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2-14

[세상 읽기] 핵 억제의 역설 / 김연철

억제(deterrence)는 '겁먹게 하다'라는 라틴어 'terrere'에서 유래한 말이다. 북한은 핵실험 이후 억제력을 확보했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핵 억제력은 보복능력으로 상대의 핵공격을 자제케 하는 것이다. 억제는 일방적이 아니라 상호적이다. 내가 핵무기로 공격하면 상대도 핵무기로 보복공격을 한다. 결과는 무엇일까? 너 죽고 나 죽자로 번역할 수 있는 상호 확증 파괴(Mutual Assured Destruction)다. 약자로 MAD라고 부르는데, 말 그대로 미친 짓이다. 그렇기 때문에 핵무기는 쓸 수 없는 무기다.

북한은 핵무기로 무엇을 얻을 것인가? 억제 말고는 없다. 핵무기가 체제의 생존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왜 핵을 스스로 포기했을까? 민주화와 더불어 국제사회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북한의 생각대로 핵무기가 있으면 재래식 군비를 줄일 수 있을까? 막대한 국방비를 경제건설로 돌릴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냉전시대 핵무기가 분쟁을 막진 못했다. 한반도에선 여전히 재래식 위협 구조가 존재한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사례를 보더라도 양국의 핵무기 보유 이후 국방예산은 훨씬 더 많이 증가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도 핵 억제력을 강화하는 것이 해답일까? 정치권 일부에서 주장하듯이 핵무장을 하고, 1990년대 초에 철수한 전술핵을 재배치해야 할까? 현실 가능성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핵을 가진 북한을 다룰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냉정한 신중함이다.

이미 한반도는 재래식 군비만으로도 공포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확장 억제력, 즉 핵우산이 있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오바마 대통령이 즉각적으로 확장 억제력의 보장을 강조하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핵우산은 위협국가에 대한 억제의 수단이면서 동시에 동맹국의 핵 확산을 막기 위한 것이다. 잠수함이나 한반도 인근지역의 장거리 폭격기로 충분히 보복할 수 있는데, 이미 미국에서도 폐기 대상으로 지정한 지상 전술핵을 재배치할 필요는 없다.

북한의 핵 보유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자는 얘기가 아니다. 핵무기가 전면전의 발발을 억제할 것이라는 핵 억제 이론은 결과론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핵 보유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기와 긴장의 과정이다. 상대에 관한 인식의 변화는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파기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서로 핵을 동원해 겁주기 게임을 지속해야 할까? 겁먹게 해서 핵무기를 포기한 경우는 없다. 억제는 상대의 억제를 위한 명분으로 작용할 뿐이다. 냉전 이후 분쟁은 핵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재래식 군비와 적대적 관계다. 평화도 마찬가지다. 상호 억제라는 공포의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니다. 한반도에서 북한의 핵 보유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재래식 위협이다. 일반적으로 국력이 약한 국가가 핵을 가질 경우 상대가 전면적인 군사력을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오히려 도발적 행위가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1998년 인도·파키스탄의 핵 보유 이후 오히려 카슈미르 분쟁이 악화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여전히 전통적인 안보 현안들을 관리하고 재래식 분쟁을 예방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자기 파괴적인 핵전략에만 매달려 평화관리의 의무를 망각해서는 안 된다. 언제까지 도발과 억제의 악순환을 지속해야 하는가? 변화된 상황에 어울리는 새로운 전략의 핵심은 바로 북한이 핵을 갖고 있는 것이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억제를 넘어서는 복합적 사고가 필요하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삼성X파일 폭로' 노회찬 집유 확정…의원직 상실
청소일보다 더 힘든 콜센터…"월급은 욕 먹은 값"
독일 연구소 "북 핵실험 40kt 위력"
'법무부서 민' 후보들, 추천위가 걸러냈다
'멋진' 사진 뒤에 감춰진 불편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