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30

영원한 아이콘 안철수, ‘오늘’에 열중하며 마이웨이를 가는 ‘쿨한 베짱이 ’- 헤럴드경제 정태일, 안훈- 2011-07-28 10:22

"비오는 날이면 집앞 우동가게 가서 우동 한 그릇 먹고, 대형마트에 장보러 가서 유통기한 얼마 안 남은 우유 하나 덤으로 사는 재미로 살죠. 호텔에서 비싼 음식 먹거나 밤에 조용한 데 가서 술먹는 일은 거의 없으니 묶어서 싸게 파는 1+1 상품 쇼핑하는 걸 즐겨요. 다만 얼굴이 알려져서 사람 많은 데 가면 조금 불편한 뿐입니다. 하하하" 

안철수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49). 그는 지난 23년 간 매스컴을 오르내리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한 명이 됐다. 의사, CEO, 교수 등 남들은 일생에 한 번 이루기 힘든 직함을 반세기 동안 모두 달았다. 

게다가 그를 가리키는 수식어도 한둘이 아니다. 청소년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영입하고 싶은 CEO, 가장 건전한 경영자, 차세대 경제부문 리더, 떠오르는 스타교수 등등. 

이처럼 다양한 직함과 타이틀에서 보듯, 안 원장은 그 누구보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왔다. 그래서 일까. 늘 대중의 이목을 신경쓰고, 또 가끔은 무거운 타이틀을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 법 했다. 하지만 대답은 예상과는 정반대였다. 

"매스컴에 대한 부담은 전혀 없어요. 남들에게 어떻게 보여질까 신경 쓰면서 꾸미고 살았다면 23년간 관계했던 매스컴을 견뎌내지 못했겠죠. 사람들이 굴곡 없는 삶이다 그러는데, 꾸미지 않고 진심으로 살았기 때문에 나름 일관되게 보이지 않았을까요." 

선한 인상에 겸손한 말투였지만 눈빛에는 '분명함'이 담겨 있었다. 주변 시선보다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을 따른다는 점에서 '쿨함'도 느껴졌다. 그러다가도 다시 천진한 웃음을 지으며 안 원장이 한 마디 던졌다. "참, 눈치 볼 때가 있기는 있네요. 대형마트에 장보러 갈 때요. 1+1상품은 인터넷으로는 살 수 없으니까요. 하하하" 

▶도전? 목표? 계획? 나와는 거리가 먼 말들= "제 인생에서 무언가를 이루려고 아등바등 노력했던 기억은 전혀 없어요. 다만 하루 주어진 24시간을 내가 하고 싶은 일, 열정 갖고 할 수 있는 일 열심히 하면서 살았던 기억만 있네요." 

뜻밖이었다. 치밀하고 꼼꼼하게 인생을 설계해 온 모범생 이미지에서 예상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의사, CEO, 교수 모두 목표를 정하고 도전하지 않고는 이루기 힘든 직업인데 안 원장에겐 이 두 가지가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안 원장은 밖에서는 자신이 도전하는 사람으로 비춰지지만 그런 타입은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도전을 하지 않기 때문에 목표지향적인 타입도 아니다. 오히려 목표 자체를 정하지 않는다. "뭔가를 이루려고 계획하기 보다는 매순간 열심히 살다보니 기대하지 않았던 기회들이 성큼 다가왔다고 할까요. 현재를 열심히 즐기다 보니 미래가 오던 걸요." 

하지만 안 원장의 인생이 처음부터 물 흘러가듯 순조롭지는 못했다. 착실히 의학도의 길을 걷다가 갑자기 창업의 길로 들어선 것도 자신이 더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선택이었지만 이 역시 목표한 바는 아니었다. 안 원장은 "미래 전망은 아예 보지도 않고 무작정 회사를 차렸다"고 말했다. 창업 당시 역시 컴퓨터 바이러스야 말로 가장 보람을 느끼고 재미 있게 열정 갖고 계속 할 수 있는 일이었던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비즈니스의 세계는 냉혹했다. 창업 초기인 1995~1999년은 안 원장 인생 가운데 가장 힘든 시기 중 하나였다. 그에게 가장 큰 일은 매달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는 것이었다. 매달 초가 되면 행여 월급을 못 줄까봐 불안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매출이 변변치 않은 달에는 돈을 구하러 은행을 돌며 어음깡을 하기도 했다. 

"처음엔 어음깡이라는 게 기업에 따라 객관적 평가가 적용되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담당 직원 마음대로 고무줄 평가를 받더라고요. 누구한테 잘보이려는 건 정말 곤욕이었죠." 

하지만 안 원장을 더욱 괴롭히는 건 본인 스스로 남들과 비교하는 것이었다. 사업한 지 3년이 지난 1998년 사무실은 남부터미널 부근에 있었는데, 안 원장은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후에도 매일 밤 계산기를 두드려야 했다. 그날 번 돈과 쓴 돈 등 10원짜리 하나하나 세면서 하루를 보냈다. 순간 울컥했다. 

"여기서 내가 뭐하고 있는 지 서글퍼지더라고요. 동기동창들은 의사나 교수하면서 잘 살고 있는데... 나는 그때 배운 거 다 버리고 그러고 있었으니…" 

▶바닥에서 정립한 마이웨이 철학 '절대 남들과 비교하지 않기'=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안 원장은 평생 자신을 바로 세워줄 버팀목 같은 철학을 만들었다. 바로 "절대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할수록 제 자신만 힘들어지더라고요. 남들이 다 위만 보고 갈 때 나라도 가끔 아래를 내려다보자고 생각했죠." 

안 원장은 이를 산을 오르는 것에 비교했다. "정상만 바라보면 구름이 가리기도 해서 불안해 지는데, 뒤돌아보면 없는 가운데 이 만큼 왔구나 하고 안심이 되잖아요. 결국 원대한 목표가 사람을 지치게 하더라고요." 

이런 생각에 안 원장은 목표를 크게 세우고 이를 실천하려 허덕이기 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 일주일, 한달이란 시간을 값지게 쓰려고 노력했다. 덕분에 남부터미널 작은 사무실 안에 갇혀 장부 계산하느라 하루를 다 보내는 자신을 애타게 여기던 그 자신을 밖으로 꺼낼 수 있었다. 

안 원장은 걷기를 통해 정신을 가다듬기도 했다. "너무 안 풀리면 정처 없이 걸어다녔어요. 서초동 소나무사거리에서 출발해 테헤란로 지나 삼성역까지 걸으면 2시간 반이 걸리죠. 모르고 지갑 두고 나간 날은 다시 걸어서 돌아와야 해서 왕복 5시간 가까이 걸었던 기억이 있네요." 

흔히 걷는 것은 운동이 아니라 정신수양이는 말이 있다. 안 원장은 강남 도심 일대를 5시간 가까이 걸으면서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해준 마이웨이 철학을 정립했다. 

안 원장의 마이웨이는 훗날 안철수연구소가 비즈니스모델을 구축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처음 백신을 개발하면 신제품 값을 받는 대신 새로운 버전에 대해 유지, 보수 비용을 받기로 했다. 백신 특성 상 신제품을 만드는 것보다 이를 안전하게 관리하는 비용이 더 많이 들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처음 도입된 계약방식을 거부했다. 연구소 영업담당 임원도 실적이 안 나오자 안 원장에게 포기하자고 청했다. 

"당시 유혹도 매우 컸어요. 수익이 안 나왔으니. 그래도 조금만 더 버티기로 했죠. 마침내 법률까지 바뀔 정도로 지금은 그 계약방식이 상식이 됐죠. 눈앞의 돈만 좇다 단기 계약에 의존했으면 지금의 500억 매출은 꿈도 못 꿨을 겁니다." 

안 원장의 이런 철학은 자녀 교육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현재 안 원장의 딸은 미국에서 수학과 화학을 복수전공하고 있다. 모두 자신이 원해서 시작한 길이다. 딸에게 진로에 대해 아버지로서 훈수를 둔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한다. 

"본인 인생인데 본인이 원하는 것을 해야죠. 내가 하도 이래라 저래라 말이 없으니까 오히려 우리딸이 나한테 물어볼 정도 입니다." 

또 마이웨이 철학은 23년간 매스컴에서 한결 같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잘 나가는 사람들 보면 외부평가가 진짜 자기 실력인 줄 아는 경우가 간혹 있어요. 그런데 나중에 자기 본 실력 알고 나면 많이 괴로워 하죠. 외부평가는 롤러코스터 같아요. 몇 번 올라가는가 싶더니 바로 고꾸라지기 일쑤죠. 그래서 저는 외부평가 연연하지 않고, 평가가 아무리 나빠도 내 본 실력만 믿고 살아 왔습니다." 

▶워커홀릭? 나는 휴먼홀릭!= 안 원장은 아직 여름 휴가를 떠나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남들 다 1년 중 한 번 달콤한 휴식을 꿈꾸며 국내외 여행을 계획하지만 그는 그런 경험이 전혀 없다. 올해 역시 서울대로 둥지를 새로 틀었기 때문에 여름휴가 떠날 여유가 없다고 한다. 그는 이처럼 평생 일과 공부에 묻혀 살았다. 

"연구소 차리고 나서는 정신 없이 일만 했어요. 교수되고 나서는 방학이 있었지만 초보 교수가 어디 놀러갈 수 있나요. 학회 등 공무 상으로 해외에 가본 적은 있지만 LA, 런던, 파리 등 사람들이 많이 가는 관광지는 아직 못가봤네요." 

이쯤 되면 워커홀릭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짧은 순간 조차도 현실을 떠나 머리를 식히기 보다는 철저히 현실과 마주하며 살아 왔다. 

하지만 안 원장이 진정으로 열중했던 것은 결국 일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의대생 시절 우연히 들어간 카톨릭학생회를 통해 진료봉사를 하면서 책에서만 읽었던 휴머니즘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시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로 한계를 느꼈던 시절이었지만, 안 원장은 사람들을 만나며 더불어 사는 세상에 대해 더 큰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이는 안 원장이 연구소를 차리고 회사가 자리를 잡은 다음에도 계속 이어졌다. "초기엔 힘들었지만 10년 정도 지나니까 안 연구소는 벤처기업 중에서도 매우 큰 기업이 됐죠. 하지만 안 연구소는 잘 먹고 잘 사는데 주변 벤처기업은 여전히 어려웠어요. 청년 일자리는 점점 줄고, 도전의식도 약해졌죠." 

"사람들이 그런 문제의식 왜 갖고 사냐고 하지만, 혼자서만 잘 살수는 없으니까요. 우리집 아이라 행복하려면 옆집 아이가 행복해야 하니까요." 

결국 안 원장은 CEO 혼자 힘만으로는 벅차다는 것을 느꼈고, 보다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학계의 길을 택했다. 2008년 미국 와튼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은 뒤 KAIST 석좌교수를 거쳐 현재는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안 원장에게 교수라는 직업은 가르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는 교육이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그런 일을 한다는 데 대해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 

"한국 사회에서 교수는 아직까지 정책 당국자들이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는 집단입니다. 여러 조언들을 해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개개인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는 겁니다. 20대를 대상으로 기업가정신을 가르치거나, 카이스트에서 6학기 동안 학생들 가르치면서 실제 사람들 생각이 바뀌는 것을 경험했어요. 사장 했었으면 못 느꼈을 것들이죠." 

최근 흘러나오는 정치권 영입설에 대해서도 안 원장은 교수가 매우 중요한 위치라며 에둘러 부인했다. "정치라는 게 혼자서는 결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것인데 나와 같은 생각 갖고 있는 사람 만나는 거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교수는 작은 부분이지만 혼자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게 있더라고요." 

그렇다고 같은 생각의 사람을 한 명도 만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안 원장이 신념과 가치관이 같다고 자신 있게 말한 사람은 바로 그의 부인, 김미경 교수(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다. 

"카톨릭학생회 봉사활동 가서 만났는데 돈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저랑 같았어요. 또 아이는 자기가 하고 싶은 거 무조건 시키자는 교육관도 같았어요. 특히 돈 더 많이 벌고, 더 안정적인 거 따지기 보다는 좋아하는 일에 많은 시간 투자하는 직업관도 똑같았죠." 

▶약속된 미래보다 더 중요한 건 '지금', 나의 최대 자산은 '사람'= 인터뷰를 통해 엿볼 수 있었던 안 원장의 라이프스타일은 '내일보다는 오늘을 위해 살자'였다. 안정된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생기면 오로지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다. 즉 그는 일하는 데 있어서 미래를 위해 오늘을 투자하는 개미가 아니라 하루를 최대한 보람 있게 보내는 베짱이에 가까웠다. 

안정을 추구하지 않는 그의 라이프스타일은 지난 삶의 행보에 그대로 뭍어 있다. 엘리트 코스인 의사를 훌쩍 그만두고 야심차게 차린 회사를 차렸지만 자기발로 CEO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의대를 들어갈 때, 창업할 때 모두 안 원장 스스로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유학 후 카이스트 교수로 임명됐을 때 임용장에는 2008~2027년이라고 적혀 있었다. 만65세까지 정년을 보장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는 다시 3년 만에 안정된 자리를 뒤로 하고 서울대로 옮겨 왔다. 서울대 역시 그에게 2027년까지 정년을 보장한다는 약속을 했다. 

하지만 안 원장은 2027년까지 서울대에서 교수를 할지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장기 계획이란 걸 세워 본 적이 없으니까요. 내 평생 한번도 안정, 보장이란 말이 나를 붙잡은 적은 없어요. 선택의 순간에서 모든 걸 고려했지만 이 둘은 항상 빠져 있었죠. 처음엔 의사만 할줄 알았는데 지나칠 정도로 열심히 살다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결국 안 원장은 목표를 정하고,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천하는 시간까지 아깝다고 생각했다. 오로지 그 시간마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 투자하며 자신에게 다가올 미래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기다렸던 셈이다. 

다만 그가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마다 명확한 한 가지 기준은 있었다. "결정은 혼자 오래 고민해서 내리는 편입니다. 대신 기준은 늘 같았어요. 나에게 더 의미 있고, 내가 계속 열정 갖고 할 수 있고,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의 판단 기준에는 늘 사람이 제일 위에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소중해지는 것 역시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존경하는 인물을 꼽아달라니 기다렸다는 듯이 술술 나왔다. 

"낳아주신 부모님은 물론 전기생리학 전공 시 존경했던 교수들은 모두 노벨의학상을 받았어요. 90년 중반 전설적인 프로그래머들에 열광했고, 회사를 차리고 나선 앤디 그로브(인텔 창업자)처럼 성공한 엔지니어 출신 CEO가 되고 싶었죠. 와튼스쿨 다닐 때 레오나드 M. 로디시 교수로 부터 배운 교수법 덕분에 카이스트에서 비교적 빨리 자리잡았어요." 

안 원장은 직업이 바뀔 때마다 롤 모델도 매번 바뀐다고 했다. 덕분에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알찬 지식을 배웠다. 이는 지금도 다르지 않다. "요즘처럼 여러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는 게 중요할 때가 없어요. 20~30대는 혼자 실력으로도 일하지만 40대부터는 인간관계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죠. 나이 들어서 친구 사귀기 힘들다고 하는데 다 옛말 같습니다" 

그는 낯을 가리는 성격으로 알려졌지만 친화력보다 더 큰 무기가 있다고 소개했다. "친화력은 처음에 쉽게 하는 데만 도움이 되지 진정한 관계 유지하는 것은 가치관 등 동질감을 형성하는 거 같아요. 안 연구소 16년 됐는데 지금도 장기근속자는 50명이 넘어요. 친구로 따지면 평생 친구인 거죠." 

전남 F1 돈먹는 하마? 감사원, 7년간 4855억원 손실 예상… 수익 ‘뻥튀기’ 논란- 서울신문 최치봉 기자, 2011-07-30, 10면.

전남 F1 돈먹는 하마?
감사원, 7년간 4855억원 손실 예상… 수익 ‘뻥튀기’ 논란
전남도가 역점적으로 추진 중인 포뮬러원(F1) 자동차경주대회를 계속 진행할 경우 ‘재정파탄’이 우려된다는 감사결과가 나왔다. 특히 도가 F1 사업타당성 검토 때 수익을 지나치게 부풀려 적자사업을 흑자로 왜곡시킨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거셀 전망이다.
29일 감사원이 발표한 ‘지방자치단체 국제행사 유치 및 예산집행 실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전남도가 당초 예정대로 2016년까지 7년간 F1 대회를 치를 경우 재정부담액이 1조 1169억원에 이르게 된다. 이는 “2000억원만 부담하면 될 것”이라던 전남도의 입장과 6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 것이다. 감사원은 도가 민간사업자의 재원조달 능력을 검증하지도 않은 채 경주장을 건설하는 등 무리하게 F1대회를 추진한 탓에 빚어진 것으로 분석했다. 당초 개최권료와 개최권료 납입보증, 부지확보 등으로 2063억원만 부담하면 될 것으로 예상됐던 것이 추가공사비와 지방채 이자, 시공사 주식매수부담금, PF대출금 이자 등의 각종 부대 비용을 떠안게 됐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다.

전체 운영손실액은 4855억원에 이를 것으로 나타났다. 이 정도면 전체 도 지방재정 악화까지도 우려된다. F1대회 입장료 1695억원과 일반대회 수익금 892억원 등 총매출액은 4245억원에 그친 반면 개최권료와 TV중계권료, 인건비 등 매출원가는 6268억원에 달해 2023억원의 적자 발생이 예상된다. 여기에 마케팅 등 일반관리비 2130억원과 금융비용 702억원도 추가 부담해야 할 판이다. 연도별로 적자규모를 풀어보면, 지난해 첫 대회 962억원을 비롯해 올해 723억원, 2012년 673억원, 2013년 585억원, 2014년 606억원, 2015년 635억원, 2016년 671억원 등이다.29일 감사원이 발표한 ‘지방자치단체 국제행사 유치 및 예산집행 실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전남도가 당초 예정대로 2016년까지 7년간 F1 대회를 치를 경우 재정부담액이 1조 1169억원에 이르게 된다. 이는 “2000억원만 부담하면 될 것”이라던 전남도의 입장과 6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 것이다. 감사원은 도가 민간사업자의 재원조달 능력을 검증하지도 않은 채 경주장을 건설하는 등 무리하게 F1대회를 추진한 탓에 빚어진 것으로 분석했다. 당초 개최권료와 개최권료 납입보증, 부지확보 등으로 2063억원만 부담하면 될 것으로 예상됐던 것이 추가공사비와 지방채 이자, 시공사 주식매수부담금, PF대출금 이자 등의 각종 부대 비용을 떠안게 됐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다.
감사원은 이번 결과를 토대로 행정안전부에 전남지사에 대한 주의를 촉구하고, 전남도에는 관련 공무원 징계와 고비용 구조 개선책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전남도, F1 적자사업 흑자로 왜곡” 감사원 지적…道 “수지 구조 예측 실패” 감사 결과 수용 - 광주 매일신문 정성문 기자- 2011-07-29. 00:00

“전남도, F1 적자사업 흑자로 왜곡” 
감사원 지적…道 “수지 구조 예측 실패” 감사 결과 수용


입력날짜 : 2011. 07.29. 00:00

전남도가 포뮬러 원(F1) 국제자동차경주대회를 역점사업으로 추진하면서 적자사업을 흑자로 왜곡하고, 민자유치에 실패하자 도의회 의결 없이 자체 재정부담으로 대회를 추진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감사원은 28일 ‘지방자치단체 국제행사 유치 및 예산집행 실태’ 감사결과를 발표하고 전남도가 F1 대회 사업타당성을 검토하면서 적자를 흑자로 왜곡했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전남도가 건설비용 산정시 F1 경주용 안전시설 및 특수전자설비 등 경주장 건설비와 진입도로 확장 공사비 등을 누락시키고, 운영손익 산정시 TV 중계권료 및 금융이자 등의 비용을 누락시키거나 F1 대회 운영사(FOA)에 귀속되는 수익을 전남도 수익에 포함하는 등으로 수익을 과대하게 산출해 적자사업을 흑자사업으로 왜곡했다”고 분석했다.
이로 인해 F1대회 건설비용은 당초 2천294억 원보다 2.2배인 5천73억원으로 증가했으며, 2010년부터 2016년까지 7년간 F1대회 운영수익은 당초 1천112억원으로 전망됐지만 실제로는 4천855억원의 운영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전남도는 민간사업자의 재원조달능력 검증도 없이 F1 국제자동차경주장 건설 및 대회운영을 민자유치 사업으로 추진했다가 실패하자 도의회 의결 및 사업타당성에 대한 재검토 없이 자체 재정부담으로 사업을 추진해 재정악화를 초래한 것으로 밝혀졌다.
감사원은 “당초 전남도가 2천억여원 정도만 부담하면 되는 것으로 알고 추진하던 F1사업이 2016년까지 1조1천여억 원을 부담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2010년 12월 말 현재까지 투입된 7천632억원 중 지방채 등 채무로 부담해야 할 5천279억원에 대해서는 2010년 12월 말 현재까지 상환계획도 수립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에 따라 감사원은 행정안전부장관에게 사업타당성 등에 대한 검토 없이 전남도의 재정부담으로 F1대회를 추진하도록 해 재정악화를 초래한 박준영 지사에 대해 주의를 촉구하도록 통보했다.
이와함께 박 지사에게는 수익성이 낮은 사업을 수익성이 높은 사업으로 잘못 판단한 관련자 1명에 대해 주의를 촉구하는 한편 경주장 건설관련 관리·감독을 게을리 해 사업비를 부당하게 지급한 관련 공무원 2명에 대해 징계를 요청했다.
이와 관련 전남도는 ‘감사원 감사결과에 대한 우리도 입장’을 발표하고 “결론적으로 F1 대회에 대한 수지구조 예측이 실패했고, 이에 따라 처음부터 민자사업으로 방향을 잘 못 잡게 된 문제점이 발생했다”며 감사원 감사결과를 수용했다.
이어 전남도는 “지금부터라도 건실한 추진체제로 개편해 궁극적으로 지역경제에 기여하도록 힘쓰겠다”고 밝혔다.
/정성문 기자 moon@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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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산사태 위험지구 48곳 -전남매일. 2011-07-29. 00:00

전남 산사태 위험지구 48곳
입력시간 : 2011. 07.29. 00:00




광주는 대상지 없지만 관리 필요

서울 우면산과 강원도 일대에서 폭우로 인한 산사태가 속출하면서 수십명이 사망한 가운데 광주ㆍ전남지역에서도 인명피해가 우려되는 산사태 위험지구가 상당수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28일 광주시와 전남도에 따르면 광주시는 급경사법에 따라 최근 경사도가 34도 이상인 인공절개지와 자연구릉지 113곳에 대한 안전 진단을 한 결과, 59곳이 양호상태인 B등급, 54곳이 보통수준인 C등급인것으로 나타났다.
붕괴위험 지역으로 분류되는 D, E등급은 없었지만, 광주지역 대부분의 인공절개지와 자연구릉지 인근에는 아파트와 일반 주택 등이 밀집돼 있어 엄청난 양의 폭우로 산사태가 일어나면 인명피해가 우려된다.
전남도는 인공절개지와 자연구릉지 1천264곳에 대한 안전 진단을 한 결과, 매우 양호상태인 A등급 180곳, B등급 591곳, C등급 445곳으로 나타났고, 붕괴위험이 있는 D, E등급은 48곳으로 조사됐다.
D, E 등급을 시ㆍ군별로 보면 광양이 15곳으로 가장 많고, 고흥 7곳, 진도 6곳, 순천 4곳, 화순 3곳, 담양·나주·해남·보성 각 2곳, 여수·신안·완도·영광·강진 각 1곳으로 나타났다.
광주시의 한 관계자는 "광주지역에는 붕괴위험지역으로 판정된 절개지는 없지만, 예기치 않은 많은 비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아파트 옹벽 등의 관리가 철저히 이뤄지도록 일선 자치구에 지시했다"고 말했다.
전남도의 한 관계자는 "산사태가 예상되는 지역에 대한 예찰활동을 강화하고, 산사태 피해가 우려되면 인근 주민이 즉각 대피할 수 있도록 일선 시·군에 지침을 알렸다"고 말했다.

F1 계속땐 전남 재정 파탄- 전남매일 정근산 기자- 2011-07-29. 00:00

F1 계속땐 전남 재정 파탄
입력시간 : 2011. 07.29. 00:00




감사원 “2016년까지 향후 부담액 1조원”
도 흑자대회 왜곡 등 엉터리 사업성 검토

전남도의 최대 역점사업인 포뮬러 원(F1)국제자동차경주대회를 치르기 위한 재정부담액이 1조원을 넘어서는 등 F1대회가 심각한 재정파탄을 불러올 것이라는 감사원 조사결과가 나왔다. 특히 전남도가 사업 타당성을 산출하면서 지출은 숨기고 이익은 부풀려 적자사업을 흑자사업으로 왜곡시킨 것으로 드러나는 등 대회를 지속할 경우 결국 빚더미에 앉게 될 것이라는 진단이 나와 박준영 전남지사가 사활을 건 F1대회가 중대한 기로에 서게 됐다. 
감사원이 28일 발표한 ‘지방자치단체 국제행사 유치 및 예산집행 실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전남도가 당초 예정대로 2016년까지 7년간 F1 대회를 치를 경우 재정부담액이 1조1,169억원에 이를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2,000억원 정도만 부담하면 될 것’이라던 도의 입장과 6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 것이다.
이는 도가 민간사업자의 재원조달 능력을 검증하지도 않은 채 F1 경주장 건설 및 대회 운영을 민자유치 사업으로 추진했고, 민자 유치가 실패하자 도의회 의결이나 사업타당성에 대한 재검토 없이 도의 재정부담으로 F1 대회를 추진하는 바람에 빚어진 것으로 감사원은 분석했다.
이로 인해 당초 개최권료와 개최권료 납입보증, 부지확보 등으로 2,063억원만 부담하면 될 것으로 예상됐던 것이 추가공사비와 지방채 이자, 시공사 주식매수부담금, PF대출금 이자, 운영손실 부담금, 조직위 운영비까지 죄다 떠안게 됐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다. 
전체 운영손실액도 4,855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F1 입장료 1,695억원과 일반대회 수익금 892억원 등 총매출액은 4,245억원에 이른 반면 개최권료와 TV중계권료, 인건비, 초청 비용 등 매출원가는 6,268억원에 달해 매출총이익이 2,023억원의 적자를 기록하고, F1운영비, 마케팅 등 일반관리비 2,130억원에다 금융비용 702억원을 더한 결과다.
연도 적자규모는 지난해 원년 대회 962억원을 비롯해 2차년도인 올해 723억원, 2012년 673억원, 2013년 585억원, 2014년 606억원, 2015년 635억원, 2016년 671억원 등이다. 
이는 당초 전남도가 사업추진 전 타당성 조사 결과를 토대로 밝힌 ‘1,112억원 이익’과 비교해 6,000억원 가까이 차이가 나는 것이어서 적잖은 논란이 예상된다.
특히 조사 결과 전남도는 F1 타당성 조사 용역 계약을 맺고 이를 검토하면서 진입도로 확장 공사비 등을 누락시켜 건설비용을 2,294억원으로 산출했으나, 재검토 결과 경주장 건설비용은 당초의 2.2배인 5,073억원으로 추정됐다.
또 7년간 F1운영손익을 산출하면서 F1 운영사의 수익을 전남도 수익에 포함시키는 등 지출은 숨기고 이익은 부풀려 적자사업을 흑자사업으로 왜곡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이같은 감사 결과를 토대로 행정안전부에 전남지사에 대한 주의를 촉구하고, 전남도에는 관련 공무원 징계와 고비용 구조 개선책 마련을 권고했다.


정근산 기자

풍납동, 우면산을 가르치다- 서울신문 조현석 기자- 2011-07-29, 1면


풍납동, 우면산을 가르치다
서울의 대표적인 상습 물난리 지역으로 손꼽혔던 송파구 풍납동은 26·27일 이틀간의 물폭탄에도 끄떡없었다. 저지대임에도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물바다가 된 강남구 대치동과 산사태가 난 서초구 방배동 일대와는 크게 대조를 이뤘다. 때문에 발전과 번영의 1번지로 불리는 강남·서초구의 수해 대책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 1984년 사흘간 334㎜
1984년 9월 3일 서울에 사흘간 334.4㎜의 폭우가 쏟아져 송파구(당시 강동구) 풍납동 일대가 침수됐다. 사진은 수해로 건물이 물에 잠겨 있는 풍납동 모습.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 2011년 이틀간 468㎜
2011년 7월 27일 풍납동 일대에는 이틀간 468.5㎜(강동구 기준)의 집중 호우가 쏟아졌지만 별다른 침수 피해는 없었다. 사진은 물폭탄에도 말끔한 28일 풍납동 주택가 모습.
류재림기자jawoolim@seoul.co.kr
28일 서울시에 따르면 송파구는 27일 오전 6시 20분부터 3시간 동안 무려 218.5㎜의 물폭탄을 맞았다. 시간당 최대 강수량도 89.5㎜로 서울 일대에서는 관악구의 110.5㎜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풍납동 일대는 1980년대에 홍수만 나면 한강물이 역류해 주택과 건물들이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상황을 맞이하곤 했다. 지대가 낮은 탓에 빗물이 몰리는 데다 한강물까지 흘러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풍납동은 변했다. 해거리 수해를 막기 위해 부동산값 하락과 상관없이 정부와 서울시에 적극적으로 배수설비를 요구해 위기를 기회로 삼은 결과다. 높이, 길이, 세로가 5m씩인 대규모 배수로를 만들면서 물난리 우려는 사라졌다.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져도 곧장 한강으로 빠져나가도록 보완한 것이다.
풍납동을 비롯해 상습 침수 지역이었던 서울 마포구 망원동과 구로구 개봉동 등 하천변 저지대 86곳에도 빗물펌프장을 건설했다. 이들 지역은 집중호우 때 대형 양수기로 빗물을 퍼냄으로써 비가 내릴 때마다 마음을 졸여야 했던 수해의 위험에서 벗어났다. 송파구 관계자는 “예전에는 경기 성남시와 인접한 남한산성, 거여동, 마천동 지역의 물이 풍납동으로 흘러 와 홍수의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면서 “그러나 대대적인 배수펌프 설치와 제방 공사 등으로 피해를 비켜 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반면 2011년 강남구와 서초구 등의 피해는 너무 컸다. 강남역과 대치동 일대는 도로가 침수돼 출근길 자동차가 물속에 갇히고 지하철 역사에 물이 찼다. 더욱이 산사태로 18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한 우면산은 지난해 9월에도 산사태가 있었지만 ‘자연재해위험지구’에 포함되지 않은 까닭에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당시 우면산을 자연재해위험지구로 지정해 홍수·산사태 방지 조치를 취했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는 얘기다.
▲ 산사태로 인명 피해가 발생한 서울 우면산 인근 아파트에서 소방대원들과 군인들이 28일 복구작업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서울시 관계자는 “2006년부터 시행한 자연재해위험지구는 시·군·구 자치단체가 소방방재청에 신청하면 전체 사업비의 60%를 국비로 지원받고, 나머지는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가 20%씩 부담하게 된다.”면서 “우면산은 자연재해위험지구에 포함돼 있지 않아 예산을 지원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물론 우면산을 자연재해위험지구로 지정하려 해도 사유지 비중이 84%에 달하는 탓에 소유주들의 반대로 지정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도 없지 않다. 서초구 측은 “우면산 대부분이 사유지라서 구청에서는 재산권 문제 등으로 자연재해위험지구 지정을 할 수가 없었다.”면서 “또 구청에서 등산로를 만든 뒤 주민들로부터 부당 이득금 반환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재해위험지구가 될 경우, 집값 하락 등 재산권의 불이익을 염려한 것이다. 해발 293m인 우면산은 전체 면적 418만 551.10㎡(248필지)의 84%인 365만 659㎡(208필지)가 개인 소유다. 국가와 시가 소유하고 있는 나머지 부분은 각각 38만 1832㎡(26필지)와 14만 8060.1㎡(14필지)로 16%에 불과하다. 대치동 등도 배수관 등이 낡았지만 재건축 추진 등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한 민원이 끊이지 않아 교체가 쉽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전략- 최광희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전략


바둑 용어 중에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덩치가 클수록 잘 죽지 않는다는 얘기인데, 영화 흥행에도 마찬가지로 통하는 말이다. 언뜻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면 위험도도 커진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는 반대다. 100억 원 이상의 제작비가 들어간, 이른바 블록버스터의 경우에 40-50억 원 정도를 쓴 중급 규모의 영화보다 경향적으로 흥행 타율이 높다. 일단 제작비를 많이 썼다 하면 언론의 관심도도 높아지고, 그 많은 돈을 회수하기 위해선 홍보에도 엄청난 열을 올리게 된다. 자연스럽게 관객들의 기대치도 올라간다. ‘대마불사’ 효과가 일어나는 것이다.

일단 블록버스터라고 한다면, 최소 400~500만 명 이상의 관객 동원을 해야 본전을 뽑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영화적으로도, 그 많은 관객들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하는 흥행 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다. 블록버스터에 걸맞는 내용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전통적으로 한국 블록버스터의 단골 흥행 전략은, 역사적 비극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더 구체적으로는 ‘분단의 현실’을 담아내는 것이다. 분단만큼, 세대를 막론하고 대한민국 관객들에게 절실한 화두는 없기 때문이다. 일찍이 강제규 감독의 <쉬리>(1998)와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2000)가 분단 소재 영화의 위력을 입증한 뒤, 많은 블록버스터들이 그 전철을 밟았다. <태극기 휘날리며>(2003)는 장동건과 원빈, 두 꽃미남을 민족상잔의 주인공으로 삼아 최초로 1천만 관객을 동원했다. <실미도>(2003)와 <웰컴 투 동막골>(2005)도 마찬가지 맥락의 영화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분단 소재의 블록버스터들이 다 흥행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곽경택 감독의 <태풍>(2005)은 장동건을 캐스팅해 놓고도 흥행 실패했다. 분단이 아닌, 이를테면 광주민주화운동과 같은 현대사의 아픔을 담은 작품 가운데 장선우 감독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2002)도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투입해 놓고도 관객들의 외면을 받았다. 블록버스터 SF를 표방한 <예스터데이>(2002)도 마찬가지였다. 왜 그랬을까?

‘코미디‘라는 가장 중요한 요소를 빼먹었기 때문이다. 한국 관객들은 지나치게 진지한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따라서 성공한 한국 블록버스터들은 비극을 근간으로 한 상태에서 희극적인 요소를 양념처럼 얹는 흥행 전략을 구사한다는 공통점을 보여 왔다. 그만큼 ’웃음‘은, 특히나 한국의 대중 관객들을 공략하기 위한 필수 요건으로 간주돼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웰컴 투 동막골>과 <해운대>(2009)다. 두 영화는 각자 전쟁 영화와 재난 영화라는 장르적 특성에서는 다르되, 캐릭터들이 충돌하면서 파열되는 웃음을 선사하는 전략을 구사한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중요한 것은 웃기는 데 그쳐서는 또 안된다는 것이다. 적절한 신파적인 요소를 가미해, 비극을 완성해야 한다. 종국엔 관객들을 울려야 한다는 얘기다. 

‘가족’이라는 화두도 중요한 블록버스터 전략이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전쟁 영화이지만 기본적으로 형제간의 이별에 대한 영화다. <괴물>(2006)도 마찬가지다. 한강 괴수에게 잡혀간 자신의 딸을 구해내기 위한 얼치기 아빠(송강호)의 눈물 겨운 사투가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해운대>는 어떤가. “내가 네 아빠다!”라고 외치는 박중훈의 대사가 상징하듯,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인물들의 사연이 드라마의 아주 중요한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블록버스터에서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비주얼 전략이다. 무엇을 보여줄 것이냐다. 두말할 나위 없이 기존의 영화들에서 보지 못했던 신선한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 <괴물>은 한강 괴수를, <디 워>는 용가리와 부라퀴를, <해운대>는 부산 앞바다를 강타한 쓰나미를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의 시선을 끌어들였다. 그렇다고 해서 굉장히 새로운 것들은 아니다. 사실 할리우드 영화들에서 익히 봐왔던 볼거리다, 그렇다 할지라도, 그것이 한국이라는 공간으로 옮겨 왔을 때 관객들에게 주는 정서적 효과는 또 다른 파장을 만들어낸다. 한국형 블록버스터들은, 그걸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이다. 

2011.7 (쎄시)


출처: http://cinemagora.tistory.com/670

[진중권의 아이콘] 혼합현실에 살다- 씨네21, 2011-07-29.

[진중권의 아이콘] 혼합현실에 살다

씨네21, 2011-07-29.

"트위터가 세상을 바꾼다." 독설 닷컴의 고재열 기자가 언젠가 자신의 트윗 계정에 내걸었던 모토다. 당시 이 모토가 몇 사람의 심기를 거슬렀던 모양이다. 인터넷에는 금방 '트위터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반론이 올라왔다. 하지만 그 얼마 뒤 중동에는 이른바 'SNS 혁명'이 일어나 수십년 동안 장기집권했던 독재자들이 줄줄이 권좌에서 물러났다. 물론 그 혁명을 SNS가 일으켰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SNS가 기존의 통치에 균열을 내 중동의 민주화를 촉진하는 촉매 역할을 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을 응원하기 위해 시민과 노동자들이 이른바 '희망버스'를 타고 전국에서 몰려들었다. 6월10일의 1차 희망버스 행사는 비교적 작은 규모였지만 배우 김여진씨의 참여로 전국적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당시의 상황은 현장에 있던 이들의 트윗을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되었고, 그렇게 올라온 트윗을 시민들은 역시 실시간으로 리트윗하여 언론의 무관심 속에서 한진중공업 사태를 이슈의 초점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7월10일에 실시된 2차 '희망버스' 프로젝트는 규모 자체가 달랐다. 195대의 버스에 나눠 타고 부산에 도착한 1만여명의 시민들은 부산역에서 집회를 마치고 영도까지 행진을 한 뒤 조선소로 진입을 시도했다. 보수언론과 보수정치는 이 상황에 상당히 위협을 느낀 모양이다. 한나라당의 김형오 의원은 "정권의 위기가 부산에서 오고 있다"고 경고했고, 부산시와 영도구 의회는 3차 희망버스에 반대한다는 결의문을 발표했으며, 보수언론에서는 연일 희망버스로 인한 영도구 주민의 피해를 강조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다른 기업들과 달리 한진중공업은 조선업의 미래를 고작 필리핀의 싼 노동력에서 찾았다. 그러다보니 사실상 형해화한 영도조선소를 그저 '한국'의 기업이라는 브랜드 가치를 위해 껍데기로 유지하게 된 것이다. 영도 주민의 입장에서는 기업의 해외 이탈이 반가울 리 없다. 지역경제의 공동화를 낳기 때문이다. 반면, 대폭 축소된 규모로나마 조선소가 빨리 정상화되는 게 낫다는 바람도 있다. 한진중공업을 비난하면서도 희망버스에도 반대하는 김형오 의원의 애매한 태도는 지역구민의 이 엇갈리는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희망버스 기획의 미디어론적 특성

희망버스의 아이디어는 송경동 시인에게서 나왔다. 삶과 시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 그의 문학이라면 희망버스야말로 그가 쓴 여느 작품 못지않게 '시적인 사건'이다. 흥미로운 것은 희망버스 기획의 미디어론적 특성이다. 똑같은 85호 크레인에 올랐지만 김진숙 지도위원에게는 8년 전 김주익 지회장에게는 없었던 게 있었다. 바로 스마트폰이다. 김주익씨가 그곳에 고립되어 철저한 고독 속에서 결국 목을 매야 했다면 김진숙씨는 손에 든 스마트폰으로 바깥세상과 소통하며 대중의 지지를 끌어낼 수가 있었다.

게다가 그에게는 김여진이라는 '트친'이 있었다. 대중의 관심을 모으는 배우의 트위터를 통해 85호 크레인 위의 상황은 트위터리언들에게 거의 실시간으로 중계됐다. 미디어 이론가 귄터 안더스가 냉소적으로 지적한 것처럼 오늘날 원본만으로는 사건이 되지 못한다. 원본은 매체를 통해 복제가 될 때 비로소 사건이 된다. 그 때문에 김주익의 농성은 '사건'이 되지 못했다. 그가 목숨을 끊었을 때에야 고작 1단짜리 짤막한 기사 속에 존재할 수 있었다. 대중매체의 시대에 사건을 '사건'으로 존재하게 하는 것은 복제(가령 리트윗)다.

언론의 침묵 속에서도 적어도 트위터에서는만은 김진숙의 크레인 투쟁이 뜨거운 이슈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SNS에서 이루어지는 소통은 어디까지나 가상현실에 속한다. 현실에 나오지 않는 이상 그것의 영향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SNS 속의 여론을 어떻게 현실의 물리력으로 바꾸어내느냐 하는 것이다. 희망버스는 시간적, 공간적으로 서로 떨어진 대중을 영도조선소 앞으로 결집시켜냈다. 그런 의미에서 희망버스는 온라인 SNS의 네트워크를 전통적인 오프라인의 투쟁방식으로 전화한 최초의 전범이라 할 수 있다.

미디어 이론에 '재매개'(remediation)라는 개념이 있다. 하나의 미디어가 다른 미디어의 전략을 차용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가령 뉴미디어는 처음에는 올드 미디어의 전략을 차용한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뉴미디어는 모방에서 벗어나 자기 고유의 전략을 갖게 된다. 그때쯤이면 거꾸로 올드 미디어가 외려 뉴미디어의 전략을 차용하는 역전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가령 사진이 처음에 등장했을 때, 그것은 회화의 전략을 차용했다. 하지만 사진이 자신의 전략을 갖게 되자 그때부터 회화가 외려 사진의 전략을 베끼기 시작했다.

오프라인의 전통적 노동운동은 '희망버스'라는 아날로그 운송수단을 통해 디지털의 네트워크로 묶인 대중을 현실의 공간 속으로 불러내는 데 성공했다. 전통적인 노동운동은 조직(organization)의 운동, 즉 한 작업장에서(장소의 일치) 같은 작업라인(시간의 일치)에 따라 일하는 노동자들의 조직력과 단결력을 바탕으로 한 운동이었다. 반면, SNS의 운동(?)은 각각 장소와 시간을 달리하는 대중의 느슨한 망(network)이다. 희망버스는 이 디지털의 전략을 재매개함으로써 가상현실에 갇혀 있던 네트워크를 성공적으로 물질화해낸 것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희망버스는 SNS(뉴미디어)의 운동이 현장지원이라는 조직(올드 미디어)의 투쟁을 재매개했다고 할 수도 있을 거다. 김진숙과 김여진이 트친이 된 것은 조직과 네트워크의 이 행복한 결합을 상징한다. SNS는 85호 크레인을 방문한 김여진을 통해 육중한 현실로 나아가는 통로를 마련한 반면, 노동운동은 스마트폰을 손에 든 김진숙을 통해 SNS라는 가상세계의 수많은 거주민을 만날 수 있었다. 김여진이 현장에 오지 않았거나 김진숙이 스마트폰을 활용하지 않았다면 한진중공업 사태는 '사건'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새로운 현실의 존재론

물론 그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 디지털 대중의 자발성이다. 과거에 대중은 매체가 제공하는 정보의 수용자에 불과했으나, 오늘날 대중은 외려 매체에 정보를 제공하는 송신자로 변했다. 매체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오늘날, 기사는 그 자체만으로 기사가 될 수 없다. 대중이 링크를 걸어 리트윗을 해줘야 비로소 기사는 '사회적으로' 존재하게 된다. 오늘날 대중은 댓글과 멘션과 리트윗을 통해 자신들이 사회적으로 중요하다고 믿는 사건을 기꺼이 '사건'으로 등록시키려 한다. 그런 식으로 그들은 한진중공업 사태를 '사건'으로 만들어냈다.

희망버스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미 현실(reality)의 개념이 변화했다는 것이다. 가상이 현실로 나아가고, 현실이 가상으로 들어와 복잡하게 뒤엉키는 혼합현실(mixed reality).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들어 사는 새로운 현실의 정체다. 귄터 안더스는 "사건이 원본보다 복제된 형태로 더 큰 사회적 중요성을 띠는 것"을 빌어먹을 현실이라 성토했으나, 그의 푸념에 아랑곳없이 오늘날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이 결합된 혼합현실은 이미 우리의 세계가 되어버렸다. 문제는 바로 그 새로운 현실의 존재론에 적응하고 진화하는 것이다.

[한겨레 기사돌려보기]결정적 순간 보수는 말한다 “관둬라, 소용없다”

결정적 순간 보수는 말한다 "관둬라, 소용없다"
역효과·무용·위험 강조하며 개혁 가로막는 보수의 논리
신자유주의 경제가 지배하는 오늘날 한국사회와 '닮은꼴'
한겨레 한승동 기자기자블로그
»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앨버트 허시먼 지음·이근영 옮김/웅진지식하우스·1만5천원

보수는 세상을 어떻게 지배하는가?

앨버트 허시먼(1915~)의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원제 The Rhetoric of Reaction: Perversity, Futility, Jeopardy)는 예컨대 '복지국가'에 대한 보수주의자들의 비판 논법을 이렇게 요약한다. 보수주의자들은 시장개입에 부정적인 경제학적 시각에서 실업자와 사회적 약자들, 가난한 사람들에게 부의 일부를 돌리는 '이전지급'이 야기하는 갖가지 문제들에 초점을 맞춘다. "아무리 의도가 좋다고 해도 그런 이전지급 방식들은 '나태와 타락'을 조장하고, 의존을 부추기고, 더 건설적인 국가의 다른 부양제도들을 파괴해서, 결국 가난한 사람들을 더 가난하게 만든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이것은 허시먼이 이 책에서 보수주의자들이 개혁이나 진보를 가로막기 위해 들이대는 전형적인 '수사적 무기'(rhetoric of reaction, 반동의 수사학)로 든 세 가지 명제 가운데 '역효과 명제'(perversity thesis)다. "정치·사회·경제 질서의 일부를 향상시키려는 어떤 의도적인 행동도 행위자가 개선하려는 환경을 악화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이 책 추천자 우석훈은 이를 "너희들이 뭘 해봤자 역효과만 난다" "그래봐야 너만 더 힘들어진다"는 말로 요약하면서, 차라리 감세가 경제에 더 도움이 된다고 했던 이명박 대선 공약, 세금과 정부 규모를 줄이고 불필요한 규제를 풀고 법질서를 세우자며 이를 '줄푸세'라 불렀던 박근혜 경제공약이 이 명제 위에 선 대표적 사례라고 했다.

둘째 명제는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모든 노력은 효과가 없으며, 그 노력들은 어떤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무용 명제'(futility thesis)다. 셋째는 "변화나 개혁에 드는 비용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 변화나 개혁은 이전에 얻어낸 소중한 성취들마저 오히려 위험에 빠뜨린다"고 주장하는 '위험 명제'(jeopardy thesis)다.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해봤자 소용없어!"라는 얘기다.

역효과 명제와 무용 명제는 인간과 사회의 활동 목적을 보는 관점이 거의 정반대다. 역효과 명제는 인간 세계를 매우 변덕스럽다고 보고 그 때문에 변화 시도가 뜻밖의 반작용을 낳는다고 보는 데 비해 무용 명제는 세계가 고도로 조직화돼 있고 내재하는 법칙에 따라 진화하는 것이어서 인간이 그것을 고치려는 건 소용없는 짓이라고 본다. 따라서 어떤 면에선 무용 명제가 역효과 명제보다 더 파괴적일 수 있다. 역효과가 나더라도 인간이 개입할 여지가 있는 세계와 개입의 여지조차 없는 세계의 차이. 무용 명제는 마르크스주의 사조에 맞서는 무기였고 케인스 경제학에 대한 비판도 무용론 중심으로 전개됐다.


» 앨버트 허시먼(1915~)
위험 명제를 들이대는 쪽은 복지국가가 개인의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기왕에 얻어낸 성취마저 위협한다고 주장한다. 1944년에 나온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이 근거를 제공한 이 명제는, 자유와 민주주의는 구성원들의 직접적인 동의 위에 구축돼야 하는데 그러자면 사회구성체는 소수단위가 돼야 한다. 그런데 복지를 위한 국가의 역할 증대는 그것을 불가능하게 하며 결국 강제력이 발동되고 예속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유를 가장 위험한 상태에 빠뜨리는 게 복지국가라는 논리다.

처음엔 미약했던 하이에크 주장의 설득력은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에 일어난 68혁명, 학생운동과 베트남전쟁, 유류파동(오일 쇼크), 스태그플레이션 등을 거치면서 사정이 근본적으로 변했다. 하이에크와 위험 명제 옹호 집단이 강력하게 대두한 것이다. 이 시기는 또한 팍스 아메리카나가 상징하는 앵글로색슨(미국과 영연방) 주도하의 2차대전 이후 자본주의 장기호황이 끝나가던 시기와 일치한다. 월스트리트와 런던 시티 등의 자본가들은 이윤율 저하에 따른 축적 위기를 금융 중심의 신자유주의를 통해 헤쳐나가려 했고 마거릿 대처의 영국 보수당 정권과 로널드 레이건 미국 공화당 정권이 앞장을 섰다.


자유주의자 허시먼이 1985년부터 포드 재단에서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가 다룬 주제를 본격 연구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런 전환기였다. 미국 자유주의자들은 당시 의기양양하게 세를 불려가며 사회보장 정책과 사회복지 프로그램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가던 보수주의자들과 신자유주의자들(정치적 신보수주의자들=네오콘) 행태를 보며 당혹과 불쾌감 속에 "어떻게 저럴 수 있지?"라며 탄식했다. "과잉복지는 일 안 하고 술 마시는 알코올 중독자 만든다"거나 '복지'를 얘기한다는 이유로 보수정당 리더를 그 정당원들이 '빨갱이'라 비난하는 지금의 한국 사회를 연상시킨다.

포드 재단은 그런 상황에서 '복지국가의 위기' 대응책을 마련하는 사업에 착수했다. 그때 영국 사회학자 토머스 마셜이 1949년에 행한 서유럽의 '시민권 발전'에 관한 유명한 강의를 토대로 그가 말한 '세 가지 진보적 추진력' 곧 프랑스 인권선언이 대표하는 18세기의 시민적 시민권, 보통선거권으로 대표되는 19세기의 정치적 시민권, 20세기 복지국가의 사회·경제적 시민권을 연구의 시작점으로 삼았다.

허시먼은 세 가지 진보적 추진력들 모두가 언제나 가공할 힘을 지닌 역추진력의 이데올로기와 맞닥뜨려야 했던 역사적 사실을 떠올린다. "그런 역추진력들이, 계획하고 있던 진보적 프로그램들을 좌절시키고 때로는 수많은 인간의 희생과 불행을 만들어낸 커다란 사회적·정치적 갈등의 바탕이 되지 않았던가? 복지국가가 지금까지 겪은 격렬한 반발은 18세기 개인의 자유에 대한 주장이나 19세기 정치참여의 확대로 인한 맹렬한 공격과 갈등에 비하면 오히려 가벼운 편이다."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는 진보와 개혁을 저지하려던 세력이 18세기 프랑스대혁명 이후 20세기 복지국가 논쟁에 이르는 시기에 동원한 보수주의 담론과 주장, 수사법을 좌우한 '논쟁의 규범'들을 역사적·분석적으로 살핀다. 바로 그 가공할 역추진력 이데올로기의 중심에 역효과·무용·위험 명제들이 자리잡고 있다.

장하준 교수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리스트, 조지프 슘페터, 니컬러스 칼도 등과 함께 동아시아국가들 경제성장 기적에 기여한 "다른 종류의 경제학자들" 중 한 명으로 꼽은 허시먼이 이 책을 출간한 것은 1991년이다. 레이건 정권의 신자유주의(신보수주의)를 이어받은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걸프전쟁'을 지휘하던 당시와 정치적 보수주의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횡행하는 지금의 한국 사정이 닮은꼴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기사등록 : 2010-11-26 오후 08: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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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개혁 거짓말 그리고 김문기 - 한겨레21, 이제훈, 2011-06-20. 제866호.


사학개혁 거짓말 그리고 김문기 [2011.06.20. 제866호]
▣ 이제훈
[만리재에서]
'그들'은 영악하다. 많이 배워 훈련된 머리로 시민의 판단을 흐릴 논리를 만들어낸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김상곤 경기교육감의 첫 시도 이후 온 나라에 '무상급식' 바람이 들불처럼 번지자, '그들'은 "부자 자식들한테까지 국민 세금으로 공짜밥을 줘야 하나"라고 맞받았다. 그럴듯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 논리엔 부모가 부자여서 돈 내고 점심을 먹는 친구 옆에서, '공짜밥'을 얻어먹어야 하는 어린 학생의 가슴에 맺힐 피멍에 대한 고려가 없다. 인권 감수성이 없다. '글로벌 코리아'를 운위하는 대한민국에서 무상급식은 전근대적 시혜인가, 국가와 사회의 미래를 다져야 할 정부의 책무인가? 지난 6월16일 서울지역 전면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 청구가 있었다. 하지만 이미 대세가 된 무상급식을 없애진 못할 거다. 가난한 이들의 염원에 많은 중산층 학부형이 힘을 보태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한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인 '고액 등록금' 문제도 '그들'은 무상급식 논쟁 때와 똑같은 수법으로 물을 타려 한다. '반값 등록금' 요구가 봇물을 이루자, "지금 세금을 쏟아붓는 것은 부실 사립대학에 좋은 일만 시키는 거다. 구조조정이 먼저다"라고 맞받는다. 이 또한 그럴듯하지 않은가. 사학에 문제가 많다는 건, 옆집 강아지도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2005년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추진한 사립학교법 개정을, 서울광장에 촛불을 들고 나와 시위를 벌여 무산시킨 당사자는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비롯한 '그들'이었다. 덕분에 내부의 견제와 균형을 강화해 사학 운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려는 최소한의 장치인 개방이사제 도입 등도 물 건너갔다. 2011년 6월, '그들' 가운데 그 누구도 사립학교법 개정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부실 사학과 비리 사학은 샴쌍둥이다. 그런데 '그들'은 부실 사학에 대해서만 입에 거품을 물 뿐, 비리 사학에 대해선 입도 뻥긋 않는다. 대통령은 '반값 등록금' 논란과 관련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조급하게 하지 말고 차분하게 시간을 가지고 대안을 마련하라."(6월13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어떻게 반값이 되나."(6월17일 장·차관 국정토론회) 공무원들은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차린다. '반값 등록금 정책 대안을 내놓지 말란 말이야.'

'그들'에게 뭘 기대할 수 있을까. 여기 '그들'의 진의를 가늠할 또 하나의 리트머스시험지가 있다. 강원도 원주에 있는 상지대 문제다. 시간을 거슬러 오르자. 1978~93년 상지대에서는 이사회가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당시 이사장 김문기씨가 맘대로 했다. 김씨는 1993년 공금횡령과 부정입학 혐의로 구속됐고, 이듬해 대법원에서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사학 비리의 대명사'다. 김씨가 물러난 뒤 상지대는 십수 년간 관선이사 체제로 내실을 다지며 학교의 위상을 높여왔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 '죽은 자'가 살아 돌아오는 사태가 발생했다. 교육과학기술부 소속 행정위원회인 사학분쟁조정위원회(사분위)가 2009년 9월부터 2010년 8월에 걸쳐 김문기 이사장 일가의 상지대 복귀 길을 열어준 것이다. 하지만 김씨 일가의 비리는 현재진행형이다. 드러난 범법 사실만 해도 벌써 두 건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3월 김씨가 은행장이고 그 아들 성남씨가 부행장이던 강원상호저축은행에 대한 검사를 벌여 경비 부당 지출 등 불법 사례를 적발해 3억206만원을 회수 조처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5월19일 김씨와 그 아들 성남씨를 여야 국회의원 등 16명에게 불법 정치자금 6900만원을 건넨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이쯤 되면 김씨 일가의 상지대 복귀를 허용한 사분위 결정은 철회돼야 마땅하다. 그게 상식이다. 그러나 이주호 교과부 장관은 '유죄가 확정되지 않았고, 개인 차원의 비리'라며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상지대 교수와 학생들은 '김문기씨 구속 수사와 김씨 추천 이사 4인 퇴진' 등을 요구하며 643일째(6월17일 현재) 교내 농성 중이다. '그들'이 문제를 해결하리라 기대할 수 없다면, 시민이 나서 국회와 정부를 움직이는 방법뿐일 터이다. 사학 비리, 정치자금 비리, 저축은행 비리 등 '비리 3관왕'에 오른 김문기씨는 상지대로 갈까, 아니면 감옥으로 다시 가게 될까?

한겨레21 편집장 이제훈 nomad@hani.co.kr



2009~2010년 소득양극화 완화, 왜?- 한겨레21 김기태, 2011-04-20. 제857호.


2009~2010년 소득양극화 완화, 왜? [2011.04.20. 제857호]
▣ 김기태 
[줌인]
가계동향자료 등 분석해보니… DJ·참여 정부 복지 정책, 부동산 가격 일시 하락 등 장·단기 이유 덕분
소득 양극화가 수그러들었다.
지난 2월 말 2010년 ‘가계동향’ 통계 자료를 받아든 정부 관료들은 당황했다. 그럴 만도 했다. 통계를 보면, 1990년대 이후 계속 벌어지던 가계소득 격차가 뚜렷하게 좁혀졌다. 앞선 김대중·노무현 정권도 잡지 못한 양극화가 ‘친재벌·부자 감세’를 앞세운 이명박 정권 들어 주춤했다는 건, 하나의 사건이었다. 아니, 양극화는 주춤하는 수준을 넘어서 오히려 반전했다. 믿기 어려운 통계였다.
» 소득분배 수준을 알리는 지니계수가 2010년 개선됐다. 빈부 격차가 오랜만에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서울 상계4동 달동네 마을.

뉴스가 되지 못한 소득분배의 호전
무엇보다 소득불평등 수준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기준인 지니계수가 줄었다. 도시 2인 이상 가구 가처분소득 지니계수는 2009년 0.295까지 올랐지만, 2010년에 0.289로 떨어졌다. 지니계수는 보통 0~1을 오가는 지수로, 모든 사람이 똑같이 소득을 나누면 0, 단 한 사람이 모든 소득을 챙기면 1이 된다. 한 사회에서 소득이 일부에게 쏠릴수록 지수는 1에 가깝게 접근한다. 노무현 정권 때는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지수가 1 쪽으로 조금씩 이동했다. 시장소득 지니계수가 5년 사이 0.024 올랐다(표1 참조). 그 지니계수가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뒤 2009년에는 옆으로 느슨하게 이동하더니, 2010년에는 0.006만큼 떨어졌다. 놀라운, 이해하기 힘든 반전이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다른 소득분배 통계도 일제히 호전됐다. 상대적 빈곤율도 12.5%로 2009년(13.0%)보다 눈에 띄게 내려갔다. 2000년 이후 10년 만에 처음으로 하락했다. ‘상대적 빈곤율’이란 가계소득이 ‘중위소득’의 50%에 못 미치는 가구 비율을 가리킨다. 중위소득이란, 예를 들어 1천 명을 소득순으로 나란히 줄 세웠을 때, 딱 가운데, 곧 500번째 서 있는 사람의 소득수준을 뜻한다. 따라서 ‘상대적 빈곤층’은 500번째 서 있는 사람의 소득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벌이를 가진 집단이다. 통계대로라면, 2009년에는 1천 명의 줄 맨 끝에 서 있던 130명 가운데 5명이 상대적 빈곤에서 벗어나 중산층에 끼어들었다는 뜻이다. 1년 사이의 변화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참고로, 노무현 재임 기간에 상대적 빈곤 인구는 1천 명당 114명에서 129명으로 늘어났다. 그 밖에 상위 20%(5분위)의 벌이를 하위 20%(1분위)의 소득으로 나눈 ‘소득 5분위 배율’도 2008년 4.98배로 정점을 찍은 뒤, 2009년과 2010년에 4.95배와 4.81배로 점차 떨어졌다. 어느 모로 봐도 양극화는 2009년 둔화하기 시작한 뒤, 2010년부터는 오히려 완화했다.

놀라운 성과였다. 기획재정부는 통계청의 자료가 나온 날에 함께 보도자료를 냈다. “소득분배가 비교적 뚜렷하게 호전”됐다는 내용이었다. 집권 3년차를 맞은 이명박 정권의 ‘친서민’ 정책의 결실이 맺는 듯했다. 정부가 즐겨 쓴 ‘낙수(落水) 효과’, 곧 부유층과 대기업에 대한 규제 완화를 통해 부를 만들어내면 그 효과가 하류층에도 미칠 것이라는 주장이 입증되는 자료로도 비쳤다. 정부 관계자는 “언론이 크게 보도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적자 가구’ 늘었다”(<한겨레>), “실질소득 5분기 만에 감소”(<조선일보>), “실질 가계소득 쪼그라들었다”(<경향신문>) “작년 4분기 실질소득 5분기 만에 ‘마이너스’”(<서울신문>)
다음날 일간지들이 전한 뉴스였다. 양극화가 완화했다는 소식은 헤드라인에 실리지 못했다. 일부 신문에서는 아예 관련 기사를 싣지 않았다. 현상은 있었지만 그것을 시원하게 설명할 만한 근거가 없었다. 해석하기 힘든 뉴스는 언론사의 게이트키핑 과정에서 버려졌다. 심지어 정부 관료들도 통계에 자신이 없었다. 현상을 명쾌하게 짚어내지 못했다. 한 관료는 “뜻밖의 결과가 나와서 원인을 아직 분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다른 관계자 역시 “이런 경향이 앞으로 계속될지 의구심이 있어서, 정권에서도 자신 있게 성과로 내세우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복지 혜택·정규직 증가가 빈자 주머니 채워
가늠하기 힘든 통계의 이면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한겨레21>은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가계동향 자료를 재분석한 자료를 넘겨받았다. 여기에 통계청의 분석 자료, 국세청의 <국세통계연보> 자료와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지난해 소득분배의 지형을 그려보았다.
» 소득분배 수준을 알리는 지니계수가 2010년 개선됐다. 빈부 격차가 오랜만에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서울 서울 도곡동 삼성물산 타워팰리스의 원경.

우선, 소득불평등이 완화한 표면적인 이유는 단순명쾌했다. 저소득층의 소득이 크게 증가했고, 고소득층의 소득은 적게 증가했다. 계층에 따라 소득 증가율 속도가 달랐다. 통계청의 자료를 보면, 지난해 1분위(소득 하위 20%)의 월평균 수입은 57만8천원으로 2009년보다 6.9% 올랐다. 5분위(상위 20%)의 2010년 월평균 소득(327만원)이 2009년보다 5.2% 늘어난 것에 견줘 상승폭이 더 컸다.
모든 계층의 소득 총합에서 1분위의 비중은 2009년보다 0.1%포인트 늘어 6.7%가 됐다. 반대로 부유한 5분위의 소득 비중은 38.1%에서 37.8%로 떨어졌다. 빈자들의 소득 비중이 느는 동안, 부자들이 벌어들이는 몫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빈익빈 부익부의 추세는 뚜렷이 반전했다.
이런 경향은 빈부의 양쪽 극단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국세청이 내놓은 2009년 <국세통계연보>를 보면, 2008년 종합소득 신고액이 5억원이 넘는 ‘슈퍼리치’와 1천만원 이하 극빈층의 소득 추이도 ‘빈익부 부익빈’으로 변했다. 최고 부유층의 2008년 1인당 평균소득은 13억3400만원이었지만, 2009년에는 13억1500만원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극빈층의 1인당 평균 수입액은 465만원에서 482만원으로 늘었다. 1990년대 이후 브레이크 없이 달려온 ‘소득 양극화’의 반전은 국세청 통계에서도 선명했다.
도대체 무엇이 양극화의 흐름을 바꿨을까. 우선 빈곤층의 수입이 크게 늘어난 이유를 보면 두 가지가 부각된다. 첫째, 빈곤층에 대한 사회복지 혜택이 커졌다. 실업급여, 희망근로, 근로소득장려세제(EITC·Earned Income Tax Credit) 등이 경기가 침체한 때 가난한 이들의 주머니를 채웠다. 실업급여 가운데 가장 비중이 높은 구직급여 지급액은 2008년 2조4731억원이었지만 2009년에는 3조5911억원, 2010년에는 3조4884억원으로 불었다. 희망근로사업(2009년 1조3278억원, 2010년 4456억원)이나 EITC(2009년 4537억원, 2010년 4369억원)도 빈곤층의 소득을 보탰다. 통계청의 자료를 보면, 2010년 하위 20%의 소득 가운데서도 ‘이전소득’이 2010년에 무려 20.8% 증가했다. 이전소득은 경제적인 생산활동에 직접 기여하지 않고 개인이 정부나 기업에서 받는 수입을 뜻한다. 곧, 주로 정부로부터 받은 사회복지 급여가 그만큼 증가했다는 뜻이다.
» 정부의 희망근로사업에 참여한 이들이 2009년 7월 경기 시흥시 정왕동 공원 조성 사업 현장에서 화단을 가꾸고 있다. 정부는 희망근로사업을 통해 1조8천억원에 가까운 예산을 집행했다. 그 돈은 빈곤층에게 돌아갔다.

저소득층 가운데 정규직 노동자 비율이 늘어난 점도 저소득층의 주머니 사정을 도왔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09~2010년 가난한 1분위 계층 가운데 가구주가 상용근로자인 가구 비중이 14.0%에서 17.6%로 늘어났다. 소득 하위 20~40%인 2분위에서 상용근로자의 비율도 같은 기간 31.2%에서 39.2%로 늘었다. 즉 1·2분위 가운데 상용직 인구 비율이 1년 사이 26% 늘었다. 같은 이치로, 빈곤층 가운데 임시·일용직의 비율은 줄었다. 무려 54.1%에 이르던 1분위 비정규직 비율은 52.2%로 떨어졌고, 2분위에서도 비슷한 하락세(35.0%→29.0%)가 나타났다. 특히 2분위에서 정규직 유입 인구가 많았다. 지위가 달라지면서 벌이도 늘었다. 2분위의 근로소득은 지난해 무려 13.3% 올랐다. 여기에는 2007년 1월 발효된 ‘비정규직보호법’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이 법에 따라 2009년 7월부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으로 대거 전환됐다. 2009년 정부와 재계는 법이 집행되면 비정규직이 오히려 회사에서 대량 해고될 수 있다며 법 개정을 요구했지만, 4년 가까이 시간이 흐른 현재 결과는 매우 다르게 나타났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전체 임금근로자 가운데 비정규직 근로자의 비율은 2007년 8월 35.9%에서 2010년 8월 기준 33.3%로 줄었다. 비정규직 보호법의 혜택은 특히 2분위에 많이 퍼졌다.
부동산 가격, 금리, 임금 하락으로 부 감소
가난한 이들의 소득이 뛰는 동안, 부자들의 벌이가 상대적으로 시원찮았던 까닭도 살펴보면 흥미롭다. 원인은 다시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이 떨어졌다. 국토해양부의 아파트실거래가격지수를 보면, 서울 지역 아파트 가격은 2009년 12월 141.2였지만, 지난해 말에는 136.8까지 떨어졌다. 1년 사이 아파트 가격은 3.2% 정도 떨어졌다. 낮은 금리 수준도 부유층의 이자 수익을 낮췄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는 2008년 8월 5.25% 수준이었지만, 경기침체와 함께 계속 떨어져 2009년 2월에는 역대 최저 수준인 2.0%까지 떨어졌다. 한국은행은 그 뒤로도 15개월 동안 낮은 금리 수준을 유지했다. 이에 따라 상위 20%의 재산소득은 2007년 19.5% 증가했지만, 2010년에는 3.2% 증가하는 데 그쳤다. 강석훈 성신여대 교수(경제학)는 “2008~2009년 고소득층의 배당소득과 이자소득이 크게 줄었고, 2010년에도 소득은 크게 회복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둘째, 대기업들이 임금을 크게 내린 것도 중요한 변수였다. 2009년 초 대기업들은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그 첫 절차는 임원진의 임금 동결·삭감이었다. 삼성그룹은 경영진과 임원들의 2009년 연봉을 10~20%씩 줄였다. 현대·기아차 그룹도 임원 급여를 10% 줄이고, 관리직 임금을 동결했다. SK, 한화, 금호, 대한항공 등 대기업도 임원 연봉을 줄줄이 줄였다. 금융권에서도 대부분 2009년 연봉이 5% 줄었다. 공기업도 금융위기 이후 2년 이상 임금을 동결하거나 삭감했다. 특히 공기업 신입사원의 연봉이 20% 가까이 삭감됐다. 기업들의 결정은 통계 수치도 끌어내렸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소득 5분위의 근로소득은 2007~2008년 해마다 9% 이상 증가하다가 2009년에는 2.8% 줄었다. 지난해에는 3.2%로 찔끔 늘었을 뿐이다. 5분위의 2010년 근로소득은 2008년 수준을 벗어나지 않았다. 같은 기간 소득 4분위(상위 20~40%)의 근로소득은 0.8%, 3.4% 늘었고, 소득 3분위(중간 20%)의 근로소득은 6.0%, 6.5%씩 늘었다. 부유층의 소득은 다른 계층과 비교하면 더욱 분명하게 정체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소득 양극화는 앞으로도 계속 완화할까. 단정하기 이르지만, 원인들을 오밀조밀 분석해보면 낙관하기는 어렵다. 이 대목에서 LG경제연구원이 지난해 10월 낸 보고서는 다시 한번 펼쳐볼 만하다. 제목부터 눈길을 끈다. ‘2009년 이후 소득 격차 완화는 일시적 현상.’ 연구원은 이 보고서에서 소득 격차는 조만간 다시 벌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단기적인 변수 때문에 양극화가 잠시 완화될 뿐이라는 해석이다. 이를테면 정부는 2009년부터 2년 동안 희망근로사업에 2조7734억원을 썼는데, 어차피 한시적인 고용 대책이어서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물론 빈곤층의 고통을 덜어주는 단기적인 정책 효과는 있었지만, 소득 불평등을 구조적으로 완화하지는 못했다는 말이다. 실제로 올해 1분위의 소득증가율 8.8% 가운데 절반이 넘는 5.6%포인트는 복지급여 등을 포함한 이전소득에서 생겨났다. 윤상하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정부의 정책 효과로 저소득층의 소득이 늘었지만, 대부분 정책은 한시적이거나 금융위기에 따라 잠시 지출을 늘리는 사업들로 이뤄졌다. 따라서 경기가 풀리면 양극화는 다시 반복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지난 2년 동안 임금을 올리지 않은 대기업과 공기업이 월급을 한꺼번에 올릴 가능성도 있다. 그만큼 소득 격차가 다시 벌어지게 된다.
이전 정권 소득재분배 정책 효과 드러나
물론 소득 격차를 좁힌 데는 단기 요인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소득 격차를 좁힌 구조적·장기적인 요인도 있다. 특히 정부의 사회복지 지출 증가는 강력한 구조적인 변화였다. 그러나 이 부분도 이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저소득층의 이전소득이 늘어난 이유는 정부의 늘어난 사회복지 지출 덕이 컸다. 2006~2009년 복지예산 증가율은 해마다 10%를 넘겼다. 그 ‘실탄’을 배경으로 늘어나는 실업급여를 대고, EITC 재원을 마련할 수 있었다. 특히 1990년대 후반 이후 시장의 양극화로 소득 격차가 늘어난 몫을 정부의 사회복지 정책을 통해 상쇄한 측면이 있었다. 이번 양극화 완화도 오래 누적된 사회복지 정책의 결실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문제는 사회복지 예산 증가율은 현 정권 들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2010년에 증가율이 8.8%로 떨어졌고, 올해에는 6.6%였다. 정부가 맡았던 ‘양극화 완화’라는 역할이 약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는 정권에 따른 ‘소득재분배 효과’를 주목하라고 설명했다. 약간 복잡하지만, 내용을 살펴보자. 정부는 개인이 벌어들이는 시장소득에 세금을 물리거나, 사회복지 급여를 주는 형식으로 ‘결과의 평등’을 늘린다. 이런 조절 과정을 통해 부유층이 실제로 챙기는 가처분소득은 시장소득보다 줄어들게 된다. 동시에 빈곤층의 가처분소득은 늘게 된다. 따라서 가처분소득 지니계수는 시장소득 지니계수보다 낮게 나타난다. 정부의 개입으로 불평등도가 그만큼 낮아진다는 뜻이다. 정권별로 보면, 지난 김대중 정권은 임기의 마지막 해인 2003년에 가처분소득 지니계수를 시장소득 지니계수보다 4.8% 정도 낮은 수준까지 끌어내렸다. 사회복지 제도 개선과 예산 증액을 통해서였다. 노무현 정권도 마지막 해인 2003년에 가처분소득 지니계수를 시장소득 지니계수보다 8.5% 낮아지도록 소득재분배 정책을 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뒤 2010년에는 가처분소득 지니계수가 8.9%만 낮았다. 가처분소득 지니계수의 낙폭이 앞선 정권의 수준에서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정우 교수는 “소득재분배 효과가 지난 정권 동안 꾸준히 증가했는데, 이명박 정권 들어 그 상승 속도가 확실히 둔화했다”고 풀이했다.
» 자료: 통계청 '가계동향'(도시 2인 이상 가구 통계) *지니계수는 0~1 사이에서 1에 가까울수록 소득분배 수준이 불평등하다는 뜻. *가처분소득은 시장소득에서 세금 납부액을 뺴고 사회복지 급여액 등을 더한 실제 소득을 뜻함.

빈곤층의 소득이 느는 데 일조했던 ‘비정규직보호법’도 바뀔 위험에 처했다. 정부가 기간제 근로자에 한해 ‘사용시간 제한 예외 확대’를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4월6일 열린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신설 기업 등에 한해 기간제 근로자 사용기간(2년) 제한의 예외를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저소득층 정규직 비율도 언제든지 다시 떨어질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2010년 소득 양극화는 분명히 완화했다. 그 배경에는 앞선 정권의 소득재분배 정책이 끼친 장기적·구조적 영향이 있었다. 단기적·한시적 요인도 함께 이바지했다. 현 정권은 소득재분배 정책 분야에서 이전 정권과 다른 길을 가고 있다. 꾸준히 늘던 사회복지 예산도 주춤한다. 정규직 노동자 비율을 늘리는 데 이바지했던 고용정책도 ‘유연화’를 중심으로 방향 전환하고 있다.
미래의 역사학자들은 어쩌면 2010년을 일컬어, ‘아주 잠시’ 양극화의 광풍이 잠잠해졌던 해로 기록할지 모른다. 정부 정책의 변화에 따라 계층을 가르는 찬 바람이 언제 다시 닥칠지 모를 일이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가계동향 엇갈린 해석의 교차점
1인 가구 상대적 빈곤 시달릴 확률 높아
통계청은 해마다 가계의 소득 동향을 집계한 ‘가계동향’을 발표한다. 지난 2월에 나온 ‘가계동향’을 보면, 소득불평등도를 알리는 지니계수와 5분위배율, 상대적 빈곤율의 통계가 2010년 모두 호전됐다. 입체적인 접근을 위해,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유경준 박사에게도 같은 자료를 분석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유 박사에게서 넘겨받은 자료 분석 결과는 통계청의 그것과 약간 달랐다.
우선 지니계수와 5분위배율에서 수치는 약간 달랐지만 결론은 같았다. 빈부격차는 지난해 분명히 좁혀졌다. 차이점은 상대적 빈곤율에서 나타났다. 통계청 자료에서는 상대적 빈곤율이 줄었지만, 유 박사의 자료에서는 상대적 빈곤율이 반대로 늘었다. 자세히 보면, ‘가계동향’에서는 도시 2인 이상 가구의 상대적 빈곤율이 2009년 15.4%에서 지난해 14.9%로 감소했다. 반면에 유 박사의 자료에서는 상대적 빈곤율이 19.22%에서 19.29%로 오히려 증가했다. 상대적 빈곤율의 절대 수치뿐 아니라 변화 추이도 달랐다.
왜 엇갈린 해석이 나왔을까. 원인은 두 기관의 다른 셈법에 있었다. 통계청이 세는 단위는 ‘사람’이고, 유 박사의 셈 단위는 ‘가구’였다. 어느 분석이 더 정확하다고 말하기는 힘들었다. 두 자료를 한꺼번에 보면 빈곤의 현상은 더 입체적으로 드러난다. 사람 기준으로 보면 상대적 빈곤 인구는 1천 명 중 149명이었고, 가구 기준으로는 1천 가구 중 193가구가 상대적 빈곤층에 속한다는 뜻이다. 두 통계를 합해 추정하면, 1인 가구가 상대적 빈곤층에 속할 가능성이 높다는 잠정적 판단이 가능하다. 실제로 2007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자료를 보면, 1인 가구 가운데 33.3%가 상대적 빈곤층에 속하지만 4인 가구가 상대적 빈곤에 시달릴 확률은 12.8%인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1인 가구 비중은 1980년 4.5%, 2000년 16.3%를 거쳐, 2010년 23.8%에 이른다. 외로움과 가난을 모두 짊어진 이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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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할 주제다. 이 현상이 계속 지속될 지 추후 살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