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2-22

[싱크탱크 시각] 이명박·문재인·안철수가 공감한 이야기 / 이원재

최근 현 정부의 정책방향을 기획한 인물들과, 야권에서 차기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인물들을 가까이서 만날 기회가 있었다. 이명박 정부의 핵심에서 국정을 기획하던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과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유력한 차기 야권 대선주자로 꼽히는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그리고 시민사회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그들이다.

이들은 현실정치에서 권력을 놓고 경쟁하며 대립하는 처지다. 하지만 우리 경제의 문제를 진단하는 대화를 나눌 때만큼은 솔직하고 진지했다. 스스로 한계를 인정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들의 이야기 속에는 공통점도 꽤 있었다. 특히 문제를 진단하는 대목에서는 공통점이 두드러졌다. 새누리당 비대위에서 논의된 내용과도 비슷하다. 이들 모두가 공감하는 문제라면 한국 사회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들이 대체로 공감한 다섯가지를 정리하면 이렇다. 첫째, 한국 사회는 지금 분노에 가득 차 있고,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이 분노가 언제 파괴적인 방향으로 터질지 모른다. 둘째, 분노의 뿌리에는 심각해진 불공정과 격차가 있다. 셋째, 재벌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그 핵심에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그리고 대형마트와 공급업체 사이의 불공정 거래는 무엇보다 먼저 해결되어야 할 문제다. 넷째, 빵집과 슈퍼마켓 같은 지역 생활경제 영역까지 대기업이 진출해서는 안 된다. 다섯째,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는 주목할 만한 실험이며 계속 살려가야 한다.

문재인 이사장은 용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의 어려운 처지로부터 고민을 시작했다. 공공기관이 최저가 입찰을 통해 용역업체를 선정하니, 발주 공기업은 여유롭고, 용역업주는 그래도 돈을 벌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생존조차 어렵다. 안철수 원장은 대기업으로부터 열악한 조건으로 재하청을 받아야 하는 소프트웨어 벤처기업들의 고민을 맞닥뜨리면서 불공정 거래의 해악을 몸소 느꼈다. 임태희 실장은 그런 재하청 구조는 경제적으로도 비효율적이라, 불공정 행위가 제품의 질도 보장하지 못한다는 점을 깨달으면서 '공정한 사회' 슬로건까지 생각이 발전했다. 곽승준 위원장은 재벌체제가 비효율적이라는 판단에서 출발해 국민연금이 투자 대기업에 이사를 파견해 주주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생각에까지 가 닿았다. 박원순 시장은 비영리 조직이 어떻게 사회를 혁신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끝에, '사회적 경제'가 미래 경제의 모습이 될 수 있다고 믿게 됐다. 생각의 출발점은 모두 달랐지만, 가닿은 결론은 비슷해진 것이다.

2012년은 선거의 해다. 정당과 후보들은 한국 사회에 대해 본인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을 소리 높여 외칠 것이다. 화려한 장밋빛 비전이 넘실대는 한편, 험악한 인신공격 및 고성이 난무할 것이다. 목청 높인 정치구호에 묻혀, 실제 국가 정책을 어느 방향으로 끌고 가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토론과 합의 형성 과정은 오히려 찾기 어려워질까 두렵다.

이럴 때일수록 차분하게 모두 합의하는 '최소한'을 찾는 일을 해보면 어떨까? 앞서 정리한 다섯가지를 국민적 합의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어떻게 실행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서로 경쟁하면 된다. 하지만 무엇을 어디로 끌고 갈 것인지에 대해 공동의 안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중용'은 어중간이 아니라, 시대가 요구하는 정확한 자리를 찾는 것이라고 한다. 이 공통분모로부터 중용의 자리를 찾아, 다가올 총선과 대선에서 누가 이기더라도 이 문제들만큼은 반드시 해결하자는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트위터 @wonjae_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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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1

아직 통합 안 된 통합진보당

[정치] 전략 지역구 후보 경선에 당 지도부 중재안 거부 당해…당원 숫자 우세한 민주노동당 출신의 패권주의라는 비판에 당비 대납 의혹도 일어

'아사리판'이다. 4월 총선 후보를 결정하는 당내 경선을 앞두고 내홍이 벌어진 통합진보당 말이다. 옛 민주노동당·국민참여당과 통합연대(진보신당 탈당파)라는, 각각 색이 다르고 '오랜 원한'도 있는 세 집단이 모인 당이기에 처음부터 '화학적 결합'이 순조롭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그렇다.

공동대표 가운데 한 사람인 유시민 대표는 지난 1월26일 밤부터 2월2일까지 당 회의에 불참하는 등 일주일 넘게 당무를 거부했다. "통합과 총선 승리를 저해하는 여러 일들이 당 안팎에서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예방하거나 바로잡을 수단이 없는 현실 앞에서 너무나 심각한 무력감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것이 유 대표의 설명이다. 행동에 나선 건 유 대표뿐이지만, 이런 상황 인식은 이정희·심상정 대표도 다르지 않다.

거부의 논리, 진성당원제

유 대표는 '수틀리면 판 엎는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이번 당무 거부 사태를 두고도 "당 대표로서 무책임한 태도"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유 대표도 이를 모르거나 예상 못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그는 2월1일 당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우리 당은 무정부 상태에 있다. 지도부가 권한으로 상황을 통제하지도 못하며 자발적 협력을 토대로 당을 운영하지도 못하는 상태"라고 리더십 자체를 발휘할 수 없는 구조를 지적했다. 대체 무엇이 유 대표를 또 한 번 입방아에 오르게 한 것일까?

두드러지는 앞뒤 사정은 이렇다. 통합진보당의 경선 규칙은 당원 투표와 일반 여론조사 결과를 50%씩 합산하되, 일부 전략지역에선 공동대표단이 후보 또는 경선 방식 조정안을 내고, 각 후보들은 이를 존중한다는 것이다. 지역구 180여 곳에 후보를 낼 예정인 통합진보당에서 2명 이상의 예비후보가 맞붙어 경선을 치르는 곳은 30여 곳이다. 공동대표단은 이 가운데 옛 민주노동당 출신 당원이 국민참여당이나 통합연대 출신 당원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곳 등 10여 곳에 조정안을 제시했다. 당원 투표 반영 비중을 각 지역 상황에 맞게 줄이는 안이었다. 이는 특정 계파 출신 당원이 지나치게 많으면 일반적인 유권자의 뜻과 거리가 먼 후보가 선출될 수 있고, 이후 야권 연대나 총선에서도 통합진보당에 불리한 결과를 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서울 성북갑·을, 구로갑, 울산동 지역의 민주노동당 출신 예비후보들이 이 중재안을 거부해 사달이 났다. 아무리 당 대표단이라도 '진성당원제'(당원이 당비 납부 의무와 함께 선거 출마자를 직접 선출할 권리를 갖는 제도) 원칙을 침해할 수 없다는 것이 거부의 기본적인 논리였다. 진성당원제는 통합진보당의 세 계파가 모두 합치기 전부터 당의 핵심적 운영 원리로 채택한 것이지만, 민주노동당 출신 당원이 다수인 지금은 후보를 선출하는 데 이들에게 유리하게 작동할 수밖에 없다. 이를 고려해 대표단이 중재안을 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만약 이들이 끝까지 대표단의 권고를 수용하지 않으면 당원투표로만 후보를 정해야 하므로 이들은 경선에선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일방적인 경선 연기, 선거 재공고

경선을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관리할 책임이 있는 백현종 통합진보당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의 독선도 문제를 일으켰다. 유시민 대표가 2월1일 당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어처구니없는 혼돈을 일으켰던 1월30일 밤의 사건"이라고 언급한 일이 대표적이다. 1월30일은 경기 구리와 하남 지역구 총선 후보 경선을 시작하기로 한 날이었다. 그런데 이날 새벽 당 중앙선관위는 당원투표의 '무효표'와 여론조사의 '모르겠다'를 합산하는 것이 당규와 충돌한다며 '기권'란이 있는 투표용지를 제작해야 한다는 이유로 경선을 일주일 연기해버렸다. 큰 혼란과 반발이 빚어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두 지역은 일반인도 투표에 참여하는 국민참여경선을 치르기로 한 곳이다. 그런데 당원 수에선 민주노동당 출신 예비후보가 앞서지만, 일반인 선거인단에선 통합연대 출신 예비후보가 더 유리할 것이라 예상됐다. 이 때문에 민주노동당 출신인 백현종 위원장이 '꼼수'를 부린 것이라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울산 남갑 지역에선 당 중앙선관위의 일방적인 '선거 재공고'가 벌어졌다. 이 지역은 통합연대 출신인 조승수 의원과 민주노동당 출신인 이경훈 예비후보가 맞붙는 곳이다. 이 지역에서 투표권을 가진 기존 당원은 258명이었는데, 경선이 결정된 지 2주 만에 543명이 추가로 입당했다. 조승수 의원 쪽의 문제제기로 이들 가운데 60%에 이르는 310명이 당비 대납 등 부정 입당을 했거나 서류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아 투표권을 갖지 못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조 의원 쪽은 나머지 추가 입당자 가운데서도 투표권이 없는 이가 다수일 뿐 아니라, 이 일 자체를 이경훈 예비후보 쪽이 경선에 이기려고 벌인 것이라고 의심한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선관위의 선거 재공고는 '기획입당자'들이 투표권을 인정받도록 할 시간을 벌려는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런 여러 논란 때문에 결국 통합진보당은 2월3일 중앙운영위원회를 열어 백현종 당 중앙선관위원장을 김승교 위원장(민주노동당 출신)으로 교체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남아 있다. 유 대표는 '1월30일 밤의 사건'과 관련해 "벌써 일주일 전부터 그와 유사한 혼란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징후를 알고 미리 막아보려고 애썼지만, 이런 우려를 전달조차 할 수 없었다. 대표단의 어떤 결정도 누군가 당원의 권리, 예비후보의 권리, 또는 자기가 가진 당헌·당규상의 권한을 침해한다고 느끼는 경우에는 제대로 집행되지 않는다"고 썼다. 이와 관련해 통합진보당의 한 인사는 "(민주노동당 출신인) 장원섭 사무총장이 사실 가장 큰 문제다. 대표단의 지시 사항이 아래로 안 내려가고, 아래의 보고 사항이 대표단에 올라가지 않는다. 장 사무총장이 자기 입맛에 맞는 것만 아래위로 전달하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인사도 "대표단이 합의해 장 사무총장에게 지시한 사항조차 집행이 안 된다. 이정희 대표야 이전부터 함께 일해온 사람이 많으니 덜하겠지만, 그런 기반이 없는 유 대표는 아무것도 보고받을 수 없고, 아무것도 전달할 수 없으니 (창당한 뒤) 두 달 동안 얼마나 답답했겠느냐"고 했다.

민노당 분당 갈등과 유사

이런 상황 탓에 유 대표의 '파업'은 국민참여당 출신과 민주노동당 출신의 '계파 갈등'이 아니라, 다수파인 옛 민주노동당 당권파의 패권주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실 진성당원제를 빌미로 일반 국민의 여론을 등한시한다든가, 당비 대납을 통한 집단 입당으로 당내 선거에서 이기려 한다든가, 또는 핵심 당직자가 특정 정파에 편파적인 태도를 보인다든가 하는 문제는 옛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거듭된 것이다. 잊을 만하면 불거지곤 했던 다수파의 횡포는 패권주의 논란을 낳았고, 결국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갈라서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 됐다. 이런 문제가 순식간에 해결될 리 없는데도 올해 총선·대선을 앞두고 있다는 이유로 급하게 통합한 결과가 유 대표의 당무 거부로 나타났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럴 줄 모르고 시작했느냐"는 자조 또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통합진보당 관계자는 "당권파는 이 문제들이 왜 문제인지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패권주의는) 예상됐던 일이지만, 총선은 넘길 줄 알았는데 너무 빨리 불거진 것 같다"고 했다. 통합진보당은 아직 통합되지 않았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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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의 불통 리더십

[정치] 권위주의로 일관하는 박근혜, 통합 정신 찾을 수 없는 한명숙…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공심위 구성 두고 양당 안팎에서 부글부글

"저런 사람들한테 공천신청서를 내야 하는지 자괴감이 든다."(새누리당(옛 한나라당)의 한 예비후보)

"공정한 공천 심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공심위(공천심사위원회)의 전면 재구성을 요구한다."(문성근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4월 총선에 나설 후보를 결정할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민주당)의 공식기구를 놓고 두 당 안팎의 반발이 거세다. 새누리당은 지난 1월31일 특수부 검사 출신 정홍원 전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을 위원장으로 당 공직후보자추천위원회(공천위)를 구성했다. 민주당은 공정거래위원장을 지낸 강철규 우석대 총장을 공천심사위원장으로 임명한 데 이어 2월3일 공심위원 명단을 발표했다. 공천위와 공심위는, '공천 혁명'으로 총선 승리라는 막중한 책임을 맡은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과 한명숙 민주당 대표가 각각 자신의 의지를 담아 야심차게 내놓은 '첫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당 안팎의 반응은 "걱정된다"는 내용이 지배적이다. 이런 평가는 이들의 인선·당 운영 스타일과 맞물려 '독선적 리더십' 논란으로 확산되고 있다.

불통의 공천위 인선

새누리당 공천위는 인선을 발표한 지 하루 만에 진영아 공천위원이 거짓말 논란으로 사퇴하는 등 출발부터 난파 위기에 처했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진 공천위원을 "몇 년 전까지 평범한 주부로서 학교 폭력에서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활동한 분"이라고 소개했다. 진 위원 스스로도 "당적을 가진 적도, 정치 활동을 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달랐다. 진 공천위원은 2008년 총선 때 한나라당에 입당해 비례대표 공천 신청까지 했고, 현재까지도 당적을 유지하고 있다. 이명박계 외곽 조직인 국민성공실천연합 대변인으로 2009년부터 1년가량 활동한 적도 있었다.

다른 공천위원들도 정치권 경력과 자질 문제로 입길에 오르고 있다. 서병문 공천위원은 새누리당 재정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2004년 총선 때는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공천 신청을 한 이력이 있다. 홍사종 공천위원은 2007년 대선 때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를 지원했다는 이야기가 나돈다. 정치권 경력 자체가 흠결은 아니지만, 문제는 박 비대위원장이 공천위 구성과 관련해 '탈정치 인선'을 강조했다는 사실이다. 만약 박 비대위원장이 이들의 경력을 알았다면 그가 거짓말을 한 셈이고, 몰랐다면 그토록 중요한 공천위원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에선 이번 사태의 책임은 전적으로 박 비대위원장에게 있다는 여론이 들끓는다. 그는 공천위원 발표 전 외부인이나 언론에 명단이 새지 않도록 '보안'을 강조했고, 인선 자체도 사실상 혼자 결정했다. 한 비대위원은 "인사에서 보안을 지키다 보니 한 사람 한 사람을 비대위 전체에서 상의해 하기가 쉽지 않다"는 박 비대위원장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이런 논란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그걸로(진영아 공천위원 사퇴로) 일단락이 됐다. 사퇴했는데 자꾸 토 달고 이런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유감 표명조차 하지 않았다.

당명 개정을 놓고도 박 비대위원장의 이런 태도는 여실히 드러났다. 14년 동안 쓴 당명 한나라당을 새누리당으로 바꾸면서 박 비대위원장은 소속 의원들의 의견을 전혀 묻지 않았다. 비대위 안에서도 반대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이런 소리에 귀를 열지 않았다. 이 때문에 박근혜계 핵심인 유승민 의원조차 "새누리당이란 이름에 전혀 가치와 정체성이 담겨 있지 않다. (당명 변경이라는) 이런 중요한 문제는 반드시 의원총회를 열어 의원들의 뜻을 물어봐야 한다"며 공개적으로 반발했다. 당 쇄신파 의원들도 2월3일 오전 기자간담회를 열어 의총에서 이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쇄신파 사이에선 "박 비대위원장이 소통과 민주적 태도를 내면화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오가는 등 박 비대위원장의 '권위주의적 불통 리더십'에 관한 불만이 터져나오는 상황이다.

"비친노그룹 배려 없는 불균형 인사"

한명숙 민주당 대표도 공심위 인선으로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 민주당은 '개혁성, 공정성, 도덕성'이 공심위원 인선 기준이라고 밝혔다. 한 대표는 최고위원들이나 주변에서 추천을 받아 후보군을 정한 뒤 일일이 직접 접촉해 공심위원을 선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심위원의 30%(15명 가운데 5명)가 여성이라는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하지만 맹점이 있다. 민주당은 옛 민주당, 혁신과통합 등 시민사회, 한국노총 등이 통합해 만든 정당이다. 그런데 당내 위원 7명은 모두 옛 민주당 출신들로 구성됐다. 또 여성 5명 가운데 3명이 한 대표와 같은 이화여대 출신으로, 이미경 총선기획단장 임명에 이어 '이대 라인' 인사라는 뒷말을 낳고 있다.

민주당 안에선 공심위를 전면 재구성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전당대회에서 2위로 지도부에 입성한 문성근 최고위원은 공심위원 명단이 발표된 2월3일 자신의 트위터에 "공심위 구성에서 '통합'의 정신을 찾을 수 없다"며 공심위 재구성을 요구했다. 시민과통합 출신 인사들로 구성된 혁신과통합은 성명을 내어 "한명숙 지도부부터 선당후사(先黨後私) 정신에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 한명숙 지도부를 중심으로 한 특정 세력의 기득권은 공고히 한 채, 호남을 비롯한 여타 세력의 교체만이 개혁 공천이라고 주장하는 건 설득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장세환 의원도 공심위 재구성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그는 "공심위 구성을 보면 한마디로 통합 정신이 실종됐다. 시민사회는 아예 묵살됐고, 영·호남 배려의 흔적은 없다. 비친노그룹에 대한 배려는 없는 불균형 인사"라며 "당직 독식에 이어 공천까지 독식하겠다는 몰염치한 행태"라고 거세게 비판했다.

장 의원의 주장처럼, 한 대표는 그동안 당직 인사에서 '자기 사람 챙기기'를 한다는 비판을 적잖이 받았다. '통합'을 화두로 대표로 선출됐으나, 당직 인선에선 민주당 출신의 친노 그룹에 쏠린 모습을 보여온 것이다. 대표적인 게 임종석 사무총장과 이미경 총선기획단장 임명이다. 임 사무총장은 그의 보좌관이 삼화저축은행에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1심에서 유죄가 난 상태다. 무지막지한 검찰의 '난도질'에 상처를 입은 한 대표로선 임 사무총장 기용이 '검찰 불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으리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임 사무총장이 최소한 '관리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정서에 가깝다. 또한 한 대표는 사무총장이 총선기획단장을 겸하는 관례를 깨고 자신과 가까운 이미경 단장 임명을 밀어붙였다.

"도로 민주당이냐"

당직 인선에선 한 대표 쪽과 시민통합당 출신들을 싸잡아 "친노 그룹이 다 해먹는다"는 불만이 나왔고, 공심위 인선에서 시민통합당 출신이 배제되자 "도로 민주당이냐"는 불만이 더해진 셈이다. 통합의 적임자를 자임해 당선된 한 대표에게 '통합과 혁신'이라는 과제가 아직은 버거워 보인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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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합과의 전쟁 성공의 조건들

[곽정수의 경제 뒤집어보기] 담합행위 규제 강화 나선 공정위와 근절 의지 보이는 재계… 소비자 집단소송제 도입, 과징금 현실화 등 제도 개선 필요

재벌 개혁과 경제민주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대기업들은 이런 규제 강화에 반시장적이라거나 반기업 정서를 조장한다며 반발해온 것이 상례다. 하지만 대기업이 정면으로 반발하지 못하는 예외적인 규제도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공적'으로 불리는 담합이다. '카르텔' 또는 '부당 공동행위'로도 불리는 담합은 복수의 사업자가 공동으로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다. 담합 유형은 상품·용역 가격, 거래 조건, 생산량 결정 등 다양하다.

담합 근절 선언한 '반칙왕' 삼성

주로 독과점기업들이 주도하는 담합은 공정한 경쟁에 위배된다는 인식이 오래전부터 확립돼왔다. 담합에 대한 최초의 명문화된 규제는 8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215년 제정된 영국의 대헌장(마그나카르타)은 상인들의 자유로운 활동 보장을 명문화했고, 이 내용은 이후 영국 보통법(시민법)의 대원칙이 됐다. 이 원칙은 절대권력자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1602년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은 친척에게 33년간 영국에서 카드를 홀로 생산·수입·판매할 수 있는 독점권을 부여했다. 하지만 법원은 "여왕의 독점권 부여가 영국 국민 전체의 이익과 자유에 배치된다"며 무효라고 판결했다.

산업혁명 이후 대기업의 출현으로 독점과 담합의 피해는 더욱 확대됐다. 미국은 보통법이 아닌 별도의 특별법으로 이를 규제한 최초의 나라다. 19세기 후반 록펠러로 상징되는 철도와 석유 등 대자본들은 트러스트 제도를 이용해 기업 간 경쟁을 배제하고 상품 가격을 멋대로 인상하는 등 횡포가 극심했다. 이를 막으려고 1890년 '셔먼 트러스트법'이, 1914년 '클레이턴법'과 '연방거래위원회법'이 제정됐다. 공정위의 김재신 카르텔총괄과장은 "담합의 피해는 특정 거래 상대방이 아니라 다수의 일반 소비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미치고, 자유로운 경쟁에 기반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기본 원칙을 해치는 행위"라고 설명한다. 대기업들의 담합행위로 인한 소비자 피해 규모 금액은 천문학적이다. 한 예로 공정위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생명보험사들의 이자율 담합 사건의 경우 보험 가입자들의 피해 금액이 2001~2006년 7년간 16조3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금융소비자연맹은 추산했다. 담합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질서를 위협하는 일종의 반체제 범죄다.

공정위가 최근 산업 전반에 걸친 독과점 대기업들의 담합행위 적발을 계기로 다각적으로 관련 규제 강화에 나서는 것은 당연하고도 반가운 일이다. 공정위는 올해 처음으로 소비자들의 담합 소송 지원책을 마련했다. 또 독과점이 담합의 구조적 온상이 되는 점을 중시해, 기업결합 신고 때 경쟁제한성 심사를 더욱 엄격히 하기로 했다. 리니언시제(자진신고감면제)도 손질했다. 리니언시는 담합 기업이 조사 과정에서 법 위반 사실을 자백하고 실제 납부할 과징금을 최대 50%까지 면제받는 제도다. 공정위는 한 번 리니언시 혜택을 받은 기업은 향후 5년간 다시 혜택을 받을 수 없도록 개정했다. 상습 담합 업체가 얌체짓을 못하도록 한 것이다.

마침 삼성이 담합 근절 선언을 했다. 삼성 최고위급 임원들은 사장단회의에서 공개적으로 "담합은 해사 행위이고 담합에 절대 관용은 없다"며 담합 근절 의지를 밝혔다. 담합을 부정과 똑같은 해사 행위로 간주해 무관용으로 처벌하겠다고도 선언했다. 삼성의 선언은 재계 1위 재벌이자, 그동안 상습 담합 기업으로 지목돼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삼성의 변화는 담합 관행이 이미 위험수위를 넘었다는 인식 때문으로 보인다. 최근 1년 사이 공정위가 과징금을 부과한 담합 사건은 모두 36건이다. 이 중에서 삼성이 관련된 사건은 무려 8건에 이른다. 거의 한 달 보름마다 1건씩 적발된 셈이다. 삼성 계열사가 담합 사건으로 부과받은 과징금은 3500억원에 육박한다. '삼성=반칙왕'이라는 타이틀이 붙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재벌, 담합 사건 제재에 예외 없이 소송

갈수록 강화되는 국제카르텔 규제도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금까지 국내 기업들이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에서 제재를 당한 사건은 모두 12건이다. 부과된 벌금이나 과징금만 2조4천억원에 달한다. 관련 임직원 15명이 기소됐고, 이 중 12명이 최장 1년 이상의 징역형을 살았다. 삼성은 반도체 D램, 브라운관 등 4개 사건에서 적발됐다. 삼성전자 고위 임원은 "매출 160조원이 넘는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기업이라는 위상을 고려할 때 관행처럼 벌여온 담합을 뿌리 뽑지 않으면 신뢰도 추락 등 더 큰 손실을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재계에서는 1위 기업인 삼성의 변화가 다른 기업들에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한다. 당장 재계 4위인 LG의 구본무 회장은 2월3일 신임 임원 교육에서 직접 담합행위 근절을 선언했다.

최근에는 법조인들까지 담합 근절을 위해 들고일어났다. 서울변호사회는 지난 1월30일 기업담합 척결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2월2일에는 삼성생명·대한생명 등 생명보험회사들의 이자율 담합 피해자 30명을 대리해 공익소송을 제기했다. 서울변호사회 오영중 인권이사는 "기업담합은 국민의 주머니를 털어 이익을 챙기는 것으로, 선진 자본주의 시장경제 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헌법질서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결국 담합의 주범인 독과점 대기업, 이를 규제하는 정부(공정거래위원회), 담합 관련 소송을 맡는 변호사 3자가 모두 담합과의 전쟁을 선언한 셈이다. 그 어느 때보다 담합 근절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배경이다. 하지만 결실을 거둘지 반신반의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대기업들이 담합 근절을 강조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삼성은 담합행위를 뿌리 뽑겠다며 2010년부터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을 도입했고, 4월 마지막 주를 '준법경영 선포주간'으로 정해 임직원 교육과 사내 점검을 한층 강화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담합 사건은 끊이지 않았다.

대기업들이 공정위의 담합 사건 제재에 거의 예외 없이 소송을 제기하는 행태도 담합 근절 의지를 의심받게 하는 요인이다. 담합 관련 임직원들에 대한 사후 처리도 근절 의지와는 거리가 있다. 담합 사건을 많이 다룬 공정위의 한 조사관은 "국내 기업들에서 담합 관련 임직원이 처벌받았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없다"며 "외국계 기업들이 관련 임직원들을 엄하게 징계하는 것과 큰 차이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국내 대기업의 한 영업담당 임원은 "담당자들은 항상 실적 경쟁에 쫓기기 때문에 위법인 줄 알면서도 담합의 유혹을 항상 느끼게 된다"며 "최고경영자들도 담합을 직접 지시하지는 않지만, 사실상 이를 묵인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과징금, 매출액의 1.5~2% 수준에 불과

담합을 실질적으로 근절하려면 인식의 전환과 함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우선 담합 사건에 대해 소비자들의 피해 구제가 손쉽게 이뤄지도록 '소비자 집단소송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또한 담합 피해자들이 손배배상소송을 더 쉽게 제기할 수 있도록 공정위의 피해 금액 산정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담합 사건에 대한 제재도 더 엄격히 해야 한다. 현행법은 담합 사건에 대해 관련 매출액의 10%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하지만 공정위의 실제 과징금 부과율은 관련 매출액의 1.5~2% 수준에 불과하다. '솜방망이 처벌'이다. 반면 선진국의 벌금이나 과징금 부과 기준은 훨씬 엄격하다. EU는 우리처럼 관련 매출액의 10%를 과징금으로 부과하지만, 관련 매출액의 산정 기준이 전세계 매출액으로 훨씬 크다. 미국은 담합으로 인한 부당이익의 2배, 담합으로 인한 피해액의 2배 중에서 큰 금액을 벌금으로 부과한다. 담합 사건에 대해서는 피해액의 3배까지 배상하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공정위가 2007년 이후 최근 5년간 시정명령 이상의 제재 조처를 내린 담합 사건은 모두 194건이다. 이 중에서 공정위가 검찰에 고발한 사건은 27건으로 고작 14%에 불과하다. 공정위의 담합 엄벌 방침이 무색할 지경이다. 법 위반 업체가 중소기업이거나 피해 규모가 작은 사건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검찰에 고발하도록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

곽정수 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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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만 감축인 미 국방예산

[세계] 오바마 정부가 획기적 군축으로 호들갑 떠는 국방예산 감축안, 실제로는 증가에 가까워…끝난 전쟁비용 빼면 예산은 오히려 늘어나고, 첨단무기 개발·도입 비용도 전혀 변화 없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09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국제정치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으며, 외교적 협력을 강화하는 데 탁월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게 시상 이유였다. "조지 부시가 아니라는 이유로 노벨상까지 받았다"는 우스개가 떠돈 것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그해 4월 체코 프라하에서 밝힌 '핵 군축'에 대한 비전도 평가를 받긴 했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말'뿐 '성과'는 전혀 없었다. '선불제 노벨상'이란 표현이 등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니 오바마 대통령으로선, '군축'에 대해 일종의 의무감이 있을 법도 하다.

2013년 국방 예산, 냉전 때보다 많아

지난 1월26일 오바마 행정부가 국방예산을 '획기적'으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이날 리언 패네타 미 국방장관은 기자회견을 열어 "향후 10년 동안 애초 계획했던 것보다 국방예산을 4870억달러까지 감축할 것"이라며 "최종 감축 규모가 최대 6천억달러에 이를 수도 있다"고 밝혔다. 미 언론은 흥분했다. 는 이튿날 "국방부의 새 예산 삭감안에 따라 지상군 병력 10만 명이 줄어들고, 상당수 군 기지가 폐쇄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같은 날 도 "2013년 미 국방예산은 1998년 이후 처음으로 감축된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국방부가 의회에 요청할 내년 예산은 모두 5250억달러로, 이는 올해에 견줘 1%가량 줄어든 규모"라며 "병력과 전투기·전함을 줄이고 일부 기지를 폐쇄하는 대신, 무인항공기와 특수전 병력을 늘려 대규모 기지에 주둔하지 않고도 효과적으로 신속하게 전투에 투입될 수 있는 방향으로 예산을 집중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바야흐로 '군축'의 시대가 오는 걸까? 따져볼수록 고개를 가로젓게 된다.

먼저 '예산 삭감' 규모다. 지난해 의회를 통과한 예산절감법은 미 국방예산을 향후 10년 동안 4870억달러 삭감하도록 정해놓고 있다. 이 가운데 향후 5년(2013~2017년) 안에 2590억달러를 삭감하도록 규정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군비 축소' 계획은 이에 따른 조처다. 좀더 구체적으로 보자.

2012년 물가로 환산하면, 냉전 시절 미국의 연평균 국방예산은 약 4400억달러 수준이다. 2003년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이 본격화하자 미 국방예산은 냉전 시절의 평균치를 훌쩍 뛰어넘었다. 부시 행정부 말기엔 미-소가 '별들의 전쟁'을 벌이던 냉전 막바지인 1980년대 중반 수준에 근접해갔다. 군축단체 '국방대안프로젝트'(PDA)가 내놓은 분석자료를 보면, 1998~2010년 물가상승률을 고려할 때 미 국방예산은 약 55%나 증가했다.

오바마 행정부가 내놓은 새 '감축안'을 따르더라도, 2013년 미 국방예산은 모두 5250억달러에 이른다. 이는 올해를 기준으로 하면 60억달러 감축된 수치지만, 냉전 이후 최저치(약 3500억달러)를 기록한 1998년에 견줘선 31%나 많다. 여기에 아프가니스탄 전쟁비용으로 884억달러를 추가로 요청하기로 했다. 역시 올해(1150억달러)보다 줄어든 규모이긴 하다. 그러나 전쟁비용을 뺀 미 국방예산이 2014년엔 5340억달러, 2017년에 이르면 5670억달러까지 치솟는다. 오바마 행정부가 제시한 추가 감축 방안을 따르더라도, 미 국방예산은 냉전 시절의 평균치를 훌쩍 뛰어넘는다는 게 PDA의 분석이다. '군축'이라도 하는 양 호들갑 떨 일은 아닌 게다.

'원상 회복' 수준에 불과한 병력감축

지상군 병력 축소는 어떤가? 2003년 3월 시작된 이라크전쟁은 2011년 12월 사실상 막을 내렸다. 은 지난 2월1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담에 참석하려고 벨기에 브뤼셀을 방문한 패네타 국방장관의 말을 따 "오는 2013년 하반기 중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과 NATO군의 군사작전을 종료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9·11 동시테러 이후 10년 세월 미국의 발목을 잡아온 두 개의 전쟁이 사실상 막을 내리고 있으니, 지상군 병력 축소는 자연스러워 보인다.

뉴스 신디케이트 의 보도를 보면,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미 지상군 병력은 56만2천여 명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2017년까지 이를 49만 명 수준으로 줄이기로 했다. 같은 기간 해병도 현재보다 2만 명 줄어든 18만2천 명 수준으로 감축할 방침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함정'은 있다. 9·11 동시테러 직전인 2001년 미 지상군 병력은 48만여 명, 해병은 18만여 명 수준이었다. 아프간·이라크 전쟁을 치르며 폭발적으로 늘어난 병력을 '원상 회복'하는 수준이란 얘기다. 외교안보 전문지 는 지난 1월31일 인터넷판에서 "미 국방부는 두 개의 전쟁을 치르기 위해 전투병 8만 명을 추가로 모병했다"며 "여기에 위험수당 등 각종 혜택이 추가되면서 인건비가 폭발적으로 늘었다"고 전했다.

인건비는 미 국방예산의 약 30%를 차지한다. 2001년 수준으로 병력을 감축하면 국방예산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 그럼에도 전체 국방예산이 되레 느는 이유는 뭘까? 첨단기술 연구·개발과 주요 무기체계 도입 등에서 전혀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 1월26일 국방예산 감축안을 발표할 때 패네타 국방장관이 "모든 종류의 전투에 대비해야 한다"며, 지상군 병력의 신속기동체제 유지·확대를 위한 예산 편성과 무인항공기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예산 30% 확대 등을 거론한 바 있다. 여기에 부시 행정부 시절부터 말썽이 끊이지 않던 미사일방어(MD) 관련 예산과 기술적 결함 논란에 휩싸인 F35 스텔스 전투기 도입 관련 예산(약 3820억원)도 고스란히 유지된다. 는 "실제 수치를 놓고 보면, 미 국방예산은 향후 10년 동안 해마다 약 2%씩 늘어나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삭감이 아니라 내역의 변화일 뿐"

미군기지 축소 문제도 엇비슷한 상황이다. 칼 레빈 미 상원 국방위원장(민주당)은 최근 등과 한 인터뷰에서 "유럽 등 해외 기지가 축소되기 전에 국내 기지를 폐쇄하는 방안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윌리엄 손버리 하원의원(공화당)도 "국내 기지를 폐쇄해 국방예산을 줄이겠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민주·공화 두 당이 모두 이에 반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야흐로 '선거의 해'다. 군사기지가 '일자리'와 동의어인 상황에서, 미 국내 기지 폐쇄에 찬성할 정치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딘 베이커 경제정책연구센터(CEPR) 소장은 지난 1월27일 진보적 대안매체 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꼬집었다.

"오바마 행정부가 내놓은 국방예산 감축 계획을 보면, 2000년 조지 부시 행정부 출범 이래 폭발적으로 늘어난 국방예산보다 더 많은 국방비를 앞으로도 계속 지출하겠다는 뜻이다. 삭감이 아니라 지출의 내역이 바뀌는 것일 뿐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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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의 아들 진중권?

[표지 이야기] 조선시대부터 2000년대까지, 이슈마다 발을 담그는 '백과전서파' 논객의 사회사… 금기에 얽매이지 않고 '김일성 만세'까지 썼던 김수영 시인 정도가 진중권과 유사해

진중권의 '기풍'(棋風)을 따지고 든다면 뭐라 할 수 있을까. 주변의 잔잔한 실리를 버리고 중원으로 곧장 육박하는 장면에서 '우주류'(宇宙流)의 행마가 엿보인다. 확실히, 난폭하지 않은 평이한 수로 반상을 이끄는 '평명류'(平明流)는 아니다. 반상을 두껍게 가져간다는 느낌은 크지 않지만 그렇다고 화려하기만 할까. 그는 보기 좋은 것을 챙기기보다는 처절하리만치 실리를 챙기고 승리에 집착하는 승부사형에 가깝다. 황우석·심형래·곽노현, 웬만한 큰 승부에서 지지 않는다. '반집승' 같은 신승은 없다. 대부분 상대방이 먼저 나자빠지는 불계승이다. 진중권은 여러 개의 접시를 동시에 돌린다. 진득하게 하나의 판에서 고기를 굽지 않는다. 정치·경제·사회·문화 여러 판에서 여러 수를 동시에 생각한다. 하나의 판에서 여러 명과 맞붙기도 한다. 다면기(多面棋)를 두는 셈이다. 자신의 판이 아닌데도 이슈마다 발을 담근다. 없는 이슈도 스스로 만들어내며 승부를 내고 마는 '백과전서파 논객'이다.

조정과 편지, 논쟁의 통로

백과전서파 논객의 비조는 누구에게로 거슬러 올라갈까.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는 "상소문의 예를 보더라도 조선시대 지식인들은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데 굉장히 용감하고 적극적이었다"고 했다. "'진중권스럽게'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매체가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아 전방위적 발언을 하기는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요즘은 전방위적 발언을 실시간으로 출납하는 인터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신문, 방송 등의 창구가 있지만 조선시대에 가장 큰 '매체'는 조정이었다. 조정에서 논쟁이 벌어져도 이 소식이 지방으로 내려가려면 길게는 수십 일, 짧아도 며칠이 걸렸다. 안 교수는 "요즘은 모든 문제가 분화돼 있지만 당시는 그렇지 않았다. 보편적 지식으로 해결하는 보편적 주제가 많았다.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진중권처럼 자기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고 했다. 정다산의 학문적 깊이와 폭을 떠올리면 된다. 다만, 매체의 한계로 인해 진중권처럼 살기에는 불가능했다는 얘기다.

당시의 논쟁은 가까운 이들끼리의 대화나 편지를 통한 논쟁이 많았다. 특히 편지는 자신의 의견을 나타내는 주요한 통로였다. 편지를 돌려보는 전통도 있었다. 지금처럼 하나의 트윗을 수만 명이 돌려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로서는 '꽤나' 많은 사람들이,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돌려보고 의견을 나누었다. 안 교수는 "정치인들 가운데 행동대장 격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지금의 정당 대변인처럼 앞에 나서서 여론을 주도하거나 당파의 의견을 절충·조정하는 역할을 맡는 이들이었다. 안 교수는 조선 숙종 때의 김춘택을 예로 들었다. 시문에 뛰어난 김춘택은 언제나 당쟁의 한가운데 있었고, 세 번 감옥에 갇히고 다섯 번 유배길을 떠났다.

전방위 논쟁 주도한 자유주의 지식인

한국 현대사로 시기를 끌어올리면 어떤 인물이 백과전서파 논객 열전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까. 간단치 않다. 전방위 논객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굳건히 진지전을 펼치는 이가 많았다. 논객이 논쟁을 이끌기보다 논쟁을 중심으로 논객이 만들어졌다. 1920년대 중반 벌어진 프로문학 논쟁에서 당대 문인들인 김기진·박영희·염상섭·이광수·양주동 등이 등의 지면을 빌려 설전을 벌였다. 1954년에는 에 연재된 정비석의 소설 을 두고 서울법대 황산덕 교수가 "중공군 50만 명에 해당하는 조국의 적"이라고 공격해 '자유부인 논쟁'이 벌어졌다. 1960년대 말, 70년대 초에는 또다시 문학에서의 순수·참여 논쟁이 벌어졌다. 평론가 이어령과 시인 김수영이 와 를 오가며 벌인 '불온시' 논쟁이 대표적이다. 1980년대는 변혁론과 사회구성체 논쟁을 두고 백가쟁명의 시대를 이뤘다. 대학생 이진경은 '사사방'()을 쓰며 논쟁의 아이콘이 됐다.

모든 전선에서 각개전투를 벌이는 전방위 논객의 시대는 1990년대부터 무르익기 시작했다. 논객이 논쟁을 주도하는, '본격 논객' 시대의 도래다. 언론인이자 경제학자인 고 정운영 전 논설위원이 정치·경제·사회·역사를 아우르는 경제 칼럼으로 날카로운 필명을 날렸다. 1990년대 말에는 지역주의·김대중·노무현·족벌언론·지식인·서울대·패거리주의를 이라는 1인 출판물로 '조져온' 강준만이 등장했다. '어떤 좌파들보다도 더 좌파적이고 어떤 우파들보다도 더 우파적'이라는 고종석도 짙은 밀도의 먹물을 튀겼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이 없던 세상. 즉자적 반응보다는 자기 진영을 대표하는 계간지나 신문 지상, 단행본을 통해 호흡이 긴 논쟁이 이뤄지던 시절이었다.

문화비평가인 이택광 경희대 교수(문화학)는 "진중권 같은 논객이 있었다면 김수영 정도다"라고 했다. "패거리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문단을 비판했다. 강연하러 갔다가 강연록을 찢기도 하고 간간이 쌍욕을 하기도 했다." 눈 깊은 김수영이 전방위 논객의 반열에 올라간 이유다. 실제로 시인의 자유를 향한 정치성과 불온성은 도처에 드러난다. 산문 '제 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없는가'(1966)에서는 "신문은 감히 월남 파병을 반대하지 못하고, 노동조합은 질식 상태에 있고, 언론 자유는 이불 속에서도 활개를 못 치고 있다. 그런데 이보다도 더 위험한 일은 지식층들의 피로다"라고 일갈했다. 문학평론가 김명인에 따르면 김수영의 이런 '태도'는 "60년대 한국 사회에 미만한 후진성에 대한 가차 없는 비판과 급진적 자유주의의 비타협적인 표명"으로 요약된다. 김명인은 그 예로 김수영의 여러 산문을 인용한다. "무엇이 달라져야 할 것인가? 언론 자유다. 1에도 언론 자유요, 2에도 언론 자유요, 3에도 언론 자유다"('창작 자유의 조건'), "문학하는 사람들 중에 지식인이 없다"('모기와 개미'), "비평적 지성을 사생아로 만드는 냉전"('생활의 극복'), "유상무상의 정치권력의 탄압"('지식인의 사회참여').

언론인이자 경제학자인 고 정운영 전 논설위원이 정치·경제·사회·역사를 아우르는 경제 칼럼으로 날카로운 필명을 날렸다. 1990년대 말에는 지역주의·김대중·노무현·족벌언론·지식인·서울대·패거리주의를 이라는 1인 출판물로 '조져온' 강준만이 등장했다.

짧은 산문을 날렸던 김수영의 추억

김수영이 불온하게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비판의 오지랖은 파병·노동운동·언론자유·지식인 사회를 모두 아우른다. 산문 '치유될 기세도 없이'(1960)에서는 "없는 사람이 잘살아보겠다고 하는 운동을 노골적으로 억압하는 정부의 처사가 상식화되어가고 있는 사태처럼 요즈음 우리들을 다시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경북 교조나 경방 파업 문제 같은 것만 하더라도 당국의 태도는 여전히 '빨갱이'에 대하는 태도나 조금도 다름이 없다"고 썼다. 김명인이 2008년 발굴한 김수영의 미발표 시 '김일성 만세'(1960)는 이념적 금기어인 '김일성'까지 뿜어낸다. "'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 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듬해에는 "나는 이북 작가들의 작품이 한국에서 출판되고 연구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불온서적 운운의 옹졸한 문화정책을 지양하고 명실공히 리버럴리즘을 실천해야 하며…"('시의 뉴 프런티어')라고 썼다. 자신이 몸담은 문단은 물론, 날 선 이념의 금기들마저 활자로 찍어내며 추문으로 만들어버렸다.

1960년대의 김수영에게는 인터넷과 스마트폰과 트위터는 없었다. 대신 이승만의 자유당과 짧은 4·19와 박정희의 5·16이 있었다. 마땅히 펜을 들어야 할 시대였다. 짧은 산문들은 시대에 날리는 트윗이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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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가지 법 빼고 보자

[표지 이야기] 30년 지기 이진경, 사이버 논객 이택광, 여성 심리학자 심영섭, '진중권 키드' 한윤형… 중딩부터 의원까지 상대하며 비합리와 싸우는 온라인 워리어 진중권을 말하다

조망지 따라 풍경이 갈리듯, 사람에 대한 평가도 매한가지다. 인연과 관심, 성정과 눈썰미에 따라 그려지는 인물의 됨됨이가 영향받는다. 진중권이란 '문제적 개인'을 재현하는 일도 그렇다. 이진경과 이택광, 심영섭과 한윤형의 진중권은 각자가 지닌 앵글에 따라 길항과 수렴의 지점들을 오간다. 진중권을 주제로 네 사람과 진행한 인터뷰를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해 싣는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수·사회학

나와 진중권은 30년 지기다. 1983년 서울대 지하서클에서 처음 만났다. 내가 보는 논객 진중권의 장점은 꼼꼼함과 성실성이다. 최근 트위터에서 선관위 음모론 문제로 논쟁하는 걸 봤다. 짧은 시간에 방대한 분량의 자료를 찾아내 상대를 논박했다. 더 인상적이었던 건, 과거 인터넷 게시판에서 활동할 때 어린 친구들의 악성 댓글에까지 하나하나 답변을 달던 모습이다. 그럴 필요까지 있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해주면 하루이틀 뒤 아이들 태도가 달라진다"고 했다.

이런 진중권의 행동을 추동하는 것을 나는 '진실에의 의지'라고 본다. 황우석이나 영화 논쟁에서 보듯 진실이 아닌 것이 대중력 영향력을 갖는 것을 그는 견디지 못한다. 그러니 원고 쓰고 강연할 때를 제외하곤 종일 온라인으로 논쟁하고 소통하는 거다. 한때는 이런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 좋은 머리와 글재주를 왜 더 깊고 넓은 일에 쓰지 않느냐고 타박도 했다. 지금은 이해한다. 진중권에겐 그의 길이 있다. 사회적 쟁점들에 기민하게 대응하면서 사람들이 간과하는 문제를 정확하고 재치 있게 짚어내고, 이를 통해 사회를 그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것.

1990년대 초까지는 혁명을 꿈꾸며 조직 생활을 함께 했지만, 지금은 정치 지향이 많이 다르다. 진중권은 혁명이나 사회주의 같은 거대한 문제를 갖고선 사람들과 소통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본다. 우리 사회에서 합의 가능한 최대치가 사회민주주의라고 말한 적도 있다. 조직형 인간도 아니다. 옛날부터 '이건 아니다' 싶으면, 지도부도 친구도 없었다.

화법과 스타일을 두고 말이 많은 건 안다. 나도 한때는 공격적 글쓰기를 즐겼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피하게 됐다. 싸움이 아니라 설득이 목적이라면,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중권은 스스로 표현하듯 '워'(War)를 하고 있다. 비틀고 베고 찌른다. 그 힘이 영향력으로 나타난다. 그 과정에서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도 상처 입는다. '워리어' 진중권의 업이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영문학

진중권은 말 잔등에 붙은 '등에' 같은 존재다. 대중의 열정은 원래 비합리적이다.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동시에 갖는데, 우리 사회는 종종 이 집단적 열정이 지나쳐 사달이 난다. '나꼼수' 사태가 좋은 예다. 열정의 부정적 측면이 긍정성을 압도하려고 할 때, 진중권은 여지없이 나타나 따갑게 후벼판다. 아프고 불쾌하지만, 지나고 나면 사람들은 '그때 진중권이 옳았어' 하고 고개를 주억거린다.

진중권이 이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네트워크에 매여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진영에 신경 쓰지 않는다. 싸움을 하면서 내 편, 네 편 가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학맥으로 엮이는 것도 싫어한다. 그러니 눈치 보지 않고 할 말을 한다. 캐릭터도 독특하다. 피터팬이다. 한참 어린 20~30대와도 거부감 없이 말을 섞는다.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결합해 그를 중요한 논객으로 만들었다. 지식인 사회에선 좀체 찾아보기 힘든 새로운 유형의 논객이다.

한때 그는 전위정당 노선을 추구한 사회주의자였고, 이후엔 사회민주주의자를 자처했다. 그런데 지금은 미국식 진보적 자유주의로 확실히 기운 것 같다. 보수화됐다는 뜻은 아니다. 그가 싸움을 통해 확립하려는 것은 상식과 합리성, 그리고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권리'다. 그는 철저하게 상식과 논리에 근거해 발언한다. 상식은 그 자체로 급진적이거나 정치적이지도 않지만, 한국처럼 상식이 확립되지 않은 사회에선 상식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것은 대단히 정치적인 기획이 된다. 한국적 맥락에서 진중권의 자유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은 박노자·김규항의 사회주의보다 급진적일 수 있다는 얘기다.

일각에선 그에게 엘리트주의자의 혐의를 두지만, 동의 못한다. 트위터에서 종일 범부들과 치고받는 사람이 무슨 엘리트인가. 진중권을 엘리트주의자라 비난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반지성주의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지식인을 혐오하고 토론하지 않으려는 것, 논쟁의 장 자체를 회피하려는 것. 이 자체가 권위주의다.

심영섭 대구사이버대 교수·심리학

진중권의 캐릭터를 한마디로 요약하는 말은 '태도불량'이다. 동아시아, 특히 한국 사회에선 태도가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 아무리 옳은 말도 말하는 자의 태도가 불량하면 커뮤니케이션이 안 된다. 그런데 진중권은 아랑곳 않는다. 알면서도 부딪친다. 그의 언어는 적확하고, 콘텐츠는 풍부하며, 판단력과 논리 또한 탁월하다. 역시 문제는 태도다. 위악적으로 보이는 논법과 제스처로 끊임없이 적을 만든다. 그의 말에는 둥근 데가 없다. 오로지 직선이다.

한편으로 진중권의 심리 저편에는 강력한 자기방어 본능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어떤 논쟁이든 일단 시작하고 나면 지거나 수세에 몰리는 것을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따라서 논쟁의 주제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집요하게 싸워보겠다는 의지가 충만하다. 상대의 나이와 지위를 가리지 않고 끝까지 쫓아가 논쟁하고 대꾸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상대가 중학생이든, 회사원이든, 국회의원이든.

우리 사회에서 이런 유형의 지식인 논객이 대중의 열렬한 호응을 얻기는 힘들다. 팬덤을 형성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김어준과 비교해보면 드러난다. 김어준에겐 독설뿐 아니라 유머가 있고, 때론 상담도 해준다. 적당히 눙칠 줄도 안다. 하지만 진중권은 시종일관, 촌철살인 후벼판다.

진중권에게 핵심적인 가치는 뭘까. 내가 보기엔 도덕성과 형평성이다. 내 편, 네 편 갈라 비판의 강도를 달리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내 편으로 여겨질 만한 사람에게 더 매서울 때가 있다. 이런 그를 보면 가끔 버나드 쇼가 떠오른다. 그가 유럽에서 태어났다면 한국에서와 다른 대접을 받았을지 모른다. 불행히도 한국의 척박한 문화적 풍토에선 진중권은 썩 환영받기 힘든 캐릭터다.

비슷한 유형을 꼽으라면 단연 유시민이다. 성격과 화법도 통하는 데가 많다. 하지만 진중권은 정치에 대해 자주 발언하지만, 유시민만큼 '정치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그에게 세상을 바꾸고 싶은 의지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만나면 물어보고 싶다.

한윤형 자유기고가

지금 '2030 논객'이라 불리는 무리의 상당수는 진중권의 우산 아래서 컸다. 그가 인터넷 논객으로 활약하던 시절은 운 좋게도 우리가 정치에 눈뜨고 글쓰기에 관심을 갖게 된 시기와 겹쳤다. 이제 막 인터넷 글쓰기를 시작한 우리에게 진중권의 글은 전범이요 교과서였다.

많은 친구들이 진중권의 논리와 문체를 복기하며 자기만의 스타일을 연마해왔다. 하지만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따라갈 수 없는 게 있다. 진중권의 순발력이다. 1990년대 말 사이트에서 '밤의 주필'로 활동하던 시절, 우익 유저들의 공격을 상대해주면서 하룻밤에 무려 5가지 사안에 대해 논평을 쏟아낸 적도 있다. 그의 순발력에는 풍자와 비유 능력도 포함된다. 우리로선 인터넷을 뒤지고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 겨우 조합해내는 비유를 그는 예사로 구사한다.

그는 싸울 때 상대를 안 가린다. 합리적 소통을 가로막는 모든 것과 싸운다. 이런 그를 보고 사람들은 '종잡을 수 없다'고 한다. 진중권이 이번엔 뭘 비판할지 모르겠다는 거다. 영화 로 논쟁할 때 특히 그랬던 것 같다. 그의 비판은 타당했지만, (사법 개혁이 화두로 떠오른) 지금 상황에선 처음부터 환대받기 어려운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완고한 합리주의자로 여기지만, 어떤 면에선 엄격한 윤리적 잣대를 갖고 움직인다. 그래서 가끔 그의 논변은 엄밀하고 논리적이라기보다, '이런 문제는 반성하고 해결하고 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당위론의 형태를 띨 때가 많다.

한때 그는 진보정당을 지지하면서도 정파 구도 안에 내재한 도그마와 비합리성을 끊임없이 문제 삼았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정당에 대해서도 명시적 지지를 유보하고 있는 듯하다. 사람들은 그가 앞뒤 안 가리고 모든 정당과 정파를 비판한다고 여기지만, 내가 볼 땐 아니다. 그는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여론을 조직해선 다음 정권의 향배를 결정할 중간층에게 호소력을 가지기 힘들다는 대단히 정치적인 판단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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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규항 우준만, 누구든 덤벼!

[표지 이야기] 2002년 강준만, 2011년 김규항과 논쟁으로 살펴본 진중권의 언어, 신랄한 풍자인가 못된 공격인가

스타일이 곧 내용이다. 이 문장은 진중권의 글쓰기에 그대로 들어맞는다. '풍자'는 '남의 결점을 다른 것에 빗대어 비웃으면서 폭로하고 공격함'(국립국어원)으로 정의된다. 한자 '자'(刺)는 '찌르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칼 든 무사인 논객은 베어야 할 대상 앞에서 후회하거나 반성하지 않는다. 풍자의 본질이다. 1998년 '논객' 진중권을 세상에 알린 책 제목은 (개마고원)였다. 조갑제씨의 박정희 전 대통령 전기 (조선일보사) 제목을 풍자했다. 그의 칼이 극우파와 보수정당을 향할 때 독자들은 열광했다.

강준만 "공격과 비방을 자제하라"

칼끝이 진보 진영의 논객을 향할 때, 종종 감정싸움이 벌어졌다. 진중권씨는 강준만 교수와 함께 안티조선운동에 동참했다. 2000년엔 김규항 발행인과 사회비평지 를 함께 만들었다. 진씨는 한때 동지이던 두 사람과의 논쟁에서도 풍자의 글쓰기를 구사했다. 2002년 6월 서울시장 선거에서 강준만 교수는 민주당을, 진중권씨는 민주노동당 후보인 이문옥 전 감사관을 지지했다.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에 뽑힌 상태였다. 진씨는 강 교수를 염두에 두고 이렇게 주장했다. "지방선거는 대선의 전초전이 아니다. 서울시장은 노무현이나 이회창을 위해 뽑는 게 아니라 1천 만 서울시민을 위해 뽑는 것이다. 이게 시민적 상식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언론 개혁 운동을 해온 몇몇 지식인들의 태도다. 서울시장 선거는 대선에 직간접적 영향을 끼치므로, 지방선거를 대선의 전초전으로 여기는 태도를 나무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 유치한 '국민 사기극'에 놀아나야 할까?"( 2002년 5월24일치) 강준만 교수의 책 의 제목을 비꼰 것이다.

강준만 교수는 월간지 23호에서 진씨의 입장뿐 아니라 글쓰기 태도도 문제 삼았다. "궤변가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자신의 방어에 주력하는 소극적 궤변가와 상대편의 약을 올리는 데에서 쾌감을 느끼는 적극적 궤변가 또는 가학적 궤변가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의 진중권은 후자의 경우다." 진씨가 자신과 다른 의견에 대해 '거짓말'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과도하다고 비판하며 진씨에게 "도덕적 공격과 비방을 자제하라"고 반박했다. "(진씨가) 분열과 증오의 수사학을 구사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변한 진중권의 김규항 코드 풍자


김규항 발행인과의 논쟁에서도 진중권식 풍자의 날은 시퍼렛다. 열렬한 진보정당 당원이던 진씨는 2010년 진보신당을 탈당했다. 진보정당과 민주당의 선거 연합을 옹호했다. 진보정당 지지자인 김규항 발행인은 "오연호·조국 같은 중산층 엘리트들에게 이명박인가 노무현인가는 학술, 문화, 방송, NGO 등의 헤게모니를 '우리가 갖는가 저들이 갖는가'가 달린 절체절명의 일이다"( 2011년 2월10일치)라고 주장했다. 진씨가 반박했다. "'좌파' 딱지를 허락받고 써야 한다면 차라리 반납하자. 좌파증은 좌파등급심사위원회로 보내면 되나? 그러니 이제 상표권 걱정은 마시되, 그저 우리를 C급에 들게 하지 마시고, 다만 자신을 A급으로 구하소서. 그래야 고래와 권세와 영광이 아저씨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소망교회에서 집사 10년이면 장로 한다. B급 좌파 10년, 이제 영전하실 때도 됐다."( 2011년 3월1일치). 김규항씨가 신학대를 나온 사실, 라는 김 발행인의 저서 제목을 풍자한 어법이었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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陳의 전쟁

[표지이야기] 나꼼수, 곽노현 등 비판해 '입진보' 비아냥 들어도 '비합리성'과 싸우기를 멈추지 않는 진중권…상하좌우 없이 대중에 편승한 반지성을 비판하는 문제적 개인, 진중권의 전쟁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진중권은 '전사'다. 10여 년 전 게시판을 단기필마로 휘젓던 시절부터 공인된 사실이지만, 그는 전투를 거듭할수록 에너지가 넘치는 타고난 무인 체질이다. 이런 진중권을 두고 소설가 서해성은 "그가 우리 편인 게 퍽이나 다행"이라 안도했지만, 최근 그가 취하는 공세의 칼끝은 공교롭게도 자신을 '아군'으로 여겨온 일군의 무리를 겨냥하고 있다.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에 대한 구속수사,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 (이하 )와 영화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투표소 변경 의혹 등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에서 진중권이 맞서 싸우는 상대는, 자신의 정체성을 '진보'로 규정해온 사람들이다.

나꼼수 향해 "닭들이 부흥회하는 분위기"

이 당혹스러운 상황 앞에서 적잖은 '진보 인사'들이 실망과 배신감을 토로한다. "와 새누리당이 할 역할을 진중권이 대행하고 있다"거나 "유아적 감수성을 벗지 못한 전형적인 소영웅주의자의 행태"라는 반응 등이 그렇다. 유념할 대목은, 진중권의 '진보 비판'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란 점이다. 가깝게는 2010년 6·2 지방선거를 전후해 자신이 당원으로 있던 진보신당의 논객들과 벌인 '대중노선 논쟁', 멀리는 2002년 안티조선운동의 '친민주당' 편향을 지적하며 강준만과 벌인 '옥석 논쟁'이 그런 경우다. 진중권 스스로도 자신에게 환호하는 대중을 향해 "수가 틀리면 언제든 배신을 때릴 수 있으니, 지나친 애정은 쏟지 말라"고 당부하지 않았던가.

물론 곽 교육감과 의 옹호자들이 진중권의 비판에 그토록 격하게 반응한 것은 단순히 믿었던 논객에게 뒤통수를 맞았다는 배신감 탓만은 아니다. 그들의 분노를 키운 건, 자신들이 한 때 한국 사회를 뒤흔든 황우석·심형래 사태의 '비이성적 대중'과 동일한 사람들로 취급받고 있다는 불편함이었다.

실제 진중권은 곽노현 구속수사의 부당성을 지적한 방송분에 대해 "닭장 속에서 닭들이 부흥회 하는 분위기"라는 조롱조의 소감문을 트위터에 올렸다. 현상을 다룬 칼럼에선 곽노현 옹호론이 "노무현·한명숙(에 대한 정치보복) 사건을 기억하고 곽노현 사건에 거의 반사적으로 반응한" 순진한 대중과, 이들을 활용해 과거 황우석·심형래 사건에서 실추된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려는 김어준의 합작품이란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상당수가 애청자인) 곽노현 지지자들은 이 '도발'을 참기 힘든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진중권의 트위터는 순식간에 곽노현· 지지자들의 비난과 욕설로 도배됐다. 하지만 여기에 굴할 진중권이 아니었다. 절대적인 수적 열세에도 특유의 풍자와 독설에 의도적인 무시와 회피술을 능란하게 섞어가며 논쟁의 판세를 주도해갔다. 지난해 10·26 재보궐 선거에서 입증된 의 위력에 위기감을 느껴온 보수언론은 호재를 만난 듯이 양쪽의 충돌을 중계 보도하며 부채질했다. 상황은 뒤이어 벌어진 영화 의 편파성 논란과 신생 대안언론 에 의해 재조명된 선관위 투표소 변경 의혹 공방에서도 유사한 양상으로 전개됐다.

황빠·심빠, 대중과 불화의 역사

눈여겨볼 대목은 진중권도 의 의미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가 주류 언론과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감이 누적된 상황에서, 좌절·분노·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일정한 카타르시스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긍정한다. 문자에 의존하지 않는 구술 메시지의 파급력도 높이 산다. 그가 문제 삼는 것은 그 안에서 유통되는 과도한 음모론과, 대중의 열광에 편승해 무언가를 성취하려는 제작진들의 '정치적 욕망'이다. 진중권은, 자신의 비판이 에 '놀이' 또는 '오락 프로그램'으로서의 '제 몫'을 찾아주기 위한 차원이라고 거듭 강조해왔다.

하지만 이런 진중권의 싸움은 단기간에 전과를 기대하기란 애초부터 어려웠다. 그의 상대는 그저 특정 정파를 지지하거나, 단순한 문화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 집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꼼수 4인방'이라는 정치색 강한 스타들을 중심으로 결속한 '정치 팬덤'에 가까웠다. 팬덤은 그 특성상 환호 대상과의 동일시가 강하고, 환호하는 이들끼리의 결속력도 견고한 법이다. 여기에 4인방의 일원인 정봉주의 구속을 계기로 만들어진 '순교자' 정서와, 민주주의의 평등 논리가 가미된 '반지성주의', 그리고 '반MB'라는 정치적 진영 논리가 결합했다. 싸움은 어느 순간부터 "적을 이롭게 하는 '입진보' 지식인"과 'MB와 싸우는 각성한 대중'의 유사 대결 구도로 흘러가고 있었다.

진중권도 이 싸움이 간단찮게 전개되리란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른바 '황(우석)빠' '심(형래)빠'와 대결하는 과정에서 통제되지 않는 대중의 '어두운 힘'을 누구보다 생생히 체감했기 때문이다. 2006년엔 지방 강연을 갔다가 황우석 지지자들에 의해 3시간 동안 억류되는 상황도 겪었다. 진중권은 뒷날 과의 인터뷰에서 황우석 사태가 정점을 찍었던 2005년 가을 당시를 이렇게 돌이켰다. "'노(무현)빠'와 '박(근혜)빠'가 '황빠'로 뭉쳐 한목소리를 냈다. 90%의 압도적 다수였다. 파쇼적, 나치즘적 상황이었다. 군중의 독재를 느꼈다."

한편에선 최근 팬들과의 논쟁에서 보여준 진중권의 날 선 비판이 2006년의 억류 경험과 관련이 있을 것이란 추측도 내놓는다. "진중권은 황우석 사건 당시 집단의 광기에 휩싸인 대중에게서 신변의 위협을 느끼는 트라우마를 경험한 적 있다. 혹시라도 그 트라우마가 대중에 대한 인색한 평가에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장은주 영산대 교수)

실제 진중권은 2006년 심신의 피로를 이유로 1년 가까이 글쓰기를 중단했다가, 2007년 영화 논쟁에 휘말리며 논객으로 복귀했다. 2009년 한 지방신문과의 인터뷰에선 "3년 전부터 약간 우울증이 있다. 황우석 사태 이후 정신적으로 회복이 덜 된 상태에서 무리하게 정치적 글쓰기를 재개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진중권을 두고 소설가 서해성은 "그가 우리 편인 게 퍽이나 다행"이라 안도했지만, 최근 그가 취하는 공세의 칼끝은 공교롭게도 자신을 '아군'으로 여겨온 일군의 무리를 겨냥하고 있다.

화법도 문제인가, 화법만 문제인가

하지만 진중권이 대중의 부정적 측면에만 주목해온 것은 아니다. 언젠가 그는 영국 작가 엘리아스 카네티의 말을 인용해 "군중(대중)은 한편으로 더불어 있는 게 황홀한 존재지만, 한편으론 두려운 존재"라고 말한 적 있다. 대중에겐 공중의 긍정적 계기와 폭민(暴民)화의 부정적 가능성이 병존한다는 뜻이었다. 2008년 여름의 촛불집회를 겪은 뒤엔 대중을 바라보는 그의 인식도 한층 구체성을 띠게 된다.

"황우석 사건과 심형래 사건 때 (대중은) 이 사회에 대해 절망하게 만들었고, 촛불집회 때는 절망 속에서 다시 희망을 갖게 만들었다. 그런데 촛불집회의 그 대중은 황우석 때, 때 그 대중이다. 대중은 굉장히 파시스트적인 군중이 될 수 있고 상당히 자율주의적인 다중이 될 수도 있다."(2009년 인터뷰 특강)

문제는 이런 대중의 '얼굴 바꾸기'가 한국 사회에선 매우 빠르고 극단적인 형태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진중권도 이 지점에 주목한다. "대중은 조변석개하고 조삼모사한다. 똑같은 얘기를 하는데, 오늘은 환호하고 다음엔 욕먹는다. 대중, 참 사랑스러우면서도 얄미운 존재다." 이런 '대중의 변덕'은 그가 볼 때 한국인의 정서적 특성에서 연유한다. "한국 사람들 자체가 파토스가 강하다. 그래서 논리적으로 설득해야 할 문화가 없고 선전·선동에 약하다. 중요한 건 한국 사람들의 인성 자체가 봉건적이고 파토스가 강하다는 거다."(2003년 지승호와의 인터뷰)

흥미로운 점은 진중권이 이런 '파토스 과잉'을 한국의 뿌리 깊은 구술문화 전통과 연결짓는다는 사실이다. 500년 전부터 문자문화로 진입하기 시작한 덕분에 지식인의 이성적인 정신 구조가 대중에게 폭넓게 뿌리내린 서구와 달리, 한국은 문자문화의 정착 역사가 50년이 채 안 돼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구술문화의 잔재가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진중권의 논리에 따르면, 한국 사회의 정치·사회적 문제 대부분은 문화와 습속의 '비합리성'(후진성)에서 발원한다. 따라서 이성이 가리키는 바른 길로 대중을 향도하기 위해, 대중의 비합리성을 부단히 비판하고 때로는 그들과 전면전을 불사하는 것은 시대가 부여한 지식인의 소명이다. "참된 먹물은 대중의 신뢰를 배반함으로써 참된 신뢰를 얻는다. 많은 지식인들이 대중이 듣고픈 말만 하면서 대중과 더불어 가려고 한다. 편에 따라 말 바꾸지 않고 잘못된 걸 꾸준히 비판하는 것, 그게 신뢰다."(2008년 인터뷰 특강)

문제는 '소명'에 복무하는 그의 비판이 필요 이상의 많은 적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오랜 기간 진중권을 지켜본 학계의 한 인사는 "아무리 옳은 소릴 해도, '닭짓'이니 '새대가리'니 하는 언사를 예사로 날리는 사람 말이 얼마나 호소력을 갖겠느냐"고 반문한다. 실제 진중권에게 가해지는 비판의 상당 부분은 그의 화법·문체와 관련돼 있다. 그의 장기는 풍자와 비틀기다. 때론 모욕에 가까운 조롱과 냉소가 동원된다.

"참된 먹물은 대중의 신뢰를 배반함으로써 참된 신뢰를 얻는다. 많은 지식인들이 대중이 듣고픈 말만 하면서 대중과 더불어 가려고 한다. 그러니 일관성이 없어 공신력이 떨어진다. 편에 따라 말 바꾸지 않고 잘못된 걸 꾸준히 비판하는 것, 그게 신뢰다." -진중권

타락한 사회에 타락한 방법으로 맞서기

자신의 화법이 많은 사람에게 불쾌감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진중권도 안다. 하지만 바꿀 뜻은 없어 보인다. 2003년 인터뷰에서 그는 "예의, 말투, 그런 부차적인 것들을 문제 삼는 것을 인정하고 들어가는 것 자체가 인성의 봉건성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말 인터뷰를 보면, 주변에서 뭐라든 자신의 화법을 극단까지 밀고나가 보겠다는 '결기'마저 느껴진다. "나는 사람들을 다독거리고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약을 올린다. 생각하고 엉기게 만든다. 건방진 느낌으로, 살짝 재수 없게, 열받게 건드린다. 그래서 덤비면 슬슬 상대해준다. (논쟁의) 인문학적 임무는 진보건 보수건 공부를 하게, 똑똑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잘못하면 바보가 되니까 인터넷 검색이나 생각이라도 한번 하고 덤벼들게 만든다."

이런 진중권에게 불화와 고독은 운명이다. 어쩌면 그는 뤼시앵 골드망이 정의한 근대소설의 주인공처럼, 타락한 사회에서 타락한 방법으로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진중권을 우리 시대의 반영웅, 진정한 의미의 '문제적 개인'이라 불러도 별 무리는 없어 보인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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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한명숙 대표, 이 대통령 닮아가나 / 정남기

2년여 전이다. 현 정권의 기세가 등등하던 때다. 이명박 대통령은 텔레비전 방송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세종시 원안 이전 공약을 철회하면서 "지금 생각해보면 부끄럽고 후회스럽다"고 했다. 하지만 공약 번복에 대한 사과는 한마디도 없었다. 세종시 이전을 당당하게 반대하지 못한 게 후회스럽다는 말이었다.

옳고 그름은 둘째 문제다. 처음부터 끝까지 변명으로 일관했다. 화법도 엉망이었다. 누가, 누구에게, 무엇이 죄송하다는 것인지도 분명히 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손해지만 대의를 위해 선심을 썼다는 식의 논리를 폈다. 상황은 악화됐고, 권력의 절정기에 있던 이 대통령의 기세는 거기서 꺾였다.

이번에는 민주통합당의 한명숙 대표가 말바꾸기 논란에 휩싸였다. 총리 시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고 했다가 야당 대표가 된 뒤 협정 폐기를 들고나온 것 때문이다. 그럼 실제 발언은 어땠을까?

"(에프티에이 반대) 불법폭력시위는 국민적 저항과 분노만 남을 뿐이다. 이런 시대착오적인 발상은 앞으로 있어서는 안 되며, 정부의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 …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엄단할 것이다"(2006년 12월), "참여정부가 추진해온 균형외교, 실리외교의 결실이다. 개방은 우리 경제를 도약시킬 수 있는 기회다."(2007년 4월)

"자유무역협정에 대해 침묵하거나 두둔하는 세력에 정권을 맡길 수 없다"는 지금과는 완전 딴판이다. 해명은 이랬다. "내용과 상황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애초엔 이익균형이 맞았지만 지금은 굴욕외교협상을 통해 만들어진 실익 없는 협정이라는 주장이다.

과연 그럴까? 자동차 분야 재협상이 있었지만 실제 내용은 과거나 지금이나 거의 차이가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투자자-국가 소송제(ISD), 래칫(역진방지) 등의 독소조항들이다. '내용이 바뀌었다'는 주장은 군색한 변명일 뿐이다. 상황변화론은 어떤가. 참 무책임한 말이다. 상황은 언제나 바뀌기 마련이다. 앞으로도 언제든지 입장이 바뀔 수 있다는 말로 들릴 뿐이다.

굴욕협상을 한 것은 맞다. 현 정부는 자동차 분야에서 추가 양보를 했다. 그러나 더 심한 굴욕협상의 당사자는 참여정부였다. 협상 시작 전에 미국이 요구하는 4대 선결조건을 들어줬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스크린쿼터 축소, 배출가스 규제기준 완화, 건강보험 약값 재조정 등이다. 애초부터 이익균형을 달성할 수 없는 협상이었다.

중요한 것은 한 대표의 태도다. 솔직한 반성과 사과는 없고 변명과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세종시 공약을 번복하는 이 대통령을 보는 듯한 모습이다. 민주당은 총선을 앞두고 정체성을 핵심적인 공천 심사 기준으로 삼겠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지도부의 정체성과 도덕성은 어떤가. 자유무역협정만이 살길이라고 외치다가 아무런 반성과 사과 없이 이를 폐기하겠다고 한다면 그야말로 정체성과 도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정당을 옮기는 사람만 철새 정치인은 아니다. 시류에 따라 수시로 말을 바꾼다면 그게 바로 철새 정치인이다. 그들도 아마 이렇게 변명할 것이다. "내용과 상황이 바뀌었다"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전에 가장 경멸했던 것은 기회주의였고, 가장 중시한 것은 원칙과 신뢰였다. 그는 '못다 쓴 회고록' 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야 진보도 있고 보수도 있다"고 했다. 또 "말을 함부로 바꾸는 사람들은 지도자의 영역에서 퇴출시켜야 한다"고 했다.

변명은 거짓말을 낳고 자신의 행보를 더욱 꼬이게 만들기 마련이다. 더 늦기 전에 사실을 인정하고 진지한 반성과 사과가 뒤따라야 한다. 그래야 민주당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정남기 경제부장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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