 당시 리드 칼리지에는 아마 국내 최고의 서체학 강좌가 개설돼 있었습니다. 캠퍼스 곳곳에 붙이는 포스터랄지 모든 서랍에 붙이는 라벨에는 손으로 예쁘게 글씨를 썼습니다. 저는 중퇴를 했기 때문에 정규 수업을 들을 필요가 없었죠. 그래서 어떻게 글씨를 쓰는지 배우려고 서체학 강의를 듣기로 했습니다. 저는 세리프가 뭔지 배웠고, 산 세리프 서체도 배웠습니다. 글자 조합에 따라 자간을 어떻게 조정하는지도 배웠고, 어떻게 해야 멋진 서체가 멋지게 나오는지도 배웠습니다. 그게 참 아름답고, 역사가 있고, 예술적으로 오묘해서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여기에 매료됐습니다.

 

이런 걸 배워서 나중에 실제로 활용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안했습니다. 그런데 10년 후 우리가 첫 번째 매킨토시 컴퓨터를 설계할 때 뜬금없이 그게 필요해졌습니다. 우리는 서체에 관해 배운 걸 맥 설계에 반영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맥은 서체가 아름다운 최초의 컴퓨터가 됐습니다. 제가 대학에서 그 강좌를 듣지 않았다면 맥은 다양한 서체, 적절한 폰트 간격을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윈도는 맥을 베낀 것이기 때문에 어떤 퍼스널 컴퓨터도 이런 것을 갖지 못할 뻔했습니다. 제가 중퇴하지 않았다면 서체학 강의를 듣지 않았을 테고, 퍼스널 컴퓨터는 현재와 같은 아름다운 서체를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가 대학 다닐 때는 앞을 내다보고 점을 연결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10년 후에 뒤돌아보면 매우 매우 명확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여러분은 앞을 내다보고 점을 연결할 수는 없습니다. 나중에 회고하면서 연결할 수 있을 뿐이죠.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각각의 점이 미래에 어떻게든 연결될 거라고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뭔가를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소화기관이든 운명이든 인생이든 업보든 뭐든지 믿어야 합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버린 적이 없었고 그게 제 인생을 바꿔놓았습니다.

 

 

 

저의 두 번째 이야기는 사랑과 상실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일찌감치 무얼 사랑해야 할지 깨달았습니다. 저는 스무살 때 워즈(스티브 워즈니악)와 함께 부모님 차고에서 애플을 창업했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했습니다. 두 사람이 차고에서 일하는 회사에 불과했던 애플은 10년 후 직원 4천명을 거느린 20억 달러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우리는 제가 서른살 되기 한 해 전에 최고의 작품인 매킨토시를 내놓았습니다. 그 이듬해 저는 쫓겨났습니다. 어떻게 자기가 설립한 회사에서 쫓겨날 수 있습니까? 글쎄요. 애플이 성장하자 우리는 저와 함께 회사를 운영할 아주 재능있다고 생각한 사람을 고용했습니다. 처음 1년 남짓은 잘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비전은 엇갈리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는 추락했습니다. 이사회는 그 사람 편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이 서른에 저는 쫓겨났습니다. 아주 공개적으로 쫓겨났죠. 제가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것을 잃었습니다. 절망적이었습니다.

 

몇 달 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더군요. 창업가정신을 잃어버렸다고 느꼈습니다. 저한테 바통이 전해졌는데 제가 떨어뜨렸다고 생각했습니다. 데이비드 패커드와 밥 노이스를 만나 이렇게 엉망으로 망친데 대해 사과하려고 했습니다. 제가 실패했다는 것은 다 알려졌고 저는 도망칠까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 속에서 뭔가가 천천히 꿈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전에 하던 일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애플에서 그런 일이 있었는 데도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쫓겨났지만 저는 여전히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결과적으로 애플에서 쫓겨난 게 저한테는 최상의 일이었습니다. 성공에 걸맞게 해야 한다는 중압감에서 벗어나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었고 모든 게 덜 확실했습니다. 그래서 제 인생의 가장 창의적인 시기 중 하나로 편하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 후 5년 동안 저는 넥스트라는 회사를 창업했고 픽사란 이름의 회사도 운영했습니다. 그리고 놀란 만한 여인과 사랑에 빠져 그 여인과 결혼했습니다. 픽사는 세계 최초의 극장배급용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인 토이스토리를 만들어냈습니다. 픽사는 이제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입니다. 상황이 놀랍게 바뀌어 애플이 넥스트를 인수했고 저는 애플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넥스트에서 개발한 기술은 애플이 지금 부활하는데 중심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로린과 저는 멋진 가정을 꾸렸습니다.

 

이 가운데 어떤 것도 제가 애플에서 쫓겨나지 않았더라면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참으로 끔찍한 약인데 제 생각으로는 환자한테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살다 보면 벽돌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신념을 잃지 마십시오. 제가 계속 앞으로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제가 하는 일에 대한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확신합니다. 여러분도 사랑할 것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일일 수도 있고 여러분 애인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일은 여러분 인생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대단한 일이라고 믿는 것을 해야만 진정으로 만족할 수 있습니다. 대단한 일을 하는 유일한 방법은 여러분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직 그걸 발견하지 못하셨다면 계속 찾으십시오. 안주해서는 안됩니다. 마음에 관한 일이 다 그렇듯이 그걸 발견해내면 여러분은 알게 됩니다. 그리고 좋은 관계라는 게 그렇듯이 그것은 해가 거듭할수록 점점 좋아질 것입니다. 그러니 찾아낼 때까지 계속 찾으십시오. 안주해서는 안됩니다.

 

 

 

저의 세 번째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열일곱살 때 이런 구절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라. 그러면 언젠가는 제대로 될 것이다.” 이 말은 저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날 이래 33년 동안 저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저 자신한테 물었습니다. “오늘이 내 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해도 오늘 하려고 했던 일을 하겠느냐?” 이에 대한 대답이 여러 날 잇따라 “노(No)”일 때는 뭔가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경험으로는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내가 곧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가장 큰 도움이 됩니다. 왜냐하면 외부의 기대, 온갖 자존심, 당황하거나 실패할까 두려워하는 마음, 이런 모든 것은 죽음 앞에서 떨어져 나가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 남게 됩니다. 죽는다는 사실을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뭔가를 잃을까 두려워하는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이미 발가벗겨졌습니다. 마음이 내키는대로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저는 1년쯤 전에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오전 7시30분에 정밀검사를 받았는데 췌장에 종양이 또렷하게 보이더군요. 저는 췌장이 뭔지도 몰랐습니다. 의사들은 치료할 수 없는 암의 일종이 거의 확실하다면서 3개월 내지 6개월밖에 못산다고 저한테 말했습니다. 의사는 집에 가서 일을 정리하라고 권유했습니다. 죽을 준비를 하라는 말을 의사들은 이런 식으로 하죠. 앞으로 10년 동안 하려고 했던 모든 것을 애들한테 수개월 안에 다 말하라는 얘기입니다. 모든 것을 정리해 가족들을 최대한 편하게 해주라는 얘기입니다. 유언을 하라는 얘기입니다.

 

하루 종일 진단을 받았고 그날 저녁 늦게 조직 절개를 했습니다. 의사들은 제 목으로 내시경을 넣어 위를 거쳐 장까지 밀어넣었습니다. 주사바늘을 췌장까지 집어넣어 암에서 조직을 약간 떼냈습니다. 저는 진정제를 맞은 상태였는데 옆에 있던 아내가 그러더군요. 의사들이 조직을 현미경으로 살펴보더니 큰소리로 말하더랍니다. 수술로 치료할 수 있는 매우 드문 종류의 췌장암이라고. 저는 수술을 받았고 다행스럽게도 이제는 건강합니다.

 

이때가 제가 죽음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때입니다. 앞으로 수십년 동안 이런 일이 없기를 저는 희망합니다. 암을 이겨냈기에 저는 죽음에 대해 좀더 확신을 갖고 여러분한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아무도 죽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천당에 가길 원하는 사람도 천당에 가기 위해 죽기를 바라진 않습니다. 죽음은 우리 모두가 맞아야 하는 종착지입니다. 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삶에 있어 최고의 발명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삶을 바꾸는 대리인입니다. 죽음은 낡은 것을 치워 새로운 것에 길을 열어줍니다. 지금 이 순간 새로운 것은 여러분이지만 머잖아 여러분도 낡은 것이 되고 치워질 것입니다. 이렇게 극적으로 말씀드려 미안하지만 그게 엄연한 진실입니다.

 

여러분한테 주어진 시간은 제한돼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 삶을 사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도그마의 함정에 빠지지 마십시오. 그건 다른 사람이 생각한 대로 사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시끄러운 의견으로 여러분 내부의 소리가 묻히지 않게 하십시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용기있게 여러분의 마음과 직관을 따르십시오. 여러분이 진짜 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나머지 것들은 모두 부차적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지구 전체 카탈로그(Whole Earth Catalog)”라는 멋진 책이 있었습니다. 우리 세대한테는 바이블 같은 책 중 하나였죠. 이곳 멘로파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는 스티어트 브랜드란 사람이 썼습니다. 이 사람은 시적인 솜씨로 책에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때가 60년대 후반이었는데, 퍼스널 컴퓨터나 데스크톱 출판이 나오기 전이라서 타자기로 치고 가위로 자르고 즉석 카메라로 찍어야 했습니다. 구글이 등장하기 35년 전에 페이퍼백 형태로 구글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죠. 이상적인 책이었는데 방법과 개념 정리가 잘돼 있었습니다.

 

스티어트와 그의 팀은 ‘지구 전체 카탈로그’를 여러 판 찍었습니다. 작업이 다 끝났을 때 최종판을 냈습니다. 그게 1970년대 중반인데 제가 여러분 나이쯤 됐을 때였습니다. 최종판 뒤쪽 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그 길을 걸었더라면 차가 지나갈 때 얻어탔을 법한 그런 길입니다. 사진 밑에는 이렇게 씌여 있었습니다. “배고픈 상태로 남아 있으라. 어리석은 상태로 남아 있으라(Stay hungry, Stay foolish).” 이것이 그들이 남긴 마지막 메시지였습니다. 배고픈 상태로 남아 있으라. 어리석은 상태로 남아 있으라. 저는 항상 이렇게 되고 싶었습니다. 이제 졸업하고 새로 시작하는 여러분도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배고픈 상태로 남아 있으라. 어리석은 상태로 남아 있으라.

 

대단히 감사합니다.

 

 

[스티브 잡스 스탠포드 졸업식 연설 동영상] http://goo.gl/v2UYq

[스티브 잡스 스탠포드 졸업식 연설 원문] http://goo.gl/9aBG

[아래 'Whole Earth Catalog' 뒷면 표지 사진] http://goo.gl/Rr4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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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4

손학규쪽 “박원순 당선, 우리에겐 양날의 칼”

3일 서울시장 야권 단일후보 선출 국민참여경선에서 시민사회 진영 박원순 후보의 승리가 발표된 직후 손학규 대표 등 민주당 관계자들은 말없이 대회장을 떠났다.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한 심경이 묻어났다.

그 순간 박원순 후보는 후보 수락연설을 통해 "민주당을 중심으로 더 크고 넓은 정치를 이루겠다는 약속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에 입당할 것이냐는 질문엔 "야권 단일후보는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 각 정당과 시민사회가 함께 공동선거대책위원회를 만들어 함께 가는 것"이라며 "야권 전체의 의견을 모아 결론을 내겠다"고 말했다.

손학규 대표의 한 측근은 "우리로 보면 박원순 후보가 입당해서 시장에 당선되는 것이 최선"이라며 "박 후보가 시민후보로 당선되는 것은 우리에겐 양날의 칼"이라고 말했다. 박원순 후보가 입당을 하면 민주당은 후보를 내지 못했다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무엇보다 '혁신과 통합'으로 모인 시민사회 세력들도 껴안을 수 있는 국면이 된다.

그러나 박원순 후보의 입당은 현재로선 가능성이 낮다는 점이 민주당의 고민이다. 박원순 후보 쪽 핵심 관계자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마음과 변화를 바라는 시민들의 마음을 아울러야 하는데, 후자가 더 큰 것 같다"고 말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박원순 후보가 시민후보로 완주하게 될 경우 일부에서 '민주당 후보를 내지 못했다'며 손학규 대표를 공격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이럴 경우 대통합으로 이끌고 갈 수 있는 리더십이 민주당 내에서 크게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다른 관계자는 "총선 국면을 맞아 통합으로 가자는 쪽과 민주당을 지켜야 한다는 쪽으로 당이 쪼개질 수도 있다"고 염려했다.

손학규 대표 앞엔 당내와 시민사회 쪽의 이런 갈등 요소들을 조정해 서울시장 선거와 총선·대선까지 이어지는 대통합 국면을 이끌어야 할 과제가 놓여 있다. 다른 야당과 시민사회로서도 민주당이 사분오열되는 상황은 달갑지 않다.

이날 박영선 민주당 후보와 최규엽 민주노동당 후보는 박원순 후보 공동선거대책본부장을 맡기로 합의했다. 야당·시민사회는 이날 경선장에서 친환경 무상급식을 전면 실시하고, '한강르네상스'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하는 10개 항의 정책 합의문을 발표했다. 박원순 후보가 시민후보로 가더라도 결국 서울시를 야당·시민사회가 참여하는 공동정부로 만들고, 공동의 승리로 만들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박원순 후보가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을 견인하려는 노력을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 서울시장 선거와 그 이후 통합 국면의 구도가 달려 있다"며 "후보단일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융합을 위한) 지금부터의 국면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경선 최대 흥행 메이커로 맹활약공동선거대책본부장 맡기로 합의

민주당의 '운명'을 짊어지고 나섰던 선거였기에, 패배의 충격도 적지 않은 듯했다. 불꽃 튀는 '박대박' 대결에서 진 박영선 민주당 후보는 3일 국민참여경선이 끝난 서울 장충체육관을 총총히 나섰다. 쏟아지는 질문에 "시민의 뜻을 겸허히 수용하고, 민주당이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날 박영선 후보와 최규엽 민주노동당 후보는 박원순 후보 공동선거대책본부장을 맡기로 합의했다.

박 후보는 '아름다운 패자'였다. 민주당 경선에서부터 이날 참여경선까지, 그는 대중성과 전투력으로 분위기를 달구며 만만치 않은 저력을 과시했다.

박 후보의 출마는 '마이너리그' 전락 위기에 놓였던 민주당 경선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젊은 민주당, 변화하는 민주당을 내건 그는 당내 경선에서 3명의 '정치 선배'들과 맞붙어 당당히 제1야당의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꿰찼다. 앵커 출신으로, 재벌·검찰 개혁에 앞장서 온 대중성과 개혁성을 인정받은 결과였다.

박 후보는 지난달 15일 공식 출마 선언과 동시에 서울시립대 반값등록금 공약을 내거는 등 민주당 정책통으로서의 면모도 뽐냈다. 박원순 후보에 비해 다소 늦은 출발이었지만, 이후 여론조사에서 격차를 꾸준히 줄여 나갔다. 박 후보는 "시간이 짧아서 아쉽긴 하다"고 했다. '비비케이 저격수' 출신으로 이명박 정부와의 대립각이 가장 선명한 후보라고 강조하고, 박원순 후보의 재벌 후원금 문제를 비판하며 차별화를 꾀했지만, 시민후보의 돌풍을 넘기에는 힘이 부쳤다. '엄마서울'을 내걸고 '따뜻한 정책'을 강조하기도 했다. 남편과 아들(12)의 이중국적 논란이 불거지면서 마음고생도 많이 했다.

이런 박 후보를 두고 당내에선 차세대 주자로 발돋움했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한 핵심 당직자는 "민주당 후보로서 경선 내내 잘 싸웠고, 이번 경선 최대의 흥행 메이커로 활약했다"며 "충분한 성장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벌써부터 차기 전당대회의 유력 주자로 거론하는 이들도 있다.

최규엽 민주노동당 후보도 '서민후보'로서 완주하면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텔레비전 토론 때는 민주노동당 싱크탱크인 새세상연구소장으로서의 관록에, 구수한 입심을 과시했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이렇게 많은 젊은사람이 투표장 온적 거의 없었다”

모든 면에서 박원순 시민후보가 우위를 보인 경선이었다. 박원순 후보는 배심원 평가와 여론조사에선 예상대로 박영선 민주당 후보를 압도했고, 국민참여경선에선 강력한 조직을 거느린 민주당 후보에 맞서 예상 밖 선전을 펼쳤다.

박원순 후보는 지난달 30일 열린 티브이토론 직후 진행된 배심원 평가에서 54.43%를 얻어 44.09%를 차지한 박영선 후보를 10.34%포인트 차로 따돌렸고, 지난 1~2일에 진행된 국민여론조사 결과에서는 57.65%를 얻어 39.70%를 얻은 박영선 후보를 무려 17.95%포인트나 앞섰다. 배심원 평가도 사실상 여론조사라는 점을 고려하면, 여론조사에서 박원순 후보가 평균 14%포인트 정도 앞선 것이다.

3일 진행된 현장 투표에서 박원순 후보(46.31%)는 박영선 후보(51.08%)에게 4.77%포인트 뒤졌지만, 배심원 평가(30%)와 국민여론조사(30%), 현장 투표(40%)를 합산한 최종 결과 역시 박원순 후보(52.15%)가 박영선 후보(45.57%)를 6.58%포인트 앞질렀다. 경선관리위원회 관계자는 "배심원 평가와 국민여론조사 모두 2곳의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했는데, 조사기관 2곳 모두 비슷한 격차가 나왔다"고 전했다.

박영선 후보가 막판 역전을 시도했던 '현장 투표'에서 박 후보의 선전 분위기가 감지된 것은 이날 오후부터였다. 오랫동안 민주당 조직 분야에서 활동했던 한 인사는 "오전에는 우리가 (사람들을) 동원했다. 민주당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오후에 젊은 사람들이 밀려들어왔고, 졌다는 분위기가 감지됐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도 이날 오전 "수많은 당내 투표를 치러봤지만 이처럼 이른 시간에 이렇게 많은 젊은 사람들이 투표장에 나온 적은 거의 없었다"며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선출했던 때가 생각난다"고 말했다. 또다른 당직자는 "민주당 당원들이 열심히 승용차·승합차로 사람들을 내려놓으면, 지하철역에서 젊은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양상"이라며 "트위터에서는 이런 현상을 두고 '봉고차'와 '지하철'의 싸움이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이날 현장 투표가 열린 장충체육관 주변은 유모차를 끌거나 아이들의 손을 잡고 투표장을 찾은 젊은 부부와, 배낭을 둘러멘 20대 대학생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정당의 경선장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20대 후반~30대 초반 여성들의 무리를 찾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추진력 강한 아이디어맨 늘 새로운 시민운동 개척

"워낙 성실하시고 일을 너무 열심히 하시는데, 시장이 되시면 서울시 공무원들 너무 괴롭히지 마세요."(웃음)

지난달 29일 열린 야권 단일후보 경선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최규엽 민주노동당 후보가 박원순 시민후보에게 건넨 덕담이다. 실제 박 변호사와 함께 일해본 시민단체 간사들은 "겉으로 비치는 편한 외모와 여유로운 말투와 달리 그가 매우 치밀하고 집요하다"며 혀를 내두른다. 아이디어가 많고 기획력이 좋은 점도 박 변호사의 강점으로 꼽힌다. 한 시민단체 인사는 "때때로 외국에 머물며 그 나라의 좋은 제도와 시스템을 한국적인 상황에 맞게 적용하는 능력이 탁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시민운동'이라는 개념조차 모호했던 시기에 참여연대를 이끌며 한국의 시민운동을 안착시킬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집요한 추진력이 바탕이 됐다는 평가다.

박 후보는 시민운동에 몸담은 이후 자신이 벌인 일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이를 떠나 새로운 일을 개척하는 일을 반복해왔다. 참여연대를 떠날 때도 구성원들의 강한 반대 때문에 새벽에 홀로 짐을 싸 사라졌고, 2000년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를 만들어서도 무서운 속도로 재단과 가게를 키워놓은 뒤 다시 희망제작소를 만들겠다고 떠났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자신이 이끌던 희망제작소 운영에 한때 어려움을 겪은 적도 있지만, 결국 그는 이번에도 희망제작소를 떠나 서울시장 야권 단일후보로 선출됨으로써 변신에 성공했다.

경남 창녕 출신인 박 후보는 이른바 '긴급조치 9호 세대'로, 경기고 졸업 뒤 서울대 법대 1학년 재학 때인 1975년 유신 반대 시위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투옥돼 제적됐다. 이후 단국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1980년 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1년 동안 검사 생활을 했다. 이후 시민운동에 뛰어들기 전까지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으면서 권인숙씨 성고문 사건, 보도지침 사건, 부산 미국문화원 점거사건,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 사건 등의 변론을 맡았다. 1986년 설립한 역사문제연구소 초대 이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정당 벽 넘어 ‘새판짜기’…시민들 정치변화 열망 거셌다

박원순 '돌풍' 어디서

'바람'이 '조직' 넘어서
시민운동가로 헌신적 삶 국민신뢰가 승리 원동력

야권 지지자 전략적 선택
민주당이 미는 시민후보 본선 경쟁력 낫다고 판단

시민후보 총선서도 바람?
총선은 정당 대결구도 야권 단일화해야 탄력

바람은 무서웠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야권 단일후보 선출 투표가 진행된 3일 오후 투표장인 서울 장충체육관 앞은 어린이를 데리고 나온 30~40대 시민들로 북적였다. 당원들의 조직표를 바탕으로 국민참여경선에서 '대역전극'을 기대했던 민주당의 희망은 힘없이 무너졌다. 현장에 나와 있던 민주당의 조직 전문가들은 개표가 시작되기도 전에 "뒤집기에는 역부족"이라며 패배를 인정했다.

이날 국민참여경선에서 박원순(55) 후보가 예상을 깨고 선전했고, 결국 종합점수에서 박영선(51) 민주당 후보를 누를 수 있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분석된다.

첫째, 시민후보였기 때문이다. 박원순 후보는 1990년대 중반부터 시민운동에 모든 것을 바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시민운동가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지난 9월6일 단일화 기자회견에서 "박원순 변호사는 우리 사회를 위해 헌신하며 시민사회운동의 새로운 꽃을 피운 분으로, 서울시장직을 누구보다 잘 수행할 수 있는 아름다운 분"이라고 말했다. 박원순 후보가 '안철수 돌풍'을 타고 비약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박원순 후보가 시민운동가로서 이미 쌓아 둔 대국민신뢰가 없었다면, 지지율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박원순 후보의 지금 인기는 대부분 '자신의 것'이라고 봐야 한다. 박원순 후보는 여론조사에서 57.65%로, 박영선 후보의 39.70%를 크게 앞섰다.

둘째, 야권 지지자들의 전략적 선택이다. 야권 지지자들은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시민단체의 지지를 받는 민주당의 박영선 후보'보다는, '민주당의 지지를 받는 박원순 시민후보'가 경쟁력이 앞선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투표에 참가한 민주당원들도 모두 다 박영선 후보를 찍지는 않았다는 것이 민주당의 자체 분석이다. 손학규 대표도 경선 전 기자 간담회에서 이럴 가능성을 우려했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내년 4·11 국회의원 선거, 12·19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진보정당, 그리고 진보 성향 시민사회단체의 힘을 합쳐, 한나라당과 '한판승부'를 펼쳐야 한다는 절박감을 가지고 있다. 박원순 후보는 경선기간 내내 "이번 선거를 통해 혁신과 통합, 변화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고, 이를 통해 더 큰 민주당, 더 큰 통합정당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말해, 민주당 지지자들의 염원에 응답했다.

박원순 후보의 승리는 한나라당-민주당 양당 대립구도로 짜인 정치질서를 뒤흔들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최종 결과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이른바 '제3후보' 돌풍이 기존 양당체제의 벽을 넘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제3후보' 돌풍은 1992년 대선의 정주영 후보, 1995년 서울시장 선거의 박찬종 후보, 1997년 대선의 이인제 후보, 2002년의 정몽준 후보로 이어졌지만, 번번이 한나라당-민주당 대립구도에 가로막혔다.

박원순 후보의 승리로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시민후보'나 '제3후보' 바람이 불 가능성이 높아진 것일까? 총선에서는 가능성이 별로 높지 않다. 선거구별로 선거를 치러야 하는데, 시민운동가 자원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시민운동가들이 제3의 정당을 만들 수도 있지만,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 그러나 시민운동가들이 기존 정당이나 새로 만들어지는 야권 통합정당에 들어갈 경우 경쟁력이 높아지는 효과는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선에서는 어떨까? 시사평론가 김종배씨는 "제3후보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인지가 중요하다"며 "대통령 선거에서 제3후보가 당선되려면, 먼저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그 뒤에는 다시 착근시키는 두 개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대선 국면에서 바람은 야권 바깥에 있는 유권자들을 투표장으로 끌어오는 역할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어쨌든 내년 대선에 나설 수 있는 '제3후보'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사람은 바로 안철수 원장이다. 안철수 원장이 대선에 나설까? 모든 사람이 궁금해하는 대목이다.

우여곡절 끝에, 박원순 후보가 야권 단일후보로 결정됐지만 본선거 승부는 예측하기가 어렵다. 보수 성향의 탄탄한 조직표가 있는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와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박원순 후보는 앞으로 언론과 집권 여당의 혹독한 검증을 통과해야 하고, 민주당의 전폭적인 지원을 이끌어 내야 하는 두 가지 과제를 풀어야 한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2011-10-03

[사설] 박원순 야권 통합후보 선출의 의미와 과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설 야권 단일후보가 어제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국민참여경선 등을 거쳐 박원순 후보로 확정됐다. 이로써 서울시장 선거는 한나라당 후보로 내정된 나경원 의원과 야권통합 후보인 박원순 후보 간의 정면대결 구도로 치러지게 됐다.

야권 단일후보 선출은 내용과 형식 모든 면에서 새로운 정치 실험이라고 해도 무방해 보인다. 과거에도 여론조사 방식으로 후보를 단일화한 사례는 있지만, 이번처럼 여론조사에다 배심원 평가, 국민참여경선 등 유권자들의 참여를 기반으로 한 후보 단일화는 처음이다. 시민들의 높은 참여 열기 또한 주목할 만하다. 맥빠진 예선이 될 것이라는 애초 예상을 뒤엎고 후보들 간의 접전도 치열했다. 이번 경험은 앞으로 총선과 대선에서 야권이 이뤄야 할 연대와 협력의 좋은 선례가 될 것이다.

야권 단일후보 선출 결과를 통해 극명히 확인된 것은 유권자들의 거센 변화 욕구다. 정치권 밖 시민사회 출신으로 정치 경험이 전무한 박원순 후보가 승리한 것은 그의 참신성과 사회에 대한 헌신성 못지않게 기존 정치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실망감을 반영하는 것이다. 민주당으로서는 철저한 반성과 쇄신이 절실하다. 하지만 더 넓은 시각에서 보면 이런 민심의 흐름은 민주당에는 위기이자 기회이기도 하다. 민주당이 기존의 기득권에 연연하지 않고 큰 틀의 정치구도를 새롭게 짜나갈 경우 오히려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점도 보여줬기 때문이다.

박원순 후보 앞에 놓인 본선 승리라는 과제는 그 한 사람만의 몫이 아니라 야권 전체의 과제이기도 하다. 서울시정을 이끌 비전과 정책을 만드는 작업을 비롯해 선거운동의 전 과정에서 야권은 역량을 총동원하고 힘을 합쳐야 한다. 만약 예선 과정에서 쌓인 감정이 있다면 깨끗이 털어버려야 한다. 박 후보 역시 예선 승리의 밑바탕에는 본선 승리 가능성을 저울질해 전략적 선택을 한 상당수 민주당 지지자들의 뒷받침이 있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표의 이탈 방지를 비롯해 자신의 지지 외연을 넓히지 않는 한 본선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단순한 승패를 떠나 야권의 미래를 가름하는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특히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화두로 떠오른 '시민정치'와 '정당정치'의 유기적 융합이라는 문제는 야권 전체의 절실한 숙제가 됐다.

[유레카] TV토론 선거 / 김이택

선거에 텔레비전(TV) 토론이 도입되기 시작한 건 1956년 미국에서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내 경선을 위한 티브이 토론이 (ABC) 방송 주관으로 마이애미 지역에서 처음 진행됐다. 1959년 커뮤니케이션법의 '동등시간 원칙'에 예외를 둘 수 있도록 법이 개정돼 다음해 유명한 케네디와 닉슨의 맞대결 방송 토론이 벌어졌다. 진실한 뉴스 이벤트인 경우 모든 후보자에게 동등시간을 배정하지 않아도 되도록 예외를 인정함에 따라, 두 사람만의 대토론(Great Debates)이 성사될 수 있었다.

당시 두 후보자만의 토론회가 4회 연속의 시리즈로 방송되면서 선거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조사에 따르면 티브이로 토론회를 본 유권자는 케네디가 잘한 것으로 본 반면, 라디오로 토론회를 들은 유권자는 닉슨에게 호평을 했다고 한다. 티브이에 비친 닉슨의 이미지가 시청자들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우리 선거 역사에서 티브이 토론이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 대표적 사례는 1995년 서울시장 선거다. 여당이던 민자당의 정원식 후보와 민주당 조순, 무소속의 박찬종 후보가 맞붙은 6월18일 주최 티브이 토론에서 '유신 찬양 기고'에 대한 조 후보 쪽 질문이 "합의 위반"이라며 박 후보가 토론을 거부하는 장면이 그대로 시청자들에게 노출됐다. 직전까지 높은 지지율로 당선을 기대하던 박 후보는 민주당의 집중공세 속에 9일 뒤 치러진 선거에서 33.5%의 득표율로 42.4%를 얻은 조 후보에게 패했다.

10월26일의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야권 후보 간의 티브이 토론이 두 차례 열렸고, 앞으로 여야 후보 간 토론도 예상된다. 이미지 정치란 비판도 있지만, 돈이 적게 들고 정책선거로 이끌 수 있다는 장점도 크다.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권태선 칼럼] 아름다운재단이 아름답지 않다고?

어제 저녁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야권 통합후보로 확정된 박원순 변호사가 출마를 선언한 이래 그는 물론 그가 직간접으로 관련을 맺었던 단체들에 대한 신상털기가 요란합니다. 시민운동가가 어떻게 월세로나마 강남의 큰 아파트에 살 수 있는가, 디자인을 하는 그의 아내의 기업 공사 수주는 그의 후광 덕이 아닌가 등의 의혹이 제기되더니 이제는 참여연대와 아름다운재단에 대해서도 의혹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서울시장이란 공직에 출사표를 던진 이에 대한 철저한 검증은 반드시 필요하고 따라서 그의 사생활이나 그가 이끌어온 단체들 역시 검증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단지 흠집 내기를 목표로 한 '아니면 말고'식 무차별 의혹제기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우리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환멸감을 증폭시킬 수 있는 까닭입니다.

아름다운재단에 대한 본격적 의혹제기에는 성희롱 발언으로 한나라당에서 출당되고 국회에서 가까스로 제명을 면한 강용석 의원이 앞장섰습니다. 그는 2001년부터 10년간 대기업들이 이 재단에 150억원가량을 기부했는데, 이는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의 대기업 비판 활동과 연관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언론들은 그의 주장을 대서특필했고 어떤 신문은 해당 기사의 제목에서 아름다운재단을 '박원순재단'으로 표기했습니다. 이 신문을 본 한 친구는 박 변호사에게 연구소를 이용해 대기업의 약점을 잡고 사실상 '박원순재단'인 아름다운재단에 돈을 기부하게 만든 사익추구자란 인상을 지우려는 편집 같다고 지적했습니다.

제기된 의혹 역시 상당한 허점이 보입니다. 우선 연구소와 박 변호사를 연결짓는 고리가 취약합니다. 연구소에 따르면, 참여연대 활동을 한 연구원이 일부 있었지만 연구소 자체는 재정이나 의사결정 등이 독립돼 있는 별도의 조직이고, 특히 박 변호사는 연구소 쪽과 아무런 관계도 맺은 적이 없다고 합니다.

재단이 10대 기업에서 받았다는 150억원에도 허수가 있습니다. 그 3분의 2인 97억원은 아모레퍼시픽이 낸 것이고, 그것도 회사가 아닌 창업주 서성환 회장의 유족들이 고인을 기리기 위해 유산의 일부를 주식으로 출연한 것이라고 합니다. '아름다운 세상 기금'으로 명명된 이 기금은 여성 가장들에게 최대 4000만원까지 지원하는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에 사용돼 왔는데, 지난 6월 이 기금의 지원을 받아 연 희망가게가 100호점을 돌파했고 100명의 여성들의 감동적인 새 삶 찾기는 '박원순재단'을 비판한 신문에서조차 크게 다뤄졌습니다.

일단 '아름다운 세상 기금'을 문제의 10대 대기업 후원금에서 제외하면 나머지 9개 대기업이 재단에 기부한 금액은 50억원가량이 됩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나 월드비전 등 주요 모금단체들이 이들로부터 받은 기부금과 비교하면 결코 많지 않은 금액입니다. 하지만 아름다운재단은 기부금을 제공하는 기업과의 협약에 충실하게 사업을 진행하고 그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아모레퍼시픽의 서경배 사장이 희망가게 100호점 개설에 즈음해 또다시 2억원을 그 프로젝트에 기부했던 것도 이런 신뢰가 있었기 때문일 터입니다.

이렇게 우리 기업의 나눔경영이 조금씩 자리잡아 가고 있는데도 기업의 기부행위를 구린 데를 가리기 위한 방편으로 매도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나눔문화 확산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국회의원 시절에) 재벌 총수를 국회 청문회에 부르거나 대기업을 힘들게 하는 법을 만들겠다고 하면 기업들이 후원하겠다고 찾아왔다"며 (아름다운재단에 대한 기업의 기부가) "순수한 나눔의 차원이 아니라면 굉장히 문제될 수 있다"고 한 임태희 대통령실장의 발언은 부적절하기 짝이 없는 망발입니다.

최근 안철수 돌풍에 화들짝 놀란 정치권에선 너나없이 새로운 정치를 입에 올립니다. 하지만 서울시장 선거전 초입에 우리 정치권이 보인 모습은 전혀 새롭지 않았습니다. 본격 선거전의 막이 오른 지금부터라도 이번 선거가 우리 사회, 우리 정치의 미래에 대한 성찰의 시간이 될 수 있게 만들어야겠습니다.

편집인 kwonts@hani.co.kr

[야! 한국사회] 정의란 무엇인가 / 진중권

처음에는 '선거 캠프의 누군가가 곽노현 교육감 모르게 한 짓'일 거라 추측했다. 하지만 곽 교육감이 기자회견을 통해 스스로 2억원을 건넸다고 밝히면서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고 말았다. 어떤 명목으로도 그런 돈은 절대로 줘서는 안 되며, 이미 돈을 건넨 이상 곽 교육감은 마땅히 도덕적 책임을 져야 했다.

곽노현 교육감이 이제까지 타의 모범이 될 만한 삶을 살아왔음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법원은 그에게 인품이 있는지 여부가 아니라, 그의 행위가 법에 저촉되는지 여부에 관심이 있다. 법정에서는 주관적 '선의'도 객관적으로 '범법'이 될 수가 있다. 지금 우리가 가진 것은 그런 문제다. 곽노현 교육감이 박명기 교수에게 돈을 건넸을 때만 해도, 그것은 어디서나 있을 수 있는 한 개인의 도덕적 스캔들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마에 '진보' 딱지 붙인 수많은 교수와 논객들이 곽 교육감을 옹호한답시고 저마다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문제는 졸지에 진보진영 전체의 도덕적 스캔들로 비화했다.

어느 '진보적' 교수는 칼럼에서 "가끔은 상식을 뛰어넘는 진실이 있다"고 주장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가면, 그냥 '이해가 안 된다'고 하면 된다. 굳이 '상식을 초월한 진실이 있어, 그 진실은 마음에서 마음으로만 전달된다'고 우길 필요는 없다. 믿음을 증거로 삼는 일은 교회에서나 할 일이다. 또 다른 교수는 칼럼에서 아예 "도덕 따위는 보수에게 던져주라"고 외친다. 이 정도면 자살 테제다. 그의 바람이 실현된 것일까? 그 반대편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우리 정부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외친다. 진보와 보수가 아예 위치를 바꾸어 개그를 하기로 약속한 모양이다. ㄷ그룹 총수라는 논객은 '지식인들이 적 앞에 지레 겁을 먹어 동지를 적에게 내주는 의리 없는 짓을 했다'며 반지식인 선동에 나섰다. 이번 사태는 황우석·심형래를 옹호하다가 스타일 구긴 바 있는 그에게 명예회복의 좋은 기회를 주었다. 하긴, 곽 교육감은 앞의 두 사람과 전혀 다르지 않은가?

곽 교육감 옹호에 쓰인 이 세 가지 어법은 새로운 게 아니다. 혹시 집에 라는 책이 있다면 뒤져 보라. '그분을 믿습니다', '힘이야말로 정의다', '지식인은 민중을 배반한다'는 논리는 언젠가 이인화라는 소설가가 주창하던 것으로, 그 근원은 제3제국의 철학자들로 거슬러 올라간다.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내가 알기로 '우리가 남이가'는 원래 한나라당의 철학이었다. 숭고한 동지애로 한나라당은 성희롱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강용석 의원을 용서했고, 그 호의에 힘입어 이 물총 스나이퍼는 나경원 후보의 흑기사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게 고작 이런 문화였던가?

몇가지 묻자. 과거 보수의 도덕적 스캔들 앞에서도 진보는 무죄추정하고 법원의 판결만 기다렸던가? 앞으로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그때도 진보는 상대 후보에게 2억의 '선의'를 베풀 것인가? 만약 보수에서 후보를 매수하고는 공소시효가 지난 후에 돈을 주며 '선의였다'고 주장하면, 처벌하지 말아야 하는가? 이 세 물음에 모두 '노'라고 대답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이 사안에 평소와는 다른 잣대를 들이대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우리는 공정하지 못한 것이다. 공정함. 그것을 다른 말로 '정의'라 부른다. 정의는 배트맨의 덕성 같은 게 아니다. 한나라당은 아마 보수가 배트맨이고 진보는 조커라 믿을 테니까.

나는 곽 교육감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가 존경할 만한 분이라 믿는다. 하지만 그 존경이 '정의'를 무너뜨린다면, 그때 우리는 '진보'해야 할 이유마저 잃게 될 것이다.



박원순 “시민들의 정치혁명…변화의 욕구 느껴”

 3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진행된 '서울시장 야권단일후보 선출 국민참여경선'에서 야권 후보로 확정된 박원순 후보는 민주당 입당 여부, 안철수 원장과의 관계설정 등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임태희 대통령실장이 2일 대기업의 후원금이 적절치 않을 수 있다며 공격에 가세했다. 앞으로 선거기간 내내 네거티브 공세가 예상되는데, 어떻게 대처할 건지?

 "새로운 시대, 새로운 정치란 과거의 정치와 결별을 의미한다. 오늘 확인한 것처럼 선거 과정 자체가, 참여 자체가 바뀌고 있다. 지형이 바뀌고 있다. 다시 말하면, 과거의 동원이나 억지가 아니라 시민들 자발적 참여로 이뤄지는 긍정적인 새로운 패턴의 선거 문화가 정착하고 있다. 과거처럼 네거티브 방식으로 음해하고 마타도어(흑색선전)로 얼룩진 선거가 아니라, 비전과 정책 중심으로 미래를 고민하는 소통의 축제 같은 선거가 자리잡을 것이라 본다. 서울시민을 믿고 우리 국민들의 수준을 믿는다. 이번 선거야말로, 그런 과거의 발목을 잡는 사람이 없진 않겠지만, 본질적으로 업그레이드된 시민 의식이 새로운 선거를 낳을 것이다. 저는 어떤 네거티브 책동에도 상관 않고 제 길을 가겠다. 누구에게도 인신공격이나 비난을 하지 않고 오직 정책 비전 중심으로 선거를 치러나갈 것이다.

 -당선소감에서 '안철수 원장(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과의 약속'을 언급하셨다. 이와 관련해서 민주당 입당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인데, 어떤 입장인가? 야권 혁신과 통합에 대한 입장은?

 "안철수 원장과 구체적인 약속이나 협의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50% 지지율을 (가진 안 원장이) 5%의 지지율을 가진 저에게 양보하면서 주신 언약이, 약속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점을 늘 가슴에 새기고 이 선거를 치를 것이다. 민주당의 경우, 저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야권단일후보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 어려움 없진 않았지만, 그대로 실천해서 승리의 기쁨을 맛보게 됐다. 저는 민주당과 함께할 것이고 야권단일후보라는 것 자체가 이미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시민사회와 함께 공동 선거대책위원회 꾸려서 함께갈 것이고, 선거 끝난 뒤에도 시정운영협의회를 만들어 일상적인 시정 협의를 만들어간다는 데 합의한 바 있다. 구체적으로 민주당 입당해달라는 요구가 상당히 있지만, 야권단일후보로서 야권 전체 의견을 모으는 과정 거쳐서 최종적으로 말씀드리겠다.

 민주당 입당 요구가 현실적으로 있는 게 사실이다. 동시에 제 경우엔 제도권 정치를 넘어서는 뭔가 새로운 변화와 혁신 요구하는 시대의 목소리를 안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런 면에서 지금 저와 함께 협력할 민주당을 포함한 야당들과 시민사회의 폭넓은 의견을 수렴해서 며칠 남은 선거등록기간 동안 고민해보고자 한다."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 향후 일정을 어디에 중점 두고 해갈 건지?

 "티비토론 준비하면서 굉장히 힘든 점을 느겼다. 10년도 훨씬 전에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할 때엔 정치적 감각도 있었고 사회 현안에 대한 깊은 이해도 있었지만, 아름다운 재단, 아름다운 가게, 희망제작소 하면서 정치와는 먼 거리에 있었던 게 사실이다. 정치적 감각과 현안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시간이 좀 걸린다. 열심히 공부하고 있고, 그 감각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무엇보다 무엇을 준비하기보다는 제가 살아온 삶의 많은 경험이 서울시장 선거와 그 이후 시장으로서 자질과 역량과 경험에 그대로 반영되고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시민들에게 제대로 보여주려는 노력을 하려 한다."

 -누구에게 가장 감사하는지?

 "시민들의 선거 혁명 아닙니까. 오전만 해도 이길(수 있을)까 우려했는데, 점심 이후 사람들 눈빛이 달라졌다. 새로운 변화의 기운을 감지했다. 사실 참여경선은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라고 처음부터 예측했지만, 역시 서울시민은 변화의 욕구를 만들었고 그 변화의 욕구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어디로 가시나?

 "이제 쉬어야죠. 집으로 갑니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박원순, 서울시장 야권 단일후보로 선출

서울시장 야권단일후보 선출 국민참여경선이 치러진 3일 박원순 시민사회 후보가 최종 지지율 52.15%로 45.57%의 지지를 받은 박영선 민주당 후보를 제치고 단일 후보로 선출됐다. 민주노동당 최규엽 후보는 2.28%의 지지를 얻었다.

 박원순 후보는 이날 당선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야권 통합 경선에서 변화를 바라는 서울시민이 승리했다"며 "하나부터 열까지 보통 시민이 만든 후보로 10월6일 변화와 통일의 새로운 이름을 등록할 것"이라고 말했다.

 60%에 육박하는 높은 투표율을 기록한 3일 서울시장 야권단일후보 선출 국민참여경선은 중장년층과 젊은층을 망라한 다양한 세대의 참여로 축제의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투표에 참여한 한인순(35·회사원)씨는 15개월 된 아들을 안고 서울 장충체육관 투표소를 찾았다. 한씨는 "정치에 관심은 꽤 있었지만, 경선에 참여한 것은 처음"이라며 "주변에 정치참여를 많이 권하는 편이고, 그래서 남편도 신청해 함께 투표하게 됐다"고 말했다. 임신 8개월인 부인과 함께 찾은 이아무개(32·회사원)씨는 "박영선, 박원순 누가 돼도 좋다"며 본 선거에 대한 기대에 부풀었다.

 이날 오전에는 중장년층이 많이 찾았으나 오후로 시간이 흐르면서 투표소를 찾는 젊은 층들이 늘었고 결국 박원순 후보 쪽으로 승부가 기울었다. 최영숙(43)씨는 "박원순 변호사가 언젠가는 정치에 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기존 정치권에 돌풍을 몰고 온 '안철수 효과'도 다시 확인됐다. 이씨는 "안철수가 연대를 선언하면서 박원순 변호사를 지지하게 됐고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석제(39·엔지오 활동가)씨는 "정권 교체를 두번 겪지 않았나"라며 "기성정치에 대한 염증이 크다"고 말했다.

 아이들과 함께 참여해 "정치의 현장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이들이 많았던 것도 이번 국민참여경선의 특징이다. 9살 쌍둥이 남매를 데리고 나온 최영숙씨는 "아이들에게 이런 현장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씨는 "18살 큰 아이는 나꼼수 팬인데 곧 시험이라 못 왔다"고 덧붙였다. 4살배기 큰 아들을 목마 태우고 투표소를 찾은 이형석(35)씨는 "투표소에 아이와 함께 들어가 찍었다"고 말했다.

디지털뉴스부,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고맙습니다.



아래는 박원순 후보의 수락연설

서울시장 야권단일후보 박원순 입니다.

서울시민 여러분,

드디어 새로운 서울을 향한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새로운 방식으로 열린 대한민국 최초의 야권통합경선에서 변화를 바라는 서울 시민이 승리했습니다.

서울시민 여러분 들리십니까?

드디어 새로운 서울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시민 여러분 준비되셨습니까?

이명박 대통령과 오세훈 전 시장의 서울 실정 10년을 끝낼 준비가 되셨습니까?

저는 이제 우리가 한나라당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를 넘어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민주당원 여러분께도 말씀드립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민주당이 써온 역사 위에 새로운 미래를 써 나갈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다시 새로운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서울, 새로운 대한민국을 우리가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새로운 미래는 고단한 현실을 바꿔 새로운 꿈으로 빚어내는 일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제게 돈과 조직을 만들어주신 시민 여러분, 고맙습니다.

박원순은 하나부터 열까지 보통 시민이 만든 후보입니다.

민주당 박영선 후보님, 감사합니다.

제게 따뜻한 마음 보내주셨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고맙습니다.

민주당과 박영선 후보님이 계셔서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민주당을 중심으로 크고 넓게 정치를 바로 세우겠다는 약속,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민주노동당 최규엽 후보님 끝까지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엇으로 이 마음을 전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민주노동당과 함께 서민을 위하겠다는 약속,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한국진보연대, 혁신과 통합, 희망과 대안, 많은 시민사회단체에도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안철수 원장님과의 약속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이제 박원순은 변화를 바라는 서울시민을 대신해 선언합니다.

10월6일 우리는 새로운 서울을 등록할 것입니다.

'변화와 통합'의 이름을 등록할 것입니다.

박 원 순 석 자 안에 새겨진 여러분 모두의 이름을 등록할 것입니다.

희망의 시민 여러분,

우리는 10월26일 옛 시대의 막차를 떠나보낼 것입니다.

우리는 10월26일 새 시대의 첫차를 타고 떠날 것입니다.

낡은 시대는 역사의 뒷면으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정하고 그들이 지시하는 그들만의 리그는 다시 복귀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낡은 시대를 거울삼아 새로운 역사를 다시 쓰고 있습니다.

저는 단 한 마디의 네거티브도 없이 경선에 승리했습니다.

한나라당과 청와대까지 가세한 파상공세를 물리쳤습니다.

자부심을 느낍니다.

돈이 없는 제게 자금이 되어주셨고,

조직이 없는 제게 시스템이 되어주셨고,

공격을 당하는 제게 미디어가 되어주셨습니다.

수평적 네트워크,자발적 참여, 진심의 협력,쌍방향 소통, 연결 지성.

저는 이것을 '사람을 향한 공감과 동행'의 캠페인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저는 이것이 새로운 시대의 지표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우리들의 승리를 새로운 시대를 예비하는 깃발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는 그냥 오지 않습니다.

새로운 생각, 가치, 방법은 수많은 장애물과 방해를 넘어 완성될 것입니다.

통합과 변화는 2011년 서울의 시대정신입니다.

이제까지의 서울시장의 일은 도시의 외관을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만난 시민들의 공통된 요구는 '내 삶을 바꿔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앞으로 서울시정 10년은 '사람을 위해 도시를 바꾸는 10년'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 10년,

'서울, 사람이 행복하다' 이것이 서울시와 서울 시장의 좌표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만들 새로운 공동체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고단하고 지친 삶을 사는 서울시민들에게 달려가 친구가 되고 위로가 되는 첫 번째 시장이 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고종석 칼럼] 빈소에서

지인 어머님의 빈소(殯所)에 왔다. 빈소는 성찰의 자리다. 이곳은 죽음의 터, 어떤 실존의 마지막 공간이기 때문이다. 죽음이라는 사태의, 죽음이라는 말의 궂음을 지우려고 술 마시며 왁자지껄 떠들어도, 조문객의 마음 한구석에선 짙든 옅든 반구(反求)의 기(氣)가 피어오른다.

천문학적 지질학적 시간을 심중에 둘 때, 우리 행성에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한 것은 극히 최근 일이다. 그리고 테크노사이언스에 대한 우리들의 맹목적 집착과 '어머니-지구'에 대한 매정함을 생각하면, 인류가 사라질 날도 아주 멀어 보이진 않는다. 이것은 생태근본주의자가 아닌 사람도 납득할 만한 예측이다. 칼 세이건이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라 부른 이 행성에 최초의 호모 사피엔스가 나타난 이래, 우리 인류는 얼마나 고귀해졌을까? 어느 조문객이 놓고 갔을 신문에는 '도가니'가, '성추행 의대생'이, '후쿠시마의 플루토늄'이, '저축은행 사태'가, 'MB, 우리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 찍혀 있다. 이런 뉴스들의 공통점은 호모 사피엔스의 비천함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한때, 인류에게 거룩한 공간이 있었다. 예컨대 교회. 설령 인격신을 믿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그곳에선 마음의 안식을 얻고 잠시라도 제 비천함을 씻어낼 수 있었다. 오늘날 교회는 '영혼'을 사고파는 시장이다. 그 규모가 무기 시장이나 마약 시장 못지않을 테다. 종교가 돈벌이 수단이 된 것이 타락한 성직자들 탓만은 아니다. 그 '영혼 상인들'을 따르는 소위 '성도'(聖徒)들의 어리석음과 치졸한 이기심이 아니라면, 교회가 기업으로 어찌 존속할 수 있으랴. 그 '성도들'의 믿음도 사실 믿을 게 못 된다. 전능하고 선한 신의 존재를 그들이 굳게 믿는다면, 우리 창백한 푸른 점이 이리도 스산하고 누추하게 응축돼 있지는 않으리라.

법원도 한때는 성스러웠다. 인간의 법정은 하느님 법정의 축소판으로, 하느님의 정의를 실현하는 곳으로 이해되었다. 오늘날 재판정에는 그런 거룩한 기운이 없다. 판사가 걸친 법복은 신성함을 가장하기에 너무 얇다. 법정은 진실을 밝히는 자리가 아니라, 진실을 덮는 기술의 경연장이다. 더 유능한 기술자를 사기 위해선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또는 더 많은 권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건희씨의 옥살이를 결코 보지 못할 것이다.

시민계급의 등장과 함께 태어난 신문은, 비록 신성한 공간은 아닐지라도, 한때 공정한 공간이라 여겨졌다. 재판정 바깥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공간이라 간주됐다. 오늘날 그리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신문은 어떤 정파를, 특정 계급을, 궁극적으로 자본을 대변한다. 방송이나 소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다를 바 없다. 별난 일도 아니다. 최초의 정기간행물이라는 17세기의 (Journal des Savants)이든 요즘 젊은이들이 손에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이든, 그 내용을 채우는 것은 '비천한 우리들', 인간이기 때문이다. 올드미디어든 뉴미디어든, 그곳은 소통의 공간이라기보다 인간 욕망의 싸움터다. 미디어 인간은 자신 또는 제 집단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는 싸울아비들이다.

인간은 본디 세속적이다. 사실 '인간'이라는 말의 구식 용법을 따르면, 이것은 아무런 정보도 늘리지 못하는 분석명제다. '사람과 사람 사이'(人間)가 곧 세속이니 말이다. 그런 한편, 인간의 마음 한구석에는 성스러움을 찾는 본능이 있다. 밤하늘의 수많은 별을 보며 자신의 왜소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우리들 각자는 우주 한 끝의 창백한 푸른 점에 찍힌 극미(極微)의 점일 뿐인 것을. 그러나 이제 성스러운 곳은 없다. 자본주의의 가장 큰 승리는 이 행성에서 거룩함을 없애버렸다는 데 있을 것이다. 비록 상조 회사들의 상혼으로 더러 어지럽긴 하지만, 빈소가 그나마 남아 있는 마지막 성소인 듯하다.

아무렇거나 낙관주의는 생명체의 운명이자 의무다. 우리는 지상에 결코 낙원을 건설할 수 없겠지만, 지금보다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 누군가가 "진실은 진실화 과정"이라고 말했듯, 낙원은 낙원을 향한 도정이다. 그 연대와 사랑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언론인

[한겨레 프리즘] 자유 / 김진철

오랜만에 이념 논쟁이 불붙었다. 논쟁의 주인공은 '자유'다. 이 자유로운 나라에서 민주주의에 자유를 붙이는 게 옳으냐 그르냐를 두고 벌어진 싸움이다.

이 나라는 반값 등록금을 요구하는 학생 시위대에 물대포를 쏠 자유가 경찰에게 보장돼 있다. 아울러 이 자유 대한민국에서는 국가보안법 입건자가 매년 100명을 넘어설 정도로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시민들에게 주어진 나라다. 뿐만 아니라, 미국산 쇠고기 문제를 다룬 티브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방송피디는 법정에 서고, 그림 잘 그리는 시민이 길거리에 쥐새끼 그림 좀 그렸다고 기소되는 나라다. 이런 나라에서 자유민주주의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민주가 힘을 잃은 터에 웅변되는 자유의 목소리는 무엇을 위한 것일까. 웅변가들의 얄팍한 면모에서 심중이 드러난다. 어느 국회의원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국회의원이 있다면 북한에 가서 국회의원 하라"고 했다. 시위나 양심, 사상의 자유가 처참히 훼손될 때 어디서 뭐 하고 있었는지 모를 교수·학자들도 신문 지상에 대거 등판했다. 누구의 것인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안보와 공공질서를 자유 위에 올려놓던 그들이 왜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여야 하는지 핏대를 세운다.

자유민주주의의 웅변장 한켠에는 '민주'가 숨죽이고 있다. 먹을 것 입을 것 아껴가며 한푼 두푼 모은 서민의 돈이, 부자들의 돈뭉치 앞에서 업신여김 당했다. 한푼 두푼 모은 서민들의 푼돈들은 1500억원 상상할 수 없는 목돈이 되어 폭력배들의 배를 불렸다. 강남 유흥가의 빛 한번 목도하지 못한 서민들의 피땀 어린 돈이 환락의 밤을 수놓는 조폭들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가난한 이의 몇푼 대출에 까다로운 은행가들의 잣대는 부자 폭력배들이 돈을 떼어먹을 땐 힘을 발휘하지 않았다. 서민들은 제 목숨을 끊기도 한다. 제 집을 뉴타운에 빼앗길 절망 속에서 어떤 이는 독극물을 삼켜 세상과 이별했다. 뉴타운 광풍 속에 작은 집 한칸을 지키기 위해 어떤 이들은 제 몸에 불을 붙이려 했다. 재벌 건설사들은 뉴타운에서 사람 대신 수익을 지켜볼 뿐이다. 정부는 뉴타운에서 사람 대신 건설사들을 목도할 뿐이다. 뉴타운의 장밋빛 꿈은 서민들의 것이 아니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말 못하는 어린 학생들을 성적으로 유린하고도 떳떳하게 대낮 거리를 활보하기도 하는 나라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다. 사기꾼과 폭력배들이 나라의 주인 된 까닭은 권력을 쥔 협잡꾼들 탓이다. 최고권력자 곁에서 호가호위해온 이들은 서민들이 사기당한 돈을 우습지도 않게 집어삼켰다. 사기꾼의 허점을 이용하는 협잡꾼은 그 스스로 폭력배와 다르지 않았다. 그들 스스로 폭력배들이 활개치는 무법의 거리를 방관했다. 그렇게 해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은 협잡꾼과 폭력배와 사기꾼들의 세상이 되어버렸다.

죽은 시인은 아무래도 통탄의 마음으로 울부짖고 있을 듯하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김수영 '푸른하늘을') 협잡과 폭력과 사기가 주인 된 세상에서 자유를 외치는 이들의 심중을 시인은 정확히 간파하고 있건만, 그들은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피와 땀과 눈물을 함께 나눠 흘리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다 라고 노래할 수 있으랴/ 사람들은 맨날/ 겉으로는 자유여, 민주주의여, 동포여! 외쳐대면서도/ 안으로는 제 잇속만 차리고들 있으니/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제 자신을 속이고서.'(김남주 '자유') nowhere@hani.co.kr



[편집국에서] ‘골드만 삭스’를 쏜 사나이 / 김영희

며칠 전 유튜브를 보다가 혼자 뒤집어졌다. 무명의 트레이더, 알레시오 라스타니를 최근 전세계에서 가장 '핫'한 인물로 만든 지난주 영국 (BBC)의 뉴스 영상이다.

화상 연결된 생방송에서 유로존 국가들이 새롭게 마련하고 있는 6주간의 부채위기안의 전망을 묻는 앵커에게 그는 말한다. "수백만명의 저축이 사라져버릴 거다. 경제위기란 암과 같다. 지나가겠지 하고 기다리고 기다리면 암이 더 커지듯 너무 늦어버린다." 당황하는 앵커에게 그는 "고백할 게 있다. 난 매일 밤 잠자리에서 또다른 경기침체를 꿈꾼다 … 대부분의 트레이더들은 경제를 어떻게 고칠지 별로 상관 안 한다. 우리의 일은 거기(위기)서 돈을 버는 것뿐이다"라고 말을 잇더니 마침내 결정타를 날린다.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정부가 아니다. 골드만 삭스다."

이 인터뷰는 '골드만 삭스가 세계를 움직인다'(Goldman Sachs runs the world)라는 제목으로 유튜브에 퍼져나가며 가 '낚였다'는 논란까지 일으켰다. 일부에선 그가 사이코패스거나 기업들을 망신주는 조직 '예스맨 프로젝트'의 일원이라는 추측도 내놨지만, 그는 세계 금융의 또다른 중심 런던에서 활동하는 독립 트레이더인 것으로 드러났다. 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라스타니는 자신의 발언 중 '골드만 삭스'는 바로 '돈'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한 트레이더의 돌발성 발언이라고? 눈을 돌려 미국을 보자. 소수의 젊은 실업자들 중심이었던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운동은 이제 2주를 넘기고 있다. 지난달 30일엔 뉴욕경찰 본부 앞까지 2000~3000명이 행진을 했다. 보스턴에선 1일 미국 최대 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 앞에 3000여명이 모였고, 로스앤젤레스, 샌디에이고, 워싱턴 등지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있다고 'n+1'사이트는 전한다.

사실 이들은 별달리 지도부도, 강령도 없다. 10여명씩 둘러앉아 토론을 하다가 가끔 옆 조의 탬버린 소리에 이야기를 멈추기도 하는 식이다. 일부 시위대가 작성한 10가지 요구사항도 '대기업의 정치권 돈주기를 무제한 허용한 연방법원 판결을 폐지하라'부터 '독감 시즌이 오니 유급 병가를 보장하라' '100% 취업을 보장하라'에 이르기까지 그 수준이 천차만별이다. 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인터넷을 통해 정서를 공유하고 움직이는 이들에 대해 '해시태그(#) 액티비즘의 도래'라 부르면서도 장난이나 소풍 같다는 지적 또한 잊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의 사연은 구체적이다. 이 시위를 처음 제안한 이들이 만든 '우리는 99%다' 블로그에는 미국 전역에서 자신의 사연을 손으로 써서 올린 인증샷이 이어지고 있다. 학자금 빚에 허덕이는 석사학위를 가진 여성은 "많이 노력하면 뭐든지 될 수 있다지만 많이 돈을 내면 뭐든지 될 수 있을 뿐… 나는 99%다"라는 사연을 올렸다.

는 이들을 '시스템에서 걸어나간 이들'이라 일컬으며, 기성 시스템을 부정하고 투표민주주의를 거부하는 최초의 세대가 월가뿐 아니라 지금 스페인, 인도, 이스라엘의 시위에서 등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저명한 미국의 좌파 잡지 의 편집인 마이클 케이진 조지타운대 교수는 이것이 좌파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고 올바르게 지적한다.

한국 사회도 이런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 안철수 현상, 한진중공업·대학등록금 이슈 등엔 '인간다운 삶'의 최소한의 조건마저 박탈당한 데 대한 공분과 기존 정치권에 대한 절망감이 깔려 있다. 단 한국이 한가지 다르다면, 그 정치시스템을 바꿔보겠다고 시스템 밖 사람들이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서울시장 선거는 그 한 예다. dora@hani.co.kr



2011-10-02

[논쟁] ‘도가니’를 어떻게 볼 것인가?

공지영 작가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가 개봉 일주일 만에 관객 159만명을 넘어섰다. 영화의 인기는 극장 밖으로 나와 사회에 큰 파동을 몰고 왔다. 빗발치는 여론에 경찰은 영화의 소재가 된 '광주 인화학교 사건'을 전면 재조사하기로 했다. 아동 성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와 '공소시효 폐지'를 주장하는 운동도 벌어지고 있다. 흥행을 넘어서 사회현상이 된 열풍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소개한다.

'무진'과 닮은 한국사회

영화 가 흥행돌풍을 일으키자, 경찰은 재수사를 발표하고 보건복지부와 한나라당은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 발의를 발표했다. 흥행돌풍도 뜻밖이지만, 정치권의 반응이야말로 참 새삼스럽다. 인화학교 사건은 이미 을 통해 알려졌고, 소설도 많이 읽히지 않았던가. 물론 영상은 활자보다 직접적이고, 영화 관람은 독서보다 동시적 집단행위로 파급력이 높다. 그런데 그게 전부일까?

의 흥행 요인을 텍스트적 맥락에서 보면 세 층위를 지닌다. 첫째, 실화 자체의 충격성이다. 장애인시설 교장과 교직원들이 어린 학생들을 수년간 상습 성폭행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끔찍하지만, 이들이 집행유예로 풀려나 복직되었다는 사실은 공분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둘째, 소설에서 도해한 권력의 구도가 명쾌하다. 사학비리, 전관예우, 교회, 학연 등으로 얽힌 '가진 자들의 연대'를 선명히 부각시키며, 이 사건이 우연한 괴담이 아니라 구조적 사회악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셋째 영화화되면서 더 급진화된 관점을 갖는다. 영화는 소설과 달리, 재판 후 피해자가 직접행동에 나선다. 이를 통해 영화는 '선한 비장애인이 법에 호소하여 약한 장애인을 악에서 구출한다'는 보수적 구도에서, '장애인 스스로 가장 격렬한 저항의 주체가 되고, 비장애인이 그를 추모하며 거리에서 물대포를 맞고 싸우는' 진보적 구도로 나아간다. 또한 영화는 소설이 치중했던 남녀 주인공의 몫을 덜어내고, 아이들의 역할을 강화한다. 여기에 가장 보수적으로 사고하는 노모의 시선 변화까지 첨가하여, 영화는 가장 낮은 자세와 시선으로 관객에게 사건을 이해시키려는 입장을 견지한다. 또한 뚜렷한 증거까지 말소하는 검사와 술자리 장면을 넣음으로써, '사법적 정의'가 불가능함을 확인 사살한다. 그리고 말미에 사법적 싸움으론 졌지만, 저항을 통해 주체가 변하고 희망을 품은 사람들의 연대로 게토가 형성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러한 싸움이 견지해야 할 운동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그러나 가 흥행하는 가장 큰 요인은 콘텍스트적 맥락에 있다. 즉 지금의 한국 사회가 영화 속 '무진'과 한 치도 차이가 없음을 관객 모두 공감하기 때문이다. 사학권력과 기독교단이 한 몸이 되어 방어했던 사학법 개정, 그 싸움의 첨병이었던 한나라당과 보수언론, 이들이 대표하는 자본가들, 그들의 사교육 독점으로 강화된 학연, 그 정점의 사법권력 등등. 이들이 선거를 비롯한 분기점마다 노골적인 계급결계를 과시하는 것을 수차례 목도하지 않았던가. 이제 '무진'의 안개는 걷히고 실체는 명확해졌다. '도가니'는 분노로 들끓을 일만 남았다. 분노하라!

황진미 영화평론가


아동 성범죄에 관용 배제해야

최근 개봉한 란 영화가 우리 사회를 들끓게 하고 있다. 영화가 이렇게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은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무참하게 유린된 청소년 장애인들의 인권문제를 고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계기로 사건을 재조사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그래서 관계기관은 황급히 대책을 수립하겠다고 나서고, 수사기관은 관련자들을 철저하게 재수사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사후 조치가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이미 사건의 대부분은 공소시효가 지났고, 일부는 형사처벌을 받음으로써 일사부재리 원칙과 이중처벌금지 원칙에 따라 처벌하기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등으로 아동 성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공소시효를 폐지함으로써 반인륜 범죄에 대해서는 끝까지 추적하여 처벌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충분한 이유가 있고 공감할 수 있다. 그리고 국제사회에서도 살인, 테러, 성범죄 등 반인륜적 범죄에 대하여 공소시효 폐지가 확산되고 있다. 그렇지만 살인과 같은 흉악범죄에 대해서도 공소시효가 존재하기 때문에 다른 중범죄와의 형평성 문제를 고려할 때 아동 성범죄에 대해서만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것은 국가의 법정책상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공소시효의 폐지만으로는 아동 성범죄의 예방을 위한 효과적인 대책이라 볼 수 없다. 다만 아동 성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현행 법체계에서 최대한으로 확대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본다.

아동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에 아동 성범죄가 인간성을 파괴하는 반인륜적 범죄라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아동 성범죄 예방을 위한 교육을 학교에서부터 체계적·구체적으로 실시해야 하고 범죄의 위험성을 지속적으로 알려야 한다. 그리고 일반 성범죄와 구분하여 아동 성범죄에 대한 특별법까지 제정한 취지를 살려서 아동 성범죄에 대해서는 형벌의 하한선을 상향조정하여 처벌을 강화하고 집행유예나 벌금형 등을 배제해야 한다. 또한 아동 성범죄의 위험성에 노출된 학교나 시설 등에 대한 철저한 실태 파악과 함께 상시적인 감독과 감시를 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나아가 피해자의 원상 회복을 위한 평생치료제도 등 보호제도도 강화해야 한다. 아동은 우리의 미래를 위한 인권의 주체이면서 보호되어야 할 대상이다. 빈번하게 발생하는 아동 성범죄를 예방하고자 하는 확고한 의지와 사회환경의 조성이 절실히 요구된다.

김상겸 동국대 법대 교수

장애아동 처절한 현실, 직접 보라

현장에서 장애인 성폭력 사건을 지원해온 필자는 '도가니 사태'를 지켜보며 복잡한 심정이다. 는 주인공 인호(공유 분)의 시선을 따라간다. '인호'라는 대리자의 시점은 인화학교 사건 피해자들의 처절한 일상에 접근하는 데 완충지대 역할을 한다. 열악한 환경에 놓인 장애아동의 현실은 대리자의 눈으로만 일부 '보여진다'. 우리는 '엄청난 사건'을 보고 분노하고, 일정 정도 거리를 두고 사건 해결에 참여함으로써 위안을 얻는다. 영화가 높은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이유다.

인호는 '보호자들'이 오히려 장애아동의 인권을 유린하는 상황을 발견하고, 또다른 '보호자'로서 사건을 해결하는 인물이다. '힘없는 장애인'과 '보호자'라는 구도는 너무나 자연스럽다. 이것이 우리가 의심해야 할 시선이다. 장애인은 시설에서 '보호를 받는' 입장이나 사건 해결의 '대리를 받는' 입장에 놓인다. 그런데 장애인을 보호하고 대리하는 것이 누구를 위한, 누구에 의한 선택인가.

영화에서 사건의 해결은 두 가지 차원, 즉 현실 법제도에서 장애아동이 성폭력 피해를 인정받는가와 불의를 저지른 가해자가 처벌을 받는가에 집중된다. 그러나 어린 나이부터 시설에서 자신의 유일한 '보호자'에게 인권유린을 당하면서 가장 기본적인 '상식'의 경험을 박탈당해온 이들에게 법제도 틀 안에서 피해를 인정받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일까? 이는 기존 법제도라는 '상식·정상성'에 안전하게 기대 살아온 이들의 시선이자 욕망이 아닐까? 실제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의 현실은 어떤가?

장애아를 출산한 많은 부모들이 양육을 포기한다. 입양도 잘 되지 않는다. 수많은 무연고 장애아가 장애인시설에 수용된다. 장애여성의 출산을 막아야 한다며 많은 보호자들이 그들에게 불임시술을 종용한다. 장애아동·청소년이 학교나 또래집단에서 '왕따'나 폭력을 경험하고 그 후유증으로 정신질환까지 앓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교육이나 노동의 기회를 비롯한 기본적 사회관계망을 갖기 힘든 많은 장애여성이 가정이나 시설, 지역에서 가족(보호자)이나 이웃에게 지속적으로 (성)폭력에 노출된다. 사회적 '상식'의 기준을 의심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지금까지 이러한 현실을 사실상 암묵적으로 용인해왔다. 그러면서 동시에 '정상/비정상'의 구분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며 '정상' 사회의 안전함을 지켜왔다.

지금 우리가 '분노'하거나 '위안'하는 것의 실체는 무엇이고, '도가니 사태'의 의미는 무엇인지, 우리 스스로에게 먼저 질문해야 할 때다. '그들'과 나의 거리를 좁히고 직면할 때 를 넘어설 수 있다.

황지성 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장

10월 3일 오늘의 트위트




[유레카] 제임스 토빈과 빌 게이츠의 만남 / 박순빈

신케인스학파의 거장 제임스 토빈(1918~2002)이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에 세금을 부과하자고 제안한 것은 1978년이다. 토빈의 제안은 반세계화 운동의 구호에서만 주로 등장했다. 세계 각국 정부가 다시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를 겪은 뒤부터다. 지금은 유럽을 중심으로 '토빈세' 도입 논의가 활발하다.

토빈은 국경간 자본이동에 0.5% 미만의 작은 세금을 물리면 투기를 억제하고 재정기반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경제학계에서 이런 주장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드물다. 세금과 규제를 싫어하는 신고전학파조차 토빈세의 취지와 목적에는 대부분 동의한다. 문제는 실효성과 실현 가능성이었다.

토빈세 도입의 전제조건은 전세계 동시 부과다. 아니면 토빈세가 없는 곳으로 자금이 몰려 부과하는 쪽은 급격한 자금유출의 피해를 보게 된다. 미국과 유럽이 '토빈세는 바람직하지만 써먹을 수 없는 세금'이라며 반대해온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또다른 반대 명분은 정보통신(IT) 기술의 급속한 발달과 디지털경제의 확산이다. 어떤 금융거래도 컴퓨터에 손가락 하나만 누르면 되는 시대다. 24시간 가동하는 세계 금융시장은 규제당국의 눈과 손길을 벗어난 영역이 너무 커져버렸다. 디지털경제에선 토빈세가 실현 불가능한 세제인 듯했다.

그런데 얼마 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에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토빈세의 실현 가능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게이츠는 11월 프랑스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토빈세 도입 방안에 대한 보고서를 정식으로 제출할 예정이다. 죽은 경제학자의 33년 전 아이디어를 살아있는 '디지털 신화'의 주인공이 어떻게 살려낼지 궁금해진다. 박순빈 논설위원 sbpar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