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31

일본 ‘전자책 시장 키우기’ 나섰다

일본 정부가 전자책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출판업계와 손을 잡기로 했다. 출판업계가 추진하고 있는 전자책 제작과 유통망 확충에 정부가 출자한 펀드 등이 거액을 투자하기로 한 것이다.

29일 보도를 보면, 일본 정부가 90%의 지분을 가진 관-민 합동 펀드인 산업혁신기구는 내년 2월에 출판업계가 연합해 설립하는 출판디지털 기구에 150억엔을 투자한다. 출판디지털기구는 고단샤 등 3개 대형 출판사와 인쇄회사 등이 중심이 되어 설립하는 회사로 100만권의 책을 전자책으로 만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산업혁신기구는 이 회사의 자본금 170억엔 가운데 90%를 출자해 최대주주가 될 예정이다. 일본 정부가 100% 출자한 정책금융기관인 일본정책투자은행은 미쓰이물산과 도시바, 엔이시 등과 함께 전자책 배신 서비스회사인 '북 라이브'와 자본제휴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 투자기구들의 이런 움직임은 전자책 시장을 키우기 위한 것이다. 일본의 전자책 시장은 현재 연간 600억엔(약 8000억원) 규모인데, 2015년에는 2000억~3000억엔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미쓰이물산은 내다보고 있다.

도쿄/정남구 특파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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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살하지 않았다...경찰은 왜 속였나


'운동권' 학생이었던 1992년, 나는 직업적인 운동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내가 선택한 분야는 '인권 운동'이었다. 거칠게 표현해서 1970~80년대가 '노동운동'이 대세였다면 87년 6월 항쟁 이후 1990년대 초까지 대세는 분명 '통일운동'이었다.

하지만 나는 '인권 운동'을 선택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1990년 3월, 학생운동을 함께하던 동료의 억울한 의문사를 밝히고자 싸우던 중 겪었던 경험 때문이었다. 너무나 힘들고 무섭고 고통스러웠던 그때, 누구라도 좋으니 절박한 호소를 들어줄 누군가가 정말 그리웠다.

그러다가 집시법 위반으로 영장이 발부된 1991년 3월, 수갑과 포승줄로 묶인 채 호송되는 버스 안에서 '직업적인 인권운동가'가 되겠다고 처음으로 결심했다. 나 같은 처지의 누군가에게 작은 힘이 되어 주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그 간절함이 이후 인권운동가의 길로 접어든 계기가 되었다.

'유서대필 강기훈 사건'이란?1991년 4월 26일. 당시 명지대생 강경대(20)씨가 경찰의 쇠파이프에 머리를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총학생회장 석방 요구 시위에 처음 참여한 새내기였던 강씨를 경찰이 쇠파이프로 때려죽였다는 충격적인 사실과 이에 따른 반발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 울분을 참지 못한 학생과 시민들이 정권 퇴진을 요구했고 시위는 확산 일로를 거듭했다. 노태우 군사정권의 분명한 위기였다. 그러던 1991년 5월 8일 아침, 한 재야 활동가가 정권 퇴진 요구 유서를 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이었다. 그런데 경찰·검찰·안기부(현 국정원) 등으로 구성된 소위 '관계기관 대책회의'에서는 잇따른 분신 사건 배후에 이를 조종하는 세력이 있다는 '분신 배후설'을 제기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사건이 이른바 '유서대필 강기훈 사건'이었다. 당시 검찰은 김기설에게 유서를 대신 써 준 사람을 검거한다면서 여러 명을 거론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유서 대필범으로 '정해진' 이가 김기설의 동료였던 강기훈씨였다.  그것은 진실과는 상관없었다. 정권의 위기 탈출을 위해 필요한 것은 오직 '유서 대필범'이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이 어처구니없는 '거짓말'을 매일 매일 조중동이 써대니 처음엔 믿지 않던 국민도 이내 혼란으로 빠졌다. 진짠가? 아닌가? 마치 지금 천안함의 진실을 두고 벌어지는 현상처럼 말이다.


생각해보면 인권운동가의 숙명은 '세상의 거짓'과 싸우는 것이 아닐까 싶다. 처음 활동한 단체가 '유서대필사건 강기훈 무죄석방 공대위'였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나는 그곳에서 간사로 일했다.

결론적으로 '유서대필 사건은 조작'이었다. 2007년 11월 13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이하 '진실위')의 발표였다. 진실은 역시 단순했다. '유서는 김기설의 필체가 맞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강기훈씨가 '유서 대필범'이라는 '거짓말'이 공식적인 거짓으로 밝혀지기까지 16년의 허망한 세월이 필요했다. 그리고 강씨는 3년 2개월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 했다. 그와 그 가족들이 겪어야 했던 정신적 고통과 상처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가혹했다. 다시 한번 그에게 위로를 전한다.

이처럼 내가 해온 인권 운동은 '거짓과의 싸움'이었다. 대부분 경찰·검찰 등 국가 권력의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을 만나 그들의 사연에 귀 기울여주는 일이었다. 예를 들어, 19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사망사건이라든가 전남 완도 존속살인 여 무기수 사건이 그랬다.

또한, 서울 모 여고 재산관리인으로 일하다가 청부 살해된 이 역시 아픈 상처로 남아 있고 살인범으로 15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어떤 청년의 불행한 사건 역시 내가 관여한 사건 중 하나였다.

억울한 죽음, 신호수를 아시나요?



그 가운데 1994년 내가 두 번째 인권단체 활동가로 일한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에서 만난 분들의 사연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처음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벽면을 빼곡하게 채웠던 영정 사진 앞에서 나는 왈칵 눈물이 솟구쳤다.

너무나 많은 이들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던 야만적인 시대가 있었다. 박종철, 이한열, 김성수, 이철규, 이내창, 박창수, 김귀정 등등등. 낯익은 이름과 얼굴들 속에 유독 내 관심을 끌었던 이는 낯선 이름 '신호수'씨였다. 사건 당시 23살(1963년생)이었던 신씨가 불행한 사건에 연루된 것은 전두환 독재정권이 마지막으로 발악하던 1986년이었다.

1986년 6월 11일, 신호수는 직장인 인천에서 서울 서부경찰서 대공과 소속 경찰관에게 체포된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였다. 공안사건과 상관없는 그가 이같은 혐의로 체포된 이유는 자신의 자취방 장판 밑에 숨겨둔 북한 삐라 34장 때문이었다. 경위는 이랬다. 1985년 전남 장흥에서 방위 복무를 했던 신호수는 소집 해제 후 이사를 했다. 그런데 방 주인이 방바닥에 깔려있던 삐라를 발견했고 이를 경찰에 신고하면서 그의 운명은 꼬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신호수는 왜 이처럼 많은 삐라를 보관했던 것일까? 조사 결과 이는 군 포상휴가를 받기 위한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로 신호수가 복무하던 부대에서는 상당량의 삐라를 가져오면 포상 휴가를 줘 왔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그의 삐라 관련 의혹은 해소되었다. 하지만 신호수는 가족들에게 돌아가지 못했다. 가족들에게 들려온 소식은 신호수의 사망이었다.

경찰에 연행된 지 8일이 지난 6월 19일, 신호수는 엉뚱하게도 자신의 고향인 여수 돌산읍 대미산의 한 동굴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되었다. 경찰은 사인을 '자살'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일반적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발표를 믿을 수 없었다.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신호수의 사망 경위였다.

당시 경찰은 "신호수가 입고 있던 옷을 벗어 그 끝을 묶은 후 동굴 천장 부근의 바위틈에 끼워 빠지지 않게 하고 목을 매 자살했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경찰의 이러한 주장은 억지에 불과했다. 신호수의 사체를 처음 목격한 유아무개씨가 2001년 의문사위에 출석하여 진술한 내용이다.

"(사건 직후) 현장 검증에 참석하라고 하여 경찰들과 함께 동굴에 갔다. 그러면서 경찰이 나에게 발견 당시 상황을 설명하라고 했다. 이후 경찰들은 내가 목격한 것처럼 신호수의 자살 자세를 재현하고자 시도했으나 끝내 실패했다."

경찰의 뻔한 거짓말이 밝혀지기까지 23년 세월 흘러



그렇다면 경찰은 왜 신호수의 자살 경로를 재현하지 못했을까. 애초부터 자살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경찰의 주장처럼 신호수가 자살하려면 약 2.5미터나 되는 동굴의 천장까지 올라가 그 틈에 옷의 뭉치를 걸어야 했다. 그러나 이렇게 하려면 제3의 누군가가 도와주거나 또는 사다리 등 도구가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의 실패는 당연했다.

그런데 불가능은 이것 말고도 또 있었다. 신호수의 자세였다. 사체 발견 당시 신호수는 묘하게도 양팔과 몸통이 허리띠로 묶여 있었다. 그래서 가정한다면 신호수는 먼저 자신의 양팔과 몸통을 허리띠로 묶어야 한다. 그런 후 자신의 키인 165cm보다 높은 250cm 위치에 형태상 접근이 불가능한 바위까지 올라가서 목을 매야 자살이 가능한 일이었다. 이처럼 2중, 3중으로 불가능한 조건이었으니 당시 경찰의 '이상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살 입증에 실패하게 된 것이었다.

타살 의혹이 제기되었고 그 의혹의 끝은 당연히 신호수를 연행한 경찰을 향했다. 물론 경찰은 강력 부인했다. 특히 신호수를 연행한 경찰 차아무개씨는 "확인해보니 포상 휴가를 위해 삐라를 모아둔 것으로 밝혀져 3시간 만에 훈방 처리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같은 차씨의 주장만 있을 뿐 석방된 신호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더구나 진실위 조사 과정에서 차씨의 주장과 배치되는 진술이 잇따랐다. 차씨와 같이 근무했던 그 당시 경찰관 4명의 진술이었다. 그들은 신호수가 연행된 후 적어도 3일 이상 서부경찰서에 있는 것을 봤다고 진술했다. 즉, 3시간 만에 신호수를 석방했다는 차씨의 말은 거짓말이었던 것이다.

거짓말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경찰은 신호수를 연행한 이유가 삐라 신고를 받고 착수한 통상적인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역시 사실과 달랐다. 밝혀진 사실에 의하면 경찰은 신호수를 연행하기 9개월 전부터 이른바 '장흥 공작'이라는 이름까지 붙여 이 사건을 준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놀랍게도 신호수의 혐의는 '간첩'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신호수에게 해명 몇 마디 듣고 경찰이 석방했다니 믿을 수 있을까.

이 뻔한 경찰의 거짓말이 '거짓말'로 밝혀지기까지 23년의 세월이 흘렀다. 2009년 11월 10일, 진실위는 "서부경찰서 수사관 차씨 등이 '장흥 공작'을 통해 신호수를 간첩으로 조작하는 과정에서 사망하자 이를 자살로 위장했던 것으로 판단한다"며 공권력의 부당한 행사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거짓과 싸우는 숙명, '인권운동가'

여기서 끝났어야 할 신호수의 불행은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2011년 8월 29일, 진실위를 통해 밝혀진 결과를 가지고 신호수의 아버지 신정학씨가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위자료 청구 소송을 제기했는데 이에 대해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는 다음과 같이 판결했다.

"피고 대한민국의 불법 구속으로 인한 신호수의 위자료 청구는 인정하나 경찰의 가혹행위는 증거 불충분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진실위의 발표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다시 말해 경찰의 거짓말에 대한민국 법원이 다시 한번 생명을 불어넣어 준 '부끄러운 판결'이 아닐 수 없었다. 그날 일흔이 넘은 아버지 신정학씨는 법정을 나와 말없이 담배를 물었다.

인권운동가인 내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다수를 위해 소수가 희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소수에게 부당한 처우를 강요할 때마다 즐겨 동원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다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국가가 이같은 논리로 거짓말을 정당화하고 국민을 속인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사태가 그렇고 4대강 사업, 또한 김훈 중위 사건으로 대표되는 군 의문사를 비롯하여 남북 관계에서도 거짓말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정직하지 못한 태도 때문에 요즘 '애매하면 북한측 소행'이라는 우스갯말이 세인들 속에 떠도는 것 아닐까. 

나는 인권운동가로서 이러한 거짓과 싸울 것이다. 이것이 인권운동가인 내가 가진 '올바른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그 길에서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알 수 없으나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진실은 반드시 승리함을 나는 역사 속에서 확인했다. 그 길에서 많이 이들이 함께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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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도대체 뭔 짓을 한 건가?
'범죄조직' 청와대...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 사건이 관계자의 연이은 폭로로 갈수록 파문을 확산시키고 있다.

이 사건은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민간인 사찰을 자행하면서 시작되었고, 2010년 6월 21일 한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이 사실을 폭로하고 같은 달 29일 MBC < PD수첩 >이 그 피해자 사례를 보도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총리실의 민간인 사찰은 한마디로 말해, 암행어사 박문수가 탐관오리는 제쳐두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말하는 백성들을 색출해 인생을 망가뜨린 사건이다.

KBS의 새 노조가 만든 <리셋KBS뉴스9>이 30일 새벽 폭로한 바에 따르면 총리실의 민간인 사찰은 대단히 광범위하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사찰 대상자의 은밀한 사생활까지 세세하게 기록하고 있어 충격을 더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KBS 등 방송사 내부동향과 노조의 성향, 주요인물 평가까지 다루고 있어 정권 차원의 사찰을 통한 언론장악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총리실의 민간인 사찰만 놓고 봐도 이것은 국가기관이 주권자인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행위로서 대단히 심각한 위법사항이다. 그런데 이 사건의 파문이 갈수록 커지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이번 사건의 실체가 민간인 사찰→사건 은폐 및 증거인멸→수사축소→회유 및 재판조율로 이어지는 이른바 '4단 콤보'의 권력형 국가범죄행위라는 것이고 둘째는 청와대와 검찰이 개입했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건의 전모는 총리실의 가장 말단에서 상부의 지시로 하드디스크를 직접 파기(디가우징)한 장진수 전 주무관이 재판과정에서 양심선언을 함으로써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장진수씨의 증언과 밝혀진 사실을 바탕으로 각 단계별 핵심사항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일부 내용에 대해서는 관계자들의 의견다툼이 있다).

[1단계] 민간인 사찰

이 사건의 일차적인 핵심은 대체 누가 민간인 사찰을 기획하고 지시했나, 하는 점이다. 이른바 윗선 혹은 몸통이 누구인지 확인하는 한 가지 방법은 총리실에서 모은 사찰자료가 어떤 라인으로 보고되었는지를 추적하는 것이다.

지난 20일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은 기자회견을 열어 민간인 사찰 사건은 청와대나 민정수석실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공식적인 상부지휘라인은 민정수석실이다. 따라서 지원관실이 민정수석실 몰래 단독으로 불법적인 민간인 사찰을 자행했는지 혹은 그것을 민정수석실이 알고 있었는지가 관건이다.

이에 대해 <서울신문>은 지난해 1월 10일 보도('민간인사찰' 민정수석실 보고 확인)에서 "9일 서울신문이 단독 입수한 '정무위(국회) 제기 민간인 내사 의혹 해명' 문건에 따르면 지원관실은 김 전 대표(김종익) 사찰 결과를 동향보고 형식의 문서로 작성해 2008년 9월 민정수석실에 보고했다. A4 용지 13장 분량으로 된 이 문건은 ▲착수 배경 ▲사건 개요 ▲진행 경과 ▲쟁점사안 등 4개 항목으로 돼 있다"라고 밝혔다. 그러니까 적어도 민정수석실(당시 수석비서관은 정동기 현 법무법인 바른 고문)은 총리실의 민간인 사찰사실을 (지휘여부는 불분명하지만) 인지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물론 이 자체도 위법한 행위다.

<서울신문>은 같은 기사에서 "또 권재진 민정수석(현 법무장관) 때는 검찰이 김 전 대표의 사법처리와 관련해 민정수석실을 통해 지원관실의 의견을 구했고, 지원관실은 민정수석실을 통해 검찰에 기소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는데 이로 미루어 민정수석실이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민간인 사찰에 개입했다고 짐작할 수 있다.

[2단계] 사건의 은폐 및 증거인멸

장진수 전 주무관의 폭로와 이영호 비서관이 기자회견 때 한 자백 등을 종합하면, 적어도 이영호(혹은 그 윗선)가 고용노사비서관실 행정관인 최종석을 통해 장진수로 하여금 하드디스크를 영구파기하도록 했으며 이 과정에서 이영호의 대포폰이 최종석을 통해 장진수에게 전달되었다.

이와 함께 장진수의 증거인멸은 "검찰에서 문제 안 삼기로 민정수석실에서 얘기된" 상태였다. 그리고 이때에 즈음하여 진경락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이 작성한 김종익 비리혐의 문건이 최종석을 통해 당시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에게 전달되었고, 조전혁 의원은 이를 국회에서 폭로하여 여론반전을 꾀했다.

[3단계] 수사축소



장진수 전 주무관에 따르면 최종석 행정관은 검찰의 총리실 압수수색 날짜를 미리 알고 있었고 검찰은 서류나 특히 이영호 관련 자료도 챙기지 않았다. 텅 빈 압수물 박스는 신문지로 채우기도 했다고 한다. <서울신문>이 입수해서 보도한 지원관실의 문건은 검찰이 이미 확보한 문건으로써, 사찰의 윗선을 밝히지 못한 검찰의 수사는 의도적으로 축소된 것이라는 의혹을 갖게 한다.

그리고 '2단계'에서 이미 밝힌 대로 검찰은 처음부터 하드디스크 파기를 문제 삼지 않기로 민정수석과 얘기가 돼 있었다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검찰은 대포폰의 존재는 물론 통화내역도 알고 있었고 최종석의 존재도 알고 있었으나, 장진수 전 주무관에 의하면 자신을 수사한 검사는 대포폰 관련 신문조서를 법원에 제출하지도 않았다(그러나 약속과 달리 장진수 전 주무관에게는 증거인멸의 책임이 지워졌다).

검찰의 수사는 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동기, 사찰 및 증거인멸의 윗선 등 이 사건의 핵심쟁점에 대해서는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총리실 직원 일곱 명을 구속 불구속 기소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4단계] 회유 및 재판조율

장진수 전 주무관에 따르면 민정수석실에서 이번 사건으로 재판받고 있는 7명을 특별관리 했다. 법무법인 바른(사찰 당시의 민정수석이 이곳 고문)의 변호사들은 이들을 조직적으로 관리했고 장진수에게 진실 은폐를 종용하였다. 청와대는 재판 과정 전체를 모니터링(주심판사와 배석판사의 의견 차이까지 인지) 하고 있었으며 형량에 대한 조율(벌금형이 가능하다는 식으로)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는 장진수 전 주무관의 소송비용까지 대 주었다. 최종석 행정관은 "평생 먹여 살리겠다", "캐시로 당겨 주겠다"는 식의 회유를 장진수 전 주무관에게 끊임없이 시도했다. 실제로 2011년 4월 청와대 장석명 공직기강 비서관이 총리실 류충렬 국장을 통해 장진수 전 주무관에게 5천만 원이, 8월에는 이영호 쪽에서 2천만 원이 전달되었다.

이 밖에도 장진수 전 주무관의 아내 일자리 알선(총리실 류충렬 국장, 진경락 전 과장의 후임자), 장진수 전 주무관 본인의 일자리 알선(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장석명→청와대 인사행정관→가스안전공사 사장→가스안전공사 안전관리이사 채충근→경동나비엔 사장→경동나비엔 인사팀장 : 2012년 2월)도 있었다.

요컨대 형량조절, 소송비용 조달, 재판 모니터링, 금품제공, 직장 알선, 그 외 회유 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청와대가 장진수를 '케어'했음을 알 수 있다.

민간인사찰, 대한민국 자체를 공격한 반국가적 범죄



위의 '4단 콤보' 범죄과정을 들여다보면 적어도 청와대의 민정수석실과 사회정책수석실이 민간인 사찰과 증거인멸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여기에 구속자들에게 금일봉을 건넨 임태희 대통령실장까지 보태면 청와대의 핵심라인은 대통령을 보좌하는 기구가 아니라 조직적인 범죄행위를 저지른 '범죄조직'을 구성한 셈이다. 이제는 그다지 놀랍지도 않으나, 이 범죄조직의 '행동대장'은 바로 범죄를 소탕할 책임을 맡은 검찰이었다. 현 정권과 관련된 큰 소송을 도맡아 온 법률법인 바른은 역시나 이번에도 법정에서 충실한 방패막이 역할을 수행했다.

청와대와 검찰을 아우르는 '권력형 국가범죄조직'이 구성되어 국민을 핍박하고 증거를 인멸했으며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주요 국가기능이 무력화되었다는 점에서 이번 민간인 사찰 사건은 MB 정권 하의 다른 어느 사안과도 구별되는, 대단히 중대하고 심각한 범죄행위가 아닐 수 없다.

예컨대 대통령 일가의 내곡동 사건이 권력을 이용해 개인의 이익을 탐했던 범죄에 '불과'하다면, 민간인 사찰 사건은 주요 국가기관을 졸지에 범죄조직으로 둔갑시켜 주권자를 공격하고 증거를 인멸한, 말하자면 대한민국 자체를 공격한 반국가적 범죄사건이다(집권당이 선거관리위원회를 테러한 이른바 10·26 부정선거 의혹사건도 성격상 이와 비슷하나, 아직 그 사건의 전말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공교롭게도 이 사건 역시 검찰은 윗선을 밝히지 못했다). 특히 그 범죄행위가 4단계에 걸쳐 대단히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할 길이 없다.

무릇 모든 범죄조직에는 그 수괴가 있는 법이다. 민간인 사찰이라는 권력형 국가범죄조직 사건의 수괴는 누구일까? 일단 검찰의 재수사가 이루어지고 있으니 그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이미 살펴보았듯이 검찰은 이 범죄조직의 행동대장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실제로 사건의 핵심적인 위치에 있었던 권재진 전 민정수석이 지금 검찰을 지휘하는 법무장관의 자리에 있으니, 재수사에서 새로운 성과가 나오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명박 대통령, 몰랐더라도 사과해야 한다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만 놓고 보더라도 복수의 수석비서관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수괴의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적어도 수석비서관 이상의 선에 진짜 몸통이 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본인들은 부정하고 있지만, 항간에는 박영준 '왕 차관'과 그 뒤의 이상득 의원의 이름도 오르내리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 핵심라인이 망라된 점을 생각해 보면 이명박 대통령이 이번 사건을 전혀 몰랐다고 보기 어렵다. 실제로 장진수 전 주무관은 자신과 관련된 문제가 'VIP'에게 보고되었다고 들었다는 진술을 한 바 있다. 아직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이는 지극히 상식에 부합한다. 대통령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개입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사후에 소극적으로 추인하는 형식 정도는 거치지 않았겠느냐는 의혹을 떨칠 수가 없다. 그렇지 않고서 그 막강한 권력라인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고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만약에 대통령이 몰랐다면 그 또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적어도 둘 이상의 수석비서실이 연루되어 검찰까지 끼고 그렇게 활개를 치고 다녔는데도 대통령이 몰랐다면, 이는 환관들이 황제의 눈과 귀를 막고 국정을 농락하다가 곧 멸망해 버린 고대 중국 어느 나라의 꼴과 다르지 않다. 나는 적어도 대한민국이 그 정도의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의혹은 눈덩이처럼 커지는데 청와대는 여전히 침묵으로 혹은 단답형 오리발로 일관하고 있으니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답답하기 그지없다. 다른 모든 것을 떠나, 국가의 핵심권력기관에 의해 인생을 망친 한 국민에게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진심으로 사과하고 재발방지 약속 정도는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명백하게 사실로 밝혀진 총리실의 민간인 사찰과 그에 따른 피해사례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사과 한 마디 하지 않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일까? 이명박 대통령이 떳떳하고 청와대가 한 점 부끄럼이 없다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대국민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은 물론,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사항을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해명을 해야 한다. 대통령이 정말로 '국민의 머슴'이라면 이것은 상식에 속하는 문제다. 청와대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국민들 사이에서는 '혹시 대통령이 정말로 이 범죄조직의 수괴인 것은 아닐까?' 하는 불순한 의혹만 커져갈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에 진심으로 바란다. 검찰의 공정한 재수사를 위해 최소한 권재진 현 법무장관은 해임해야 한다. 그것이 사건해결을 위한 최소한의 성의다. 그와 함께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국민들에게 재발방지를 약속하라. 그리고 자신이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알고 있는 모든 사실을 솔직하게 공개하라.

박근혜는 왜 이번 사건에 대응하지 않는가

사찰 대상에는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도 포함돼 있었다는데, 박 위원장이 별 다른 대응을 하지 않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평소 법과 원칙을 강조해온 그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박근혜 위원장과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은 이번 사건에 대해서 소극적인 대응으로 일관해 왔다. 행여 이번 사건이 'MB 심판론'과 연결돼서 총선에 불리하게 작용하지나 않을까 하는 선거공학적인 계산을 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불안한 마음을 감추기 어렵다.

민간인 사찰과 증거인멸은 그가 그토록 사랑하는 대한민국의 국기를 뒤흔든 사건이다. 박근혜 위원장이 이 문제의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의 법과 정의보다 박근혜 위원장 자신의 개인적인 권력을 위한 치밀한 이해타산이 앞섰기 때문이라는 비판을 과연 피할 수 있을까?

장진수 전 주무관은 지금 어려운 싸움을 혼자 벌이고 있다. 추한 권력의 거악에 맞선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녹음파일과 기억의 조각들, 그리고 정의와 진실을 갈망하는 국민에 대한 믿음뿐이다. 지금 이 사회 곳곳에 잠재해 있을 공익제보자들은 이번 사건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장진수 전 주무관은 결국 어떻게 될 것인지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 사건을 끝까지 추적해서 범죄자들을 발본색원하고 합당한 처벌을 가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의와 진실이 결국은 이긴다는 사례를 만들지 못한다면 다시는 장진수 전 주무관 같은 공익제보자가 나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이번만큼은 그렇게 넘겨서는 안 된다. 항상은 아니지만 어쩌다 가끔 한 번은 정의가 이길 때가 있다면, 지금이 그 '어쩌다 한 번', 가끔은 정의가 승리하는 그 '어쩌다 한 번'이 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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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이종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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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명이 추천한 파워클래식] "신문 사회면 샅샅이 읽은 도스토옙스키… 구원의 화두는 거기서 나왔다"

"소설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의 주된 소재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돈, 치정, 그리고 살인. 도스토옙스키 소설엔 원래 돈 얘기가 많이 나와요. 작가가 젊었을 때 늘 돈에 쪼들렸고, 그러다 보니 팔리는 소설을 써야 했어요.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게 돈이죠. 그다음이 치정. 사랑 얘기 안 들어가면 안 되고, 또 살인 사건만큼 재밌는 게 없잖아요."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옙스키가 서울 도심 한복판에 왔다. 30일 오후 서울 종각 부근의 북콘서트 전문카페 엠스퀘어. 조선일보와 출판사 '열린책들'이 도스토옙스키의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을 주제로 마련한 북콘서트에서 석영중 고려대 노문과 교수가 미니 강연을 이어갔다. "당대 러시아 사회를 알기 위해서 도스토옙스키는 신문 사회면을 샅샅이 읽었어요. 사건을 찾아 읽고, 소설에 집어넣은 것이죠. 그러면 그의 소설이 대중 소설이냐? 그건 아니죠. 그는 이 팔리는 소재를 통해 '구원'이라는 거대한 화두를 전합니다. 도스토옙스키가 위대한 것은 가장 대중적인 소재로 가장 형이상학적 주제를 다뤘다는 데 있습니다."

이날 콘서트는 명사 101명이 추천한 고전(古典)을 매주 한 권씩 소개하는 '조선일보 101 파워클래식'이 지면의 울타리를 넘어 독자들과 직접 만난 첫 자리. 신간을 펴낸 저자들이 북콘서트나 낭독회를 여는 것은 흔하지만, '고전'이 주인공인 북콘서트는 유례가 드물다.

"신청자 중에 인상적인 분들이 많습니다. 군대에서 휴가 나왔는데 내일 귀대를 앞두고 마지막 밤을 이 콘서트에서 불태우고 싶다고 하신 분, 오셨나요?" 맨 앞쪽에 앉아있던 김종서(26)씨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는 "군대에서 읽은 책 중 가장 두꺼운 책이 바로 이 소설이었는데 이해가 잘 안 됐다"며 "앞으로 러시아 문학을 좀 더 접하고 싶은 마음에 용기 내서 신청했다"고 했다. 전업 작가가 꿈인 중학교 3학년 아들과 함께 온 주부, 초등학교 때 처음 읽다 반쯤 포기했던 책을 10년이 지나 다시 읽고 도스토옙스키의 팬이 됐다는 청년, 올해 목표를 '매월 고전 한 편 이상 읽기'로 잡았다는 회사원…. 연령도 직업도 다양한 독자 50여명이 '도스토옙스키'라는 묵직한 주제 아래 둘러앉았다. "이 소설의 핵심은 '구원'입니다. 주인공 드미트리가 아버지를 죽이지도 않았는데 왜 유죄 선고를 받았는가. '만인은 만인에게 죄인이다.' 이 문장에 답이 있어요. 작가가 말하는 구원이란 사적이고 사소한 것에서 출발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이 바로 구원이라는 것이죠."

2부에선 러시아에서 유학한 연극배우 이상구씨가 무대에 올랐다. "그는 알료샤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친구, 친구여, 나는 굴욕에, 지금 굴욕에 빠져 있단다. 인간은 이 세상에서 참고 지내야 할 것이 엄청나게 많아, 엄청나게 많은 불행이 그 앞에 놓여 있는 거야!'…" 그가 마치 연극을 하듯 소설 속 한 대목을 낭독하자 분위기는 한층 달아올랐다. 관객들의 질문도 쏟아졌다. 주부 주기숙(인천)씨가 "소설에 등장하는 '나'는 작가 자신이냐"고 묻자 석 교수는 "작가 자신으로 보기엔 좀 무리가 있다. 소설이라는 허구의 화자, 저자를 아주 많이 반영하는 화자로 보면 좋겠다"고 답했다. 예정된 두 시간을 훌쩍 넘겨 행사가 끝난 후 석 교수는 "고전이야말로 세대를 아우르는 소통과 공감의 텍스트"라고 했고, 독자 정유진(53)씨는 "인생의 지혜를 배우고 삶의 나침반이 되어주는 고전을 다시 읽으니 눈이 맑게 뜨이는 느낌"이라고 했다. '101 파워클래식'이 독자와 함께 읽을 다음 책은 공자의 논어(4월 2일자 문화면). 4월 7일 서울 교보문고 강남점에서 강연회가 열린다.

허윤희 기자 ostinat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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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8

[펌] 영어쓰기로 미국 명문고 뚫었다

(::필립스엑시터재학 정진아양::)

 

영어쓰기로 미국 명문고 뚫었다 = 정진아(19)양은 지난 1996

 

교수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 메릴랜드주에서 1년간 체류했다.

 

국에 가기 전 잠시 영어학원에 다녔던 것이 정양의 첫 영어공부

 

였다. 미국에서 영어 실력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찾아간 곳

 

은 집 근처 도서관. 이곳 직원의 도움을 받아 정양은 현지 초등

 

학교 3~4년생들이 보는 책들을 베끼기 시작했다. 매일 학교수업을

 

마치면 도서관에서 책을 베끼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보냈다.

 

달을 되풀이하던 어느 날엔가부터 일상 대화의 말문이 트이기 시

 

작했다.

 

1년 후 아버지를 따라 귀국해야 했지만 정양은 영어의 끈을 놓지

 

않았다. 미국에서 사귄 친구들과 꾸준히 e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단순한 안부인사를 넘어 자신의 하루 일과를 영어로 작문해 보

 

냈고 친구들은 틀린 곳이 있으면 바로잡아주었다. 정양은 일기

 

도 영어로 매일 썼으며 나중에는 영어로 시나 소설 그리고 독후

 

감을 쓸 수 있을 만큼의 실력이 되었다글쓰기뿐만 아니라

 

·고등학생 추천도서인 동서양 고전을 미국 친구들에게 부탁해

 

영어원문으로 구해 계속 읽었던 것이 영어작문에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같다고 말했다. 정양의 영어실력은 미국 명문사립고

 

인 필립스엑시터 고등학교의 문을 두드릴 때 에세이와 재정보조

 

금 신청서류 등 수십가지 서류를 혼자서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부

 

쩍 늘었다.

 

200412월 정양은 한국을 방문한 이 학교 면접관과 마주앉았다

 

. 글쓰기와 독해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말하기에 자신이 없었던

 

정양은 주눅이 들었다. 몇차례 질문이 오가고 난 뒤 면접관이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정양은 영어로 읽

 

었던 책을 줄줄이 소개하며 면접관과 책에 관해 토론했다. 그리

 

고 미국에서 돌아온 뒤 자신이 영문으로 지은 시와 소설이 빼곡히

 

담긴 노트 두권을 내밀었다.

 

“I hope to meet you again at Exeter”라며 면접을 마친 면접

 

관은 며칠 뒤 “Congratulations”라는 축하메일을 보내왔다.

 

양은 현재 필립스엑시터고에서 마지막 학기를 보내며 아이비리그

 

에 도전할 준비를 하고 있다.

2012-03-26

경기동부와 친박계는 어떻게 다른가 기성정당과 진보정당 '정치블록'의 같은 점과 다른 점

경기동부와 친박계는 어떻게 다른가

기성정당과 진보정당 '정치블록'의 같은 점과 다른 점


정치권에는 정파 혹은 계파라는 이름의 정치블록이 존재한다. 정치활동이라는 것이 완전히 개인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 만큼 정치행동을 같이하는 블록이 형성되기 마련이다. 정치권의 흐름을 설명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이 정치블록이다. 특히 기성정치권의 ‘합종연횡’을 설명하는 데서 빠지지 않는 것이 ‘계파’다. 

진보정당에도 ‘정파’가 존재하며 최근 통합진보당의 약진이 두드러지자 자연스레 당 내부의 계파에 대한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인기 검색어로 까지 떠오른 이른바 ‘경기동부’라는 명칭의 세력도 통합진보당의 정파 중 하나다. 

그렇다면 진보정당과 기성정치권의 계파는 어떻게 유사하고 어떻게 다른가.

진보정당과 기성정치권의 정치블록 공히 인적 네트워크가 기본이다. 보통 회원을 갖는 조직형태를 띠고 있지는 않되, 어떤 블록의 입장을 갖는 인적 네트워크를 이루게 된다. 정당의 정치적 입장을 결정할 때나 간부, 혹은 후보자를 선출할 때 힘을 발휘하는 게 정치블록이다. 민주주의의 기본적 의사결정 방식이 다수결인 만큼 정치블록 간 대결은 표대결로 외화된다.

예컨대, 구 한나라당에서 친박계와 친이계의 대결은 신문을 장식하는 주된 테마였다. 이는 민주당에서도 비슷했다. 진보정당에서도 대표단 등 간부 선출과정이나 대의원대회에서 입장을 정할 때 정파별 입장이 드러나고 각 정파의 역학관계에 따라 진보정당의 입장이 결정되고 간부가 선출된다.

그렇다고 진보정당의 정파와 기성정치권의 계파가 똑같지는 않다. 일단 정치블록의 ‘이름’이 다르다. 새누리당내 계파로 ‘친이계’와 ‘친박계’가 꼽히고 민주통합당은 ‘손학규계’ ‘DY(정동영)계’ 등의 계파 이름이 등장한다. 반면 통합진보당에는 이른바 ‘경기동부’ ‘인천’ ‘광주전남’ ‘부산울산’ 등의 지역기반의 명칭과 ‘참여계’ ‘다함께’ 등의 조직기반의 명칭이 있다.

기성정당의 ‘계파’는 보스정치의 산물이다. 유력정치인에 줄을 대는 방식으로 정치블록이 형성된다. 인적네트워크는 당연히 보스와 얼마나 가까운가로 결정된다. ‘친박계 좌장’ ‘친이계 대표’라는 수식어는 이 때문에 나온다. ‘계파’는 보스의 정치적 성공을 목표로 하게 되고 보스간 대결에서 승리한 계파가 당권을 쥐게 된다. 이명박 정권 초기 한나라당은 ‘친이계’가 주도했고, 정권 후기 새누리당의 ‘비대위’가 만들어지면서 ‘친박계’가 힘을 얻었다고 평가된다.

진보정당은 탄생부터 활동까지 사회운동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어 정치블록의 인적네트워크도 사회운동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 구체적으로는 노동운동, 학생운동, 지역운동, 혹은 정치단체에서 정치적 입장을 같이 하는 이들이 모여 그룹을 형성하게 된다.

진보진영의 세력 간 분포를 설명하는데 가장 손쉽게 쓰이는 블록은 ‘NL’과 ‘PD’다. 진보운동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80년대 중후반 진보진영 내에서 벌어졌던 논쟁을 통해 블록이 형성됐고, 당시 형성된 인적네트워크가 현재까지 영향을 주고 있으며, 내용상에서도 경향성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자유주의적 성향을 갖는 구 국민참여당이 합류하면서 새로운 양상을 띠고 있기도 하다.

진보는 크게 NL과 PD로 구분되지만 세부적으로도 정치블록이 존재한다. 

이 중 NL진영은 노동운동이나 농민운동 등 계급운동과 지역기반의 정치활동으로 성장했는데, 사업을 벌이는 과정에서 같은 지역의 활동가들이 교류하고 공동사업을 벌이면서 자연스럽게 정치블록화 됐다. 특히 90년대 초반 진보운동은 ‘포스트 전민련’을 주창하며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이라는 전국적 전선조직을 탄생시켰는데, 전국연합은 지역과 부문으로 조직이 구성돼 있었다. 민주노총이나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부문 조직에는 여러 정파가 섞여 있는데다 한 세력이 강한 주도력을 갖고 있지 못했던 반면 지역에서는 정파가 섞여 있다 하더라도 한 세력이 주도력을 뚜렷하게 갖게 되면서 정파명에 ‘지역’이 등장하게 됐다. 정파명에 지역이 등장하긴 하지만, 대부분 전국적으로 세력이 분포돼 있는 것도 이런 연유다.

PD진영은 성장과정에서 지역운동에 큰 비중을 두지 않고 노동운동과 의제별 운동을 중심으로 성장했다. 때문에 이들은 노동운동 내의 활동가조직을 중심으로 정파블록을 형성했으며, 노동운동 외부를 포괄하는 사회단체를 만들면서 세력을 넓혔다. 통합진보당 내의 ‘다함께’가 있으며 진보신당 내의 최대파로 여겨졌던 구 ‘전진’이 대표적인 정파로 꼽힌다.

기성정당과 진보정당의 정치블록은 형성과정이 다른 만큼 움직이는 양상도 다르다. 기성정당의 계파가 보스의 입장이나 오더에 따라 움직이는 반면, 진보정당의 계파는 정치방침에 따라 움직인다. 진보정당의 정파 형성과정이 정치활동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어서 ‘누구’의 오더라는 것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정치적 방향과 활동과정에서 형성된 경험에 따라 정치 입장, 혹은 방침을 결정하게 된다. 때문에 정파별로 비슷한 입장을 보일 때도 있으며 때로는 같은 NL 혹은 PD 진영 내에서 세부적으로 다른 입장을 보이기도 한다. 해서 진보운동 내부에서는 정파를 ‘의견그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 정파의 유력정치인이 등장하거나 실제 정파 내에서 주도력을 발휘하는 인물이 있어도 진보진영 내부에서는 그를 ‘수장’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2012-03-25

백혜련의 정치도전, 민주통합당이 좌초시켰다

백혜련의 정치도전, 민주통합당이 좌초시켰다

ohmynews.com | Nov 30th -0001

검사에서 변호사로, 다시 정치인으로 변신을 꾀했던 안산 단원갑 백혜련 민주통합당 예비후보의 노력은 40일 만에 끝났다. 야권단일후보 경선 과정 문제로 관악을 이정희 통합민주당 후보가 사퇴하면서 재경선을 요구했던 단원갑 백혜련 후보도 사퇴했다.

하지만 단원갑의 경우 근본적 논란은 민주통합당 지역조직이 자초한 면이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역 기득권의 벽은 두꺼웠고, 지역 조직의 비협조와 저항에 정치신인의 입지는 좁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지역 조직의 반발에 중앙의 지도력 또한 제 역할을 못하면서, 전략 공천됐던 후보자에게만 상처를 안긴 셈이다.

엄밀히 말해 백혜련 후보가 민주통합당 후보로 인정받았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경선 패배가 발표된 직후 3~4일에 불과했다. 그동안은 무늬만 민주통합당 후보였을 뿐 실무 조직의 뒷받침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도움은커녕 거센 반발에 허우적대야 했다.

지역조직 돕지 않았던, '무늬만 민주통합당 후보'

지난달 13일 후보 신청을 마치고 28일 전략공천을 받을 때부터 민주당 지역조직의 반발은 매서웠다. 당원들은 4000명이 넘게 반대 서명운동 통해 낙하산 후보의 공천을 거부했다. 시도의원들을 중심으로 비상대책위까지 꾸려질 정도였다. 지역조직의 이 같은 태도는 도의원을 사퇴하고 출마한 고영인 후보가 공천받지 못한 데 대한 반발이었다.

낙하산 후보라는 공격은 백혜련 후보에게 향했고 자리를 잡기도 전에 시련에 봉착해야 했다. 공천이 확정된 이후 고영인 후보는 백혜련 후보에 대한 전략공천을 비난하며 불복 의사를 내비쳤다.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거론하며 장고에 들어갔다. 천정배 의원이 4선을 하며 16년간 다져 놓은 탄탄한 민주통합당 조직은 백혜련 후보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17~18일 야권단일후보 경선이 치러질 때도 마찬가지였다. 통합진보당은 조직을 최대한 동원하며 여론조사경선을 준비했지만 백 후보가 달리 준비할 방법은 없었다. 시도의원들이 합류해 준비를 도왔으나 조직적으로 움직였던 것은 아니라고 민주통합당 관계자는 전했다. 지역 기반이 약한 전략공천 후보에게는 녹록지 않은 현실이었다.

불안한 분위기를 느낀 당대표 등이 경선을 앞두고 지원유세를 펼쳤지만 지역 당원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도리어 반발하는 분위기까지 생겨났다. 전략공천에 대한 불만이었다. 한 민주통합당 지지자는 "고영인 후보야 천정배 의원 보좌관 하면서 지역에서 많이 봤지만 백혜련은 처음 들어보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단원갑 민주통합당 관계자는 경선 패배에 대해 "고영인 후보의 결심이 빨랐으면 결과가 다르게 나타났을 것인데 많이 아쉽다"고 말했다.

"오랜 시간 함께해 온 동지가 기다려달라는데 우리가 백혜련 후보를 무조건 지원할 수 있는 것 아니지 않나. 다들 전략공천 때문에 속상한 면도 있어 수수방관했던 게 사실이다. 천정배 의원도 아무런 이야기를 안 하시니 적극적으로 도와야 하는 건지에 대한 판단이 안 섰다.

고영인 후보가 보름이 지나서야 경선 승복을 결정했는데, 이때는 시기적으로 많이 늦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설마 (야권단일후보) 경선에서 지겠나 생각했었다. 17~18일 경선이 치러질 때 다들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했다."

정치신인 공천만 해놓고 방치한 지도부도 책임

19일 여론조사 경선 과정에서 백혜련 후보가 3표 차로 패배한 결과가 나오면서 민주통합당 조직은 뒤늦게 허둥댔다. 민주통합당 쪽 인사들은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지역에 도의원 1명에 시의원이 3명이다. 천정배 의원이 16년간 닦아온 텃밭인데 민주통합당 후보가 야권후보경선에서 지지율도 미약한 통합진보당 후보에게 졌다는 게 말이 되나. 무소속으로 나와도 조직만 가동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지역이다. 너무 놀라서 다들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관악을 지역의 문자 논란에 이어 일부 전화가 지역구를 벗어났다는 표본 오류 논란이 생기면서 민주당 쪽은 재경선을 갈망했다. 도무지 패배를 인정하기 힘들다는 분위기였다. 지역조직이 전략공천 후보를 지원하지 않고 태업해 결국 후보 자리를 놓친 것에 대한 부담도 커보였다.

이와 관련 이정희 대표는 22일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이슈 털어주는 남자>에 출연해 "사실, 문제의 핵심은 안산 단원갑"이라며 "민주통합당과 우리가 협상대표 간의 공식 라인에서 확인해보면, '안산 단원갑의 양보를 받아내는 것'이 민주당의 주요 요구사항"이라고 말했다.

지역 분위기도 비슷했다. 후미진 곳에 있던 선거사무소는 고영인 예비후보와 조성찬 예비후보가 있던 지역구 내 중심부 건물로 옮겨졌다. 시도의원들을 비롯한 민주당 인사들의 발길도 분주해졌다.

야권단일후보, 민주통합당 조직이 제대로 지원할까?

민주통합당 관계자는 21일 저녁 "중앙당에서 공천장을 주겠다는 언질을 받았다며 재경선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으나 딱 거기까지였다. 공천장이 수여되자 경선불복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일었고 23일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가 서울 관악을 후보직을 사퇴하면서 백혜련 후보도 출마를 포기했다.

지역 당원들은 전략공천으로 지역을 무시한 낙하산 공천을 한 것에서 빚어진 일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지역 기반이 약한 정치신인을 공천만 해놓고 방치한 지도부의 책임이 크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백혜련 후보의 좌절은 결국 민주통합당 스스로가 초래한 셈이다.

이 때문에 통합진보당 조성찬 후보가 야권단일후보가 됐다고 해도 어려운 승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민주통합당 후보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민주통합당 조직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는 시선이다. 국민참여당이 야권단일후보로 나섰다 패한 지난해 경남 김해을 재선거 때처럼 민주당의 적극적 도움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실제로 민주통합당 쪽 인사들은 유시민 대표의 측근이기도 한 조성찬 후보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 백혜련 후보는 출마를 포기하며 야권단일후보 지지를 선언했지만 지역에서 영향력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민주당 조직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선거 결과가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Original Page: http://t.co/z7B3Nqm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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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눈물 "야권연대 살렸다"... 숨막힌 '3박4일'

이정희 눈물 "야권연대 살렸다"... 숨막힌 '3박4일'

ohmynews.com | Nov 30th -0001

19대 총선 후보등록 마감일인 23일 그는 광주 망월동 묘지 참배에 이어 오후 2시 공식적으로 후보등록을 할 예정이었다. 일각에선 이 공동대표 본인이 직접 후보등록에 나선다는 소문도 돌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진보의 도덕성'을 이유로 나흘 내내 이 공동대표의 후보사퇴 여론이 높았지만, 그의 선택엔 아무런 변함이 없다는 것이 이날 오전까지의 상황이었다. 통합진보당 관계자들은 "우리의 입장엔 변화가 없다"는 말로 이 상황을 일축했다.

실제 통합진보당은 이날 오전 4시까지 대표단 회의를 열고, 야권연대의 복원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통합진보당의 핵심 관계자는 "이정희 대표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대표단의 잠정적 결론이었다"고 전했다. 이 회의는 정확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새벽녘 산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전날 이 공동대표의 후보사퇴 문제에 대해 강경모드로 발언했던 유시민 공동대표는 이날 오전 CBS 라디오에 출연해서 "이정희 대표의 문제에 대해서 국민들의 비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당 안에서도 지금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길인지에 대해서 여러 가지 논의를 하고 있다"며 "하지만 이정희 대표가 출마를 결심하면,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유 공동대표는 또 "이정희 대표가 사퇴를 안 하는 이유는 '내가 꼭 국회의원이 되어야 되겠다'는 것보다는 사퇴하면 야권연대의 심리적 기초가 무너져 우리는 물론 민주당에도 안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인 것"이라며 "여러 가지 의견을 전하고 있지만, (이정희 대표가) 어떻게 할지는 불확실하다"고 밝혔다. 그는 "내가 당사자라면 좀 다르게 할 것"이라는 말로, 현 사태의 어려움을 우회적으로 성토하기도 했다. 유 공동대표는 "이번에는 민주통합당이 좀 봐주면 안 되겠느냐"는 읍소도 했다.

문재인과 이정희의 진솔한 대화 속 '제3후보론'도

전날인 22일에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정강정책방송연설 때문에 상경했다. 기왕 서울에 온 김에 문 고문이 직접 이 공동대표를 만나는 것이 좋겠다는 주변의 권유에 따라, 문 고문과 이 공동대표는 단둘이 만났다. 아무런 배석자 없이 진행된 양자회동에선 상당히 허심탄회한 대화가 오간 것으로 전해진다. 진솔한 얘기를 나눈 두 사람은 이번 총선의 중대성과 야권연대 승리에 대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상임고문이 이정희 공동대표에게 이른바 '제3후보론'을 제기하고, 후보사퇴를 설득했다는 설이 돌았지만, 문 고문 측에서는 관련된 내용을 일절 확인해주지 않았다. 다만, 문재인 고문 측의 핵심 관계자는 "어제(22일) 서울에서 마지막 비행기를 타고 부산으로 올 계획이었는데 결국 탑승하지 못했다"며 "덕분에 부산 선거운동의 오전 일정이 모두 날아가 버렸다"고 말했다. 수도권과 달리 부산민심은 초반이 매우 중요한데 서울에서 자꾸 일이 터지는 바람에 문 고문이 선거운동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한숨도 터졌다.

민주통합당의 핵심 관계자는 "문 고문이 이 대표를 만났는데 아무도 결과에 대해 말을 못한다는 것은 결국 중재안이 실패했다는 방증 아니겠냐"며 "이 대표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 오후까지 지켜보자"고 말했다.

이 가운데, 민주통합당 내부에는 '서울 관악을 사태를 푸는 3가지 방법'이 흘러다녔다. 첫째 이정희 공동대표는 스스로 결단해야 한다. 그에 관하여 민주통합당이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다. 민주통합당이 개입하면 문제는 더 커질 수 있다. 둘째 서울 관악을 지역은 애당초 민주통합당이 야권연대 지역으로 무공천 한 곳이기 때문에 그 원칙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 이 원칙을 버리면 이번 총선의 야권연대는 정말 루비콘강을 건너게 된다.

셋째 이 공동대표가 사퇴로 가닥이 잡히면 안산 단원갑의 백혜련 후보도 사퇴해야 한다. 애당초 백 후보의 민주통합당 공천은 '당내 여론을 설득하기 위한 카드'였기 때문에 이 대표의 문제가 해결되면 동시타결 방법으로 사퇴로 가닥을 잡는다.

서울 관악을 사태를 풀 수 있는 3가지 열쇳말

이 같은 여론이 이정희 공동대표를 짓누른 탓일까. 통합진보당 쪽에서는 이 공동대표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22일에 이어 23일에도 문 상임고문을 만나고 있다는 정보가 흘러다녔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동대표는 오전 내내 자택에 머물며 생각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국회 출입 기자들은 이날 내내 '오후 2시'를 주목했다. 이 공동대표가 후보등록을 하겠다고 밝힌 이 시각에 'FM대로' 간다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가는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만일 이 공동대표가 후보등록을 하고, 이번 선거를 뛴다 한들 본선에서 얼마나 경쟁력이 있을까 회의하는 기자들의 시각도 적지 않았다. 이번 사태를 초반에 잘 풀었다면, 이 공동대표는 그야말로 '거물급 정치인'으로 격상되지만, 여기서 무리수를 둔다면 '이정희의 정치생명'은 여기서 끝이라는 진단마저 나돌았다.

그런데 이날 오후 1시 59분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가 긴급 타전됐다. "이정희 대표 사퇴 기자회견 곧 정론관서 할 예정". 곧이어 오후 3시에는 이 공동대표가 직접 정론관에서 자신의 심경을 밝히는 기자회견문을 낭독할 예정이라는 소식까지 알려졌다.

이 소식이 긴급 타전되자, 정론관엔 침묵이 흘렀다. 모두 '오후 3시'를 향한 시계걸음에 눈을 맞추고, 이 공동대표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이 공동대표는 이날 오후 3시에 정확히 정론관에 모습을 나타냈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많은 분들이 긴 시간 애써 만들어온 통합과 연대의 길이 저로 인해 혼란에 빠졌다"며 "야권단일후보들이 이길 수 있다면 기꺼이 어떤 일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직접 회견문을 읽기 전 미리 마이크를 손보던 그는 잠시 머뭇거렸다. 이내 입이 열리고, "부끄럽고 죄송하다"는 첫 문장을 읽을 때, 그의 눈가가 흐려지고 울먹이는 목소리가 포착됐다. 가슴으로 울고 있다는 심정이 전달된 게다. 이 공동대표가 이 같은 내용의 회견문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국회 정론관 복도에서는 우위영 대변인이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기자들은 우 대변인을 위로했다.

이 공동대표는 이날 회견문에서 "진보의 도덕성을 땅에 떨어뜨린 책임도 당연히 저의 것"이라며 "몸을 부수어서라도 책임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 공동대표는 "경선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저"라며 "(자신의 사퇴로) 야권단일후보에 대한 갈등이 모두 털어지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또한, 이 공동대표는 "정권교체가 아니면 민주주의도 경제정의도 평화도 그 어느 것도 기대할 수 없기에, 야권단일후보를 당선시켜 주십시오"라며 "야권연대를 만들어냈다는 잠시의 영광보다 야권연대의 가치와 긍정성을 훼손한 잘못이 훨씬 큰 사람으로서, 부족함을 채우고 차이를 좁히며 갈등을 없애는데 헌신해 전국에서 야권단일후보를 당선시키겠다"고 다짐했다.

백혜련도 한명숙과 손잡고 기자회견...

이정희 공동대표의 회견 직후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는 백혜련 안산 단원갑 예비후보의 손을 잡고 국회 당대표실에 나타났다. 백 후보의 사퇴를 위한 수순이었다. 백 후보는 이날 기자들에게 "오늘 저는 안산 단원갑 후보직을 내려놓는다"며 "비록 후보직을 내려놓지만, 미약하나마 힘을 보태려 한다, 야권단일화의 밀알이 돼 정권교체와 총선승리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대표가 상상도 못하는 고통 속에서 큰 결단 해주신 것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며 "민주통합당의 백혜련 후보도 야권연대를 위해 자신의 희생과 결단을 내린 점 참으로 고맙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어 한 대표는 "이정희 대표와 제가 야권연대를 이룬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국민 여러분께 실망을 드려 너무나 송구스럽다"며 "야권연대에 엉킨 실타래를 풀기 위해 양당은 부단한 노력을 해왔고 지금까지 양당은 모두 고통스럽고 힘든 시간이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한 대표는 "이제 야권연대가 완성됐다"며 "비 온 뒤에 땅이 단단해지듯,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더욱 굳게 손을 잡고 단결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 우리가 함께 승리하는 길만 남았다"며 "우리 모두 함께 손잡고 국민 여러분께 승리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한명숙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을 통해 "서울 관악을 지역은 이정희 대표의 불출마 선언에 이어 새로운 후보가 교체되면, 새로운 후보를 야권단일후보로 민주통합당이 인정할 것"이라며 "당연히 관악을 지역은 민주당의 무공천"이라고 밝혔다.

경선에서 불복한 김희철 의원의 탈당 후 무소속 출마에 대해서는 "저희는 야권연대의 정신을 갖고 김 의원의 탈당을 만류했다"며 "그러나 각 후보는 탈당할 권리가 있고 그분이 탈당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김 후보는 이미 탈당했기 때문에 민주통합당의 후보가 아니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양당 대표는 25일 오전 11시 국회 귀빈식당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4·11 총선승리'에 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야권연대 드라마의 극적 반전... 터닝 포인트 핵심은 '이정희 결단'

이처럼 파국으로 치닫던 야권연대는 이정희 공동대표의 결단과 백혜련 후보의 사퇴로 일단락됐다. 벼랑 끝의 위기에서 터닝 포인트를 잡게 된 것이다. 여론은 만 하루사이 급반전했다. 이 공동대표의 용단을 촉구하며 '부도덕한 진보의 오명'을 운운하던 여론은 급랭했고, 이 공동대표의 결단을 환영하는 응원 메시지가 줄을 이었다. 트위터에는 이 공동대표의 용단이 결국 야권연대 전체를 살렸다는 평가가 줄줄이 사탕으로 매달렸다.

이 공동대표가 이번 사퇴를 계기로 '더 큰 정치인'으로 성장하게 됐고, 국민은 이번에 결단한 이 공동대표를 잊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계속 달렸다.

무엇보다 야권연대의 막전막후에서 '보이지 않는 손'으로 상당한 공을 들인 황창화 민주통합당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야권연대는 안 깨졌다"며 "야권연대를 합의했지만 진행되다가 암초에 부딪혔고, 이걸 어떻게 풀 것인가에 대해서는 지난하게 협의하고 의논했다"고 저간의 사정을 털어놓았다.

황 대변인은 "문재인 고문도 역할을 했고 한 대표도 여러 면에서 결단을 했지만 무엇보다 이정희 대표 스스로의 결단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며 "야권연대는 총선 전략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고, 또 그래야 정권심판 이슈파이팅이 가능하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공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백혜련 후보를 설득하던 중에 이정희 대표의 사퇴 소식을 속보로 알게 됐다"며 "이미 서울 관악을에 대한 민주통합당의 무공천 의사와 안산 단원갑 문제에서 우리가 (사퇴)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는 미리 그쪽(통합진보당)에 전달된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황 대변인은 "4·11 총선까지 또 어떤 고비가 우리에게 남았는지 모르지만 현단계에서 이 문제를 주말까지 풀지 못하면 상황이 매우 어려워진다고 판단했다"며 "주말을 넘기지 않고 이 문제를 풀 수 있게 돼 너무나 다행"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무엇보다 그는 "야권연대의 반전 드라마는 이제 본격화된다"며 "민간인 사찰 문제와 이명박 정권의 심장부를 강타할 야권연대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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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FTA? 4대강?…내세울 게 없는 MB ‘잠 못이루는 밤’

경제? FTA? 4대강?…내세울 게 없는 MB '잠 못이루는 밤'

hani.co.kr 임기를 1년 남긴 대통령에겐 '말년 증후군'이란 게 있다. 해는 뉘엿뉘엿한데 갈 길은 멀다 보니, 밤잠을 설치는 게 주요 '증상'이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도 밤에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는 말이 청와대 주변에서 흘러나온다. 대통령 재임중 이뤄낸 대표상품으로 내세울 만한 업적이 딱히 없는 상황에서 자칫 역사책에 '4대강 대통령'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큰데 이게 청와대로서도 그다지 마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2007년 대선 때부터 자신의 목표를 '경제 대통령'으로 못박았다. 국민적 기대감도 많았다.

하지만, 현재 이 대통령의 경제 성적표에 대해선 의문부호가 붙는다. 이 대통령 자신도 22일 기자회견에서 "투자가 줄고 젊은이의 일자리가 걱정되고, 내수가 위축돼 서민 생활이 더 어려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다"며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음을 인정했다.

여당조차 '엠비표 경제정책'과의 철저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이 대통령 경제정책의 기조인 '감세' 거부와, 정강·정책에 경제민주화 조항을 삽입한 게 대표적이다. 이 대통령이 '경제 대통령'으로 기록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새누리당 분위기다.

경제 이외의 분야에 대한 평가는 더욱 박하다는 게 청와대의 고민이다. 다른 데서 만회할 점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선, 남북관계에 대해선 절대다수가 '낙제점'을 주는 게 현실이다. 이 대통령의 지지기반인 보수층은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피격에 대한 부실한 대응으로 '안보무능정권'이란 낙인이 찍혀 있다. 동시에 진보 쪽에선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진전시킨 남북교류와 화해·협력 부분에선 바퀴를 뒤로 돌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보수와 진보 양쪽의 공격에 노출된 채, 어느 쪽으로부터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다.

외교 분야에서도 내세울 만한 공이 별로 없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요란한 한-중 관계가 대표적이다. 한-미 관계에서는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를 이끌어 냈다고 내세운다. 그러나 이 부분은 찬반 평가가 확연히 엇갈린다. 지불한 대가도 크다. 협정 체결 과정에서 촛불집회로 정권이 뿌리째 흔들렸고 자유무역협정 자체는 사회적 갈등의 주요 소재로 굳어졌다. 이 대통령이 강조했던 자원외교도, 박영준 전 지경부 차관과 외교부 간부들이 줄줄이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카메룬 다이아몬드 의혹' 등으로 빛이 바랬다.

이 대통령은 무상급식 등 주요 복지이슈를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공격해 오히려 '반복지 대통령'으로 기록될 가능성마저 있다. 새누리당이 뒤늦게 복지 강화 흐름에 동참하자, 이 대통령은 최근 포퓰리즘이라는 표현을 자제하면서 '0~5살 전면 보육'으로 돌아섰지만 이미 큰 점수를 잃은 뒤였다.

'민주주의 후퇴'라는 딱지가 붙은 것도 이 대통령으로선 곤혹스러운 대목이다. 언론분야에선 <와이티엔(YTN)> 해직기자 사태, <문화방송(MBC)> 노조 파업, 종편특혜 등으로 숱한 논란에 휩싸였고, 검찰은 정권 쪽을 편들어 무리하게 기소한 사건이 줄줄이 무죄판결을 받아 스타일을 구겼으며, 경찰은 용산참사로 국민의 원성을 샀다.

청와대 관계자는 "'청계천 서울시장'에 이어 '4대강 대통령'이라는 말을 들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도 지난 22일 취임 4주년 특별기자회견에서 4대강에 대한 질문엔 답변조차 피하는 등 썩 내켜하지 않는 심경을 비쳤다.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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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Personal Note as Obama Speaks on Death of Boy

A Personal Note as Obama Speaks on Death of Boy

by JACKIE CALMES, nytimes.com
March 23rd 2012

WASHINGTON — President Obama did not mention race even as he addressed it on Friday, instead letting his person and his words say it all: "If I had a son, he'd look like Trayvon."

A one-stop destination for the latest political news — from The Times and other top sources. Plus opinion, polls, campaign data and video.

Weighing in for the first time on the death of Trayvon Martin, the unarmed black teenager shot and killed a month ago in Florida by a neighborhood watch volunteer, Mr. Obama in powerfully personal terms deplored the "tragedy" and, as a parent, expressed sympathy for the boy's mother and father.

"I can only imagine what these parents are going through. And when I think about this boy, I think about my own kids," Mr. Obama said. "Every parent in America," he added, "should be able to understand why it is absolutely imperative that we investigate every aspect of this and that everybody pulls together — federal, state and local — to figure out exactly how this tragedy happened."

While speaking movingly from his perspective as the father of two girls, one a teenager, Mr. Obama notably made no reference to the racial context that has made the killing of Trayvon and the gunman's claim of self-defense a rallying point for African-Americans. Since Mr. Obama first began campaigning to be "president of all the people," as his advisers would put it when pressed on racial issues, he has been generally reluctant to talk about race. And after his historic election as the first black president, Mr. Obama learned the hard way about the pitfalls of the chief executive opining on law enforcement matters involving civil rights.

His remark at a news conference in the summer of 2009 that a white police officer in Cambridge, Mass., had acted "stupidly" in arresting a black Harvard professor, Henry Louis Gates Jr., at his home led to a national controversy that ended with Mr. Obama holding a peacemaking "beer summit" with the two men at the White House.

Until Friday, Mr. Obama had refrained from commenting on the death of Trayvon, 17, a high school student who was killed on the night of Feb. 26 in Sanford, Fla., near Orlando. George Zimmerman, 28, the neighborhood watch volunteer, said he fired at Trayvon in self-defense, although there is no apparent evidence that the teenager, who held only a bag of Skittles candy and an iced tea, was doing anything wrong.

But when a reporter asked about the case at a White House event introducing Jim Yong Kim as his choice to be president of the World Bank, Mr. Obama, who typically leaves such events ignoring the shouted questions of reporters, seemed prepared.

"It was inevitable given the high-profile nature of this story that he would be asked about it," his press secretary, Jay Carney, said later. He added that Mr. Obama "had thought about it and was prepared to answer that question when he got it."

Mr. Carney himself had refused for days to speak for Mr. Obama about Trayvon's death, and other advisers on Friday likewise declined to weigh in on the thinking at the White House about the case and its repercussions. Mr. Obama's mostly white male inner circle has long been reluctant to talk for their boss when the subject is race, given how personal it is for him. One aide, speaking only on the grounds of anonymity, said that there was no internal debate about how to respond to Trayvon's death, but that Mr. Obama wanted to await the Justice Department's initial review of the case and the announcement this week by his attorney general, Eric H. Holder Jr., that the civil rights division would investigate.

In his remarks, Mr. Obama endorsed the Justice Department investigation as well as efforts by local and state agencies in Florida to examine the circumstances of the shooting. Trayvon's parents "are right to expect that all of us as Americans are going to take this with the seriousness it deserves, and that we're going to get to the bottom of exactly what happened," Mr. Obama said.

Richard A. Oppel Jr. contributed reporting from West Monroe and Shreveport, La.

Original Page: http://t.co/wDuize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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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하고 인터뷰 안해요” 괴로운 TV조선 기자들

"조선하고 인터뷰 안해요" 괴로운 TV조선 기자들

mediatoday.co.kr | Nov 30th -0001

"TV조선인데요"
"조선하고 인터뷰 안 해요"(정청래 민주통합당 후보자)
"왜 안 하세요?"
"몰라서 물어요?"

TV조선이 자사의 뉴스를 통해 야당 정치인의 취재거부 사태를 전하는 등 종편 개국 이후 취재환경에 대한 고충을 털어놨다. 고민을 털어놓는 모양새지만, 불만이 가득한 모습이다. 보도 프로그램 제작환경과 시청률 하락에 따른 고민을 외부의 요인으로 책임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정부-야권-기자단 암묵적 카르텔이 종편 위협한다고?

TV조선은 21일 8시 뉴스를 통해 취재 거부 현장을 상세히 전했다. TV조선은 한명숙 대표 등 민주통합당 주요 당직자들에게 인터뷰와 출연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지만 한달이 지나도 답이 오지 않았다고 전했다. 정청래 민주통합당 후보가 TV조선 기자와 대면해 취재를 거부하는 모습도 전파를 탔다.

TV조선은 "심지어 민주 통합당 한 의원은 취재 기자에게 '곧 없어질 회사에 왜 다니느냐. 빨리 옮기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어 TV조선은 기존 언론사들의 '텃새'로 인한 취재 환경도 열악하다면서 기자단에 의한 출입 거부 사태도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TV조선은 개국 초부터 한겨레 등 진보 언론들의 왜곡 편파 보도가 이어졌다면서 '악의적 기사'라는 표현을 써가며 이들을 비난하기도 했다.

TV조선은 "정당한 경쟁보다는 기자단 체제에 안주하려는 기존 매체들의 배타적 풍토, 눈치 보기에 바쁜 정부, 정치적 이유로 종편을 무시하는 야권. 자신들의 정치적 경제적 이익만 지키려는 이들의 암묵적 카르텔이 공정 방송과 국민의 알 권리를 위협하고 있다"고 싸잡아 비난했다.

TV조선이 하고 싶은 말은 정작 따로 있었다. 바로 이어진 뉴스에서 TV조선은 "미디어렙법으로 광고 판매에도 족쇄를 채우고 있다"면서 "종편을 만든 정책 목표는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좋은 일자리를 만든다는 것"이라고 홍보했다.

1공영 다민영 체재를 골자로 한 미디어렙법에 대해서도 "종편이 독자적으로 광고 수주를 못하게 하기 위해 종편사들도 미디어렙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야당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이라며 "백개가 넘는 케이블 채널 가운데 종편만 미디어렙에 포함됐다. 이는 부당한 처사"라고 밝혔다.

TV 조선의 불만…미래 어두운 종편의 단면

TV조선이 이례적으로 자사 뉴스를 통해 불만들을 쏟아낸 것은 실제 종편의 전망 자체가 어둡기 때문이다.

한겨레에 따르면 종편 4곳의 1월 광고매출 합계는 120억원이고 2월은 80억원 정도다. 출범 초기 지상파 방송의 70% 정도의 광고단가를 에상했지만 이마저도 25% 선으로 낮아진 상황이다.

특히 TV조선이 100억원 규모의 제작비를 투입해 사활을 걸었던 드라마 한반도도 조기 종영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위기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심심치 않게 종편 4곳 중 빠르면 2년 안에 문을 닫는 일이 발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도 종합편성채널로서 위상 뿐 아니라 실적 역시 형편없기 때문이다.

방송법에 따르면 종합편성은 '보도, 교양, 오락 등 다양한 방송분야 상호간에 조화를 이루도록 방송프로그램을 편성하는 것'이라고 규정돼 있지만 지금 추세라면 종편의 모습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시청률만 놓고 보면 종편의 심각한 위기를 체감할 수 있다. 한국방송광고공사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광고주는 종편 시청률을 올해 1.2%에서 2015년 1.58%로 추정했다. 하지만 현재 종편의 평균 시청률은 3월 둘째 주 기준으로 0.53%이고 이같은 추세라면 1/4 분기 평균 시청률은 0.41% 정도로 예상된다.

종편이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일간지의 영향력도 시청률이 턱없이 낮게 나오는 상황에서 비약적인 광고수주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시청률 하락→광고수익 감소→제작비 감소→시청률 하락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할 경우 종편의 미래가 암담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BS투자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종편의 적자 규모는 1000억원을 상회할 것으로 보인다. 매 분기 시청률이 0.2%씩 개선돼 연간 평균시청률이 0.64%이고, 시청률 1%당 매출 660억원을 적용해 추정한 결과다. 초기 종편4사가 예상한 제작비 2000억원 규모보다 낮은 1500억원으로 가정할 경우 퀄리티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을지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보통 공중파 방송의 경우 연간 4000억원 정도의 제작 비용을 투입해 연 평균 4~5%의 평균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종편 내부도 암울

광고주들은 시청률 1%를 올리기 위해 필요한 비용(Cost Per Rating Point : CPRP)이 높더라도 시청률이 높은 것을 선호한다. 광고단가보다는 광고효과에 민감하다는 얘기다. 일례로 지난 2010년 현대자동차는 국내 광고에서 약 480억원의 광고비를 지출했지만 2012년 2월 3분짜리 미국 슈퍼볼 광고에는 약 180억이 넘는 광고비를 지출했다. 그런데 종편의 경우 현재로서는 광고효과 면에서도 형편없이 미미하다.

암울한 전망은 종편 내부에서도 나온다. TV조선이 한반도 드라마를 방송에 내보내기 전 내부회의에서는 임원급 간부가 한반도의 시청률이 2%대가 나오지 않으면 예능, 드라마 영역을 상당 부분 폐지해야 할 것이라는 얘기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반도가 종편의 향후 예능, 드라마의 성장 가능성을 시험해 볼 수 있는 리트머스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컸었지만 이내 곧 조기 종영이라는 처참한 결과를 맞았다. 종편 한 곳에서는 지상파에서 건너간 한 부장급 인사가 시청률 하락에 대한 책임으로 징계를 받았다는 소문도 들린다.

한 지상파 관계자는 "제대로된 프로그램을 만들려면 제작비를 그만큼 투자해야 하는데 그것도 어렵고, 시청률이 낮으니 수익도 줄어들고 있다"면서 "현재 상황대로라면 종편의 탈출구는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BS 증권은 "2015년까지 종편에 극적인 상황이 연출되지 않는다면 종편 4개사 중에 최소 한개 정도는 자본잠식에 이어 영업중단의 상황까지 갈 수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Original Page: http://t.co/sGpFYHW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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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imals without borders

Animals without borders

by a.w., economist.com
March 23rd 2012 3:17 PM

IN A rare bit of good news for wildlife in Africa, last week saw the launch of the world's biggest conservation area stretching across five southern African countries—Angola, Botswana, Namibia, Zambia and Zimbabwe. The Kavango/Zambezi Transfrontier Conservation Area (KAZA) has been in the works since 2003; a memorandum of understanding was inked in 2006, followed by a fully fledged treaty to establish the park in August 2011. The area under conservation has expanded during the process, from under 300,000 to 440,000 square kilometres, nearly the size of Sweden.

Kaza encompasses over 20 existing conservation areas and national parks including Victoria Falls, a UNESCO World Heritage site shared by Zambia and Zimbabwe and by some measures the world's largest waterfall, and the Okavango delta in Botswana. Linking the areas up in this way is meant to allow vegetation to thrive and animals to return to their natural migration routes along protected corridors. Among the park's denizens will be 325,000 elephants, almost half the total number in Africa.

The hope is that a co-ordinated approach will be more effective at tackling poaching and other wildlife-related crimes since the five countries can now share patrols and information. Pooled resources should also go further to protect the landscape and attract investors and tourism to the region. Development and the welfare of the 1.5m people living in the park are priorities, too. The parks are to draw on the expertise of the World Wildlife Fund, an advocacy group, in techniques which allow local communities to benefit financially from conservation efforts on their land.

This park is just one (albeit the grandest) of a number of transfrontier conservation areas (TFCAs) inside the South African Development Community, a club of 14 countries from the region. As well as addressing environmental problems, which seldom respect national borders, TFCAs have been dubbed "peace parks" by some, because of their beneficial effect on regional diplomacy. The opening of Kaza, then, is an encouraging landmark all round.

Original Page: http://t.co/XTVZH3K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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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가 디도스공격 때문으로 해달라고 요청했다”

"선관위가 디도스공격 때문으로 해달라고 요청했다"

hani.co.kr

지난해 10월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겨냥한 사이버테러가 발생한 지 5개월이 흘렀다. 경찰은 디도스 공격 당시 금전거래가 <한겨레21>에 의해 뒤늦게 공개돼 망신살이 뻗쳤다(891호 표지이야기 '청와대가 경찰에 금전거래 은폐 압력 행사했다' 참조). 이어 검찰은 "한나라당 20대 비서진의 우발적 범행"이고 "나머지는 신의 영역"이라며 수사를 종결했다. 그러나 여전히 의혹이 꼬리를 문다. 지난 2월에는 당시 사건의 정황을 담은 문서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당시 시스템 보안을 담당했던 LG엔시스에서 작성한 '2011년 10월26일 재·보궐 선거 서비스 장애 분석 보고서'였다. 보고서의 내용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디도스 공격이 당시 선관위 홈페이지 장애 원인의 전부냐 아니냐'는 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수 차례 구체적으로 언론플레이 요청"

"언론 플레이를 해달라고 했습니다."

이번 사건의 실무에 직접 관련된 당사자 ㅇ(요청에 따라 직책과 이름 생략)씨는 <한겨레21>과 만난 자리에서 선관위가 LG엔시스에 언론 플레이를 종용했다고 털어놨다. LG엔시스는 2009년부터 선관위의 인터넷 시스템 보안 관리를 맡고 있다.

참여연대는 지난 2월15일 LG엔시스가 작성한 '2011년 10월26일 재·보궐 선거 서비스 장애 분석 보고서'를 공개하며 선관위 홈페이지의 장애 원인이 디도스 공격이 아닐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보고서에는 "LG엔시스의 디도스 방어 장비는 디도스 공격에 대해 정상적으로 대응하였으며 서비스 장애와 무관함"이라고 돼 있고, 보고서의 곳곳에 "정상 동작"이라고 언급돼 있다. 이는 디도스 공격은 방어에 성공했으며, 디도스 공격이 아닌 일반 이용자의 접속은 가능했다는 뜻이다.

LG엔시스에 언론 플레이를 종용한 것도 이즈음이다. ㅇ씨는 "선관위는 보고서가 공개된 뒤 LG엔시스 쪽에 '참여연대의 의혹 제기는 사실과 다르며, 이번 사이버테러로 인한 서비스 장애의 주원인은 디도스 공격'이라는 취지의 언론 플레이를 할 것을 부탁했다"고 말했다. 선관위가 요청했다는 언론 플레이는 매우 구체적이다. ㅇ씨는 "<전자신문> 등 주요 언론 매체를 지정해 보도자료 송부, 기고 등을 하라고 한 것"이라며 "비공식적으로 이뤄졌지만 그 말을 듣고 거절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LG엔시스 관계자들과 선관위 관계자들은 사이버테러 사건 뒤 보안 대책 논의 때문에 전화, 대면 등 접촉을 수시로 하고 있었다. ㅇ씨는 "LG엔시스 쪽에서는 정치적으로 휘말려들기를 원하지 않았다"며 "보고서 외에 덧붙일 설명이 필요 없다는 판단에서도 선관위가 요청한 언론 플레이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언론 플레이만이 아니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사이버테러와 관련해 토론회를 열자 "참석해 해명하라"는 요청도 전달됐다. ㅇ씨는 "선관위로선 토론회에서 LG엔시스 보고서에 대해 기술적으로 설명하며 원인이 디도스 공격 때문이라고 책임 있게 말할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다"며 "LG엔시스 쪽에서 하는 게 가장 적합하다는 판단에서 (선관위 쪽에서) 수차례 요구했다"고 말했다.

시스템 교체하려다 논란 일자 취소

선관위에서 LG엔시스 쪽에 언론 플레이와 토론회 참석을 요구한 데는 다른 사정도 작용했다고 ㅇ씨는 전했다. ㅇ씨는 "선관위 쪽에서는 보고서의 내용이 공식적인 통로 이외의 곳으로도 흘러나갔을 것이라고 봤다"며 "LG엔시스 쪽에서 <나꼼수>나 참여연대 쪽에 흘렸으니 그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판단도 작용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선관위 관계자는 "LG엔시스의 보고서 자체가 디도스 공격 당시 중앙선관위의 시스템 내부에서 서버 연동을 차단하거나 내부 시스템이 다운되지 않았다는 중앙선관위의 일관된 설명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보안 업무의 일부만 맡고 있는 업체에 언론 플레이를 해달라고 하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며 "토론회 참석은 LG엔시스 말고 KT, LG유플러스 등 관계사에도 요청한 사안"이라고 답했다. 결론적으로 LG엔시스는 언론 플레이를 하지 않았고, 토론회장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ㅇ씨는 선관위의 시스템 '개비'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지난 1월 선관위는 내부 시스템 개비를 추진하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중단했다. 시스템 개비란 '존재하는 선관위 시스템을 모두 갈아엎고 새 장비로 대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두고 선관위는 "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노후 시스템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교체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며, 시스템 교체 및 신규 도입은 내구 연한이 지난 노후화된 장비의 교체, 보안 시스템의 업그레이드 및 신규 도입, 망 분리 및 통신망 재구성 등 선관위 정보 시스템 전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이미 밝힌 바 있다. 선관위의 이런 설명에 대해 이 관계자는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업그레이드나 개선이 아니라 자료의 폐기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ㅇ씨는 "선관위는 원본 이미지 등을 따로 보관해놓겠다고 하지만 보존할 수 있는 부분과 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며 "일단 무조건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선관위의 태도는 비유하자면 빈대를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다 태우려는 꼴"이라고 말했다.

시스템 개비는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나꼼수>)에서 의혹을 제기해 없던 일이 됐다. 100억원대 국가기관의 사업이 2주 만에 기획됐다가 폐기된 것이다. ㅇ씨는 "선관위에서 LG엔시스 쪽에 없던 일로 하자고 통보해왔다"며 "아마 <나꼼수>에 알려지지 않았다면 그대로 진행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검, 3월25일부터 활동 시작

이와 관련해 선관위 관계자는 "증거인멸이라는 오해가 있어 모든 장비를 보관해놓고 다른 장비를 임대해 보완한 뒤 이번 선거를 치르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LG엔시스 쪽과 개비를 논의한 것은 사실이지만 컨설팅 차원이었다"며 "이번 총선이 끝나면 이 사건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공개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10·26 재보선일 중앙선관위와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홈페이지에 대한 사이버테러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법'에 의거한 특별검사팀의 구성이 완료돼 3월25일부터 활동에 들어갔다. 최장 90일 동안의 수사에서 사건의 의혹을 어느 정도나 해소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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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al Page: http://t.co/R00RXMS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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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전자업계 1등에서 밀려난 까닭

일본이 전자업계 1등에서 밀려난 까닭

by RICHARD KATZ, realtime.wsj.com

일본 전자산업계에 대한 나쁜 소식 없이 지나는 날이 하루도 없을 정도다. 캐논 같은 몇몇 기업은 예외지만 업계 거물급 기업들은 현 회계연도에 170억 달러의 손실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S&P는 소니와 샤프에 대한 신용등급을 BBB+로 하향조정했다. 정크(투자 부적격) 등급과 겨우 두 단계 차이다.

기업 경영진들은 엔화 강세 탓으로 돌렸지만 이는 이기적인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 엔화의 높은 명목상 가치는 왜 소니가 (엔화 약세기를 포함한) 지난 8년 연속 TV부문에서 손실을 입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없다. 또한 왜 트랜지스터 라디오, 워크맨, CD, VCR 등의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었던 기업이 이젠 아이디어가 고갈되어 보이는지에 대한 설명도 될 수 없다.

지난 10년간 일본 전자업계의 추락은 숨이 막힐 지경이다. 2000~2010년 사이 제품 생산은 41% 하락했고, 수출은 27%, 그리고 무역 흑자는 68%나 곤두박질쳤다. (중국의 영향을 피하기 위해) 고소득 OECD 국가들만을 상대로 수출을 살펴본 결과 일본 전자제품의 세계 시장점유율은 1996년의 19%에서 거의 절반이나 줄어든 10%였다. 같은 기간 독일은 8%에서 11%로, 한국은 6%에서 9.2%로 증가했다.

직접적인 원인은 수준 미달의 제품 전략이다. 일본 기업과 정부는 하버드 교수인 마이클 포터의 두 가지 중요한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첫번째는 국가 경제가 원숙해짐에 따라 경쟁상의 이점을 좌우하는 원천도 변한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에는 풍부한 숙련 근로자층, 값싼 자본, 그리고 가격이 경쟁을 좌우하지만 나중에는 제품 혁신과 가공으로 대체된다. 두번째는 전략을 세울 때 어떤 제품을 만들어야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떤 제품을 만들지 말아야 하느냐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 기업들은 이런 가르침을 거부한 채 제품 혁신이 아니라 값싼 자본과 제조력을 놓고 삼성 같은 후발주자들과 경쟁하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비록 이전에는 세계를 제패했으나 이제는 해가 갈수록 손실만 보는 제품을 계속해서 만들었던 것이다. 일본 전자업계가 생산하는 제품의 40%는 여전히 소비자 오디오-비디오 제품과 반도체다.

게다가 기업이나 제품이 실패했을 때 일본의 통상적인 해결책은 합병이다. 때로는 정부 자금까지 동원된다. ‘실패한 기업 세 곳을 합병하면 규모의 경제에 입각해 하나의 성공적인 기업이 탄생한다’가 이론적 근거였다. 지난달 파산신청을 하기 전에는 일본 최대 DRAM 칩 제조사였던 엘피다는 이 실패한 컨셉의 전형적인 사례다. 히타치, NEC, (이후) 미츠비시의 DRAM 사업부문에서 분사해 나온 기업이기 때문이다.

일반상품화된 칩 시장에서 빠져나오는데 실패하면서, 세계 상위 20개 반도체 제조사 가운데 일본 기업의 시장점유율은1990년의 55%에서 2010년에는 24%까지 작아졌다. 일본은 종종 삼성을 탓하지만 실제로 같은 기간 미국 기업의 시장 점유율은 31%에서 51%로 커졌다. 인텔과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같은 기업이 새로운 표준이 될 만한 혁신적인 제품에 주력하기 위해 가격이 핵심인 칩 사업에서 손을 뗐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에서 생산되는 전자제품의 77%는 거의가 다른 회사 제품에 사용되는 부품 및 구성요소다. 하지만 애플의 아이팟이나 아이패드, 삼성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원가분류해 보면 부품 제조사가 아닌 제품 제조사가 돈을 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일본 기업들은 애플, 인텔,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경쟁해야 할 때에 삼성을 상대로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오디오-비디오 시대에 계속해서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 내던 일본 기업의 기술과 정신은 디지털 시대에 와서 무너졌다. PC로든, 스마트폰이나 소프트웨어로든, 일본 기업은 이제 더이상 선두주자가 아니다.

일부 원인은 일본 기업구조의 속성에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심리학자 다니엘 카네만은 왜 어떤 기업들이 한물 간 프로그램을 계속 살려두기 위해 돈을 쓰고, 그 결과 새로운 프로그램에 쓸 돈이 부족한 상황을 초래하는지 설명한다. 그는 이런 기업을 돈을 잃으면서도 잃은 돈을 만회할 때까지 도박판을 떠나지 못하는 겜블러에 비유한다. 이런 기업의 사장은 자기가 자리를 옮길 때까지 손실이 드러나지 않도록 한다.

여기가 바로 미국과 일본의 기업구조 차이가 얼마나 큰 결과적 차이를 가져오는지가 갈리는 부분이다. 미국의 경우 신기술은 보통 구기술에 아무 금전적∙감정적 미련이 없는 신생기업들이 주도한다. TV나 중간규모 컴퓨터 시대를 이끌던 기업들은 이제 더이상 존재하지도 않는다. 현재 상위 21위 미국 전자회사 가운데 8곳은 1970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으며 6곳은 10년전에는 포춘 500에 들기엔 규모가 너무 작은 회사였다.

반면 일본의 경우 반세기가 넘는 시간동안 상위권에 새로 진입한 신생기업은 하나도 없다. 신기술이 부상하면 파나소닉, 소니, 샤프, 후지쯔, NCE 같은 기업이 부서를 새로 만든다. 그리곤 과거와 미래 사이에 끼어 ‘창조적 파괴’를 지연시킨다.

자동차 같은 특정 업계에서는 일본식 접근법이 우세할 지 모르지만 디지털가전처럼 급속히 변화하는 분야에서는 통하지 않는 접근법이다. 도쿄에 있는 애플 스토어에 얼마나 많은 일본 젊은이들이 몰리는지 한번 보라. 반대로 소니 스토어에는 얼마나 적은지도 말이다.

저자는 주 2회 간행물 ‘오리엔탈 이코노미스트 얼러트’ 편집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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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은폐 몸통"이라는 이영호… 진짜 몸통은 최소 장관급?

현 정권 출범 5개월 만인 2008년 7월 21일 서울 종로구 창성동 청와대 별관에 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문을 열었다. 이 조직은 출범 2년 만인 2010년 7월 민간인 사찰 혐의로 이인규 지원관 등이 구속됐고 최근 장진수 전 주무관의 폭로로 다시 뭇매를 맞고 있다. 전·현직 총리실 직원과 청와대 관계자를 상대로 윤리지원관실이 대체 어떻게 만들어졌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살펴봤다.
◇"윤리지원관실 산파역은 이영호 비서관"
2008년 5~6월 '광우병 쇠고기' 논란으로 불거진 촛불시위가 확산되면서 정국은 혼란에 빠져들었다. 6월 6일 국정 혼란의 책임을 지고 청와대 수석비서관 전원이 사표를 제출했다. 당시 민정수석실에는 상황 판단 미숙과 정보 부재로 사태를 키웠다는 책임론이 제기되었다. 민심 파악과 흐트러진 공직기강을 바로잡기 위한 새 조직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나왔다. 그로부터 40여일 만에 총리실 아래 공직윤리지원관실이 꾸려졌다.
그런데 역대 정권에도 그와 비슷한 조직이 있었다. 김대중 정권 시절의 '경찰청 사직동팀', 노무현 정권 때의 '총리실 암행감찰팀'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의 업무는 청와대의 하명(下命)을 받아 내사를 하고 공직자 비리를 자체 조사하며 각종 동향 정보를 파악해 청와대에 보고하는 것이었다. 편제상으론 총리실 혹은 경찰청에 설치됐지만, 청와대(민정수석)의 지휘를 받았던 사실상 청와대 조직이었던 셈. 조직 내 문제가 발생할 경우 대통령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형식적으로 청와대 외부에 기구를 두었을 뿐이다.
이명박 정권 인수위에서 폐지했던 노무현 정권의 '총리실 암행감찰팀'은 이렇게 해서 불과 5개월 만에 '공직윤리지원관실'이라는 간판을 걸고 '신장개업' 했다.
그러나 윤리지원관실은 태동 과정이 과거 정권의 조직과 조금 달랐다. 공직자 사정(司正)이 주 업무인 점을 감안하면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조직 구성과 운영을 주도해야 했으나 민정수석실은 윤리지원관실 출범에 관여하지 못했다고 한다. 오히려 총리실 전·현직 직원들은 "윤리지원관실은 이영호 당시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과 그의 부하 직원들 주도로 만들어졌다"고 입을 모았다. 이 비서관은 박영준 당시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과 함께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조직인 선진국민연대 출신이면서 고향도 포항이다. 총리실 관계자는 "충성심과 보안 의식이 요구되는 사정기관의 구성을 아무에게나 맡길 순 없지 않으냐. 정권에 대한 충성심이 '검증'된 이 비서관이 적임자로 떠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더욱이 이 비서관이 이끌던 고용노사비서관실에는 포항 출신의 조재정 선임 행정관과 최종석 행정관이 포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비서관은 '당신이 윤리지원관실을 만들었냐'는 질문에 "총리실 김영철(사망) 사무차장이 (설치를) 주장했고 당시 나에게도 의견을 물어왔다"면서 마치 윤리지원관실이 자신과 큰 관련이 없는 것처럼 답변했으나, 전직 총리실 직원은 "거짓말"이라고 못박았다. 그는 "윤리지원관실 멤버들의 면면을 살펴봐라. 이 전 비서관이 조직의 산파역을 맡았다는 점을 저절로 알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윤리지원관실의 책임자이자 최고위 공무원으로 발탁된 이인규 지원관은 영덕 출신으로 포항고를 졸업했으며, '넘버2'인 진경락 기획총괄과장은 고용노사비서관실에서 이 비서관의 부하로 근무했던 인물이다. 이 지원관과 진 과장은 둘 다 노동부 공무원으로 평화은행 노조위원장 등 노동계에 오랜 기간 몸담았던 이영호 비서관과 관심 분야가 비슷했다. 또 윤리지원관실 실무의 핵심인 김충곤 점검1팀장은 이 비서관과 같은 동네(포항 구룡포) 출신이었다. 총리실에 근무했던 한 직원은 "진 과장과 김 팀장은 이 비서관의 '좌충곤 우경락'이었다"고 했다. 여기에 이 비서관과 윤리지원관실 사이에서 '메신저' 역할을 했던 최종석 고용노사비서관실 행정관 역시 포항 출신이다. 총리실 관계자는 "상공부에서 잔뼈가 굵고 마산 출신인 김영철 총리실 차장이 윤리지원관실을 만들었다면 직원들을 이렇게 배치했겠냐"고 했다.
장진수 주무관의 최근 폭로 내용을 봐도 윤리지원관실과 고용노사비서관실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바로 윤리지원관실에서 활동비 280만원을 떼어내 정기적으로 '상납'한 대상이 이 비서관과 고용노사비서관실이었다는 부분이다. 이런 점을 봤을 땐 윤리지원관실을 지휘하는 청와대의 부서는 외형적으로는 민정수석실로 되어 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고용노사비서관실이었음을 추론할 수 있다.
◇"운영 미숙으로 사찰 사건 불거져"
윤리지원관실을 만드는 데 고용노사비서관실이 개입했다 하더라도 막상 조직이 가동된 이후에는 그 '작전권'이 사정(司正) 전담부서인 민정수석실에 넘어가야 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권력이 있고 정보가 모이는 조직을 누가 다른 데 주고 싶어하겠냐. 이 비서관은 어떻게 해서든 끝까지 윤리지원관실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했을 것"이라면서 "그렇다고 노동정책을 담당해야 할 노사비서관이 사정 업무에 관여하는 것도 공개적으로 밝히기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이렇다 보니 윤리지원관실은 다른 기관에서 봤을 때는 '독립군'처럼 운영되는 듯했고, 이 비서관은 자신의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지속적으로 윤리지원관실로부터 정보를 제공받고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한다.
윤리지원관실은 출범 초기 '암행어사가 부활했다' '사라진 관가의 저승사자들이 다시 돌아왔다'는 반응을 받았다. 업무 범위 역시 과거 정권의 사직동팀이나 총리실 암행감찰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직자 비리를 조사하고 민심을 파악했으며, 이따금 청와대의 '주문'도 조용히 처리했다고 한다. 지난 정권에서 암행감찰팀에 근무했던 총리실 직원은 "당시 우리도 공무원, 공기업은 물론 필요하면 민간 대기업 관계자를 상대로 조사를 벌였다"면서 "현 정권의 윤리지원관실도 비슷한 활동을 했으나 '운영 미숙'으로 민간인 사찰 사건이 불거졌다"고 했다. 청와대 관계자도 "사찰 업무를 하다 보면 '불법'과 '합법' 사이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아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 그런데도 전문 수사 인력이 아니라 노동계 출신 정치인과 노동부 공무원이 사정 작업을 주도했으니 뒤탈이 생기지 않을 수 있겠나. 아마추어들이 만든 어처구니없는 사건"이라고 표현했다.
이른바 '쥐코 동영상'을 올린 KB한마음 대표 김종익씨를 압박해 대표직을 그만두게 한 사건이 불거지면서 이인규 지원관과 김충곤 점검1팀장 등이 구속되었고, 이후 증거인멸 혐의로 진경락 과장이 구속됐다. 윤리지원관실은 2년 만에 '간판'을 내렸고 이후 공직복무관리관실로 이름을 바꿨다.
그러나 검찰은 2년 전 이 사건을 수사하면서 이 비서관의 역할을 규명하는 데 실패했다. 이인규 지원관이 사건 책임을 지면서 '윗선'의 연루 여부를 강력하게 부인했던 탓이 컸다고 한다.
◇"이영호 라인이 조직 좌지우지"
사실 윤리지원관실 주변에선 민간인 사찰 사건이 불거지면서 가장 억울한 인물이 '이 지원관'이라는 말이 끊임없이 새어 나왔다. 왜 그럴까. 이 지원관은 윤리지원관실 운영 과정에서 이 비서관과 많은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이 지원관은 행시 출신의 노동부 정통 관료로 이 비서관보다 여덟 살이 많다. 현 정권 출범 전까지 주로 노동계에 있던 이 비서관은 '존재감' 없는 인물이었으나, 새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 지원관의 상급자가 되었다. 그런 이 비서관 역시 이 지원관을 부담스러워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비서관이 '중용'했던 인물이 바로 자신의 심복으로 알려진 진경락 과장과 김충곤 점검 1팀장이었다. 전직 총리실 관계자는 "윤리지원관실 운영의 핵심은 바로 이영호-진경락-김충곤으로 이어지는 라인이다. 이들이 조직을 움직였던 인물"이라고 했다. 청와대 보고서를 작성하는 진 과장의 경우 직속상관인 이 지원관보다 먼저 이 비서관에게 보고하는 경우가 수차례 목격됐다고 한다. 당시 중앙 부처에서 파견을 나온 한 직원은 "조직이 이렇게 운영되면 안 된다. 이 지원관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다 결국 부처로 복귀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데도 검찰 수사망에서 이 비서관이 빠져나가자 이상한 기운이 감지됐다. 이 지원관뿐 아니라 민간인 사찰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직원들이 '윗선'에 불만을 갖고 있으며 이들로부터 '대형 폭로'가 있을지 모른다는 말이 돌았다. 이들은 자신들이 사건의 책임을 지고 처벌을 받고 있는데도 이를 '배려'해주지 않은 정권 실세에게도 원망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 전직 총리실 직원은 "사정기관 업무를 하다 보면 들키면 '큰 범죄'가 되지만 걸리지 않으면 '애국'이 되는 일이 가끔 있다. 그래서 민간인 사찰로 처벌받게 된 공무원들 입장에선 지금도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다만, 조직을 위해 희생했다면 그들을 '부렸던'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격려와 보상이 있어야 하는데 현 정권 사람들은 이들을 내팽개쳤다"고 했다. 현재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직원들은 유죄가 확정되면 공무원 신분을 잃게 되며 경우에 따라선 퇴직금도 받지 못할 처지다. 이런 사정을 아는 민주통합당에선 재판을 받고 있는 이들에게 접근해 각종 '당근책'을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폭로는 예견된 일, '머리'는 누구인가
이런 정황들을 종합해보면 이번에 청와대의 개입을 폭로한 장진수 주무관이 아니더라도 다른 직원들의 폭로도 어느 정도 '예견'되었다는 점을 알 수가 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장진수 주무관의 경우 지금까지 참고 있었던 다른 직원들과 달리 이 비서관이나 청와대 측에 도움을 강력하게 요청했는데, 당초 기대했던 '보상'이 돌아오지 않자 폭로를 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총리실 관계자는 "윤리지원관실 사건의 책임은 청와대에 있다. 조직 운영도 엉성했고 이 사건이 불거진 뒤에도 그 수습 과정이 아마추어리즘의 극치를 보여주었다"고 했다.
이 비서관은 최근 자신을 '증거인멸 사건의 몸통'이라고 주장했다. 총리실 관계자는 "증거인멸 과정에서 몸통 역할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윤리지원관실을 만들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몸통' 역할을 한 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고 했다.
하지만 윤리지원관실에서 벌어진 개별적인 정치인 사찰 사건에선 '머리'가 따로 있거나 이 비서관도 몸통이 아니고 깃털에 불과했을 가능성이 있다. 윤리지원관실 한 조사관의 수첩에는 수많은 정치인의 이름이 거론됐는데 누가 이들에 대한 조사를 주문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에 싸여 있다. 평소 이 비서관이 선점한 정보나 사찰 권력을 함께 향유한 인사가 밝혀진다면 이 또한 쟁점이 될 수 있다.
총리실 관계자는 "당시 이영호 비서관의 위치를 고려하면 '윗선'은 몇명이 되지 않는다. 그는 실세로 알려진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도 만만하게 봤으며, 장관들도 어려워할 정도로 이 비서관의 기세는 대단했다"고 했다.

강훈 기자 nuku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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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K·노정연·박정희·전두환… 무성했던 소문 캐러 공문서 6000건 뒤졌죠"

국내 정치권력과 재벌가의 비리를 폭로해온 재미(在美) 블로거 안치용(45·사진)씨가 '시크릿 오브 코리아-대한민국 대통령, 재벌의 X파일'(타커스)을 펴냈다. 책은 BBK 사건으로 시작해 이명박 대통령의 사위인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의 하와이 부동산 불법매입 과정을 파헤치고, 노무현 전 대통령 장녀 노정연씨의 100만달러 환치기 의혹을 비롯해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가족의 비리, 과거 정권의 이인자 노릇을 했던 김형욱·이후락·차지철 등의 미국 부동산 불법 매입 의혹도 해부했다.
부산대를 졸업한 안씨는 1991년 울산 경상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 1992~94년 미주(美洲) 조선일보, 귀국해 YTN에서 5년간 기자 생활을 했다. 2003년 미국 뉴욕으로 이민, 2009년 8월 블로그 '시크릿 오브 코리아(http:// andocu.tistory.com)'를 개설해 한국 권력층의 해외 불법 자산에 대한 폭로 글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 전화를 통해 만난 안씨는 "요즘은 하루 3000~5000명이 내 블로그를 찾는다"며 "그간 블로그에 올렸던 내용 70%에 새로운 취재 결과물 30%를 추가해 책을 엮었다"고 했다.
―왜 1인 미디어 기자로 활동하나.
"탐사보도를 제대로 해보고 싶었다. 언론사에 소속되면 출입처 기사를 처리하느라 하고 싶은 취재에만 몰입하기 쉽지 않다. 한국에서 기자 생활을 할 때는, 어떤 소문이나 의혹이 제기될 때 '어디 가면 뭐가 있겠다'는 감이 와도 막상 다른 일에 쫓겨서 심층취재를 할 수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만 집중적으로 팔 수 있어서 좋다. 도서관과 집이 사무실이다."
―취재 대상은 어떻게 고르고, 어떤 방식으로 취재하나.
"미국 한인사회에는 전직 대통령이나 재벌과 관련해 떠도는 소문이 많다. 소문이 나올 때마다 메모했다가 캐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9시 집 근처 공공도서관으로 출근해서 오후 6시까지 노트북으로 자료를 찾고, 일주일에 1~2일은 법원 등으로 현장 취재를 간다. 미국의 대부분 카운티는 재판 기록, 등기 서류, 부동산 계약서 등을 공개하기 때문에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이 책을 쓰기 위해 6000건 이상의 공문서를 들여다봤다."
―인터넷으로 자료를 어떻게 찾나.
"미국 내 부동산 사이트와 검색 사이트에서 해당자와 주변 인물들을 복합적으로 검색한다. 정확한 영문 스펠링이 문제인데, 이씨라면 Lee, Rhee, Li 등으로 다양하게 입력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노씨 성을 대부분 'Roh'로 표기하지만 노태우 전 대통령 아들 노재헌씨는 'Ro'로 표기해서 중국인처럼 보이게 했었다."
―수입은?
"블로그가 서서히 소문나면서 배너 광고가 생겨 월 3000달러 정도 수준이다. 아들(9학년)과 딸(5학년)을 부양하기에는 빠듯하지만 아내가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생활비 절반을 벌기 때문에 밥 굶을 정도는 아니다."
―지금은 뭘 취재 중인가.
"박정희 정권 시절의 권력자에 관련된 자료를 확보해 놨다. 책에는 내가 2009년 미국 뉴저지주 공동묘지에서 발견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의 묘비에 관한 얘기도 있는데, 앞으로 김형욱 관련 취재를 제대로 해보고 싶다."

허윤희 기자 ostinat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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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는 언제나 옳은가

[테마 읽기] 대중
"민주주의는 최악의 정부 형태다. 단, 그전까지 시도된 다른 모든 것을 제외한다면."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의 말이다. 최선은 아니지만 차악(次惡)이라서 택할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은 대중에 대한 평가와도 닿아 있다.
선거의 계절, 출판계도 민주주의와 대중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담아내느라 분주하다. 그 중 '내 안의 어두운 본성'을 드러내는 책과 '우리 마음 속의 보다 나은 천사'를 일깨우는 책을 나란히 소개한다. 미국 내외 보수 정치인의 선거 전략가인 포럴의 책이 성악설(性惡說)이라면 미 원로 교육운동가인 파머의 책은 성선설(性善說)에 가깝다.

강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감 이성적 판단까지 흐릴 수 있어  
언더도그마
마이클 포럴 지음|박수민 옮김|지식갤러리|268쪽|1만3000원
이야기는 '언더도그(underdog)'란 단어에서 시작된다. 쉽게 말해 패자 혹은 약자다. 그런 약자를 무조건 옳다고 편드는 것이 언더도그마(underdogma). 약자는 그저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선하고 고결하며, 강자는 강하다는 이유만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믿음을 말한다. 약자에 대한 선의의 동정심과는 다르다. 힘의 강약에 따라 '반사적'으로 편들거나 비난한다는 점에서 이성은 속수무책이다.
2007년 사우스플로리다대 연구진의 실험 결과를 보자. 사람들에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을 설명한 글을 읽힌 다음, A그룹에는 이스라엘이 커 보이는 지도를, B그룹에는 작아 보이는 지도를 보여줬다. 그 결과 A그룹의 70%가 팔레스타인을 약자로 판단했고, 53.5%가 팔레스타인을 편들었다. 반면 B그룹은 62.1%가 이스라엘을 약자로 봤으며 76.7%가 이스라엘을 지지했다. 사실과 관계없이 직관적인 크기로 약자를 판단하고 반사적으로 동정심을 보인 것이다.
독일어에는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란 단어가 있다. '남의 불행에서 얻는 행복'이란 뜻. 우리도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하지 않는가. 세계 20여개 언어에 이와 비슷하게 강자를 비난하는 표현이 있다. 대중은 성경의 다윗이 골리앗을 때려눕힌 이야기나 복싱 영화 '로키'에 열광하고 신데렐라 같은 반전(反轉) 동화나 드라마에 매료된다.
왜 그런가. 저자는 누구나 겪는 성장 과정에서 체득된 습성 같은 것이라 설명한다. 우리는 작고 무력한 상태에서 크고 힘 있는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고 자란다. 그 과정에서 약자의 기분을 느껴봤고 힘센 존재에 의한 피해 의식을 키워왔다. 언더도그마는 일종의 동병상련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인기인 것도 같은 이치다. 언더도그 아마추어가 메이저 음반사와의 계약을 꿈꾸며 열창하는 모습에 응원을 보낸다. 하지만 정작 우승자의 음반을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뉴스에서도 무명이 일약 스타가 되거나 유명인이 추락하는 기사가 단연 인기다. 오늘날 '악당'은 부자와 권력자다. 영화 타이타닉에서도 3등석의 가난한 청년(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연기)은 여주인공의 사랑을 받는 반면, 1등석의 부유하고 괴팍한 사람들은 구명보트를 차지해 착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물에 빠져 죽게 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정치인들이 서민 점퍼를 입고 보통 사람들과 어울려 사진을 찍으려는 것도 그 때문이다. 드골은 "정치인은 주인이 되기 위해 하인의 자세를 취한다"고 했다.
언더도그마는 이제 전통적인 좌-우 이념을 대체해 우리 시대 쟁점을 보는 기준이 됐다. 문제는 언더도그마가 '주의(ism)'로 고착될 때다. 약자는 어떤 행동을 해도 무조건 정당하고 강자는 어찌 됐건 조롱의 대상이 된다. 언더도그마가 판치는 곳에 음모론도 기승이다. 강자는 흔히 음흉한 '빅 브러더'로 묘사된다.
이 언더도그마를 어찌할 것인가. 저자는 누그러뜨리거나 껴안아야 한다고 말한다. 약자를 잘 다독거리고 격려해야 한다는 말이다. 저자 스스로는 비이성적인 언더도그마에 대해 맞서 싸우겠다고 다짐한다.

민주주의는 '갈등'을 연료로 굴러간다
극좌·극우는 늘 존재… 70%의 열린 마음이 공동체를 이끈다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파커 파머 지음|김찬호 옮김|글항아리|328쪽|1만5000원
앞에서 말한 '언더도그마'는 이 책에서는 마음이 병든 상태로 분류된다. 마음이야말로 그동안 무시돼온 민주주의의 인프라다. 따라서 고장 난 민주주의를 되살리려면 마음의 습관부터 재건해야 한다.
마음이 병든 것은 내적인 공허함 때문이다. 그 결과 거짓되고 해로운 의미 체계에 쉽게 현혹된다. 광고를 앞세운 소비주의가 하나, 다른 하나가 '희생양 만들기'다. 그 점에서 저자는 이 시대의 정치를 '상심한(brokenhearted) 자들의 정치'라 부른다. 정치에 관한 모든 이야기가 분파적이고 양극적이 되어 모두의 마음을 갈가리 찢어놓는다.
하지만 저자는 인간의 마음이 지닌 힘을 믿는다. 모범 답례로 제시되는 것은 뜻밖에도 저자가 뉴욕에서 조우한 택시 기사의 말이다. "어떤 손님이 탈지 전혀 알 수 없지요. 그래서 조금 위험하기는 해요. 하지만 많은 사람을 만날 수가 있어요. 거기에서 인생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운답니다. 여러 종류의 사람을 만나면 도움이 되지 상처가 되지는 않아요. 대중은 늘 신선하지요."
저자는 이 택시 기사야말로 민주시민의 덕목인 개방성과 당당함, 겸손함을 겸비했다고 본다. 민주주의도 같다. 서로간에 많은 차이에도 불구, 다양한 사람과 만날 기회를 얻고 타인들이 내 삶을 풍부하고 활력 있게 만들어준다는 믿음 속에서 배우며 앞으로 함께 나아간다. 타자를 두려워하거나 악마화하지 않고 차이가 빚어내는 긴장을 끌어안아야 민주주의가 작동한다. 갈등을 연료로 삼는 발전소가 민주주의다.
인간이나 정치의 본성 탓에 도저히 대화 불능인 사람들도 늘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대화해도 합의에 이를 수 없는 사람들이 좌·우파에 각각 15~20% 정도 있다. 1787년 미국 제헌회의에서도 55명 대의원 중 39명만 최종 문서에 서명했다. 30%는 동의 못한 것이다. 이 말을 뒤집으면 60~70%는 대화가 가능한 사람들이란 얘기다. 이 정도면 민주주의가 곤경을 벗어나는 데 충분하다.
저자는 오늘날 정치인들이 언어폭력의 수위를 높이며 몸싸움을 벌이는 것을 보고, 그들이 매일 걸어서 출근하면 좀 더 나은 지도자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늘날 민주주의의 이상적인 모습은 의회나 정치권이 아니다. 거리의 카페이고 공원이고 광장이다. 이곳에서는 낯선 사람들이 눈인사하고 대화를 주고받는다. 저자는 이런 시민들의 접촉과 대화, 유대감을 키워갈 수 있는 공간을 의식적으로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두 책은 마치 사전에 역할 분담을 한 것처럼 동일한 실체의 앞뒷면을 조명한다. 고장 난 대중 민주사회를 앞에 두고 어떤 진단과 처방에 더 귀를 기울일 것인가, 읽는 내내 숙고하게 된다. 둘 중 어느 하나를 덮더라도 아쉬움은 남는다. 그런 점에서 두 책은 이상적인 민주주의가 그렇듯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는 목소리로 들린다.

전병근 기자 bkje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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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국 도전에 아시아계 선택… '오바마의 묘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세계은행 총재 후보 등록 마감일인 23일 한국계인 김용 다트머스대 총장을 신임 총재 후보로 지명했다. 사실상 세계은행 총재 결정권을 쥔 미국이 김 총장을 차기 총재 후보로 지명하면서 김 총장은 이변이 없는 한 세계은행 설립 이후 첫 한국계 총재로 선임될 전망이다.
미국의 총재직 독식에 신흥국 거센 반발
지난달 로버트 졸릭 현 총재가 오는 6월 말 임기가 끝나면 연임하지 않고 총재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히면서 미국이 차기 총재에 누구를 지명할 것인지에 관심이 쏠렸다. 관행적으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유럽 출신이 맡았고 세계은행은 미국이 맡아 왔다.
하지만 중국브라질을 중심으로 '이번엔 신흥국 출신이 총재가 돼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됐다. 브라질의 귀도 만테가 재무장관은 "신흥국 후보가 세계은행을 이끌 수 있도록 똑같은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세계은행과 IMF의 총재직을 미국과 유럽이 나눠먹기식으로 '세습'하는 것은 세계 국내총생산(GDP) 증가의 70%를 신흥국이 기여하는 현실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중국과 인도를 포함한 신흥국의 세계은행 이사들이 신흥국을 대표할 후보자를 추천하기 위해 몇 주에 걸쳐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나이지리아의 응고지 오콩조-이윌라 재무장관은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신흥국의 지지를 받고 차기 세계은행 총재 후보로 등록하면서 '반란'을 꿈꿨다.
◇미국, 입후보 마감날 후보 지명
세계은행과 IMF에 절대적인 지분을 갖고 있는 미국과 유럽이 서로 상대방 후보를 지지해주는 상황에서 신흥국 출신이 기존의 벽을 깨기는 쉽지 않다는 전망이 지배적이기는 했다. 세계은행에선 지원금에 따라 투표권 비중이 달라진다. 미국의 투표권이 15.85%이고, 여기에 유럽의 투표권까지 합산할 경우 전체의 절반 정도를 차지한 상황에서 미국과 유럽이 합의한 바에 따라 사실상 총재가 결정돼왔다. 지난해 성추행 스캔들로 사임한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IMF 총재의 후임자를 선출할 때도 신흥국은 "비유럽 출신을 임명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유럽 출신인 크리스틴 라가르드 당시 프랑스 재무장관이 총재가 됐다. 하지만 이번 세계은행 총재 선출에서 신흥국이 일치단결해 특정 후보를 밀어줄 조짐을 보이자 미국의 고민도 깊어졌다. 신흥국이 세계은행 총재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동안 미국은 마감 시한이 임박한 순간까지 후보를 결정하지 못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세계은행 차기 총재 인선을 놓고 고심을 거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백악관은 총재 후보로 거론된 인사들을 설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이름이 제일 먼저 거론됐지만 클린턴 장관은 총재직에 관심이 없다고 밝혔다. 수전 라이스 주(駐)유엔 미국대사도 유력한 후보로 꼽혔다. 하지만 라이스 대사는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경우 유력한 차기 국무장관 후보인 까닭에 세계은행 총재를 맡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신흥국의 도전이 그 어느 때보다 거셌던 이번 세계은행 총재 선출에서 미국은 한국계 미국인인 김 총장을 지명해 총재 자리도 지키면서 신흥국의 반발을 최소화하는 효과를 노렸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승범 기자 sb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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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살 때 美이민… 세계은행 66년 첫 非백인 총재 올랐다

김용(53) 세계은행 총재 내정자는 단순히 한국인을 넘어 아시아인으로서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또 하나의 최초의 역사를 썼다. 66년 세계은행 역사에서 백인의 전유물이었던 총재직을 아시아인이 차지한 것은 김 총재 내정자가 처음이다.
그는 지난 2009년 미국 아이비리그(동부 명문 대학)의 다트머스대 총장에 오를 때도 미국 사회에서 인종의 장벽을 깼다. 200여년이 넘는 미국 아이비리그 역사 속에서 아시아인이 총장에 선출된 것은 그가 처음이다.
김 총재 내정자는 당시 다트머스대 총장에 취임할 당시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세브란스병원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미국으로 건너온 내가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의 총장이 됐다"며 "이 영광을 고국의 국민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고 말했었다.
이 감격이 채 3년이 지나기 전에 그는 국제무대 최고의 자리인 세계은행 총재에 올라 대한민국에 다시 감격을 선사했다.
김 총재 내정자는 사익을 떠난 공익의 영역에서 뜨거운 열정을 가슴에 품고 정면으로 도전하는 삶을 살아왔다. 하버드대 의대에 재직할 당시 중남미와 러시아 등의 빈민지역에서 결핵 치료를 위한 신규 모델을 만들어 큰 성공을 거뒀고, 2004년에는 세계보건기구(WHO) 에이즈국장을 맡아 30만명이던 후진국의 에이즈 누적 치료자 수를 130만명으로 획기적으로 늘렸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2006년 타임), '미국의 최고 지도자 25명'(2005년 US 뉴스 앤 월드리포트) 등에 선정됐고, '천재상'으로 불리는 맥아더펠로상(2003년)을 수상한 바 있다.
아이오와주 머스커틴고등학교를 수석 졸업했으며 고교시절 총학생회장으로 활약했다. 학교 미식축구팀에서 쿼터백을 맡았으며, 농구팀에선 포인트가드를 담당했다. 브라운대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의학과 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항상 자신의 성공 뒤에 부모님이 있음을 강조했다. 성공 비결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미국 속담에 '성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를 잘 고르는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며 "좋은 부모님을 만난 덕분"이라고 말하곤 했다.
김 총재 내정자의 부친 김낙희(별세)씨는 6·25전쟁 당시 17세의 나이로 혈혈단신 북한에서 피란 와 서울대 치대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와 아이오와대학 치의학 분야에서 활동했다. 모친 김옥숙씨는 경기여고 수석 졸업생으로 역시 아이오와대학에서 한국 철학 퇴계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땄다. 그는 "실무적인 직업을 가진 부친과 큰 사상을 연구하는 모친을 둔 이상적인 환경에서 자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한국인이 한 명도 없는 지역에서 자라면서 설움도 겪었다"며 "이를 보다 큰 비전과 용기로 바꿔 도전하면서 극복했다"고 했다.
김 총재 내정자는 보스턴 아동병원 소아과의사인 부인 임연숙씨와의 사이에 2남을 두고 있다. 서남표 카이스트대 총장이 친한 친구다. 그는 평소 한국의 학생들에겐 "우선 공부를 매우 열심히 하고, 다음엔 자기가 옳다고 믿는 바를 밀고 나가야 한다"고 주문하고 부모들에겐 "너무 공부만 잘하는 아이로 만들지 말라"고 조언한다.

 

☞ 김용 누구인가
1959년 서울 출생
1982년 브라운대 졸업
1991년 하버드대 의과대학 졸업
1996년 하버드대 감염질병 및 사회변혁프로그램 공동국장
2004년 세계보건기구(WHO) 에이즈 담당 국장
2005년 하버드 의대 사회의료국 국장
2006년 타임 선정 세계를 변화시킨 100인
2009년 다트머스대 총장
2012년 세계은행 총재 내정

☞ 세계은행(World Bank)
1944년 브레턴우즈 협정에 근거해 1946년 6월 창설됐다. 제2차 세계대전 전쟁복구 자금 지원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개발도상국을 위해 자문과 장기 자금 대여를 주업무로 한다. 매년 약 600억달러를 개발도상국에 차관 형태로 지원한다. 산하에 국제부흥개발은행(IBRD)과 경제개발협회(IDA) 등 2개 기구를 두고 있으며 회원국은 IBRD·IDA에 각각 187·171개다. 미국이 가장 많은 15.85%의 투표권을 갖고 있고 일본(6.84%)·중국(4.42%) 등이 뒤를 잇는다. 유럽권의 목소리가 강한 국제통화기금(IMF)과 달리 미국 주도로 운영되며, 지금까지 모든 총재는 미국인이 맡았다. 본부는 미국 워싱턴 DC에 있다.

박종세 기자 js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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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從北派가 진보당 휘어잡고 진보당은 민주당 끌고가나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 대표가 막판까지 버티다 결국 23일 불출마로 돌아섰다. 이 대표가 주연으로 등장한 야권 후보 단일화 과정의 여론조사 조작 의혹은 터지자마자 단박에 두 당의 단일화 효과에 직격탄을 날렸다. 단일화에 따른 야당 상승세가 풀썩 꺾이고, 정당 지지도에서 새누리당이 민주·진보 연대를 앞섬으로써 총선 판세는 다시 알 수 없게 됐다. 이 대표와 통합진보당이 그동안 여권의 의혹이 터질 때마다 '도덕' '윤리' '정의'라는 단어를 앞세운 훈계를 도맡다시피 한 인물과 세력이어서 대중의 배신감과 충격이 더 큰 듯했다.

정치 마당의 상식적 판단은 이 대표의 사퇴가 늦어질수록 본인과 소속 정당, 민주·진보 연대 쪽의 피해는 더 커져가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대표는 당초 이 정치의 상식을 따르지 않았다. 이 대표는 인터넷 방송에 나가 눈물까지 보이면서도 사퇴라는 말만은 입밖에 내지 않았다. 이 대표는 민주·진보 연대의 배후(背後) 추진 세력이라는 원로 모임이 나서 사실상 사퇴를 종용해도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사퇴 여부는 무대 위에 선 본인과 진보당이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라, 그 너머 '어떤 세력의 몫'이 아니냐는 설(說)이 유력하게 나돌았다. 이 수수께끼는 진보당의 전신(前身)인 민주노동당에서 이 대표와 함께 활동했던 인물들이 '그 어떤 세력'의 실체를 '경기동부연합'이라고 밝힘으로써 풀리기 시작했다. 진보당이 사퇴한 이 대표 대신 관악을(乙) 선거에 내세운 후보도 같은 '경기동부연합' 소속으로 알려졌다.

'경기동부연합'은 1990년대 경기도 성남과 용인을 중심으로 노동운동 등을 하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때 합류한 범(汎)NL(National Liberation)계라고 한다. NL계는 80년대 대학가에서 반미(反美) 자주화를 내걸어 자주파(일부는 주체사상파)로 불리며 급속히 성장, 사회주의 본래 노선에 더 충실할 것을 주장하는 PD(People's Democracy)계를 소수파로 밀어내고 대학가 운동권을 장악했다. 완강한 내부 기율을 기반으로 핵심 세력 중심의 전위(前衛) 정당 형태까지 갖추었던 NL계가 2000년대 민주노동당에 들어가 당 지도부를 장악하더니 진보신당 탈당파와 국민참여당과 합쳐 통합진보당으로 몸집을 불리고 나아가 제1 야당인 민주통합당과 선거 연대까지 이뤄냈다. PD계는 이들을 종북파(從北派)라고 불렀다.

민주통합당 새 지도부는 친노(親盧) 세력이다. 한미 FTA와 제주 해군기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진한 프로젝트다. 그래서 사람들은 민주통합당 지도부가 자신들이 과거에 잘못 판단했다는 양심선언까지 하면서 두 사안의 전면 무효화에 이토록 매달릴 이유가 있는지 궁금해했다. 그 의문을 풀만한 실마리도 이번에 나왔다. 민노당에 이어 진보당을 장악한 종북파는 그들의 존립 근거인 한미 FTA 폐기와 제주 해군기지 백지화에선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므로 민주당이 그들과 손잡으려면 그들 요구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야권 전체로 보면 종북파는 아주 작은 세력이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들만한 결집력과 활동력을 가진 세력은 야권에 없다. 여권에도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을 중심으로 모인 세력은 있을지언정, 종북파처럼 이념으로 똘똘 뭉친 집단은 없다. 이번 이정희 파동은 80년대 대학가를 주름잡던 종북파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짐작하게 해주었다. 앞으로 이 나라 정치와 국가의 진로를 제대로 파악하고 대비하려면 이들의 동향에서 눈을 떼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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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영 칼럼] 뜬구름 위의 재벌 총수들

대한상의·전경련·무역협회·중소기업중앙회·경영자총협회 등 5개 경제단체가 모처럼 한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22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인기 영합하는 공약 남발과 기업 때리기를 자제하라고 요구했다. 대기업을 패고 물어뜯어야 표를 얻는 선거철에 기업인들의 불편한 심사를 정치권에 전달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경제계를 단결시킨 것은 포퓰리즘 공약을 견제하려는 명분만은 아니다. 핏발 선 눈으로 전투적인 노동운동을 일삼던 1980년대 운동권 용사들이 30명 넘게 다음 국회에 진출할지 모른다는 어림짐작이 그들을 긴장시켰다.

"1980~90년대 그들은 현장에서 잠복 상태로 투쟁했지만, 앞으로는 국회라는 링 위에서 공개전투로 전환하겠다는 것 같다. 당시 위장취업했던 인물들, 배후에서 투쟁이론을 교육했던 인물들이 정치권에 대거 출현했다. 이번에 얼굴을 내밀지 않은 운동권이 있다면 정치와는 담을 쌓은 사람들뿐일 것이다."

어느 기업인이 야권의 단일화된 후보들과 비례대표 명단을 훑어본 후 내놓은 진단이다. 한국노총은 민주통합당과 손잡았다. 민주노총은 통합진보당을 통해 야권 연대에서 넓은 터를 확보했다. 노동계는 모두 야권(野圈)으로 뭉쳤다.

강성(强性) 노동운동가들이 여럿 당선 되면 다음 국회에서 비정규직과 노동법 개정을 둘러싸고 일대 전쟁이 벌어지리라는 것은 자명해졌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기업인 출신 후보를 거의 내세우지 않았다. 재계로서는 정치권에서 지원군마저 찾기 힘든 처지다.

정치판을 볼 줄 아는 기업인이라면 재벌 총수를 비판하는 말, 대기업을 성토하는 확성기 소음에 귀를 막았던 것을 이제 와서 후회할 것이다. 골목 수퍼의 배달 아저씨가 재벌을 향해 쌍스러운 욕을 내뱉을 때 "우리 백성은 사촌이 땅 사는 것도 배 아파 못 견딘다"며 국민성을 탓했던 말도 지우고 싶을 것이다. 제빵 재벌에 밀려 오피스텔 코너의 빵집을 문닫은 '삼순이'들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했던 일도 당장 과거로 되돌리고 싶어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올 것이 왔다'는 위기의식이 경제계 전체에 널리 퍼진 것은 아니다. 오너 가족들은 여전히 배부른 상속을 둘러싼 소송으로 입맛을 씁쓸하게 만든다. TV·냉장고부터 라면·교복까지 소비자를 골탕먹이는 담합은 끊이지 않는다. 안 팔리는 골프 회원권을 하도급회사에 강매하고, 회삿돈 수십억원으로 유명 화가의 그림을 사들여 자기 집 거실에 걸어놓는 회장님의 악취미도 건재하다.

공격의 빌미를 스스로 헌납하는 기업인은 너무 많다. 재벌 비판이 상종가를 칠 때면 재벌 총수와 그 가족들의 추문은 덩달아 솟아나온다. 20년 전만 해도 창업자 총수들은 오늘처럼 오만하지 않았다. 현대그룹의 정주영 창업자도 은행장을 만나려고 한 시간 넘게 은행장실 문고리가 흔들리기를 기다리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사원들과 맨몸으로 씨름하고 포장마차에서 폭탄주를 돌리던 사장님도 적지 않았다.

지금 2세, 3세 총수에게는 누구도 쓴소리를 할 수 없다. 재벌 총수 사무실은 싫은 소리가 금지된 치외법권(治外法權) 구역으로 성역화됐다. 과거에 돈줄을 쥐었다 풀어주며 견제하던 은행도 "여유자금을 예금해달라"고 거꾸로 매달리는 형편으로 바뀌었다. 사장들마저 총수 따라서 거만해졌고, 임금 협상을 경영진에게 일임하지 않는 노조에게 "우리 노조는 변태(變態) 아니냐"며 모욕을 준다. FTA로 알짜 이득을 챙길 수출기업의 청년 사원들은 반(反)FTA 정서에 물들어가건만, "당신들 월급은 5할 이상이 무역에서 얻어지는 선물"이라며 설득할 생각조차 없다.

재벌 총수는 회사 통장에 수조(兆)원의 잉여금을 쌓아놓고도 연봉과 복지를 묶어놓은 채 "미래를 위해 비축해 놓자"는 말만 해마다 똑같이 반복한다. 그럴수록 젊은 사원들은 인터넷에서 삐딱한 '콘서트'에 심취해가고, 회사 등산대회에는 몸살을 핑계로 빠지면서 자기들끼리 동료의식을 확인하는 모임에는 개근한다. 중간 간부들은 상하 간 의사통로가 되지 못한 채 '명퇴' '권고사직'이란 단어를 겁내며 윗분의 지시와 하명(下命)에 비굴해졌다. 총수와 사원들 간의 거리는 지구와 태양만큼 까마득하게 멀어졌다. 경영진과 사원들이 터놓고 대화하는 콘서트가 열리기는 커녕 다가설 수 없는 넓은 DMZ(비무장지대)가 형성됐다.

회사 안에서 불통(不通)인데 회사 밖 사회나 정치권과 통할 리 없다. 다음 국회에서 과격 노동운동가들이 총수를 골탕먹이고 회사를 도산시킬지 모를 위기로 몰고 가더라도 내 편이 되어줄 응원세력을 회사 안에서조차 확보하지 못할 수 있다. 총수들은 정치권의 좌경화를 걱정하기 앞서 자기 발밑에서 폭발할 지뢰밭부터 살펴봐야 한다.

/송희영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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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주총데이, 조용히 묻어간 횡령·배임 재벌 기업들

23일 672개 상장사 정기 주주총회가 몰린 '슈퍼 주총데이'에서는 총수가 횡령이나 배임 혐의를 받는 기업들이 주주들의 성토를 받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별다른 반대 없이 정관변경 등 총회를 원만하게 마쳤다.

◆ 하이마트, 태광산업 소란 우려 주총장 봉쇄

회장과 전 회장이 검찰 수사와 재판 중인 하이마트(071840)와 태광산업(003240)은 이날 소란을 우려해 주주를 제외한 취재진 등 외부인의 출입을 봉쇄했다.

하이마트는 이날 오전 10시 서울 대치동 강남구주민센터에서 삼엄한 경비 아래 제25기 주주총회를 열고 대차대조표, 손익계산서, 이익잉여금처분계산서(안) 등을 일사천리로 통과시켰다.

일부 소액주주들은 "언론보도에 따르면 하이마트가 선종구 회장의 자녀가 대표로 있는 회사에 수백억원어치 광고 물량을 몰아준 것으로 나온다"며 "이에 대한 해명 없이 감사보고서를 통과시킬 수 없다"고 반발했다. 그러나 하이마트 우리사주 조합원 250여명이 "의안과 상관없는 질문을 하지 말라"며 제지했다.

태광산업도 소수의 주주만 참여시켜 30여분만에 주총을 끝냈다. 태광은 이호진 전 회장이 회삿돈 유용 혐의로 실형을 선고 받은 데다 '장하성 펀드(라자드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가 기업지배구조개선을 요구해온 터라 올해는 경비인력을 대거 배치하는 등 단속에 나섰다. 특히 이날 오전 9시 서울 종로구 씨네큐브에서 열린 제51회 주총은 비공개로 일부 주주만 신분증 확인을 통해 50여명만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이나 동영상 촬영도 막았다. 11시에 열린 태광계열 대한화섬 주총도 비슷하게 진행됐다.

◆ SK·한화 '오너 리스크' 속 정관개정 일사천리 진행

그룹 회장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인 SK(003600)와 한화(000880)도 별다른 문제없이 주총이 20~30분만에 끝났다.

이날 서울 종로구 SK빌딩에서 열린 SK 주주총회에서는 재무재표 승인, 정관 일부 변경, 사외이사와 감사 선임 등 안건을 30분 만에 처리했다. 주주들은 제기된 의안에 대해 전원 찬성했다.

SK텔레콤(017670)도 이날 서울 봉천동 보라매사옥에서 열린 주주총회를 26분만에 끝냈다. 올해 IT기업 중에서는 최단 시간 기록이다. 일부 주주가 사외이사가 너무 많다며 줄일 것을 요구했지만 5명을 고수했다. SK텔레콤 주주들은 주가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 가량 떨어졌지만 대부분 안건에 대해 박수로 찬성의사를 밝혔다.

최근 김승연 회장의 횡령·배임과 공시 지연으로 상장폐지 위기까지 겪었던 한화도 이날 1명의 반대도 없이 20여분 만에 폐회를 선언했다.

/설성인 기자 seol@chosun.com
/안석현 기자 ahngija@chosun.com
/우고운 기자 wo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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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독재적 경영 스타일과 비밀주의가 낳은 '눈물의 아이폰'

이달 7일 뉴 아이패드 출시 행사가 있던 미국 내 애플스토어에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신제품을 먼저 차지하려고 밤새 줄 선 팬들 옆에 "노동자를 보호하라"는 구호를 외치는 시위대와 서명운동이 등장한 것이다.

아이패드 조립 공장인 폭스콘(Foxconn)의 CEO 테리 구오(중국명 궈타이밍·郭台銘)와 애플 창시자 스티브 잡스(Steve Jobs)의 첫 인연은 1990년대 말로 올라간다. 1974년 24세의 대만 청년 테리 구오는 군 복무를 마치고 선박 회사에서 일하다가 훙하이(鴻海)라는 회사를 창업, TV 채널 손잡이 등의 제조 하도급업을 벌였다. 그러던 중 미국 내 32주(州)를 1년 동안 돌기로 한다. 끈기와 배짱으로 32개 주의 큰 회사 문을 두드린 결과, IBM에서 주문을 따내는 데 성공한다.

그는 곧 임금이 싼 중국으로 사업을 확장한 후, 1996년 컴팩에 컴퓨터를 싼 가격에 만들어준 게 소문나면서 애플·HP·삼성 등으로부터 연달아 주문을 받는다. 당시 잡스는 해고당한 지 10년 만에 빚더미에 앉은 애플로 돌아와 급여 1달러를 받으며 성공이라는 하나의 목표에 매달린다. 제품 수도 줄이고 과감한 개혁을 통해 아이맥(1998년)·아이팟(2001년)·아이폰(2007년)·아이패드(2010년) 등으로 승승장구하며 노키아와 마이크로소프트를 제쳤다. 이 성공의 뒤에는 폭스콘 노동자의 희생이 있었다.

◇애플과 폭스콘의 '딜레마'

훙하이그룹의 영어식 상호명인 폭스콘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아이폰 13만7000개를 매일(1분당 약 90개) 만들어내던 공장에서 투신자살이 연발한 2010년이다. 어느 날 열아홉 살 난 직원 한 명이 공장 5층 창문에서 뛰어내린 게 벌써 11번째 투신자살이라는 것이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세계의 소비자들은 그 공장이 아이폰을 만드는 곳이라는 데 주목했다. 필자가 보기에 현재 애플과 폭스콘은 서로를 버리기에는 너무 많이 함께 왔지만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 애플로서는 폭스콘의 스피드·품질·가격에 대한 대안이 당장에는 없다. 삼성과 애플이 본질적으로 다른 점은 제조회사와 판매회사라는 점이다. 즉 갤럭시폰은 삼성 공장에서 대부분 만들지만, 아이폰의 생산은 전적으로 폭스콘에 의지한다. 애플은 디자인과 마케팅만 한다. 폭스콘은 흔히 생각하는 단순 하도급 업자가 아니다. 전략적으로 남의 브랜드만 조립 생산하기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포천 글로벌 500' 안에 들며 세계 12개국 25개 공장에 직원 120만명을 거느린 거대한 회사다. 보유 특허만도 3만5000개 이상이다.

더욱이 폭스콘은 철저한 고객 중심주의로 투자를 아끼지 않았으며 제품에 대한 비밀을 지켜 잡스의 신용을 얻었다. 잡스가 TV 인터뷰에 나와 폭스콘을 노동자를 위한 숙소·병원·수영장까지 갖춘 좋은 회사라고 변호할 때, 그 시설은 노동자들을 24시간 효율적으로 통제하는 수단이라는 말은 뺐다. 당시 그의 눈이 카메라 대신 바닥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폭스콘의 딜레마는 나쁜 기업으로 낙인찍힌 데다, 마진까지 줄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5년간 주가(株價)를 보면 애플은 2006년에 비해 400% 이상 올랐으나, 폭스콘은 5년 전 주가 그대로다. 2010년, 폭스콘은 아이폰의 생산량을 충당하기 위해 100억달러를 들여 중국 청두(成都)에 새 공장을 지었고 아이폰4의 각진 프레임을 특수 제작하기 위해 엄청난 투자를 했다. 같은 해 애플은 이윤을 140억달러 남겼으나, 폭스콘은 처음으로 2억달러 손실을 냈다. 싼 가격을 유지하는 데 필수인 공급망의 효율적인 통제와 중국 노동자들의 저임금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폭스콘은 중국 공장에 로봇을 투입하거나 브라질 등 제3국으로 이전을 검토 중이다.
◇비밀주의의 종말

리더십과 고객 만족은 경영대학원에서 인기 과목들이다. 카리스마적 리더십과 고객 중심을 지향하는 기업들은 향후 3년간 애플과 폭스콘을 주시해보길 바란다. 찬란한 성공 뒤의 군대식 경영 스타일과 비밀주의는 구오와 잡스의 공통점이다. 이런 카리스마형 리더는 빠른 성장을 일으키지만, 나르시시즘에 빠지면 현실을 직시하기 힘들고, 후계자 구도도 늦어진다.

폭스콘의 비밀주의는 역설적으로 철저한 고객 중심의 결과다. 첫 투신자살자가 2009년 아이폰 원형(견본)을 잃어버린 후 각종 신체적·심리적 학대를 견디지 못했던 노동자였던 것을 기억한다면, 결국 지나친 고객 중심주의가 고객인 애플의 신뢰를 단기간 얻었으되 장기적으로는 손실임을 보여준다.

포브스(Forbes)지의 세계 부자 명단에 오르고 24세나 어린 부인 데리아와 결혼해 득남한 테리 구오는 62세로 남들은 은퇴를 생각해야 할 나이에 회사 때문에 고민이 많다. 건물마다 안전망을 치고, 월급도 외관상 올렸고, 신입 사원에게 자살 안 하기 서명까지 받았지만, 폭스콘 노동자는 올 들어서도 투신자살을 기도했다. 대중은 가장 존경받는 기업 순위에서 구글을 제치고 1위를 한 애플에 대해 노동자들의 희생을 대가로 이윤을 극대화했다고 비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005년 스탠퍼드대 졸업식에서 잡스는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여러분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명연설을 남겼다. 그리고 현재 애플은 1000억여달러라는 거대한 현금을 주주들에게 배분하는 것 외에는 어떻게 사용할지 몰라 전전긍긍한다. 499달러짜리 아이패드를 폭스콘에서 조립하는 데 드는 비용은 고작 12달러라고 한다. 애플을 포함한 대기업이 오늘 해야 할 일에 대한 대답은 더없이 선명해 보인다. 이는 잡스가 사랑했던 비틀스 노래에서처럼 너와 나의 추억은 앞에 펼쳐질 길보다 짧기 때문이다.

※이번 호부터 월 1회 로사 전(Rosa Chun) 스위스 IMD경영대학원 정교수의 칼럼을 게재합니다. 로사 전 교수는 영국 맨체스터대 경영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교의 최연소 정교수를 거쳐 현재 IMD경영대학원의 최초이자 유일한 한국인 교수로 리더십·마케팅·경영전략 등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 '전략 경영 저널(Strategic Management Journal)' '마케팅 과학회 저널(Journal of Academy of Marketing Science)' 등 90개 이상 유력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로사 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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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조 '3000만원으로 선거 뽀개기' 접었다

부산 사상에 출마한 27세 손수조(사진) 새누리당 후보의 '3000만원으로 선거 뽀개기' 운동이 23일 논란이 됐다.

손 후보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대항마로 출마하면서 3000만원 이내에서 선거를 치르겠다고 했으나 전날 "예비 후보자 기간 약속한 선거비용을 거의 사용했다"면서"당장 선관위 기탁금인 후보등록비(1500만원)를 내면 더 이상의 선거운동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는 "감사하게도 지금까지 450여분이 8000여만원을 보내주었다. 제 힘의 3000만원에 국민의 힘이 더해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일부 네티즌들은 "공약을 파기한 것이다", "기존의 정치를 답습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대해 손 후보는 "앞으로도 당연히 총선 때 얼마만큼 돈이 들었는지를 저의 블로그에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했다.

손 후보는 22일 후보 등록을 하면서 자신의 재산을 총 4억6465만원으로, 지난해 낸 세금은 111만3000원으로 신고했다. 손 후보는 "직계 존·비속의 재산까지 신고하게 돼 있어 부모님 재산 신고 한 겁니다~ 오해 마세요"라고 밝혔다.

/권대열 기자 dykw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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