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09

“혼자 남더라도…” 당원주권 고집 박지원의 ‘몽니’

7일 밤 박지원 전 민주당 원내대표는 술을 많이 마셨다. 그는 이날 낮 야권 통합정당 추진 과정에서 대립했던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결별 선언'을 한 터였다. 늦은 밤 술에 취해 그는 페이스북에 '반통합'으로 내몰린 자신에 대한 항변의 글을 올렸다.

"민주당을 지키려는, 비록 소수이지만 그분들을 저라도 대변하렵니다. 그분들이 안 계셨다면 김대중 노무현 두 분 대통령이 탄생했을까요? 박원순 시장도 그분들이 당선시켰다고 저는 믿습니다. 욕심 몽니 어깃장이 아닙니다."

시민들이 참여하는 당 지도부 경선으로 '모양 좋게' 통합정당을 시작하려는 당내 다수와 다른 길을 걷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는 8일 오후 서울 영등포 민주당사에서 열린 원외위원장회의에서도 "혼자 남더라도, 비장한 각오로 민주당을 지키는 소수의 세력을 안고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대변하겠다는 '소수'는 결국 호남향우회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층이다. 그의 한 측근은 "당원주권론을 주장하는 우리에게 정치적인 명분이 없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수도권에 있는 호남 사람들을 설득해 내년에 투표장에 나오게 해야 한다. 그 역할을 할 사람은 박 전 원내대표밖에 없다"고 말했다. 총선, 대선 때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층을 움직여야 하니, 당장 비난을 받더라도 '명분'보다 '실리'를 챙기는 악역을 맡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민주당 안팎에선 "박 전 원내대표가 자신의 '영향력' 극대화를 위해 '당원주권론'이라는 형식논리에 기대 지역정서와 호남 기득권을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훨씬 많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계승자를 자처하면서도, 그가 강조했던 '과감한 외부 수혈'과 '통합을 위한 통큰 양보'라는 핵심 메시지를 거스르고 있다는 것이다.

유력 당권주자로서 권리를 주장하면서도,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그는 손 대표와 결별하게 된 이유로 "나와 모든 걸 합의하기로 약속했는데, 손 대표가 합의 없이 통합관련 룰을 정했다"고 권리를 주장했다. 반면 11일로 예정된 전당대회와 관련해서는 "(저는 통합에) 반대하는 분들을 움직일 힘도 능력도 없다. 혹시 부결되더라도 그것은 제가 한 일이 아니고 지도부 때문"이라고 책임을 돌렸다. "통합에 반대하지 않는다"면서도 반대파 설득은 자기 몫이 아니라는 태도도 비판받는 대목이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박 전 원내대표가 (전당대회의) 법과 절차를 강조하고 있지만, 그 스스로 '정치적 합의가 더 중요하다'고 말해오지 않았느냐"며 "그는 시민참여경선 불가론만 외쳤을 뿐 어떤 정치적 합의도 시도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런 사정 탓에 박 전 원내대표의 당내 입지도 점차 '사면초가' 상황에 몰리고 있다. 애초 단독 전당대회 개최를 주장하며 그를 지지했던 20여명의 현역 의원들 가운데 상당수는 '통합 뒤 지도부 선출'이라는 절충안이 나온 이후 그와 거리를 두고 있다. 국민참여경선을 반대했던 그의 의견에 동조하는 의원들도 많지 않았다. 민주당 소속 현역 의원과 지역위원장 190여명은 이날 성명을 내어 "국민참여경선 방식의 지도부 선출안을 지지하며, 통합을 가로막으려는 행위는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며 박 전 원내대표 쪽을 압박하고 나섰다.

석진환 손원제 기자 soulfat@hani.co.kr

‘반독재 투쟁’ 김근태 병마와 투쟁

김근태(64) 민주당 상임고문이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을 결성했다는 이유로 구속된 것은 1985년이었다. 그는 고문기술자 이근안씨로부터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전기고문을 받았다.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전두환 정권의 폭압이 기승을 부리던 때였다. 전기고문을 받은 사실이 전세계에 알려지면서 그는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을 받았다. 독일 함부르크재단은 그를 '세계의 양심수'로 선정했다.

정계에 입문한 그는 1996년 국회의원에 당선돼 내리 3선을 지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보건복지부 장관, 열린우리당 의장을 했다. 1970~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인물로서 세속적인 보상은 받을 만큼 받은 셈이다. 그러나 고문으로 망가진 그의 육체는 보상을 받지 못했다.

2006년 어느 날 파킨슨병 권위자인 전범석 박사(서울대병원 신경과)는 텔레비전을 통해 김근태 상임고문을 지켜보고 파킨슨병이라는 것을 알았다. 파킨슨병은 뇌의 흑질에 분포하는 도파민의 신경세포가 점차 소실되어 발생한다. 원인은 알 수 없지만 경직, 느림, 자세 불안정, 손떨림 등이 전형적인 증상이다. 증상이 서서히 악화하는데 개선되지는 않는다.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가 파킨슨병 환자다.

김근태 상임고문은 지금까지 파킨슨병 환자라는 것을 숨기고 치료를 받았다. 고문 후유증으로 파킨슨병에 걸린 것으로 추정되지만, 어쨌든 정치인에게 건강 악화는 치명적 약점이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중순부터 증상이 악화됐지만 그냥 파킨슨병 때문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11월25일 정밀진단 결과 뇌정맥에서 혈전이 발견됐다. 입원해서 치료를 받던 중 이번에는 갑자기 출혈이 생겼다. 경련도 일어났다. 다행히 고비를 넘겼고 지금은 빠르게 회복중이다.

문제는 김 고문이 누구보다 사랑하는 딸 병민(29)씨의 결혼식이 10일로 잡혀 있다는 사실이었다. 가족들은 어쩔 수 없이 김 고문의 입원과 파킨슨병 환자라는 사실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8일 한반도재단 명의로 짤막한 보도자료가 나왔다.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전기고문 등 심한 고초를 받아온 김근태 한반도재단 이사장이 지난달 29일 뇌정맥혈전증으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김 이사장은 수년간 파킨슨병 진단을 받아 투병해 왔습니다. 담당 의료진은 김 이사장이 현재 빠르게 회복중이며 예후가 좋다는 소견을 보이고 있습니다.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의료진의 권고가 있어 당분간 면회와 취재를 사양하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 고문은 아직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아는 사람의 얼굴이 눈앞에 나타나면 손을 조금 움직여 아는 척을 한다. 딸 병민씨는 아버지의 상태가 악화되자 그의 손을 붙잡고 "아빠, 나한테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라고 울부짖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버지가 회복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차분하게 '아버지 없는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부인 인재근씨는 하느님에게 "남편을 살려달라"고 기도했다. 인씨는 "'김근태의 몸이 지금 우리나라의 불편한 민주주의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라고 하느님이 나에게 응답해 주셨고, 지금은 마음이 편안하다"고 말했다. 인씨는 남편의 귀에 "반드시 일어난다. 김근태 파이팅"이라고 외쳤다.

김근태 고문은 2008년 서울 도봉갑에서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에게 1200표 차이로 져 의원직을 잃었다. 그 뒤로 '민주진보세력이 다시 집권할 때'에 대비해 공부모임을 만들어 이끌어 왔다. 최근에는 야권통합에 힘을 보태려고 민주당, 민주노동당 인사들을 만나 통합을 권유하기도 했다.

그가 건강을 회복해 내년 4·11 총선에 다시 나설 수 있을까? 신만이 알 수 있는 일이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2011-12-08

민주·시민통합당 ‘통합 룰’ 합의

민주당과 '혁신과 통합' 등이 모여 만들 민주통합정당이 지도부 경선은 물론, 총선 후보자 공천도 국민과 당원이 함께 참여하는 국민참여경선으로 치르게 된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이해찬 '혁신과 통합' 상임대표 등 양쪽 지도부는 7일 오후 국회에서 만나 통합정당의 약칭을 민주당으로 하기로 하는 5가지 사항에 최종 합의했다.

주요 합의 내용은 △당 대표와 최고위원 등 지도부는 국민과 당원·대의원이 참여하는 국민참여경선으로 뽑고, 선거인단은 '대의원 30%, 당원·시민 70%'로 구성하며 △19대 총선 지역구 공천은 당원과 시민이 참여하는 완전개방 시민경선으로 하고 △노동계와 청년(24~35살) 1명씩을 최고위원으로 배정한다는 것이다. 협상 실무를 맡은 조정식 민주당 통합협상단장은 "민주당과 '혁신과 통합'의 통합 협상은 오늘 합의로 사실상 끝났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혁신과 통합' 구성원들과 지지자들은 이날 오후 서울 청담동의 한 복합문화공간에서 모여 '시민통합당'을 창당했다. 시민통합당은 실무적인 통합협상을 거쳐 이르면 올해 말, 늦어도 내년 1월 초에 열리는 통합 전당대회에서 민주당과 합당(신설합당)절차를 거쳐 새로운 민주통합정당으로 거듭나게 된다.

통합 과정의 마지막 남은 고비는 박지원 전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한 민주당 독자 전당대회파들의 반대다. 박지원 전 대표는 이날 손학규 대표의 요청으로 오찬을 겸해 만났으나, 통합에 뜻을 모아 달라는 요청에 고개를 저었다. 박 전 대표는 와의 통화에서 "손 대표에게 '11일 통합 전당대회는 잘 치르시라. 그러나 저는 마음을 비우고 저의 길을 가겠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현재 영호남 지역 상당수 대의원들은 11일 전당대회에 불참해 대회를 정족수 미달로 부결시키자는 의견들을 모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표는 이에 대해 "호남 쪽 대의원들은 참석할 것"이라고 부인했다.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박근혜 선택 기로‘대선 시간표’ 전면 수정해야할 상황

"지금까지 자신의 대선 스케줄에 맞춰 움직인 박근혜 전 대표에게 이제 당의 존망이란 문제가 들이닥쳤다."(한 친박 참모)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어쩌면 그의 대선일정표 전체를 수정해야 할지도 모르는 중대한 선택이다. 친박계인 유승민 최고위원을 비롯한 원희룡, 남경필 최고위원의 동반사퇴에 어떤 식으로든 답을 해야 하는 상황에 마주쳤다. 홍준표 대표는 7일 의총 뒤 물러나지 않았지만 어떤 형태든 박 전 대표의 조기 등판은 시간문제라는 전망이 나온다.

박 전 대표의 조기 등판을 극도로 꺼려온 친박계 다수파도 "더는 우회할 수만은 없다"(이한구 의원)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박 전 대표 쪽은 지난 2일 벌어진 중앙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태에 대한 홍준표 대표의 대처를 보고서부터 조기 등판 상황을 경우의 수에 넣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친박 핵심의원은 "의총 한번 했다고 홍 대표 물러나라는 소리가 잠잠해지겠느냐"며 "박 전 대표도 상당히 심각하게 상황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이날 박 전 대표는 최고위원 3명이 사퇴한 뒤 열린 의총에서도 홍준표 대표의 진퇴문제가 명확히 정리되지 않자 당혹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심 의원들의 쇄신 요구에 부응해 조기 등판하는 모양새를 취하려 했다가 뜻밖의 상황에 부닥쳤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의 한 핵심 측근은 "이렇게 당이 부글부글 끓는 상황에서 아무도 이를 어떻게 못하고 있으니 정말 답답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박 전 대표가 나서느냐다. 선택지는 크게 3가지다. 친박 진영에선 박 전 대표가 전권을 쥔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홍준표 대표가 결국 얼마 버티지 못하고 사퇴하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도 내심 이 방식을 선호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박 전 대표가 전권을 쥐고 당내 개혁작업과 인재영입, 정책 쇄신을 이끌면서 재창당에 준하게 당을 변모시키는 개인기를 발휘하면 당과 박 전 대표 모두에게 활로가 열릴 것이란 셈법이다. 하지만 박 전 대표가 무난히 비대위원장에 오를지 미지수란 전망도 있다. 다른 대선 주자들인 정몽준 전 대표와 김문수 경기지사, 이재오 의원 등이 강력히 반발하면 잡음을 피하기 어렵다.

박 전 대표가 전당대회에 전격 출마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 전 대표의 한 참모는 "이젠 다 버리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대통령을 안 해도 그만이고 우선 당을 살려야 한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준표 대표는 이날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박 전 대표가 나설 길을 터놔야 한다"며 당헌당규 개정 작업을 할 수도 있다는 뜻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는 박 전 대표가 철칙으로 주장해온 당권·대권 분리 원칙을 깨야 하는 부담이 있다.

홍 전 대표 체제를 연말까지는 지켜보고 애초 계산대로 내년 초 조기에 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는 방법도 거론된다. 하지만 이 방식은 타이밍을 놓칠 수 있고 자칫 '정치적 불신임'을 받은 홍 대표 체제를 옹호한다는 비판을 감수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당내에선 박 전 대표가 등장해도 별수 없다는 비관론도 적지 않다. 원희룡 최고위원은 이날 사퇴 기자회견에서 "지금처럼 폐쇄적이고 수동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박근혜가 아닌 박정희가 나와도 안 된다"고 말했다. 남경필 최고위원도 "비대위는 법륜 스님이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처럼 좌우를 아우르는 외부 인사로 구성해야 한다"며 "전대를 해도 박 전 대표나 정몽준 전 대표, 김문수 경기지사, 이재오 의원 등이 지도부가 되면 다시 갈라먹기 갈등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2011-12-07

[유레카] 위헌정당 해산제도 / 박창식

나치의 집권은 세계 민주주의 역사에 가장 수치스러운 기억이다. 나치당이 민주공화정인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을, 그것도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독일 입법자들은 그 뒤 민주주의를 원용해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정당을 더 이상 관용해선 안 된다면서 '방어 민주주의' 개념을 연구한다. 나치 패망 이후 독일 헌법에 위헌정당 해산제도를 도입한 연유다.

독일은 이 제도를 주로 극우 정당의 발호를 막는 데 적용했다. 1951년 서독 연방정부는 사회주의제국당을 나치당의 후계 정당으로,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에 도전하는 존재로 규정한다. 정부의 제소를 심사한 헌법재판소는 정당 해산을 결정했다. 정당의 위헌성이 확인되면서 그 정당 공천으로 당선된 국회의원·지방의원들도 자리를 잃었다.

2001년 연방정부는 극우 신나치주의 정당인 독일민족민주당에 대해 다시 위헌정당 해산 심판을 청구했다. 이 경우는 미묘한 절차 논쟁이 일어나면서 2003년 심판 정지가 선언됐다. 1956년에는 독일공산당이 헌재 결정으로 해산 처분을 당했다. 독일공산당은 나치즘의 부활과 무관했다. 이런 까닭에 독일공산당 해산 결정은 두고두고 비판받았다.

한나라당이 최구식 의원 비서의 선관위 누리집 공격 사건 때문에, 최악의 경우 정당해산 처분을 받을 수도 있게 됐다. 중앙선관위는 공격행위를 '민주적 기본질서 위배 행위'로 공식 규정했다. 우리 헌법은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배하는 정당은 헌법재판소 심사를 거쳐 해산하도록 하고 있다. 물론 이번 사건에 당 차원의 연루가 확인되느냐 여부에 따라 처분은 달라진다.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은 요즘 "자진 해산 뒤 재창당"을 주장하고 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결과인지, 아니면 강제해산을 피해보려는 또다른 꼼수인지 모르겠다. 박창식 논설위원 cspcsp@hani.co.kr

[성한용 칼럼] 물러날 사람은 물러나야 한다

김한정씨는 1963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났다. 서울대에서 학생운동을 하다가 감옥살이를 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 공보비서로 들어갔다. 그리고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청와대 제1부속실장을 지냈다. 성격은 정의감이 강한 다혈질이다. 그가 가천대(경원대) 교수직을 포기하고 서울 양천을에 도전장을 냈다. 민주당과 '혁신과 통합'이 합쳐지면 그 정당에 입당할 생각이다.

양천을은 과거 김영배 국회부의장이 국회의원을 지낸 곳이다. 야당세가 강하다. 그런데 지금 국회의원은 한나라당 김용태 의원이 하고 있다. 2008년 선거에서 민주당의 김낙순 전 의원을 2400표 차이로 꺾었다. 김한정씨가 국회의원이 되려면 우선 당내에서 김낙순 전 의원의 벽을 넘어야 한다.

김한정씨 이외에도 많은 정치 신인들이 내년 4·11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하고 있다. 이들이 한결같이 호소하는 애로는 진입장벽이 너무 높다는 것이다. 도대체 합법적으로 자신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현역 정치인들이 신인들의 도전을 막기 위해 선거법을 까다롭게 만든 탓이다. 선거관리위원회 실무자들도 현행 선거법은 정치 신인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말할 정도다.

민주당과 '혁신과 통합'은 국회의원 후보를 국민경선으로 선출하기로 의견을 모은 상태다. 한나라당도 의원들 대다수가 국민경선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경선은 명분은 좋지만 현실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기존 정치인들에게 유리하다. 정치 신인들은 전·현직 국회의원과 불공정 게임을 벌여야 한다.

민주당의 서울 지역위원장 명단을 살펴보면 전직 의원들이 많다. 2004년 선거에서 탄핵 바람을 타고 대거 당선됐다가, 2008년에는 반대로 대거 낙선했기 때문이다.

최재천(성동갑), 임종석(성동을), 민병두(동대문을), 이상수(중랑갑), 김덕규(중랑을), 유승희(성북갑), 신계륜(성북을), 오영식(강북갑), 김근태(도봉갑), 유인태(도봉을), 정봉주(노원갑), 우원식(노원을), 우상호(서대문갑), 노웅래(마포갑), 정청래(마포을), 김낙순(양천을), 신기남(강서갑), 이인영(구로갑), 이목희(금천), 김영주(영등포갑), 이경숙(영등포을), 유기홍(관악갑), 장복심(송파을), 심재권(강동을) 등이다. 48개 지역구에서 24명이니 딱 절반이다. 서울의 민주당 현직 의원은 8명이다. 여기에 정세균 최고위원이 종로 출마를 선언했고, 천정배·김효석 의원도 서울 지역 출마가 예상된다.

이 사람들 중에는 반드시 국회에 들어가야 하는 괜찮은 정치인들이 많다. 국회에는 다선 의원이 필요하다. 정당에는 노장청 조화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제 좀 비켜줘야 할 사람들도 많다. 현역 시절 의정활동이 시원치 않았던 사람, 빛바랜 과거의 훈장 이외에는 내세울 게 없는 사람들은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 그 자리를 새 인물로 채워야 통합야당의 미래가 열리고 대한민국 정치도 발전한다. 당사자들은 억울하겠지만 때가 되면 물러나야 하는 게 세상의 이치다.

최근 한나라당은 디도스 파문 등 악재가 겹치면서 공황 상태에 빠졌다. 최고위원들이 줄줄이 사퇴하고 당 해산 주장까지 나온다. 불출마 선언이나 탈당을 검토하는 의원들도 있다. 변화하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 사람들은 태평이다. 공천만 받으면 당선될 것이라는 자신감이 넘친다. 민주당뿐만 아니다. '혁신과 통합', 통합진보당의 유력 정치인들도 야권 단일후보만 되면 당선될 것이라는 낙관론에 빠져 있다.

정말 그럴까? 공천만 받으면 당선될까? 선거는 구도와 인물에 의해 승패가 갈린다. 구도가 아무리 좋아도 인물이 시원치 않으면 떨어지는 게 선거다. 여당과의 인물 쇄신 경쟁에서 크게 뒤진다면, 내년 선거에서 야권이 역심판을 받을 수도 있다.

진보는 앞으로 나아간다는 뜻이다. 민주당은 진보정당은 아니지만 진보를 자처하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보수를 자처하는 한나라당이 비명을 지르며 살겠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진보를 자처하는 민주당이나 진보정당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