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19

[경향사설]민주주의를 왜 자유민주주의로 바꾸려 하나 - 2011-08-15 21:13:32

[사설]민주주의를 왜 자유민주주의로 바꾸려 하나
 
교육과학기술부는 올해 새로 쓰여진 초·중등 교과서를 폐기하고 내년부터 새 교과서로 가르치라고 다그치고 있다. 2007 개정 교육과정 개편작업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2009 개정 교육과정을 밀어붙이더니 내년 3월부터 일선학교에서 가르칠 새 교과서를 반년 만에 만들어내라고 닦달하고 있는 것이다. 가히 교과서 개편의 속도전이다. 교육계를 당혹스럽게 하는 교과부의 이 같은 졸속강행의 속셈은 현대사 교과서 개편 지침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민주주의’란 표현을 ‘자유민주주의’로 바꾸도록 해 교과서에 이념의 덧칠을 하려는 것이다.

문제가 된 대목은 4·19혁명 이후의 과정을 어떤 관점에서 기술할 것인가이다. 국사편찬위원회 산하 역사교육과정 개발정책연구위원회(개발위)가 공식 절차를 밟아 제출한 최종 시안에서 ‘민주주의’라고 한 것을 교과부가 ‘자유민주주의’란 용어로 수정했다고 한다. ‘한국현대사학회’의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교과부의 해명이다. 주지하듯 현대사학회는 좌편향 트집을 잡아 역사교과서를 바꿔야 한다고 소동을 벌였던 ‘교과서포럼’ 인사들이 2009 개정 교육과정을 겨냥해 급조한 단체다. 교과부는 역사학계의 정설(定說)을 무시하고 학회라기보다는 정파에 가까운 현대사학회의 정견(政見)을 좇은 꼴이다.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것은 민주주의이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제1조 1항)로 시작되는 헌법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제4조)란 표현이 등장한 것은 1972년 유신 때였다. ‘자유민주적’이란 표현은 냉전시대 반공의 색채가 다분하다. 이를 근거로 헌법이 ‘민주주의’ 대신 ‘자유민주주의’를 규정한 것으로 해석하기 힘들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이처럼 논란이 있는 용어를 21세기의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과연 온당한 것인가에 대해 교과부는 일말의 고민이라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자유와 평등은 민주주의의 두 기둥이다. 민주주의에 ‘자유’라는 수식어를 굳이 붙이겠다는 것은 민주주의도 좌우로 편가름하겠다는 이념공세에 지나지 않는다.

교과서 개편은 졸속과 변칙으로 뒤범벅되어 있다. 한국 현대사를 사실과 진실 그대로 서술해야 한다며 요란을 떨었지만, 그 실상은 남루하기 짝이 없다.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꿔 친일과 이승만·박정희 독재를 정당화할 수 있다고 여긴다면 시대착오다.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로 가르쳐야 옳다. 민주주의를 좌편향으로 보려는 이념의 굿판에서 교과부는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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